4. 증여 윤리 타락의 극점: 수증자를 채무자로 만들기

최나리 변호사의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에 대한 비판(4)

그런데 소장의 구성방식을 보면 최나리가, 자신이 제시한 주위적 청구원인(‘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이 법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기각되라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예비적 청구원인을 준비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본 소송의 실제적 핵심은, 윤지오가 수증자로서 불법행위를 했다는 식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에 있다기보다,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반환 청구’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청구는 과연 법리적 타당성이나 근거를 갖고 있는가?

“가사 위와 같은 불법행위가 민법 제75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주위적 청구가 기각된다 하더라도, 원고들은 피고의 기망행위, 즉 사기를 원인으로 하여 증여의 의사표시를 취소하는 바이며, 그 취소의 의사표시는 이 사건소장으로 갈음하는 바입니다. (…) 원고들이 후원금에 대한 증여의 의사표시를 민법 제110조 제1항에 의하여 취소하는 이상, 피고가 받은 후원금은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은 것이므로 부당이득에 해당하여 원고들에게 반환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피고는 악의의 수익자라 할 것이므로, 원고들이 지급한 후원금 총 10,231,042원에 연 5%의 비율로 법정이자를 붙여 반환하여야 할 것이고(다만 그 기산점은 계산의 편의를 위하여 이 사건 원고들 중 최후로 후원금을 지급한 2019.4.23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비율로 인한 지연이자를 지급하여야 할 것입니다.”

민법 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다. 최나리는 피고의 기망행위가 원고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갖는 위법행위가 아니라서 주위적 청구원인이 기각된다면 이제 동일한 원인, 즉 ‘기망행위=사기’를 근거로 하여 이 고소장으로 ‘증여의 의사표시에 대한 취소’를 갈음하니 이 ‘악의의 수익자’로부터 부당이득을 돌려받게 해 달라고 청구한다.

이 청구에서도, 비록 손해배상청구에 비해 청구금액은 축소조정되었지만(손해배상금을 뺀 약 1000만원) 고리대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다. 법정이자 5%와 지연이자 12%. 즉 ‘선의’의 증여를 고리대를 착복하기 위한 ‘악의’적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나리가 사용하는 이런 악의적 방식을 통해 증여자가 채권자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에, 증여자의 선의를 받아들인 그 수증자는 고리대 채권자로 변한 그 증여자에게 원금과 상환을 독촉 당하는 억울한 채무자로 위치지어질 수밖에 없다. 

증여가 채권으로, 수증이 채무로 둔갑하는 이 경악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대체 ‘증여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증여하고 수증하는가?’ ‘증여와 수증의 성격이 현대 사회에서 왜 이런 변질을 겪는가?’ 라는 본질적인 물음들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시작되어 레비스트로스(<마르셀 모스의 저서에 대한 서론>)와 모리스 고들리에(<증여의 수수께끼>)에 의해 비판적으로 정정/확장되었으며 가라타니 고진(<세계사의 구조>)에게서 정치적 대안원리로까지 받아들여진 이 증여의 문제의식과 그것의 유효성을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그 작업을 하기에 적합한 자리는 아니므로 다른 기회로 미루어두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나는, ‘증여의 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한편에서는 경악스럽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이러한 고소사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애초에 ‘후원자들이 왜 윤지오에게 후원하고자 하는 의지(선의)를 갖게 되었던가?’라는 질문을 떠나서는 해명될 수 없다는 점만을 강조해 두고 싶다. 즉 ‘후원자들의 증여’에서 출발해서는 안 되고 그에 선행했던 ‘윤지오의 증여’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윤지오가 후원자들에게 무엇을 주었길래(원-증여) 후원자들이 그를 후원(답례-증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가?’라는 물음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물음은, 후원자를 출발점으로 삼은 ‘증여-수증’의 과정만을 놓고 그것이 ‘사기였던가 아니었던가?’라는 프레임 속에 우리를 가두는, 철저히 시장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박훈-최나리의) 소송행렬 속에 묻혀 제기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3월 15일까지 후원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거듭된 계좌공개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던 윤지오가 왜 3월 18일에 후원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던가?’라는 물음을 포함하는 것이다. 명백히 이것은, 수증이 ‘기회’라기보다 ‘의무’가 되고 수증거부가 연대의 거부와 전쟁의 선포로 되는 상황 속에 윤지오가 놓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셀 모스는 포틀래치적 증여경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상황의 맥락과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아무튼 최나리는 이 소장에서 윤지오를 ‘증여의사 표시의 취소’를 한 원고들의 채무자로 사로잡는 데 집중한다. 여기서 그는 민법 110조 1항(‘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을 그 포획의 그물로 사용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법률적 포획이 가능한가? 나는 이미 앞에서, 그가 ‘사기=기망’의 근거로 든 것들이 실제로는 근거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 설명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에 그 실재가 인정되었던 것이고 2019년의 진술들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므로 그 신빙성이 의심될 여지는 없으며 증언자에 대한 가해권력의 위협(보복이나 예방공격의 가능성)은 윤지오에 의해 과장되었다기보다 오히려 과소인식되고 과소평가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사기=기망’은 최나리에 의해 욕망되고 상상되고 있는 것일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사기’가 없었던 한에서 ‘증여의사 표시의 취소’는 물론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근거를 잃는다. 그래서 오히려 윤지오의 증언들을 ‘사기=기망’의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장을 내미는 이 집단고소행위야말로 허위사실을 가지고 윤지오를 무고하여 국가형사권과 징계권을 어지럽히고 이를 통해 고리대 수준의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런 점을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최나리는 소장의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 사건과 동일한 사실관계로 박훈 변호사에 의하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고에 대한 사기고소가 이루어진 상황이므로, 해당 사건의 추이를 보고 추가로 주장 및 입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쓴다. 실제로 최나리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거나 증언자가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등의 자신의 청구 원인에 대한 어떤 객관적 입증도 하지 못했으며 유일하게 윤지오의 말이 100% 진실은 아니라는 김수민의 고발문건에 그 해석적 근거를 의존해 왔다. 

이제 결론 부분에서 그는 자신이 청구의 원인으로 삼은 ‘기망행위=사기’와 관련해 박훈의 ‘사기 고발’에 의존하려는 나약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최나리에게는 불행하게도 박훈의 바로 그 ‘사기 고발’ 행위가, 2019년 8월 2일 정의연대에 의해. ‘윤지오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로 고발되었다. 최나리가 의존하려고 한 지지대가 몸을 기댈만큼 든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자신의 청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최나리는 어디에서 의지할 곳을 찾으려고 할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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