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1)

2019년 8월 2일 정의연대는 박훈 변호사를 윤지오에 대한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였다. 이 고발장은 ‘윤지오가 후원금을 받은 것은 기망행위 혹은 사기다’라는 법률적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내세우는 박훈의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 두 주장 중의 하나는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윤지오에 대한 신변위협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박훈의 고발에 기초하여 손해배상과 부당이득을 청구하는 고소장을 작성한 여성 변호사인 최나리는, 리스트도 위협도 없었다는 박훈의 이 강한 버전을,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은 믿기 어렵고 위협은 과장되었다는 식의 약한 버전으로 바꾼다. 2019년 5월 20일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 이후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상황에서 심의발표와 너무 배치되는 박훈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중에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이 고발문건을 기초로 박훈의 두 가지 주장을 비판함으로써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고 신변위협도 있었다는 점을 좀더 분명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재확인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박훈의 고발이 허위주장에 기초해서 조작된 가짜고발임을 밝히고자 한다.

위에서 말한 ‘윤지오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 고발’의 원인이 된 것은 2019년 4월 26일 변호사 박훈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한 윤지오에 대한 고발장이다. 이 고발장에서 박훈은 다음과 같은 고발사유를 제시했다. 

“피고발인은 고 장자연 씨가 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면서 존재하지도 않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고 하면서 ”법 위의 사람들 30명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고 하고, 사실은 전혀 신변위협을 당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변위협을 당하였다는 허위주장을 하여 사람들을 기망하여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하였는 바 이는 정확히 형법상 ”사기“ 범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 피고발인을 엄정하게 조사하시어 엄벌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강조는 인용자)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고 윤지오는 위협당한 바 없으며 따라서 후원금 모금은 허위주장에 기초한 사기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김대오의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고 김수민의 왜곡된 4.16 문건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이후 최나리 고소장에서 고소의 근거로 인용된다. 박훈의 이러한 그릇된 주장이 언론과 유튜브, 악플을 통해 무한 재생산되고 여론화됨으로써 당시 한창 장자연 사건을 조사중이던 과거사재조사위원회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이 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는 동력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심지어 고발장에서 박훈 자신조차 윤지오의 증언이 유의미하다고 인정한 조0천의 강제추행 1심 판결에서조차, 판사 오덕식이 윤지오의 사기죄 피소 등을 이유로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을 의심하면서 결국 무죄를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건은, 윤지오에 대한 박훈의 사기죄 고소가 명백히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무죄방면하는 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사회정의 실현에 큰 장애물로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훈의 고발사유에 대한 상세한 비판을 통해 진실을 회복하는 일이 절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 장자연 리스트는 있었다.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박훈의 주장에 대해서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기 때문에 윤지오가 그것을 보았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박훈의 생각과는 달리 자료는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고 또 읽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없는’ 리스트를 보고 또 읽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진술자료 등을 통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던 그 사실과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윤지오는 노컷뉴스와 조선일보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유서라고 잘못 알려진 것)이 있음을 보도한 직후인 2009년 3월 10일 호야엔터테인먼트의 유장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때 유장호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의 명함을 고소인이 갖고 있는지 차례로 대조하며 확인했다. 이것이 윤지오가 이후 ‘리스트’라고 불리게 될 명단을 최초로 경험한 시간이다. 이 때 윤지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녹음기로 통화내용을 녹음했고 그 녹음내용을 수사기관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당시의 통화에서 유장호는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유장호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 ‘명단’(즉 리스트)이 있음을 윤지오에게 처음으로 알려 준 것이며 그 명단=리스트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것임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009년 3월 12일 윤지오는 봉은사에서 유장호를 만났다. 그곳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에서 윤지오는 실내등을 켜고 유장호가 건네준 장자연의 문건을 읽었다. 거기에는 피해사실을 적은 장들이 있었고 그와 별도로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말 아래에 명단이 적혀 있는 장들도 있었다. 윤지오는 이와 관련해 장자연의 사망 뒤 약 일주일 뒤인 2009년 3월 15일의 진술에서 문건의 맨 끝에 편지글 형식으로 씌어진 “지인들, 가족들, 특히 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보았다고 말했고 2010년 6월 25일 법정에서는 “어떤 장에는 성함만 기재되어 있으면서 어떠한 언론사에 누구, 어디 무슨 사의 누구라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고 그때 본 것의 다른 부분을 진술했다.

2009년 3월 12일 장자연 씨의 오빠와 언니를 포함한 유가족들은 경호원이 땅 밑에서 파내온 별개의 문건을 보고 읽었는데 윤지오는 이때 그 문건도 친언니와 함께 보았고 그것이 자신이 보고 읽은 것과 내용상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원본이고 다른 하나가 사본이라면 윤지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봉은사에서 보고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종의 문건과 리스트는 유가족의 요구로 그곳에서 모두 소각되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3월 13일 KBS가 유장호 숙소의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며 A4 4장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것은 태워진 원본과 사본 외에 또 다른 문건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명단이 포함된 편지글 형식의 3장의 리스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윤지오는 피해사실을 기록한 그 문건의 내용은 자신이 본 것과 대동소이하나 자신이 봉은사에서 본 것과는 글씨체가 다르며 또 리스트가 없는 것은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이후 리스트는 끝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장자연 리스트를 윤지오가 봉은사에서 보고 읽었다는 사실은 그의 혼잣말이 아니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장자연 문건은 호야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이자 실질적 소유주인 이0숙이 더 콘텐츠의 김종승과의 송사를 유리하게 끌고갈 목적으로 대표인 유장호로 하여금 장자연과 함께 작성토록 한 것이다. 그것은 2월 28일에 작성되었다. 그런데 장자연 리스트는 그 다음날인 3월 1일 장자연이 작성하여 유장호에게 건네준 편지형식의 글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리스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우선 그 작성자인 장자연(고인)이고 그것을 보고 읽은 사람에는 최소한 유장호와 윤지오, 그리고 유가족이 포함된다.

실제로 유장호는 2010년 10월 법원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서, 장자연과 함께 2009년 2월 28일 작성한 4장의 피해사실 문건 외에 장자연 씨가 3월 1일 신사동 소재 세0000라는 곳에서 장자연을 만나 장자연이 쓴 편지형식의 A4 3장을 따로 받았고 그 편지의 내용은 “문서로 작성된 내용은 다 사실이라는 내용, 법률적으로 잘 알아봐 달라는 당부의 내용, 김종승과 관련하여 조심해야 할 사람들 등”이었다고 진술했다. KBS가 보도한 문건은 장자연 등의 피해사실을 기록한 내용만 포함하고 있으므로 유장호의 이 진술에 따를 때 리스트가 따로 있었음은 분명하다. 또 이것은 명단(리스트)는 제출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유장호의 3월 10일 통화중 말과 일치한다.

그리고 장자연의 오빠 장00 씨도 경찰조사에서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었던 것으로 진술했다.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에 “유족 장□□은 경찰 조사에서 마치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는 것처럼 진술한 바 있으나”라고 표현된 문장이 그것이다.   

이상 윤지오, 유장호, 유가족 장00의 사건 당시 진술이 리스트와 관련하여 서로 일치하고 또 유장호가 윤지오와의 통화에서 명단을 불렀으며 그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에 비추어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장호와 오빠 장00가 최근에 자신의 진술취지를 바꾸었다는 것이 이미 10년 전 교차검증된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유장호의 경우는 문건이 공개된 직후 윤지오에게 전화를 걸어 ‘문건을 네가 공개했다고 해주면 안 되겠냐’는 식의 위증교사[윤지오는 이 부탁을 거절했으며 해당 녹음을 경찰에 제출했다.]를 하기도 한 사람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수사기록에 편철된 문건 외에 피해사실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명단’이 기재된 문건, 즉 ‘리스트’가 있었을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에 실려 있었을 최소 13명의 명단을 재구성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제출했다.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는데 윤지오가 보았다고 한다는 박훈의 주장은 이 모든 것과 배치되는 성급하고도 맹목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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