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3)

3. 신변위협은 실재한다.

두 번째로 살펴 보아야 할 것은 윤지오에 대한 신변위협이 없었다는 박훈의 주장에 대해서이다. 이 주장을 살펴 봄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실재성의 두 차원이다. 실재성은 잠재성과 현실성의 두 차원으로 나뉜다. 신변위협의 문제에서 현실성은 행사의 차원이며 잠재성은 존재의 차원이다. 혼자 밤길을 걷는 여성에게 남성으로부터의 신변위협이 행사되지 않을 때에도 여성이 신변위협을 느끼는 것은 신변위협이 잠재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변위협이 행사되고 있을 때에 신변위협이 실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변위협이 행사되지 않고 있음이 현실일 때조차 신변위협은 잠재적으로 실재한다고 해야 한다. 윤지오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경험한 현실적 신변위협과 잠재적 신변위협에 대해 여러 차례 진술해 왔다. 그 진술들 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발췌해 보자.

첫째 10년전 밤에 경찰서에 출석하여 새벽까지 이어진 참고인 조사를 마친 후 경찰의 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조선일보라는 로고를 새긴 차량이 경찰의 차를 미행했다. 미행하는 차를 따돌리기 위해 쫓고 쫓기기를 얼마동안 하다가 수사관이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조선일보 기자였다. 경찰이 그에게 왜 따라오느냐고 물으니 “취재를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는데 이후에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둘째 조희천 강제추행에 대해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증언한 후 기자들이 윤지오를 찾았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윤지오는 이 기자들이 가해자들을 대신해서 증언자인 윤지오를 찾아다니고 가해자들이 할 공격적인 말을 가해자 대신 증언자에게 퍼붓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즉 윤지오에게 기자들은 가해자들의 분신처럼 느껴지며 실질적인 보복위협을 하는 가해세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셋째 JTBC와의 비실명 전화인터뷰에서 고 장자연 사건을 다룬 책을 쓴다고 한 후 자신을 ‘조선일보‘ (기자)라고 밝힌 어떤 사람은 향초 제품 납품회사와 교회에 전화를 걸어’(윤지오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런다‘ ’그곳에 윤지오가 다니는 것이 맞냐‘며 물었다.  남긴 번호로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없는 전화번호였다. 윤지오는 이것을 가해권력자들이 벌이는 스토킹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넷째 2019년 1월에 고속도로와 도로에서 두 차례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근육이 찢어지고 염증이 생기는 부상을 입었다. 교통사고 직후에는 별 것 아닌 평범한 교통사고로 생각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또 가족들과 지인들이 우려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이것들이 우연이 아니라 가해자들이 자행하는 위협공격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고 두려움이 점점 커져 갔다.

다섯째 2019년 4월 전 소속사 매니저였던 권0성이 생전 연락이 없다가 인스타그램으로 갑작스레 연락을 하여 JTBC가 너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이니 JTBC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 후 정작 그는 뉴시스 기자와 ‘윤지오는 생전에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는 식의 음해성 인터뷰를 가졌다.

여섯째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증언을 시작한 후 기자들은 윤지오가 투숙한 호텔을 찾아내 증언자에 대한 의심을 표현하는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윤지오에게 쏟아내기 시작했고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는 ‘공항에 도착하면 칼로 찌르겠다’거나 ‘손톱을 드릴로 뚫고 싶다’는 식의 끔찍한 댓글이 달렸다.

일곱째 2019년 3월 8일 naver-*** 명의의 청원인이 ‘고 장자연씨 관련 증언한 윤**씨 신변보호 청원’을 하고 3월 14일 고소인의 변호사들이 경찰청에 윤지오에 대한 신변보호를 요청한 후 동작경찰서에서 스마트워치를 제공하고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조치를 결정했다. 그 후 숙소 화장실 쪽에서 기계음이 들리고 환풍기 부분이 뜯겨있고 출입문 잠금장치가 고장나고 문틀 손잡이에서 액체가 흘러내리고 가스냄새가 나는 일련의 불안한 일들을 경험했다.

여덟째 4월 하순 경에 뮤지컬 배우 ‘민00’씨의 초대로 어머니와 경호원과 함께 뮤지컬을 관람할 예정이었는데 누군가가 숙소 위치를 알아내 그 위치를 무단으로 인터넷에 올리고 새벽에는 모르는 남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두려운 나머지 예정된 뮤지컬 관람도 하지 못했다. 22일과 23일에는 경찰 및 경호원과 함께 숙소를 변경하였으나 변경한 숙소마저 노출되었다. 어떤 약속도 없이 무작정 찾아와 숙소 1층에서 대기하던 기자가 무단으로 자신을 촬영하는 바람에 경호원이 카메라를 압수해 해당 영상을 삭제한 적도 있다.

이런 것들을 겪으면서 신변위협을 느낀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두고 신변위협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2019년 4월 이후 증언자 윤지오에게 쏟아진 엄청난 강요들(‘한국으로 와서 조사받으라’)과 협박들(‘감옥에 가둬라’)은 이 신변위협들의 다른 형태로의 지속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박훈의 고발은 그 다른 형태의 신변위협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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