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몸짓, 행동에 대하여(2)

Scene #2 죽음은 ‘자살’로, 문건은 ‘유서’로, 증거는 ‘인멸’로

SBS는 장자연의 이 육성파일의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10년전 장자연 수사기록에도 등장했던 이 녹음파일에 대한 조사에 나선다는 보도가 있었으므로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그 출처를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다. 이 음성파일이 장자연의 핸드폰에서 나왔건 통화 상대방의 핸드폰에서 나왔건 간에, 목숨을 내려놓을 정도의 체념을 토로하는 이 순간에도 장자연이 저항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이 통화기록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장자연이 주검으로 발견되기 바로 며칠 앞서 통화녹음 기능이 있는 것으로 핸드폰을 새로 바꿨기 때문이다. 만약 이 녹음파일이 장자연의 핸드폰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통화기록 자체가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닥쳐온 가해위협을 고발하고 기록하는 적극적 저항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힘 센 자’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는데 자신은 그것에 맞서 싸울 힘이 없다는 사실을 토로하는 내용을 음성으로 기록한 것이고 이것은 다른 한편 누군가의 도움과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녹음파일이 통화상대방의 핸드폰에서 나온 것이라면 장자연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후 다시 협박이 온다면 증거를 남길 목적으로 어느 시점에 핸드폰을 교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통화기능이 있는 것으로 핸드폰을 교체한 행위 그 자체가 협박에 저항하기 위해 시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자연은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닥친 실제적 위협을 우리가 들은 것처럼 고발하고 기록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핸드폰의 통화녹음 기능을 사용해 보기도 전에 죽음이 먼저 찾아 왔던 것일까? 아니면 증거확보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지만 법정에서의 상대적 투쟁의 길 대신 죽음이라는 절대적 소멸의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 

“경찰”이라 불리는 국가기관은 3월 7일 오후 7시 30분경 장자연이 목숨을 잃고 주검으로 발견된 가족(언니)의 신고를 받고서야 죽은 장자연에게로 왔다. 경찰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 죽음을 단순 자살의 변사로 처리했다. 유서도 없었고 <꽃보다 남자>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연예인인데도 말이다. 경찰이 이 죽음을 단순자살 변사로 파악한 주요 이유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2월말에서 3월초까지의 저 긴장된 영화적 시간은 경찰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정말 당시 경찰은 장자연이 소속사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것을 위해 증언조서인 문건을 작성했으며 이 때문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초동수사가 부실했으므로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3월 9일 화장되어 부모의 묘소 근처에 뿌려지기 전에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다는 소문은  경찰이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널리 돌고 있었다. 장자연이 죽은 바로 다음 날 호야의 유장호가 미니홈피에 “2주 전부터 자연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연아 내가 절대 이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다”, “꼭 지켜봐줘” 식의 글을 게재했으며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장자연이 소속을 옮기고자 했던 연예기획사의) 김0형 대표도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장례 기간 중에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지오도 장례식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유가족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장자연이 죽기 전에 문건이 이0숙 등에 의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외에도 복수의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찰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경찰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경찰의 조사를 받았던 주진우 기자는, 2019년 3월 6일에 tbs FM에 출연해, 경찰이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며 부검은 없다”고 발표한 것이 사망 당일 저녁인 점, “자신에게 문건과 관련해서는 절대 수사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 등을 들어 경찰이 문건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수사하지 않고 단순자살의 변사로 처리한 것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경찰이 “우울증”을 연예노동자들의 의문의 죽음을 빨아들이는 변명의 블랙홀로 애용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죽음을 단순자살의 변사로 처리하려 한 경찰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3월 10일 노컷뉴스와 조선일보에 의해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음이 보도되었고 3월 13일 KBS에서 타다 만 장자연의 문건 내용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재수사를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철저한 조사를 원하는 여론을 거스를 수 없었다. 문건에 소속사 대표의 협박, 강요, 폭행과 같은 범죄사실들이 기술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방사장과 같은 인물들이 이러한 범죄와 연관된 이름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은 2009년 3월 13일 이 사건 재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재수사는 장자연의 죽음이 “단순” 자살은 아닐지라도 자살임에는 분명하다는 경찰의 초기 관점 위에서 이루어졌다. 초기에 경찰은 ‘우울증’을 자살의 동기로 설정했다가 이제 죽음의 ‘복잡한’ 맥락들이 드러나자 장자연이 ‘유서’를 남겼다는 것을 자살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 했다. 이를 위해서는 법정에 제출할 증언조서로 작성된 장자연의 그 ‘문건’을 ‘유서’로 만들어야 했다. 주민등록번호에다가 지장과 간인까지 찍혀 누가 봐도 유서라고 보기 어려운 이 문건을 ‘유서’로 둔갑시키는 데에는 노컷뉴스(김대오)와 조선일보(박은주)의 초기보도가 한몫을 했다. 이 두 기사가 문건의 내용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것이 유서인 것처럼 이미 보도했기 때문에 그 보도 시각을 경찰이 수사권을 통해 재확인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후 장자연이 남긴 문건은 장자연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라는 관점이 지배적으로 된다. 이것이 장자연의 죽음과 관련하여 경찰권력이 언론권력과 연합하여 만들어낸 해석 프레임이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는 개인이 가치는 이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도 이 규정에서 도출된다. 만약 장자연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며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장자연이 자살했다면 그것은 국가의 생명보호의무의 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국가의 책임범위를 벗어난다. 우울증-유서-자살 프레임은 그러므로 국가에게 편리한 국가중심주의적 해석도식인데 이 경우에는 공공연한 사실조차 무시할 정도로 폭력적이며 책임회피적인 프레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장자연 자신을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로 지목함으로써 죽음에 책임이 있을 수 있는 다른 가해자를 찾는 노력이나 또 책임이 있다고 ‘문건’에 실제로 기록된 가해자들에 대한 구체적 질문을 원천봉쇄하는 프레임이었다. 

이 시기에 경찰 외에 죽음의 현장 주변에 모습을 나타낸 다른 국가기관이 있다. 국정원이 그것이다. 1999년 1월 21일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한 이 기관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 부정사용의 죄, 군사기밀 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의 직무” 등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서 국정원의 움직임은 전혀 조사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아 실체 없는 유령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국정원이 장자연 사망사건에 관여했다는 복수의 진술이 남아 있다. 

당시 호야의 매니저였던 권0성은 장자연 사망 일주일 전, 그러니까 장자연이 문건을 쓴 바로 다음날부터 국정원 직원이 유장호에게 연락이 왔고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 함께 있었다고 했다. 호야 소속 배우 송0미는 유장호 입원 병원에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명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기자 김대오도 당시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정원을 포함한 국회, 재계, 조선일보, 청와대, 기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지오도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서 국정원 직원과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봉은사에서 국정원 직원이 문건을 꺼내와 소각했으며 재수사가 시작된 후에는 조사를 어떻게 받고 있고 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전화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대한 경검의 조사 내용이 없으므로 국정원이 당시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장자연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가 작성된 후부터 줄곧 이 사건의 파장을 관리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경찰은 어떤 조사를 벌이고 있는지를 탐문한다는 것은 이 사건이 어떤 수준에서 관리되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문건 작성후 국정원이 장자연의 생명을 보호하지도 않았으며 사망 후 그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을 보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드러난 행동은 문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유장호를 감시하고 유장호, 윤지오, 유가족과 함께 봉은사에서 문건과 리스트를 소각한 것이다. 즉 진실 규명의 인적 증거를 관리하고 물적 증거를 소각한 후 그 남은 재를 구둣발로 짓이기고 흙으로 덮어 흔적조차 없게 만든 것이다. 후자는 유가족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증거인멸에 공조한 것이다.

이상이 사건 초기 재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경찰과 국정원이라는 두 국가기관의 표정과 행동에 대한 고찰이다. 이 고찰은, 국가가 위험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으며 사망 후에도 그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고 가해책임을 밝히는 데 지극히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은폐하려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국가의 기본적 관점과 태도는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니 자신의 책임이며 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남기는 방식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과 태도에 배치되는 상황들과 증거들이 이미 드러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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