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3)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9

2018년에 윤지오는 증언을 달라는 검찰(검사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 장자연에 대한 조0천의 강제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측 증인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해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에 대해 증언했다. 그 증언들은 경찰 수사관에게 했던 2009년의 증언과 유사하게 검사나 조사위원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 이 증언들은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얼굴 없이 이루어졌다. 

2019년에 윤지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증언의 대상을 소수의 수사 및 조사 전문가에서 국민 대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직업으로서 수사나 조사를 하는 전문가를 매개로 했던 간접증언에서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 국민 대중을 향한 직접증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2018년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서 자극받은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실명을 가리고 얼굴을 숨기는 식의 강요된 ‘피해자다움’을 버리고 실명과 실면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가명 증언은 2018년 피디수첩 인터뷰 및 JTBC와의 전화인터뷰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 국민의 명령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진 이 절호의 기회에 실명, 실면의 증언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하는 증언보다 증언의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두 가지 전환은 장자연 사후 10주년에 맞추어진 <13번째 증언>의 출간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간접증언에서 직접증언으로, 폐쇄증언에서 개방증언으로, 수동증언에서 능동증언으로, 타율증언에서 자발증언로, 수세증언에서 공세증언로의 이러한 증언 태도의 전환은 왜 이루어진 것일까? 

우선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10주년이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13번째 증언>, 224쪽)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학의, 버닝썬 등의 동종사건과 연동되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드높아진 상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와 연관된 것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사권도 없이 과거사 조사 차원에서 겨우 6명의 조사위원에 의해 전개되는 이 재조사가 과연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즉 국가에 대한 의문의 문제이다. 실제로 2009년 KBS에서 장자연 문건을 보도한 직후 초동수사의 부실을 지적하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무려 42명의 수사팀이 꾸려졌고 대대적인 재수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재수사는 가해혐의를 받은 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는 절차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전례를 생각해 보면, 비록 정부가 바뀌었고 촛불국민의 명령이 있다고 하지만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조건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한계인식 속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은,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주고 국민이 이 증언을 기초로 재조사라는 사법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 윤지오가 염두에 둔 것은 애초에 과거사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도록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그것은, 국민이 대의자들에 대한 소환, 해임의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법안을 발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며 국민이 수사, 기소, 재판의 권한을 갖고 그것에 관여하는 주체로 되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여 위로부터 답변하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직접민주주의의 아주 약한 표현형태이다. 윤지오는 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법 위의 법”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 자생적 법철학 속에서 그는 국민의 제헌적 역량(법 위의 법)이 실정법(법)을 통제하고 재구성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러한 생각 위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증언 에세이집을 출판하고 방송에서 증언 인터뷰를 하고 여성단체와 함께 광장에서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소식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9년 3월 4일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는 뉴스공장을 기점으로 며칠간에 걸쳐 조선일보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방송사와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 과정에서 국민들은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와 접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세 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1)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증언조서라는 것, (2)증언조서가 유서로 둔갑되어 자살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만큼 문건이 유서가 아닌 것이 명확한 한에서 장자연의 사망원인에 대한 원점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3)그 증언조서와는 별도로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는 “성상납을 강요”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 (4)장자연이 당시 술자리에서 보였던 일련의 모습을 보면 이 “성상납 강요”가 마약을 강제 주입 당한 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 (5)“성상납을 강요”한 이 리스트에 적힌 이름 중에서 방씨 성의 세 사람과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 기억난다는 것 등이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주어진 이러한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류적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장자연은 우울증을 앓다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고 그 유서에서 폭행과 협박을 한 당사자인 김종승은 처벌을 받았으며 장자연이 술접대나 잠자리를 강요받은 ‘조선일보 방사장’이나 ‘방사장의 아들’은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으며 문건의 해당 구절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 수사발표에 의해 국민에게 주어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주어진 주류 상식과 윤지오의 새로운 대국민 증언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증언의 충격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주류 상식 세계에서 장자연 사건은 (다행히 경찰이 의도하고 있었던 장자연의 사기 미수사건으로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기껏해야 악덕 기업주의 일탈적 악행 사건으로 인지되었다. 이럴 때 그 최종 책임은, 김대오가 주장하는 바처럼, 더 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윤지오의 증언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의 집단적 성폭행 사건으로, 즉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문제로 인지할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마약을 이용한 특수강간 사건이나 살인 사건의 관점에서도 수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이럴 때 최종 책임은 권력자들과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주어지게 된다. 이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종결되었다는 기존의 사법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공소시효가 아직 충분히 남은 사건으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증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폭발적이었다. 그 관심과 지지는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준 윤지오의 용기에 감사하면서 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3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고 그 증언에 따라 장자연 사건의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를 요청하는 것(3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우선 신변보호요청 청원자는 이렇게 쓴다.

“고 장자연씨 관련, 어렵게 증언한 윤00씨의 신변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목격자진술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의 불이익, 또는 신변에 위험이 없도록 신변보호를 청원합니다. 보복, 불이익이 있으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의로운 사회, 그 밑바탕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20대초반에 그 큰 일을 겪고 10년간 숨어 살아야했던 제2의 피해자 윤00씨의 신변보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원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이 정의로운 사회의 밑바탕인 만큼 증언자에게 보복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 요청은 윤지오의 증언을 사회에 대한 진실증여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증여를 받은 국민이 수증자로서 진실증여자에 대한 신변보호라는 최소한의 답례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후세대에게 떳떳한 나라의 성원일 수 없다는 것을 신변보호 요청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386,50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청원, 즉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 요청은 다음과 같은 간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고 장자연씨의 수사[조사]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수사기간을 연장해 장자연씨가 자살하기 전 남긴 일명 ‘장자연 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의 초기 재수사에서 참고인 및 피의자 진술을 통해 명백히 제기되었으나 경검의 수사를 거친 후 사라진 주제다. 윤지오의 증언은 이 주제를 1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사회적 의제로 다시 가져왔다. 이 청원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을 재수사 연장의 근거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 청원은 신변보호 요청보다 많은 738,56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주어진 기간내 20만명 이상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낼 때 정부는 답변의 의무를 진다. 실명과 실면으로 국민에게 직접 증언키로 한 증언방식의 전환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매개로 윤지오가 다른 국가기관을 만나도록 만든다. 지금까지는 사법경찰과 검찰 및 법원이라는 사법 계통의 국가기관만을 만났으나 이제 청와대와 행정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후에는 입법부인 국회(의원)도 개입하게 됨으로써다.

청와대는 이 두 청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지시를 답변으로 내놓는다. 그 지시의 전문은 좀 길지만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단히 강한 의혹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되어온 사건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인 부실 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실 규명 요구와 함께 과거 수사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강한 의혹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검찰과 경찰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 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 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공소시효가 끝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 주기 바랍니다. 


강남 클럽의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과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인 영업과 범죄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 기관이 유착하여 묵인・방조・특혜를 줘 왔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입니다.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드러난 범죄 행위 시기와 유착 관계 시기는 과거 정부 때의 일이지만 동일한 행태가 지금 정부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으므로 성역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사한 불법 영업과 범죄 행위, 그리고 권력 기관의 유착 행위가 다른 유사한 유흥업소에서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수사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사건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와 조직적인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입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랍니다.”

법무부장관과 행안부장관 등 행정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특권층’) 범죄로 규정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통해 진실규명을 가로막아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한 정황들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에 대해 규정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는 특권적 주체였던 경찰과 검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점에서 관점의 커다란 도약과 진전을 보여준다. 실제로 윤지오는 3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대통령의 이 응답을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같은 일”로 평가하고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되었”다고 밝힌 후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대통령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지시에는 숨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이 지시가 검찰과 경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설정한 후 역설적이게도 곧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조사와 수사의 대상인 검찰과 경찰을 다시 조사와 수사의 주체로 복권시킨다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스스로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깊은 반성”을 통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제3의 조사/수사 주체를 구축해야 할 시점, 즉 수사권을 주권자인 국민의 수중으로 가져오는 방향의 혁명적 발상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다시 경찰과 검찰 자신을 자기수사의 주체로 불러내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검찰을 견제세력이 없는 특권세력으로 인지하게 만듦으로써 실제적으로는 그들을 비호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않을까? 수사와 기소에서의 국민주권을 골간으로 하는 경찰 및 검찰 기관의 실질적 개혁이 부단히 지체되고 실패하는 것이 대통령의 이런 양면적 태도와 무관할까? 이런 지시 이후에 실제로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변호사와 교수가 포함되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 담겨 있었던 최소한의 진실추구적 요소마저 지워버리면서, 재수사의 길을 닫아버리고 사건 재조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이러한 종결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신변보호 청원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의 일정한 반응이 있었다. 3월 8일 시작된 청원이 마감되기 전인 3월 14일 윤지오 변호사로부터 신변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청은 동작경찰서로 하여금 “△스마트워치 제공 △112 긴급 신변보호 대상자 등록 △임시숙소 제공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 조치”를 하도록 결정하고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 증언 중에서 재조사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윤지오를 재차 증인으로 불렀고 이 조사에서 윤지오는 언론 인터뷰나 출판물에서는 하지 않았던 내용(가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본 이름들의 실명)을 증언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치가, 3월 30일 윤지오가 “스마트 워치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경찰관이 9시간 넘게 출동하지 않은”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껴 경찰은 3월 31일 스마트워치 전체에 대한 긴급점검 실시를 약속하고 새로운 숙소로 윤지오를 이동시키고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가 동행 밀착 보호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뒤 경찰은 3월 30일 당일 윤지오가 불안감을 느껴 스마트워치를 누르게 된 것이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오인과 오판에 의한 것이며 스마트워치를 누른 후 경찰이 출동하지 않게 된 책임도 윤지오의 기기 조작미숙에 있었다면 책임을 윤지오게게 돌렸던 것도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국민, 증언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그리고 증언자 자신 등에 떠밀려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증언자의 신변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기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것은 일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해권력자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보호하고 은폐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발적이고 예민한 책임감을 보이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에 속하는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시민사회에 “진실을 밝힐 힘”을 증여하는 증언자에 대한 사회의 답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를 자처하는 윤지오가 과장으로 꾸며낸 일대 소동처럼 발표함으로써 증인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겼다.

국회는 어떠했던가? 국회는 윤지오 동행의원모임 구성과 간담회, 그리고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라는 형태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 출판기념 북콘서트는 애초에 국회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던 출판기념 북콘서트가 하루 전날 취소된 것도 신변안전 문제였다. 윤지오는 출판기념 북콘서트 무대에서 자신과 가까이 서게 될 출연진이 누구인지,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지 확인해 주기를 요청했고 극장측이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북콘서트가 무산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안민석의 주도와 공익제보자 모임의 연대로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리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무렵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증언자 윤지오를 동행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4월 초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과정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전개되던 반윤지오 흐름의 표면화와 겹쳐졌다. 이 흐름은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 악성 댓글이나 악성 DM의 수준에 머무렀던 지하흐름이었으나,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증언이 청와대를 넘어 국회에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또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예정에도 없던 추가증언을 윤지오에게 요청하여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 그 자체가 재수사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강하게 표출되고 표면화된다. 이것이 가해권력측이 느낀 위기의식의 표현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증언에 대한 이 반동(reaction)은 호야스포테인먼트 전 실장 권0성의 발언을 근거로 삼은 뉴시스의 윤지오 공격과 박준영의 증인검증론을 거쳐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사기론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 핵심은 증언에서 증인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이 이 작업의 선봉에 섰는데, 장자연 리스트가 문제가 아니고 윤지오의 인성과 도덕성이 문제라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이 그 방식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제도언론들의 센세이셔널한 보도에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의 까판 담론이 결합되어 여론화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윤지오 동행모임은 동행은커녕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윤지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이 동행모임의 침묵은 이후에, 윤지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간 전혀 접촉한 바 없다는 해명, 윤지오의 난처함보다 자신과 동료의원들이 윤지오로 인해 겪는 난처함을 중시하는 엘리뜨주의적 냉정함, 다른 공익제보자로부터 윤지오를 분리시키는 교묘한 언어놀음 등으로 범벅이 된 항복문서를 가해권력 앞에 내놓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윤지오는 2009년에 사법경찰을, 2018년에 검찰을 경험한 후에 2019년에는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을 경험했다. 언론기관과의 마주침에 대해서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긴밀한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2019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엄정할 수 없는 검찰 자신에게 과거사 조사를 맡기고, 국회의원이 표면적으로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행을 약속하면서도 증언자가 여론의 공격 받을 때에는 연락을 끊고 침묵하며, 행정경찰이 증인의 신변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하고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증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선적 과정의 끝에 윤지오는 10년만에 다시 사법경찰과 접속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 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려고 했지만 변호사, 작가, 기자,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등의 고소고발자들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은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제소했다. 일찌기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안개 속으로 감추어 최초 증언자 장자연의 증언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허위 문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법경찰은 이제 윤지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후속 증언자인 윤지오의 증언도 허위라는 고소고발자들의 제소에 힘을 실어주고 장자연 사건 자체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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