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2)

  • 가족주의 관점

김수민 작가가 “13번째 증언”(이하 <증언>) 출판과정에서 유가족과 관련해 윤지오에게 조언해 준 것은 다음 두 가지다. 1)<증언>은 장자연에 관한 책이고 장자연 이름으로 홍보하게 될 것이며 거기에서 수입이 발생할 것이므로 장자연의 유가족 동의를 구해야 한다 2)유가족 동의를 구하지 않고 책을 내는 경우에는 책에서 장자연 이름을 빼야 할 것이다. 

이런 조언을 하게 되는 김수민 작가의 고유한 감성양식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유가족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봄으로써 이러한 조언을 하게 되는데 그 입장바꾸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내 가족이 좋지 않은 사건으로 자살을 했다면 나라도 그 기억을 가슴 속 깊이 묻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2)더구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 사건을 책으로 낸다면 나라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3)이에 비추어 볼 때 유가족은 장자연이라는 이름이 사람들 입방아에 다시 오르 내리는 걸 원치 않을 것이고 책의 출판을 반대할 것이다.

이것은 <증언>의 출판여부를 유가족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강한 판단을 표명하는 것이며 김수민 작가 자신이 <증언>의 출판에 심정적으로 반대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13번째 증언>이라는 책은 고 장자연님의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진행되었고 유가족측에서는 지오가 책을 내는 걸 반대했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쓴다.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증언>에 대해 김수민 작가는 가족이 책의 출판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책을 출판하는 것에 자신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고 이러한 입장을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라”는 방식으로  윤지오 배우에게 “몇 차례” 표명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수민 작가의 감성양식(“인간의 도리”)에 비추어 보면 <증언>은 출판되어서는 안 되는 책이며 출판될 수도 없는 책이다. 왜냐하면 유가족이 이 책의 출판에 반대하고 있으며 자신이 보아도 유가족 동의 없는 책은 출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 배우의 책과 언론 인터뷰 사이의 간극에서 “인연을 끊어야 겠단 결심”을 할 정도의 위선과 환멸을 느꼈다고 서술했지만 이미 책의 출간 여부를 둘러싼 논의과정에서부터 갈등이 발생하여 커가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윤지오 배우는 <증언>의 출판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고 김수민 작가는 그것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갈등의 성격은 무엇인가?

김수민 작가의 조언에 대한 윤지오 배오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를 먼저 살펴보자. 김수민 작가는 “장자연 유가족들은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이다. 이 사건 덮으려고 했던 건 장자연 유가족들이라며 유가족을 모함했”다고 쓴다. 이것은 장자연을 다루는 책이고 장자연으로 홍보할 것이니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라는 조언에 대해 윤지오 배우가 “저는 제가 희생하고 인터뷰 자체에서 제 얼굴 이름 공개하고 쓰는 거고 내놓고 자연언니 이야기 쓰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연예계에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고 그 중에 언니의 이야기는 일부분이고 이니셜로 모든 처리할거고요”라고 한 후에 “유가족은 돈밖에 모르고 저도 고인에 대해서 명예훼손하시싫고(원문대로) 그쪽 가족은 오히려 언니를 제물삼아 모든 사건을 덮고 은닉하려했엉ㅅ(원문대로)”라고 응답한 것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모함’은 사전적으로 “나쁜 꾀로 남을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윤지오 배우의 말은 왜 김수민 작가에게 ‘모함’으로 해석되었을까? 김수민 작가가 유가족은 비난되어서는 안 된다, 유가족의 아픔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유가족이 “좋지 않은 사건”이 공개되는 것이 싫어서 장자연 문건의 소각을 요구하고 실행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정당하다는 가족중심적 사태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표가 제시한 장자연 문건의 소각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 유가족이었다는 데에는 증언들이 일치한다. <증언> 111쪽에는 이 문건의 소각에 이르는 유대표와 유가족 사이의 팽팽한 논란 과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유대표는 “이 문건을 없애면 돌이킬 수 없다”, “자연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언론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가 공개를 요구하는 동기가 장자연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무시한다). 유가족은 “왜 내 동생 이름이 또 세상에 나와야 해? 좋은 일도 아닌데… 죽은 애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닌데!”라며 소각을 주장한다. 그 문건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가? K 사장의 협박, 드라마촬영비를 배우에게 전가함, 어떤 감독의 술접대 골프접대 요구,  K사장의 술접대요구, K 대표의 접대강요 및 반복되는 욕설과 구타, 잠자리 강요, ㅈ일보 B 사장의 잠자리 요구, 그 아들의 술접대 … 등등이다.(<증언> 126, 127쪽)

김수민 작가가 장자연 사건을 “좋지 않은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유가족도 “좋은 일이 아닌” 것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누구의 시선일까? 장자연 문건의 작성맥락이 이해관계 투쟁이었음을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문건에 서술된 것은 장자연이 차마 말못하고 있었던 “억울함과 한”의 기록이었음이 이 맥락 때문에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가족의 선택들이 주어진다. 분노할 것인가 부끄러워할 것인가? 장자연과 공감할 것인가 장자연을 대상화할 것인가? 다시 말해 장자연 입장에 설 것인가 내/가족의 입장에 설 것인가? 아니 사회적 존재로서의 장자연 입장에 설 것인가 개인적 존재로서의 장자연 입장에 설 것인가? 권력자들이 잘못이라는 입장에 설 것인가 장자연이 잘못이라는 입장에 설 것인가? 궁극적으로 “좋지 않은 것”은 권력자인가 장자연인가, 권력자가 책임져야 하는가 장자연이 책임져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로 주어진다.

내가 보기에 가족들은 후자의 관점을 받아들였고 김수민 작가도 후자의 관점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의 관점을 받아들였다면 문건은 소각되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권력형 성폭력을 억제하는 장자연의 소중한 증언이자 “인간의 도리”를 지시하는 안내판으로 기능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지오 배우의 말 “그쪽 가족은 오히려 … 모든 사건을 덮고 은닉하려했엉ㅅ”는 이런 맥락에서 재해석된다면 결코 ‘모함’으로 규정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윤지오 배우 고유의 사태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윤지오 배우는 <증언>의 맨 마지막 문장을 “나는 말한다. ‘내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도 아니야’”(245: 나는 여기서 ‘네’를 ‘자연 언니’로 해석한다)로 끝맺으면서 “죽음으로 말하려 했던 언니의 고통이 다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 기억들을 피하지 않고 다시 마주했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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