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4)

민중/다중을 무장해제시키는 순수주의라는 무기

유가족이 원치 않는 증언행동(그것이 <13번째 증언> 출판증언이건 진상조사단 출석증언이건)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수민 작가가 윤지오 배우에게 준 메시지였고 그 메시지는 진실규명을 가로막는 데 사용될 ’가족주의’라는 무기였다는 것이 지금까지 이야기의 논지다. 이것은 최근에 카톡 공개를 통해 윤지오의 증언내용(메시지)이 아니라 윤지오라는 인격이 문제라는, ‘유가족을 비난하면서’ 증언행동을 한 증언자(메신저)가 문제라는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증언자의 진실성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증언의 진실성을 약화시키는 공격이다. 윤지오가 장자연과 “친하지도 않았다”(가족주의적 친밀성론)는 음해도 이러한 공격의 연장이다.

또 하나의 공격은 윤지오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 즉 윤지오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공격으로 나타난다. 윤지오의 증언 목적은 돈벌이에 있었다는 김수민 작가, 박훈 변호사의 주장이 그것이다. 증언자가 어떤 의도로 증언에 임했는가는 증언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언자에 대한 의심이 증언에 대한 의심을 불러오는 것은 현실이다. 윤지오 배우의 증언 이후 그에 대한 비난은 증언의 진실성보다는 증언 의도의 진실성에 집중된다. 그런데 이 비난은 “증언자는 순수해야 한다”(순수주의)는 대전제를 깔고 전개된다. 

김수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윤지오의 순수성을 믿었고 옳은 일을 하는구나 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하시듯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만 … 시간이 지날수록 지오가 하는 행위는 장자연이 안 보이고 윤지오가 부각되는 행동들이었습니다. 국민청원을 하고 경호비 써야 한다며 후원계좌를 열고 그 이후 비영리재단을 만든다며 후원을 요청하며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윤지오의 행보를 보면서 제 자신도 속았구나를 느끼게 되었고…”.

이미 살펴보았듯이 자료들은 김수민 작가가 <증언>의 출판과 과거사진상조사단 증언에 반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위의 인용은 그가, 윤지오의 증언만이 아니라 윤지오의 국민청원행동에도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증언행동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취한 후원계좌 개설에도 반대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김수민 작가의 조언 방향은 궁극적으로는 윤지오가 증언행동을 중단하라는 것, 다시 말해 캐나다로 돌아가라는 쪽을 향해 있다. 윤지오 배우가 “옳은 일”을 한다고 김수민 작가가 믿었음을 지지할 어떠한 자료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가 ‘그릇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지오 배우가 김수민 작가가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실행했기 때문에 양자간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윤지오 배우는 정부가 자신에게 제공하는 보호조치의 부실함에 대해 문제제기했고 자비경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 경험 위에서 비영리후원단체 ’지상의 빛’을 조직하여 증언자들을 비롯하여 보호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Gofundme 펀드계좌의 개설동영상을 보면 이 계좌는 이 ‘지상의 빛’ 활동 외에 진상조사단에서 이미 증언한 자신이 대한민국의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기간(4월 30일)이 끝나 보호가 해제된 상태에서 캐나다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자구보호조치를 이유로 개설한 것이었다.

김수민 작가는 이러한 행위가 “순수성”을 벗어난 것이라고 비난한다. 이미 <증언>이 출판되고 진상조사단에서의 증언이 이루어진 뒤의 일이다. 이것은 증언을 막는 데 실패한 사람이 증언자를 비난함으로써 증언의 진실성을 흔드는 최후의 공격방식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윤지오 배우는 자신을 거짓말장이요 돈벌이꾼으로 모는 공격에 대해 그것이 “마지막 발악”이라고 응수했다. 그 공격에 사용되는 것이 ‘순수주의’다. 정치적인 행동(정치적 영향력의 행사)이나 경제적인 행동(소득행위)은 순수하지 못하며 증언자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것은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이 교육자 종교인 문필가 등을 동원하여 민중/다중의 두뇌와 가슴 속에 주입하는 아편이다. 이것은 민중/다중을 무력하게 하며 권력과 부의 소수 독점을 가능케 하는 정신적 장치다. 지주들은 소작료를 낮추어 달라는 소작들의 요구를 추잡하게 쌀 몇 되가지고 소란을 피우냐고 비난한다. 기업주들은 임금을 올려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돈 몇 푼 더 달라고 싸움을 하는 것이 창피하지 않냐고 비난한다. 권력자들은 문학은 정치나 참여를 주장하지 말고 자연을 노래하는 순수성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전두환 군부는 계엄군의 학살행위에 맞서 방어무기를 든 광주시민들을 순수하지 못한 ‘폭도’라고 불렀다. 순수주의는 ‘권력과 돈은 내가 다 갖겠으니 너희들은 무(기)력과 가난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며 압제와 착취의 장치다.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 배우에게 ‘영리’하지 말고 ‘영악’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요컨대 돈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윤지오 배우의 증언행동을 무너뜨리는 데 총력을 다한다. 처음에는 증언을 막으려 했고 그것이 실패하자 증언자를 도덕적으로 무너뜨림으로써. 김대오 기자는 이러한 김수민 작가의 노력을 100% 지지한다고 배서(背書)를 하고 박훈 변호사는 해외펀딩이 사기라고 하면서 고발을 준비한다. 이것은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을 반대하는 문필-언론-법조의 연합전선이다. 이것이 김김박론의 정체다. 침묵하는 극소수의 언론을 제외한 온갖 언론들이 윤지오는 거짓말쟁이며 그의 한국행이 돈을 쓸어담기 위한 사기행각이었다는 식의 선정적 주장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이 연합전선의 정치적 의도를 여론화하는 데 가담한다. 이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거짓을 걸러내야 한다”는 말로 정당화된다. 이러한 담론구성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윤지오 배우의 증언을 통해 수사선상에 오를 위험이 커진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이다.

<증언>에서 윤지오 배우는 자신이 ‘순수한’ 사람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은 배우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온 사람임을 밝혔다. 최후의 자존심이 짓밟히지 않는 한에서는 목표를 위해 냉대와 수모, 노예계약까지 무릅쓰고 노력한 입지전적 인간임을 밝혔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600만원의 합의금을 물고 소속사와의 계약을 해지한 후 소속사 없이 고군분투해야 했던 엑스트라 단역배우. 이 무렵 동료 배우 장자연은 세상 사람들이 이름을 알기 시작할 때 죽음을 맞는다. 장자연의 죽음에 관해 왜 증언을 하려 합니까?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제 스스로의 삶에서 창피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평생을 10년 넘게 연기만 하고 싶었던 아이인데 그게 좌절되면서 좀 무너졌었어요. 안 좋은 제안을 언니(故 장자연 씨) 나이 때가 되면서 처음 듣게 된 거죠. 저는 성 상납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그런 제안 자체를 받았다는 게 살면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기억이고…” 단역 배우였던 10년 전에 권력자들에게 청춘과 명예를 빼앗긴 그는 이제 촛불국민과 정부의 요구로 증언자가 된 후 거짓말쟁이, 사기꾼, 영악한 마녀로 내몰려 캐나다로 강제 추방당했다. 재계-정계-언론계-법조계로 짜여진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는 촛불과 미투 이후에도 자신의 힘이 건재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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