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법정과 ‘김대오는 어디로?’

김대오는 2019년 4월 자신이 장자연 문건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문건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세간의 평가를 얻었고 그 평판권력으로 윤지오 배를 거짓말쟁이로 단죄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런데 그는 2009년 12월 장자연 관련 사건 증인신문 과정에서 장자연 문건을 본적도 그 내용을 들은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그는 문건을 안 본 사람이면서 동시에 본 사람이다. 이것은 둘 중 하나는 거짓말임을 의미한다. 나는 ‘김대오의 거짓말’(http://amelano.net/?p=373)에서 이 모순에 대해 다뤘다. 그리고 정의연대는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김대오를 위증죄로 제소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 반응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하나는 산수를 통해 공소시효 7년이 지난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벙어리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우화를 올린 것이다. 이것이 만약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응답이라면, 자신은 어느 것이 거짓인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 것(진술거부)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특별한 수사권을 가진 특검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공소시효가 없는 법정들

그런데 법정은 공소시효를 갖는 사법의 법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의 법정은 시민상태가 유지되고 있을 때 법정이 취하는 지배적 형태일 뿐이다. 사법의 법정 외에 공소시효가 없는 다른 법정들이 최소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민의 법정이다. 역사의 격변기에는 항상 인민의 법정이 출현하곤 한다. 그것은 사법의 법정과는 달리 대개는 가차 없고 냉혹한 법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누적된 모순들, 불의들, 거짓들, 착취들, 기만들로 혼탁해져 있는 낡은 사회상태를 쓸어버리는 태풍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민의 법정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 식의 질문은 태풍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논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질문이다. 태풍은 바람직하게 생각하건 그렇지 않게 생각하건 상관없이 불어닥치며 가차없이 쓸어버린다. 분명한 것은 태풍이 지난 후의 바다는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민의 법정은 자연상태와 가깝다.

또 하나는 평판의 법정이다. 이것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공통장의 법정이다. 서로 다른 각자들, 각체들은 쉼없이 평가하면서 관계맺고 단절한다. 평판은 그 자체가 개개인들에 대한 중단 없는 법정이다. 평판의 법정에는 인민의 법정에서처럼 공소시효가 없다. 그 법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리면서 우리를 상주고 또 벌한다. 

마지막으로 양심의 법정이 있다. 사법의 법정, 인민의 법정, 평판의 법정은 모두 타자들이 나를 향해 내리는 심판임에 반해 양심은 나 자신이 나에게 내리는 심판이다. 양심의 법정도 공소시효를 갖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의 내 행동과 말이 양심의 심판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나의 행동에 대한 내 양심의 법정의 처벌방식이 자책, 후회, 악몽 같은 것들이다. 이 법정이 선순환적으로 가동되지 않을 때에 누적된 문제들이 정신적 질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대오 기자는 무엇을 통해 문건의 형식과 분량을 알아냈나?

김대오 진술의 모순은 이미 2009년 당시에 발견되었던 것이다. 유장호는 장자연의 끝 글귀 외에는 문건을 김대오에게 보여준 적도, 그 내용에 대해 말해준 적도 없다고 진술했고 이것은 문건을 본 적도 그 내용에 관해 들은 적도 없다는 김대오의 진술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2009년 3월  10일 김대오, 이지현 기자 명의로 나간 노컷뉴스 장자연 사건 최초보도는 1)그 문건의 양이 A4 12장이며 2)모두 친필이고 3)간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 친필 문건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가 아니라 “현재 함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여 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이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기사 내용은 문건에 대해 마지막 글귀 외에는 알지 못한다는 김대오 자신 및 유장호의 진술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 문건의 양이 A4 4장 더하기 3장 총 7장이라는 유장호 및 윤지오의 진술과 어긋난다. 그래서 변호인1이 “김대오가 문서의 형식, 그 문서에 다른 연예인에 관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썼을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유장호의 답 “그것은 피고인도 잘 모르겠습니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체 문건을 본 적이 없는 김대오가 노컷뉴스에 어떻게 문건의 장 수가 12장이고 간인이 찍혀 있고 친필로 되어 있다는 등의 사실을 ‘알고’ 보도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디에서 그러한 정보를 얻었을까? 유장호 외에 문건을 접할 수 있었던 다른 경로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누구였을까?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만난 장씨 지인 A씨는 누구인가?

같은 날 장자연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의 보도는 유장호로부터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와 함께 문건의 마지막 글귀의 사진만을 찍어왔다는 김대오의 진술이 거짓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 기사에서 박은주 기자는 유장호가 아니라 장씨의 지인 A씨를 만나 문건을 본 것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박 기자는 문건이 최소 두 개가 있음을 밝힌다. (1)”(3월) 9일 새벽에 만난 장[자연]씨의 지인 A씨는 고 장자연씨가 남긴 장문의 문건 중 일부를 갖고 나왔다. 그는 체념에 빠진 표정이었다.” (2)”장씨의 고민상담을 해줬던 다른 기획사 대표 유모씨도 장씨의 심경에 담긴 문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1)의 장씨의 지인 A는 분명히 (2)의 유장호가 아니다. 박은주 기자도 “저는 나약하고…싶습니다”가 포함된 글귀 외에 그 문건이 “볼펜으로 눌러쓴 A4용지 여러장”이었다는 것과 그 “여러 장에는 페이지마다 지장이 찍혀 있었다”고 보도한다. 그리고 박기자는 A씨가 “연예인이 된 후 얽힌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통이 소상히 기술되어 있지만 원치 않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다 보여줄 순 없다”고 말했다고 썼다.

이 기사들과 기자는 제대로 수사되었는가?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만난 A씨는 수사되었는가? 문건은 왜 A씨와 유장호 두 사람이 동시에 갖고 있었는가? 노컷뉴스 기사와 조선일보 기사는 이 사건이 단순 변사가 아님을 알린 첫 기사들이다. 그리고 두 언론사의 기자들은 문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당사자들이다. 유장호와 A씨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들이 그 문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이들이 문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기자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왜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이른바 ‘유장호의 경호원’은 봉은사와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 참석했고 문건을 꺼내오고 불을 끄는 등의 적극적 행위자로 움직였는지 … 이 모든 것들(특히 김대오와 박은주)에 대한 조사에서부터 특검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네 가지 법정과 ‘김대오는 어디로?’”에 대한 2개의 댓글

  1. 조정환 선생님의 글을 읽고 감탄하였습니다.
    핵심은 장자연 문건 전체가 아닌 장자연 리스트가 들어있는 부분입니다.

    장자연 문건은 여러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7장을 2009. 3. 12. 봉은사에서 태웠고 이 7장에 장자연 리스트가 있습니다.

    김대오의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김대오가 본 장자연 문서 내에 봉은사에서 태운 7장 전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의 문제도 제기됩니다.

    김대오가 보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기때문입니다.

    윤지오나 유장호의 말에 의하면 태워버린 7장 중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김대오가 보았다고 주장하는 문건 속에 봉은사에서 태운 7장이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2. “윤지오나 유장호의 말에 의하면 태워버린 7장 중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김대오가 보았다고 주장하는 문건 속에 봉은사에서 태운 7장이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는 이 변호사 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것은 김대오가 지난 4월 말경 “목숨을 걸고 문건에 리스트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에 의해서도 간접적으로 뒷받침된다고 봅니다. 좀더 자세한 생각은 별도의 포스팅으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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