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혐의 수사는 왜 고려조차 되지 않았는가?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3): 재수사 포기 책임을 윤지오에게 돌리는 ‘적반하장’

그래도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성폭행 관련해서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다면 재수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의 보존 

❍ 성폭행 피해 의혹에 관해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다만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제기된 의혹 상 범죄혐의가 중대하며,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성폭행 의혹과 관련하여 최대한 상정 가능한 공소시효 완성일인 2024. 6. 29.까지 이 사건 기록 및 조사단 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함

물론 그 조치는 박근혜의 전매특허인 유체이탈 화법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전염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화법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검찰이야말로 재수사를 통해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를 발견할 주체이고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므로 강제수사권을 동원하여 그 스스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실행했어야 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문제를 다룬다.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식이다. 누가 증거를 갖다주면 재수사하되 스스로 증거를 확보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한 것이다. 가해자들이 빙긋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2024. 6. 29.까지 이 사건 기록 및 조사단 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했지만, 지금까지 핵심자료들을 어딘가로 빼돌려도 아무런 처벌이 없었듯이 이 기록들이라고 해서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서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성폭행과는 다른 두 번째 문제이다. 그것은 공소시효 15년의 성폭행이 아니라 공소시효 25년의 살인에 관한 것이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이 주검으로 발견되고 이틀 뒤인 3월 9일 경찰은 장자연의 죽음을 우울증에 의한 단순변사로 발표했고 언론은 이것을 받아썼다. 3월 10일 문건의 존재가 보도되고 3월 13일 문건의 내용 일부(사례 증언조서)가 방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것을 유서로 발표하고 언론은 이것을 받아썼다. 이런 여론형성 메커니즘을 통해 우울증-유서-자살이라는 삼각형이 만들어져 장자연의 죽음을 설명하는 지배적 프레임으로 유통되었다.

그런데 시신은 부검되지 않았고 자살을 입증할 어떤 증거도 없다. 게다가 그 문건이 유서가 아님도 이제 명료하게 밝혀졌다. 지금에도 과연 장자연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없다. 게다가 장자연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너무나 많은 폭력들(폭언, 폭행은 물론이고 원치 않는 술접대가 강요되었고 심지어 성폭행에 대한 진술까지 있다)이 그의 삶 위에 행사되었던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게다가 그 폭력의 행사 주체는 소속사 사장만이 아니다. 장자연에게 “니가 그렇게 비싸”?라고 문자를 보낸 것으로 진술되어(방정오, http://bit.ly/2Z6e1iL) 장자연의 죽음에 관련해 가장 구체적인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선일보는 스스로를 “정권을 창출할 수도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는 권력으로 자임했다. 정권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라면 개개의 생명을 창출하고 생명을 퇴출시키는 일인들 왜 못하겠는가? 

이 외에도 장자연 위에 이런 권력자들은 여럿 있었다. 당시 대검차장검사이고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 권재진이라거나 ‘김밥값’으로 수표 1000만원을 장자연 계좌로 입금한 하이트 진로 회장 박문덕, 그리고 35차례나 연락과 만남을 가졌던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같은 기업가들이 그들이다. 게다가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를 태우는 현장과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 등에는 ‘국정원 직원’이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출몰한다. 장자연은 이 ‘힘센 사람들’의 ‘큰 입’ 앞에서 억눌린 삶을 살았다. 요컨대 그의 삶은 폭력과 권력에 포위되어 있었다.

3월 7일 장자연이 사망한 날, 장자연은 김지훈 부부와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장자연은 사망하기 한 시간 전에 김지훈에게 ‘집에서 쉬겠다. 다음에 같이 가자. 피곤해서 못가겠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그것이 마지막 문자였다. 3월 7일은 장자연이 “다른 소속사에 가기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 있었고 원소속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주진우 기자는 “3월 7일 오후에 장자연 시신이 발견됐다. 그런데 그날 저녁 경찰에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며 부검은 없다’고 발표했다”며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이 부검을 막아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으나 논란이 되는 죽음은 보통 부검을 하게 돼 있다. 초동수사는 아예 없었고 유가족이 원하지 않는 한 부검은 없다고 발표했다”(http://bit.ly/2JPEoWt)고 말한다. 우울증 외에 자살의 동기가 발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검하지 않을 의사를 경찰이 나서서 발표하고 자살 판단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점, 그리고 경찰 자신도 유서라고 보지 않은 문건을 유서처럼 처리한 점 등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 장자연의 마지막 문자를 받았고 장자연 사후 그 죽음의 진실을 캐던 김지훈마저도 정다빈, 유니, 최진실에 이어 2013년 12월 12일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 때문에 윤지오는 ‘왜 나의 언지 장자연이 죽었는가?’를 밝혀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이 아는 바의 그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증언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장자연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과거사조사위뿐만 아니라 과거사진상조사단조차도 외면했다. 즉 문제로 다루지조차 않았다. 실체가 있는 리스트 증언조서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처럼 만들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윤지오의 증언은 묻혔다. 사건과 그에 대한 증언은 ‘이번에는 혹시’라는 윤지오의 기대와는 달리, 십 수차례 이어진 증언에 대한 이전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역시 ’흐지부지’되고 있다. 기록은 살인 혐의 공소시효인 2035년까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기한, 즉 2024년까지만 보존하도록 권고되었다. 증언에 대한 묵살, 이것이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서민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이것조차 윤지오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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