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5/끝): 교수와 ‘교레기’

이제 핵심적 거짓말들에 대해 살펴 보았으니 서민이 던져놓은 부스레기 거짓말들에 대해 속도감 있게 살펴보자. 서민은 타격을 위한 표적 설정을 위해 “과거사위에 기대를 한 결정적 이유는 두 달여 동안 매스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윤지오의 존재였다.”고 말한다. 이번 과거사위가 ‘혹시~’하는 기대를 주었던 것은 윤지오 때문이라기보다 스스로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수십만 국민의 청원을 받아 꾸려진 조사위원회였기 때문이다. 서민은 윤지오가 “장씨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자처했”다고 주장하지만 윤지오는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사람들 중에 아무도 증언자로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을 안타까와 하면서 이미숙, 송선미 등 연예계의 선배들에게 증언자로 제발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서민은 윤지오가 기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막말을 해댔”다고 하지만 윤지오는 주권자로서 ‘기레기’들의 가짜뉴스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을 뿐이다. 서민은 “실제 조사를 담당한 대검 조사단이 윤씨의 입에 목을 매다시피”했다고 하지만 조사단은 진상규명을 위해 윤지오 외에 적어도 83명을 조사했다. 서민의 거짓말은 도를 넘는다.

서민은 “윤지오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고 말하면서 인텔리들이 좋아하는 ‘아는 것 자랑’과 증언을 혼동한다. 증언은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경험을 말하는 데 특별히 알 것이 필요한가? 이 뒤죽박죽의 사고법 속에서 서민은 아무 근거도 없이 “윤씨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고인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쓴다. 그렇다면 유장호가 장자연의 유가족과 만나면서 왜 윤지오를 불렀겠는가? 윤지오가 장자연과 찍은 다정한 사진은 뭔가? 장자연과 윤지오가 김종승의 명령에 따라 수 십 차례 접대노동에 불려나간 강제노동의 동행자였다는 점은 알고 있기나 한가? 서민은 다음과 같은 범죄적 주장을 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윤지오가 “‘16번이나 증언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증언 횟수가 많은 것은 그녀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지오의 증언이 많았던 것은 경찰, 검찰, 판사, 조사위원 등 그로부터 진술을 받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외에 그의 진술이 흐트러질 때까지 고문형 진술(밤늦게 불러 밤샘 조사하기)을 반복시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민은 “장씨의 유족 등 고인이 남긴 문건을 본 다른 사람들은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했지만 장씨의 오빠나 유장호 모두 초기 진술에서는 리스트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사람들이다. 서민은 윤지오가 재수사 불발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다. 정말 이게 우리가 원한 진정한 대한민국이냐”고 했다면서, “이런 걸 전문용어로 적반하장이라 한다.”고 가르친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의 상식적 속담에 불과한 ‘적반하장’을 “전문용어”라고 주장하는 지력도 좀 그렇다 싶지만,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데 자신의 컬럼 지면을 이용해서 재수사를 불발시킨 장본인들 중의 한 사람이 도리어 윤지오에게 그 책임을 지우려 하는 것이 정확히 ‘적반하장’이다. 

윤지오는 반복된 증언에도 가해자들이 처벌되기는커녕 법 위에서 유유히 노닐면서 동일한 폭력행위를  되풀이 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랬기 때문에 과거사조사위원회에서 증언 요구를 했을 때에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기한을 연장하며 조사했지만 그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구준표와 이름이 같았던 이름이 특이한 그 정치인은 조사단에서 전화를 했지만 ‘조사 받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한다. ‘언니 사건은 종결 자체가 불가능하고 … 서로 헐뜯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고.’라는 말이 윤지오가 한 말이 맞다면 긴 조사가 끝난 지금 그 말이 얼마나 이 사건을 둘러싼 세력관계를 정확하게 통찰한 것인지 이제 알 수 있다. 장자연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서민 같은 류의 사람들이 윤지오나 김영희, 김제동, 김어준, 손석희 같은 사람들을 헐뜯기에 여념이 없으니 말이다.

서민은 윤지오에게 사기꾼 이미지를 씌우기 위해 한 문장을 가정법 형태로 조작해 낸다. “그런데도 윤씨가 자신이 사건을 해결할 것처럼 굴었다면”이 그것이다. 앞에서는 “막말을 해대는”이라고 쓰더니 여기서는 “것처럼 굴었다면”이라고 쓴다. 누가 기생충 학자 서민에게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세속 표현으로는 ‘꼰대형’) “막말”을 할 권리를 준 것일까? 하여튼 이 말이 성립하려면 윤지오가 그렇게 “굴었”던 적이 있는지 서민 자신이 입증해야 할 것이다. 서민은 윤지오가 “이 기회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윤지오는 자비를 들여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창립했고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상의 의심을 마음 속에서 꺼내 경향신문 같은 언론에 쏟아놓을 때 그것이 “공연히”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독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서민은 모르는 것일까? 

서민은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이런 위험은 망각한 채 자신의 상상의 적들을 공격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이제 표적은 윤지오에서 윤지오의 말을 보도한 언론을 향한다. 서민은 말한다. “문제는 윤씨에 대한 언론들의 태도였다.” 이 ‘진지한’ 비판자가 주장하는 요점은 윤지오가 ‘위험을 과장해 과도한 경호를 요청하는 바람’에 “여경 5명이 한 달 가까이 윤씨 옆에서 심부름을 해야 했고, 그것도 부족해 사람들은 경호비에 보태라며 윤씨가 공개한 후원계좌에 아낌없이 돈을 보냈다.”고 아까움과 부당함과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윤지오의 주장을 “검증도 없이 내보”낸 JTBC를 탓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서민은 윤지오가 처했던 실제 상황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실제로 윤씨를 위협한 사람은 그녀 아버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고. 

정말 그랬을까? ‘윤지오가 좌파정권에 이용되고 있다’고 본 아버지가 윤지오가 증언에 나서는 것을 저지하면서 3월 8일에 윤지오를 폭행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서민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윤지오가 가장 큰 위협으로 느낀 것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자증을 가진 이른바 ‘기레기들’이었다. 한국에서 기레기형 기자들은, 조선일보 사례가 보여주듯이, 경찰청장을 협박하여 수사 외압을 넣고 자신들의 사주(社主)를 방어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꾸려 가짜 혐의자를 내세우고 자정에 자진 출두하여 거짓진술을 하는 등 진실보도보다 성폭력 권력을 호위하는 호위무사로 기능하거나 정치권력이나 기업권력의 끄나풀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윤지오가 경험한 기자의 공포스런 형상이었다. 그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윤지오는 “저는 다른 것보다 기자들이 무서워요”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예컨대 그는, 머니투데이가 자신의 주소를 알아내 꽃다발을 보냈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그는 MBN이 자신의 숙소를 알아내 문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후 불안해 하는 엄마와 함께 캐나다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럴진대 자신의 행동에 관한 일거수일투족을 의심의 눈, 경찰의 눈으로 바라보고 ‘막말해댄다’, ‘해결사처럼 군다’ 식의 “막말”을 거침 없이 윤지오에게 쏟아내는 이가, 대학교수인들, 윤지오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두려움을 주는 ‘교레기’라고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서민이 쓰듯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때, 이에 대해 사과하는 일이다.” 하지만 윤지오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모는 데 앞장섰던 언론들과 변호사, 기자, 작가, 교수 중 “누구도 여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사고구조의 내밀한 비밀을 알고 싶어 서민이 추천한 “윤씨와 SBS 박원경 기자의 전화통화 영상”을 보았다. 윤지오가, 서민이 ‘참기자’라고 말하는, SBS 박원경의 마녀사냥식 질문(‘인터뷰가 아니라 [논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한다’)을 논박하는 장면(‘당신이 경찰이예요?’)이었다. 서민에게서 증언자에 대한 마녀사냥은 팩트체크로 인식되고 마녀사냥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반박은 ’거짓말 하는 이’의 ‘어떤 반응’의 패턴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4월 26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고 장자연 사건 문건 미스터리: 누가 그녀를 이용했나?”가 방영된 직후인 4월 28일에 김대오는 당일 장자연 육성을 내보낸 SBS를 비난하는 포즈로 이렇게 쓴다: “SBS에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장자연 문건에 분명 언급된 SBS 고위 간부출신 해당 당사자에 대해선 설명이 전혀 없네 ㅋㅋㅋㅋㅋㅋㅋ”. 왜 조선일보만 비판하고 자기비판은 없느냐는 항의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SBS의 ‘기자’가 놓여 있는 미묘한 위치에 대한 암시를 엿볼 수 있다. ‘참기자’가 되기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나는 김대오가 장자연과 관련하여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중요한 암시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서민이 ‘참교수’가 되길 원한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자연 사건으로 인해 ’기레기’라고 평가하게 된 ‘기자’ 김대오의 이 암시에서 “꼭” 교훈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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