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가혜의 투쟁과 윤지오의 투쟁

2014년 9월 10일 ‘똘레랑’이라는 필자가 쓴 한 칼럼이 있다. 제목은 ‘내가 김용호의 정체를 공개한 이유’. 김용호는 윤지오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장본인이며 “가로세로연구소”라고 불리는 유트브방송의 단골 출연자이다. 5년이 다 된 지금 똘레랑의 그 칼럼을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은 분명히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이 윤지오에 대한 작금의 음해에 기시감(데자뷔)을 줄 뿐만 아니라 역사의 중요한 특징들 중의 하나가 반복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에 쓰인 홍가혜라는 이름 대신에 윤지오라는 이름을 넣고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그런데 역사의 또 다른 특징은 누적이다. 2014년과 달리 2019년에는 김용호라는 이름에 더하여 김대오, 김수민, 박훈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이 글의 김용호 대신 ‘김용호와 김김박 트리오’라는 이름을 넣고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칼럼] 내가김용호의정체를공개한이유

“엇! 김용호가 세계일보에 왜 있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트위터에서 홍가혜에 대한 마녀사냥을 보고 있던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용호는 자신을 연예전문기자라고 소개하며 “홍가혜는 드라마 ‘리플리’의 이다혜[해]의 삶과 비슷한 여성”이라며 “과거에도홍가혜는기자에게정체가들통난후눈물을흘리며 “다시는거짓말을하지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김용호의 말은 마녀를찾아서배회하던사냥꾼들에게먹잇감을안겨줬다. 김용호의거짓말이 트위터와 스포츠월드를 통해 확산되면서 구조 작업이 더뎌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홍가혜에 대한 분노로 바꿔 쏟아내는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해줬다. 홍가혜가 허언증이나연극성인격장애라는마녀사냥의불길을 키웠다. 무엇보다 김용호는 실종자가족들에게지푸라기같은도움이라고되고싶어한간절한마음에씻을수없는상처를 안겼다.

김용호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나는 10년전 안재욱 사건 때 그의 정체를 확실히 알았다. 당시 변희재가 발행하는 브레이크뉴스에서 일하던 김용호는 인터뷰하기 힘든 안재욱에 대해 거론하며, 그가 목격하였다는 안재욱의 오만함에 대해 논했다. 거기에 더해 김용호는 저널리스트 행세를 하며 안재욱의 키에 대한 분노의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또한 그는 수준미달의 안티기사를 배설해내는 유명 연예인들의 기피대상으로 연예인 팬클럽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제프다니엘스가 주연한 드라마 ‘뉴스룸’을 기억하는가? 김용호의 삶은 이 드라마에 나오는 가십전문기자와 비슷하다. 드라마 속 가십전문기자처럼 김용호도기사가아닌소설을쓴다. 저널리스트 코스프레를 하던 김용호는자신의성공을위해서계속해서거짓말을했고다른사람의인생을모함했다.

김용호의 삶을 이렇게 자세하게 적는 이유는 지금도 그의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지면에 실린 김용호의 거짓말은 진실처럼 느껴진다. 또 내가 김용호의 실체를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둥 음모론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김용호는 또 어떤 거짓말로 자신을 변호할지 모른다. 김용호는홍가혜의법정에서검찰측증인으로출석하여, 자신의거짓말이들통난후, 홍가혜의정체를폭로한다면서올린트윗들이대부분 ‘이름을밝힐수없는누군가의한두마디에서나온말들의짜깁기였음’을시인했다. 눈물을흘리며용서를구했다던홍가혜는김용호와일면식도없었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는 또 천연덕스럽게 입을 다물더라.

과거 김용호의 거짓말에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은 연예인들이 한둘이었나?  이를 용서해줬더니 지금 김용호의거짓말은더커져서 이젠 자원봉사를 하려는 일반인까지 흔들고 있다. 법원은 변희재의 김광진의원 모욕사건에서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진 기자들의 명예훼손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김용호는자신이얼마나큰일을저질렀는지알고나있을까.(http://19dominic74.blogspot.com/2014/09/blog-post_10.html)

이로부터 5개월여 전이며 세월호 침몰 사흘 뒤이고 홍가혜의 MBN 인터뷰가 있었던 바로 당일인 2014년 4월 18일, 이제는 악명높은 <조선일보>는 신속하게 ‘김용호 기자가 밝힌 홍가혜 “日술집 출신에 10억대 사기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는다. 이 기사는 (저작권 침해로 공격할 수 있으니 전문이 아니라) 일부만 인용하기로 하자.

18일 오전 MBN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관계자가 (민간잠수부)에게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 등의 발언으로 홍가혜가 화제를 모은 가운데, 연예부기자인김용호기자가입을열었다. 김용호 기자는 해당 인터뷰가 전파를 탄 후 오전 10시 20분 쯤 자신의 트위터에 “MBN이홍가혜한테낚였구나!”라는 글을 남기며 MBN의 오보를 암시했다. 이어 4시 40분쯤 스포츠월드에 “내가홍가혜의정체를공개한이유”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게재했다. (…) 김용호는 홍가혜가 과거 일본아카사카에있었다고 말하며, 홍가혜가성공을위해서계속해서거짓말을일삼고있다고전했다. 김용호는 이 같은 홍가혜의 과거를 그녀를수사한형사에게들었다고 출처를 밝히며, 홍가혜가 10억 대 사기혐의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 네티즌은 “김용호 기자… 전적이화려하네”, “홍가혜세월호침몰인터뷰듣고희망을가졌는데김용호칼럼보니허탈하네요 ”, “(…) 홍가혜정체가이거라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http://m.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4041802541#Redyho)

이처럼 조선일보가 추켜세우는 김용호는 형사와 선이 닿아 있고 댓글들은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김용호의 거짓말을 기정사실로 만든다.  이런 식의 기사를 약 열흘에 걸쳐 27건 게재함으로써 조선일보는 세월호 침몰에 대한 해경 및 박근혜 정권의 구조태만에 대한 홍가혜의 증언을 범죄로 조작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때문에 홍가혜는 무려 20일간의 독방생활을 포함한 3개월의 구속생활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이것이 행정권력-사법권력-언론권력-기레기들-댓글부대의 위계적 네트워크 행동이 ‘주권자’ 국민을 사냥하는 방법이다.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이들이 도덕적으로 악해서라기보다 행정, 사법, 입법, 언론 등 국가권력의 4 부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머슴과 시녀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체제적 조건 때문이다. 자본이 이들에게 사냥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 체제는 절대적으로 노동에 의존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 체제가 어떨 때는 이들 권력기관들로 하여금 노동하는 국민들에게 착한 모습을 보이길(‘인간의 얼굴’을 하길) 요구하는 때도 있다. 이런 역사적 조건은 대개는 국민들이 체제와 권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저항, 분노의 봉기에 나섰을 때 조성된다. 이럴 때 권력기관들은 복지를 시혜적으로 베푼다거나 국민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라고 말한다거나 하는 식의 아양을 떨기도 한다.

기레기들과 댓글부대를 활용해서 국가권력이 수행하는 국민에 대한 이러한 사냥질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이며 국민을 자본의 노동노예로 만드는 폭력행동이다. 홍가혜의 경우, 그것은 국가가 바다에 침몰한 국민의 생명을 방기하여 죽게 만들더라도 국민은 이에 항의해서는 안 된다는 흉포한 메시지로 나타났다. 홍가혜가 이 순간에 무엇을 느꼈을까?

“너무 씁쓸했어요. 그런데 처음이 아니잖아요. 제가 언론의 외면을 받는 일이. 사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 인터뷰를 하고 나서도 바른말을해주는언론, 없었거든요. 시민사회도없었거든요. 그 많은 여성단체며 시민 언론단체며 많잖아요. 대한민국에. (그런데) 하나 없었어요. 성명 하나, 그 쉬운 성명 하나 내주는 곳이 없었는데 그런 언론과 시민단체의 외면을 받는 일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냥 ‘아, 너희들 그냥 하던 대로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씁쓸한 거죠.”(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995)

 홍가혜는 사법권력-경찰-조선일보-김용호-댓글부대가 만들어낸 이 불법적 폭력에 항의해 단신으로 5년여에 걸친 투쟁을 벌였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29일 4년 7개월, 1687일만에 홍가혜에 대한 무죄를 확정 선고했다. 이에 대해 홍가혜의 공익변론을 맡았던 양홍석은 “법리상 국가기관인 해양경찰청장은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없고, 당시 팽목항에서 벌어진 국가의 구조실패, 구조방기, 구조방해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비판한 것을 ‘허위’라고 규정한 것은 형사사법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전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733)

홍가혜는 대법원 판결 직후 “모두를 위한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며 김용호를 고소했고 1심 재판부는 김용호에게 1000만원의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김용호는 형사고소 당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1월 24일 조선일보가 홍가혜에게 ‘6000만원을 배상’하고 이 금액에 대해 ‘ 2014년 4월 24일부터 2019년 1월 24일까지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외의 여러 언론들도 손해배상을 판정받거나 홍가혜에 대한 사과문을 게시해야 했다. 물론 조선일보는 2019년 2월 8일 항소했다. 하지만 홍가혜는 이에 맞서 국민에게 호소하며 “여기까진 혼자 달려왔으나 이젠 함께 하는 겁니다”라며 ‘조선일보 파산펀딩’을 개시했다. 

“여러분들이 마음 보태 주신 금액만큼 항소심에서 증액을 요청할 것이고, 1심 판결금 이상 항소심에서 판결 날 경우(변호인들과 약정한 승소금 50%를 뺀) 나머지 금액은 모두 조선일보 파산을 위한 공익적 활동에 쓰여 집니다. 물론 항소심에서 조선일보가 파산 당할 만큼 판결이 난다면 그 공익 활동은 필요 없어지겠지요.”(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995)

국민을 개돼지나 종으로 아는 반국민적 권력들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작인 셈이다. 전쟁이나 혁명도 그렇지만, 정의의 싸움도 조직이나 집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개인들이 삶 속에서 겪는 작은 경험들에서, 그 경험들에 대한 자신 나름의 고유하고 특이한 느낌에서, 자신만의 그 특이한 느낌을 평균 속에 묻어버리지 않고 살려나가는 집요함에서, 작은 불의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선처 없는 처벌에서 시작된다. 작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큰 불의를 꺾을 수 있다. 조직이나 집단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과 집단은 기존의 조직들을 승계하여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그 고유하고 특이한 느낌, 생각, 판단을 유통하여 이끌어낸 공감을 기초로 해서 늘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장자연의 절규와 항의를 이어받은 윤지오의 증언투쟁과 방어투쟁, 그리고 (다양한 수준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투쟁은 하나의 투쟁의 다른 장들이다. 이 투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만큼 드물겠지만, 드문 만큼 고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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