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정보의용병” 오온욱(1)

가해 권력자들이 아니라 증언자 윤지오를 의심하기

사건의 실체적인 가해자들에게는 아주 피상적이고 가볍게 농담처럼 분노를 표하면서 윤지오님에게는 광기어린 분노를 보이는 것을 보면 정확하게 분노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느끼게 됩니다. -네티즌 eidbfissm

여기에 지난 2019년 5월 오온욱(Onook Oh, Onugi97)이 나와 관련하여 쓴 글들에 대해 몇마디 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래에 인용할 것들은 전부 모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그가 댓글로 달았던 글들이다. 그는 나의 블로그나 페이스북, 트위트 등에는 어떤 댓글도 달지 않았다. 나에게는 대놓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모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가서 나를 (근거도 대지 않고)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이 점에 비추어 나는 그의 글이 나에 대한 모함을 통해 그 변호사를 나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이간질이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바로 이 무렵 그의 이름이 나의 페이스북 친구요청 리스트에 나타났다. 나는 ‘SNS에 떠도는 소문에 좌우되지 말고 나의 글을 좀더 꼼꼼히 읽고 사태를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요청을 수락한 적이 있다. 지금 살펴보니 친구 목록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 자진해서 끊은 듯하다. 그의 글이 달렸던 모 변호사의 페북에도 그의 글이 지워지고 없다. 아래는 그의 글로부터의 인용문들이다.

1. “조정환씨의 글을 보면, 윤지오씨가 섭정운동을 하고 있고, 대중은 윤지오의 생존방송에 청취및 댓글로 참여 및 후원하고 있다는 식의 아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구요.”

2. “조정환 님의 과거 활동이 어땠든 링크된 그의 글에 동의하기 힘들군요. “권력자, 착취자, 남성의 눈” 그리고 “다중, 저항자, 탈주자, 여성의 눈”등처럼, 들뢰즈, 네그리, 하트등이 사용하는 거창한 말들로 글을 시작하지만, 용두사미격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윤지오 님의 모순된 혹은 의문에 쌓인 현재의 말과 행동들을 설명하기에는 디테일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상황 이해가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3. “윤지오님 스스로 해명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 (1) (윤지오님의 이모부에 따르면) 암에 걸리지도 않은 엄마를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하고 출국하고, (2) 단순 빙판길 교통사고를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음모처럼 방송에서 말하고, (3) 앞뒤맞지 않는 증언도 여러 차례 (이를 조정환은 경찰의 교란전술이라고 말 하[더]군요. 그런면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윤지오 님의 모순된 행동과 말들이 그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잃게 했다는 점이죠.), (4) 후원금 모음 상황공개하겠다고 했다고 라방에서 후원금 상황에 대해 질문하면 차단, (5) 장자연 배우의 유족 동의없이 책 출간, (6) 지난 10년간 사람도 제대로 못 만나며 검은 옷만 입고 지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많은 사진과 동영상이 이미 돌아다니구요. 가장 중요하게는, 윤지오 님 스스로 이런 의문들에 댓구할 맘이 전혀 없는 것 처럼 보이구요.”

얼마 안 되는 예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그의 정신경향의 일단을 엿보는 데는 큰 부족함이 없다. “아주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거창한 말들로 시작하지만 용두사미격의 글”, “디테일이 턱없이 부족” “상황 이해가 부족하지 않나” “그런 면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어떤 글이, 어떻게 그렇다는 것인지 근거는 단 한 마디도 없다.

이런 말들은 보통 대학에서 지도학생들의 논문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교수들이 마치 아는 체 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학생의 무지인 것으로 덮어씌울 때 쓰는 상투적이고 공허한 언어들 중의 일부이다. 권위주의적 학교체제에서 학생들은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갑’의 위치에 있는 교수가 근거 없이 아무렇게나 평가하고 지적해도 자신의 논문에서 혹시 그에 해당될 지 모를 지점을 애써 찾아야[만들어야] 하며 논문을 어떻게든 그에 맞춰 고쳐서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죄를 자신이 알아야 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나는 오온욱의 지도학생이 아니므로 나와 관련된 1, 2에 대해 해명하거나 설명하는 노고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가 궁금하면 내가 쓴 책들을 더 찾아 읽어보면 혹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역시 아무 근거 없이 윤지오를 비난하는 3에 대해서는 짧게 몇 마디 해야겠다.

(1)은, 윤지오는 구별해서 말한 ‘암’과 ‘종양’을 “윤지오 이모부”나 그가 구별하지 못해서(혹은 않음으로써) 생기는 착각이다. ‘종양이 발견되어’는 ‘암에 걸려서’와 같은 뜻이 아니다.

(2)는, 윤지오가 ‘그 교통사고들이 우발적인 것이 아닐까봐 두렵다’고 한 것인데, 이에 대해 ‘단순 빙판길 교통사고인데 왜 기획된 음모처럼 말하느냐’며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다.(잘 이해가 안되면, 추돌한남자로 바꿔 대입해 보면 좀 쉽게 이해될 것이다.)

(3)은, 윤지오 증언의 앞과 뒤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실사구시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친(親)가해자 네티즌들이 하는 말을 줏어듣고 사태를 판단하는 지적 나태함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4)는 조직사상의 철저한 결여의 산물이다. <지상의 빛>은 비영리단체이므로 기금(후원금) 의제는 그 단체 정관이나 내규 등 운영수칙에 따라 총회와 같은 곳에서 논할 문제이다. 개인 라이브방송에서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방송 방해자이므로 제지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5), 저자가 자신의 삶과 증언을 담은 책을 내는데 왜 유족의 ‘동의’가 의무인가? 내가 아는 한 대한민국 법체계에 그런 의무를 규정한 조항은 없다.

(6)은 오온욱의 성차별주의 시각과 연결되어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므로 뒤에서 좀더 상세히 따져보겠다.

굳이 던져진 질문들에 짤막짤막하게 반박을 했지만 사실 2019년 4월과 5월의 정세 속에서는 이렇게 피해자 측을 향해 던지는 질문들의 제기 자체가 가해권력이 사용한 전쟁수단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는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없는가?’가 전 사회적 핵심의제였기 때문이다. 재수사 위기에 몰린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가해권력은 촛불혁명, 미투봉기, 진상조사단 재조사, 증언자 윤지오 등 자신들을 향해 치올라오는 아래로부터의 공세에 직면해 자신이 아니라 증언자 윤지오에게 화살(의심의 시선)을 돌리도록 반격[‘윤지오가 해명하라!’]을 함으로써 공세의 방향을 뒤틀고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했다. 자신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이 전쟁수법은 증언자 윤지오의 사실상의 추방과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재조사 회피라는 결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 입장에서는 부분적으로는 성공했다 할 것이다. 나는 오온욱도 성폭력 체제의 혁명을 둘러싼 이 사회적 정보전쟁에서 박훈, 김대오, 김수민, justicewithus, “윤지오 이모부”, shootTV, 가로세로연구소 등과 함께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한 명의 친(親)성폭력 정보의용병(info-militiaman)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근거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성폭력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정보의용병” 오온욱(1)”에 대한 3개의 댓글

  1. 조정환 선생님께,

    오온욱입니다. 누군가 알려줘서 이곳에 찾아 왔습니다.

    (1)
    “나에게는 대놓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모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가서 나를 (근거도 대지 않고)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 해명하겠습니다. 올해 5월 초쯤으로 기억납니다. 말씀하신 XXX변호사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은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과 함께, 조정환 선생님의 글을 링크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조정환 선생님께서 사노맹의 이론적 스승이시고, 오랜 수배생활도 하신 분이란 소개도 덧붙였기 때문에 더 관심있게 선생님의 글을 읽었던 것으로 기업납니다. 즉, XXX변호사님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소개한 조 선생님의 글을 읽었기 때문에, XXX변호사님께 올린 제 댓글을 달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 글에 대한 별다른 댓구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글을 보셨을 때, 조정환 선생님께서라도 제 댓글에 댓글을 다셨다면 제가 반응을 했었겠죠. 그런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페이스북이 가벼운 글도 올리고 농담도 하고 글도 추천하고 그런 공간이지 않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올린겁니다.

    (2)
    왜 XXX 변호사님의 페이스북에 올린 제 글들을 지우고 조정환선생님을 제 친구리스트에서 제외했는가에 대해 해명하겠습니다.
    — 조정환 선생님께서 아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최근에 한 인스타그램에서 심한 익명의 네티즌에게 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뜬금없이 선생님의 이름이 거론이 되더군요. 개인적으로 충격이 컸고, 아직도 그 충격에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예의를 갖추고 나름의 근거를 갖춰 문제의 인스타그램에서 질문을 했는데, 한 익명의 사용자가 갑자기 저를 성희롱자 혹은 온라인 괴롭힘을 일삼는 사람으로 표현하며, 제 직장정보를 빌미로 저를 심하게 협박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조정환 선생님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 순간 또 XXX변호사님의 페이스북에 위에서 말씀드린 끌이 제가 직접 지웠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생긴 일 때문에 충격이 컸고, 이에 조정환 선생님과 복잡하게 얽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조정환 선생님을 제 친구리스테서 제외했고, 현재 제 페이스북은 잠시 닫아 놓은 상태입니다.

    (3)
    “자신이 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낸 이 전쟁수법은 증언자 윤지오의 사실상의 추방과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재조사 회피라는 결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그들 입장에서는 부분적으로는 성공했다 할 것이다. 나는 오온욱도 성폭력 체제의 혁명을 둘러싼 이 사회적 정보전쟁에서 박훈, 김대오, 김수민, justicewithus, “윤지오 이모부”, shootTV, 가로세로연구소 등과 함께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한 명의 친(親)성폭력 정보의용병(info-militiaman)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근거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 선생님께서 오온욱을 “친(親)성폭력 정보의용병(info-militiaman)”이라고 부르는 점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왜 제 실명을 여기서 거론하면서까지 저를 “친성폭력 정보의용병”이란 딱지를 붙여야 하는지요? 제 이름이 인스타그램에서 공개됐기 때문에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제 실명을 거론하면 저를 “친(親)성폭력 정보의용병(info-militiaman)”라고 딱지를 붙여도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성폭력은 당연히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선 때 박근혜 전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음에도 성차별적인 언어로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화를 냈었습니다. 저는 평범한 네티즌이고, 궁금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온라인에서 질문을 던지고, 필요하다면 가벼운 논쟁도 하고 그럴 뿐입니다. 제가 윤지오씨가 여자이기 때문에 여성혐오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지금 언론과 온라인에 보면 윤지오씨에게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 역시 윤지오씨에 대해 의문이 많고, 그래서 온라인에서 종종 질문도 던지고 필요하다면 제 생각을 표현하고 그럴 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틀린 부분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감수하고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정도의 용기는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친(親)성폭력 정보의용병(info-militiaman)”라고 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군요. 선생님의 주장을 펼치는데는 그렇다 치겠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붙인 그 딱지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 딱지를 제 이름에서 지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온욱드림.

    1. 오온욱 님께

      해명과 요구를 담은 글 잘 읽었습니다.

      1. 장자연 사건에 임하는 태도 문제에 대해 먼저 말하겠습니다. 성폭력 문제는 늘 있어 왔지만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체제에 대한 문제가 이 사건처럼 대중적 관심을 갖고 제기된 적은 역사적으로 전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젠더갈등 문제가 계급갈등에 종속된 문제로 억압되어, 문제로서 제기조차 될 수 없었던 사회운동의 역사적 한계와도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 2008년 촛불봉기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2009년 3월 7일 발생하였으나 이명박 정권에 의해 유야무야 덮여버린 장자연 사건은 2016년의 촛불과 2018년 미투의 힘으로 재점화되어 다중의 역량을, 그리고 (촛불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할 사건으로 부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장자연의 죽음에 정치인, 언론인, 자본가 등 한국 사회 지배계급의 주요 성원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2009년 당시에도 공공연한 비밀로 나돌고 있던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자연 사건은 계급갈등과 젠더갈등이 동시에 얽혀 있는 복잡하면서도 중대한 사건이고 젠더갈등 속에서 계급갈등을 풀어나가야 할 매듭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윤지오 씨가 놓여 있는 위치는 이토록 엄혹하고도 근본적(radical)인 것입니다. 윤지오 씨가 “증언”을 하기로 결심한 순간, 본인이 의식하고 있건 못하건 간에 그는 약자(피지배계급)와 여성의 해방 욕망을 한 몸에 짊어진 존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해방 욕망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진 자들(지배계급)과 남성들의 권력체제에 “증언”이라는 방식으로 맞서야 했습니다. 이것이 윤지오 씨의 역사적 위치입니다.

      2.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국 사회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세력들과 수 십 세기 동안 여성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누려온 남성들(이 두 세력은 둘이면서 서로 겹치는 하나의 세력이기도 합니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으려 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입니다. 3월 중순 이후 이 세력들은 실제로 반격을 시작해서 대통령의 엄정조사 명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사 과정을 뒤흔들었습니다. 막훈 변호사는 윤지오 씨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깔아 뭉갰지만 실제로는 윤지오 씨가 진상조사단에서 한 중요한 증언들 대부분이 묵살되었습니다. 그가 뭘 증언했는지조차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온욱 님은 윤지오 씨의 증언들이 뭐였는지 들었습니까? 나는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 사건을 현실의 문제로 취급할 의지가 없었다고 봅니다. 사건을 조사하고 기록하여 역사에 남기는 것(과거사화)이 그들의 관심사였지 장자연 사건을 현실의 문제로 끌고와 처벌과 개혁으로 가는 길(현실화)을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3. 내가 보기에 오온욱 님은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의 증언을 윤지오 씨의 역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의 역사정치적 관점에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우적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조작되고 편집된 시각과 주장들에 쉽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들은 탈역사화되고 탈정치화된 개인들을 사로잡아 자신들의 지지자로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전문기량을 가진 여론 기술자들입니다. 이 사건이 젠더갈등까지 포함하고 있다보니 우파만이 아니라 중도적 심지어 좌파적 관점을 갖고 있는 남성들도 윤지오를 탄핵하는 세력에 무의식 중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박훈 변호사 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문맥을 벗어나서 보기 시작하면 장자연 사건을 고인의 문제나 유가족의 문제, 혹은 증언자 개인의 문제로 보게 됩니다. 지금 장자연 사건의 본질은 성폭력 체제가 내지르는 윤지오 씨에 대한 도덕적 규탄이라는 소음과 연막에 가려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아래로부터의 성적 계급적 해방 움직임을 진압하기 위한 최루탄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모든 책임을 윤지오 씨의 도덕성 탓이라고 뒤집어 씌워 사태를 완전히 거꾸로 보게 만들고 윤지오 씨를 만회불가능하게 매장하려 하지만 가망 없는 일입니다.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태를 직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태가 온 것에 대해, 상황을 가볍게 인식하고 접근하여 반혁명적 억압세력에 무의식적으로 가담하게 된 오온욱 님에게도 명백하게 책임이 있습니다. 사회정치적 관점을 충분히 갖지 않고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해도 거기에서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4. 내가 성폭력 체제라고 말하면서 ‘성폭력’이라는 말을 쓸 때 이 말은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을 포함하는 사법적 개념과는 다르고 훨씬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개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나갈 생각입니다. 오온욱 님은 성폭력은 “당연히” 범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사법적으로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 성폭력도 있지만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임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전혀 성폭력으로 인식되지 않는 성폭력도 아직 허다합니다. 여성을 ‘바라보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성폭력의 시작점인데 이것은 여성을 남성들이 의식 깊은 곳에서 소유물로, 재산으로, 물건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합법적으로 행세하고 있으며 역사가 남성에게 물려준 후성유전자이기도 합니다. 김학의 사건 판결에서 검찰이 성접대를 ‘액수를 계량하기 힘든 뇌물’로 간주했는데, 이것은 검찰의 사법적 관점 속에 여성의 몸을 물건, 재산, 소유로 바라보는 관점이 녹아있는 것입니다. 장자연 사건 진술서들에서도 판사들이 장자연과 윤지오의 술접대를 김종승이 권력자들에게 주는 뇌물로 보는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나는 이러한 시각 자체가 성폭력적 관점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부장적 가족(가장이 “가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조직형태)은 성폭력 체제의 토대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압축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업, 교회, 학교, 정당, 국가 등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조직체계들이 성폭력적 관점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내가 성폭력을 하나의 체제라고 부를 때 그것은 성폭력이 하나의 동형논리(isomorphism)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장자연 사건의 실체적 해결이 성폭력 체제의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윤지오 씨가 촛불혁명과 미투봉기의 힘으로 등장한 것은 비록 이 문제의 해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제대로 제기할 수 있는 모멘텀의 등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계급갈등은 아직 해결되고 있지 않지만 사회적 의제로 분명하게 정식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젠더문제는 정식화는커녕 아직 문제로조차 제대로 제기되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심지어 여성 내부에서조차 의식되지 못하곤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는 오온욱 님께, 이 체제로서의 성폭력에 대해 좀더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표명하고 싶습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관점으로는 이 문제에 결코 제대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사회를 지킨다, 생명을 지킨다는 태도로까지 나가야 합니다. 내가 님에게서 이 문제에 진정으로 대면하고 있고 해결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느낌을 받을 때 “친성폭력적”이라는 관형사를 분명히 떼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분명하게 님의 관점과 태도가 내가 사용하는 의미의 ‘성폭력’에 친화적이기 때문입니다.

      5. 오온욱 님이 쓴 ‘< 벗방>과 사과’는 윤지오 씨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님(‘우리’라고 해도 무방합니다)의 내부에 깊이 체화되어 있는 성폭력적 관점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줍니다. 아마도 이에 대해서 내가 글을 더 쓰게 될지 모릅니다. 이것이 (2)에 대한 나의 답입니다.

      6. 나는 약 두 달 가까이를 윤지오 씨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그것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그 연구에 기초하여 블로그에 글을 써 왔습니다. 나도 나의 글이 널리 읽히고 나의 호소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전달되기를 바라지만 여러가지 이유에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독자만은 꼭 나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씁니다. 하나는 윤지오 씨입니다. 나는 나의 글이, 윤지오 씨가 지금의 상황을 읽고 버티면서 무너지지 않고 싸워나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의 글을 읽어주기를 기대하는 또 한 사람의 독자는 윤지호 씨의 변호사입니다. 나의 글이 윤지호 씨의 사법투쟁에 역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온욱 님은 윤지호 씨의 변호사의 페이스북에 나의 글에 대한 어떤 근거도 없는 비난성 평가(나는 그것이 오른 지 한 참 뒤에 그것도 우연히 읽게 되었습니다.)를 올려 나의 글이 변호사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없도록 작용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내가 ‘이간(離間)’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나는 ‘근거 없는 주장’은 대개 무시합니다. 근거 없는 주장과는 다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이 가벼운 글도 올리고 농담도 하고 글도 추천하고 그런 공간이 아니냐는 님의 생각은 현실이 그렇기 때문에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 윤지오 씨를 둘러싼 논란은 결코 그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는 사실만은 꼭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논란은 윤지오 씨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며 향후 수 년 간 다툼이 계속될 문제이고 사태의 본질적 해결까지는 몇 세기가 걸릴지도 모르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유혈(流血)적일 수도 있다는 것도 예상해야 합니다.

      7.“저 역시 윤지오씨에 대해 의문이 많고, 그래서 온라인에서 종종 질문도 던지고 필요하다면 제 생각을 표현하고 그럴 뿐입니다.”라는 문장에 대해서 간단한 응답을 하고 싶습니다. 윤지오 씨에 대한 의문을 풀려면 반드시 한국일보가 올려둔 2009년~2010년 사이의 핵심당사자 진술문들 전체와 <13번째 증언>을 꼭 정독하시기 바랍니다. 이 증언들을 읽지 않고 윤지오 씨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김대오, 김수민, justicewithus, shootTV, 윤지오 이모부의 눈을 통해 윤지오 씨를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이들이 윤지오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위치에 있지 않고, 그럴려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고 또 이해하지 않음으로써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연구할 때에 2차 자료, 3차 자료에서 연구를 시작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단 1차 자료를 읽고 그 다음에 위의 사람들의 말들을 읽고 들어보기 바랍니다.

      8.내가 실명으로 오온욱 님을 거론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 벗방>과 사과’를 읽고 난 다음입니다. 이 글은 심히 유감스런 글이며 글쓴이의 뒤틀린 사고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은 너무 이르게 사법의 방향으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공개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법 이전에 토론을 해보자고 한 것입니다. 토론을 함에 있어서, 앞서 언급한 페이스북글 말미에 “온욱 드림”이라고까지 쓴 님께서 실명을 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지 나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조정환이라는 실명을 쓰는데, 불공정 게임을 원한다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요?

      9.언제든지 반론은 환영합니다. 단 욕설이나 비난이 아닌 반론(反論)을 원하며 논거를 갖고 제시되기를 바랍니다. 예컨대 김수민 씨에 의해 제시되듯, ‘개소리’하는 ‘아저씨’ 어쩌구 하는 식의 타락한 작문이 제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대한 성의껏 토론에 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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