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가 10년 동안 검은 옷만 입고 다녔다고 거짓말 했다”는 거짓 선동

-성폭력 가해권력을 위해 일한 정보의용병 오온욱(2)

오온욱은 자신의 글 ‘<벗방>과 사과’(http://tinyurl.com/y36db242 ; 이하 괄호 속 쪽 번호는 이 글의 쪽 번호다)에서 이제는 지워진 자신의 “질문”글을 이렇게 복원시켰다.

“(장자연님이 세상을 떠난 후), 지난 몇 년동안, ohmabella씨가 사업도 하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모델 활동도 하시는 비디오도 봤고, <벗방>하는 비디오들도 인터넷을 통해 꽤 봤습니다. 이는 “죄인처럼 고개숙이고 검은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서 지냈다는 ohmabella님의 주장과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요?”(2쪽)

이 질문에 대한 오온욱 자신의 평가는 이러하다. “어떤 욕설도, 비아냥도 없는 공익적인 질문이었다”(2쪽). 그런데 lamer297이 오온욱의 질문글을 비판하기 위해 아마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이는 오온욱의 질문글 일절(一節)은 이러하다. 

“집 밖에도 못나가고 “몇.년.을 일 자체를 못”한 바로 그 동안 많은 벗방라이브를 하셨더군요.”(3쪽)

“<벗방>하는 비디오들도 인터넷을 통해 꽤 봤습니다.”와는 사뭇 다른 어감이다. 과연 이것이 ‘어떤 욕설도, 비아냥도 없는 공익적인 질문’인가? 곧 이어지는 문장이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요?”라는 비판적 질문인 점에서 “벗방라이브를 하셨더군요”는 비아냥이다. 이 점은 오온욱이 이러한 질문글을 달기 훨씬 전부터 윤지오를 비난하고 모독하면서 “거짓말”(나의 블로그에서 박훈, 김대오, 김용호 등의 거짓말에 대해 논증한 글을 이미 제출했으므로 여기서 근거를 다시 반복하지는 않는다)을 하는 사람들과 계정들의 시각으로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 논란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는 “질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해명”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박훈 변호사, 김수민 작가를 비롯한 인스타그램 (@justicewithus, @do_remisol)의 계정을 통해 윤지오 님의 모순적인 행동을 지적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마녀사냥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윤지오 님의 모순적인 행동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나의 스크랩 아카이브에서 인용하는 오온욱의 글, 강조는 인용자)

2019년 6월 초의 상황에서 이런 말은 결코 ‘공익적’이지 않다. 아무리 좋게 평가한다고 해도 ‘당파적’ 시각이다. 박훈, 김수민, 김대오 트리오가 윤지오 파괴전선에서 가로세로연구소, shootTV 등의 극우 당파와 연합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과 정의당이 윤지오를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에 이용한 후, 그를 버렸다고 비난하던 시점이었는가? 그러므로 ‘욕설도 비아냥도 없는 공익적인 질문’이라는 오온욱의 자기평가는 자신의 당파적 관점을 감추기 위한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이고 허구적인 평가이다.

그런데 나의 눈에는 ‘마녀사냥’으로 보이는 것이 왜 그의 눈에는 ‘문제제기’로 보이는 것일까? 계급입장, 세계관, 젠더관, 여성관, 정치전망 등 아주 근본적인 비가시적 차이들이 이러한 시차(視差)를 가져오는 것이지만 직접 그 비가시적 차이들에 접근할 수는 없으므로 이미 드러난 차이에서 시작해서 그쪽으로 조금씩 접근해 보도록 하자. 

오온욱의 주장은 이러하다. [A]“사업”, “술”, “모델활동”, “<벗방>”을 한 것은 “[B]”’죄인처럼 고개숙이고 검은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서 지냈다”는 ohmabella님의 주장과  [C]”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요? [C]의 ‘서로 모순’이 성립되려면 [A]와 [B]가 각각 진실한 명제여야 한다. 이제 각 명제의 진실성을 검토해 보자.

[A] 명제는, lamer297이 ‘성희롱 및 온라인 괴롭힘(cyberbullying)’ 혐의를 들어 오온욱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명제이다. 이에 대해 오온욱은 반성과 사과의 뜻을 이미 표한 바 있다. 그런데 ‘<벗방>과 사과’에서 그는 그것을 ‘협박에 의한 사과’였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했던 거짓 사과였다고 번복한다. 소용 없는 일이다. 그런다고 해서 이전의 반성과 사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과 가족을 지킨다는 실리를 위해 거짓사과말을 하는 사람은, 동일한 논리에 따라, 실리를 위해 타인을 음해하는 거짓말을할/했을수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오온욱의 사과와 번복의 과정이 이미 [A]명제의 진실성을 허문다. 사과문이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위해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기 때문에, 윤지오가 ‘벗방’을 했다는 말 자체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위해지어낸 거짓말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게 되기 때문이다.(참고로 김대오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오온욱이 ‘벗방’에 대해 사과하고 번복하고… 하는 방식처럼 오락가락이다. 즉 큰 흐름의 일관성을 갖는 윤지오의 진술과는 달리 진술로서의 일관성이 전혀 없다.)

이제 [B] 명제에 대해 살펴 보자. 이 명제는 ohmabella가 “죄인처럼 고개숙이고 검은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서 지냈다”고 말했어야 진실명제이다. 정말 그럴까? ohmabella 윤지오는 자신이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고맙게도 오온욱 자신이 김어준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윤지오의 말 동영상과 텍스트 버전을 그대로 인용해 두서 사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서는 오온욱이 [B] 명제를 끌어내는 텍스트 버전을 그대로 옮겨보자.

“[1]이런 일들을 겪었다고 [2]제가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이럴 필요가 없었는데 [3]그동안 저는 집밖에도 못 나가고 ‘몇.년.을’ 일 자체를 못했거든요.”(31-32쪽, 대괄호 속 번호는 인용자)

인터뷰 문장을 분석해 보면 그 속에 세 개의 명제가 있다. [1]이런 일들을 겪었다 [2]그렇다고 내가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이럴 필요가 없었다. [3]그런데 그동안 나는 집밖에도 못 나가고 ‘몇.년.을’ 일 자체를 못했다. 문장 [1]과 [3]은 윤지오 자신이 자신의 경험 및 삶 과정을 서술한 일반적 긍정진술문이다. 그렇다면 [2]의 문장은 무엇인가? 가정법에 의한 부정진술문이다. 이 가정법 부정진술문을 풀면, “내가 죄인이라면,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이래야 했겠지만 내가 죄인이 아니기 때문에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고 구석에 있고… 식의 죄인적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로 된다. 윤지오의 긍정진술은 ‘집밖에 못나갔다’, ‘몇 년을 일 자체를 못했다’이지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검정 옷만 입고 다녔다’, ‘구석에 있었다’가 아니다.

오온욱은 (그리고 김수민, justicewithus 등의 계정들은) 이 가정법 부정진술문을 윤지오의 긍정진술문으로 왜곡한다. 즉 위의 명제 [B]는 오온욱이 지어낸 거짓 명제이다. 이런 정보편집, 정보곡해, 정보조작을 통해 오온욱은 (그가 따르는 박훈, 김수민 , @justicewithus, @do_remisol 등과 더불어) 윤지오가 ‘10년 동안 검은 옷만 입고 다녔다고 거짓말했다’는 거짓 선동을 일삼고 SNS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이러한 거짓말을 퍼뜨린다. (여기서 나는 그가 거짓인 줄 알면서 거짓명제를 조작하는가, 아니면 자신이 그렇게 하는 줄 모르면서 그렇게 하는가의 차이는 무시한다. 사법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내가 그를 ‘정보의용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것이다.

위 인용문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명제 [A]와 명제 [B]가 지금에서는 유지될 수 없는 거짓명제로 드러났기 때문에 “서로 모순”이라는 [C] 주장도 자동적으로 폐기된다.

이제 이 분석에 기초해서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복자는 벗긴다)

“이것이 인터뷰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웹에 떠도는 윤지오씨에 관한 많은 비디오 사진들을 보면, 그동안 인터넷 BJ활동도 꽤 하시고, 모델 활동도 하시고, 친구들과 밖에서 술도 마시고, 사업도 하시는 등, 여러가지 일을 꽤 활발히 한 기간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는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셨다는 주장모순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던 겁니다. 바로 이런 모순되는 주장에 대해 아프리카 티브이 BJ활동을 하는 동안, 제가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지 않고, 그 동안 “많은 벗방 라이브를 하셨더군요”란 질문도 드린 겁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을 한 겁니다.”

왜 오온욱은 거짓명제들에 기초해서 인위적으로 이끌어낸 ‘윤지오의 말의 모순’이라는 생각을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윤지오의 모순이 아니라 오온욱의 사고체계의 거짓됨을 밝힘으로써만 설명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우선 나는 윤지오의 ‘라방’을 ‘벗방’으로 보는 오온욱의 시선이 이미 신인배우 장자연을 성적 노리개로 보면서 성착취와 성폭력을 일삼았던 성폭력 체제의 저 가해권력자들의 시선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시선이라고 보지만 논점을 집중하기 위해 이후 별도로 그 문제를 다루도록 하고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여기서 집중하고 싶은 문제는 그의 정보편집, 정보왜곡, 정보조작이다. 그는 윤지오가 행하지 않은 것을 윤지오가 행한 것으로 조작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윤지오가 한 행동은 ‘집밖에 못나갔다’, ‘몇 년을 일 자체를 못했다’이지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검정 옷만 입고 다녔다’, ‘구석에 있었다’가 아니다. 그런데 오온욱은 이로부터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검은 옷만 입고 다니셨다는 주장”을 윤지오가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에 기초한 자신의 질문을 “지극히 합리적인 질문”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오온욱의 합리성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합리성=정보조작=거짓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정보의용병으로서의 오온욱과 대학교수로서의 오온욱이 모순되는 것일까? 오온욱이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일까? 대학에는 지킬 박사이고 SNS에서는 하이드 씨일까? 그런 것 같지 않다. 그의 최근 연구 주제에 비추어 보면 그는 대학에서도 여전히 권력을 위한 정보정규군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amer297이 파악했고 오온욱 자신이 인정한 바에 따르면 대학에서 그의 최근의 연구 주제는 두 가지다. (1)하나는 어떤 종류의 불가분리한 기술사회적 루틴들(technosocial routines)이 발생해서 이전의 루틴 양식들을 대체하고 있는가 (2)새로운 기술사회적 루틴들이 어떻게 개인적 조직적 사회적 수준에서 안착되고 있는가? (12쪽) 이 두 주제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과거의 루틴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기술사회적 루틴의 발생과 안착이라는 주제다. 

먼저 루틴(routine)이란 무엇인가? 경로/길을 뜻하는 route에 접미사 ine가 붙은 말이다. route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인 street(길/산책로)와는 다르고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물리적 길인 road(도로)와도 다른다. route는 폭력적이고 조작적으로 만들어진 정보적 길이다. 이것은 route가 침입하다, 파괴하다, 깨뜨리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rumpere에서 기원한 것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전통적 루틴(일상 패러다임)은 직접적이고 인신적인 폭력(이나 근대에는 경제폭력)을 통해 만들어져 왔다. 그것이 전통적 합리성(대표적으로는 초월신의 전능함 혹은 자본의 영구함이라는 신화=거짓말)이다. 

그런데 일상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합리성은 기술과 정보, 미디어를 매개로 만들어진다. 정보편집, 정보조작은 폭력이 조직되는 새로운 양식이다. 그것은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폭력의 얼굴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사회기술적 방식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일정한 경로, 즉 루틴을 통해 흐르도록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새로운 합리성(대표적으로는 제4차혁명이라는 신화=거짓말)이다. 내가 보기에 오온욱은 (자신의 의식과는 무관하게 혹은 그 자신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통제사회를 안착시키려는 제국권력의 정보의용병 및 정보정규군으로 기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다중, 저항, 탈주, 투쟁 등을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느끼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감각방식이다. 그가 속해 있는 유일한 현실은 제국현실이고 그것과 다투는 다중 공통장의 실재성과 현실성이 그에게는 감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윤지오의 등장은 그에게는 전혀 감각되지 않는 후자의 힘에 기초한 특이점의 출현, 즉 “루틴”을 단절시킬 수 있는 힘의 부상이었다. “루틴”을 조직하는 가해 권력자들에 대한 재수사, 말이다.

지금 윤지오가 하지도 않은 말을 윤지오가 한 것으로 편집조작하여 마치 사실처럼 정보망을 통해 유통시키는 “합리적(!)” 행위는 이 통제사회적 폭력의 행사방식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기술사회적 루틴”을 정착시키려는 제국권력에 대한 투쟁,  요컨대 AI, 사물인터넷, 제4차산업혁명의 제국적 이용이 인류의 삶에 미칠 수 있는 해악적 영향에 대한 투쟁은 성폭력 체제에 대한 투쟁과 별개의 것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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