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의 진실성과 증인의 인성/도덕성/불법성 쟁점을 구분하지 못하는 맹목성과 그 발생원천에 대해

윤지오를 둘러싼 논란을 ‘윤지오 사기증언 사건’이라고 명명하는 김대오의 생각에 대해 내가 “장자연-윤지오 사건을 바라보는 김대오의 가부장적 성차별주의 시각의 세 가지 구성요소”(http://amelano.net/?p=823)라는 글을 올린 후 거기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이 단순한 사기 사건을 아직도 믿으려하시니, 참 어렵게도 보시네요. 선생님의 글처럼 저도 선생님의 심층의식과 표면의식을 종합하면, ‘(김대오 기자를 필두로 한)대중은 쉽게 속아 넘어가고, 가해권력을 보호하며 성폭력적인 시선을 보내지만, 이 똑똑하고 선한 나만은 진실을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선민의식은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귀를 닫고, 원래의 생각에서 1mm도 움직이지 못한채 여전히 옹호만 하는거 아니신가요. 이렇게 판단력이 흐려진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참여연대에 공익제보자를 위한 후원을 지속하고 있을만큼 공익제보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비약은 있겠으나 희귀병에 걸려 10여억을 모금한 이영학을 예로 들면, 희귀병에 걸린건 사실이죠. 하지만 모금을 돈벌이 삼아 방송과 다른 이중적 모습에 대해 누군가 문제를 제기했었다면 2차 가해인가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고 폭력적 시선인가요? 윤지오씨가 증인인건 사실이죠. 그런데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신변위협이 사실이 아니면요? 캐나다 차사고는 그냥 단순 접촉사고면요? 아프리카bj로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았다면요? 윤지오씨는 신한은행으로 받은-억대로 추정되는-후원금 내역을 왜 공개하지 않는지, 그게 합법적인거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2019년 6월 18일, ID 수현; 강조는 인용자)

또 그 아래에는 윤지오를, “눈알 굴리면서” 자영업자 오빠를 의대다녔다고 말하는 “거짓말쟁이 양치기 말투”의 “허언증 환자”, “거짓말을 너무 많이해와서 스스로도 거짓말하는걸 모르고 있는 정신병 환자”로 지적하면서 “제발 벗어나오세요 ㅠㅠ”라고 말하는 자상한 댓글, 메일과 ID는 여럿 이지만 IP는 하나인 분이 주신 댓글들도 여럿 달려 있다.  

윤지오증언의 진실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먼저 수현 님이 이영학의 사례를 윤지오 사례에 견준 것은, 그 자신도 어느 정도 이미 느끼고 있듯이(“비약은 있겠으나”) 윤지오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영학은 공익제보자가 아니며 증언 진실성이 쟁점으로 되는 사례가 아니다. 윤지오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은 그의 증언의 진실성을 증인에 대한 도덕 및 인성 논란으로 덮고 그 증언을 부인해 버리는 것에 있다. 이것은 정확하게 증언으로 인해 손해를 볼 수 있는 가해권력의 필요와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다. 수현 님의 댓글은 바로 그 필요와 의도를 댓글의 형식으로 네티즌의 입장에서 실천하고 대행하고 있는 것 이상이 결코 아니다.

나의 입장은 무엇인가? 도덕과 인성의 차원에서 윤지오를 옹호하는 것인가? 아니다. 증언 진실성의 문제와 도덕/인성의 문제를 명확히 구분하자는 것이며 전자를 후자로 덮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대중(mass) —이것은 정체성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특이성의 공통체인 다중(multitude)과는 다르다— 이 후자로 전자를 덮기를 욕망한다면 나는 ‘선민’주의라는 비난을 받는 것을 무릅쓰고라도 반(反)-대중의 입장에 설 것이다. 모호하게 뒤섞어 놓은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다.

가를 ‘판’, 자를 ‘단’을 합친 우리말 ‘판단(判斷)’이나 ‘애초의 발생 부분으로 나누다’는 뜻을 가진 독일어 ‘das Urteil’이나 모호하게 뒤섞인 것을 잘라 가르는 것을 의미한다. 판단력은 가르는 능력이지 뒤섞고 몽롱하게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도덕/인성의 문제로 증언 진실성을 뒤덮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가해권력들의 전술이며 그것에 현혹되는 것이 (다중이 아닌) 대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현 님의 말, “(1)윤지오씨가 증인인건 사실이죠. (2)그런데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신변위협이 사실이 아니면요? 캐나다 차사고는 그냥 단순 접촉사고면요? 아프리카bj로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았다면요? 윤지오씨는 신한은행으로 받은-억대로 추정되는-후원금 내역을 왜 공개하지 않는지, 그게 합법적인거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에서 나는 (1)과 (2)를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2)에서 (1)을 잘라내지 않는 사람들을 나는 “판단력(判-斷-力, Ur-teils-kraft)이 흐려진” 사람들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1)과 (2)는 완전히 별개의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가 맺는 상호관계는 개개의 사태 속에서 냉철하게 사고되어야지 (2)에서 거짓말, 사기꾼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1)에서 그의 증언도 사기일 것이다, 라고 추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참으로 멍청한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판단착오다. 우리의 ‘베테랑 기자’ 김대오까지 이런 흐름에 합류하고 심지어 그 흐름을 선도하는 것에 나는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백 번도 더 말하는 것 같지만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된 윤지오 증언의 진실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즉 수현 님이 제기한 (1), 즉 윤지오가 증인이며 그의 증언은 진실하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2010년의 진술이기 때문이다. 그 증언은, 거짓말쟁이며, 접촉사고며, 라방 별풍선이며, 신한은행-국민은행이며, 표절이며, 학벌조작이며…하는 2019년의 모든 쟁점들이 아무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는 쥬라기 시대의 진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스트와 관련된 진술은 유장호의 당시 진술, 장자연 오빠의 당시 진술에 의해서도 이미 교차검증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이 문건이 유서가 아님이 밝혀진 이후 경찰과 언론의 상식이었다. 물론 가해권력을 비호하는 방식으로 가동된 사법과정에서 이 상식이 송두리채 내팽겨쳐졌지만 말이다. 이 점은 다른 글에서 이미 숱하게 반복했으므로 이쯤에서 멈추려 한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하자: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해

나는 현행의 대한민국 헌법이 개정되어야 할 많은 독소조항들을 갖고 있다고 보지만 헌법 제27조 제4항까지 개정되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 조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이 비록 1심이나 2심에서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더라도 그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에 준하여 취급해야 함은 물론, 유죄임을 전제로 하여 해당 피고인에 대하여 유형ㆍ무형의 일체의 불이익을 가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수현 님이 제기하는 (2)를 다시 인용해 보자.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신변위협이 사실이 아니면요? 캐나다 차사고는 그냥 단순 접촉사고면요? 아프리카bj로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았다면요? 윤지오씨는 신한은행으로 받은-억대로 추정되는-후원금 내역을 왜 공개하지 않는지, 그게 합법적인거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은 분명하다. 신변위협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차사고는 단순 접촉사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자유롭게 살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후원금이 합법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후원금 내역의 공개 문제는 당사자가 후원자, 지지자, 장자연, 비판자 등 여러 관련 당사자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자신의 유불리를 종합하여 자신과 관련 당사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타인이 공개하라고 압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윤지오가 후원금의 모금 경위와 그 절차 및 그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윤지오와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더 유리하지 않을까 하는 견해를 갖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보다 내가 종합적 상황을 더 옳게 판단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혐의를 제기하는 수준을 넘어서 개인의 은행계좌 공개를 집단적으로 압박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을 벗어나 윤지오를 최종 판결이 나기도 전에 범죄자로 단정하고 그에게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을 가하는 사이버불링과 오프라인 여론몰이가 이미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집단 괴롭힘을 언젠가 당신도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위의 인용에서 “목숨이 위험할 정도”, “그냥”, “누구보다” 등의 수현 님의 표현은 편견이 이미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보지만 여기서는 핵심 쟁점에 집중하기 위해 무시한다. 한 가지 빼놓고 싶지 않은 것은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도덕적 법률적 쟁점이 문제로서 성립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해권력에게 도움이 되는 쟁점이라는 사실이고, 실제로 맥락상 가해권력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된 쟁점이라는 사실(나는 4월 초 홍선근의 뉴시스에 의해 제기되었던 윤지오 비난 기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최종심에서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윤지오에게 가해지는 여러 범죄 혐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죄를 추정할 것이고 그를 유죄로 단정하는 반(反)헌법적 폭력에 맞서 싸울 것이다. 그리고 윤지오의 (확증되지 않은) 유죄 혐의를 근거로 그의 증언 진실성을 부인하는 모든 억견들(doxa) 및 “흐려진” 판단들 그리고 여론재판에 맞서 싸울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최종심에서 윤지오의 유죄가 판결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내가 구분한 (1)과 (2)의 상호관계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응답은 정치철학적 고찰을 포함하는 엄밀한 답을 요구하므로 별도의 글로 올리겠다.

“증언의 진실성과 증인의 인성/도덕성/불법성 쟁점을 구분하지 못하는 맹목성과 그 발생원천에 대해”에 대한 4개의 댓글

  1. 장자연 유가족들이 윤지오 때문에 과거사위에 전화해서 ‘그런 리스트는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p/BxzgBNmhmgW/

    문건을 불에 태우는것 부터 그렇고, 장자연 친언니가 전화로 협박 받은것도 그렇고… 제가 느끼기엔 사실 유가족들은 그냥 모든걸 잊고 싶어하는 모양새가 많이 보입니다. 들쑤셔 봤자 자신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다고 보고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이미 떠난 사람이고, 협박인지 아니면 압박인지를 받으면서 더이상은 관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수도 있고요.

    그런 복합적인것이 이 사건과 관련해서 작용하기 때문에 어려워진게 아닌가 하네요. 유가족들도 그 문건으로 무언가 실질적 배상이나 도움을 얻을수 있거나, 아니면 진실을 어떻게든 쟁취하고 싶어하는 열망이나 투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렇지는 않을것 같은데… 뭐 사람마다 다 성향이 다르고 가족의 일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지금 윤지오씨와 대립되는 사람들, 그 작가를 포함해서 왠지 과거에 ‘댓글 알바’등을 했던 경력이 있는게 아닌지 생각이 드네요. 댓글 알바 특성상 SNS나 여론을 조작, 주도하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직업도 인터넷 작가고… 윤지오씨 관련 내용을 어떻게 수집하는것도 뭔가 관련자들끼리 정보공유가 빠르게 이뤄지는것 같기도 하고. 제 개인적 의견 입니다.

  2. 댓글에 대한 선생님의 답변 잘 읽었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인듯 합니다. 제 질문이 무례하진 않았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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