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변호사의 글 <공범>을 검증한다

아침에 일어나 박준영 변호사가 쓴 다음 글 <공범>을 보고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렵다.

<재심>을 통해 쌓은 정의의 이미지가 이렇게 연약한 인간을 내려치는 망치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경악과 분노 때문에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켜가며 그 글에 댓글을 달았다.

*

국민 개개인에 대해 인간주의적 이해보다 국가의 비용 배분의 향방과 양을 우선시하는 관점이 관료주의다.

관료들은 “내(국가)가 너희(인간)에게 은혜(복지)를 베푼다. 너희의 선함을 나에게 입증하라”고 주장한다.

관료들은 이렇게 국민 앞에 자신이 시혜집단임을 내 세움으로써 자신을 국민 위에 옹립할 뿐만 아니라 국가가 그 관료집단에게 세금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춘다.

관료집단에게 지출되는 국가비용이면 가난한 국민들의 대다수가 선함을 입증하지 않고도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충분할 것이다. 왜 국민이 자신들의 노복들(servants)에게 선함을 입증해야 하는가? 

박준영 변호사는 윤지오 배우에게 정말 “헤어샵으로 와 달라고 통보”한 적이 있는지 물어 사실확인을 했는가?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고 했다면 “왜 그렇게 했는지”, “경호원과 함께 택시 타고 오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았는가?

국민이 국가기관을 시켜 대한민국으로 불러온 증인에게 국가가 보호목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에 대해 박준영 변호사가 자신의 경험(저는…본 적이 없다)을 잣대로 비난의 글을 올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박준영 변호사가 술접대 자리에서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노래하고 춤춰 본 적이 있는가?

박준영 변호사가 실세 권력자들의 불의와 부정을 증언하는 자리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증언 후에 누가 뒤따라 오지 않나 뒤돌아보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걸려오는 전화마다 녹음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끼는 불안의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인기척에 소스라쳐 떨어본 적이 있는가?

이 사회가 적대로 가득차 있고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낸 사람들이 약자들을 향해 어르릉대고 있음을 느껴 본적이 있는가? 

나는 알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의 페이스북 이미지에 왜 아이들이 앞모습을 보이지 않고 뒷모습을 하고 있는지.

왜 자신의 두려움은 당연하고 필연적인 두려움이고 윤지오 배우가 느끼는 두려움과 그에 대한 표현은 “가해의 실체에 대한 의혹을 부풀리는 의도”의 표현으로서 부당하고 의심스런 두려움인가?

“긴 시간 윤지오와 함께 했던 사람들이 이런 윤지오의 문제점을 몰랐을까요.” 

어떤 문제점 말인가?

“나는 건강하다. 나는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며 정신감정 결과를 제출한 것 말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대한민국에 살면서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사는지 아는가?

장자연의 주검이 부검도 없이 유족의 뜻에 따라 경찰에 의해 처리된 후 대한민국은 10년이 넘는 사회적 갈등 속에 휩싸여 있다.

그 죽음이 자살이라는 명확한 증거조차 확보하지 않은 채 시신을 처리함으로써, 그 무엇보다 결정적인 증거인 시신을 불투명하게 처리함으로써 왜 국가기관은 이토록 국민들을 혼란 속에서 방황하게 만드는가?

대한민국에서, 국가기관이 명확한 죽음의 이유를 밝히지 못하는 의문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므로 내가 죽게 되거든 유가족이 뭐라하든 부검해 달라는 윤지오 배우의 이 유언 아닌 유언이 왜 문제점인가?

지금 윤지오가 악한 인간이라고 고발하는 일에 그의 가족인 이모부가 앞장 서 있다.

만약 윤지오에게 그가 두려워하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그 일이 그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처리되어도 되는가? 

나도 이 자리에서 밝히고 싶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절대 자살하지 않는다. 나의 꿈은, 유태우 박사의 가르침대로, 9988234, 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을 끙끙 앓고 죽는 것이다. 나는 시신이 악의에 따라 임의처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의 시신을 기증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유서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 한, 반드시 부검해 달라.

박준영 변호사는 윤지오의 정신감정 결과 제출에 대해 문제점을 느꼈다고 자신 외에 진상조사단의 그 누구로부터 또 이야기를 들었는가? 확인했는가?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왜 “이를 알거나 알 수 있었으면서 침묵 했던 모두가 공범입니다”라며 애매한 가정법 기술을 써서 윤지오 배우를 범죄자로 모는가? “뒤늦게 이야기한 저도 공범이구요”??? 박준영 변호사가 어떤 유형의 범죄자일지는 모르나, 윤지오 배우는 범죄자가 아니며 따라서 박준영 변호사의 공범이 아니다. 왜 변호사의 신분을 갖고서 헌법 제27조 제4항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해 한 인간을 유죄로 단죄하는가? 

박준영 변호사는 조선일보 기자의 추행건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에 대해 폄하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만약 윤지오 증언자가 박준영 변호사의 무고로 인해 증인으로서의 신빙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결국 그 조선일보 기자도 무혐의 처분에 준하는 약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 증언을 폄하하는 실제적 방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이 조선일보의 전직 기자를 구하고, 조선일보를 구하는 실행방법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조선일보 구하기의 행동인가?

윤지오 증언자의 증언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왜 과거사진상조사단원들은 바보들로 만들고, 그들을 모독하는가? 박준영 변호사가 그럴 자격이나 권리를 갖고 있는가? 그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증언들을 교차 비교하고 물적 증거와 대조하여 사실인 것을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는 나름 대로의 검증작업을 하지 않았겠는가? 적어도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은 유지되었다. 

우리가 더 이상의 검증을 요구한다면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최종 심의발표가 진상조사단의 조사와 일치하는지, 또 진상조사단의 조사가 충분히 증인들의 증언들과 증거들을 실사구시적으로 비교검토했는지, 증인은 충분히 확보했는지, 강제수사력이 없음으로써 생긱 구멍이 무엇이었는지 등에 관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적 검증과정 바깥에서 박준영 변호사가 윤지오 (증언이 아니라) 증인에 대한 검증을 요구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 인간 윤지오의 사생활을 발가벗기고 증언자를 심문대에 세워 마녀사냥을 한 것 아닌가? 박준영 변호사가 원한 것이 그것이었는가? 노출이 어느 정도인지, 학력은 속이지 않았는지, 왜 그리 학력이 보잘 것 없는지, 작품이 표절은 아니었는지, 정치색이 뭔지, 평소에 거짓말을 얼마나 하는지, 왜 말할 때 눈을 굴리는지, 계좌에 후원금은 얼마나 모였는지, 왜 자신의 계좌를 공개하지 않는지, 혹시 계좌에서 사적 목적으로 쓴 돈은 없는지, 왜 기자들에게 오만하게 구는지, 목소리가 왜 그렇게 짜증나는지, 유가족을 혹시 비난 한 적은 없는지, 왜 왕진진의 글이 가짜라는 것을 식별하지 못하는지…. 이 악무한적 의혹들과 비난들의 광기가 ‘증인도 검증되어야 한다’고 박준영 변호사가 제안하면서 의도했던 그것이었는가?

2019년 늦봄과 초여름에 대한민국은, 윤지오 증언자를 사기꾼으로 만드는 전 시민사회적이고 전 국가적인 사업을 통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권력자를 고발하는 증언을 하려는 자는 반드시 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세계만방에 천명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짓밟는 이 반헌법적 광기의 선봉에 박준영 변호사가 서 있다는 사실을 똑 바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이미 공인인 박준영 변호사의 말과 삶은 이제, 그가 윤지오 배우에게 요구했던 바로 그 방식으로, 한 구절 한 구절 일거수일투족 검증되어야 한다. 혹시 그가 출마의 기회를 얻거나 관직을 얻거나 돈을 벌거나 하는 등의 사적 목적으로 윤지오 배우의 의혹을 부풀리고 있지나 않았는지/않은지 검증되고 또 검증되어야 한다. 나는 이후 박준영 변호사가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을 받거나 공직에 진출하거나 치부를 하거나 언론의 칼럼 자리를 얻거나 하는 식의 이득 취득의 현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그것이 윤지오 배우의 의혹을 사적 목적을 위해 부풀려 얻은 사익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않을 것이다.

토론을 공정하게 끌고 가기 위해 아래 내 스스로 박준영 변호사에게 페친 신청을 했고 아래 댓글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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