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어 살았다”(윤지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한 어떤 주석

윤지오에 대한 널리 퍼진 다양한 왜곡들을 바로잡기 위해 한 네티즌이 꼼꼼한 필치로 쓴 글 중에 <왜곡된 내용의 근거에 대해>(이하 <왜곡>)가 있다.  이 글은, 윤지오가 지난 10년 동안 미인대회에 나갔다거나 라이브 방송을 했다는 식으로, 그의 삶의 몇몇 단면을 들추어 내어 ’나는 숨어 살았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김수민 작가의 인스타그램 피드글이 과연 맞는 말인가를 검토하는 항목을 담고 있다. 

  “[나는 숨어 살았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것이 성립하려면 ‘숨어살았으며 10년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라고 말했어야 거짓임이 성립한다. 그런데 윤씨는 이미 책에서부터 고인의 사건 이후 일과 학업을 병행했고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미인대회를 전전했으며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일 등을 얘기했고 인터뷰에서도 일을 하거나 여행 등의 얘기를 한 바 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말한 적이 없으며 숨긴 적도 없다.” 

그런데 김수민이나 ‘justicewithus’ 등의 인스타그래머들은 윤씨의 사진들을 피드에 올려놓고 ‘고인 때문에 슬프다는 사람이 저렇게 미인대회에 나가고 여가를 즐기며 웃고 있다, 즉 슬프다라는 것은 거짓이다’라는 식으로 조롱하며 댓글러들과 함께 자기기만과 위선을 즐긴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오딧세이>에서 트로이 전쟁에서 동료를 잃고 살아남은 슬픔 때문에 통곡하던 사람들은 허기 때문에 식사를 하고 이내 곤한 잠에 빠져든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을 보니 그들의 슬픔은 거짓이었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그 사람의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그것이 인간을 이해하는 올바른 방식일까?

하지만 <왜곡>은 그들을 비난하거나 꾸짖기보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그들에게 윤지오가 ’숨어 살았다’, ‘숨어 지냈다’고 말할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길을 택한다.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했는지의 근거는 방송에서 윤씨가 한 말 속에 그대로 나와 있다. 윤씨는 방송 또는 인터뷰에서 ‘숨어지냈다.’ 또는 책에서 ‘숨어지내듯 숨죽여 보내야만 했다.’의 뜻을 두 가지로 말한 바 있다. 하나는 그동안 사건에 있어 스스로를 공개하지 못하고 ‘음성변조라던지 a씨 또는 이순자 등의 가명을 사용했다는 의미’로, 또 하나는 ‘실제 생활에 있어서 힘들었던 사례들을 얘기하면서’이다. 사례를 들어 언급할 때는 ‘몇달 간’ 등의 기간적 표현을 꼭 함께 했다.”

다시 말하면, 고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과 관련하여 (1)자신의 진짜 이름인 실명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는 것 그리고 (2)기자 등에 쫓겨 살면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숨어 살았다는 것이 ‘숨어 살았다’라는 말로 윤지오가 표현하고자 한 두 가지 의미이다. <왜곡>은 이런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이 두 가지 의미가 윤지오의 언어행위에서 구별되고 또 다른 조건에서 표현된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밝혀 준다.

먼저 (1)의 예로 <왜곡>은  3월 7일 c방송에서의 예를 든다. 이 방송에서 질문자는 “‘실명을 공개안하고’ 말하자면 일종에 숨어서 지냈어요?”라고 묻는데 이것은 질문자가 윤지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숨어 지냈다”라는 말을 실명 공개를 안했다라는 의미로 대신 설명하는 경우에 속한다. 

다른 예로 3월 29일 k방송의 예도 든다. 여기에서 윤지오는 “‘말씀해 주셨다시피’ 계속 숨어서 지내고 내 이름도 함부러 얘기 못하고 이랬었는데.. 이게 조금은 바뀌어졌으면 좋겠어서 아직 이례적으로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해서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씀해 주셨다시피”가 받는 [그 앞의] 말이 무엇일까? 

박 : 그전에는 사실 윤모씨라고만 알고 있었거든요. 

윤 : 성자체도 거의 보도가 안됐었구요. 

박 :  a모씨나 b모씨로? 

윤 : 증언할 때도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박 : 가명으로 하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적 있어요? 

이 대화맥락을 받아 “말씀해 주셨다시피 계속 숨어서 지내고 내 이름도 함부러 얘기 못하고 이랬는데”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숨어지냈다”라는 말은 증언자로 이름을 말할 수도 없고 얼굴을 드러낼 수도 없는 억압적 상황 속에 살았다는 의미다. (나중에 윤지오는 이 상황을 가해자는 고개를 치켜들고 다니고 피해자는 고개를 숙이고 숨어 다니는 전도된 상황으로서 보면서 피해자다움에 대한 이 전도된 강요를 거부하고자 하는 데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에서 서술할 것이다.)

(1)의 “숨어서 살다” “숨어서 지내다”가 증언과 관련하여 실명과 얼굴을 드러낼 수 없는 강요된 피해자다움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2)는 실제 생활에서 일정 기간 동안 숨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억압적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왜곡>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한다. 하나는 3월 29일 y방송 인터뷰에서 윤지오의 말이다.

“지금도 밝아요. 물론 마냥 밝을 수만은 없었고 저도 아팠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고 집 밖을 ‘몇 달’ 안 나간 적도 있어요. ‘몇 달 동안’ 집 밖을 안 나가고 나가도 차안에서 담요 같은 걸 덮고 숨어 있었어요. 창문 밖을 잘 못 봤고 빛 자체를 싫어 했어서 대인기피증도 생기고 우울증도 생기고 그러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죠. 엄마가 빨리 발견 해주셔서 응급이송이 되고 목숨 자체가 위협이 있다라고 판단을 하셔서 입원치료를 ‘두달 넘게’ 했어요.”

3월 14일 유튜브방송에서 윤지오가 한 말도 이와 유사한 경우인데 숨어 살도록 만드는 저 강요의 주체가 명시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기자’가 바로 그들이다. 

“(조사 당시 이후) 또 따라붙으시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질문하시고 집에서 나오면 계시고 몰래 이사하면 또 어떻게 찾아 수소문해오시고. 그때 당시에 대학원에 재학중이면서 제가 넥센이라는 팀 치어리더를 했었어요. 아르바이트로 한 시즌동안. 구단에도 찾아오시고, 가는 데를 다 찾아오시고, 기자분들이 찾아오시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시니까 주변에서 다 알게 되는거죠.”

여기서도 윤지오는 당시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숨기지 않았으며 기자들로 인해 자신이 겪었던 고초와 그 고초가 자신으로 하여금 숨어 살도록 강요했음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주목할 것은, <왜곡>이 검토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2) 유형의 사례에서는 ‘몇달’, ‘몇달 동안’, ‘두달 넘게’ ‘한동안’ 등의 기한 표현이 반드시 수반되었다는 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곡자들은 이 말을 “10년 내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숨어 지냈다]”라는 식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윤지오가 마치 거짓말을 한 것처럼 만든다. <왜곡>에 대한 우리의 주석이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들이 자행하는 이러한 왜곡과 거짓말의 실상을 낱낱이 밝히는 것이고, 이들이 무슨 목적으로 그러한 왜곡과 거짓말을 일삼고 있는지, 즉 왜곡과 거짓말을 통해 이들이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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