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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관한 몇 편의 노트

시사
작성자
amelanojoe
작성일
2018-02-21 21:47
조회
361
추리소설의 시간

사건 초기에 구조 지체와  실패의 원인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전복과 침몰의 원인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런데 거대한 예산과 장비를 들인 특검의 중간수사발표가 있었고 언론에 의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 동안 컴퓨터그래픽과 같은 전문장비와 각계 전문가들을 동원한 넘치는 해설보도가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구조 지체와 실패의 원인은 물론이고 전복과 침몰이라는 비교적 단순했던 사태의 원인조차 점점 모호해지고 심지어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되어 가는 느낌이다. 과적, 부족한 평형수, 급변침 등을 전복의 원인이라고 말할 때 설명할 수 없는 많은 현상들이 남고 또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들의 실재성을 부인하거나 모른체 하며 부득이 인정해야 할 때조차 이것들을 이해할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비밀에 붙이고 있으며(해수부는 75%의 자료를 비공개자료로 분류했다) 공식수사기관은 공식진실의 설명체계를 벗어나는 사실들, 그러니까 설명되어야 할 현상들에 대한 조사와 해명을 해 주기는커녕 이에 대한 정당한 의문제기, 해명 요청을 유언비어 유포라는 죄를 씌워 단죄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죽음, 구금, 수배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실들과 진실들을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과 사회의 접촉이 차단되어 가는 것도 이 역설적이고 기묘한 진실상황의 중요한 조건이다. 


이제 우리는 왜 세월호가 전복되었는가라는 기본적인 문제부터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의 방해를 뚫고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해있다. 이것이 세월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이유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소설적 추리작업은 사실접근에의 금지로 인하여 다큐멘터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안진실실험이 취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형식이자 생명과 연대하려는 노력이 취하는 가장 적극적인 형식이다.(2014.6.1 작성)

생명의 정부를 위하여(Por vivregistaro)

세월호 사건을 둘러싸고 2014년 5월 초에 전개되고 있는 역사적 움직임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권력의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은 순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사고수사 2)언론 및 '유언비어' 통제 3)이후 안전대책 및 권력재편 준비 4)실종자 수색. 짐작컨대, 1)과 2)는 세월호 '사건'을 여객선의 전복과 침몰이라는 단순한 '사고'로 축소함으로써 이것의 사건적 비화를 저지할 인지적 프레임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고, 3과 4)는 가족과 시민들의 분노한 마음을  달래서 다중의 정동을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다중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1)가족들은 충격과 상심 속에서도 가대위를 중심으로 매우 이성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 진실규명 요구와 침묵시위가 그것이다.  2)자연발생적인 추모, 항의집회들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3)인터넷, 특히 SNS를 통한 진상규명 시도와 의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4)세월호 참사 시민촛불연석회의가 집중촛불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요약할 수 없는 광범위한 우울, 참담, 환멸, 분노의 정서가 사회 저변을 흐르고 있다. 왜 이러한 정서가 명확한 표현양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문제의 원인을 찾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해법을 상상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는 명확히 구분되는 몇 개의 국면이 있다. (1)사고가능성의 비축과 실제적 사고의 국면 (2)구조의 황금시간대(8시 52분에서 10시 11분까지)에서 에어포켓 유실전까지(사고후 수 일)의 생명구조의 국면 (3)시신수습의 국면 (4)선박인양의 국면. 진실규명은 이 모든 국면에 걸친 문제인데, 지금 수사본부의 수사는 거의 전적으로 (1)에 집중되어 있다. 이 때문에 수사결과는 어느 정도는 이미 예견되고 있다. 사고원인은 평형수를 빼면서 이루어진 과적에 있다. 책임은 종교적 야심과 기업적 탐욕에 사로잡혀 탈법한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일가, 그리고 그들에 매수된 일부 관료들에 있다. 등등.

이것은 전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사고'들 중의 하나의 '사고'로  다루는 방식이다. 이것은 모든 관심을 배의 전복이라는 단 한 가지 사안(즉 (1)의 국면)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달리 말해 (2)와 (3)의 국면을 수사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합수부의 수사는 사고가 있게 된 경위와 기술적 원인들을 밝혀내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 세월호 사고가 사회 전체의 관심사로 확산되는 조건을 제공한 (2)와 (3)을 문제에서 배제하게 된다면 그것은 총체적 진상규명과는 거리가 멀며, 그 부분적 사실들과 원인진단을 진상이라고 내놓게 된다면 총체적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대위가 진실규명을 요구하면서 특검을 제안하는 것은 현 시점 수사현실의 한계를 적시하고 더 효과적인 진실규명 방법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매우 정당하고 적절하다고 할 것이다. 문제는 무엇의 진실규명인가인데 진실은 (1)만이 아니라 (2), (3)을, 무엇보다도 (2)를, 규명해야 할 문제의 핵심으로 포함해야 할 것이다. 특검 요구는 다중들이 직접적으로 정보, 사실, 진실에 접근할 권리를 박탈당한 비참한 진리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확산되고 있는 다중들의 분노와 그 사회적 파장의 힘으로 '권력에 의한 진리관리의 독점'이라는 현재의 진리체제 내에서 그것에 대항하는 타협적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타협의 한계를 조금이라고 더 극복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부단한 문제제기와 압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개인들 각자가 (법과 미디어를 넘는) 진실주체가 되어 정보, 사실, 진실을 직접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고 또 이 노력들을 연결시켜 규명되어야 할 진실문제로서 수사주체에게 집단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예컨대 시민진실위원회).  

그런데 주말연휴기간에 집중된 많은 자발적인 집회와 시위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박근혜 퇴진'으로 모아나가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태의 전 부면에 궁극적 책임이 있다는 직관의 발로이리라. 이러한 움직임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만약 이 요구투쟁이 진상규명 요구와 밀접히 결합되어 진실규명을 위한 수단으로 제기되는 것이라면 적실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드러난 많은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현 정부는 결코 총체적 진실규명을 원할 수 없는 입장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진실규명이라는 지금의 핵심적 문제에 현 정부가 장애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현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낳은 총체적 비리, 부정, 탐욕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진실규명의 주체일 수 없고 그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 하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수사가 구조책임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사고책임에 수사활동을 환원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그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구조책임의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결국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문제인 한에서 박근혜 퇴진이라는 요구는 일정한 정도의 방법론적 정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특정 정권의 문제점에서 비롯되는 것만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윤중심 체제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 여러 사람들의 직관과 분석에서 두루 확인되고 있다. 이윤중심적 체제가 이윤중심적 지향, 기준, 관행, 기구, 제도, 법률, 헌법 등 다양한 이윤중심 장치들을 산출하고 그것들이 생명을 항상적인 위험 속에 노출시키며 세월호 참사를 가져왔다는 것. 이것이 방치된 상태에서 제2, 제3의 세월호 사고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라는 인식이 이번 사건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이 대중적 인식으로 이처럼 널리 확산된 사례는 아마도 지극히 드물거나 전무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세월호 참사는 반정부 투쟁 이상의 무게와 진지함을 갖고 다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생명의 안전보장을 실제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우리가 온 힘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규명, 진상규명, 진실규명이 필요한데,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연루되어 있는 '사회체제 그 자체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명령이다. 지금 필요한 정치적 행동은 생명의 참사를 가져온 이 체제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행동이어야 하고 그 진단으로부터 유효한 대안을 구성하는 행동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박근혜 퇴진 요구가 이러한 근본방향성과 결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사회적 분노를 너무 쉽게 정치적 수준에서 소진시키고 문제의 참된 소재지를 가리는 것으로 귀착될 위험성이 있다. 이윤동기에 의해 추동되는 현존하는 체제에서는, 정도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정권도 세월호 참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윤에 의해 동기부여된, 그래서 생명을 오직 생산력으로만 사유하고 이윤의 수단으로만 배치하는 이 거대한 전지구적 함선의 항해를 멈춰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권력과 결탁해 있는 진실, 권력의 수중에 있는 진실, 즉 권력-지식 체제를, 생명의 정부의 수중으로 가져와 생명-진실의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집단적 노력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박근혜 퇴진'이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 역사적 체제전환의 요구 속에서일 것이다. 슬픔에서 시작된 노랑의 물결, 분노를 머금은 노랑의 이 울먹이는 혁명이 생명-진실의 신체제를 구축하는 세계사적 과업에서 위대한 사랑의 역량을 발휘해 낼 수 있을까?(2014.5.6 작성)

'후진' 이데올로기(Malavaneco-Ideologio)


이어령, 박찬종 같은 사람들은 세월호 사건이 '한국의 후진성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는 생각을 대변한다. 이것은, 선진국 문턱에서 한국이 좌초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진정한 선진국이 되면 세월호 사건 같은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자극한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 미국에서 2005년에 어떤 일어났던가? 세월호 사건 직후 해외언론은 이 사건을 뉴올리언즈주에 불어닥쳤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에 비교했다. 참고를 위해 그 사태를 다룬 스파이크 리의 다큐멘터리 <제방이 무너졌을 때>의 소개문(http://ch.yes24.com/Article/View/13716?Scode=050_002)의 일부를 가져와 네 가지 범주로 간추려 보자([ ]속의 말은 필자가 삽입한 것). 

1. [사건에 대한 초동대처: ]누구나 예상하던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에 도달한다. 하지만 중앙 정부는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며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다. 아니, 사실 부시 행정부는 뉴올리언스의 재난에 무관심했음이 드러난다. 부시는 휴가를 즐기고 있었고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는 제물낚시 중이었으며 국무장관 콘돌로자 라이스는 페라가모에서 구두를 고르고 있었고 (사건이 터진 다음에는) 테니스를 쳤다. 부시 정권에서 의전 담당을 하다가 재난국장에 취임한 낙하산 인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으며 담당 장관인 국토안전국장은 다른 행사에 참석중이었다. 이런 중앙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홍수를 피해 간신히 도망 나온 주민들은 버스를 5, 6일씩 기다렸으며 구급 지원도 식량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땡볕 속에 노인들이나 환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2. [사건 후 조처: ]재난이 지나간 후 중앙 정부가 행한 뉴올리언스 주민들에 대한 조치는 더욱 한심하다. 미 전역의 49개주로 분산 수용된 주민들 중 많은 숫자는 분류 과정에서 뿔뿔히 흩어져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으며 간신히 고향으로 돌아온 주민들에게 제공될 트레일러는 신청 후 5, 6개월 기다리는 것은 예사에다가 지급이 되더라도 전기 연결이 제때 이루어지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뉴올리언스 시장은 주 정부와 중앙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고 주지사는 중앙 정부를 다시 공격하며 많은 주민들과 시의원 등은 (제방 건설을 담당했던) 엔지니어 부대의 문제를 지적하고 다시 엔지니어 부대의 장교의 인터뷰를 시민들의 주장과 충돌시킨다.

3. [원인 : ]결국 문제는 뉴올리언스가 미국의 위정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도시라는 것까지 이르게 된다. 미국 내의 대도시 중 유일하게 주민의 70%가 흑인인 이 도시에는 내세울 만한 기업도 없고 시 예산도 부족하기만 하다. 당연히 주민들의 소득 수준은 낮고 교육 수준은 미국 내에서 최악의 여건이다. 블루스와 재즈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남부의 이 대도시는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또는 인종적으로도 아무런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 도시인 것이다.
어이없는 사실은 많은 뉴올리언스 주민들이 대피를 위해 다른 지역에 가서 자신들의 도시가 얼마나 낙후되었는가를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제방이 무너졌을 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뉴올리언스 홍수의 근본적 원인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이 아니다. 1965년부터 건설되기 시작한 뉴올리언스를 둘러싼 제방은 40년째 미완성 상태에 있었으며 이 제방들은 5등급 허리케인이었던 카트리나의 막강한 위력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1등급 수준의 허리케인에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습지간척과 운하개발 등으로 인한 지반침하도 참사의 주요 원인이었다.]

4. [결과와 책임]: [최소 1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된] 이 사태에 대해 분노하며 ‘누군가는 감옥에 가야한다’는 격앙된 시민들의 요구와 달리 현재의 미국 정부에서 이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이며  보험회사들은 경제적 보상을 회피하기에 바쁘다.

어떤가? 카트리나 사건은 '선진' 자본주의가 된다고 해서 참사를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위험은 지구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도 발전된 나라일수록 참사의 규모가 더 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발전된 자본주의는 훨씬 더 큰 가시적 비가시적 위험을 축적한다. '선진국'이 안전하다는 생각은 1)그 나라들의 이미지 조작에 의해서,  2)적나라한 가시적 위험들의 해외수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환영이며 선진국이 되기 위해 발전에 복종하라는 명령의 형태다.  세계자본주의는 지구시간을 하나의 시간으로 압축한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양상으로 같은 문제가 폭발하고 있을 뿐이다. 이윤을 위해서든 보험금을 위해서든, 언젠가는 반드시 전복될 배에 수백명의 생명을 싣고 운항는 기업, 그러한 행위를 묵과하고 보호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포상까지 하는 국가, 구조이득을 독점하기 위해 죽음을 방조하는 독점행위를 일삼는 사유화된 국가기구는  결코 자본주의 후진성의 양상이 아니고 생명력의 착취와 수탈에 기초를 둔 자본주의의 첨단성, 그 비정함의 탈근대적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2014.5.2 작성)

다이빙벨 철수와 진실투쟁(Evakuo de Diving Bell kaj verbatalo)

5월 1일 오후 다이빙벨은 팽목항으로 철수했다. 이날 새벽, 비록 구조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2시간여에 걸친 잠수 및 수색에 성공한 이후의 철수이기 때문에 더 놀랍고 안타깝다. 지금까지 정부의 구조지체와 무능에 항의하면서, 그 실재하는 대안으로 다이빙벨을 들어왔던 실종자 가족들의 배신감과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 안타까움과 배신감, 실망감의 정서를 파고는 것이 권력과 제도언론들의 일사분란한 집중반격이다. 이들은 다이빙벨 사건이 1)알파잠수의 기업홍보를 위해 2)공식 구조일정을 방해하면서 끼어들어 3)아무 성과 없이 시간만 잡아먹음으로써 4)실종자 가족을 두 번 울린 사기사건으로 이미지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대안진실의 실재성을 입증할 물리적 사례로 부각되어온 다이빙벨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면 '늑장구조'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 그리고 정부와 그 기관들의 무능, 실책, 거짓말, 방해 등을 고발해온 시민들의 비판을 일거에 무력화시킬 수 있고 공식구조라인 밖에 실재하는 "대안은 없(었)다"(TINA)를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흔들리는 권력질서를 다시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빙벨 철수는 (그 테크놀로지 자체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공식진실(즉 권력)의 승리, 대안진실 가능성(즉 생명)의 커다란 패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패배는 지금까지의 과정으로 보건대 이종인 대표의 거짓, 사기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것은 대안진실에 대해 공식진실이 가한  억압과 폭력의  결과이다. 다이빙벨을 밀착취재한 고발뉴스에 따르면, 1일 새벽의 잠수가 보여주듯이, 기술로서의 다이빙벨은 공식전문가들의 경멸적 모함과는 달리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수색성과가 없었는가? 해경이 부표 위치를 잘못 가르쳐 주어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인양 전에는 수색불가능한 곳으로 평가되는 선미 좌현을 다이빙 벨에 맡겨 사실상 수색 실패를 유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고발뉴스의 견해다. 그렇다면도 이에 항의하지 않고 왜 철수하는가? 이종인 대표는 1)다이빙벨 잠수시점에 빠른 속도로 큰 물살을 일으키며 다가온 해경 경비정의 사례가 보여주는 바의 물리적 위협 2)이미 설치된 복잡한 유도라인으로 인해 해경의 협조가 없이는 현장접근과 수색이 어려운 점 3)해경의 협조 없이는 교대 잠수부를 구할 수 없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런데 그가 철수를 결정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보다도, 해경의 협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장권력 상황에서 구조의지를 꺾는 해경측의 자신에 대한 "싸늘한 시선"이었다.(동영상 인터뷰 참조) 결국 다이빙벨이 '실패'했다면, '기술적으로' 실패한 것이 아니라 현장 권력인 해경의 '협조'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대안기술로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수색 실패는, 다이빙벨을 실패하게 하고 현장에서 추방함으로써만 보름간에 걸친 자신의 구조활동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해경의 위협과 비협조에 의해 좌초되었다. 생명구조를 위해 큰 자비를 들여 진도로 내려온 다이빙벨을 돌려보냈고, 가족들의 강한 요구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다이빙벨의 투입을 물살이 센 사리기가 되어서야 허용했고, 잠수에 성공하자 고속의 경비정이 일으키는 물살로 수색작업을 방해한 해경에게서, 다이빙벨의 성공적 수색을 위한 실질적 협조를 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이종인 대표의 판단과 그에 따른 철수를 '사기'로 묘사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것으로, 어둠의 결탁에 기초한 갖가지 거짓말과 어처구니 없는 행동으로 이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들, 예컨대 정부기관인 해경이나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사유화된 정부기구인 한국해양구조협회와 언딘 마린을 구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생명을 위하는 길일까 이윤을 위하는 길일까?(2014.5.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