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거짓말로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4): 마녀사냥으로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려 재수사를 포기하도록 만든 자들이 재수사 포기의 책임을 윤지오에게 씌운다

과거사진상조사단과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 문제에 대해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들의 수중에는 10년 전의 진술조서들이 있고 각종의 증거자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진술조서를 읽은 사람들은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에 대해 결코 의심할 수가 없다. 2019년의 윤지오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10년 전에 했던 진술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사위원인 김영희, 조기영이 공개적으로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과 그 진술가치가 논란과는 무관하게 유지된다고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마녀사냥 결과로서 형성된) 부정적 여론을 배후로 삼아 촛불국민의 집단지성이나 여망은 물론이고 진상조사단의 조사보고와도 상치되는 심의결과를 발표하는 행동을 했다. 장자연의 타살 가능성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을 묵살하고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윤지오의 변호인단을 포함한 정의연대는 그 정치인이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특이’하게 같은 이름을 가진 홍준표라고 밝혔다)에 대한 진술도 왜곡(착오로 자진철회했다고 뭉갬)하거나 묵살했다. (1)’맥주 한 잔 마시지 않은 자연 언니의 눈이 풀려 있었다’고 본 바(경험)를 진술하면서 (2)’몰래 마약을 탄 술을 마시고 성폭행 당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진술에 대해 오직 후자인 (2)만을 들어 이중 추정이므로 진술가치가 없다고 가치절하할 뿐 경험에 대한 진술(1)은 묵살했다. (앞서 말했듯이) 유장호, 정세호의 진술, 그리고 김종승의 말이 윤지오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증언자의 진술을 묵살, 왜곡, 평가절하하면서도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달 여에 걸쳐 박훈, 김대오, 김수민, 김용호, 가로세로연구소, shoot TV, Justicewithus 및 그 독개미부대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적 여론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을 떨어뜨려야 할 현실적 필요를 가진 가해세력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통제하는 마녀사냥꾼들의 선동에 10년 전의 진술조서를 읽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 휘둘린 것의 결과였다.

서민의 글은 이 격렬한 선동공작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어보면 우리는 그것이 ‘엄청난 공부’는커녕 윤지오의 10년 전 진술조서조차 읽지 않았거나 읽었더라도 모른 체하며 윤지오에 대해 언론(그것도 ‘경향신문’)에 칼럼을 쓰는 엉터리 글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음 구절은 이 점을 또렷이 보여준다.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윤씨의 진술도 마찬가지다. 10년전에조사를받을땐이에대해전혀언급하지않아놓고선, 자신이 쓴 책 <13번째 증언>에선 리스트를 언급하며 총 40~50명이 있다고 했다가, JTBC에서는 30명이라고 슬그머니 줄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또 새빨간 거짓말이다. 윤지오는 10여년 전인 2009년 3월 15일 진술에서 자신이 본 문건의 마지막에 “지인분들과 가족분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고 말했다. 또 2009년 3월 18일 조서에서는 자신이 본 문서가 7장이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2009년 3월 15일 진술서


2009년 3월 18일 진술서


이렇게 증거를 들이밀어도 서민은 여기에 리스트에 대한 증언은 없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윤지오의 기억 속에서 7장 속에는 리스트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리스트에 대한 별도의 진술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윤지오가 감춘 것이 아니다. 이 날까지의 심문에서 어떤 수사요원도 윤지오에게 그 7장의 문서의 구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우리가 구분하는 ‘사례 증언조서’와 ‘리스트 증언조사’를 구분하여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 1년 뒤인 2010년 6월 25일 증인신문조서에서 판사가 윤지오에게 비로소 묻는다. “증인은 문서의 내용에 대해서 기억이 나는가요?” 아래 인용에 그 질문에 대한 윤지오의 대답이 들어 있다.

2010년 6월 25일 조서


이렇게 자료들이, 윤지오가 10년 전부터 문건이 7장임과 그 속에 “성함만 기재되어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고 진술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팩트’를 기초로 ’엄청난 공부’에 ‘통찰력’을 결합시킨 놀라운 인물로 추켜세워진 서민은 신문에 쓴 자신 명의의 칼럼에서 “10년전에조사를받을땐이에대해전혀언급하지않아놓고”라는 거짓말을 어떤 주저도 없이 늘어놓는다. 이런 거짓말이 윤지오의 2019년 증언의 신빙성을 얼마나 크게 떨어뜨렸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런 거짓말 뒤에 서민은 “자신이 쓴 책 <13번째 증언>에선 리스트를 언급하며 총 40~50명이 있다고 했다가, JTBC에서는 30명이라고 슬그머니 줄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라고 쓴다. 

악의적이다. 윤지오는 사례 증언조서 4장과 리스트 증언조서 3장이 있었다는 진술을 10년 동안 일관되게 해 오고 있다. 리스트 분량에 대해서는 1장, 1장 반, 4~50명, 30명 등의 방식으로 편차가 있는 진술을 해 오고 있다. 그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의 명수에 편차가 있다 하더라도 꽤 많은, 적어도 수십명은 되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여 있었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관되다. 증언에서 진술 일관성이란 디테일의 일관성보다는 큰 흐름의 일관성을 의미한다. 윤지오의 진술은 큰 흐름에서 완전히 일관되다. 그것은 세부기억에서의 편차보다도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는 일관성이다. 

이에 반해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김대오의 진술은 완전히 비(非)일관되다. 10년전의 진술에서는 “문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최근에는 “문건을 본 적이 있다”고 완전히 상반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흐름의 일관성’과는 정면 배치된다. 물론 김대오는 문건의 장수도 계속 카멜레온처럼 다르게 말하고 있다. ‘12장이었다’, ‘초안 14장과 완성본 8장’이었다, ‘하여튼 4장+알파다’, ‘정확한 장수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나는 감별사 역할만 맡겠다’ 등등. 나는 김대오가 이후에 ‘장자연이 남긴 문건은 실은 일천 이백장이었다’고 말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셈이다. 서민에게 묻고 싶다. 이런 김대오의 증언은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지어내 윤지오의 일관된 진술을 일관되지 않은 것처럼 만드냐고. 이런 수법들은 재수사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가해자들의 욕망에 동조하면서 그들과 그 체제를 보호하는 변론-테크놀로지에 다름 없지 않느냐고. 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려 재조사를 포기하도록 만들고서 거꾸로 그 책임을 윤지오에게 떠넘기고 있는가라고.

살인 혐의 수사는 왜 고려조차 되지 않았는가?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3): 재수사 포기 책임을 윤지오에게 돌리는 ‘적반하장’

그래도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성폭행 관련해서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다면 재수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의 보존 

❍ 성폭행 피해 의혹에 관해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다만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제기된 의혹 상 범죄혐의가 중대하며,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성폭행 의혹과 관련하여 최대한 상정 가능한 공소시효 완성일인 2024. 6. 29.까지 이 사건 기록 및 조사단 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함

물론 그 조치는 박근혜의 전매특허인 유체이탈 화법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전염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화법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검찰이야말로 재수사를 통해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를 발견할 주체이고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므로 강제수사권을 동원하여 그 스스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실행했어야 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문제를 다룬다.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식이다. 누가 증거를 갖다주면 재수사하되 스스로 증거를 확보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한 것이다. 가해자들이 빙긋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2024. 6. 29.까지 이 사건 기록 및 조사단 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했지만, 지금까지 핵심자료들을 어딘가로 빼돌려도 아무런 처벌이 없었듯이 이 기록들이라고 해서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서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성폭행과는 다른 두 번째 문제이다. 그것은 공소시효 15년의 성폭행이 아니라 공소시효 25년의 살인에 관한 것이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이 주검으로 발견되고 이틀 뒤인 3월 9일 경찰은 장자연의 죽음을 우울증에 의한 단순변사로 발표했고 언론은 이것을 받아썼다. 3월 10일 문건의 존재가 보도되고 3월 13일 문건의 내용 일부(사례 증언조서)가 방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것을 유서로 발표하고 언론은 이것을 받아썼다. 이런 여론형성 메커니즘을 통해 우울증-유서-자살이라는 삼각형이 만들어져 장자연의 죽음을 설명하는 지배적 프레임으로 유통되었다.

그런데 시신은 부검되지 않았고 자살을 입증할 어떤 증거도 없다. 게다가 그 문건이 유서가 아님도 이제 명료하게 밝혀졌다. 지금에도 과연 장자연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없다. 게다가 장자연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너무나 많은 폭력들(폭언, 폭행은 물론이고 원치 않는 술접대가 강요되었고 심지어 성폭행에 대한 진술까지 있다)이 그의 삶 위에 행사되었던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게다가 그 폭력의 행사 주체는 소속사 사장만이 아니다. 장자연에게 “니가 그렇게 비싸”?라고 문자를 보낸 것으로 진술되어(방정오, http://bit.ly/2Z6e1iL) 장자연의 죽음에 관련해 가장 구체적인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선일보는 스스로를 “정권을 창출할 수도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는 권력으로 자임했다. 정권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라면 개개의 생명을 창출하고 생명을 퇴출시키는 일인들 왜 못하겠는가? 

이 외에도 장자연 위에 이런 권력자들은 여럿 있었다. 당시 대검차장검사이고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 권재진이라거나 ‘김밥값’으로 수표 1000만원을 장자연 계좌로 입금한 하이트 진로 회장 박문덕, 그리고 35차례나 연락과 만남을 가졌던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같은 기업가들이 그들이다. 게다가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를 태우는 현장과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 등에는 ‘국정원 직원’이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출몰한다. 장자연은 이 ‘힘센 사람들’의 ‘큰 입’ 앞에서 억눌린 삶을 살았다. 요컨대 그의 삶은 폭력과 권력에 포위되어 있었다.

3월 7일 장자연이 사망한 날, 장자연은 김지훈 부부와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장자연은 사망하기 한 시간 전에 김지훈에게 ‘집에서 쉬겠다. 다음에 같이 가자. 피곤해서 못가겠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그것이 마지막 문자였다. 3월 7일은 장자연이 “다른 소속사에 가기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 있었고 원소속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주진우 기자는 “3월 7일 오후에 장자연 시신이 발견됐다. 그런데 그날 저녁 경찰에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며 부검은 없다’고 발표했다”며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이 부검을 막아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으나 논란이 되는 죽음은 보통 부검을 하게 돼 있다. 초동수사는 아예 없었고 유가족이 원하지 않는 한 부검은 없다고 발표했다”(http://bit.ly/2JPEoWt)고 말한다. 우울증 외에 자살의 동기가 발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검하지 않을 의사를 경찰이 나서서 발표하고 자살 판단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점, 그리고 경찰 자신도 유서라고 보지 않은 문건을 유서처럼 처리한 점 등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 장자연의 마지막 문자를 받았고 장자연 사후 그 죽음의 진실을 캐던 김지훈마저도 정다빈, 유니, 최진실에 이어 2013년 12월 12일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 때문에 윤지오는 ‘왜 나의 언지 장자연이 죽었는가?’를 밝혀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이 아는 바의 그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증언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장자연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과거사조사위뿐만 아니라 과거사진상조사단조차도 외면했다. 즉 문제로 다루지조차 않았다. 실체가 있는 리스트 증언조서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처럼 만들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윤지오의 증언은 묻혔다. 사건과 그에 대한 증언은 ‘이번에는 혹시’라는 윤지오의 기대와는 달리, 십 수차례 이어진 증언에 대한 이전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역시 ’흐지부지’되고 있다. 기록은 살인 혐의 공소시효인 2035년까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기한, 즉 2024년까지만 보존하도록 권고되었다. 증언에 대한 묵살, 이것이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서민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이것조차 윤지오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성폭행 재수사는 왜 포기되었는가?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2): 재수사 포기 책임을 윤지오에게 돌리는 ‘적반하장’

‘실체’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를 미확인의 소문으로 만들면서 서민이 자신의 글 ‘기자와 기레기’에서 주장하고 싶어한 것은 ‘윤지오 때문에 재수사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이런 수법으로 그는 일차적으로 자신이 마치 재수사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이것은 ‘윤지오 죽이기'(여기에는 4월 30일 서민의 글 ‘충격 예언, 제2의 윤지오가 나온다‘도 한 몫을 한다.)가 윤지오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려 가해자를 보호하는 전술이라는 비판을 뭉개면서 가해자를 보호한 것은 오히려 윤지오라는 책임 넘기기 수법이다. 윤지오에 대한 인신공격이 2차 가해였다면 서민의 이 주장은 정확히 3차 가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서민의 이런 주장을 떠받치고 있는 받침돌들은 지금까지 박훈, 김대오, 김수민, 그리고 이른바 ‘기레기’들에 의해 유포되어 여론화되고 있는 무수한 거짓말들이고 서민이 이것들을 한 꾸러미의 거짓말종합세트로 엮어짜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 방식으로 다루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재수사 길이 왜 막히게 되었는가에 관한 나의 생각을 먼저 제시하고 그 뒤에 서민의 글로 다시 돌아오기로 하겠다.

2009년 발생한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공소시효가 사라진 사건은 수사할 수 없으므로 재수사의 가능성은 두 가지 점에서 주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공소시효가 15년인 성폭행(특수강간, 강간치상)이고 또 하나는 공소시효가 25년인 살인이다. 

먼저 성폭행 문제를 다루어 보자. 이 문제와 관련해 윤지오는 과거사진상조사단, 고발뉴스, 다스뵈이다 등에서 수행한 증언에서 장자연이 성폭행 당했을 가능성에 대해 진술했다. 그리고 이것은 진상조사단의 비공개심문에서, 유장호가, 장자연이 성폭행당했다는 구절을 문건에 썼지만 자신이 지우게 했다고 말한 것(이후 번복)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드라마 감독 정세호도 2011년 8월 1일자 사실확인서에서 이미숙이 전화로 “장자연이 쓴 A4 용지에 ‘술에 약을 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고 2019년 진상조사단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진술했다. 윤지오 외에 유장호, 장세호 등 적어도 세 사람이 성폭행에 대한 기록, 전언, 경험적 추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에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발표문 중 해당 구절을 인용해 보자.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의혹 

❍ 조사단의 조사과정에서 장자연이 일시, 장소를 알 수 없는 술접대 자리에서 누군가가 몰래 약을 탄 맥주를 반 컵가량 마신 후 마치 마약에 취하거나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음 

– 장자연이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 자료는, 

① 장자연이 술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가 된 것을 목격했다는 윤○○의 조사단 진술 

②‘장자연이 처음에 작성한 문서에 심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내가 지우라고 했다’는 유○○의 조사단 면담 전 진술. 그러나 유○○는 그 후 조사단과의 면담에서는 이러한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장자연이 하소연하듯이 처음에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기는 하였는데, 장자연에게 되묻지도 않았고, 장자연이‘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고 진술하였음 

③ 드라마 감독 정○○가 작성한 2011. 8. 1.자 사실확인서(김종승의 배우 이△△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김종승 측 증거로 제출된 것)에 배우 이△△이 전화로 “장자연이 쓴 A4 용지에 ‘술에 약을 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기재된 부분 및 이△△으로부터“물에 약을 탔다고 들었다”는 정○○의 조사단 진술이 있음

여기까지가 진상조사단의 보고서 중에서 성폭행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는 내용에 대한 서술이다. 역시 그대로 인용해 보자.

-그러나 배우 이△△은 정○○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고, 매니저 등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여부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하였으며, 유족은 문건에 성폭행 피해에 관하여 적힌 것이 없었다고 진술하였음 

❍ 유○○의 최초 진술 및 정○○, 윤○○의 진술을 종합하면, 장자연이 성폭행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객관적 혐의가 확인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음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사라는 것이 바로 “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일시, 장소, 방법 등을” 밝혀내고 그것을 국민과 법원에게 알려주는 행위이지 않은가? 수사를 개시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수사를 할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체포하여 재판하고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처럼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 수사 개시를 회피하는 것 외에, 그 회피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성폭행 혐의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법도 사용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디스패치>(https://www.dispatch.co.kr/2012097)에 의하면 정세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장자연의 문건 내용을 이야기하며 김종승을 만나 ‘야단쳐 달라’고 말한 사람은 이미숙이다. 그는 장자연 ‘자살원조’ 혹은 ‘자살방조’ 혐의가 있는 것으로 분당경찰서에 의해 수사보고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분당경찰서는 2009년에 “연예인 장자연의 … 자살원인에 연예인 이미숙, 송선미, 서세원이 관련되었다는 정황이 있어 다음과 같이 수사보고 합니다”라고 쓴 바 있다(<디스패치> 같은 호). 그리고 유장호는 당시 경제력(“신용불량”)이나 경험(“연예기획계통에 경험이 일천한 자”)에 비추어 호야의 실제 사장이 아니라 이미숙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장자연은 이들의 요구에 의해 사례 증언조서(문건)와 리스트 증언조서(리스트)를 작성하게 되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정황상 그 진술가치가 훨씬 더 높은 정세호, 윤지오의 진술이나 유장호의 비공개면담 진술이 아니라 일선 수사기관에 의해 자살원조 또는 방조의 혐의를 받았던, 즉 그 진술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미숙의 부인(否認) 혹은 그의 대리인 유장호의 번복을 근거로 수사 개시를 포기한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심의결과에서는 정세호의 진술내용이 윤지오의 경험적 추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게다가 장자연의 소속사 더콘텐츠의 대표이자 마약과 성추행으로 수배되었던 김종승이 장자연의 지인언니에게 “내가 니 동생(장자연)하고 약했다”(장자연의 지인 이00의 진술조서)고 말한 대목은 근거로 인용조차 되지 않는다. 수사 개시를 포기하는 이유를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미숙이 정세호에게 한 말을 부인하고 유장호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했다는 데에서 찾는다. 이들이야말로 재수사가 이루어진다면 가장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러므로 재수사를 포기시키는데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재수사 개시로 수사를 해야 할 사람들의 말을 근거로 수사 개시를 회피한 것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과거사조사위원회(검찰)가 이미숙(과 그 배후)을 두려워했거나 아니면 검찰 자신이 재수사를 두려워했다는 것 말고 다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

이처럼 공소시효 15년의 성폭행 관련 재수사가 포기된 이유는 윤지오에게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윤지오, 정세호, 유장호(비공개면담진술)가 재수사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했지만, 이미숙이 정세호에게 한 말을 부인하고 유장호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함으로써, 그리고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단의 다수의견을 무시하고 검찰측 소수의견을 심의근거로 인용함으로써 재수사 권고는 폭력적으로 포기되었다.

그런데 서민은 이런 사실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들은 성폭행 의혹 부분을 수사에 못 넘기게 하려고 정말 총력전을 했다. … 조직적 차원에서 반대가 있지 않았나 느꼈다.”는 총괄단장 김영희의 말을 인용한 후 “어이가 없다”고 비난한다.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마당에 무슨 외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대통령 말을 듣는 조직이라면 지금 정권에서 청와대가 ‘공수처가 필요하니 설치해 달라’고 왜 국회에 신신당부를 하고 있겠는가? 어처구니 없는 현실감각이다. 게다가 재심 변호사 박준영이 김영희의 윤지오 옹호 여론몰이 때문에 “항의하며 조사단”을 탈퇴했다는 거짓말도 거침없이 한다. 박준영은 형제복지원과 김학의 사건의 진상조사단 위원이었지 장자연 사건의 위원이 아니었다. 서민은 윤지오에 대한 3차가해(책임전가)를 위해 현실을 외면하면서 거짓말에 거짓말을 자꾸 이어 붙인다. 엄청난 공부, 팩트, 통찰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박훈의 그 변론 추임새가 자꾸 낯뜨거워진다. 

‘과거사 조사’를 둘러싼 두 가지 시간성의 투쟁에 대해

과거사(過去事)는 어떤 사건이 이미 “지나간 것”임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것은 그 사건이 지금여기의 사건은 아니라는 뜻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과거사란 말은 어떤 사건을 현실로부터 분리해 내어서 과거로 돌리는 역할을 맡는다. 과거화(過去化), 이것이 과거사라는 말의 사회적 반복이 가져오는 실제적 효과이다. 

그렇다면 과거사에 대한 ‘조사’는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두 가지 뜻이 상충한다. 하나는 과거로 내몰린 사건을 현재로 가져온다는 뜻이다. 즉 현재화, 현실화의 뜻이 있다. 또 하나는 과거사를 두루 살펴 정리한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불편한 점이 있는 과거사를 영구히 안전하게 과거화한다는 뜻이다. 

조금 깊이 들여다 보면 이것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혹은 삶을 체험하는 두 가지 형식이기도 하다.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서 우리는 이 두 시간성, 두 가지 시간 이해, 시간을 경험하는 두 가지 형식 사이의 갈등을 본다.

하나는 장자연 사건을 현재의 시간 속으로 가져와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당면한 것들과 연결시킴으로써 현실화하려는 흐름이다. 이것은 죽은 장자연에게 사회적 생명을 불어넣어 힘 없는 신인배우, 약한 처지의 인지노동자로서 그가 느꼈던 고통과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비원(悲願)을 우리 모두의 현재적 고통, 비원으로 전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표현된다. 이것은, 모든 왜곡을 걷고 단언하자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장자연 사건을 현재 속으로 불러온 촛불미투 운동과 그 사건을 증언해온 윤지오에 의해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장자연 사건을 더 이상 사회적으로 논란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하고 고요한 과거사로 깊이 매장하려는 흐름이다. 이것은 산 사람들로 하여금 ’장자연이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가?’ 사무치는 물음을 되묻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면서 구천(九泉)을 떠돌고 있는 장자연을, 재조사를 계기로,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타격을 통해 확실히 죽게 만들고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에 안치(安置)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표현된다. 이것은, 비록 재조사의 개시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재조사가 재수사로는 결코 발전하지 않게 하고 싶고 또 그 재조사를 이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의문이나 문제제기를 못하도록 막는 방패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대표된다.

장례식이 죽은 자를 생물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확실히 죽게 만들어 죽은 자가 차지했던 자리와 재산에 대한 산 자들 사이의 재분배를 시작할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의식(儀式)이듯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그러한 내용을 갖는 정치적 사법적 장례식처럼 되고 말 것인가? 그래서 기왕의 가해자들과 가해의지를 가진 자들이 두 다리를 뻗고 잠들어 원기를 회복한 후 다시 가해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요식절차로 되고 말 것인가? 요컨대 ‘영구 과거화’를 위한 과거사 조사로 귀착되고 말 것인가?

2019년 5월 20일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재수사는 없다”는 요지의 발표를 국민들 앞에 내놓았다.(http://www.newbc.kr/news/articleView.html?idxno=5379) ‘활동시한을 연장하며 무려 13개월에 걸쳐 84명을 조사한 후에 이루어진’ 재조사인 만큼 그 포괄성과 엄정함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할 것이다!! 이 발표에 장단을 맞추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남아있는 증거와 오염되지 않은 증언 속에서 가장 합당한 조사결과라 생각합니다.”(5월 20일 오후 4:22 페북)라고 말하는 반윤지오 트리오의 일원인 김대오가 그이다. 

하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발표는, “장자연 사건이 그 실제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이 이제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로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싶다”는 과거사조사위원회의 곤혹스런 정치적 욕망과 속내를 그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난삽하게 꼬여있고 인위적인 것이었다. 그 발표는 주요 메시지만이 아니라 세부에서도 다중 집단지성의 ‘조사’와 동떨어져 있었으며, 진상조사단의 ‘조사’와도 괴리되어 있었고, 심지어 하나의 발표문의 본론인 <의혹사항에 대한 조사결과>와 그 결론인 <심의결과> 사이에도 심한 어긋남이 있었다.    

이런 치명적인 결함들 때문에 조사를 통한 영구 과거화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다. 이미 총괄단장 김영희가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발표가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충실히 반영하지 않고 검찰측 조사원의 소수의견을 중심으로 심의결과를 내놓았다는 이견을 제시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국정조사와 특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어떤 네티즌(lamer297)은 이렇게 말한다.

“검찰 과거사위 결론은 일주일에 걸쳐 진상보고단의 결론을 축소, 삭제 시킨 결론이죠. 오래전부터 검찰은 진상조사단의 활동를 방해하고 있었으니, 검찰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장자연 사건에 관한 범법 행위를 감추려 [할 것이] 확실합니다. 김영희 변호사께서 진상조사단의 보고서는 250장이라고 하셨는 데, 이 250장의 보고서 내용이 과거사위 결론보다 훨씬 신빙성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진상조사단 보고서는 13개월 동안 실제로 조사를 한 조사단원들이 만들었기 때문이죠. 어디서 진상조사단의 250장의보고서를 볼수있을까요? (…) 한국 검찰이 조선일보의 외압을 인정했는데 왜 조선일보는 폐간시키지 않나요? 언론은 공정성이 생명인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검찰에 외압을 가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른 언론기관의 보도를 어떻게 믿습니까?! 한국에도 언론 기관의 기본자격 규정에 관한 법이 있을것이고, 조선일보의 검찰 외압과 사실 왜곡은 언론기관 자격 규정을 위반한 것일 것입니다. 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언론 기관은 당장 폐간되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은 지금 뭐하고 있읍니까? 정부와 국회가 할일을 안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나서서 잘못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한 예로, 만약 뉴욕 타임즈가 뉴욕 주 검찰이나 연방정부 검찰을 위협했다고 검찰이 인정했다고 하면 무슨일이 일어 날까요? 뉴욕타임즈는 그 사실이 밝혀진 순간 박살이 났을것입니다. 물론 관련자들이 줄줄이 체포되어 재판에 당장 넘겨졌을 것이구요. 또한 이런 사실은 대서특필로 전 세계에 번개같은 속도로 보도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에 관해서는 왜 한국 사람들 모두가 장님이고 벙어리가 되어있읍니까????”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검찰이 국민의 뜻을 대의할 의사가 없다는 것, 검찰은 국민을 주인으로 대접하고 싶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식사접대, 술접대, 성접대, 돈접대 등 (장자연에게 가해자들이 강요했던) 각종 접대를 받고 싶다는 것, 요컨대 검찰은 국민 대의기관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지배기관이라는 것을 발표문을 통해 발표했다. 이처럼 정부와 국회와 같은 대의권력이 주권권력인 국민으로부터 이반(離反)될 때, “국민들이 나서서 잘못을 바로 잡”는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는가? 대한민국이 아직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과거사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상황에서 그 길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실을 건져내기 위해 나섰던 길을 따라 2016년 국민들이 거리와 광장으로 나섬으로써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던 촛불혁명의 길이라는 것은 이제 먼 이상이 아니라 경험적 상식이다. 여기서 현재는 영원으로서의 과거가 미래의 형태로 도래하는 첨점이 된다. 

김대오는 “도대체 누가 죽은 자의 원혼을 푸는 권능을 우리에게 주었단 말인가?”(5월 26일 오후 11:11)라며 죽은 자를 죽은 그대로 매장해 두라고 강변한다. 장자연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고 장자연의 비원(悲願)을 지금 자신의 비원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장자연의 생명을 자신의 삶 속에 되살리려는 윤지오적 집합행동을 그는 죽은 자를 또 죽이는 부관참시라고 잘못 부른다. 

이를 위해 그는 “장자연의 원혼”, “장자연의 비원”을 “장자연의 죄”(5월 26일 오후 11:03)로 바꿔치기하는 얕은 술수를 부리는데, 지금까지 김대오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장자연의 죄”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사람들이 묻고 있는 것이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을 가져온 “가해자의 죄”라는 것조차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장자연의 죽음을 장자연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부관참시의 순간으로, 즉 원혼과 명예조차 빼앗아 영구매장, 영구과거화하려는 것은 정확히 기존의 가해자들과 잠재적 가해자들, 그리고 수많은 김대오들이다. 그런데도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가해자와 성폭력 체제에 대한 수사를 미진(未盡)하게 남겨두고 있는 것은,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혁명이 너무나 미진한 탓 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지 않은가?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야 한다.

공통장 감수성의 징후와 예술인간-예술체제의 동선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의 증언투쟁을 중심으로

맑스코뮤날레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발표개요 : 2019년 5월 25일 오후 1시~3시, 서강대 정하상관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정치적 배경

2002년 월드컵 서포터즈(응원부대) 레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권력장을 ‘대~한민국’이라는 국민 공통장으로 재구성하려는 다중의 욕망을 표현했다. 2008년 촛불봉기는 공통장으로서의 대~한민국이 헌법1조에 어렴풋이나마 이미 규정되어 있는 형상임음을 발견한다. ‘대한민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 헌법규정은 ‘주권이 자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자본공화국’의 현실과 상충하는 상태에 있었다. 수 개월간 메트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촛불봉기는 국가가 자본의 이익(자유무역)을 위해 광우병이라는 반생명적 질병을 도입하는 것에 무심하다는 사실을 고발하면서 이 상충과 모순을 축소하고 ‘공통장 대~한민국’을 회복하려는 투쟁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현실의 대한민국의 행정, 입법, 사법, 언론 등의 권력부(府)들이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수장시키는 기관이며 이것들이 이윤중독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기둥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때 다중들의 공통장 감수성은 미안함, 즉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로 나타났다. 그것은 자신들도 그 체제에 한 발이 묶여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감의 정동이었다. 2016년에 이르러 2년간의 세월호 진실규명 투쟁에 의해 정부가 국민다중이 아니라 대자본에 의해 섭정되고 있음을 발견한 촛불국민들은 생명 공통장을 자본에 갖다 바치는 박근혜 대의정부를 퇴진시키고 대~한민국을 다중의 촛불공통장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그 최초의 성과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촛불 섭정을 통해 달성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파면이고 그 두번째 성과는 차기정부가 촛불정부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촛불정부라고 말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2018년, “내가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법조계, 정치권,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터져나온 미투운동은 사회 및 생활 곳곳에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성폭력 체제를 가시화했다. 그것은 이른바 ‘촛불정부’가 남북관계, 한미관계, 적폐청산, 권력기관 혁신, 소득분배 등 몇몇 영역에서 거둔 일정한 개혁성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폭로이고 도전이었다. 촛불혁명 이후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이 대중적 폭로와 거부는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대한 전면적 여성 대중봉기의 형태로 나타났다. 미투(me-too)는 ‘미(me)’라는 특이점의 성폭력 체험과 그에 수반되는 아픔을 공통의 것으로 만들어 반-성폭력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투쟁이었다. 이것은 여성에게 보편적인 체험들을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특수한 수치(羞恥) 체험으로 만들어 온 권력장의 개별화 및 분할지배 테크놀로지에 대한 집단적 거부와 연합을 표현했다.  위드유(“당신과 함께”) 운동은 이 미투봉기 공통장에 대한 연대 감수성의 표현방식이었다.

미투위드유 봉기가 다중의 섭정정치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2018년 2월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적폐로 규정하고 국가기구로 하여금 그것을 청산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이 섭정운동의 본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내건 적폐청산의 틀 속에서 미투위드유 운동으로부터 제기된 장자연 사건 재조사 국민청원을 받아들여 2018년 4월 2일 장자연 사건을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사전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5월 28일 검찰에 이 사건의 재조사를 권고했다. 이것은 미투위드유를 통해 구축된 반성폭력 공통장이 권력장의 성폭력적 구조를 개혁하도록 압박하는 섭정 사례이다.

윤지오의 증언투쟁

윤지오는 장자연과 함께 연예기획사 더콘텐츠에 소속되어 일했던 계약직 연예노동자였다. 그의 꿈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꿈과 달리 계약기간 중 그의 노동력은 다중을 위한 연기가 아니라 권력자들을 위한 성적 서비스노동(식사 및 술 접대)으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더콘텐츠와 체결한 계약은 그러한 노동을, 연예활동 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이미지만 실추되고 영영 배우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그는 기획사 대표에게 다른 소속사에서 연예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계약 중도해지에 대한 반성문 및 600만원의 합의금을 지불한 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의 사망과 장례식 후 장자연이 남긴 문구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윤지오는 “나의 언니 장자연이 왜 죽어야 했나?”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들의 난망(難忘)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감수성의 한 걸음 진전된 발현이었다. 그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유장호와의 통화들을 녹취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한편 봉은사에서 본 문건 및 리스트의 사본과 원본에 대해 진술했다. 이후 그의 삶은 윤지오로서가 아니라 장자연의 동료배우로, 그리고 장자연 문건/리스트에 대한 증언자로서 규정되었다. 여러 차례의 경찰, 검찰, 법정 증언에도 불구하고 장자연과 자신이 겪었던 부당한 대우(노예계약)에 대해서는 인정되지 않았고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힘센 자들’인 방사장 일가는 무혐의처분되고 ‘리스트’는 수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처벌은 겨우 기획사 대표들인 김종승, 유장호를 가볍게 처벌하는 것에 머물렀다. 이것이 그에게는, 언론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흐지부지 덮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기관들이라는 것을 경험한 배신과 각성의 시간이었다.

9년 후인 2018년 한국에서 일어난 미투 봉기와 위드유 운동의 물결은 그에게 성폭력 체제와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제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주었다. 이 기대 때문에 그는 2018년 여름 PD수첩 <故 장자연>의 인터뷰에 응했고 과거사 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증언자 요청을 계기로 마침내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증인으로 나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윤지오는 권력이 장자연의 죽음에 대해 지난 10년간 구축해온 지배적 이미지(‘우울증-유서-자살’)에 도전하는 특이점으로, 반성폭력 공통장의 실제적 첨점으로 부상했다. 그는 한국으로 와서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희천의 성추행 현장에 대해 증언했다. 윤지오의 증언을 근거로 조희천은 기소되었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이 실제적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다. 이것은 2019년, 그 존재에 대해서는 유장호, 장자연 오빠, 윤지오가 공히 진술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았던 ‘장자연 리스트’의 일부 내용을 증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권력자들의 성폭력 행위 가능성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폭력 체제 권력장과 가해자들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 반발은 아마도 재계,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 등의 저 ‘힘센 사람들’(장자연), ‘법 위의 사람들’(윤지오)로부터, 그리고 그 체제와 인물에 의존하고 있는 익명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것이었다. 이것은 증언자가 아닌 사람들은 경험하기도 실감하기도 힘든 실제적 압력이었다.

윤지오는 이것을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택했다. 지금까지 그는 수사기관 진술증언과 언론 인터뷰에서 가명과 모자이크 처리된 가면을 사용했지만, 이제 그는 가림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 대신 실명과 실면을 공개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호장치를 필요로 했다. 첫째로 그는 생존방송(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대중의 시선에 노출시켜 그 시선이 자신의 신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한편 다수의 사람들과의 집단적 이동 및 회견을 통해 신체를 집합화함으로써 물리적 백래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둘째로 그는 국가에 대해 자신의 개인 행동 시간에 대한 경호를 요청하고 이를 제도화할 수단으로 증인보호법 제정을 국민청원했다. 이것은 진실규명을 위한 핵심장치로서 진실증언자에 대한 국가보호를 확고히 하려는 섭정노력의 표현이었다. 또 그가 “5대 강력범죄에 속하지 않는 범죄의 증언자, 목격자, 제2의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24시간 경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조직하고 후원계좌를 개설한 것도 반권력 공통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이 두려움 없이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국가 지원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이것은 체험한 사람만이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필요였고 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실천이었다.

그는 증언의 범위와 대상도 넓혔다. 지금까지는 주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의 진술증언의 형식 속에서 수사관, 법관, 기자가 그 증언의 대상이었지만 그들이 진실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행위자들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JTBC, 다스뵈이다, 고발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한 실시간 인터뷰 증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중들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좀더 직접적 앎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도 다중들에게 이 사건에 관해 직접 증언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19년 3월 7일 장자연 10주기를 맞아 <13번째 증언>을 출판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증언에 확고부동한 물질적 실체를 부여했고 그 물질성을 통해 다양한 유언비어들을 잠재울 수 있는 실효적 장치로 기능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경찰, 검찰, 법관, 진상조사단 등 엘리뜨의 수중에서 검토되고 자신들의 계급적 신분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인용되어온 그 증언들을 다중이 직접 읽고 검토하면서 아래로부터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다중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것들이 윤지오가 권력장 가해자들에 맞서 실명, 실면의 증언을 하기 위해 ‘영리하게’(smartly) 선택한 물질적이고 실천적인 장치들이었다.

성장하는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기 위한 백래쉬의 방향과 양상들

진실 공통장을 확대하고 아래로부터 다중의 참여를 불러내기 위한 윤지오의 이러한 ‘영리한’ 시도가 반발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권력장과 공통장의 적대라는 우리 사회의 배치구조를 고려할 때, 그리고 다중지성 공통장의 특이점들(2008 촛불의 미네르바, 2014 세월호의 홍가혜, 2016 촛불의 혜경궁김씨)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장의 백래쉬 공세는 윤지오의 증언 자체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많은 사실들이 그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던 권력형 성범죄는 장자연의 죽음이 어떤 구조 속에서 전개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짐작케 하는 살아 있는 물증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백래쉬는 증언보다는 윤지오라는 증언자/메신저를 겨냥해서 주로 이루어졌다. 증언자를 관종, 패륜아,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만드는 여론몰이가 그것이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공세는 한국 사회 가부장제의 대리인격체인 ‘아버지’로부터 가해진 폭력이다. 이 폭력은 <13번째 증언> 출판 직후인 3월 8일에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딸이 장자연 사건에 증언하는 것에 반대했고 성과도 없이 끝날 그 증언이 어리석은 것임을 가르쳐주고자 했다. 이것은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가내수행자인 가부장이, 자신의 딸이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면서 권력자들에게 성적 서비스 노동을 수행한 것을 공개리에 대중 앞에 발설할 때 그 증언들이 지금까지 늘 진실이 흐지부지되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역사적 직관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그 숨은 이력의 공개증언을 가문의 수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사(私事)화하고 특수화하는 관점에서 나올 수 있는 통념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양식이다. 가부장의 폭력은 보통 가족 구성원을 자신의 재산으로 또 노예(실제로 가족의 영어표현인 family의 어원 famulus는 ‘하인’, ‘노예’라는 뜻이다)로 간주하고 그 구성원의 행위가 자신의 뜻과 위배될 때 가부장이 행사하는 처벌형식이다. 가부장은 가문의 보존과 안녕(安寧)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무릅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뜻에 거스르면 처벌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인데, 국가는 가정에서 가부장(혹은 그 대리인들)의 이 사적 처벌 행동에 최대한 덜 관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돕고 그것과 동맹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제 가족을 자신의 세포기관으로 포섭한다.

두번째 공세는 권력자들과 깊게 결부된 미디어들로부터 가해져왔다. 예컨대 윤지오의 증언이 사회적 설득력을 강하게 얻어서 국회에서 윤지오가 여야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날(4월 7일) 뉴시스는 이후 지속될 반윤지오 공세의 밑그림과 가이드라인(“‘증인’ 윤지오와 장자연 사건”)을 권력장 행위자들에게 제공했다. 그것은 다음 다섯 가지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1)윤지오는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 2)윤지오는 고비용의 과도한 경찰보호를 받으며 생활중이다 3)윤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장자연을 이용하여 팔로워 76만명이 넘는 SNS 스타가 됐다 4)윤지오는 장자연을 이용하여 후원계좌를 열어 돈을 벌고 있다 5)윤지오는 거짓 증언을 했으며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이것들은, “윤지오가 친하지도 않았던 장자연에 대한 거짓 증언을 이용하여 유명세와 돈을 버는 사기행각을 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으로 윤지오를 ‘제2의 왕진진(전준주)’으로 만들어 추락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세번째 공세는 <13번째 증언>의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린(4월 14일) 직후에 박훈-김대오-김수민 반윤지오 트리오로부터 가해져왔다. 이들은 변호사, 기자, 작가라는 전문가 지위를 윤지오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이용했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보면 이미 뉴시스에 의해 생산된 반윤지오 가이드라인을 자신들의 입지에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었다. 박훈은 2010년 유가족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예로 들며 윤지오가 가해자의 편이지 장자연과 그 유가족의 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대오는 장자연 문건 ‘원본’에는 ‘리스트’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수민은 공적으로 알려진 윤지오는 자신이 사적으로 알고 있는 윤지오와는 다른 위선적 윤지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들의 결합체는 윤지오를 관종, 위선자,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실제로는 가해자 편이면서 장자연을 위하는 것처럼 연극하여 사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번째 공세는 가족, 미디어, 전문가로부터 가해진 앞의 세 유형의 공세를 유튜브, SNS를 통해 다른 형태로 무한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언어폭력과 결합시켜 윤지오의 인스타그램과 라이브방송에 퍼붓는 우/극우 세력들의 연합적이고 집중적인 디지털 테러공세로 나타났다. 이것은 justicewithus와 같은 디지털저격수, 무수한 댓글로 공격하는 디지털소총부대, 심지어 윤지오 지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은밀히 공격을 퍼붓는 디지털 편의대 등을 포함하는 다방면의 조직적 공세였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윤지오를 여자-왕진진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 떼몰이 공세에 사용되는 언어들이 곰곰이 살펴보면 어떤 근거도 없는 거짓말, 지어낸 소문, 모욕 등이지만 그것들이 사실의 편린들과 결합하여 폭발성 있는 디지털 화약으로 기능함으로써 이 공세는 지배계급이 필요로 하는 낡은 감정질서 및 인지프레임을 선동적으로 재생산하면서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고 권력장의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 언어화약들은 진실의 편린들과 낡은 도덕감정, 그리고 가짜뉴스를 마구 버무려 만들어 낸 폭발물이었는데 이것들이 기술적으로 조직되고 반복적으로 사용되면 여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재확인해 되었다. 그것의 효과는 미투-위드유 운동 이후에 윤지오의 증언에 의해 성장되어오던 반성폭력 공통장이 균열되어 그 일부가 권력장에 재포섭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장자연 사건을 다루는 과거사 진상조사단 내부의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어떤 언론은 이것을 ‘국론 분열’로 표현했다.

예술인간-예술체제의 특이점과 그 동선

백래쉬로 나타난 권력장의 이러한 재포섭 전략에 대항하는 투쟁들은 어떠했는가? 권력장의 수복을 위한 반윤지오 공세가 개시된 후 그 전에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지지하고 뒷받침했던 언론들과 인사들의 상당부분은 방어를 하기보다 뒤로 물러나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주로 친문 언론들이 그런 태도를 취했다. 이것은 아마도 윤지오에 대한 법적 조력이 반문-비문 경향의 정의연대로부터 나왔다는 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윤지오 증언의 힘을 살려 내고 지키는 투쟁은 제도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의 전적으로 비제도 성폭력 공통장 다중으로부터 주어져야 했다. 이 투쟁은, (1)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 (2) 반성폭력 공통장의 첨점이자 특이점인 윤지오를 지키기위한 투쟁  (3)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 그리고 (4)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 등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은 그 주장들이 근거 없는 풍문이나 사실에 대한 편협한 해석과 오판, 혹은 과잉된 비난 욕구 등에 의해 조작된 것들임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래쉬 주장들은 특히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장자연의 죽음이 개인적 문제이거나 기껏해야 소속 기획사의 문제이지 성폭력 권력체제나 권력자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여 그 체제와 가해 당사자들을 방어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 주장에 대한 사실 검증투쟁은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했음을 확인하는 투쟁으로 나타났다. 이민석 변호사와 JTBC 이호진 임지수 기자 등의 노력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SBS <그날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장자연의 녹취육성도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에서 조사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처럼 장자연이 ‘힘센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압력을 육성으로 표현한 것, 윤지오가 유장호와의 통화내용을 녹취하여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서 명단과 목록이 거론된 점, 2009-10년 사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진 진술서(유장호, 윤지오, 장자연 오빠)에 ‘조심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 등이 진술된 점 등이 장자연의 실재성을 증거하는 물질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었다.

윤지오 지키기 투쟁은 반윤지오 백래쉬를 성폭력 체제의 자기방어와 재생산을 위한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마녀사냥식 공세에 대한 방어를 수행하는 한편 마녀사냥에 의해 입게 된 윤지오의 심리적 정신적 상처를 정서적 인지적 유대를 통해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윤지오가 청원한 증인보호법에 동의서명하고 증인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등에 참여하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은 정의연대와 녹색당 등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들 시민단체와 원외 정당은 지난 10년간의 수사가 부실수사로 드러났고 조선일보 등에 의한 수사방해 외압이 실재했던 만큼 철저한 재수사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이미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기존 검찰이 아니라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이었다. 윤지오는 4월 24일 백래쉬가 폭발하던 시점에 캐나다로 몸을 옮겨 자신의 신체를 보호한 후, 인스타그램 포스팅과 라이브방송을 중심으로 방어투쟁을 전개했다. 이것은 배우지망 신인 예술가였던 윤지오가 증언자 윤지오를 거쳐 예술인간 윤지오로 변모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것은 성폭력 체제가 자신을 관종으로 이미지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자신을 예술인간으로 내세우고 예술인간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그 시도들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째는 권력장과 그 파수꾼 및 십자군들을 향한 것으로 이들의 마녀사냥식 인신공격 디지털 테러의 범죄성을 고발하는 것이었다(선처 없는 처벌).

둘째는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는 공세에 대해 자신의 존엄함과 떳떳함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누구나의 특이성과 존엄성(당신들은 놀랄 만한 존재이다. 스스로 자신을 믿는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을 주장하고 연합한 특이자들의 힘(시민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넷째는 요리 식사 잡담 등과 같은 생활시간을 투쟁과 연합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라이브방송)

다섯째는 투쟁을 음악, 만화, 일러스트, 시, 에세이 등의 예술형식들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여섯째는 투쟁을 유머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일곱째 이러한 예술인간적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증인보호법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했고 증인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의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고펀드미의 펀딩을 해제하여 펀더들에게 모두 되돌려줌으로써 박훈의 사기죄 고발을 무력화시키고, 후원금을 착복했다는 비난에 대해 1원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디지털 댓글테러에 대한 처벌을 통해 받을 벌금을 <지상의 빛> 후원금으로 돌리겠다고 말하고,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기사, 에세이, 자료들을 지지자들과 공유하여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친권력담론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라이브방송을 통해 시민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지속하고, 좋아하는 음악의 교류를 통해 취향공통장을 확대해 나갔다. 또 진상조사단의 행보나 발표를 비롯하여 장자연 사건 조사 관련 발언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여 지지자들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예술인간적 실천이었다. 가족을 욕되게 한다는 비판에 맞서 그는 가부장제 전통이 말하는 혈연적 제도적 가족이 아니라 오직 현실에서 삶을 함께 나누는 특이자들의 모임(assemblage)만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족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족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전통적 가족주의의 후진성과 억압성을 고발했다. 또 고인을 욕되게 한다는 비난에 맞서 그는, 살아생전에 장자연을 알지도 못했고 고인이 된 장자연의 진실규명을 위해 삶의 단 한조각도 나누지 않은 ‘자격 없는 자’들이 산 장자연을 이용한 권력자들에게 고인을 다시 갖다 바칠 목적으로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자가당착적 구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맞섰다.

자신을 관종으로 왜곡하고 사기꾼으로 범죄화하려는 성폭력 체제와 가해의 권력장에 대항하는 이 자기방어투쟁의 과정 속에서 윤지오는 권력장의 영토를 해체하여 공통화하는 투쟁의 예술인간 특이점으로, 삶예술의 비전문가 배우/행위자(actor)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에서 공통장을 가시화하고, 지키고, 확장해온 것은 지금까지 권력이 ‘폭도'(광주의 항쟁시민들), ‘허위사실유포자'(미네르바), ‘허언증환자'(홍가혜) 등으로 불러, 죽이고 가두고 고립시켰던 사람들의 예술인간적 행동들이었다. 윤지오의 이 예술인간 증언행동도 이러한 역사적 비운을 피할 수 없을 것인가? 아니면 이 역사적 비운을 비스듬히 비켜가는 동선을, 사선(斜線)의 도주로를 열 것인가?

마녀사냥의 암구호들 1: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


산사람을 이용한 자들이 죽은 사람도 이용한다

장자연은 배우가 되고 싶었고 배우를 하고 싶었다. 신인배우가 되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권력자들에게 성서비스 노동을 강요당해야 하는 억울함을 견뎌야 했다. 소속사 사장 김종승(갑)과 맺은 노예계약 때문이었다. 윤지오의 계약서와 동일한 그 계약서에서 장자연(을)은 “연예활동 전반에 걸쳐 ‘갑’의 결정 및 지시에 충실히 따라야”(3조 바) 했고 “방송활동, 프로모션, 이벤트, 각종 인터뷰 등 ‘갑’이 제시하는 활동에 전적으로 수락하여야” 했으며 “행사불참 또는 방송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을’은 ‘갑’이 제시하는 민, 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4조 다). ‘갑’인 김종승의 결정에 따라 지시된 성적 서비스노동은 ‘갑’에 의해 “[방송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의 기회로 해석 및 주장되었고 계약에 따르는 의무적 활동으로 강제되었다. 이러한 노동이 부당하게 느껴져 중도해약하고 싶을 때에는 “위약벌금 1억 원과 ‘갑’이 ‘을’을 관리하기 위해 발생한 비용 중 증빙자료가 있는 모든 경비에 대하여 ‘을’은 이의제기 없이 계약 해지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현금으로 ‘갑’에게 배상하고 잔여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모든 수익활동의 20%를 ‘갑’에게 손해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7조). 그러한 악조건의 중도해약마저 ‘갑’의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6조 가). 또 ‘을’이 연예활동을 중단한다 해도, “그 기간만큼 계약기간은 자동연장”(3조 바)되도록 되어 있었다. 장자연이 체결한 계약서는 ‘갑’이 계약기간 중 철저하게 노예소유주로서 노예노동자인 ‘을’을 이용할수있는 조밀한 장치들을 빈틈 없이 갖추고 있다. 소속사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장자연의 희망을 이용하여 그의 생명력을 쥐어짜는 맷돌이었고 그 생명 에너지의 이용자=소비자는 재계,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연예계의 권력자들이었다. 이것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성폭력 권력이 가동되는 메커니즘이었다.   

장자연은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고 이 상황에서, 기회가 있다면, 빠져나오고자 했다. 그런데 그가 이 강제수용소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노예노동수용소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장자연의 필사적 저항과 탈출의 시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연예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 마약, 폭력, 협박, 강요, 수탈, 착취, 부당이용의 사례들을 낱낱이 적시하여 보여주고 자신을 이용한 권력자들, ‘조심해야 할’ 권력자들의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인지자본주의가 어떻게 여성들의 예술적(연예적) 능력과 성적 에너지를, 요컨대 생명력을 착취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폭로했고 그 착취를 수행하는 인격적 행위자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폭로행위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작게는 연예계에서 고립되어 더 이상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할 수 없게 될 위험으로부터 크게는 초법적 권력자들의 손에 가족들이 큰 피해를 입거나 자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폭로의 필요와 그것이 가져올 위험 사이에서 장자연의 고뇌는 깊었다. 김종승 기획사와의 싸움에서 장자연의 폭로 문건을 자신의 기획사에 유리하게 이용하고자했던 유장호가 삭제를 요구해야 할 만큼 권력자들의 성범죄 행위에 대한 장자연의 폭로 의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그 폭로문건이 기획사들의 소송전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발견한 후에 그는 그러한 위험을 막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유장호에게, 그 문건을 자신의 의지 밖에서 불법적으로 유통시키지 말고 그 문건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유장호는 그 요구를 묵살한 채 자신의 유통행보를 계속했다. 이 시간, 그러니까 2009년 2월 28일 장자연이 문건과 리스트를 작성한 후 약 일주일 뒤인 3월 7일 주검으로 발견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힘도 없고 빽도 없고 미련도 없다”며 자신을 옥죄어 오는 ‘힘센 자들’에 대한 절규를 표현한 절박한 통화기록이 그의 심경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업가들과 권력자들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계약상의 ‘갑’인 김종승이 그를 노예노동자로 이용했고, 권력자들은 김종승을 매개로 그를 성노예로 이용했음은 분명하다. 김종승은 수사기관에서 유장호의 기획사가 자신과의 싸움에 장자연을 이용했다고 진술한다. 이상호는 이명박의 국정원이 장자연의 죽음을 당시의 법란(판사파동)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장자연 문건 및 리스트의 공개와 은폐의 과정에 유장호를 매개로 개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장자연이 죽기 전에 남긴 문건과 리스트조차도 정치적 이용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윤지오가 증언을 시작하자마자, 아니 증언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윤지오는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누가 장자연을 죽였는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에서 증언하는 것이 물론 고인을 생물학적으로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증언은 고인이 현대 자본주의의 가부장적이고 노예제적인 성폭력 체제에 저항하다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된 인격임을 밝히고 가해자와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고인의 존엄을 되살릴 수 있고 존엄의 체제를 구성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윤지오의 증언은 고인 장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 자신이 고인 장자연을 빙의하여 말하는 것으로 증언자 윤지오의 생명을 고인 장자연과 산 장자연들을 위해 이용하는 우애와 선물의 행위이다.

그렇다면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이름을 남긴 권력자들 및 그 권력자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체제는 증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그들이 그 이름들과 체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생리상 당연한 것이다. 그 이름들과 체제들이 성착취자, 성범죄자, 살생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또 법률적 수사와 재수사를 받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윤지오의 증언을 막아야 했다. 증언을 막는 것은 다양한 수준의 목표지점들을 갖는다. 첫째로는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둘째로는 증언을 막지 못한다면 증언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셋째로는 증언을 축소시키지 못했다면 증언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넷째로 증언을 왜곡시키지 못했으면 증언자를 쓰러뜨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윤지오의 생존방송과 경호요구, 증언자보호법 청원, 비영리단체 구성 등의 노력은 증언을 끝까지 수행하면서 증언의 원천봉쇄, 축소, 왜곡의 시도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었다. 권력자들이 증언자를 쓰러뜨리는 방법에 총력을 다한 것은 증언이 끈질기게 진행된 후 선택한 최후의 방법(윤지오는 이것을 ‘최후의 발악’이라고 표현한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권력자들이 이 최후 대공세에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권력자들과 그 파수꾼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장자연을 ‘어머니 기일’에까지 이용한 자들이며 죽은 후에도 이용한 자들이다. 이들은 타인노동의 착취(이용=exploitation)를 자기재생산의 본질로 삼는 자본주의의 권력자들이고 체제의 대행자들이다. 이제 이들은 ‘고인’이라는 이름으로 장자연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영구화하면서 증언자 윤지오의 목소리로 귀환하고 있는 장자연의 절규를 다시 땅속 깊이 파묻으려 한다. 세월호의 생명을 수장한 바로 그 반생명적 죽음의 권력이 댓글, 고소, 고발, 보도, 유튜브 채널, 페이스북 등 온갖 수단들을 동원하여 윤지호의 증언을 아귀(餓鬼)들의 소음 속에 파묻는다. 이것은 윤지오의 목소리로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 장자연의 절규, 그 문건과 리스트를 영원한 침묵과 어둠 속에 파묻는 여론장(與論葬)의 행렬이다. 박훈, 김대오, 김수민 트리오와 강용석, 김용호의 가로세로연구소 등이 보조를 맞추면서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고 부르짖으면서 윤지오의 은행계좌를 뒤져 불순한 기록들을 찾으려 하고 가족관계에 있는/있었던 사람들을 이간시켜 증언자를 비난하도록, 혹은 그 비난이 널리 유통되도록 도울 때 이들이, 고인이 된 장자연이 영원히 죽어 있도록, 장자연의 절규가 영원히 잊혀지도록, 고인의 주검을 결코 부활할 수 없는 죽은 시신 그대로 이용하려는 주검정치(necropolitics)의 집행위원들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이들의 이러한 행보가 본인들이 의식하건 못하건 간에 거대자본의 분식회계, 차명계좌, 자금도피, 투기놀음 등의 경제범죄와 각종 유형의 성범죄를 은폐하는 가림막이며 생명을 위한 촛불행진을 가로막았던 2008년 광화문 ‘명박산성’의 현재태라고 생각한다.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3)

윤지오를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기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박훈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것을 그는 ‘가지치기’라고 부른다)이다. 2009~2010년 사이에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최소한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유장호이고 또 한 사람은 윤지오이다. 이 중에서 유장호는 장자연 사건의 이해당사자로서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증언할 의지가 불분명한 사람이다. 이것은 최근 진상조사단 비공식조사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장자연의 진술을 자신이 지우라고 했다고 말했다가 보름 뒤에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장자연 리스트를 증언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윤지오가 남는다. 그러므로 박훈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기만 하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은 부정될 수 없는 타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박훈의 일차적인 방법은 윤지오 스스로 보지 못했다고 자백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4월 21일까지 박훈은 이 방법에 주력한다. 

그는 4월 16일에 세상에 이미 알려진 4장짜리 장자연 문건을 자신의 수타로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이것이 현존하는 “장자연 문건”의 전부임을 선언한다. 그 현존하는 문건은 유장호가 보관하고 있던 사본의 일부로서 KBS가 입수, 보도한 것이다. 

박훈은 윤지오가 문건을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장례식장(3월 7-9일)에서 소각되었으므로 윤지오가 3월 12일에 봤다고 한 것은 거짓일 것이라고 쓴 바 있다. 그는 4월 16일에야 사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고 윤지오가 맞았음을 비로소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3월 12일에 봉은사에서 소각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지오가 그 문건들을 봤다는 것까지 인정하지는 않는다. “아뭏든 보지 못했을 수 있다”며 의심을 지속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발견하고도 왜 저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4월 13일에 쓴 박훈의 글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 자가 왜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인가? 장자연 문건을 봤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유일하게 말을 한 사람이 윤지오다. 그러나 장자연 문건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아무도 아직까지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거대한 권력의 압박을 받아서? 누구 말대로 국정원 공작 때문에? 아님 고인을 위해서?)

이 글에서 박훈의 주장은 단 하나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선 윤지오는 ‘유일한 목격자’를 주장하지 않는다. <13번째 증언>의 표지와 목차에 ‘유일한 목격자’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지만 이것은 윤지오의 인식이 아니라 출판사의 인식과 의지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윤지오는 여러 차례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 ‘유일한 증언자’라고 말해야 했다. 장자연 문건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여럿이다. 윤지오 외에 유장호, 스타일리스트 이00, 유가족, 그리고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유장호의 경호원’ 등이 있다.  둘째로 문건의 내용에 대해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고 오직 윤지오만이 말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거짓이다. 문건의 내용은 KBS 보도를 통해 이미 대중에게 공개된 터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구분하지 않고 혼란스럽게 이야기하는데, 리스트를 본 사람은 정황상으로는 유장호, 경호원, 윤지오, 유가족인데, 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말한 사람은 유장호와 윤지오(그리고 장자연의 오빠)이고 그 내용에 대해 말을 한 사람은 윤지오가 유일하다.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고 리스트에서 문건으로, 문건에서 리스트로왔다 갔다 한다. 이 혼란을 벗어나려면 문건과 리스트가 있고 문건과 리스트를 장자연으로부터 받았거나 함께 작성한 유장호가 문건만을 보여준 사람과 문건과 리스트를 다 보여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월 18일 박훈은 여전히 문건과 리스트를 혼동하면서 이런 질문을 윤지오에게 던진다.

“님이 본 장자연 문건에 4,50명이 있었는데 그게 2009. 3. 12. 봉은사에서 유장호가 보여줬다는 것에 있었는지요? 님이 본 것이 진짜 봉은사에서 본 것이 맞는지요.”

윤지오는 이미 10년 전의 수사기관 진술에서, 박훈의 질문에 답했다. 유장호가 넘겨준 문건과 리스트를 봉은사 차 속에서, 그리고 소각 시에 봤다고. 이미 진술되어 있는 것을, 그리고 유장호와 유가족 진술의 교차검증을 통해 확인된 사실을 왜 묻는 것일까? 윤지오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강변하기 위한 것이다.

4월 19일에 박훈은 드디어 “장자연이 직접 작성한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리스트가 무엇인지, 어디서 봤는지도 자신은 알고 있고 누가 작성했는지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 리스트는 누가 작성한 리스트이며 [윤지오가] 어디서 봤다는 것일까? 같은 날 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은 이것이다”라는 제하에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실은 장자연 계좌로 수표를 입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경찰이 리스트로 작성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즉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고 리스트라 불리는 것은 사후에 경찰이 작성한 수표송금 리스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윤지오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 서류에 있던 “그 명단이나 수사 대상자로 올린 50여명의 리스트를” 우연히 “잠깐” 봤을 개연성은 있다.’고 쓴다.

윤지오의 말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가능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쓴 소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4월 16일 작가 김수민이 술자리에서 새벽에 윤지오로부터 들었다며 한 이야기가 주요 구성요소로 차용되고 있는데, 그 이야기에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수사기관에서 우연히 봤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는 3월 12일 윤지오가 녹취하여 제출한 유장호와의 통화기록에 등장하는 장자연 관련 ‘목록’이라는 말, 그리고 유장호와 윤지오가 10년 전에 이미 일관되게 진술하는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명단’에 관한 진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이미 물질화되어 존재하는 진술문서를 외면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상상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뒤인 4월 20일에도 그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봤다면 그것은  ‘경찰이 작성한 “수사대상자 리스트”, “장자연 수표 리스트”, 아니면 “전준주 리스트”다.’라고 씀으로써 자신의 가상의 시나리오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내세울 뿐, 장자연 리스트의 부재에 대한 어떤 신뢰할 만한 분석이나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라는 윤지오의 반격

이 때는 이미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발언들이 윤지오의 증언들을 뒤흔들기 시작한 때이다. 박훈은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질문에 대한 윤지오의 최초의 응답을 올리는데 그 응답에서 윤지오는 박훈을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로 묘사하고 ‘헛소리 하려거든 본인 일기장에 하고, 자신의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라’고 말한다. 왜 윤지오의 응답이 이렇게 거칠었을까? 그것은 박훈이 증언자 윤지오를 증언과는 상관 없는 문제로 인신공격하여 그의 증언행동을 실추시키고 인격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모독들인가?

첫째로는 장자연 사건 관련 재판에서 윤지오가 가해자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노래나 춤을 추게 된 것도 강압적이 아니었다”)을 했다는 비난이다. 윤지오는 김종승과 관련하여 두 번 진술했다. 한 번은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래나 춤을 추는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고 김종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고(2009) 또 한 번은 김종승이 자신[윤지오]에게 ‘강압적으로 춤을 추게 했는가’라는 물음에, ‘강압은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2010). 그런데 후자가 판결문에서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로 인용되고 박훈은 이 판결문에서 윤지오가 가해자를 편들었다는 이미지를 끌어낸 후 윤지오 공격에 사용한다. 윤지오의 대답은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고 후자만을 맥락에서 떼 내어 읽으면 윤지오가 가해자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구조적 압력과 직접적 압력을 구분해서 접근하면 이 진술은 윤지오 내부에서는 일관된 것이다. 두 번의 진술을 통해 윤지오는, 김종승이 자신에게 직접적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계약서를 통해 구조적(계약적) 압력을 가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박훈은, 판사가 윤지오의 진술로부터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인용한 판결문만을 보고 윤지오가 가해자에게 유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윤지오는 장자연을 위한 증언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끌어낸다.

둘째로 박훈은 윤지오가 의문의 교통사고와 증언으로 인해 ‘법 위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위험을 언급할 때 그것을 “쇼”로 단정한다. 이것은 유튜버들과 댓글들을 통해 무한 재생산된 윤지오 악마화의 이미지다. 박훈이 이런 생각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 그의 주장대로라면 리스트를 수 도 없이 본 유장호와 김대오 (Dae O Kim) 기자는 이미 살해됐어야 했다. (실제 이들은 윤지오가 주장하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

마지막 구절,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라는 말이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했다. 분명히 리스트의 물적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오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유장호는 리스트를 보았고 그 존재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그 리스트의 공개를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 사람이고 이 때문에 ‘자신의 경호원’이라는 신분으로 유장호를 보호/감시했던 국정원의 협력자이거나 국정원으로부터 통제를 받는 사람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한 그가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두 사람은 윤지오와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박훈은 잘못된 비교를 통해 윤지오가 실제적으로 느끼는 위험을 허구화하고 위협에 대한 발언을 쇼라고 단정한다. 그는 윤지오가 왜 ‘혼자 법 위의 30명을(원래 4,50명 이었다) 상대”하는가?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질문하지만 그에 대한 악의적인 인격적 의심(거짓말쟁이, 사기꾼) 외에 어떤 진지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셋째로 박훈은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의심의 심리에서 출발하여 윤지오에 대한 경호를 혈세낭비로 규정하거나 윤지오의 후원계좌 개설을 돈벌이로 규정하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며 급기야는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멈춰세워햐 한다(“윤지오는 가고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만이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소, 고발, 그리고 변론의 자가당착

이러한 인신공격은 4월 23일 김수민을 대리하여 윤지오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법률행동으로 나타났다. 당일 기자회견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윤지오씨는 고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윤지오씨는 조모씨 성추행 건 이외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장자연 리스트 봤다” “목숨 걸고 증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그는 가상적인 자신의 시나리오를 근거로,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부정한다. 또 그는 윤지오가 거짓말로 후원을 받고 있다는 자신의 근거 없는 추정을 확립된 사실처럼 주장한다. 또 그는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면서 자신의 상상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밝혀졌다”는 말로 표현한다. 또 그는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면서 10년전의 진술증거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사실의 신빙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임의적 주장을 확인된 결론처럼 내세운다. 한 인격에게 결정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이러한 허구적 변론폭력이 과연 용납되어도 좋은 것인가? 

박훈은 말한다. “나아가 저를 비롯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해자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윤지오의 인격에 대한 공격과 고소고발 행위가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출 것이며 윤지오가 처벌을 기대하며 내놓은 ‘법 위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진술이 힘을 잃으리라는 것을 박훈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박훈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훈은 자신이 조선일보를 싫어하며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사회주의자라는 진보혁명가-제스쳐로 자신이 가해자의 편이라는 일련의 비판을 차단하면서 4월 26일 윤지오를 사기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이호진, 손석희, 노영희, 정지영, 안민석 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피력하는 것을 넘어 윤지오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반을 ‘윤지오한테 농락당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한심한 작자들’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순논리는, 박훈 자신이 ‘권력에 농락당하고 있는 한심한 작자’라는 역공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이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한다’는 비난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알렉산드로스인가 돈키호테인가?

증언자 윤지오를 향한 박훈의 이 돈키혼테적 돌진과 칼질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재수사의 무산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와는 달리, 그는 장자연 리스트의 매듭을 결코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삭제하는 방식에는 중요한 약점 즉 아킬레스건이 있기 때문이다. 박훈이, 유장호와 윤지오가 이미 10년 전에 수사기관에서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다고 말한 사실을 끝까지 외면한 것이 그것이다. 이미 확인된 진실을 외면한 것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변론을, 10년 전에 장자연 리스트는 물론이고 장자연 문건의 마지막 단 한 구절 외에는 문건의 내용도 형식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자신의 ‘기자친구’ 김대오(가 문건을 보았다는 가정)와 ‘작가친구’ 김수민에 기대서 끌어낸다. 그런데 김대오가 문건도 리스트도 전혀 본 적이 없으며 윤지오가 그것 모두를 보았다는 사실은 한국일보가 대중에게 공개한 ‘누가 장자연을 죽였나?’의 유장호, 윤지오 진술서 디지털 프린트물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진술서들이야말로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질적 흔적이며 가장 중요한 흔적이다. 윤지오의 진술들은 10여년 전의 진술들이므로, 오늘날의 진술처럼 거짓말이라거나 사기라거나 하는 잡음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장자연 리스트”의 흔적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설령 박훈을 비롯한 사람들이 윤지오를 도덕성의 심급에서 파멸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윤지오의 이 증언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다는 그의 증언의 진실가치는 불변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박훈이 이 진술을 알면서 모른 체 하는 지, 아니면 누구나 본 그 진술을 보지 않으려는 옹고집스러운 태도로 윤지오 죽이기를 위한 변론의 칼을 벼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의 이 물적 흔적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는 박훈의 칼질은 여론의 일시적 흥분을 이용하여 잠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코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라는 그 매듭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매듭을 푸는 힘겨운 과제는 진상조사단과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실규명의 의지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않을 수록, 더 분명하게 다중의 집단지성에, 촛불 공통장의 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끝]

특수강간죄 수사권고 없는 진상조사보고에 대한 윤지오의 생각에 대하여

진상조사단은 왜 재수사를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것을 포기했나?

사람들의 이목이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집중되었던 2019년 5월 13일.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김종승 위증혐의 고발, 수사과정에서 조선일보의 외압 인정 외에 핵심적 쟁점인 장자연 리스트와 성서비스노동 강요 및 권력자들의 성범죄 행위에는 과거 수사가 미흡했다고 했을 뿐, 재수사 권고 없는 진상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진상조사단이 이처럼 모호한 결론으로 재수사 권고를 회피하여 결국 김종승이나 조희천 같은 하위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요구에  머무르게 된 것에 대해 네 가지 사유를 들고 있다.

  1. 피해자가 사망했다
  2. 주요 인물들의 조사 비협조(소환불응)로 가해자 특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3. 핵심의혹인 술접대 성접대 강요 의혹 및 사회유력인사들의 성범죄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윤지오의 증언 외에 수사를 시작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지 못했다
  4. 리스트와 특수강간 문제에 관한 핵심 증인인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 이유들은 합당한 이유들인가?

첫째 피해자는 사망했지만 피해자가 남긴 문건이 확보되어 있으며 리스트에 대한 진술들이 있고 이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이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생존해 있지 않다는 것이 재수사 회피의 충분한 이유로 될 수는 없다. 둘째 주요 인물들의 조사 비협조가 가해자 특정에 어려움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특검과 같은 강력한 재수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셋째 술접대와 성접대 강요는 고 장자연이 문건에서 직접 친필로 호소하고 있는 범죄이며 문건에서 이미 조선일보 방씨 일가의 성범죄 의혹은 충분히 제기되었다. 물론 재수사는 공소시효를 요구한다. 

그런데 윤지오는 장자연이 술이 아니라 약물에 취해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에 대해 진상조사단과 “KBS1 오늘밤 김제동”에서 증언했으며 이외에도 진상조사단은 “장자연이 약물에 의한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것 같다는 여러 명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256927&code=61121111) 또 유장호도 진상조사단 비공식조사에서 “처음에 장자연 씨가 성폭행을 심하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문건에도 썼는데 자신이 지우라고 했”으며 “성폭행한 그 사람을 자신은 알고 있는데 이것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08701). 이러한 유형의 특수성범죄(특수강간, 강간치상)는 공소시효가 15년이므로 진상조사단이 의지만 있다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재수사를 의뢰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진상조사단은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는 것일까?

유장호는 위의 진술을 한 후 보름 뒤에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말을 바꾸었고 약물에 의한 성범죄 피해 가능성을 제기한 복수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유일하게 알려져 있는 증언자인 윤지오는 그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논란이 있기 때문에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진상조사단이 성서비스노동(술접대, 성접대) 강요와 권력자 성범죄에 대한 재조사 권고를 하지 않는 것의 최종적 사유는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 문제에서 찾아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지난 수십일 동안 한겨레, JTBC 등 극소수의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도언론들과 가로세로연구소를 비롯한 우파 유튜브,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SNS 사용자 등 한국 사회의 특정 세력들이 광기의 윤지오 마녀사냥과 윤지오 죽이기에 총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윤지오 검증론” 트리오의 표정들

특히 우리는 장자연 사건 진상 조사가 재수사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데 있어서 박훈, 김대오, 김수민 트리오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린 것은 뉴시스를 비롯한 제도언론이나 우파 유튜브, SNS가 아니라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는 조선일보를 싫어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거짓을 제거해야 한다”, “장자연 사건 진실규명과 윤지오 검증은 별개이다”, “촛불정권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 심지어 “나는 사회주의자이다” 등을 주장하면서 윤지오를 거짓과 사기를 단죄하는 단두대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을 역사의 무덤에 조용히 묻어두고 권력자들에게 활개칠 자유의 공간을 열어주는 데서 이들의 “공로”(?)는 반드시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5월 13일 진상조사단이 과거사위원회에 조사보고를 한 바로 그날 이들의 표정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박훈: 침묵

김대오: “입장과 의견을 떠나 과거사진상조사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최선이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수민: 그의 반응은 좀 길면서 두서가 없다. 그래서 그 반응의 일부를 발췌하고 그 밑에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주석으로 기록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의혹을 품고 있는/ 조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유일한 목격자 윤지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지오는 무엇을 증언하고 누구에게/ 신변 위협을 당했다는 건지”. 

::증언을 방해하는 세력들로부터 위협 당했으며 바로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린 사람들이 조사를 부실하게 만들었다.

“40-50명이 적힌 리스트를 봤다고/ 왜 거짓말을 친 건지/ 문건을 봤단 거랑 리스트를 본 거랑은/ 엄연히 다른 말입니다”. 

::맞다. 문건을 본 것과 리스트를 본 것은 다르다. 하지만 2009~2010년의 진술조서들은 김대오는 리스트를 못 보았고 윤지오와 유장호는 리스트를 보았음을 진술서라는 물적 증거로서 보여준다. 

“고인과 친분이 없는 나도 이렇게 초조하고/ 애타게 지켜보고 기다렸는데/ 모든 사람들이 오늘만을 기다렸을텐데/ 과거사위가 또 미뤘네요/ 문구를 다시 수정,보완 해서 발표 한다고 합니다”. 

::나는 과거사위원회의 이 고뇌 속에서, 장자연 사건의 조사발표가 몇몇 개인의 이해관계 문제를 넘어 정권의 존망, 체제의 존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과거사조사위원회 자신이 느끼고 있으며 결과 발표가 정권이나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보신주의적 세심함을 본다.

“근데 윤지오 씨는 오늘 목숨을 바쳐서 진술을 했던/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잊고 산 적이 없던/ 고인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는데/ 별로 관심이 없으셨나 봐요.”

::고인에 대한 수사 발표가 아니라 장자연 사건에 대한 강제력 있는 재수사 여부를 가늠할 조사발표다. …

윤지오의 눈, 윤지오의 힘

김수민의 생각과는 달리 윤지오는 5월 13일 진상조사단 조사발표에 대해 “약물과 성폭행..특수강간죄를 권고하지 않다니요”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반응글을 올렸다.

제 외에 추가 증언으로 증인들이 마약과 성폭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헌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요…/국민청원을 또 게재한들 바뀔까요?/ 특수강간죄가 권고되어야 공소시효는 이미 종료된 10년이 아닌 15년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핵심을 빼고 권고를 요청하다니요./이 모든 것이 몇몇 악의적인 사람들로 인하여 /가해자들은 웃는 세상이 되겠군요./자연언니를 위해서라더니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 좀 보십시오./정말 반드시 이들만이라도 처벌하여 반드시 다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김수민이 지금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의 정치적 효과가 “고인”을 위한다는 자신의 표면적 대의와 갖는 실제적 충돌과 모순을 외면하면서 윤지오 죽이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과는 달리 윤지오는 이 짧은 글 속에서 전체 상황을 통찰하고 이 상황에 참여하고 있는 각종의 행위자들의 동태와 이후의 과제에 대해 예리하게 발언한다. 그 요지를 열 가지 테제로 다시 정리해 보자.

  1.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의 과거사진장조사단의 조사발표는 핵심문제를 회피한 비열한 발표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2. 핵심문제는 가해 권력자들의 특수강간 성범죄를 처벌하여 제2, 제3의 장자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3. 처벌을 위한 재수사는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간죄에 대한 수사권고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4. 나[윤지오]도 마약과 성폭행에 대해 증언했지만 나 이외에도 이에 대해 증언한 증인들이 있고 특수강간죄목 수사권고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5.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미 확보된 증언들마저 외면하면서 가해자, 권력자들을 징치하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또 다시 국민청원을 한들 재수사가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6.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진상보고는 가해자들이 웃고 활개칠 세상을 보증해 준다.
  7. 과거사진상조사단이 특수강간죄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음으로서 장자연(들)의 고통과 눈물과 절규는 영구히 계속될 것이다.
  8. 이러한 결과는 몇몇 악의적인 사람들이 증언자 흔들기를 통해 증언 신빙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초래되었으므로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
  9. 고인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이들은 고인에게 영원한 침묵을 강요했다.
  10. 이들만이라도 처벌하여 (특수강간죄 공소시효가 남은 향후 5년 이내에) 장자연사건 재수사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조건을 만들자.

상황과 대안에 대한 이 명확한 통찰은 메신저 윤지오를 무너뜨리기 위한 온갖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너지기는커녕 아직 굳건하게 진실규명의 진지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진지를 혼자 지킬 수는 없다. 이 진지를 지켜내면서 그것을 어디나의 진지, 누구나의 진지로 사회화하고 지구화하는 일은 이제 누가 맡아 나갈 것인가?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2)

4월 10일 박훈은 다시 “윤지오 배우에게”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내 며칠 전 질문에 답이 없던데. 글쎄요. 그것이 이렇게 넘어갈 성질이 아닌 것 같은데요. 후원계좌 열고, 스토리 펀딩한 것 보고 제가 결정적으로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서 문제제기 한 것인데 제 질문에 답을 하시죠. 

님이 오히려 “술자리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증언 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니라고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님이 본 문건이 무엇이죠? 나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답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용은 그만 두고요. (8장짜리 최종본 봤어요? 14장짜리 초안 봤어요?) (4월 10일)

4월 9일의 질문은 4월 10일로부터 ‘며칠 전’이 아니라 ‘하루 전’이다. 나는 그가 윤지오에게 페이스북 포스팅 외에 어떤 경로로 실제로 질문지를 보냈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그가 페이스북 포스팅만으로 윤지오에게 자신의 질문이 전달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관념과 실제적 소통의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4월 9일 그의 포스팅에는 언제까지 답을 달라는 시한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은 채로 10일에 답이 없다면서 다그친다. 이런 방식으로 윤지오가 응답을 회피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접속자들에게 전달하면서 그는 “내 며칠 전 질문에 답이 없던데. 글쎄요. 그것이 이렇게 넘어갈 성질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넌지시 협박조로 말한다. 만약 윤지오에게 자신의 질문을 분명하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타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위한 자작쇼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 끝에 그는 “님이 오히려 “술자리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증언 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니라고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장자연 리스트와는 직접 상관 없는 다른 문제를 끄집어 낸다. 나는, 이후 ‘윤지오가 유가족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서 진술했다’는 비난 행렬로 이어지는 박훈의 이 우격다짐식 주장이 엘리뜨주의적 편견이 낳은 착시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는 장자연 리스트와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자. 이어지는 구절, “님이 본 문건이 무엇이죠? 나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답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용은 그만 두고요. (8장짜리 최종본 봤어요? 14장짜리 초안 봤어요?)”가 김대오의 오락가락하고 횡설수설하면서 모든 것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거짓 진술들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황당무계한 질문임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박훈은 4월 20일 페이스북 포스팅 ‘내가 어떤 사건에 나설 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서로 공방이 가면 지켜보다 엉뚱한 주장한 쪽의 논리를 깐다. 정봉주 사건이 그랬다. 그러다 내 주장에 동조하는 당사자들이 연락이 온다. 그러면 난 그 주장을 몇 차례 걸쳐 검증한다.(거의 살벌한 취조 방식이다. 대부분 견디어 낸다. 짜증내면 끝낸다.)검증이 완료되면 싸운다. 검증이 안되면 손 뗀다. 이것이 내 방식이다. … 하여간 주장을 하다보면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제보한다. 나는 그들을 만나 내 방식대로 검증한다. 그리고 교차 검증해서 오류를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이럴때는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의뢰받은 사건 처리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확보된 모든 자료를 검토한다.(4월 20일)

자신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제보나 주장을 몇 차례에 걸쳐 검증하며 이때 살벌한 취조방식을 택하고, 검증이 완료된 경우에만 변호싸움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묻는다. 김대오의 제보를 박훈은 “살벌한 취조방식으로” “몇 차례 걸쳐” 검증했는가? 교차검증했는가? 오류를 최대한 줄였는가? “확보된 모든 자료를” 검토했는가? 내가 보기에 그의 검증결과는 정보에 대한 오인, 불철저한 검증, 교차검증의 누락으로 인해 오류로 가득차 있다. 이런 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곧장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난 공격에 들어간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아주 천천히. 상대방한테 퇴각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부분은 퇴각하지 않고 꼭 싸움 걸어야 물러선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럴 때마다 걱정어린 눈빛으로 침묵한다. 그들이 알았던 것이 아니기에. 

박훈은 3월 28일 처음으로 윤지오 건을 사건으로 지각한 후 불과 열흘 정도 뒤인 4월 9일에 이 “사건에 뛰어들기로 작정”하고 그로부터 14일 뒤인 4월 23일에 윤지오를 김수민 변호인으로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 했고 하루 뒤인 24일에 윤지오를 직접 사회혐의로 고발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전개된 이 초고속 고소, 고발을 박훈은“천천히”, “퇴각기회를 주”면서라고 부른다. 이 때 박훈은 자신이 싸움을 걸면 상대방은 물러선다는 식의 자랑을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는데, 그것이 허풍이었음은 윤지오가 박훈이 싸움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서기’는커녕 ‘변호사 양반 박훈’에게 ‘선처 없는 역고소’를 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에서 입증된다. 박훈은 자신의 이 돈키호테적 돌진을 보면서 주변의 침묵하는 다중들이  짓는 “걱정어린 눈빛”을 그들의 ‘무지’(알지 못함) 탓으로 돌린다. 나는 이것이 자신의 조급함을 정당화하는 박훈의 소영웅주의적이고 엘리뜨주의적인 심리기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심리기제가 윤지오 사건의 경우에는 거짓을 변호하고 진실을 범죄화하여 진실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비탄에 잠기고 분노로 들끓게 하는 변론폭력으로 작용한다고 보는데, 이제 그가 장자연 리스트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검토하면서 이 점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영리한 다중: 윤지오의 경우

<<참여군중>>(황금가지, 2003)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하워드 라인골드의 유명한 책의 원제목은 Smart Mobs다. 직역하면 “영리한 군중”. <<다중>>(갈무리, 2004)의 저자 빠올로 비르노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새로이 출현한 주체성을 “다중”(Multitudes)이라 불렀고 안또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다중의 특징으로 swarm intelligence를 꼽았다. 이 용어를 나는 <<다중>>(세종서적, 2009)에서 ‘떼 지성’으로 번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집으면 ‘지성 떼’인데 이는 ‘영리한 군중’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나는 <<절대민주주의>>(갈무리, 2017)에서 다중이 직접민주주의적 자기조직력을 바탕으로 대의민주주의 기제들을 영리하게 섭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절대화할 섭정주체라고 주장했다. 떼 지성, 절대민주주의 다중, 영리한 군중 등의 용어들은 21세기 세계사회에서 움직이는 주체성의 주요한 변화와 특질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의미의 변화를 집약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용어는 아마도  피에르 레비의 책(문학과 지성사, 2002) 제목에서 비롯된 ‘집단지성’일 것이다.

하워드 라인골드는 영리한 군중이 네 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말한다. 1)오프라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2)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의 주요 이슈에 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3)신기술을 통제하거나 독점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면서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4)확고한 윤리관과 예의를 바탕으로 네트워킹한다. 영리한 다중은 똘똘뭉쳐 있는 공동집단(전통적 공동체)과는 달리 느슨하고 또 이질적으로 살아가면서도 특정한 계기에 떼를 이루며 그 이질적 삶들 사이의 공통장을 구성할 수 있는 지성적이고 정동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간헐적으로 반복된 촛불봉기들과 그것의 역량에서 떼지성, 섭정다중, 영리한 군중의 실례를 목도하고 또 체험했다.

‘영리함’이라는 단어와의 관련 속에서 인터넷을 통해 한국사회(와 아마도 세계사회)에 널리퍼진 몇 장의 카톡 캡쳐 이미지가 있다. 이 이미지들 속의 글귀에서 나는 윤지오와 김수민이 주고받은 다음과 같은 말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이 더 나은 삶을 향한 개혁의 충동과 그것에 대한 반동 사이의 갈등을 매우 일상적인 구어들 속에서 예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난 책도 책이지만 그후 내 행보가 더 중요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판단되서’, ’하지만 분명히 이슈는 되니까/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 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그래서 출판하는 거고’(윤지오).

‘니가 니욕심이 없다고 장자연만을/ 위해서라고 니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어??/사람이 가식이 느껴지는 건 어쩔수가 없더라’(김수민).

‘언니? 말 앞뒤 자르고 그렇게 인식하는 것 아니예요. 저는[언니는-인용자] 누굴 위해 단 한 번이라도 증언하신적 있나요?’(윤지오), 

‘가식이나 그만 떨어라/못봐주겠다’(김수민) 

‘위에 말한 것은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간 못했던 말을 한다고 했고 그러고 있어요’(윤지오) ‘글 캡쳐해서 올리면 누가 옳고 그런지 평가받을 수 있겠네요’(윤지오) 

‘어린 것이 영악하네’(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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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 대화의 앞부분이 김수민에 의해 메신저에 대한 공격의 형태로 먼저 공개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가로세로연구소(김용호)+김대오+박훈과 연합하면서 윤지오의 증언 행보 전체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미 왕진진 사태를 겪은 바 있었던 탓에 “또 사기!”라는 이들의 고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발심리는 더욱 컸다. 지금까지 촛불+미투+윤지오 연합의 공통지성과 공통정동의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윤지오 비판적 지지나 중립으로 이끌려 왔던 제도언론의 상당부분이 빠르게 반윤지오 진영으로 돌아섰고 네트다중의 일부도 심각하게 동요하면서 반윤지오로 돌아서기도 했다. 윤지오에 의해 구축된 다중의 자율적 공통장의 큰 부분이 와해되고 그 밀도가 낮아진 것이다. 그 자리를 대중의 상호불신에 기초한 권력장이 점령했다. 이 무렵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 가능성, 유장호의 성폭력 진술 등에 대한 JTBC 보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협박당하는 장자연의 육성 공개, 진상조사단의 윤지오 진술가치 인정 등에 의해 일정하게 다중의 진실규명 공통장이 만회되었지만 제도언론에서 역량의 비대칭은 심각한 것이었다.

이미 말했지만 권력장과 공통장은 질적으로 다르다. 공통장이 이질적 다중들의 네트워킹, 연합, 연대, 공통되기에 기초한다면 권력장은 다중을 사적이고 공적인 방식을 통해 상호 불신하게 하는 것에 기초한다. 제도언론이 윤지오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는 속도가 빠르고 강도가 높을수록 다중 내부의 상호불신은 커지고 그 불신의 깊이만큼 다중의 자율성은 약화되어 복종적 국민으로, 민족주의적 군중으로 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권력과 제도언론이 효과적인 무기로 훔쳐 사용한 것이 바로 윤지오의 저 ‘영리하게’라는 말의 왜곡이었다. 제도언론에 앞서 김수민이 그것을 계산적 ‘영악함’으로 굴절시켰고 윤지오의 증언 실천을 ‘가식’의 프레임 속에 집어 넣었다. 그 프레임은 ‘네가 네 욕심 없이 오직 장자연만을 위해서 증언한다고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나타났다. 순수주의, 순결주의를 척도로 내세우고 ‘당신은 순수하지 못하다, 순결하지 못하다’고 선동하는 프레임이었다. 증언자는 순결해야 한다, 증언자의 실천은 희생과 헌신이어야 한다, 순수한 자만이 증언할 수 있다는 프레임. 

이 순수주의=순결주의는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기 위해 여성에게,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씌워온 굴레이면서 동시에 그 착취를 비판하고 그것에 대항해온 운동들이 내면화해 온 거울이미지다. 국민이 영웅을 기대하고 민중이 지도자를 기대할 때 그 국민과 민중은 그 영웅과 지도자에게서 순수를 기대하는 만큼 오히려 자기자신이 ‘순수’하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백성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근대의 과정이다. 탈근대화의 과정에서 국민/민중과는 다른 다중이 출현하지만 그것은 민중의 자기전화이며 그 마음 깊은 곳에 근대적 백성의 습성은 유전자처럼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 순수/순결주의의 정동은 영리함을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다중이 자율공통장을 구축하고 그것을 기초로 새로운 질의 군주, 섭정군주로 되는 것을 가로막는 낡은 유습이다. 이 순결주의 유산과 순수성의 정동을 자극하면서 김수민은 윤지오의 영리함이 돈벌이의 영악함이라고 단정한다. 출판도, 경호도, 비영리단체 구성도, 그리고 증언도 오직 돈을 영리하게 버는 방법이라는 초상화가 그것이다. 윤지오도 별 수 없는 돈벌이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이라는 고발이 사회 전체에 퍼져갔다. 이로써 ‘영리하게 전에 못했던 일을 해보려 한’ 윤지오의 계획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물론 윤지오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리하게 계획을 세우는 일을 중지해야 할까? 우리의 사업계획을 포기해야 할까? 그리하여 자신은 호모에코노미쿠스이면서 타자에게 순수한 신(神)인간 즉 호모데우스일 것을 요구하는 근대인의 자기모순, 자기분열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까? 한 인격 내부에서 호모데우스와 호모에코노미쿠스의 분열은 바로 권력장의 구조(통치-피치, 전위-대중, 왕-신민, 신-인간 등등)를 반영한다.

권력장의 구조, 그 구조적 폭력 기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질문 속에서 다시 한 번 윤지오의 계획을 참조해 보자. 이 참조 속에서 호모에코노미쿠스도 호모데우스도 그 양자 사이에서의 어떤 내적 분열도 아닌 어떤 영리함을 찾아보자. 김수민과 박훈은 “윤지오의 영리(smartness)는 영악이고 가식이며 사기다.”라면서 윤지오의 영리함을 호모에쿠노미쿠스의 영악함으로 환원한다. 나는 윤지오의 영리함에 대한 이러한 경제주의적 환원이 두 사람에게서는 책략이라기보다 체질에, 기술이라기보다 세계관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새로운 인간으로 나아가려는 충동에 대한 자기분열적 반동이며 우리 내부의 낡은 것의 강력한 복귀(백래쉬)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불신, 우리의 무력함에 대한 고백, 권력에의 종속의 불가피성에 대한 무의식적 승인, 권력은 ‘무혐의하다'(‘혐의 없다’)는 사법적 인정의 인격적 반복이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우리가 윤지오의 영리함에 대한 김수민-박훈 식의 왜곡을 피하면서 그것에 다르게 접근해 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우선 윤지오의 그 ‘영리한’ 계획, ‘지금까지 못해왔지만 <13번째 증언>을 계기로 해 보고자 하는 일/사업’이 무엇이었는지를 ‘돈벌이’라는 경제주의적 시야 속에서 단순화하지 않고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주체 상황 속에서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