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적인 것의 대안근대적 잠재력

제와 굿이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경우 박정희 정권 하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의 연속과정에서 전근대적 비합리(미신)로 간주되어 타파대상으로 된 후 사회의 비주류로, 후미진 구석으로 내몰렸다는 김수남 작가의 관점은 근대화의 폭력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제와 굿, 무속 속에 깃들어 있는 비근대적 생명력을 대안근대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 하나의 과제로 주어진다. 백남준이 서구의 과학기술과 몽골적 샤머니즘을 결합시키려 했을 때 이미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까페의 사회적 풍경

책다방에서는 주인인 한 사람이 음식준비 설겆이 서빙 등의 노동을 하고 있고 여러 사람이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거나 빵을 먹거나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다. 손님들은 노동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초월론적 균형운동

초월론적 균형운동

요가는 균형이라는 뜻이지만 요가가 단순 균형운동은 아니다. 요가는 신체의 현상태를 넘어서려는 초월론적 운동 속에서의 균형이다. 그래서 요가기술에 의해 자기통치하는 신체는 항상 기우뚱한 균형상태에 있게 된다.

사실, 관념, 그리고 경험

사실, 관념, 그리고 경험

윌리엄 제임스는 ‘사실에 관한 가장 확실한 결론들을 미래의 경험이 펼쳐지면서 수정되기 쉬운 가정들로 여기’는 태도를 경험론이라고 부른다.(<근본적 경험론에 관한 시론>, 8) 나는 좀더 간결하게 사실과 관념을 경험의 한 단면으로 보는 태도를 경험론이라고 부르고 싶다.

개발, 지대, 수탈

박근혜와 이명박의 공통점은 여러가지이지만 부동산투기에서의 공통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공적인 개발계획과 개발정보를 선취하고 사유화하여 부동산투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차명 기술과 비선 기술이 이용되었다.
지대는 투하된 노동에 의해 규정되기보다 개발효과에 의해 규정되었다.
도로, 건물, 시장이 형성되고 사회가 생성되는 것이 지대를 상승시키는 일차요인이다.
그것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활성화시킬 조건을 창출하여 사회장과 공통장의 생성을 촉구하는 정치의 결과들이다.
정치가들과 권력자들은 자본가들과 담합하여 ‘개발’이라는 이름 밑에서 활성화되는 이 사회장과 공통장을 약탈한다.

댓글전쟁

거리투쟁은 소강하지만 댓글투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댓글정치는 논리정치가라기보다 정동정치다.
댓글전쟁은 계급전쟁을 직간접적으로 투영한다.
이 정동전쟁의 첨병이 점차 비정동적 로봇으로 되고 있다는 점, 공감과 비공감이 비공감적 로봇에 대한 것으로 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만질 권력의 종말

최영미 시인의 ‘괴물’, En 선생은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진다.”
함덕 서우봉 입구 작은 말목장 입구에는 “만지지 마세요”라고 씌어 있다.
강형욱은 개를 (눈으로) 쳐다보지 말고, (입으로) 말 걸지 말고,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권한다.
미투 운동과 더불어서 여성을 만지고 말을 만지고 개를 만지는 남성인간, 즉 맨(man)의 시대에 조종이 울리기 시작한다.
쳐다보는 권력, 말하는 권력도 자신감에 넘치는 당당함을 잃고 두리번거리고 말을 더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