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장 감수성의 징후와 예술인간-예술체제의 동선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의 증언투쟁을 중심으로

맑스코뮤날레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발표개요 : 2019년 5월 25일 오후 1시~3시, 서강대 정하상관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정치적 배경

2002년 월드컵 서포터즈(응원부대) 레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권력장을 ‘대~한민국’이라는 국민 공통장으로 재구성하려는 다중의 욕망을 표현했다. 2008년 촛불봉기는 공통장으로서의 대~한민국이 헌법1조에 어렴풋이나마 이미 규정되어 있는 형상임음을 발견한다. ‘대한민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 헌법규정은 ‘주권이 자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자본공화국’의 현실과 상충하는 상태에 있었다. 수 개월간 메트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촛불봉기는 국가가 자본의 이익(자유무역)을 위해 광우병이라는 반생명적 질병을 도입하는 것에 무심하다는 사실을 고발하면서 이 상충과 모순을 축소하고 ‘공통장 대~한민국’을 회복하려는 투쟁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현실의 대한민국의 행정, 입법, 사법, 언론 등의 권력부(府)들이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수장시키는 기관이며 이것들이 이윤중독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기둥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때 다중들의 공통장 감수성은 미안함, 즉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로 나타났다. 그것은 자신들도 그 체제에 한 발이 묶여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감의 정동이었다. 2016년에 이르러 2년간의 세월호 진실규명 투쟁에 의해 정부가 국민다중이 아니라 대자본에 의해 섭정되고 있음을 발견한 촛불국민들은 생명 공통장을 자본에 갖다 바치는 박근혜 대의정부를 퇴진시키고 대~한민국을 다중의 촛불공통장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그 최초의 성과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촛불 섭정을 통해 달성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파면이고 그 두번째 성과는 차기정부가 촛불정부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촛불정부라고 말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2018년, “내가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법조계, 정치권,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터져나온 미투운동은 사회 및 생활 곳곳에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성폭력 체제를 가시화했다. 그것은 이른바 ‘촛불정부’가 남북관계, 한미관계, 적폐청산, 권력기관 혁신, 소득분배 등 몇몇 영역에서 거둔 일정한 개혁성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폭로이고 도전이었다. 촛불혁명 이후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이 대중적 폭로와 거부는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대한 전면적 여성 대중봉기의 형태로 나타났다. 미투(me-too)는 ‘미(me)’라는 특이점의 성폭력 체험과 그에 수반되는 아픔을 공통의 것으로 만들어 반-성폭력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투쟁이었다. 이것은 여성에게 보편적인 체험들을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특수한 수치(羞恥) 체험으로 만들어 온 권력장의 개별화 및 분할지배 테크놀로지에 대한 집단적 거부와 연합을 표현했다.  위드유(“당신과 함께”) 운동은 이 미투봉기 공통장에 대한 연대 감수성의 표현방식이었다.

미투위드유 봉기가 다중의 섭정정치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2018년 2월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적폐로 규정하고 국가기구로 하여금 그것을 청산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이 섭정운동의 본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내건 적폐청산의 틀 속에서 미투위드유 운동으로부터 제기된 장자연 사건 재조사 국민청원을 받아들여 2018년 4월 2일 장자연 사건을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사전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5월 28일 검찰에 이 사건의 재조사를 권고했다. 이것은 미투위드유를 통해 구축된 반성폭력 공통장이 권력장의 성폭력적 구조를 개혁하도록 압박하는 섭정 사례이다.

윤지오의 증언투쟁

윤지오는 장자연과 함께 연예기획사 더콘텐츠에 소속되어 일했던 계약직 연예노동자였다. 그의 꿈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꿈과 달리 계약기간 중 그의 노동력은 다중을 위한 연기가 아니라 권력자들을 위한 성적 서비스노동(식사 및 술 접대)으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더콘텐츠와 체결한 계약은 그러한 노동을, 연예활동 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이미지만 실추되고 영영 배우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그는 기획사 대표에게 다른 소속사에서 연예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계약 중도해지에 대한 반성문 및 600만원의 합의금을 지불한 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의 사망과 장례식 후 장자연이 남긴 문구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윤지오는 “나의 언니 장자연이 왜 죽어야 했나?”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들의 난망(難忘)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감수성의 한 걸음 진전된 발현이었다. 그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유장호와의 통화들을 녹취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한편 봉은사에서 본 문건 및 리스트의 사본과 원본에 대해 진술했다. 이후 그의 삶은 윤지오로서가 아니라 장자연의 동료배우로, 그리고 장자연 문건/리스트에 대한 증언자로서 규정되었다. 여러 차례의 경찰, 검찰, 법정 증언에도 불구하고 장자연과 자신이 겪었던 부당한 대우(노예계약)에 대해서는 인정되지 않았고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힘센 자들’인 방사장 일가는 무혐의처분되고 ‘리스트’는 수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처벌은 겨우 기획사 대표들인 김종승, 유장호를 가볍게 처벌하는 것에 머물렀다. 이것이 그에게는, 언론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흐지부지 덮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기관들이라는 것을 경험한 배신과 각성의 시간이었다.

9년 후인 2018년 한국에서 일어난 미투 봉기와 위드유 운동의 물결은 그에게 성폭력 체제와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제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주었다. 이 기대 때문에 그는 2018년 여름 PD수첩 <故 장자연>의 인터뷰에 응했고 과거사 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증언자 요청을 계기로 마침내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증인으로 나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윤지오는 권력이 장자연의 죽음에 대해 지난 10년간 구축해온 지배적 이미지(‘우울증-유서-자살’)에 도전하는 특이점으로, 반성폭력 공통장의 실제적 첨점으로 부상했다. 그는 한국으로 와서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희천의 성추행 현장에 대해 증언했다. 윤지오의 증언을 근거로 조희천은 기소되었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이 실제적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다. 이것은 2019년, 그 존재에 대해서는 유장호, 장자연 오빠, 윤지오가 공히 진술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았던 ‘장자연 리스트’의 일부 내용을 증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권력자들의 성폭력 행위 가능성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폭력 체제 권력장과 가해자들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 반발은 아마도 재계,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 등의 저 ‘힘센 사람들’(장자연), ‘법 위의 사람들’(윤지오)로부터, 그리고 그 체제와 인물에 의존하고 있는 익명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것이었다. 이것은 증언자가 아닌 사람들은 경험하기도 실감하기도 힘든 실제적 압력이었다.

윤지오는 이것을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택했다. 지금까지 그는 수사기관 진술증언과 언론 인터뷰에서 가명과 모자이크 처리된 가면을 사용했지만, 이제 그는 가림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 대신 실명과 실면을 공개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호장치를 필요로 했다. 첫째로 그는 생존방송(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대중의 시선에 노출시켜 그 시선이 자신의 신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한편 다수의 사람들과의 집단적 이동 및 회견을 통해 신체를 집합화함으로써 물리적 백래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둘째로 그는 국가에 대해 자신의 개인 행동 시간에 대한 경호를 요청하고 이를 제도화할 수단으로 증인보호법 제정을 국민청원했다. 이것은 진실규명을 위한 핵심장치로서 진실증언자에 대한 국가보호를 확고히 하려는 섭정노력의 표현이었다. 또 그가 “5대 강력범죄에 속하지 않는 범죄의 증언자, 목격자, 제2의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24시간 경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조직하고 후원계좌를 개설한 것도 반권력 공통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이 두려움 없이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국가 지원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이것은 체험한 사람만이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필요였고 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실천이었다.

그는 증언의 범위와 대상도 넓혔다. 지금까지는 주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의 진술증언의 형식 속에서 수사관, 법관, 기자가 그 증언의 대상이었지만 그들이 진실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행위자들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JTBC, 다스뵈이다, 고발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한 실시간 인터뷰 증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중들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좀더 직접적 앎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도 다중들에게 이 사건에 관해 직접 증언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19년 3월 7일 장자연 10주기를 맞아 <13번째 증언>을 출판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증언에 확고부동한 물질적 실체를 부여했고 그 물질성을 통해 다양한 유언비어들을 잠재울 수 있는 실효적 장치로 기능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경찰, 검찰, 법관, 진상조사단 등 엘리뜨의 수중에서 검토되고 자신들의 계급적 신분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인용되어온 그 증언들을 다중이 직접 읽고 검토하면서 아래로부터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다중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것들이 윤지오가 권력장 가해자들에 맞서 실명, 실면의 증언을 하기 위해 ‘영리하게’(smartly) 선택한 물질적이고 실천적인 장치들이었다.

성장하는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기 위한 백래쉬의 방향과 양상들

진실 공통장을 확대하고 아래로부터 다중의 참여를 불러내기 위한 윤지오의 이러한 ‘영리한’ 시도가 반발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권력장과 공통장의 적대라는 우리 사회의 배치구조를 고려할 때, 그리고 다중지성 공통장의 특이점들(2008 촛불의 미네르바, 2014 세월호의 홍가혜, 2016 촛불의 혜경궁김씨)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장의 백래쉬 공세는 윤지오의 증언 자체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많은 사실들이 그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던 권력형 성범죄는 장자연의 죽음이 어떤 구조 속에서 전개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짐작케 하는 살아 있는 물증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백래쉬는 증언보다는 윤지오라는 증언자/메신저를 겨냥해서 주로 이루어졌다. 증언자를 관종, 패륜아,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만드는 여론몰이가 그것이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공세는 한국 사회 가부장제의 대리인격체인 ‘아버지’로부터 가해진 폭력이다. 이 폭력은 <13번째 증언> 출판 직후인 3월 8일에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딸이 장자연 사건에 증언하는 것에 반대했고 성과도 없이 끝날 그 증언이 어리석은 것임을 가르쳐주고자 했다. 이것은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가내수행자인 가부장이, 자신의 딸이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면서 권력자들에게 성적 서비스 노동을 수행한 것을 공개리에 대중 앞에 발설할 때 그 증언들이 지금까지 늘 진실이 흐지부지되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역사적 직관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그 숨은 이력의 공개증언을 가문의 수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사(私事)화하고 특수화하는 관점에서 나올 수 있는 통념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양식이다. 가부장의 폭력은 보통 가족 구성원을 자신의 재산으로 또 노예(실제로 가족의 영어표현인 family의 어원 famulus는 ‘하인’, ‘노예’라는 뜻이다)로 간주하고 그 구성원의 행위가 자신의 뜻과 위배될 때 가부장이 행사하는 처벌형식이다. 가부장은 가문의 보존과 안녕(安寧)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무릅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뜻에 거스르면 처벌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인데, 국가는 가정에서 가부장(혹은 그 대리인들)의 이 사적 처벌 행동에 최대한 덜 관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돕고 그것과 동맹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제 가족을 자신의 세포기관으로 포섭한다.

두번째 공세는 권력자들과 깊게 결부된 미디어들로부터 가해져왔다. 예컨대 윤지오의 증언이 사회적 설득력을 강하게 얻어서 국회에서 윤지오가 여야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날(4월 7일) 뉴시스는 이후 지속될 반윤지오 공세의 밑그림과 가이드라인(“‘증인’ 윤지오와 장자연 사건”)을 권력장 행위자들에게 제공했다. 그것은 다음 다섯 가지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1)윤지오는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 2)윤지오는 고비용의 과도한 경찰보호를 받으며 생활중이다 3)윤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장자연을 이용하여 팔로워 76만명이 넘는 SNS 스타가 됐다 4)윤지오는 장자연을 이용하여 후원계좌를 열어 돈을 벌고 있다 5)윤지오는 거짓 증언을 했으며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이것들은, “윤지오가 친하지도 않았던 장자연에 대한 거짓 증언을 이용하여 유명세와 돈을 버는 사기행각을 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으로 윤지오를 ‘제2의 왕진진(전준주)’으로 만들어 추락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세번째 공세는 <13번째 증언>의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린(4월 14일) 직후에 박훈-김대오-김수민 반윤지오 트리오로부터 가해져왔다. 이들은 변호사, 기자, 작가라는 전문가 지위를 윤지오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이용했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보면 이미 뉴시스에 의해 생산된 반윤지오 가이드라인을 자신들의 입지에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었다. 박훈은 2010년 유가족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예로 들며 윤지오가 가해자의 편이지 장자연과 그 유가족의 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대오는 장자연 문건 ‘원본’에는 ‘리스트’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수민은 공적으로 알려진 윤지오는 자신이 사적으로 알고 있는 윤지오와는 다른 위선적 윤지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들의 결합체는 윤지오를 관종, 위선자,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실제로는 가해자 편이면서 장자연을 위하는 것처럼 연극하여 사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번째 공세는 가족, 미디어, 전문가로부터 가해진 앞의 세 유형의 공세를 유튜브, SNS를 통해 다른 형태로 무한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언어폭력과 결합시켜 윤지오의 인스타그램과 라이브방송에 퍼붓는 우/극우 세력들의 연합적이고 집중적인 디지털 테러공세로 나타났다. 이것은 justicewithus와 같은 디지털저격수, 무수한 댓글로 공격하는 디지털소총부대, 심지어 윤지오 지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은밀히 공격을 퍼붓는 디지털 편의대 등을 포함하는 다방면의 조직적 공세였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윤지오를 여자-왕진진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 떼몰이 공세에 사용되는 언어들이 곰곰이 살펴보면 어떤 근거도 없는 거짓말, 지어낸 소문, 모욕 등이지만 그것들이 사실의 편린들과 결합하여 폭발성 있는 디지털 화약으로 기능함으로써 이 공세는 지배계급이 필요로 하는 낡은 감정질서 및 인지프레임을 선동적으로 재생산하면서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고 권력장의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 언어화약들은 진실의 편린들과 낡은 도덕감정, 그리고 가짜뉴스를 마구 버무려 만들어 낸 폭발물이었는데 이것들이 기술적으로 조직되고 반복적으로 사용되면 여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재확인해 되었다. 그것의 효과는 미투-위드유 운동 이후에 윤지오의 증언에 의해 성장되어오던 반성폭력 공통장이 균열되어 그 일부가 권력장에 재포섭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장자연 사건을 다루는 과거사 진상조사단 내부의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어떤 언론은 이것을 ‘국론 분열’로 표현했다.

예술인간-예술체제의 특이점과 그 동선

백래쉬로 나타난 권력장의 이러한 재포섭 전략에 대항하는 투쟁들은 어떠했는가? 권력장의 수복을 위한 반윤지오 공세가 개시된 후 그 전에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지지하고 뒷받침했던 언론들과 인사들의 상당부분은 방어를 하기보다 뒤로 물러나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주로 친문 언론들이 그런 태도를 취했다. 이것은 아마도 윤지오에 대한 법적 조력이 반문-비문 경향의 정의연대로부터 나왔다는 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윤지오 증언의 힘을 살려 내고 지키는 투쟁은 제도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의 전적으로 비제도 성폭력 공통장 다중으로부터 주어져야 했다. 이 투쟁은, (1)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 (2) 반성폭력 공통장의 첨점이자 특이점인 윤지오를 지키기위한 투쟁  (3)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 그리고 (4)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 등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은 그 주장들이 근거 없는 풍문이나 사실에 대한 편협한 해석과 오판, 혹은 과잉된 비난 욕구 등에 의해 조작된 것들임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래쉬 주장들은 특히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장자연의 죽음이 개인적 문제이거나 기껏해야 소속 기획사의 문제이지 성폭력 권력체제나 권력자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여 그 체제와 가해 당사자들을 방어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 주장에 대한 사실 검증투쟁은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했음을 확인하는 투쟁으로 나타났다. 이민석 변호사와 JTBC 이호진 임지수 기자 등의 노력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SBS <그날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장자연의 녹취육성도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에서 조사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처럼 장자연이 ‘힘센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압력을 육성으로 표현한 것, 윤지오가 유장호와의 통화내용을 녹취하여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서 명단과 목록이 거론된 점, 2009-10년 사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진 진술서(유장호, 윤지오, 장자연 오빠)에 ‘조심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 등이 진술된 점 등이 장자연의 실재성을 증거하는 물질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었다.

윤지오 지키기 투쟁은 반윤지오 백래쉬를 성폭력 체제의 자기방어와 재생산을 위한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마녀사냥식 공세에 대한 방어를 수행하는 한편 마녀사냥에 의해 입게 된 윤지오의 심리적 정신적 상처를 정서적 인지적 유대를 통해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윤지오가 청원한 증인보호법에 동의서명하고 증인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등에 참여하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은 정의연대와 녹색당 등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들 시민단체와 원외 정당은 지난 10년간의 수사가 부실수사로 드러났고 조선일보 등에 의한 수사방해 외압이 실재했던 만큼 철저한 재수사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이미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기존 검찰이 아니라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이었다. 윤지오는 4월 24일 백래쉬가 폭발하던 시점에 캐나다로 몸을 옮겨 자신의 신체를 보호한 후, 인스타그램 포스팅과 라이브방송을 중심으로 방어투쟁을 전개했다. 이것은 배우지망 신인 예술가였던 윤지오가 증언자 윤지오를 거쳐 예술인간 윤지오로 변모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것은 성폭력 체제가 자신을 관종으로 이미지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자신을 예술인간으로 내세우고 예술인간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그 시도들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째는 권력장과 그 파수꾼 및 십자군들을 향한 것으로 이들의 마녀사냥식 인신공격 디지털 테러의 범죄성을 고발하는 것이었다(선처 없는 처벌).

둘째는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는 공세에 대해 자신의 존엄함과 떳떳함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누구나의 특이성과 존엄성(당신들은 놀랄 만한 존재이다. 스스로 자신을 믿는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을 주장하고 연합한 특이자들의 힘(시민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넷째는 요리 식사 잡담 등과 같은 생활시간을 투쟁과 연합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라이브방송)

다섯째는 투쟁을 음악, 만화, 일러스트, 시, 에세이 등의 예술형식들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여섯째는 투쟁을 유머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일곱째 이러한 예술인간적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증인보호법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했고 증인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의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고펀드미의 펀딩을 해제하여 펀더들에게 모두 되돌려줌으로써 박훈의 사기죄 고발을 무력화시키고, 후원금을 착복했다는 비난에 대해 1원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디지털 댓글테러에 대한 처벌을 통해 받을 벌금을 <지상의 빛> 후원금으로 돌리겠다고 말하고,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기사, 에세이, 자료들을 지지자들과 공유하여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친권력담론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라이브방송을 통해 시민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지속하고, 좋아하는 음악의 교류를 통해 취향공통장을 확대해 나갔다. 또 진상조사단의 행보나 발표를 비롯하여 장자연 사건 조사 관련 발언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여 지지자들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예술인간적 실천이었다. 가족을 욕되게 한다는 비판에 맞서 그는 가부장제 전통이 말하는 혈연적 제도적 가족이 아니라 오직 현실에서 삶을 함께 나누는 특이자들의 모임(assemblage)만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족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족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전통적 가족주의의 후진성과 억압성을 고발했다. 또 고인을 욕되게 한다는 비난에 맞서 그는, 살아생전에 장자연을 알지도 못했고 고인이 된 장자연의 진실규명을 위해 삶의 단 한조각도 나누지 않은 ‘자격 없는 자’들이 산 장자연을 이용한 권력자들에게 고인을 다시 갖다 바칠 목적으로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자가당착적 구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맞섰다.

자신을 관종으로 왜곡하고 사기꾼으로 범죄화하려는 성폭력 체제와 가해의 권력장에 대항하는 이 자기방어투쟁의 과정 속에서 윤지오는 권력장의 영토를 해체하여 공통화하는 투쟁의 예술인간 특이점으로, 삶예술의 비전문가 배우/행위자(actor)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에서 공통장을 가시화하고, 지키고, 확장해온 것은 지금까지 권력이 ‘폭도'(광주의 항쟁시민들), ‘허위사실유포자'(미네르바), ‘허언증환자'(홍가혜) 등으로 불러, 죽이고 가두고 고립시켰던 사람들의 예술인간적 행동들이었다. 윤지오의 이 예술인간 증언행동도 이러한 역사적 비운을 피할 수 없을 것인가? 아니면 이 역사적 비운을 비스듬히 비켜가는 동선을, 사선(斜線)의 도주로를 열 것인가?

마녀사냥의 암구호들 1: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


산사람을 이용한 자들이 죽은 사람도 이용한다

장자연은 배우가 되고 싶었고 배우를 하고 싶었다. 신인배우가 되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권력자들에게 성서비스 노동을 강요당해야 하는 억울함을 견뎌야 했다. 소속사 사장 김종승(갑)과 맺은 노예계약 때문이었다. 윤지오의 계약서와 동일한 그 계약서에서 장자연(을)은 “연예활동 전반에 걸쳐 ‘갑’의 결정 및 지시에 충실히 따라야”(3조 바) 했고 “방송활동, 프로모션, 이벤트, 각종 인터뷰 등 ‘갑’이 제시하는 활동에 전적으로 수락하여야” 했으며 “행사불참 또는 방송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을’은 ‘갑’이 제시하는 민, 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4조 다). ‘갑’인 김종승의 결정에 따라 지시된 성적 서비스노동은 ‘갑’에 의해 “[방송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의 기회로 해석 및 주장되었고 계약에 따르는 의무적 활동으로 강제되었다. 이러한 노동이 부당하게 느껴져 중도해약하고 싶을 때에는 “위약벌금 1억 원과 ‘갑’이 ‘을’을 관리하기 위해 발생한 비용 중 증빙자료가 있는 모든 경비에 대하여 ‘을’은 이의제기 없이 계약 해지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현금으로 ‘갑’에게 배상하고 잔여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모든 수익활동의 20%를 ‘갑’에게 손해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7조). 그러한 악조건의 중도해약마저 ‘갑’의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6조 가). 또 ‘을’이 연예활동을 중단한다 해도, “그 기간만큼 계약기간은 자동연장”(3조 바)되도록 되어 있었다. 장자연이 체결한 계약서는 ‘갑’이 계약기간 중 철저하게 노예소유주로서 노예노동자인 ‘을’을 이용할수있는 조밀한 장치들을 빈틈 없이 갖추고 있다. 소속사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장자연의 희망을 이용하여 그의 생명력을 쥐어짜는 맷돌이었고 그 생명 에너지의 이용자=소비자는 재계,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연예계의 권력자들이었다. 이것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성폭력 권력이 가동되는 메커니즘이었다.   

장자연은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고 이 상황에서, 기회가 있다면, 빠져나오고자 했다. 그런데 그가 이 강제수용소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노예노동수용소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장자연의 필사적 저항과 탈출의 시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연예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 마약, 폭력, 협박, 강요, 수탈, 착취, 부당이용의 사례들을 낱낱이 적시하여 보여주고 자신을 이용한 권력자들, ‘조심해야 할’ 권력자들의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인지자본주의가 어떻게 여성들의 예술적(연예적) 능력과 성적 에너지를, 요컨대 생명력을 착취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폭로했고 그 착취를 수행하는 인격적 행위자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폭로행위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작게는 연예계에서 고립되어 더 이상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할 수 없게 될 위험으로부터 크게는 초법적 권력자들의 손에 가족들이 큰 피해를 입거나 자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폭로의 필요와 그것이 가져올 위험 사이에서 장자연의 고뇌는 깊었다. 김종승 기획사와의 싸움에서 장자연의 폭로 문건을 자신의 기획사에 유리하게 이용하고자했던 유장호가 삭제를 요구해야 할 만큼 권력자들의 성범죄 행위에 대한 장자연의 폭로 의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그 폭로문건이 기획사들의 소송전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발견한 후에 그는 그러한 위험을 막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유장호에게, 그 문건을 자신의 의지 밖에서 불법적으로 유통시키지 말고 그 문건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유장호는 그 요구를 묵살한 채 자신의 유통행보를 계속했다. 이 시간, 그러니까 2009년 2월 28일 장자연이 문건과 리스트를 작성한 후 약 일주일 뒤인 3월 7일 주검으로 발견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힘도 없고 빽도 없고 미련도 없다”며 자신을 옥죄어 오는 ‘힘센 자들’에 대한 절규를 표현한 절박한 통화기록이 그의 심경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업가들과 권력자들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계약상의 ‘갑’인 김종승이 그를 노예노동자로 이용했고, 권력자들은 김종승을 매개로 그를 성노예로 이용했음은 분명하다. 김종승은 수사기관에서 유장호의 기획사가 자신과의 싸움에 장자연을 이용했다고 진술한다. 이상호는 이명박의 국정원이 장자연의 죽음을 당시의 법란(판사파동)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장자연 문건 및 리스트의 공개와 은폐의 과정에 유장호를 매개로 개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장자연이 죽기 전에 남긴 문건과 리스트조차도 정치적 이용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윤지오가 증언을 시작하자마자, 아니 증언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윤지오는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누가 장자연을 죽였는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에서 증언하는 것이 물론 고인을 생물학적으로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증언은 고인이 현대 자본주의의 가부장적이고 노예제적인 성폭력 체제에 저항하다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된 인격임을 밝히고 가해자와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고인의 존엄을 되살릴 수 있고 존엄의 체제를 구성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윤지오의 증언은 고인 장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 자신이 고인 장자연을 빙의하여 말하는 것으로 증언자 윤지오의 생명을 고인 장자연과 산 장자연들을 위해 이용하는 우애와 선물의 행위이다.

그렇다면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이름을 남긴 권력자들 및 그 권력자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체제는 증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그들이 그 이름들과 체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생리상 당연한 것이다. 그 이름들과 체제들이 성착취자, 성범죄자, 살생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또 법률적 수사와 재수사를 받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윤지오의 증언을 막아야 했다. 증언을 막는 것은 다양한 수준의 목표지점들을 갖는다. 첫째로는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둘째로는 증언을 막지 못한다면 증언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셋째로는 증언을 축소시키지 못했다면 증언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넷째로 증언을 왜곡시키지 못했으면 증언자를 쓰러뜨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윤지오의 생존방송과 경호요구, 증언자보호법 청원, 비영리단체 구성 등의 노력은 증언을 끝까지 수행하면서 증언의 원천봉쇄, 축소, 왜곡의 시도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었다. 권력자들이 증언자를 쓰러뜨리는 방법에 총력을 다한 것은 증언이 끈질기게 진행된 후 선택한 최후의 방법(윤지오는 이것을 ‘최후의 발악’이라고 표현한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권력자들이 이 최후 대공세에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권력자들과 그 파수꾼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장자연을 ‘어머니 기일’에까지 이용한 자들이며 죽은 후에도 이용한 자들이다. 이들은 타인노동의 착취(이용=exploitation)를 자기재생산의 본질로 삼는 자본주의의 권력자들이고 체제의 대행자들이다. 이제 이들은 ‘고인’이라는 이름으로 장자연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영구화하면서 증언자 윤지오의 목소리로 귀환하고 있는 장자연의 절규를 다시 땅속 깊이 파묻으려 한다. 세월호의 생명을 수장한 바로 그 반생명적 죽음의 권력이 댓글, 고소, 고발, 보도, 유튜브 채널, 페이스북 등 온갖 수단들을 동원하여 윤지호의 증언을 아귀(餓鬼)들의 소음 속에 파묻는다. 이것은 윤지오의 목소리로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 장자연의 절규, 그 문건과 리스트를 영원한 침묵과 어둠 속에 파묻는 여론장(與論葬)의 행렬이다. 박훈, 김대오, 김수민 트리오와 강용석, 김용호의 가로세로연구소 등이 보조를 맞추면서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고 부르짖으면서 윤지오의 은행계좌를 뒤져 불순한 기록들을 찾으려 하고 가족관계에 있는/있었던 사람들을 이간시켜 증언자를 비난하도록, 혹은 그 비난이 널리 유통되도록 도울 때 이들이, 고인이 된 장자연이 영원히 죽어 있도록, 장자연의 절규가 영원히 잊혀지도록, 고인의 주검을 결코 부활할 수 없는 죽은 시신 그대로 이용하려는 주검정치(necropolitics)의 집행위원들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이들의 이러한 행보가 본인들이 의식하건 못하건 간에 거대자본의 분식회계, 차명계좌, 자금도피, 투기놀음 등의 경제범죄와 각종 유형의 성범죄를 은폐하는 가림막이며 생명을 위한 촛불행진을 가로막았던 2008년 광화문 ‘명박산성’의 현재태라고 생각한다.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3)

윤지오를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기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박훈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것을 그는 ‘가지치기’라고 부른다)이다. 2009~2010년 사이에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최소한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유장호이고 또 한 사람은 윤지오이다. 이 중에서 유장호는 장자연 사건의 이해당사자로서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증언할 의지가 불분명한 사람이다. 이것은 최근 진상조사단 비공식조사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장자연의 진술을 자신이 지우라고 했다고 말했다가 보름 뒤에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장자연 리스트를 증언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윤지오가 남는다. 그러므로 박훈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기만 하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은 부정될 수 없는 타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박훈의 일차적인 방법은 윤지오 스스로 보지 못했다고 자백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4월 21일까지 박훈은 이 방법에 주력한다. 

그는 4월 16일에 세상에 이미 알려진 4장짜리 장자연 문건을 자신의 수타로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이것이 현존하는 “장자연 문건”의 전부임을 선언한다. 그 현존하는 문건은 유장호가 보관하고 있던 사본의 일부로서 KBS가 입수, 보도한 것이다. 

박훈은 윤지오가 문건을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장례식장(3월 7-9일)에서 소각되었으므로 윤지오가 3월 12일에 봤다고 한 것은 거짓일 것이라고 쓴 바 있다. 그는 4월 16일에야 사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고 윤지오가 맞았음을 비로소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3월 12일에 봉은사에서 소각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지오가 그 문건들을 봤다는 것까지 인정하지는 않는다. “아뭏든 보지 못했을 수 있다”며 의심을 지속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발견하고도 왜 저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4월 13일에 쓴 박훈의 글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 자가 왜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인가? 장자연 문건을 봤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유일하게 말을 한 사람이 윤지오다. 그러나 장자연 문건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아무도 아직까지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거대한 권력의 압박을 받아서? 누구 말대로 국정원 공작 때문에? 아님 고인을 위해서?)

이 글에서 박훈의 주장은 단 하나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선 윤지오는 ‘유일한 목격자’를 주장하지 않는다. <13번째 증언>의 표지와 목차에 ‘유일한 목격자’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지만 이것은 윤지오의 인식이 아니라 출판사의 인식과 의지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윤지오는 여러 차례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 ‘유일한 증언자’라고 말해야 했다. 장자연 문건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여럿이다. 윤지오 외에 유장호, 스타일리스트 이00, 유가족, 그리고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유장호의 경호원’ 등이 있다.  둘째로 문건의 내용에 대해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고 오직 윤지오만이 말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거짓이다. 문건의 내용은 KBS 보도를 통해 이미 대중에게 공개된 터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구분하지 않고 혼란스럽게 이야기하는데, 리스트를 본 사람은 정황상으로는 유장호, 경호원, 윤지오, 유가족인데, 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말한 사람은 유장호와 윤지오(그리고 장자연의 오빠)이고 그 내용에 대해 말을 한 사람은 윤지오가 유일하다.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고 리스트에서 문건으로, 문건에서 리스트로왔다 갔다 한다. 이 혼란을 벗어나려면 문건과 리스트가 있고 문건과 리스트를 장자연으로부터 받았거나 함께 작성한 유장호가 문건만을 보여준 사람과 문건과 리스트를 다 보여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월 18일 박훈은 여전히 문건과 리스트를 혼동하면서 이런 질문을 윤지오에게 던진다.

“님이 본 장자연 문건에 4,50명이 있었는데 그게 2009. 3. 12. 봉은사에서 유장호가 보여줬다는 것에 있었는지요? 님이 본 것이 진짜 봉은사에서 본 것이 맞는지요.”

윤지오는 이미 10년 전의 수사기관 진술에서, 박훈의 질문에 답했다. 유장호가 넘겨준 문건과 리스트를 봉은사 차 속에서, 그리고 소각 시에 봤다고. 이미 진술되어 있는 것을, 그리고 유장호와 유가족 진술의 교차검증을 통해 확인된 사실을 왜 묻는 것일까? 윤지오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강변하기 위한 것이다.

4월 19일에 박훈은 드디어 “장자연이 직접 작성한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리스트가 무엇인지, 어디서 봤는지도 자신은 알고 있고 누가 작성했는지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 리스트는 누가 작성한 리스트이며 [윤지오가] 어디서 봤다는 것일까? 같은 날 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은 이것이다”라는 제하에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실은 장자연 계좌로 수표를 입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경찰이 리스트로 작성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즉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고 리스트라 불리는 것은 사후에 경찰이 작성한 수표송금 리스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윤지오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 서류에 있던 “그 명단이나 수사 대상자로 올린 50여명의 리스트를” 우연히 “잠깐” 봤을 개연성은 있다.’고 쓴다.

윤지오의 말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가능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쓴 소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4월 16일 작가 김수민이 술자리에서 새벽에 윤지오로부터 들었다며 한 이야기가 주요 구성요소로 차용되고 있는데, 그 이야기에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수사기관에서 우연히 봤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는 3월 12일 윤지오가 녹취하여 제출한 유장호와의 통화기록에 등장하는 장자연 관련 ‘목록’이라는 말, 그리고 유장호와 윤지오가 10년 전에 이미 일관되게 진술하는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명단’에 관한 진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이미 물질화되어 존재하는 진술문서를 외면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상상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뒤인 4월 20일에도 그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봤다면 그것은  ‘경찰이 작성한 “수사대상자 리스트”, “장자연 수표 리스트”, 아니면 “전준주 리스트”다.’라고 씀으로써 자신의 가상의 시나리오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내세울 뿐, 장자연 리스트의 부재에 대한 어떤 신뢰할 만한 분석이나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라는 윤지오의 반격

이 때는 이미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발언들이 윤지오의 증언들을 뒤흔들기 시작한 때이다. 박훈은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질문에 대한 윤지오의 최초의 응답을 올리는데 그 응답에서 윤지오는 박훈을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로 묘사하고 ‘헛소리 하려거든 본인 일기장에 하고, 자신의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라’고 말한다. 왜 윤지오의 응답이 이렇게 거칠었을까? 그것은 박훈이 증언자 윤지오를 증언과는 상관 없는 문제로 인신공격하여 그의 증언행동을 실추시키고 인격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모독들인가?

첫째로는 장자연 사건 관련 재판에서 윤지오가 가해자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노래나 춤을 추게 된 것도 강압적이 아니었다”)을 했다는 비난이다. 윤지오는 김종승과 관련하여 두 번 진술했다. 한 번은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래나 춤을 추는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고 김종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고(2009) 또 한 번은 김종승이 자신[윤지오]에게 ‘강압적으로 춤을 추게 했는가’라는 물음에, ‘강압은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2010). 그런데 후자가 판결문에서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로 인용되고 박훈은 이 판결문에서 윤지오가 가해자를 편들었다는 이미지를 끌어낸 후 윤지오 공격에 사용한다. 윤지오의 대답은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고 후자만을 맥락에서 떼 내어 읽으면 윤지오가 가해자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구조적 압력과 직접적 압력을 구분해서 접근하면 이 진술은 윤지오 내부에서는 일관된 것이다. 두 번의 진술을 통해 윤지오는, 김종승이 자신에게 직접적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계약서를 통해 구조적(계약적) 압력을 가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박훈은, 판사가 윤지오의 진술로부터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인용한 판결문만을 보고 윤지오가 가해자에게 유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윤지오는 장자연을 위한 증언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끌어낸다.

둘째로 박훈은 윤지오가 의문의 교통사고와 증언으로 인해 ‘법 위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위험을 언급할 때 그것을 “쇼”로 단정한다. 이것은 유튜버들과 댓글들을 통해 무한 재생산된 윤지오 악마화의 이미지다. 박훈이 이런 생각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 그의 주장대로라면 리스트를 수 도 없이 본 유장호와 김대오 (Dae O Kim) 기자는 이미 살해됐어야 했다. (실제 이들은 윤지오가 주장하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

마지막 구절,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라는 말이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했다. 분명히 리스트의 물적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오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유장호는 리스트를 보았고 그 존재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그 리스트의 공개를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 사람이고 이 때문에 ‘자신의 경호원’이라는 신분으로 유장호를 보호/감시했던 국정원의 협력자이거나 국정원으로부터 통제를 받는 사람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한 그가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두 사람은 윤지오와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박훈은 잘못된 비교를 통해 윤지오가 실제적으로 느끼는 위험을 허구화하고 위협에 대한 발언을 쇼라고 단정한다. 그는 윤지오가 왜 ‘혼자 법 위의 30명을(원래 4,50명 이었다) 상대”하는가?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질문하지만 그에 대한 악의적인 인격적 의심(거짓말쟁이, 사기꾼) 외에 어떤 진지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셋째로 박훈은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의심의 심리에서 출발하여 윤지오에 대한 경호를 혈세낭비로 규정하거나 윤지오의 후원계좌 개설을 돈벌이로 규정하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며 급기야는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멈춰세워햐 한다(“윤지오는 가고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만이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소, 고발, 그리고 변론의 자가당착

이러한 인신공격은 4월 23일 김수민을 대리하여 윤지오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법률행동으로 나타났다. 당일 기자회견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윤지오씨는 고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윤지오씨는 조모씨 성추행 건 이외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장자연 리스트 봤다” “목숨 걸고 증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그는 가상적인 자신의 시나리오를 근거로,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부정한다. 또 그는 윤지오가 거짓말로 후원을 받고 있다는 자신의 근거 없는 추정을 확립된 사실처럼 주장한다. 또 그는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면서 자신의 상상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밝혀졌다”는 말로 표현한다. 또 그는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면서 10년전의 진술증거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사실의 신빙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임의적 주장을 확인된 결론처럼 내세운다. 한 인격에게 결정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이러한 허구적 변론폭력이 과연 용납되어도 좋은 것인가? 

박훈은 말한다. “나아가 저를 비롯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해자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윤지오의 인격에 대한 공격과 고소고발 행위가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출 것이며 윤지오가 처벌을 기대하며 내놓은 ‘법 위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진술이 힘을 잃으리라는 것을 박훈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박훈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훈은 자신이 조선일보를 싫어하며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사회주의자라는 진보혁명가-제스쳐로 자신이 가해자의 편이라는 일련의 비판을 차단하면서 4월 26일 윤지오를 사기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이호진, 손석희, 노영희, 정지영, 안민석 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피력하는 것을 넘어 윤지오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반을 ‘윤지오한테 농락당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한심한 작자들’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순논리는, 박훈 자신이 ‘권력에 농락당하고 있는 한심한 작자’라는 역공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이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한다’는 비난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알렉산드로스인가 돈키호테인가?

증언자 윤지오를 향한 박훈의 이 돈키혼테적 돌진과 칼질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재수사의 무산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와는 달리, 그는 장자연 리스트의 매듭을 결코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삭제하는 방식에는 중요한 약점 즉 아킬레스건이 있기 때문이다. 박훈이, 유장호와 윤지오가 이미 10년 전에 수사기관에서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다고 말한 사실을 끝까지 외면한 것이 그것이다. 이미 확인된 진실을 외면한 것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변론을, 10년 전에 장자연 리스트는 물론이고 장자연 문건의 마지막 단 한 구절 외에는 문건의 내용도 형식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자신의 ‘기자친구’ 김대오(가 문건을 보았다는 가정)와 ‘작가친구’ 김수민에 기대서 끌어낸다. 그런데 김대오가 문건도 리스트도 전혀 본 적이 없으며 윤지오가 그것 모두를 보았다는 사실은 한국일보가 대중에게 공개한 ‘누가 장자연을 죽였나?’의 유장호, 윤지오 진술서 디지털 프린트물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진술서들이야말로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질적 흔적이며 가장 중요한 흔적이다. 윤지오의 진술들은 10여년 전의 진술들이므로, 오늘날의 진술처럼 거짓말이라거나 사기라거나 하는 잡음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장자연 리스트”의 흔적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설령 박훈을 비롯한 사람들이 윤지오를 도덕성의 심급에서 파멸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윤지오의 이 증언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다는 그의 증언의 진실가치는 불변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박훈이 이 진술을 알면서 모른 체 하는 지, 아니면 누구나 본 그 진술을 보지 않으려는 옹고집스러운 태도로 윤지오 죽이기를 위한 변론의 칼을 벼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의 이 물적 흔적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는 박훈의 칼질은 여론의 일시적 흥분을 이용하여 잠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코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라는 그 매듭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매듭을 푸는 힘겨운 과제는 진상조사단과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실규명의 의지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않을 수록, 더 분명하게 다중의 집단지성에, 촛불 공통장의 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끝]

특수강간죄 수사권고 없는 진상조사보고에 대한 윤지오의 생각에 대하여

진상조사단은 왜 재수사를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것을 포기했나?

사람들의 이목이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집중되었던 2019년 5월 13일.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김종승 위증혐의 고발, 수사과정에서 조선일보의 외압 인정 외에 핵심적 쟁점인 장자연 리스트와 성서비스노동 강요 및 권력자들의 성범죄 행위에는 과거 수사가 미흡했다고 했을 뿐, 재수사 권고 없는 진상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진상조사단이 이처럼 모호한 결론으로 재수사 권고를 회피하여 결국 김종승이나 조희천 같은 하위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요구에  머무르게 된 것에 대해 네 가지 사유를 들고 있다.

  1. 피해자가 사망했다
  2. 주요 인물들의 조사 비협조(소환불응)로 가해자 특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3. 핵심의혹인 술접대 성접대 강요 의혹 및 사회유력인사들의 성범죄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윤지오의 증언 외에 수사를 시작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지 못했다
  4. 리스트와 특수강간 문제에 관한 핵심 증인인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 이유들은 합당한 이유들인가?

첫째 피해자는 사망했지만 피해자가 남긴 문건이 확보되어 있으며 리스트에 대한 진술들이 있고 이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이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생존해 있지 않다는 것이 재수사 회피의 충분한 이유로 될 수는 없다. 둘째 주요 인물들의 조사 비협조가 가해자 특정에 어려움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특검과 같은 강력한 재수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셋째 술접대와 성접대 강요는 고 장자연이 문건에서 직접 친필로 호소하고 있는 범죄이며 문건에서 이미 조선일보 방씨 일가의 성범죄 의혹은 충분히 제기되었다. 물론 재수사는 공소시효를 요구한다. 

그런데 윤지오는 장자연이 술이 아니라 약물에 취해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에 대해 진상조사단과 “KBS1 오늘밤 김제동”에서 증언했으며 이외에도 진상조사단은 “장자연이 약물에 의한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것 같다는 여러 명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256927&code=61121111) 또 유장호도 진상조사단 비공식조사에서 “처음에 장자연 씨가 성폭행을 심하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문건에도 썼는데 자신이 지우라고 했”으며 “성폭행한 그 사람을 자신은 알고 있는데 이것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08701). 이러한 유형의 특수성범죄(특수강간, 강간치상)는 공소시효가 15년이므로 진상조사단이 의지만 있다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재수사를 의뢰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진상조사단은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는 것일까?

유장호는 위의 진술을 한 후 보름 뒤에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말을 바꾸었고 약물에 의한 성범죄 피해 가능성을 제기한 복수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유일하게 알려져 있는 증언자인 윤지오는 그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논란이 있기 때문에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진상조사단이 성서비스노동(술접대, 성접대) 강요와 권력자 성범죄에 대한 재조사 권고를 하지 않는 것의 최종적 사유는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 문제에서 찾아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지난 수십일 동안 한겨레, JTBC 등 극소수의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도언론들과 가로세로연구소를 비롯한 우파 유튜브,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SNS 사용자 등 한국 사회의 특정 세력들이 광기의 윤지오 마녀사냥과 윤지오 죽이기에 총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윤지오 검증론” 트리오의 표정들

특히 우리는 장자연 사건 진상 조사가 재수사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데 있어서 박훈, 김대오, 김수민 트리오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린 것은 뉴시스를 비롯한 제도언론이나 우파 유튜브, SNS가 아니라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는 조선일보를 싫어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거짓을 제거해야 한다”, “장자연 사건 진실규명과 윤지오 검증은 별개이다”, “촛불정권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 심지어 “나는 사회주의자이다” 등을 주장하면서 윤지오를 거짓과 사기를 단죄하는 단두대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을 역사의 무덤에 조용히 묻어두고 권력자들에게 활개칠 자유의 공간을 열어주는 데서 이들의 “공로”(?)는 반드시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5월 13일 진상조사단이 과거사위원회에 조사보고를 한 바로 그날 이들의 표정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박훈: 침묵

김대오: “입장과 의견을 떠나 과거사진상조사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최선이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수민: 그의 반응은 좀 길면서 두서가 없다. 그래서 그 반응의 일부를 발췌하고 그 밑에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주석으로 기록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의혹을 품고 있는/ 조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유일한 목격자 윤지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지오는 무엇을 증언하고 누구에게/ 신변 위협을 당했다는 건지”. 

::증언을 방해하는 세력들로부터 위협 당했으며 바로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린 사람들이 조사를 부실하게 만들었다.

“40-50명이 적힌 리스트를 봤다고/ 왜 거짓말을 친 건지/ 문건을 봤단 거랑 리스트를 본 거랑은/ 엄연히 다른 말입니다”. 

::맞다. 문건을 본 것과 리스트를 본 것은 다르다. 하지만 2009~2010년의 진술조서들은 김대오는 리스트를 못 보았고 윤지오와 유장호는 리스트를 보았음을 진술서라는 물적 증거로서 보여준다. 

“고인과 친분이 없는 나도 이렇게 초조하고/ 애타게 지켜보고 기다렸는데/ 모든 사람들이 오늘만을 기다렸을텐데/ 과거사위가 또 미뤘네요/ 문구를 다시 수정,보완 해서 발표 한다고 합니다”. 

::나는 과거사위원회의 이 고뇌 속에서, 장자연 사건의 조사발표가 몇몇 개인의 이해관계 문제를 넘어 정권의 존망, 체제의 존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과거사조사위원회 자신이 느끼고 있으며 결과 발표가 정권이나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보신주의적 세심함을 본다.

“근데 윤지오 씨는 오늘 목숨을 바쳐서 진술을 했던/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잊고 산 적이 없던/ 고인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는데/ 별로 관심이 없으셨나 봐요.”

::고인에 대한 수사 발표가 아니라 장자연 사건에 대한 강제력 있는 재수사 여부를 가늠할 조사발표다. …

윤지오의 눈, 윤지오의 힘

김수민의 생각과는 달리 윤지오는 5월 13일 진상조사단 조사발표에 대해 “약물과 성폭행..특수강간죄를 권고하지 않다니요”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반응글을 올렸다.

제 외에 추가 증언으로 증인들이 마약과 성폭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헌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요…/국민청원을 또 게재한들 바뀔까요?/ 특수강간죄가 권고되어야 공소시효는 이미 종료된 10년이 아닌 15년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핵심을 빼고 권고를 요청하다니요./이 모든 것이 몇몇 악의적인 사람들로 인하여 /가해자들은 웃는 세상이 되겠군요./자연언니를 위해서라더니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 좀 보십시오./정말 반드시 이들만이라도 처벌하여 반드시 다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김수민이 지금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의 정치적 효과가 “고인”을 위한다는 자신의 표면적 대의와 갖는 실제적 충돌과 모순을 외면하면서 윤지오 죽이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과는 달리 윤지오는 이 짧은 글 속에서 전체 상황을 통찰하고 이 상황에 참여하고 있는 각종의 행위자들의 동태와 이후의 과제에 대해 예리하게 발언한다. 그 요지를 열 가지 테제로 다시 정리해 보자.

  1.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의 과거사진장조사단의 조사발표는 핵심문제를 회피한 비열한 발표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2. 핵심문제는 가해 권력자들의 특수강간 성범죄를 처벌하여 제2, 제3의 장자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3. 처벌을 위한 재수사는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간죄에 대한 수사권고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4. 나[윤지오]도 마약과 성폭행에 대해 증언했지만 나 이외에도 이에 대해 증언한 증인들이 있고 특수강간죄목 수사권고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5.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미 확보된 증언들마저 외면하면서 가해자, 권력자들을 징치하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또 다시 국민청원을 한들 재수사가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6.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진상보고는 가해자들이 웃고 활개칠 세상을 보증해 준다.
  7. 과거사진상조사단이 특수강간죄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음으로서 장자연(들)의 고통과 눈물과 절규는 영구히 계속될 것이다.
  8. 이러한 결과는 몇몇 악의적인 사람들이 증언자 흔들기를 통해 증언 신빙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초래되었으므로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
  9. 고인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이들은 고인에게 영원한 침묵을 강요했다.
  10. 이들만이라도 처벌하여 (특수강간죄 공소시효가 남은 향후 5년 이내에) 장자연사건 재수사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조건을 만들자.

상황과 대안에 대한 이 명확한 통찰은 메신저 윤지오를 무너뜨리기 위한 온갖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너지기는커녕 아직 굳건하게 진실규명의 진지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진지를 혼자 지킬 수는 없다. 이 진지를 지켜내면서 그것을 어디나의 진지, 누구나의 진지로 사회화하고 지구화하는 일은 이제 누가 맡아 나갈 것인가?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2)

4월 10일 박훈은 다시 “윤지오 배우에게”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내 며칠 전 질문에 답이 없던데. 글쎄요. 그것이 이렇게 넘어갈 성질이 아닌 것 같은데요. 후원계좌 열고, 스토리 펀딩한 것 보고 제가 결정적으로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서 문제제기 한 것인데 제 질문에 답을 하시죠. 

님이 오히려 “술자리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증언 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니라고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님이 본 문건이 무엇이죠? 나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답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용은 그만 두고요. (8장짜리 최종본 봤어요? 14장짜리 초안 봤어요?) (4월 10일)

4월 9일의 질문은 4월 10일로부터 ‘며칠 전’이 아니라 ‘하루 전’이다. 나는 그가 윤지오에게 페이스북 포스팅 외에 어떤 경로로 실제로 질문지를 보냈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그가 페이스북 포스팅만으로 윤지오에게 자신의 질문이 전달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관념과 실제적 소통의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4월 9일 그의 포스팅에는 언제까지 답을 달라는 시한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은 채로 10일에 답이 없다면서 다그친다. 이런 방식으로 윤지오가 응답을 회피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접속자들에게 전달하면서 그는 “내 며칠 전 질문에 답이 없던데. 글쎄요. 그것이 이렇게 넘어갈 성질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넌지시 협박조로 말한다. 만약 윤지오에게 자신의 질문을 분명하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타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위한 자작쇼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 끝에 그는 “님이 오히려 “술자리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증언 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니라고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장자연 리스트와는 직접 상관 없는 다른 문제를 끄집어 낸다. 나는, 이후 ‘윤지오가 유가족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서 진술했다’는 비난 행렬로 이어지는 박훈의 이 우격다짐식 주장이 엘리뜨주의적 편견이 낳은 착시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는 장자연 리스트와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자. 이어지는 구절, “님이 본 문건이 무엇이죠? 나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답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용은 그만 두고요. (8장짜리 최종본 봤어요? 14장짜리 초안 봤어요?)”가 김대오의 오락가락하고 횡설수설하면서 모든 것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거짓 진술들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황당무계한 질문임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박훈은 4월 20일 페이스북 포스팅 ‘내가 어떤 사건에 나설 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서로 공방이 가면 지켜보다 엉뚱한 주장한 쪽의 논리를 깐다. 정봉주 사건이 그랬다. 그러다 내 주장에 동조하는 당사자들이 연락이 온다. 그러면 난 그 주장을 몇 차례 걸쳐 검증한다.(거의 살벌한 취조 방식이다. 대부분 견디어 낸다. 짜증내면 끝낸다.)검증이 완료되면 싸운다. 검증이 안되면 손 뗀다. 이것이 내 방식이다. … 하여간 주장을 하다보면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제보한다. 나는 그들을 만나 내 방식대로 검증한다. 그리고 교차 검증해서 오류를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이럴때는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의뢰받은 사건 처리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확보된 모든 자료를 검토한다.(4월 20일)

자신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제보나 주장을 몇 차례에 걸쳐 검증하며 이때 살벌한 취조방식을 택하고, 검증이 완료된 경우에만 변호싸움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묻는다. 김대오의 제보를 박훈은 “살벌한 취조방식으로” “몇 차례 걸쳐” 검증했는가? 교차검증했는가? 오류를 최대한 줄였는가? “확보된 모든 자료를” 검토했는가? 내가 보기에 그의 검증결과는 정보에 대한 오인, 불철저한 검증, 교차검증의 누락으로 인해 오류로 가득차 있다. 이런 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곧장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난 공격에 들어간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아주 천천히. 상대방한테 퇴각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부분은 퇴각하지 않고 꼭 싸움 걸어야 물러선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럴 때마다 걱정어린 눈빛으로 침묵한다. 그들이 알았던 것이 아니기에. 

박훈은 3월 28일 처음으로 윤지오 건을 사건으로 지각한 후 불과 열흘 정도 뒤인 4월 9일에 이 “사건에 뛰어들기로 작정”하고 그로부터 14일 뒤인 4월 23일에 윤지오를 김수민 변호인으로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 했고 하루 뒤인 24일에 윤지오를 직접 사회혐의로 고발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전개된 이 초고속 고소, 고발을 박훈은“천천히”, “퇴각기회를 주”면서라고 부른다. 이 때 박훈은 자신이 싸움을 걸면 상대방은 물러선다는 식의 자랑을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는데, 그것이 허풍이었음은 윤지오가 박훈이 싸움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서기’는커녕 ‘변호사 양반 박훈’에게 ‘선처 없는 역고소’를 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에서 입증된다. 박훈은 자신의 이 돈키호테적 돌진을 보면서 주변의 침묵하는 다중들이  짓는 “걱정어린 눈빛”을 그들의 ‘무지’(알지 못함) 탓으로 돌린다. 나는 이것이 자신의 조급함을 정당화하는 박훈의 소영웅주의적이고 엘리뜨주의적인 심리기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심리기제가 윤지오 사건의 경우에는 거짓을 변호하고 진실을 범죄화하여 진실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비탄에 잠기고 분노로 들끓게 하는 변론폭력으로 작용한다고 보는데, 이제 그가 장자연 리스트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검토하면서 이 점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영리한 다중: 윤지오의 경우

<<참여군중>>(황금가지, 2003)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하워드 라인골드의 유명한 책의 원제목은 Smart Mobs다. 직역하면 “영리한 군중”. <<다중>>(갈무리, 2004)의 저자 빠올로 비르노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새로이 출현한 주체성을 “다중”(Multitudes)이라 불렀고 안또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는 다중의 특징으로 swarm intelligence를 꼽았다. 이 용어를 나는 <<다중>>(세종서적, 2009)에서 ‘떼 지성’으로 번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집으면 ‘지성 떼’인데 이는 ‘영리한 군중’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나는 <<절대민주주의>>(갈무리, 2017)에서 다중이 직접민주주의적 자기조직력을 바탕으로 대의민주주의 기제들을 영리하게 섭정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절대화할 섭정주체라고 주장했다. 떼 지성, 절대민주주의 다중, 영리한 군중 등의 용어들은 21세기 세계사회에서 움직이는 주체성의 주요한 변화와 특질을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의미의 변화를 집약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진 용어는 아마도  피에르 레비의 책(문학과 지성사, 2002) 제목에서 비롯된 ‘집단지성’일 것이다.

하워드 라인골드는 영리한 군중이 네 가지 특징을 갖는다고 말한다. 1)오프라인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2)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분야의 주요 이슈에 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3)신기술을 통제하거나 독점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면서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4)확고한 윤리관과 예의를 바탕으로 네트워킹한다. 영리한 다중은 똘똘뭉쳐 있는 공동집단(전통적 공동체)과는 달리 느슨하고 또 이질적으로 살아가면서도 특정한 계기에 떼를 이루며 그 이질적 삶들 사이의 공통장을 구성할 수 있는 지성적이고 정동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간헐적으로 반복된 촛불봉기들과 그것의 역량에서 떼지성, 섭정다중, 영리한 군중의 실례를 목도하고 또 체험했다.

‘영리함’이라는 단어와의 관련 속에서 인터넷을 통해 한국사회(와 아마도 세계사회)에 널리퍼진 몇 장의 카톡 캡쳐 이미지가 있다. 이 이미지들 속의 글귀에서 나는 윤지오와 김수민이 주고받은 다음과 같은 말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것이 더 나은 삶을 향한 개혁의 충동과 그것에 대한 반동 사이의 갈등을 매우 일상적인 구어들 속에서 예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난 책도 책이지만 그후 내 행보가 더 중요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판단되서’, ’하지만 분명히 이슈는 되니까/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 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그래서 출판하는 거고’(윤지오).

‘니가 니욕심이 없다고 장자연만을/ 위해서라고 니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어??/사람이 가식이 느껴지는 건 어쩔수가 없더라’(김수민).

‘언니? 말 앞뒤 자르고 그렇게 인식하는 것 아니예요. 저는[언니는-인용자] 누굴 위해 단 한 번이라도 증언하신적 있나요?’(윤지오), 

‘가식이나 그만 떨어라/못봐주겠다’(김수민) 

‘위에 말한 것은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간 못했던 말을 한다고 했고 그러고 있어요’(윤지오) ‘글 캡쳐해서 올리면 누가 옳고 그런지 평가받을 수 있겠네요’(윤지오) 

‘어린 것이 영악하네’(김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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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 대화의 앞부분이 김수민에 의해 메신저에 대한 공격의 형태로 먼저 공개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가로세로연구소(김용호)+김대오+박훈과 연합하면서 윤지오의 증언 행보 전체를 의심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미 왕진진 사태를 겪은 바 있었던 탓에 “또 사기!”라는 이들의 고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발심리는 더욱 컸다. 지금까지 촛불+미투+윤지오 연합의 공통지성과 공통정동의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윤지오 비판적 지지나 중립으로 이끌려 왔던 제도언론의 상당부분이 빠르게 반윤지오 진영으로 돌아섰고 네트다중의 일부도 심각하게 동요하면서 반윤지오로 돌아서기도 했다. 윤지오에 의해 구축된 다중의 자율적 공통장의 큰 부분이 와해되고 그 밀도가 낮아진 것이다. 그 자리를 대중의 상호불신에 기초한 권력장이 점령했다. 이 무렵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 가능성, 유장호의 성폭력 진술 등에 대한 JTBC 보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협박당하는 장자연의 육성 공개, 진상조사단의 윤지오 진술가치 인정 등에 의해 일정하게 다중의 진실규명 공통장이 만회되었지만 제도언론에서 역량의 비대칭은 심각한 것이었다.

이미 말했지만 권력장과 공통장은 질적으로 다르다. 공통장이 이질적 다중들의 네트워킹, 연합, 연대, 공통되기에 기초한다면 권력장은 다중을 사적이고 공적인 방식을 통해 상호 불신하게 하는 것에 기초한다. 제도언론이 윤지오에 대한 불신을 퍼뜨리는 속도가 빠르고 강도가 높을수록 다중 내부의 상호불신은 커지고 그 불신의 깊이만큼 다중의 자율성은 약화되어 복종적 국민으로, 민족주의적 군중으로 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권력과 제도언론이 효과적인 무기로 훔쳐 사용한 것이 바로 윤지오의 저 ‘영리하게’라는 말의 왜곡이었다. 제도언론에 앞서 김수민이 그것을 계산적 ‘영악함’으로 굴절시켰고 윤지오의 증언 실천을 ‘가식’의 프레임 속에 집어 넣었다. 그 프레임은 ‘네가 네 욕심 없이 오직 장자연만을 위해서 증언한다고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어?’라는 식으로나타났다. 순수주의, 순결주의를 척도로 내세우고 ‘당신은 순수하지 못하다, 순결하지 못하다’고 선동하는 프레임이었다. 증언자는 순결해야 한다, 증언자의 실천은 희생과 헌신이어야 한다, 순수한 자만이 증언할 수 있다는 프레임. 

이 순수주의=순결주의는 남성이 여성을 착취하기 위해 여성에게,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씌워온 굴레이면서 동시에 그 착취를 비판하고 그것에 대항해온 운동들이 내면화해 온 거울이미지다. 국민이 영웅을 기대하고 민중이 지도자를 기대할 때 그 국민과 민중은 그 영웅과 지도자에게서 순수를 기대하는 만큼 오히려 자기자신이 ‘순수’하고 가진 것 없는 가난한 백성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근대의 과정이다. 탈근대화의 과정에서 국민/민중과는 다른 다중이 출현하지만 그것은 민중의 자기전화이며 그 마음 깊은 곳에 근대적 백성의 습성은 유전자처럼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 순수/순결주의의 정동은 영리함을 견디지 못한다. 이것은 다중이 자율공통장을 구축하고 그것을 기초로 새로운 질의 군주, 섭정군주로 되는 것을 가로막는 낡은 유습이다. 이 순결주의 유산과 순수성의 정동을 자극하면서 김수민은 윤지오의 영리함이 돈벌이의 영악함이라고 단정한다. 출판도, 경호도, 비영리단체 구성도, 그리고 증언도 오직 돈을 영리하게 버는 방법이라는 초상화가 그것이다. 윤지오도 별 수 없는 돈벌이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이라는 고발이 사회 전체에 퍼져갔다. 이로써 ‘영리하게 전에 못했던 일을 해보려 한’ 윤지오의 계획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물론 윤지오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리하게 계획을 세우는 일을 중지해야 할까? 우리의 사업계획을 포기해야 할까? 그리하여 자신은 호모에코노미쿠스이면서 타자에게 순수한 신(神)인간 즉 호모데우스일 것을 요구하는 근대인의 자기모순, 자기분열을 반복하며 살아야 할까? 한 인격 내부에서 호모데우스와 호모에코노미쿠스의 분열은 바로 권력장의 구조(통치-피치, 전위-대중, 왕-신민, 신-인간 등등)를 반영한다.

권력장의 구조, 그 구조적 폭력 기제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질문 속에서 다시 한 번 윤지오의 계획을 참조해 보자. 이 참조 속에서 호모에코노미쿠스도 호모데우스도 그 양자 사이에서의 어떤 내적 분열도 아닌 어떤 영리함을 찾아보자. 김수민과 박훈은 “윤지오의 영리(smartness)는 영악이고 가식이며 사기다.”라면서 윤지오의 영리함을 호모에쿠노미쿠스의 영악함으로 환원한다. 나는 윤지오의 영리함에 대한 이러한 경제주의적 환원이 두 사람에게서는 책략이라기보다 체질에, 기술이라기보다 세계관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새로운 인간으로 나아가려는 충동에 대한 자기분열적 반동이며 우리 내부의 낡은 것의 강력한 복귀(백래쉬)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생산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불신, 우리의 무력함에 대한 고백, 권력에의 종속의 불가피성에 대한 무의식적 승인, 권력은 ‘무혐의하다'(‘혐의 없다’)는 사법적 인정의 인격적 반복이지 않은가?

이 상황에서 우리가 윤지오의 영리함에 대한 김수민-박훈 식의 왜곡을 피하면서 그것에 다르게 접근해 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우선 윤지오의 그 ‘영리한’ 계획, ‘지금까지 못해왔지만 <13번째 증언>을 계기로 해 보고자 하는 일/사업’이 무엇이었는지를 ‘돈벌이’라는 경제주의적 시야 속에서 단순화하지 않고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주체 상황 속에서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윤지오 증언에 대한 ‘백래쉬’(반발)의 역사적 위치와 성격

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투쟁을 포함한 1980년대의 운동은 사회변화의 수단으로 권력투쟁(국가권력을 둘러싼 투쟁)을 지향했고 권력장의 재구성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에 사회운동이 정당건설과 의회활동에 초점에 놓이게 된 것은 이러한 지향성의 구체화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의 사회운동은 행정참여 및  의회활동을 통한 권력장의 재구성 운동이 드러내는 한계 속에서 발생한다. 2008년 촛불항쟁은 권력장에서 독립적인 촛불 공통장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전화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거부와 강한 직접민주주의 열망이 그것이다. 2014년 세월호 촛불투쟁은 가대위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연대를 통해 아래로부터 촛불공통장을 구축하는 한편 그것의 힘으로 대의권력들이 세월호 침몰과 구조외면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촛불공통장의 요구를 제도화하는 이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분명한 한계가 있었지만 세월호 특조위는 그것의 성과였다. 이것은 사회의 에너지를 아래로부터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조직하는 것, 즉 사회 전체를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재조직하는 촛불섭정운동의 모델을 제공했다. 2016년의 퇴진/탄핵 촛불은 이 선례을 따라 아래로부터 촛불의 박근혜퇴진운동과 촛불공통장의 구축을 지속하면서 의회로 하여금 박근혜탄핵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과정을 감시하는 이중전선을 구축했다. 2017년 3월 박근혜의 파면은 이 이중운동의 성과였다.

2018년의 미투운동은 촛불의 제2국면으로서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으로서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핵심축의 하나인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으로 개시되어 성차별, 인종차별, 난민차별, 계급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장자연사건 재조사에 나선 것은 촛불미투의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을 적폐청산 프레임 속에서 수용하고 흡수한 것이다. 장자연 사건은 김학의 성폭력 사건과 더불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지배계급의 성폭력 체제의 실태와 그것에 대한 사법적 정당화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윤지오는 장자연의 동료배우로서 장자연이 겪은 성폭력을 곁에서 지켜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그 성폭력 체제의 피해자로 노출되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중요한 인격이었다. 미투촛불의 청원에 의해 시발된 장자연 사건 진상재조사에 윤지오가 호출되었던 것은 지난 10년간 그가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규명을 위해 증언할 의지를 갖고 그것을 증언해온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일성은, 유가족은 처음부터 이 사건의 사회문제화를 원치 않았고 나머지 관련당사자들은 모두 여러 의미에서의 가해자 집단에 속하고 있어서 진장규명 그 자체가 자신들의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으로 귀착될 위험을 갖고 있었던 사정에서 연유한다.

윤지오는 증언자로 귀국하여 <13번째 증언>을 통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증언하고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증언하고 또 각급 언론매체들의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그는 이 증언들이 출판, 언론, 국가기관을 통해 장자연의 죽음의 억울함을 알리고 부실수사로 종결된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청하기 위한 것임을 수차례 말했다. 이것은 언론과 같은 사적 대의기관들과 행정/사법과 같은 공적 대의기관을 통해 촛불다중의 진실 의지를 제도 속에 관철시키려는 시도였다. 윤지오가 말하는 ‘영리함’이 이것이다. 그것은 권력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그 독립된 공통장의 힘으로 생명권력을 섭정할 수 있는 지성적 기술적 조직적 삶정치의 능력을 의미한다. 공통장의 다중지성은 서로에 대한 공통의 지성이면서 권력장과 영리하게 관계맺고 그것을 자신의 의지에 복속시키는 섭정의 지성이다. 윤지오가 수행하는 섭정운동 속에서 다중은 윤지오의 생존방송에 청취와 댓글로 참여하고 그의 기획들(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지지후원함으로써 섭정정치의 공동주체로서 활동했다. 

윤지오는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자신의 증언들이 수반할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었고 생존방송, 자비경호, 증언자보호 요청, 그리고 증언자보호법 청원 등의 방식으로 이 위험에 대처했다. 진상조사단 증언을 위한 귀국 전부터 이미 증언을 막으려는 압력행동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거대한 반발형태로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제도수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은 귀국 후 한 달 여만인 4월 7일 홍선근 회장의 계열사인 뉴시스의 보도(최지윤 기자) 이후부터다. 4월 16일 김수민 작가의 내부고발을 계기로 윤지오는 모든 언론이 총출동된 백래쉬를 겪고 있다. 그것은 물리적 테러가 아니라 근거를 제시하지 안혹 자행되는 언론 테러와 언어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언론 테러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윤지오가 개인 차원의 생존방송을 넘어 사회의 주목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생존방송이 진행되고 있어 물리적 테러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다. 윤지오가 말하는 ‘마지막 발악’이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함축한다. 윤지오가 캐나다로 일시 ‘망명’하여 자신의 입지를 방어하면서 진실규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이 위기의 시간에 제도 언론들에 맞서 다중은 윤지오의 상처를 위로하고 그의 노력을 보조하며 그와 더불어 진상규명 사건 재조사 성폭력 체제의 해체라는 전략적 방향을 추구하는 지킴이들로 나타난다. 백래쉬를 통해 성폭력 권력체제는 촛불미투 공통장에 대한 재식민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 공통장의 독립역량은 그렇게 간단하게 재점령될 만큼 취약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촛불공통장의 반성폭력 투쟁은 윤지오를 방어하면서 잠행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진술과 이해(利害)관계 및 권력관계 문제: 유장호의 진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유장호가 여러가지 의미에서 장자연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유장호의 진술이 시간 속에서 계속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장자연 씨가 처음 작성한 문건에 심하게 성폭행 당한 내용도 썼는데 그 부분은 내가 지우라고 했다”에서 “2)장 씨가 그간에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히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추행 혹은 그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만 했을 뿐, 추가적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로, 그리고 다시 “3)“[장자연의] 피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야기된 것인지 장씨로부터 전혀 들은 바가 없고, 아는 바도 없다”로.

이것은 진실에 대한 기억의 동요라기보다 어떻게 진술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가에 관한 자기검열의 과정과 진술방향의 조정이 나타나는 방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진상조사단은 유장호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따라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관계 및 세력관계에 따라 진술할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있음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의 진술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는 장자연으로 하여금 문건을 작성케 하여 그것을 기획사 간의 이해다툼에 이용하려 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도 부인하는 진술을 한 것으로 SBS는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찰에 ‘목록’은 제출하지 않으려 한다는 윤지오와의 통화녹취에서 그 자신이 한 말에 의해 스스로 부인된다. ‘목록’을 제출하려 하지 않으려는 그 의도만으로 이미 사실보다 이해관계/세력관계을 우선시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범죄혐의를 감추기 위해 진술을 어떻게 짜맞추는지를, 가령 ‘장자연 강제추행 부인 유력인사들, 어떻게 진술 짜맞췄나’(강성원 기자, 2018년 11월 07일지 <미디어 오늘>,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5373)에 서술된 내용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SBS는 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유가족의 진술이 있다고 보도한다. 그러나 이것이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추는 증거로 사용되기는 어렵다. 유가족은 2009년 3월 12일 봉은사에서부터 문건의 실체규명이 아니라 문건의 소각을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 윤지오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3월 18일에는 자연언니의 유족들이 Y와 문건을 보도한 기자, 문건 관련자들을 사자명예훼손 혐의와 강요 등으로 고소했다. 성상납 강요등 진위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유족의 뜻에 거스르며 언론에 공개해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엇다. 언론 인터뷰에서 유족 측은 K와 Y, 두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자연 언니가 희생양이 된 것이라며 문건의 실체 규명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했는지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드러냈다”(<13번째 증언>, 122쪽).

문건의 실체규명보다 작성동기와 유출책임 추궁. 이것은 문건의 소각에 이어 유가족이 문건에 대해 보여준 두 번째 태도이다. 그런데 지금 진상조사단을 통해 국민과 세계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문건의 작성동기나 문건의 유출책임보다는 문건의 실체 규명이다. 현재까지 문건의 이 실체 규명 문제에 대해 신뢰성 있는 증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윤지오 외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며 이 사건의 비극적 측면이다. 그가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포위된 채 온갖 협박과 조작에 맞서 증언하고 있는 유일한 여성 증언자라는 사실에 대한 고려 없이 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을 공격했던 <뉴시스>의 4월 7일 보도 이후 이 ‘사실’을 삭제하기 위한 총력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기사는 지금 삭제되었는데, 뉴시스가 그 계열사인 머니투데이 그룹의 홍선근 회장이 장자연과의 술자리에 합석했던 인물임을 윤지오가 폭로하면서 언론을 통한 명예훼손을 하지 말 것을 항의한 때문이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7755)

장자연 사건을 보는 두 종류의 눈, 두 종류의 전략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두 종류의 눈, 두 종류의 전략이 있다. 하나는 권력자, 착취자, 남성의 눈으로, 짧게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장자연 사건을 희화화하고 즐기면서 진실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는 마약에 취한 눈, 초점 잃은 눈이다. 초점이 불분명할수록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그 성폭력 체제가 흐릿해지고 이 체제의 수혜자들은 별장과 클럽에서의 성폭력을 지속하면서 축적과 치부 그리고 명령의 오르가즘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다중, 저항자, 탈주자, 여성의 눈으로, 짧게는 생명의 눈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개혁을 열망하는 눈이며 무엇이 문제인가를 실사구시적으로 응시하는 부릅뜬 눈, 두려움에 떨면서도 봐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다초점의 눈이다. 초점이 분명해져야만 어디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공격의 화살이 날아오고 어디에 자신을 빠뜨릴 함정이 있으며 어디로 생존의 출구가 열려 있는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윤지오 증언 논란은 이 두 눈의 시선이 교차하고 부딪히는 사회적 전장이다.  

첫번째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눈과 전략은 자신에게로 다중의 시선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회피하려 한다. 그것은 권력자와 착취자가 장자연의 죽음의 원인일 수 있음을 가리키는 모든 증거들(증언들, 물증들)을 없애는 데 집중한다. 이들의 전략은 두 차원을 갖는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협박, 강요, 매수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개인들이 공포 때문이건 두려움 때문이건 돈이나 이익을 얻기 위한 욕망 때문이건 자신들의 의사를 따르게 만듦으로써 그들을 매개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킨다. 여기서 조직폭력, 언어(말), 이권, 돈은 전혀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들은 권력의 의지를 타자들에게 관철시키는 직접 폭력의 다양한 변(형)태들이다. 둘째로 권력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자신의 의지가 관철될 있는 구조와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것은 법, 제도, 관행,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및 반응 양식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도록 구조화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합법성, 정당성, 불가피성, 도덕성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다양한 변호론 위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권력은 그 안에 기생한다. 장자연 사건에서 나타난 그것들의 몇몇 유형들을 살펴보자.

1)문장삭제: 유장호는 장자연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문건 초안에 적었지만 자신이 삭제하도록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유장호는 “장자연 씨가 처음 작성한 문건에는 심하게 성폭행을 당한 내용도 썼는데, 그 부분은 내가 지우라고 했다”며 “장씨가 이후 그 내용을 빼고 썼다”고 밝혔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08703) 내용삭제는 이처럼 권력의 노골적인 압력이 없는 순간에도 준자발적으로, 메커니즘적으로 이루어진다.

2)문건소각: 가족은 봉은사 땅 밑에서 파온 문건 원본을 읽은 후 ‘좋지 않은 일’이니 사본과 함께 소각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유장호, 윤지오가 보는 자리에서 소각한다. 여기서 ‘좋지 않은 일’이라는 말은 ‘두려운 일’이라는 뜻도 함축한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대상들이니 없는 것으로 하자고 결정하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메커니즘적이다.

3)문건누락: 유장호는 문건의 ‘목록’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고(윤지오와의 통화녹취) 실제로 ‘목록’(리스트)의 제출은 없었다. ‘이권’을 고려한 자발적 의사결정이고 그에 따른 행동이다.

4)수사기관에 대한 협박: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 TF팀을 꾸리고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을 협박했다. 조현오 청장은 조선일보가 자신들은 권력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며 협박을 해와 당시에 수사를 엄정하게 진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F8WqvajeGyA&list=PLU0ewOZC-Zt73VjIdkYUJ6Gn7LYcDkWbn&index=2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 피디수첩 방영을 앞두고 조선일보는 MBC에 방용훈의 실명을 거론하지 말라고 압박했다.(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642959)

5)은폐를 위한 수사: 검경은 증인이 권력자와 기업가들의 범죄혐의를 지목할 때 그 증언을 교란시켜 증거력을 떨어뜨리는 다양한 수사기법을 사용한다. 실제로 윤지오가 조선일보 조희천을 성추행 당사자로 지목해 내는 과정은 경찰의 이러한 교란전술(경찰은 윤지오에게 조희천을 뺀 수십명의 사람들의 사진을 제시하고 그 중에서 가해자를 지목하라고 요구했고 사건진상 규명과 관계 없는 디테일들에 대한 반복된 질문으로 증인의 기억력을 증인 스스로 의심하도록 만들었다)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판사가 윤지오의 진술이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6)언론을 통한 교란: 최근 디스패치는 경찰과 검찰의 교란은폐 전술이라는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 교란은폐 전술의 효과인 윤지오의 ‘진술 번복(진술 정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을 진실성과 신빙성의 결여로 평가한다. 이것은 ‘뉴스는 팩트다’를 기치로 내 걸고 있는 디스패치가 전적으로 권력자와 착취자의 시선에서 본 ‘팩트’의 전달을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지오는 디프패치 기사가 나간 4월 29일 이에 대해 한 영화 속 인물의 말로써 응수하면서 디스패치의 정체를 폭로한다: “우린 부시가 군인의 의무를 다 했느냐고 물었을 뿐이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도 관심이 없고, 다들 폰트와 위조 음모 이론만 떠들어 댄다. 왜냐하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때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정치 성향과 의도 인성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진실 따위 사라져버리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나면 하도 시끄럽게 발을 구르고 고함을 쳐대 뭐가 핵심이었는지 다 잊어버린다”). 언론은 결코 진실이나 팩트를 알리는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적 삶을 감싸고 있는 것, 즉 우리 정신의 피부를 구성한다. 우리의 정신활동은 언론과 더불어 전개될수밖에 없지만 진실활동은 언론에서 독립적인 영혼의 자기활동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7)내부고발자를 통한 전선교란: 권력은 다중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다중의 집합적 에너지가 자신에게 집중될 때 그 전선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내부고발자를 찾는다. 윤지오의 협력자였음을 자처하는 김수민의 내부고발문건과 카톡공개는,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 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윤지오 증언에 대한 비난 세력들의 선동에 합류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부로부터의 이 윤지오에 대한 초점 잃은 고발은 권력층의 몸을 향하던 진실조사의 칼끝을 윤지오의 몸으로 향하도록 물꼬를 돌린 모멘트이다. 이로써 증언은 사라지고 짓밟혀 상처 입은 증인만이 남게 되었다.

8)박수선동부대 동원: 초점을 흐리는 센세이셔널한 말들이 만들어지면 박수부대를 동원하여 권력의 판을 키운다.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권력과 이권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권력으로부터 일당을 받는 사람들이 초점이 있는 말들을 비난하고 초점을 흐리는 말들에 박수를 쳐대면서 사유공간을 점령한다. 경향신문 4월 30일자에 실린 단국대 교수 서진의 글 같은 것이 그 예다.

(::첫 번째 시선, 첫 번째 전략의 문제는 다른 방법의 다른 글로 다루겠다.)

김대오의 ‘거짓말’

김대오 기자는 지금까지 장자연 문건과 그 문건의 리스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해 왔다.

1. 나는 장자연 문건의 원본을 보았고 거기에 리스트는 없었다.

2. 윤지오는 문건에 “지인분들과 가족분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글이 담겨 있었다고 말하는데 내가 본 문건에는 그러한 구절이 없었다.

3. 문건의 장 수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동요하고 있는데 그 진술들은 내가 알고 있는 장 수와 다르다.

4. 그러므로 윤지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근거가 모두 자신이 ‘원본을 보았고’ 윤지오의 말이 ‘자신이 본 것’과 다르다는 것에 두어져 있다.

그런데 2009년 12월 9일 수원성남지원에서 이루어진 증인신문조서에서 김대오는 자신이 장자연 문건의 원본도 사본도 본 적이 없으며 오직 유장호가 문건이나 그 내용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유일하게 보여준 그 문서의 한 구절, 즉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09.2.28 장자연(주민등록번호) (서명)’만을 사진 촬영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검사와 증인(김대오)의 문답은 이러하다.

조서 작성 전에 판사는 증인 김대오에게 “형사소송법 제148조 또는 149조에 해당하는가의 여부를 물어 이에 해당하지 아니함을 인정하고 위증의 벌을 경고”했고, 위의 것은 이에 따라 선서를 한 후 이루어진 증인신문조서에서의 진술이다.

이런 조건에서 특별한 위증의 동기나 이해관계를 갖지 않은 김대오가 위증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위 진술은 있는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실인 한에서, 최근 신문 인터뷰, 방송 출연,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계속되고 있고 또 퍼져가고 있는 위의 네 가지 김대오의 주장은 모두 일거에 무너진다.

1. 장자연 문건의 원본을 보지 못했으므로 거기에 리스트가 있는지 없는지 그가 알 길이 없다.

2. 장자연 문건의 원본을 본 적이 없으므로 윤지오의 진술 내용이 거기에 담겨 있는지 없는지 그가 알 길이 없다.

3. 문건의 장수가 몇 장인지 그가 알 수 없는 길이 없으므로 윤지오가 말하는 문건의 장수가 맞는지 틀리는지 그가 알 길이 없다.

4. 그러므로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그의 단언(‘희대의 공익제보자 윤지오, 장자연에 대한 5가지 거짓말’ https://www.youtube.com/watch?v=-9VF4Ntoioo), 그 자체가 실제로는 거짓말이다.

나는 원성훈 기자가 쓴 기사 ‘이민석 “윤지오의 진술이 김대오의 진술보다 신빙성 높다”'(https://www.instiz.net/pt?no=6102153&page=25)를 읽기 전까지 리스트 부분을 제외한 장자연 문건 일부분을 김대오 기자가 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왔다. 하지만 김대오의 증인조서는 그가 장자연 문건의 문구 하나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음을 확인해 준다. 박훈은 김수민과 김대오의 말에 기초하여 윤지오가 장자연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며 언론들이 그런 사람을 “유일한 증언자”라고 키워주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김수민이 윤지오에 대한 장문의 고발글을 올린 지난 4월 16일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들이 김대오를 장자연 문건 “원본의 유일한 목격자”로 키우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유일한 증언자”를 끌어내리고 “원본의 유일한 목격자”를 올려 세워 진실규명의 ‘마지막 기회’(<13번째 증언> 19장)를 차단하려던 자격-쿠데타는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4월 27일 SBS <그것을 알고 싶다>(https://www.youtube.com/watch?v=NsRdm5JozsA&t=222s) 방영을 정점으로 ‘거짓의 열흘 천하’의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