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1)

2019년 8월 2일 정의연대는 박훈 변호사를 윤지오에 대한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였다. 이 고발장은 ‘윤지오가 후원금을 받은 것은 기망행위 혹은 사기다’라는 법률적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내세우는 박훈의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 두 주장 중의 하나는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윤지오에 대한 신변위협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박훈의 고발에 기초하여 손해배상과 부당이득을 청구하는 고소장을 작성한 여성 변호사인 최나리는, 리스트도 위협도 없었다는 박훈의 이 강한 버전을,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은 믿기 어렵고 위협은 과장되었다는 식의 약한 버전으로 바꾼다. 2019년 5월 20일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 이후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상황에서 심의발표와 너무 배치되는 박훈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중에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이 고발문건을 기초로 박훈의 두 가지 주장을 비판함으로써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고 신변위협도 있었다는 점을 좀더 분명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재확인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박훈의 고발이 허위주장에 기초해서 조작된 가짜고발임을 밝히고자 한다.

위에서 말한 ‘윤지오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 고발’의 원인이 된 것은 2019년 4월 26일 변호사 박훈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한 윤지오에 대한 고발장이다. 이 고발장에서 박훈은 다음과 같은 고발사유를 제시했다. 

“피고발인은 고 장자연 씨가 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면서 존재하지도 않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고 하면서 ”법 위의 사람들 30명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고 하고, 사실은 전혀 신변위협을 당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변위협을 당하였다는 허위주장을 하여 사람들을 기망하여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하였는 바 이는 정확히 형법상 ”사기“ 범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 피고발인을 엄정하게 조사하시어 엄벌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강조는 인용자)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고 윤지오는 위협당한 바 없으며 따라서 후원금 모금은 허위주장에 기초한 사기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김대오의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고 김수민의 왜곡된 4.16 문건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이후 최나리 고소장에서 고소의 근거로 인용된다. 박훈의 이러한 그릇된 주장이 언론과 유튜브, 악플을 통해 무한 재생산되고 여론화됨으로써 당시 한창 장자연 사건을 조사중이던 과거사재조사위원회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이 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는 동력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심지어 고발장에서 박훈 자신조차 윤지오의 증언이 유의미하다고 인정한 조0천의 강제추행 1심 판결에서조차, 판사 오덕식이 윤지오의 사기죄 피소 등을 이유로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을 의심하면서 결국 무죄를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건은, 윤지오에 대한 박훈의 사기죄 고소가 명백히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무죄방면하는 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사회정의 실현에 큰 장애물로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훈의 고발사유에 대한 상세한 비판을 통해 진실을 회복하는 일이 절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 장자연 리스트는 있었다.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박훈의 주장에 대해서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기 때문에 윤지오가 그것을 보았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박훈의 생각과는 달리 자료는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고 또 읽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없는’ 리스트를 보고 또 읽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진술자료 등을 통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던 그 사실과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윤지오는 노컷뉴스와 조선일보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유서라고 잘못 알려진 것)이 있음을 보도한 직후인 2009년 3월 10일 호야엔터테인먼트의 유장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때 유장호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의 명함을 고소인이 갖고 있는지 차례로 대조하며 확인했다. 이것이 윤지오가 이후 ‘리스트’라고 불리게 될 명단을 최초로 경험한 시간이다. 이 때 윤지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녹음기로 통화내용을 녹음했고 그 녹음내용을 수사기관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당시의 통화에서 유장호는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유장호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 ‘명단’(즉 리스트)이 있음을 윤지오에게 처음으로 알려 준 것이며 그 명단=리스트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것임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009년 3월 12일 윤지오는 봉은사에서 유장호를 만났다. 그곳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에서 윤지오는 실내등을 켜고 유장호가 건네준 장자연의 문건을 읽었다. 거기에는 피해사실을 적은 장들이 있었고 그와 별도로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말 아래에 명단이 적혀 있는 장들도 있었다. 윤지오는 이와 관련해 장자연의 사망 뒤 약 일주일 뒤인 2009년 3월 15일의 진술에서 문건의 맨 끝에 편지글 형식으로 씌어진 “지인들, 가족들, 특히 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보았다고 말했고 2010년 6월 25일 법정에서는 “어떤 장에는 성함만 기재되어 있으면서 어떠한 언론사에 누구, 어디 무슨 사의 누구라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고 그때 본 것의 다른 부분을 진술했다.

2009년 3월 12일 장자연 씨의 오빠와 언니를 포함한 유가족들은 경호원이 땅 밑에서 파내온 별개의 문건을 보고 읽었는데 윤지오는 이때 그 문건도 친언니와 함께 보았고 그것이 자신이 보고 읽은 것과 내용상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원본이고 다른 하나가 사본이라면 윤지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봉은사에서 보고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종의 문건과 리스트는 유가족의 요구로 그곳에서 모두 소각되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3월 13일 KBS가 유장호 숙소의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며 A4 4장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것은 태워진 원본과 사본 외에 또 다른 문건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명단이 포함된 편지글 형식의 3장의 리스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윤지오는 피해사실을 기록한 그 문건의 내용은 자신이 본 것과 대동소이하나 자신이 봉은사에서 본 것과는 글씨체가 다르며 또 리스트가 없는 것은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이후 리스트는 끝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장자연 리스트를 윤지오가 봉은사에서 보고 읽었다는 사실은 그의 혼잣말이 아니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장자연 문건은 호야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이자 실질적 소유주인 이0숙이 더 콘텐츠의 김종승과의 송사를 유리하게 끌고갈 목적으로 대표인 유장호로 하여금 장자연과 함께 작성토록 한 것이다. 그것은 2월 28일에 작성되었다. 그런데 장자연 리스트는 그 다음날인 3월 1일 장자연이 작성하여 유장호에게 건네준 편지형식의 글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리스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우선 그 작성자인 장자연(고인)이고 그것을 보고 읽은 사람에는 최소한 유장호와 윤지오, 그리고 유가족이 포함된다.

실제로 유장호는 2010년 10월 법원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서, 장자연과 함께 2009년 2월 28일 작성한 4장의 피해사실 문건 외에 장자연 씨가 3월 1일 신사동 소재 세0000라는 곳에서 장자연을 만나 장자연이 쓴 편지형식의 A4 3장을 따로 받았고 그 편지의 내용은 “문서로 작성된 내용은 다 사실이라는 내용, 법률적으로 잘 알아봐 달라는 당부의 내용, 김종승과 관련하여 조심해야 할 사람들 등”이었다고 진술했다. KBS가 보도한 문건은 장자연 등의 피해사실을 기록한 내용만 포함하고 있으므로 유장호의 이 진술에 따를 때 리스트가 따로 있었음은 분명하다. 또 이것은 명단(리스트)는 제출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유장호의 3월 10일 통화중 말과 일치한다.

그리고 장자연의 오빠 장00 씨도 경찰조사에서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었던 것으로 진술했다.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에 “유족 장□□은 경찰 조사에서 마치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는 것처럼 진술한 바 있으나”라고 표현된 문장이 그것이다.   

이상 윤지오, 유장호, 유가족 장00의 사건 당시 진술이 리스트와 관련하여 서로 일치하고 또 유장호가 윤지오와의 통화에서 명단을 불렀으며 그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에 비추어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장호와 오빠 장00가 최근에 자신의 진술취지를 바꾸었다는 것이 이미 10년 전 교차검증된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유장호의 경우는 문건이 공개된 직후 윤지오에게 전화를 걸어 ‘문건을 네가 공개했다고 해주면 안 되겠냐’는 식의 위증교사[윤지오는 이 부탁을 거절했으며 해당 녹음을 경찰에 제출했다.]를 하기도 한 사람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수사기록에 편철된 문건 외에 피해사실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명단’이 기재된 문건, 즉 ‘리스트’가 있었을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에 실려 있었을 최소 13명의 명단을 재구성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제출했다.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는데 윤지오가 보았다고 한다는 박훈의 주장은 이 모든 것과 배치되는 성급하고도 맹목적인 것이었다.

4. 증여 윤리 타락의 극점: 수증자를 채무자로 만들기

최나리 변호사의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 청구소송’에 대한 비판(4)

그런데 소장의 구성방식을 보면 최나리가, 자신이 제시한 주위적 청구원인(‘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이 법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기각되라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예비적 청구원인을 준비하고 있는 점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본 소송의 실제적 핵심은, 윤지오가 수증자로서 불법행위를 했다는 식의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에 있다기보다,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반환 청구’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청구는 과연 법리적 타당성이나 근거를 갖고 있는가?

“가사 위와 같은 불법행위가 민법 제75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주위적 청구가 기각된다 하더라도, 원고들은 피고의 기망행위, 즉 사기를 원인으로 하여 증여의 의사표시를 취소하는 바이며, 그 취소의 의사표시는 이 사건소장으로 갈음하는 바입니다. (…) 원고들이 후원금에 대한 증여의 의사표시를 민법 제110조 제1항에 의하여 취소하는 이상, 피고가 받은 후원금은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은 것이므로 부당이득에 해당하여 원고들에게 반환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피고는 악의의 수익자라 할 것이므로, 원고들이 지급한 후원금 총 10,231,042원에 연 5%의 비율로 법정이자를 붙여 반환하여야 할 것이고(다만 그 기산점은 계산의 편의를 위하여 이 사건 원고들 중 최후로 후원금을 지급한 2019.4.23을 기준으로 합니다)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비율로 인한 지연이자를 지급하여야 할 것입니다.”

민법 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되어 있다. 최나리는 피고의 기망행위가 원고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갖는 위법행위가 아니라서 주위적 청구원인이 기각된다면 이제 동일한 원인, 즉 ‘기망행위=사기’를 근거로 하여 이 고소장으로 ‘증여의 의사표시에 대한 취소’를 갈음하니 이 ‘악의의 수익자’로부터 부당이득을 돌려받게 해 달라고 청구한다.

이 청구에서도, 비록 손해배상청구에 비해 청구금액은 축소조정되었지만(손해배상금을 뺀 약 1000만원) 고리대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되어 있다. 법정이자 5%와 지연이자 12%. 즉 ‘선의’의 증여를 고리대를 착복하기 위한 ‘악의’적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나리가 사용하는 이런 악의적 방식을 통해 증여자가 채권자로 변신하고 있기 때문에, 증여자의 선의를 받아들인 그 수증자는 고리대 채권자로 변한 그 증여자에게 원금과 상환을 독촉 당하는 억울한 채무자로 위치지어질 수밖에 없다. 

증여가 채권으로, 수증이 채무로 둔갑하는 이 경악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우리는 대체 ‘증여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증여하고 수증하는가?’ ‘증여와 수증의 성격이 현대 사회에서 왜 이런 변질을 겪는가?’ 라는 본질적인 물음들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서 시작되어 레비스트로스(<마르셀 모스의 저서에 대한 서론>)와 모리스 고들리에(<증여의 수수께끼>)에 의해 비판적으로 정정/확장되었으며 가라타니 고진(<세계사의 구조>)에게서 정치적 대안원리로까지 받아들여진 이 증여의 문제의식과 그것의 유효성을 검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이 그 작업을 하기에 적합한 자리는 아니므로 다른 기회로 미루어두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나는, ‘증여의 윤리’의 관점에서 볼 때 한편에서는 경악스럽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스꽝스러운 이러한 고소사태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는, 애초에 ‘후원자들이 왜 윤지오에게 후원하고자 하는 의지(선의)를 갖게 되었던가?’라는 질문을 떠나서는 해명될 수 없다는 점만을 강조해 두고 싶다. 즉 ‘후원자들의 증여’에서 출발해서는 안 되고 그에 선행했던 ‘윤지오의 증여’에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윤지오가 후원자들에게 무엇을 주었길래(원-증여) 후원자들이 그를 후원(답례-증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던가?’라는 물음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물음은, 후원자를 출발점으로 삼은 ‘증여-수증’의 과정만을 놓고 그것이 ‘사기였던가 아니었던가?’라는 프레임 속에 우리를 가두는, 철저히 시장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박훈-최나리의) 소송행렬 속에 묻혀 제기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3월 15일까지 후원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거듭된 계좌공개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던 윤지오가 왜 3월 18일에 후원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던가?’라는 물음을 포함하는 것이다. 명백히 이것은, 수증이 ‘기회’라기보다 ‘의무’가 되고 수증거부가 연대의 거부와 전쟁의 선포로 되는 상황 속에 윤지오가 놓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셀 모스는 포틀래치적 증여경쟁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상황의 맥락과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아무튼 최나리는 이 소장에서 윤지오를 ‘증여의사 표시의 취소’를 한 원고들의 채무자로 사로잡는 데 집중한다. 여기서 그는 민법 110조 1항(‘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을 그 포획의 그물로 사용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법률적 포획이 가능한가? 나는 이미 앞에서, 그가 ‘사기=기망’의 근거로 든 것들이 실제로는 근거가 없다는 점에 대해서 설명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에 그 실재가 인정되었던 것이고 2019년의 진술들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므로 그 신빙성이 의심될 여지는 없으며 증언자에 대한 가해권력의 위협(보복이나 예방공격의 가능성)은 윤지오에 의해 과장되었다기보다 오히려 과소인식되고 과소평가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사기=기망’은 최나리에 의해 욕망되고 상상되고 있는 것일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사기’가 없었던 한에서 ‘증여의사 표시의 취소’는 물론 법률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부당이득반환청구는 근거를 잃는다. 그래서 오히려 윤지오의 증언들을 ‘사기=기망’의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장을 내미는 이 집단고소행위야말로 허위사실을 가지고 윤지오를 무고하여 국가형사권과 징계권을 어지럽히고 이를 통해 고리대 수준의 부당이득을 취하려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런 점을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최나리는 소장의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덧붙인다. “이 사건과 동일한 사실관계로 박훈 변호사에 의하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피고에 대한 사기고소가 이루어진 상황이므로, 해당 사건의 추이를 보고 추가로 주장 및 입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쓴다. 실제로 최나리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거나 증언자가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는 등의 자신의 청구 원인에 대한 어떤 객관적 입증도 하지 못했으며 유일하게 윤지오의 말이 100% 진실은 아니라는 김수민의 고발문건에 그 해석적 근거를 의존해 왔다. 

이제 결론 부분에서 그는 자신이 청구의 원인으로 삼은 ‘기망행위=사기’와 관련해 박훈의 ‘사기 고발’에 의존하려는 나약한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최나리에게는 불행하게도 박훈의 바로 그 ‘사기 고발’ 행위가, 2019년 8월 2일 정의연대에 의해. ‘윤지오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로 고발되었다. 최나리가 의존하려고 한 지지대가 몸을 기댈만큼 든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제 자신의 청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최나리는 어디에서 의지할 곳을 찾으려고 할까?(끝) 

3. 재테크로서의 ‘증여’?

최나리변호사의 ‘증여의의사표시취소로인한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에대한비판(3)

이에 비춰보면 윤지오가 신변위협을 과장하여 기망행위를 했다는 고소장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오히려 이후에 명백히 확인되는 것은 가해권력이 벌인 거대하고 집중적이며 스펙타클적인 ‘기망’ 작전이기 때문이다. 이 작전이 국민들을 밑도 끝도 없는 거짓의 수렁 속에서 방황하도록 만들면서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를 무참할 정도로 짓밟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실태를 모르는 철없음 때문일까? 아니면 눈 뜬 사람 코를 베려는 야욕 때문일까? 변호사 최나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원고들은 피고의 위의 기망행위를 신뢰하여 ‘피고의 신변보호와 증인들에 대한 지원 등을 목적으로’ 피고의 신한은행 계좌에 후원금을 지급하였는 바, 그 금액은 적게는 1,000원에서부터 많게는 150,000원에 이르며 총 10,231,042원에 이르는 금액을 지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가 후원을 독려할 당시 밝힌 사용목적은 허위이거나 극히 과장되어 있으며, 피고 본인의 영달을 위하여 후원금을 사용하였다고 볼만한 충분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원고들은 피고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각 후원금에 상응하는 경제적 손해를 입었으며 피고의 진실성을 믿고 소액이나마 후원을 하였던 선의가 짓밟히는 등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한편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에 대하여는, 원고들과 피고의 관계, 이 사건 피고가 수많은 언론플레이를 하며 공신력을 쌓은 후 이 사건 기망을 하였던 점, 이에 대한 피고의 책임의 정도, 이로 인하여 원고들이 앞으로 선한 의도의 기부나 후원활동이 위축되어질 것이 염려될 정도로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실 등 제반사정을 참작하여 볼 때 그 액수는 20,000,000원이 상당하다 할 것입니다. 이에 피고는 원고들에 대하여 경제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금으로 10,231,042원과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로 20,000,000원 즉 총 30,231,042원을 배상하여야 할 것이며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비율로 인한 지연이자를 지급하여야 할 것입니다.”

원고들이 4월 23일 이전에 윤지오의 신변보호 등을 목적으로 후원한 돈은 증여(贈與, gift)로 볼 수 있다. 증여는 법률적으로는 ‘일방(一方)의 당사자(贈與者)가 자기 재산을 무상으로 상대방에게 준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수증자가 이것을 수락함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민법 554조)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증여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미 이행되었다. 이미 이행된 증여에 대해 증여[계약]이 해제될 수 있는 경우란 수증자가 증여자에게 폭행 등 범죄행위(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뿐이다.

과연 윤지오가 원고들에게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가? 이 질문에 대해 최나리는 증여 후에 저지른 범죄나 불법행위가 아니라 증여를 유발한 행위를 불법행위로 단정하고 또 증여 후에 후원금이 목적과 다르게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임의의 추정을 자신의 소송의 근거로 삼는다. “피고가 후원을 독려할 당시 밝힌 사용목적은 허위이거나 극히 과장되어 있으며, 피고 본인의 영달을 위하여 후원금을 사용하였다고 볼만한 충분한 사정이 있습니다.”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바 이 주장은 허위사실이다. 후원금 계좌를 공개하면서 내건 사용목적은 증언자 보호였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경호비가 사비로 지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 장자연 사건 증언자가 보복이나 예방공격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점 역시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인정했듯이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예컨대 윤지오는 정권을 창출하기도 퇴출시키기도 한다고 자임하는 언론사의 전직 기자의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증언했고 그 사주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 증언했다. 이후 해당 언론사는 수 십 차례에 달하는 보도로 윤지오의 진술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사기꾼으로 몰면서 인성과 도덕성을 실추시켰다. 이것은 교통사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가혹하고 잔인한 공격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잠재적이거나 현실적인 신변위협에 대한 당시 윤지오의 증언은 과장되기는커녕 오히려 과소평가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리고 “피고 본인의 영달을 위하여 후원금을 사용하였다고 볼만한 충분한 사정”이라는 표현은 무고를 해서라도 어떤 형태로건 윤지오를 처벌토록 하려는 최나리의 야욕과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경찰도 통장조회와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한 바 있듯이 후원금은 개인적 영달을 위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돈을 윤지오가 “개인적 영달을 위해서 사용하였다고 볼만한 충분한 사정”은 최나리의 잘못된 사태인식과 상상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며 엄연한 무고에 해당한다. 

최나리는 고소장에서 원고들이 “피고의 기망행위로 인하여 각 후원금에 상응하는 경제적 손해를 입었다”거나 “피고의 진실성을 믿고 소액이나마 후원을 하였던 선의가 짓밟히는 등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다”며 읽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원고들이 선의에 따른 자신들의 증여행동을 “경제적 손해”로 오인하기까지, 그리고 윤지오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받았다는 식의 일종의 착란을 경험하기까지 언론방송들의 마녀사냥용 가짜뉴스폭탄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부어졌던가? 수증자를 고소하기에 나선 증여자(원고)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제 정신을 갖고 사태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에 때 맞춰 김수민의 인스타그램은 변호사(최나리)가 무상 변호를 제공할 예정이니 제발 후원금 반환소송에 나서달라고 얼마나 간곡한 호소를 했던가? 오랜 호소에도 불구하고 몇 명 밖에 신청하지 않아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좌절감까지 피력하면서 말이다. 이미 준비되었던 무상 고소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인 6월 10일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선의의 증여행위를 경제적 손해로 오인하고 증여행위에서 얻은 자긍심을 정신적 상처로 오인하는 원고집단(그것도 전체 후원자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집단)을 만들어 내는 데 그만큼 긴 시간과 어려운 노동이 요구되었던 때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최나리의 고소장은 ‘신뢰’ ‘선의’와 같은 도덕적 언어와 ‘피해’ ‘손해’ 등의 경제적 용어, 그리고 ‘기망’ ‘사기’ 등의 법률적 언어를 엮어서 만든 그럴듯한 장식물로 치장되어 있다. 그런데 그 장식들을 벗겨 보면 무엇이 남는가? ‘1000만원 투자하여 한 달 만에 3000만원으로 만들기’의 재테크 기술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비율로 인한 지연이자”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유혹적인 고리대 조건도 붙어 있다. 성공만 한다면 수입이 짭짤한 것이다.

일정한 금액을 증여한 후에 수증자를 사기꾼으로 만들어 그 수증자로부터 증여액의 세 배 이상에 달하는 재산을 가로채려는 최나리의 이 소송을 나는 신종 재태크 사기술을 실험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수법이 만에 하나 성공한다면 그것은 이미 시장 교환의 지배에 억압당하고 있는 증여의 문화를 송두리째 도려내고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증여를 수익성 높은 재테크 기술로 만드는 이러한 소송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선한 의도의 기부나 후원활동”에 대해 철저하게 의심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것이 “위축되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결과에 대한 책임은 윤지오가 아니라 최나리(와 원고집단)가 조야할 것이다. 

물론 이 소송이 기소로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 재테크 실험은 실패할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이 소송의 혜택을 이미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누구일까? 후원금 반환소송의 제기를 통해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을 떨어뜨림으로써 고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의 가해권력자라는 지탄을 벗어나고자 하는 세력들이다. 이들은 이 소송을 ‘후원자들까지 돌아섰다’는 여론조작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윤지오의 증언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려 그것의  직접적 수혜자가 되었다. 이 상황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었던 일부의 사람들이, 한 때 윤지오에 대한 증여자였던 수백명의 ‘원고집단’이 이들 성폭력 가해권력이 휘두르는 여론용 몽둥이로 변질되어 가해권력을 위해 이용되는 것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표했던 것은 이런 맥락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다.(계속)

2.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증언과 ‘위협 경험’에 대한 증언을 기망행위로 몰기

최나리 변호사의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에 대한 비판(2)

이제 윤지오의 행위를 ‘기망행위’로 보는 (최나리의) 첫 번째 이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것은 “후원금을 받을 목적으로 천명한 이유가 신빙성이 없거나 극히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최나리가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미 우리는 뉴시스, 박훈, 김수민, 김대오로부터 SBS, 조선일보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조0천 강제추행 사건 1심 판사 오덕식에 이르기까지 마치 입을 맞춘듯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윤지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고 장자연에 대한 가해권력자들의 필요와 정확히 부응하는 주장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거나 확인시켜 주는 10년전의 진술자료나 과거사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보고, 그리고 조희천 강제추행을 기소한 검찰의 기소사유 등을 거스르며 자신의 희망과 욕망을 객관적 사태 속에 투사하는 주관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빙성이 없다’는 여론과 판단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객관적 사태 위에  ‘나는 믿고 싶지 않다’, ‘신빙성이 없어야 한다’, ’신빙성이 없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당위, 의지의 덮개를 덮어 씌우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김대오는 ‘자신이 문건을 본 적은 결코 없지만 그 문건 속에 결단코 리스트는 없었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쳤다. 김수민은 ‘그 리스트라는 것이 윤지오가 참고인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관의 책상에서 얼핏 훔쳐본 것일 뿐’이라는 말을 지어내었다. 변호사 겸엄을 하고 있는 시인 박훈은 이번에는 이 두 거짓말을 조합하여 근거로 삼으면서,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거짓말로 펀딩사기를 벌이고 있다는 소설을 써냈다. 

최나리는 이 해괴하거나 날조된 주장들을 자신의 논고의 숨겨진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이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2009년과 2010년의 진술조서, 수사발표, 언론보도 등을 송두리째 태워 없애고 최소한 그 2년의 시간을 역사에서 파내 버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윤지오가 10년 전의 진술들 속에 리스트가 있었음을 화석처럼 분명하게 새겨놓았고 그것은 유장호와 장자연 오빠 장00의 진술에 의해서도 교차검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당시의 수사발표나 언론보도 속에도 역시 화석들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 ‘김대오의 거짓말’ ‘김대오의 입은 거짓말제조공장인가 자동거짓말기계인가?’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 ‘김수민: 살아 있는 모순’ 등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윤지오 진술이 갖는 부인할 수 없는 신빙성에 대해 이미 충분히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이것을 입증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나리가 자신의 고소장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어떤 논증도 하지 않으며 고소장 밖에서 이루어진 허구적 주장과 조작된 여론들(주로 김수민이 지어낸 말)을 마치 이미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인용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진술이 신빙성 없음’을 ‘기망’의 이유로 삼은 것은 최나리이므로 진술 신빙성이 없음을 입증할 책임도 그에게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직 그는 이에 대해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두번째로 살펴야 할 것은 최나리가 ‘극히 과장된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고소장을 보면 이것은 신변위협에 관한 윤지오의 증언에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변위협 과장에 대한 최나리의 논증 역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논증만큼이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체 ‘기망’의 다른 이유로 삼은 ‘신변위협 과장’이라는 주장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들고 있는 하나의 근거는 2019년 3월 30일의 윤지오가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청원이다. 거기서 윤지오는 경찰측에서 지급해준 위치추적장치 겸 비상호출 스마트 워치가 작동되지 않아 신고를 한 후 9시간이 더 경과했음에도 아무런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음을 들면서 자신이 호출버튼을 누른 이유에 대해 쓴다. 벽쪽에서 기계음이 들리다가 이제 화장실 천정에서 동일한 소리가 들린다, 환풍구의 끈이 날카롭게 끊어져 있다, 출입문 잠금장치가 고장나 수리를 했는데 문쪽을 확인해 보니 오일로 보이는 액체가 문틀 맨위에서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 문을 열때 이상한 가스냄새가 났다…이런 이유로 수면을 제대로 못 취하는 중에 소리가 반복되어 비상호출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윤지오의 청원은 국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주지 않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험적 증언이며 증인이 사비로 24시간 경호원을 고용하여 증언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현실은 부당하다는 고발이고 이 부당한 현실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개혁의 요청이다. 

다행히 윤지오의 청원이 일부 받아들여져 문재인 정부와 경찰청은 청원마감일이 오기 전에 윤지오에 대한 일정한 경호조치를 취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나 피해자 보호는 경찰의 중요한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미흡한 업무처리로 윤지오씨는 물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최종하다”고 사과했다. 

이후 4월 하순경 경찰이 신고사항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 발표라는 이름으로 기계음, 환풍구, 출입문, 가스냄새 등에 대해 어떤 상황설명을 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윤지오가 위협으로 느낀 일련의 흔적들과 현상들이 조사결과 실제적 위협의 흔적이나 현상은 아니었다는 설명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설명은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이 본격화된 시점에 이루어졌다. 우선 그 날의 설명은, 경찰조차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지오에게 설명해 준 바 없는 스마트워치 조작상의 특성을 윤지오의 조작미숙 때문에 잘못 작동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책임전가하는 파렴치한 발표였다. 게다가 몇 가지 개개의 흔적과 현상에 대한 경찰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심지어 언론은 가스냄새가 났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어떻게 호텔에서 가스냄새가 날 수 있습니까?’라는 호텔 직원의 해명을 반박 자료로 인용했다. 백보 양보하여 그 상황적인 설명들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복우려”에 대한 반증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중요 범죄 신고자에게는 “보복 우려”(와 예방공격의 위험)가 따른다는 보편적 사실, 즉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는 그 보편적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시 윤지오가 느낀 기계음이나 환풍구 출입문 가스냄새 등이 설령 위협이 실행되고 있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증언자가 예사롭지 않은 어떤 흔적이나 현상들로부터 우려를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다. 증인이 느끼는 위협감과 두려움은 경찰이 제시한 설명으로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잠재적 실재성(보드리야르)이기 때문이다.  

예방이나 보복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폭력 형태로 가해져 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과연 과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최나리가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러한 생각은 국가가 증언자나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됨을 지시함으로써 국민들을 엄청난 위험 앞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생각에 따라 국가가 실제로 국민들을 방기한다면 국민들은 가해권력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와 별도로, 아니 국가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경단이라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윤지오가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빛을 설립한 것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경단은 아닐지라도 비정부기구를 통해 공익제보자를 돕자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최나리가 드는 “위협 과장” 사례의 또 하나는 윤지오가 2019년 4월 11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자신의 신변위협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손석희 앵커와 가진 윤지오의 이날의 인터뷰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0천 강제추행건에 대한 증언, 한국에서 활동하다 캐나다로 떠나게 된 이유, 2018년 6월과 12월 JTBC와의 익명의 전화 인터뷰 이후 당했던 두 번의 교통사고와 가해권력들로부터 받은 위협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윤지오는 앵커로부터 증언에 대한 보복이나 위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이 위협감을 느낀 세 가지의 사건을 언급한다. (1)“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유력 언론사”(조선일보)가 향초납품업체와 교회에 전화를 해서 윤지오 씨와 연락이 안 된다며 소재를 물은 것. (2) 이전의 매니저 권00가 JTBC와 인터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JTBC가 너를 이용하는 기분이 드니”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정작 자신은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여 “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고 싶어 한 친구”, “실제로 지오는 자연이와 친하지 않았다”는 식의 허위주장을 한 것. (3)JTBC와의 전화인터뷰 이후 교통사고가 좀 크게 두 차례가 있었고, 근육이 찢어져서 손상되면서 염증이 생긴 것.

최나리는 여기서 (3)번 항을 신변위협에 대한 과장이라고 규정하고 그 근거를 김수민으로부터 가져온다. “소외 김수민은 피고가 당한 신변 위협은 조작된 것인데 그 중 특히 2019.1 발생한 교통사고는 눈길에서 미끄러지며 뒷차가 충격을 가한 단순한 추돌사고였으며 가해자 차주는 평범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이미 피고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 JTBC 뉴스룸[에] 출연 당시에 파손이 심한 뒷차 즉 가해자의 차량을 자신의 차량인 것처럼 기망하여 조작을 가하였고…”가 최나리가 해당 사건에 대해 쓴 문장이다.  

“가해자의 차량을 자신의 차량인 것처럼 기망하여 조작을 가하였고”라는 문장은 논박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윤지오가 거대방송사 JTBC의 자료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최나리 변호사가 JTBC 측에 확인하여 사실과 상황을 확인하는 정도의 노력은 기울였어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김수민의 비꼬인 해석이다. 카톡 대화 속에 그 교통사고가 ‘애기 아빠가 일 끝나고 애들 데리러 가다가 과실로 발생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는 윤지오의 말이 나온다. 김수민의 해석은 전적으로 이 카톡구절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것은 그런 카톡 이후에 윤지오의 마음 속에 일어난 변화이다. 그는 이미 여러차례 이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처음에는 평범하고 단순한 교통사고라 생각했으나 이후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로부터 사고를 위장한 가해공격일 수 있지 않느냐, 앞으로 더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점점 그 사고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나리는 윤지오의 이러한 말은 전혀 참고하지 않고 김수민보다 한술 더 떠서 JTBC에서의 인터뷰를 ‘과장’ ‘조작’ ‘기망’ 등의 언어로 도배해 버린다. 이 인터뷰를 할 당시 앵커 손석희는 윤지오의 말을 듣고 이미, “거기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은 교통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 않겠는가?]”고 있을 수 있는 반론을 의식하며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윤지오는 자신이, 증언으로 인해 불특정다수의 권력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고 교통사고를 이 맥락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조건을 토로한다.

“그런데 JTBC에 제가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을 기록한 사건을 다룬 책을 쓴다라고 한 시점부터, 제 행방을 추적하시는 어떤 분들이 계셨고. 또 사실 어떠한 한 언론사만 주목을 하시는데 사실은 한 곳이 아니라 저는 개인 혼자지만 제가 상대해야 될 분들은 A4용지 한 장이 넘어가는 거의 한 30명에 가까운, 공권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 법 위에 선 분이시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게서 저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그분들에 대해서 또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면 명예훼손으로 걸리기 때문에.”

평범한 교통사고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불특정다수로부터 가해져오는 위장된 공격의 하나일 수 있다는 답변이다. 가해자는 법 위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고 그렇게 특정하기 어려운 다수로부터 보복이나 예방공격을 당할 수 있는 것이 증언자가 놓여진 위치임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설득력을 갖는 한에서 어떻게 교통사고로부터 위협을 느꼈다는 인터뷰 진술이 과장, 조작, 기망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오히려 4월 이후의 사태 전개는 특정하기 어려운 가해권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며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윤지오의 말이 참이었음을 뚜렷이 입증해 준다. 왜냐하면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이, 조선일보 SBS 뉴시스를 비롯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언론사와 통신사, 홍준표를 비롯한 정치가, 박준영 박훈 최나리 강연재 등의 변호사, 김대오 김용호와 같은 기자, 서민과 같은 교수, 김수민과 같은 작가 등의 지적 법률적 정치적 미디어적 화력을 총동원하면서 윤지오에게 집중적으로 퍼부어지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총력전 과정을 통해 윤지오가 대한민국 시민사회로부터 추방되고 배제된 현실을 고려하면, 윤지오가 자신에게 닥쳐온 위협을 과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소평가하고, 과소대비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더 잘 설명해 주지 않겠는가?(계속) 

최나리 변호사의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에 대한 비판

변호사 최나리가 오0영 외 438인을 대리하여 윤지오를 고소한 것은 2019년 6월 10일이다. 이 고소장의 주체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윤지오에게 뭔가를 청구한다. 하나는 주위적 청구원인으로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이고 또 하나는 예비적 청구원인으로서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반환 청구’이다. 말이 괜히 낯설고 어려운데 골자는 전자는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한다는 것이다. 주위는 우선 청구이고 예비는 우선 청구가 해당 사항 없다고 판단되어 기각될 때 내미는 그 다음 청구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손해배상청구의 근거로 삼은 불법행위가 인정되지 않아 손해배상청구가 기각된다면 증여자의 증여 의사표시 취소로 윤지오가 얻은 부당이득이라도 반환받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부당이득이 발생하는 이유로 삼는 것은 후원자들이 2019년 4월 23일 이전에 했던 후원금 증여의 의사표시를 최나리의 고소장을 통해 취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 고소장이 불법행위로 본 것도 ‘기망행위’이고 증여의 의사표시의 원인으로 삼은 것도 똑 같은 ‘기망행위’이다. 최나리가 주위적 청구원인이나 예비적 청구원인으로 삼고 있는 그 ‘기망행위’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주의깊게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주위적 청구원인’으로서의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기망’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살펴보자.

“앞서 상술한 바와 같이 피고는 2019.3.18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국가에서 지원되는 신변보호만으로는 여전히 신변의 위협이 따르기 때문에 앞으로 발생되는 경호비 등으로 후원금을 쓸 예정’이라는 요지의 글을 게시하여 신한은행으로 계좌를 공지하였고 2019.4.11. ‘5대 강력 범죄 피해 사례에 해당되지 않아 보호시설을 지원받지 못하는 피해자와 제2의 피해자인 목격자와 증언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 24시가 보호할 수 있는 경호인력 등을 지원하기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설립했다.’고 밝히며 국민은행 계좌를 공지하여 후원을 독려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가 후원금을 받을 목적으로 천명한 신변의 위협 등은 위와 같이 허위이거나 극히 과장되어 있으며 특히 피고 본인이 자처한 ‘고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떨어지는 상황입니다. 또한 피고는 지상의 빛이라는 비영리단체를 통하여 모금한 후원금의 사용처를 ‘1. 굿즈제작비용 2. 키트제작 재료비용 3. 배송비용 4. 포장비용 5. 인건비’로 게시한 바 있는데 이는 위 단체의 설립목적과 명백히 배치되는 것이며 또한 현재까지 어떠한 명목으로  얼마만큼의 금액을 소비하였는지 일절 밝히고 있지 아니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피고의 행위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과장을 넘어선 허위사실의 공표, 즉 기망행위에 해당한다 할 것입니다.”

윤지오의 행위를 법적 사회적 용인 수준을 넘어서는 허위사실 공표, 즉 ‘기망행위’로 단정하기 위해 최나리가 끌어오는 근거는 두 가지다. 첫 번째 것은 후원금을 받을 목적으로 천명한 이유가 신빙성이 없거나 극히 과장된 것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 것은 지상의 빛으로 모금한 후원금 사용처가 단체 설립목적과 배치된다는 것. 이제 최나리가 든 이 각각의 이유가 사실인지 또 그것이 ‘기망행위’에 해당되는지를 검토해 보도록 하자.

1. 비영리단체 지상의빛에 대한 무지와 무고

우선 두 번째 이유부터 검토해 보자. 비영리단체 지상의빛은 회원단체이며 등록되지 않은 임의단체이다. 임의단체인 이유는 100명 이상의 회원수, 일정한 활동경력, 회의록 등 활동기록자료 등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단체에 대해서만 관계기관이 단체의 등록을 허용해 주기 때문이다. 등록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신생의 단체라는 의미이며 등록되지 못해 국가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단체들은 임의단체에서 시작하여 경력을 쌓고 회원수를 늘린 후 등록단체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지상의빛이 등록단체로 되지 못한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면 임의단체의 구성요건은 무엇인가? 2인 이상이며, 대표나 관리자가 있고, 규약과 총회 회의록을 갖추면 관할세무서에 신고하여 비영리단체를 설립할 수 있다. 이 요건이 충족되면 관할세무서장은 고유번호증을 발급한다. 지상의빛은 이 모든 요건을 충족시켜 관할세무서로부터 고유번호증을 발급받은 합법 단체이다. 

그렇다면 후원금의 사용처가 설립목적과 명백히 배치된다는 최나리의 주장은 타당한가? 전혀 타당하지 않다. 지상의 빛 윤지오 대표는 모금된 후원금을 마중물로 사용하여 굿즈를 제작판매함으로써 지상의빛 기금을 확충하자는 아이디어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안한 바 있다. 이 아이디어는 지상의 빛 설립 이후 밀어닥친 4월의 잔인한 마녀사냥 파도 속에서 물론 실행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금의 이러한 활용은 기망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비영리단체의 본질은 수익사업을 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발생된 수익을 구성원간에 분배하지 않는 것에 있다. 즉 수익사업을 한다 하더라도 거기서 발생한 수익을 공익이나 친교 등 설립목적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 본질이다. 물론 비영리 임의단체의 고유증번호로는 수익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비영리임의단체가 수익사업을 하려면 별도의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아 그것으로 수익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상의빛 기금 증식을 통해 더 많은 피해자, 증언자 등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윤지오 대표의 제안 같은 경우는 별도의 사업자등록증을 발급 받아 수행하면 되는 것으로 단체의 설립목적과 전혀 배치되지 않는다.

최나리는 이토록 합법적인 제안을 기망으로 오해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용처를 공개하지 않는 것까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펼친다. 우선 정말 윤지오가 사용처를 공개하지 않았던가? 그는 수차례에 걸쳐 한국에 도착하여 캐나다에 돌아오기까지의 경비는 사비로 사용했으며 국민은행에 입금된 후원금은 한 푼도 사용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지상의빛 기금의 본격 사용은 박근혜 탄핵 공신 노승일 씨에게 매월 30만원씩을 지급하기로 한 2019년 7월 10일부터 이루어졌고 그것 역시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다. 

한 푼도 사용한 바 없다는 것만큼 투명한 공개가 있을 수 있을까? 또 재정공개는 정기 총회에서 보고하면 되는 것이지 단체에 속하지 않은 임의의 사람들에게 단체 재정을 공개할 어떠한 의무도 없다. 그런데 왜 최나리는 비영리단체 지상의빛이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재정을 공개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것처럼 억지 주장을 펼치며 압박 때문에 부득히 이미 그 내역(제로지출)까지 밝힌 바 있음에도 마치 기금의 사용처를 숨기고 있다고, 즉 ‘기망행위’라고 허위사실을 주장하는가?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눈에서 티끌을 찾아내느라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의 빛 대표 윤지오를 허위사실을 주장해서라도 처벌받게 하려고 하는 목적에 사로잡혀 진실의 감각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계속) 

가해권력과 가해자중심주의의논리: 조0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오덕식 판사의 판결에 대해(3)

오덕식 판결에서 가해자중심주의 관점

오덕식은 2008년 8월 5일에 청담동 가라오케에서 강제추행 사건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증거가 부족하다면서 세 가지 근거를 드는데, 그 중의 하나가 피고인 조0천, 소속사 대표 김종승, 그리고 투자자 변0호가 모두 강제추행이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술 신빙성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던 사람들이다. 왜 이렇게 퇴행하는 판결을 내렸던 것일까? 

조0천은 윤지오에 의해 가해당사자로 지목된 인물이다. 그 인물이 강제추행이 없었다고 변명하는 것은 당연히 스스로에게 이익이 된다. 다른 두 사람은 어떨까? 앞에 인용한 2009년 윤지오의 진술을 살펴보면 이들은 “술테이블에 자연이 언니가 올라가서 춤을 출 때 밑에 앉아 있는 김종승과 손님들이 자연이 언니가 마침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밑에서 치마속 팬티를 보는 경우도 있었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오덕식의 생각과는 달리 조0천과 한패이며 성추행에 공동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에 속한다.  

이들이 강제추행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들 자신에게 명백히 이득이 되는 진술이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의 진술은 이득을 위한 진술이지 진실을 위한 진술일 수 없고 마땅히 배척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진실과 정의에 선 판사라면 이 강제추행에 동조하지 않았고 유일하게 이득과 무관한 윤지오의 진술만을 진실증거로 삼아야 했다. 그런데 오덕식은 “윤씨 진술만으로 피고인을 형사 처벌할 정도로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유일한 진실증거를 회피한다. 오덕식의 논리대로라면 대부분 밀실에서 이루어지고 그래서 피해자 진술 외에는 증거를 확보하기 힘든 성폭력 사건들이 “형사 처벌할 정도로 공소사실이 입증”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며 따라서 성폭력은 대부분 범죄로 구성될 수 없게 될 것이다. 전형적으로 남성중심적이며 가해자중심적인 논리이다. 무엇이 진실인가를 따져야 할 순간에 두 가지 진술들(그 중 하나는 거짓이고 다른 것은 진실이다)의 수를 셈하며 어느 쪽이 수가 많은지 비교하고 있는 판사가 오덕식이다. 그리고 그것이 명백히 신빙성이 없고 거짓일 가능성이 많은 진술임에도 불구하고 수가 많다고 하여 그쪽의 손을 들어준다.

두 번째로 드는 근거는 터무니 없을 뿐만 아니라 없는 근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너무나 역력하다. “당시 술자리는 접대 자리가 아니라 생일 축하 자리였고 피고인이 조선일보 기자와 총선 출마자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같이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 가운데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피고인이 이런 사람을 처음 소개 받는 자리에서 주의를 기울였을 것으로 보여진다.”가 그것이다. 조0천의 변호사가 했다면 딱 맞을 말을 판사가 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 가운데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는 사실과도 다르다. 동석한 두 사람 중에서 더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은, 전직 조선일보 기자에 2003년 총선에서 덕양구에서 유시민과 맞붙은 적이 있고 2007년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으며 부인이 현역 검사였던 조0천과 거의 같은 또래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신분에서 보더라도 열위(劣位)에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 자리에서 조0천은 건방졌고 김종승은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다는 진술은 이러한 사정을 말해준다. 변0호는 나이는 10살 정도 더 많지만 투자회사 대표로서 권력을 조0천보다 더 많이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그 자리가 조0천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환경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장되고 왜곡된 추정을 덧붙임으로써 오덕식은 강제추행이 있었을 리 없다는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드러내놓고 판결 근거로 삽입한다. 이것은 좀더 노골적으로 가해자를 편드는 방식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세 번째로 드는 근거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 내용은 “윤씨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고인의) 소속사 대표는 오해받는 것을 두려워했고, 고인과 친밀한 행동을 했으며, 고인이 술도 따르지 않도록 관리했다고 한다”면서 “그렇다면 공개된 장소에서 추행이 벌어졌다면 최소한 피고인이 강한 항의를 받았어야 하는데 한 시간 이상 자리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오덕식 판사가 갖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이 겹겹의 몰지각, 오인,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내가 막막할 지경이다. 고인에 대한 김종승의 “친밀한 행동”이란 위계와 위력을 이용한 상습적 성추행이거나 손님들 앞에서 하는 보여주기식 쇼였다. 또 김종승이 “술을 따르지 않도록 관리한 것”을 반드시 장자연에 대한 대표로서의 책임감이나 소속사 배우들에 대한 보호심의 표현으로 보기도 어렵다. 김종승은 수시로 장자연과 소속사 배우들에게 폭언, 협박, 구타를 자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윤지오는 2019년의 여러 증언에서 “술을 따르지 않도록 관리한 것”이 실은 ‘술잔이 섞이지 않도록 관리하는 방법’이었을 수 있음을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마약이 든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후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에 대한 진술이 그것이다. 어떤 술잔에는 마약이 들어있고 어떤 술잔에는 마약이 들어 있지 않다면 ‘술잔에 대한 계획적 관리’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여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추행이 있었다면 항의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오덕식의 물음에 대해서는 이미 2009년 3월 19일 윤지오의 답이 있다.

문: 장자연이가 테이블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 머니000 대표 홍0근[실제로는 조0천]이가 장자연에게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요?

답: 자연이 언니가 테이블에서 원피스를 입은 상태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 사람들이 밑에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신문사 홍0근 대표[실제로는 조0천]가 손목을 잡고 끌어 당겨 자기 무릎에 앉힌 상태에서 양손을 원피스 치마 속으로 집어 넣어 허00와 음0를 만지자 자연이 언니가 몸부림을 치면서 하지 말라고 하였더니 다시 오른 손으로 원피스 곁으로 가슴을 만지어 자연이 언니가 일어나면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문: 그렇다면 그런 행동을 보고 김종승, 변0호는 가만히 있었는가요.

답: 말리거나 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이 나고, 그 이후에도 다시 흥겹게 노래도 부르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말리거나 다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강제추행이 없었다는 증거로 될 수 없다. 권력과 위력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 순진무구한 사람이거나 그 자신이 권력과 위력에 속해 있어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반응을 유도하는지를 느낄 수 없는 사람만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윤지오는 강제추행이 있었지만 말리거나 다른 행동 없이 그 후에도 “흥겹게 노래도 부르면서 춤을 추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김학의와 윤중천의 관계에서처럼 세 사람이 그 술판을 공동으로 즐기는 공모적 관계에 있다고 보면 모순이기는커녕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오덕식은 이제, 만약 그렇다면 당사자인 장자연이나 동료 배우인 윤지오는 왜 항의하지 않았는가?, 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 “최소한 피고인이 강한 항의를 받았어야 하는데”라는 모호한 표현을 통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말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오덕식은 ‘피해자가 피해자다워야 피해자다’라는 낡은 (즉 너무나 많은 비판을 받아 떳떳하게 내세우기가 어려운) 피해자다움의 요구를 에둘러서 표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강제추행을 당했으면서 항의하지 않았다면 피해자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정확히 안희정 사건 1심 판결의 조병구의 관점이 그것이었다. 이 관점은 장자연이나 윤지오가 김종승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고 1억의 위약금과 그 이상의 까다로운 조건으로 묶여 있었고 세 사람의 ‘힘 센'(장자연)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었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권력형 혹은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실재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덕식은 이상과 같이 부당하고 오도된 방식으로 강제추행에 대한 의심을 표명한 후 마지막 한 방울의 논리적 여지까지 닦아내겠다는 투로, ‘강제추행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윤지오의 진술이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가 드는 논거는 가해자 중심으로 구축된 자신의 주관적 가정을 실제 과정에 투사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문제다”라는 논법. 그 논법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면전에서 조0천의 추행 장면을 목격했다면 7개월 뒤 조사에서 가해자를 정확히 특정하지는 못했더라도 ‘일행 중 처음 보는 가장 젊고 키 큰 사람’ 정도로 지목할 수는 있었을 것인데 기자들의 보도를 추측해 50대 사장이 추행했다고 진술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 

상식적으로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제기다. 일행중 처음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윤지오로서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나머지 두 사람인 김종승과 변0호는 여러 차례 만난 바 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한 사람뿐이다. 문제는 그가 누구인가이다. 그 사람이 밤늦은 가라오케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가장 젊었는지 어땠는지를 기억해야만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는 것인가? 윤지오는 사건 7개월 뒤인  3월 15일에는 50대 초반, 18일에는 40대 중반으로 나이를 짚었다. 18일 진술 기준으로 조0천의 실제 나이와는 불과 몇 살 차이다. 

또 앉아서 술 마시다가 드물게 일어나 춤추는 자리에서 키가 크다는 것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 모두가 동시에 일어나 키재기를 하는 시간이라도 가졌어야 한다는 말일까? 게다가 윤지오의 키가 173cm라고 하는데 하이힐을 신었다면 윤지오의 눈 높이가 조0천보다 더 높아 조0천의 키가 작게 보였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보기에 판사 오덕식의 판결논리는 최면수사를 하면서 가해자가 신었던 구두의 모양과 색깔 따위를 묻고서는 각성수사에서 했던 말과 달랐다고 참고인을 다그쳤던 수사관의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 오덕식은 왜 초기수사에서 경찰이 윤지오에게 조0천의 실물이나 동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심지어 사진조차 보여주지 않았는지라는 핵심 문제를 회피하면서 윤지오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불충분한 기억을 의심의 도마에 올리고 그것을 증언 신빙성에 대한 의심으로 확대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이 가해자를 숨기고 보호하려는 남성주의적이고 권력카르텔적인 연대의식이 없고서야 가능한 일일까?

2019년 8월 22일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비롯한 상당수의 언론은 “윤지오 진술 신빙성 없어”(중앙일보), “윤지오 진술 신빙성 떨어져”(조선일보, 동아일보), “윤지오 진술 의문”(SBS) 등의 타이틀로 판결 결과를 요란스레 보도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한 오덕식의 판결의 정체가 뚜렷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오덕식의 판결은 윤지오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려온 4월 중순 이후의 일련의 윤지오 음해공작의 연장선 상에 있다. 뉴시스-박훈.김대오.김수민-SBS.조선일보(TV)-오덕식. 그리고 그 방법은 가해자의 관점에서 가해자와 사법 판결로 연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이 이 가해자 연대망의 일부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보도역사를 보아 충분히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 연대망은 유일하게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술해온 윤지오의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려’ ‘없애는’ 것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가져온 효과가 무엇일까?

무죄가 1심 판결이므로 아직 진실을 다툴 기회는 더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단체는 검찰에게 항소하라고 요구한다. 만약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다면 이미 그 정체를 충분히 의심받고 있는 검찰이 가해권력의 일부임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사건이 될 것이다. 만약 사태가 그렇게 발전된다면 법이 정의의 기관이 아니라 남성권력카르텔을 사수하는 가해의 기관임이 드러나는 것일 터이고 그렇다면 남는 것은 “법 위의 법”(윤지오), 즉 시민들의 직접행동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사법개혁을 위한 언어적 청원행동으로 나아갈지, 더 물리적인 직접적 제헌행동으로 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분노 지수는 높아지고 있고 지하로 흐르는 그것의 폭발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권력과 가해자중심주의의 논리: 조0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오덕식 판사의 판결에 대해(2)

부장판사 오덕식이 내린 무죄판결의 논리: 강제추행이 과연 있었던가 의심스럽다?!

부장판사 오덕식이 무죄판결의 이유로 든 것은 (내 손에 판결문이 없으므로 여러 신문의 취재기사와 법정에서 들었던 판결조각들을 종합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 두 가지다.

첫째 2008년 8월 5일에 청담동 가라오케에서 강제추행 사건이 있었는지를 확인할 증거가 부족하다.

1)5인 중 고인이 된 장자연 외에 변0호, 김종승은 강제추행이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조0천도 극구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윤지오만이 강제추행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지오 한 사람만의 진술로 강제추행의 증거로 삼기에는 충분치 않다.(“윤씨 진술만으로 피고인을 형사 처벌할 정도로 공소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2)당시 술자리는 접대 자리가 아니라 생일 축하 자리였고 피고인이 조선일보 기자와 총선 출마자라는 지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같이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 가운데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피고인이 이런 사람을 처음 소개 받는 자리에서 주의를 기울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3)(조씨의 강제 추행 행위를 주장한) 윤지오씨 진술에 의하더라도 만약 이런 강제 추행이 일어났다면 피고인이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는 상황 등이 일어나야 하는데 1시간 이상 노래를 부르는 행위 등을 계속했다.(“윤씨의 진술에 따르더라도 (고인의) 소속사 대표는 오해받는 것을 두려워했고, 고인과 친밀한 행동을 했으며, 고인이 술도 따르지 않도록 관리했다고 한다”면서 “그렇다면 공개된 장소에서 추행이 벌어졌다면 최소한 피고인이 강한 항의를 받았어야 하는데 한 시간 이상 자리가 이어졌다.”)

둘째 강제추행 사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윤지오가 피고인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근본적 의문이 든다. 당시 술자리에 있던 남성 4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조0천을 추상적으로라도 지목하지 못한 게 의문스럽다. 면전에서 조0천의 추행 장면을 목격했다면 7개월 뒤 조사에서 가해자를 정확히 특정하지는 못했더라도 ‘일행 중 처음 보는 가장 젊고 키 큰 사람’ 정도로 지목할 수는 있었을 것인데 기자들의 보도를 추측해 50대 사장이 추행했다고 진술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부장판사 오덕식은 강제추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 자체의 신빙성까지 의심하고 있다. 조0천이, 사건 당일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 홍0근이 그 자리에 참석했었다고 거짓 진술을 하고, (잠시 그 자리에 왔다가 떠났던) 주변 지인에게도 홍0근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거짓 증언하도록 청탁을 하고, 심리생리검사에서도 피해자(고 장자연)를 만난 적 있냐는 질문에 현저한 그래프 변화를 보였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데 부장판사 오덕식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했던가?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5월, 일관성이 있는 핵심목격자 윤지오의 진술을 배척한 채 신빙성이 부족한 술자리 동석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불기소 처분한 것은 잘못이라며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한 바 있고 이런 인식 위에서 검찰은 재수사 끝에 조0천을 기소했다. 그리고 2019년 7월 15일 검찰은 “(증인인) 윤지오씨의 진술이 굉장히 일관된다”, “요즘 문제되는 윤씨의 신빙성 문제는 본건과 무관하다”, “윤씨는 장씨가 속해 있던 기획사 대표 김종승씨의 재판에 나가서도 ‘(장씨가) 김씨 생일에 추행당하는 것을 본 적 있다”고 증언했다”, “윤씨 진술의 자연스러움과 일관됨을 고려해 조씨에게 유죄를 선고해달라”며 1년 형을 구형한 바 있다.

안희정 사건 판결에서 1심과 2심의 차이: 가해자관점인가 피해자관점인가?

당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방법원 동문에서 열린 녹색당 주최 기자회견에서 여성 발언자들은 한결같이 무죄 선고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준비해온 발언문을 지금 즉석에서 수정해야 하는 난감함을 호소하면서 말이다. 부장판사 오덕식이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황당하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이 판결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한 가지 사례가 있다. 그것은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인 안희정 사건의 1심과 2심을 비교하는 것이다. 1심에서 안희정은 무죄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2심에서 그는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다. 이 커다란 차이는 어디에서 왔던가?

2017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러시아, 스위스 등 해외 출장지와 서울 등에서 전 수행비서인 김지은에게 전 지사 안희정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 등 10차례의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던 이 사건에서 1심의 부장판사 조병구와 2심의 부장판사 홍동기의 견해는 세 가지 쟁점에 관해 상반되었다.(이하 황국상 기자, 안희정 ‘무죄→실형’으로 뒤집은 1·2심 세가지 차이점, 머니투데이, 2019.02.01의 정리 참조)

첫 번째 쟁점인 피해자 진술 신빙성과 관련해 조병구는, “(성범죄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고 피해자의 성인지 감수성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피해자의 진술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나 의문점이 많고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얼어붙은 해리상태에 빠졌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동기는 피해자 진술이 대체로 일관되고 부합하면 객관적으로 도저히 신빙성 없다고 보이지 않는 이상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가 없는 이상, 사소한 부분의 일관성이 없거나 단정적 진술이 불명확하다고 해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인 업무상 위력 여부에 관해 조병구는  “피고인이 유력 정치인이고 차기 유력 대권 주자로 거론되며 도지사로서 별정직 공무원인 피해자의 임면권을 가진 것을 보면 위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권력적 상하관계에 놓인 남녀가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상대방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력이 존재하고 행사돼야 한다”고 했다. 또 “안 전 지사가 평소 자신의 위력을 행사하거나 이를 남용해 피해자나 직원의 자유의사를 억압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이와 달리 홍동기는 “업무상 위력 등은 자기의 보호와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추행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이라 함은 직장 내에서 실질적으로 업무·고용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도 포함한다”며 “이 때의 위력은 유·무형을 묻지 않고 폭행·협박 뿐 아니라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고 현실적으로 자유의사가 제압되는 것까지 인정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라고 했다.

세 번째 쟁점인 피해 이후의 피해자 행동과 관련해 조병구는, 피해자가 안 전 지사에게 최초의 간음 피해를 입은 후 주고 받은 메시지 내용이 ‘지사님이 고생 많으세요’ ‘쉬세요’ 등 위협적 대화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피해자가 동료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면 이모티콘이나 애교섞인 친근감 등이 있다. 성범죄 피해자로 보일 수 없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반면 홍동기는 “피해자가 3자에게 이모티콘을 사용했다더라도 별다른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애교섞인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수행비서로서의 일을 수행한 이상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성범죄 피해자로 도저히 볼 수 없다거나 피해자 주장의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세 가지 쟁점의 차이는 조병구가 가해자의 관점에서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가해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한 반면 홍동기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가해자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요구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피해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오덕식의 관점은 안희정 사건에 비교한다면 누구에 가까운가? 당연히 조병구의 관점, 즉 가해자의 관점에 가깝고 오히려 그 관점을 더욱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이제 오덕식이 무죄 근거로 삼은 것들이 왜 가해자 관점에서 파악된 근거들인가를 살펴보자.

가해권력과 가해자중심주의의 논리: 조0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오덕식 판사의 판결에 대해(1)

2019 8 22서울중앙지법 6 509호의 풍경

2019년 8월 2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2층 ‘오늘의 공판’ 게시판에는 몇 번씩이나 확인했지만 조0천 공판 게시글이 보이지 않았다. 강제추행이라는 죄목이 딱 하나  있었는데 조0천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이전 공판이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가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다시 ‘오늘의 공판’ 게시판으로 가서 마침내 오덕식 부장판사 이름을 찾았다. 6관 509호를 사용하는 판사였다. 그런데 6관 509호의 오전, 오후 공판 일람에는 이미 확인했듯이 조0천 강제추행 건 공판이 게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도 509호로 갔다. 재판은 이미 진행중이었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이 경험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피고인에 대한 ’조직적 은폐’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사건번호를 모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문턱에서 공판 참관을 못했거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나는 509호실 우측 입구에서 발돋움을 하며 선고 내용을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들리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간간히 윤지오가, 윤지오는…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다음에 뭐라고 하는지 문장맥락을 따라잡기는 완전히 불가능했다. 

아마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일 부장판사 오덕식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판사석의 높은 의자의 한 귀퉁이가 조금씩 움직였지만 인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흰색 옷을 입은 경관(?)이 방청석을 마주하고 판사석 정면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로 누군가의 독백을 듣는 무료한 시간이 한참 지났을 무렵, 그 경관이 다리가 아픈지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그 짧은 순간에 한 사람이 판사석에 앉아 앞으로 웅크린 자세로 청중을 외면한 채 손에 든 판결문에 시선을 파묻고 그것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좀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리고는 그 경관이 다시 바른 자세로 서고 나서는 그 경관 뒤에 숨은 그 인물의 모습을 다시 볼 수가 없었다.

판사석을 바라보는 중앙 피고석에는 정장 차림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아마도 조0천일 것이었다. 그 사내 때문에 검사석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약 30여분이 지난 뒤 갑자기 재판정이 술렁이더니 조0천이 뒤돌아 섰다. 살짝 미소가 배인 얼굴이었다. 이 때문에 선고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조0천에게 유리한 판결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조0천이 몇 사람과 함께 나의 옆을 지나 황급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그는 선고 이후 법정을 나와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법정은 벌써 다음 피고를 불러내 다음 재판을 시작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선고형량이 뭐냐고 물어도 잘 알지 못했다. 이러저리 확인하고서야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제추행 가해자를 지목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

2008년 8월 5일 김종승 생일 날에 김종승, 변0호, 조희천[당시 39세], 장자연, 윤지오 등이  22시 30분에서 23시 30분까지 청담동의 한 가라오케에 있었다는 것은 이제 확인된 사실이다. 윤지오는 당시 좌석 배치도를 제출하면서 그곳에서 벌어졌던 강제추행 상황을 이렇게 처음으로 진술한다. 

“술테이블에 자연이 언니가 올라가서 춤을 출 때 밑에 앉아 있는 김종승과 손님들이 자연이 언니가 마침 치마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밑에서 치마속 팬티를 보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손님 중에 신문사에 사장님이 자연이 언니를 테이블에서 손목을 잡아 당겨 자기 무릎에 앉아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만지고, 곁으로 가슴을 만졌을 때 자연이 언니가 하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이 강제추행을 한 것이 누구인가? 그 사건의 장소 일시, 어느 신문사인지 등 인적 사항을 묻는 수사관의 질문에 윤지오는 이렇게 답한다. 

“날짜는 잘 모르고 장소는 청담동 엠넷 방송국 건너편에 있는 가라오케이고 어느 신문사인지 모르고, 나이는 약 50대초반으로 일본어를 유창하게잘했고, 그 당시 5명 정도가 참석을 하였습니다.”(2009년 3월 15일)

이후 윤지오는 자신이 받아두어 보관하고 있던 명함들 중에서 유일하게 언론사 사장 직함이었던 머니투데이의 홍0근이 강제추행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사흘 뒤인 3월 18일 참조인 조사에서 거의 동일한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정확한 날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카키색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갔으니까 여름이고, 김 대표님 생일이기 때무에 기획사 사무실 3층 VIP홀에서 직원들과 소속 연예인 고00, 장자연이 참석을 하고, 대표님이 부르신 머니000 홍0근 대표, 보0인베스트먼트 변0호 대표가 참석하여 식사를 마치고 저녁 9시경에 자리를 옮겨 청담동 엠넷 방송국 건너편에 있는 상호는 모르는데 5층 정도 건물에 2-3층에 가라오케에 갔습니다.”

그러자 수사관은 머니000 홍0근 대표와 보0인베스트먼트 변0호의 인상착의에 대해 진술하라고 한다. 수사관은 남자 셋 중 김종승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둘 중에서 강제추행 가해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

“머니000 신문사 대표 홍0근은 나이는 약 40대중반이고 신장은 약 168정도이고 체격은 보통이고 안경은 착용하지 않았고 얼굴형이 넓은 편이면서 얼굴이 긴편이고 머리스타일은 그 당시 하이칼라 형이면서 양머리가 짧은 편이고(윗머리는 긴편), 밝은 계통의 남방을 입은 것으로 기억하고,(진술인이 제출한 명함 참조)

주식회사 보0인베스트먼트 대표 변0호는 나이는 약 50대 초반이고 신장은 약  170 초반이고 체격은 좋은 편이지만 근육질이 아니라 살이 많았고 얼굴형이 보통 사람보다 옆으로 큰 편이고 피부가 검은 편이고 쌍꺼풀은 없고 머리스타일은 그 당시 나이에 비해 많은 편이고 하이칼라를 하였는데 양쪽 머리는 짧은 편이고 그 분은 항상 정상을 입었는데 그 날은 남방에  마이를 입은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진술인이 제출한 명함 참조)”(강조는 인용자)

이 진술로써 변0호는 강제추행 당사자에서 배제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윤지오가 “항상 정상[장]을 입었는데”라고 말할 정도로 윤지오가 잘 아는 사람이었고, 만약 그 사람이 강제추행을 했다면 그 당사자를 지목하는 것은 너무 쉬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대면 그만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강제추행 당사자는 윤지오가 처음 만난 남자, 3월 18일에 “머니000 신문사 대표 홍0근”으로 지목한 그 남자로 좁혀진다. 그런데 명함을 제출하면서 이루어진 이 두 번째 진술에서 그 신문사 사장의 나이는 5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으로 낮추어진다. 당시 조0천의 나이는 39세로 약 6세 정도의 차이가 난다. 홍0근은 그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 위이므로 당시 49세 정도였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가를 찾는 이 과정에서 경찰이 사용한 방법은 지극히 불합리한 것이었다. 위의 진술이 보여주듯이 윤지오의 기억 속에는 강제추행한 사람의 구체적 이미지가 이미 들어 있다. 그런데 진술은 그 구체적 이미지를 분석해 추상적 특징들로 세분한다. 나이, 언어, 옷, 체형, 체격, 키 등으로.  이제 다시 그 추상적 특징들이 지목된 인물의 실제와 부합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1)기억 속의 구체적 이미지 (2)기억을 말로 표현하면서 추상된 특징들 (3)인물의 실제,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경찰은 (1)과 (3)을 대질을 통해 바로 조회토록 하면 되는 것을, 진술로 표현된 (2)의 추상특징들이 실제 (3)과 맞는지를 확인하면서 고의로 먼 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쓴다. 생각해 보면 이런 우회방법은 개개의 특징들에 대한 진술자의 혼선을 자아내어 진술자를 공격하기(즉 진술자의 진술 진빙성을 낮추기) 위한 방법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사진을 놓고 맞추는 과정에서조차 조0천의 사진을 꺼내놓지 않았다. 조0천이 그 자리에 참석했는지 안 했는지를 경찰이 몰랐을 리는 없다. 장자연은 고인이 되었으므로 증언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조0천을 초대했던 김종승과 변0호의 진술이 이미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경찰이 윤지오 증언자를 교란시키고 구두 색깔이 뭐냐 따위를 묻는 해괴한 최면 조사를 통해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렸지만, 윤지오는 참고인(피의자가 아니라!) 조사를 받으러 온 조0천을 우연히 본 후, 즉각 “저 분이 바로 자신이 말한 홍0근 대표이고 강제추행의 당사자”(“그 분이 오셨네요.”)라고 말한다. 즉 (1)기억 속의 구체적 이미지와 (3)인물의 실제가 조회되는 순간에 바로 양자의 일치가 확인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우연히! (2)의 추상적 특징들을 뽑아내 그것을 (3)과 매치시키려는 경찰의 노력은 바보같은 일이었거나 조0천을 숨겨주기 위해 고안된 속임수였거나 둘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그런데 윤지오의 생각과는 달리 그의 이름은 홍0근이 아니었고 조0천이었다. 윤지오는 기억 속에 처음부터 이름을 모르는 “조0천”의 형상을 갖고 있었지만 갖고 있던 명함 때문에 그것을 “홍0근”으로 오인했으며, “조0천” 없는 사진들 속에서 “조0천”을 찾는 경찰의 수수께끼 깥은 대조작업, 진술자를 고문하는 최면수사 등을 받으며 기억 속의 가해자를 정확하게 지목하지 못한 채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조0천의 실물이 윤지오의 눈 앞에 나타나자마자 윤지오는 바로 저 사람이라고 지목했고 이후 단 한 번도 조0천이 강제추행의 당사자라는 증언을 바꾼 적이 없다. 

이상이 윤지오가 조0천을 강제추행의 당사자로 지목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요약이다.

포스트모던 사칭술에 대해

나의 글”슛맨, 가해권력, 그리고포스트모던사칭술”에 ID 김상범 님이  “사칭술이면 그냥 사칭술이지, 왜 ‘포스트모던’이 붙는지 모르겠네요.”라는 댓글을 달아 주었다. 내가 위 글에서 그 용어의 의미를 문면 속에 묻어두었지 별도로 꺼집어 내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그 점을 보충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사전적 의미에서 ‘사칭’은 “이름, 직업, 나이, 주소 따위를 거짓으로 속여 이르다.”를 뜻한다. ‘사칭범’이라는 항목에는 “이름, 직업, 나이, 주소 따위를 거짓으로 속여 남에게 경제적인 손해를 입힘으로써 성립하는 죄. 또는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라는 정의가 붙어 있다. 그러므로 사칭이란 고의로 실제 지시 대상과 유리된 기표(singifiant)를 사용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의상 사칭의 주체는 사칭하는 사람 자신이다. 사칭하는 그 자신이 지속적으로 ‘나는 의사다, 나는 교수다, 나는 IT 전문가다, 나는 부동산투자자문위원이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다’ 식으로 말하고 다니고 그것이 소문으로 떠돌면서 그 사람에 대한 그러한 평판이 주변에 조성되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닐 때 보통 우리는 그가 XX를 사칭했다고 표현한다. 이것을 근대적 유형의 사칭이라 부르자.

그런데 그 사칭을 누가 대신해 준다면 어떻게 될까? 이미 근대적 유형의 사칭 속에서 ‘소문’이 그 대신해주기를 함의한다. 지시대상과 유리되도록 만들어진 기표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지시대상과 상당히 강력하게 유착된 가짜 기의(signifié)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보통 평판은 이런 식으로 소문을 통해 이루어져 왔고 사칭임이 드러나는 순간은 그러한 평판에 금이가는 순간일 것이다. 

그런데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은 좁은 공동체 내에서만 통용되는 가짜 기의, 즉 사칭을 가능하게 한다. 그 공동체를 벗어나면 그 사칭은 의미를 잃게 되고 사칭자는 원점에서 다시 사칭을 시작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게다가 공동체 속에서는 사칭 자체가 쉽지 않다. 해당 공동체의 성원들이 사칭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실제를 상대적으로 쉽게 알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상의 가까움이 갖는 감시기능 때문에 기표를 실제대상에서 유리시키는 것이 처음부터 곤란한 것이다. 이처럼 근대에 사칭은 공동체 내에서의 장애와 공동체 밖에서의 장애라는 이중의 장애에 부딪히기 때문에 예외적 행위형태였다고 할 수 있다.

메트로폴리스화, 미디어화, 디지털 테크놀로지 및 인터넷의 확산 등 탈근대적 현상들의 대두는 사정을 다르게 만든다. 공동체가 와해되거나 느슨해져 각자가 개체화된 점들로 바뀌고 그 점들을 미디어와 디지털 네트워크가 연결하게 된다. 이것은 사칭의 두 장애가 모두 철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적 공동체의 자생적 감시기능이 사라지고 아날로그의 공간적 한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나타나는 것이 대의로서의 사칭, 혹은 사칭 대의이다. 서0혁 사건은 이러한 사칭 대의가 직업적으로, 하나의 영업으로서 영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디어가, 사칭자를 대신해서 사칭해주는 일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드와이드웹(WWW)은 구매된 그 사칭상품을 전 세계적으로 유통시키는 사칭 네트워킹 장치로 기능한다. 우리는 실제대상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가짜 기의를 품고 흘러다니는 기표만을 만나고 그것과 관계 맺는다. 하나의 기표가 가짜 기의, 즉 사칭의 담지자였음이 드러난 후에도 사칭자는 새로운 기표를 미디어에서 구매하여 그것을 WWW에 유통시킴으로써 새로운 사칭을 해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로는 동대문 의류도매상과 대리운전기사라는 직업을 가졌다고 하는 서0혁이 그때그때 의사, 교수, 투자자문위원, IT전문가라는 사칭(가짜 기의)을 연쇄적으로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지금은 다시 멀리 캐나다까지 가서 ‘정의로운 고발자’ ‘공익제보자’를 사칭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조건 하에서다. 그것은 서0혁의 그 사칭을 기사나 방송으로 판매하여 유통시키는 인터넷신문, 유튜브방송 등의 미디어와 인터넷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1인시위 쇼를 벌이는 서0혁을 인터넷 방송으로 송출하면서 윤지오가 아니라 서0혁이야말로 ‘공익제보자’라고 속삭이며 공공연하게 사칭해 주는 포스트모던 미디어가 없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칭 놀이를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장 보드리야르) 것으로 느끼면서 얼마나 즐거워하는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서0혁의 사칭을 포스트모던 사칭이라 불렀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스스로를 ‘공익제보자’로 사칭하는 방식은 좀 새롭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공익제보자로 사칭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부여했던 사칭의 방식을 타자(윤지오)에게 강제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사람의 이름들, 직업들, 죄목들이 사칭으로 될 수 있다는 탈실재적 가정에 근거한다. 사칭자가 미디어를 이용해서(즉 구매해서) 누군가에게 갖다 붙이는 이름이 그 사람의 이름이 되고 직업이 되고 범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칭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고 특수가 아니라 보편이 된다. 서0혁은 윤지오에게 “사기”, “음란” 등의 죄목을 갖다 붙임으로써 윤지오라는 실제 대상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사칭’들을 유통시키고 가상실재화(virtualize)하는 미디어쇼를 벌인다. 캐나다의 가택 앞으로 찾아가 윤지오에게 이같은 사칭을 부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그것을 인터넷 유튜브 방송(미디어)으로 송출하도록 만들어 가상실재화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용했던 사칭의 방법을 타자에게 외부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부과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칭의 일반화와 일상화의 질서를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얼핏보면 이러한 방식은 자신의 전문특기인 사칭이 지배하는 세계를 만들어 자신의 사칭이 결코 범죄가 아니라 삶의 일반적 논리, 윤리, 관행, 문화, 아니 심지어 법칙이 되기를 갈망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이름들을 ‘사칭’으로 만들어 평등한 사칭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평등해 보이는 사칭의 세계에 크나큰 불평등과 적대성이 도사리고 있다. 사칭의 일반화를 추구하는 이 방법이 자신과 같은 사칭 전문가 유형의 인간이 확실하게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자신의 사칭은 언론세탁으로 끊임없이 합법화하면서 타자에게 자신이 고의적으로 부여한 사칭은 범죄화하여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유죄인 자신을 무죄사칭하고 무죄인 사람을 유죄사칭하는 이 괴이한 행동의 반복을 통해 세상을 거꾸로 물구나무 세우고 그 거꾸로 된 세상에서 지배권력을 움켜잡고자 하는 기술이 바로 포스트모던 유형의 사칭술이다.  

슛맨, 가해권력, 그리고 포스트모던 사칭술

슛맨의 정치적 무의식: 장자연 사건의 “가해권력”이란 좌파 정권이 윤지오를 이용해 만들어낸 가공물이라고 주장하여 가해권력을 은폐하고 비호하기

최근 동영상에서 슛맨이 한 말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요약된다.

  1. 장자연을 죽인 가해권력은 없다. 그것은 모두 윤지오가 돈을 벌기 위해 캐나다에서 짜 가지고 한국으로 가져온 “완벽한 시나리오”의 일부이다.
  2. 윤지오로 하여금 이러한 시나리오를 짜서 한국으로 가져오도록 한 배후가 있다. 그것은 김영희를 비롯한 한국의 “좌파”이다.
  3. 이들 “좌파”는 윤지오를 이용한 후 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윤지오는 가련한 희생자다.
  4. 그럼에도 윤지오는 자신이 버림받은 줄 모르고 자신의 시나리오를 진실이라고 주장하며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뻔뻔하게 그 시나리오가 진실이라고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
  5. 이렇게 하게 되는 이유는 윤지오가 학력을 위조하고 음란행위를 하는 불량한 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하는 말이 “거짓말”임을 알지 못하고 계속 “거짓말”을 한다.
  6. 많은 고소고발을 당한 윤지오를 한국의 수사기관이 강제소환해서 구속수사해야 한다.
  7. 그런데 “좌파”정권의 통제를 받는 한국 수사기관이 과연 그렇게 할지 의문이고 그래서 캐나다까지 와서 1인시위를 하고 방송을 한다.

장자연을 죽인 가해권력이 없다는 주장은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을 주장이다. 가해권력의 공작으로 그 실체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가해권력이 실재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 10년간의 수사, 기소, 재판, 증언, 논란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슛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가 가해권력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즉 가해권력이 위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윤지오가 그 위조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슛맨은 윤지오를 조사하면 윤지오가 그 위조의 몸통을 실토할 것이고 그러면 가해권력을 위조한 진짜 책임주체인 좌파의 음모가 드러날 것이라고 공상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기이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기록과 증거로 남아있는 엄청난 물증들을 외면하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둘째로는 좌파가 윤지오에게 이용당했다는 조선일보(TV)의 주장과 정반대 방향에서 음모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윤지오의 음모로 본 반면 슛맨은 좌파의 음모로 본다. 이 점에서는 슛맨이 조선일보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일개 시민 윤지오가 “좌파” 권력자들과 권력기관을 들었다 놨다 했다는 조선일보의 주장은 리얼리티가 전혀 없어 신빙성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음모론 모두 윤지오가 증언을 통해 진실을 말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타조식 사고법을 공통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셋째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슛맨과 그 TV 자신이, 조선일보와 함께, 증언자를 2차 가해하는 가해자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해행위에서 느끼는 쾌감과 희열에 도취된 탓일까?

포스트모던 사칭전문가와 결탁하고 그를 앞세워서 윤지오를 공격하는 가해권력 중에서 살짝 윤곽이 드러나는 부분:  “뉴시스 무리”

서0혁은, 한겨레21의 보도에 따르면, 게이오대 병원 수련의, 연세대 협력교수, IT전문가 부동산투자자문위원을 사칭한 바 있다. 그 사칭을 감추어 주는 것이 언론인데 여기에 사용되는 것이 ‘기사 출고 거래’, 즉 기사를 유료로 의뢰자에게 파는 숨겨진 관행이다. 이 포스트모던한 거래는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는데, 이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위의 한겨레21 보도기사이다.(변지민 조윤영 기자, 가짜뉴스 사서 스펙 만든 현대판 ‘김선달’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6326.html) 최근 서0혁은 윤지오를 사칭해서 윤지오 경호회사를 탈세로 고발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서0혁은 유엔 직원이라고도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 그가 유엔 직원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확인해 주지 못하고 있다.

슛맨은 전직 뉴시스 소속이었다고 한다. 슛맨과 함께 캐나다로 가서 윤지오 가택 주변을 취재한 노기자는 뉴스핌의 기자라고 한다. 뉴스핌은 뉴시스 출신의 민0복이 대표로 있고 노기자도 뉴시스 출신이라고 한다. 우리는 뉴시스가 2019년 4월 8일  윤지오에 대한 최초의 ‘비난 프레임’을 만든 통신사임을 기억하고 있다. 뉴시스는 최지윤이 쓴 이 기사를 윤지오의 항의를 받고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뉴시스는 홍0근이 대표로 있는 머니투데이 계열사이다.

홍0근은 누구인가? 홍0근은 장자연 사후 초기 수사 당시에 윤지오가 장자연을 강제추행한 사람으로 잘못 지목했던 사람이다. 이 때 윤지오는 조0천을 언론사 사장으로 알고 있었고 자신이 술자리에서 받아 소지한 명함 중에서 유일한 언론사 사장이 홍0근이었기 때문에 그를 잘못 지목하게 되었다. 물론 경찰이 조0천의 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그 착오가 오게 된 한 요소이다. 이렇게 우리는 최근 윤지오에 대한 2차 가해 흐름에 뉴시스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뉴시스와 그 기자에서 시작하여 뉴시스 출신기자, 뉴시스 출신 언론사와 그 언론사의 기자 등을 통칭하여 “뉴시스 무리”라고 부르겠다.

한겨레21의 기자 변지만, 조윤영은 위의 보도기사에서 언론사들이 인터넷 기사 한 편을 올려 주는데 10만원(최저가 브릿지경제)~28만원(최고가 조선일보, 중앙일보)을 받는 현실을 폭로했다. 이 기사에서 두 기자는 “서준혁”이라는 인물이 한 해에만 50건 이상의 기사를 실어 자신을 투자자문위원 등으로 신분위조를 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돈을 받고 기사를 파는 이런 현실이 언론의 공멸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지오에 대한 서0혁의 고소고발이 언론에 자신의 이름을 내서 자신을 “정의로운 인물”로 신분위조하기 위한 아주 저렴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0혁은 이제 윤지오를 강제송환하도록 만들겠다는 이름으로 뉴시스 무리의 하나인 슛맨 티비의 방송에 단골로 출연할 기회를 얻고 있다. “사기꾼”을 고발한다는 적반하장 식 이유를 대고서 말이다.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을 고발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저렴하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이력으로 보면 서0혁은 자신에 관한 보도기사를 돈을 주고 사서 위조신분을 연속적으로 세탁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포스트모던 사칭방법을 윤지오 음해쇼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면, 슛맨이 그를 1인시위자로 방송에 계속 장시간 출연시키는 것에 그가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 있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다. 슈퍼챗으로는 크게 재미를 못보고 거둔 것보다 더 비쌌을 수도 있는 비난을 들은 슛맨 티비에 출연료로 서0혁이 얼마를 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지난 번 전화 인터뷰 방송에서 서0혁이 캐나다로 슛맨을 모시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항공권과 숙박비, 그리고 나이애가라 폭포 관광비 등을 제공하겠다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방송 중에  슛맨이 지속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응원해 주셔야 한다면서 ‘좋아요 눌러주세요, 구독해 주세요, 알림종 눌러주세요’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그에 대한 보상적 댓가일까? 아니면 또 다른 댓가가 있는 것일까? 시민들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위험한 가해연합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들이 취재하고 조사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증언자 윤지오만이 아니라 언론 일반의 공익성이 위협받고 있고 언론에 대한 신뢰가 극단적인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