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 살아움직이는 모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윤지오에게 청탁한 증언은 오직 한 가지다. 그가 장자연의 죽음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과 사태에 관해 아는 바를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청탁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그가 증언을 하는가 않는가, 그리고 증언을 한다면 어떤 증언을 하는가이지 다른 어떤 것일 수 없다. 그가 평소에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돈을 밝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기적인 사람인가 이타적인 사람인가 등은 이 문제와 아무런 본질적 연관도 갖지 않는다. 그가 증언을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그것의 증언으로서의 진실성과 가치 여부는 지금까지 10여년간 이루어진 진술들 및 기타 다른 증거자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다중들과 더불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김수민의 ‘고발문건’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그것이 진상조사(구체적으로는 진상조사단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김수민은 저 ‘고발문건’에서 증언과 관련해 세 가지를 주장한다. 

1)윤지오는 장자연에 관해 증언할 만큼 친하지 않았다

윤지오가, 자기는 장자연이랑 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울리지도 개인적 연락도 없었다고 말했다. 장자연이 겪은 경험을 자기는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2)윤지오는 장자연 문건을 본 적이 없다

윤지오가 경찰 조사를 받는 중에 책상에 놓여 있는 문서를 우연히 봤다고 말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도 거기서 봤다고 말했다.

3)윤지오는 아무 것도 모른다

윤지오는 목숨 걸고 증언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변호사에게는 자신이 증언할 필요도 한국에 갈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단 대화내용 캡쳐 보내준 것에서 윤지오는 김종승이 장자연씨 추행한 것이나 방00 얼굴 본 날짜 장소 상황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주장은 윤지오가 증언한다 할지라도 그 ‘증언은 거짓이다’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이것은 진상조사단과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주장임이 분명하다. 이 주장들은 모두 윤지오가 했던 말에 근거하며 실제로는 전언(傳言)의 형식을 빈 고발이다. 그 전언 자체가 고발이 되는 것은 주로 윤지오에 대해 알려져 있는 사회적 앎과 그 전언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김수민이 전하는 말이 그 사회적 앎을 바꾸어야 할 만한 진실성을 갖는지가 검토되어야 하다.

첫째는 장자연과 윤지오의 친밀성 문제다. 친밀성 문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증언은 그 자체가 힘든 노역이거니와 특별히 장자연 사건에서처럼 영향력 있는 권력자들이 고인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이미 드러난 사건에서 그 권력자들의 언행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은 특별히 어려운 일이다. 윤지오는 이 사건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기 때문에 그가 증언을 무릅쓰는 데에는 진실규명이라는 시민일반적 동기 외에 고인과의 친밀성 동기가 중요한 특수동기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 윤지오는 이미 여러 차례의 진술에서 소속사인 더콘텐츠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오기 전과 후로 나눠 그 친밀성의 강도에 변화가 있었음을 밝힌 바 있다. 소속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친자매보다 더 친했지만 그 후에는 소원해졌었다고. 장자연의 죽음은 소속사에서 나온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하지만 죽음은 소속사 전/후의 시간을 횡단할 만큼 충분히 강렬한 사건이다. 윤지오는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친 후 장자연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자정 시간에 빈소로 달려가 조문하고 사흘을 장례식장에서 유가족과 함께 보냈다. 이것은 친밀성 동기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도 친하지 않은 동료의 죽음에 대해 이런 예를 갖추지 않는다. 또 열 여섯 차례에 이르는 증언(적어도 열 두 차례는 경제적 동기를 의심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을 감당하는 것도 친밀성 동기를 빼고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윤지오는 처음부터 ‘참고인’이었고 증언과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강제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 친밀성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없고 그것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 하지만 윤지오의 행동들이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윤지오가 장자연의 장례에 동행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증언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친밀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둘째는 윤지오가 문건을 본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내가 이미 여러 차례 논박해 왔거니와 지난 10년간 쌓여온 진술증거들에 의해 반박된다. 진술증거들은 유장호, 장자연의 오빠와 언니(그리고 숙모), 이른바 ‘유장호의 경호원(?)’ 그리고 윤지오 등이 문건을 본 사람들임을 확인해 준다. 이들은 모두 문건의 목격자들이다. 김대오 기자와 KBS 기자그리고 장자연의 스타일리스트 이00는 문건 일부의 목격자들이다. 이미숙과 송선미는 문건을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다. 이처럼 문건의 목격자, 부분 목격자, 추정 목격자는 많다. 다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문건의 내용 중 ‘리스트’ 부분의 내용에 대해 증언하려 하지 않음에 반해 윤지오만이 유일하게 그것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지오가 ‘유일한’ 증언자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때문이다. 윤지오의 증언이 있는 한에서 그것의 진실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목격자들 및 추정목격자들, 그리고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윤지오가 증언을 위해 한국에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셋째의 주장은 김수민 자신이 주장하려는 것의 정반대 것을 증명하는 증거로도 사용될 수 있다. 김수민은 윤지오가 장자연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지 않으려 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사건에 대해 윤지오가 알기 때문에 증언을 주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을 말할 때 그것이 권력자들과 부딪혀야 하는 것이라면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주저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막상 증언에 나섰을 때는 바로 그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지오가 이 사건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김수민이 드는 것들은 내가 아는 한에서는 윤지오가 모를 수밖에 없는 사례들이다. 왜냐하면 윤지오는 ‘김종승이 장자연씨를 추행한 것’을 본 적이 없으며 ‘방00 얼굴 본 날짜 장소 상황에 대해’ 말해줄 아무런 경험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거나 겪지 않은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 않는가? 윤지오는 자기가 보거나 겪지 않은 것을 기억할 수 없었지만, 본 것과 겪은 것은 상당히 정확하게 기억했고 또 그에 따라 10년에 걸쳐 진술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윤지오의 증언은 거짓’이라는 주장을 내오기 위해 김수민이 제시한 세 가지 핵심적인 주장들 모두가 ‘거짓’에 준할 만큼 정확성을 결여하고 있다. 물론 전언이므로 근거가 있을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결국 증언의 허구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잉되게 서술한 나머지 전언들 모두가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독단적 말들(즉 비난)으로 남는다. 그것들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윤지오를 처음에는 사기꾼일 수 있다고 의심했지만 그에게 결국 속았다.’ ‘윤지오는 이기적이고 일방적이며 의존적이었다’ ‘윤지오의 태도가 불만스러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관계를 유지했다.’ ‘윤지오는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사람, 표리부동하고 배은망덕한 두 얼굴을 가진 사람, 위선적인 사람, 거짓말쟁이 한 마디로 나쁜 사람이다’ ‘윤지오의 귀국 목적은 증언이 아니라 돈과 명성이었다’ ‘윤지오는 자기홍보에 장자연을 이용했다.’’윤지오는 출판과 사업을 통해 돈을 모으려 했다’ ‘윤지오는 돈을 모으기 위해 위험을 과장했다’ ‘윤지오는 유가족의 뜻을 무시했고 유가족을 비난했으며 그들과 나눠야할 할 돈을 독차지했다.’ 등등.

윤지오를 향한 이 비난들은 결국 ‘검증되어야 할 것은 권력자들의 성폭력이 아니라 윤지오의 거짓말이다’라는 하나의 명제를 향해 결집된다. 그리고 김수민의 주장은 “타파되어야 할 것은 재벌,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의 성폭력 권력이 아니라 윤지오라는 새로운 권력이다”로 집약된다. 장자연은, 힘센 김종승마저 ‘아, 예!’라고 굽신거려야 할 정도의 거대 권력의 압력 앞에서 ‘나는 지금 힘도 없고 빽도 없다’며 절규한 후 죽어갔다. 김수민은, 과거에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지만 이제는 가장 잘 알게 되었다고 쓴다. 과연 무엇을 알게 된 것일까? 그는, 고인이 된 장자연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면서 장자연의 절규에는 침묵한다. ‘장자연 사건이 희석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모든 힘을 윤지오 죽이기에 쏟는다. 그런데 지금 지구상에 장자연 사건을 희석시키지 않을 인물은 아직까지는 윤지오뿐이다. 안타깝게도 그만이 ‘유일한’ 증언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이 희석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윤지오 죽이기에 전력을 다하는 김수민의 모습은 우리 시대에 살아 움직이는 모순 그 자체이다.  

김용호의 거짓말: 홍가혜에서 윤지오로

김수민의 내부고발문건이 나오기 하루 전날인 4월 15일 좌파언론에 맞서 싸우는 투사를 자처하는 유튜버 김용호 연예부장이 ‘윤지오의 거짓말’(https://www.youtube.com/watch?v=D-l2INvYdoI)이라는 방송을 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이날의 방송에서 김용호는 김수민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지만(하지만 다른 방송에서 김수민이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 왔다는 사실을 밝힌다) 박훈 변호사의 페이스북, 김대오 기자의 말을 이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그것의 요지와 그것의 진실성 여부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1)누가 그녀를 위협한다는 것인지 윤지오는 밝히고 있지 않다. 윤지오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없다.

윤지오가 권력자들의 이름이 나열된 ‘장자연 리스트’가 있다고 증언했고 네 사람의 이름을 진상조사단에서 진술한 이상, 윤지오가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말은 권력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사람의 감각양식에 기초해서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2)꽃배달은 홍선근 회장이 한 것이 아니라 머니투데이의 기자 김건우가 한 것이다. 윤지오는 피해망상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윤지오가 갖고 있었던 명함과 증언으로 인해 머니투데이 홍선근 회장이 경찰의 수사대상으로 오른 직후에 (아무런 메모도 없이) 배달되어온 꽃다발에서 윤지오가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이 홍선근 회장이 보낸 것으로 인식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것을 피해망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을 정신병자로 모는 것이다. 부하가 상사가 맞아야 할 매를 대신 맞는 경우는 한국사회에서 허다하기 때문에 ‘회장이 아니라 기자인 내가 꽃다발을 보냈다’는 해당 신문 기자의 해명은 윤지오의 말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어떠한 근거도 되지 못한다. 

3)윤지오는 문건을 본 적이 없다. KBS가 보도하여 언론에 이미 공개된 타다만 문건을 보았을 뿐이며 윤지오가 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왕진진의 리스트를 짜맞춘 것에 불과하다. 문건을 본 것은 김대오 기자다.

윤지오가 문건을 봤다는 것은 유장호와 유가족들 모두가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김대오는 장자연 문건의 마지막 한 구절 외에는 본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스스로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바 있다. 윤지오는 <13번째 증언>의 17장에서 왕진진의 편지를 자작극으로 단정하고 있으며 왕진진이 장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내놓은 편지도 장자연의 필체가 아니라고 기각한 바 있다. 윤지오를 (이미 사기와 조작의 달인으로 판명된) 왕진진=전준주와 연결시키는 것은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워 윤지오의 증언 신뢰성을 낮추려는 술수 이상이 아니다.

4)”증인(윤지오)가 피고(김종승)으로부터 술을 따르라거나 성접대를 하라고 강요받은 적 있나요?”라는 검사의 질문에 “그런 것은 없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게 된 것도 강압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윤지오는 장자연이 겪은 성접대, 성추행, 성폭력에 대해 증언할 자격이 없다.

검사의 질문은 (장자연이 아니라) ‘윤지오’가 피고로부터 술접대나 성접대를 강요받은 적이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윤지오는 그간 여러 차례의 진술에서만이 아니라 <13번째 증언>에서도 ‘계약’사항을 넘어선 술접대나 성접대 요구가 ‘자신에게’는 없었다고 말했고 또 그렇게 썼다. (박훈은 이 답변을 들어, 윤지오가 가해자 편을 든 인물로 오판한다.) 하지만 윤지오는 장자연이 자신과는 다른 혹은 자신이 모르는 경험을 하고 있었음을 진술했고(“너는 발톱에 때만큼도 몰라”) 또 장자연에 대한 술자리 강제추행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 진술했다. 김용호(와 박훈)는 장자연의 경험과 윤지오의 경험을 ‘혼동’한다. 이 혼동을 통해 이들은 윤지오를, 가해자를 편든 사람으로 묘사하고 이를 근거로 윤지오로부터 증언자격을 박탈하려고 한다.

5)유족이 문건의 공개나 이 사건의 재이슈화를 원치 않는 상황에서 윤지오가 이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죽음에 대한 독점’, ‘죽음의 돈벌이’(박훈)이며 후원금을 받고 기념품을 파는 것도 이 돈벌이의 연장이다. 

최근의 진상조사단 재조사에 대한 유가족의 생각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가족이 장자연 문건의 공개를 원치 않았고 소각을 실행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권력자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죽음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서 유가족의 뜻이 사건의 진상규명 여부를 결정하는 결정적 권한을 갖는다고 보는 것은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다. 그것은 이 경우에는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은폐함으로써 가해권력자들을 보호하고 새로운 피해재발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장자연 사건이 가족 문제를 넘어 모든 사람의 명운이 걸린 국민모두의 문제이자 세계시민의 문제로 된 것은 오래 되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우리는 김용호가 권력편향적 감각방식, 터무니 없는 추정, 사실에 대한 그릇된 인식, 부주의한 상황파악, 가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이용 등을 통해 “윤지오의 거짓말”이라는 근거 없는 거짓말을 지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용호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당시에도 홍가혜를 “거짓말쟁이”, “허언증 환자”라고 말했던 바로 그 ‘기자’이다. 그는 트위터에 “저는 홍가혜를 수사했던 형사에게 직접 그녀의 정체를 파악했다. 인터넷에 알려진 것 이상이다. 허언증 정도가 아니다. 소름 돋을 정도로 무서운 여자”라고 말했다. 또 그는 기자칼럼을 통해 “밑바닥 인생을 살던 홍가혜는 성공을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고 선동했다.(김효진 기자, “‘당신이 믿었던 페이크’ 김용호 기자” http://www.newspic.kr/view.html?nid=2019041601170139108&pn=136)

이 말 때문에 ‘해경이 구조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홍가혜의 긴급한 인터뷰 메시지는 거짓말로 치부되었고 메신저 홍가혜는 구속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댓가를 치러야 했다.(이 당시인 2014년 4월 21일 나는 언론과 권력의 이러한 폭력적 조작에 맞서 ‘홍가혜를 위한 변명: 세월호 사건에서 정치권력의 억압테크놀로지와 언론의 매도테크놀로지에 대해’를 페이스북에 포스팅한 바 있다. https://www.facebook.com/amelano.joe/posts/1441826822725464) 5년여에 걸친 재판 결과 대법원은 홍가혜의 무죄를 판결했다. 반면 김용호는 홍가혜에 대해 거짓말과 명예훼손을 한 것이 밝혀져 서울중앙지법은 그에게 1천만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런 그가 홍가혜에 대한 거짓말로 메신저를 나락으로 빠뜨렸던 때로부터 정확히 5년만에, 그리고 손해배상 판결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타겟을 바꿔 ‘윤지오가 성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선동을 시작한 것이다. “밑바닥 인생”(힘 없는 사람들)과 여성에 대한 자신의 혐오증을 끝내 참을 수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거짓말을 통해서라도 주목을 끄는 것이 그의 생존수법인 것일까? 그는 방송을 통해 윤지오가 또 한 사람의 왕진진일 수 있음을 암시했고 이 이미지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부단히 재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분석은 윤지오가 아니라 다름 아닌 김용호가 제2의 ‘왕진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뒷받침해 준다. 이 가능성이 사법적 판결로 나타나기까지 다시 긴 시간의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와 김수민

-4월 7일 뉴시스의 ‘가짜뉴스’와 4월 16일 김수민의 ‘내부고발’의 관계에 대해

김수민은 세월호가 침몰된지 정확하게 5년이 되는 날에 윤지오에 대한 장문의 고발문을 제출했다. 그것은 권력형 성폭력 체제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항해가 부딪혔던 암초였다. 윤지오호는 심각한 상처를 입고 침몰하기 시작했다. 김수민 고발장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의 이런 글을 써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가슴이 아픕니다. 누구보다도 장자연씨의 죽음을 아파했고 그 진실이 규명 되기를 바라는 일반 국민 이었으니까요”.

그의 글은 진실규명에 반대하는 외부(권력자들)로부터의 비난이 아니라 “진실규명을 바라는 일반국민” 내부로부터의 고발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그는 이 고발을 윤지오의 선제적 명예훼손에 대한 방어적 대응으로 위치짓는다. 진실규명을 바라는 일반국민의 한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행동으로서 “윤지오씨의 말은 100% 진실일까요?”라고 물을 때, 그것은 결코 스쳐 지나갈 수 없는 무게를 갖는다. 왜냐하면 윤지오의 증언은 오직 ‘진실규명’에 가치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온 국민과 세계시민의 이목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민의 고발은, 2009년 윤지오가 식사자리에서 함께 한 사람으로 지목했던 사람이며 사건 수사 당시 강제추행 등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바 있는 홍선근 회장의 머니투데이 계열사 뉴시스가 윤지오에 대한 비난 기사를 실었던 것(2019년 4월 7일, 최지윤 기자수첩 ‘증인 윤지오와 장자연 사건’)과는 불과 열흘 정도 사이지만 사람들에게 성질이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윤지오의 정정보도 요구와 법적 대응 통고를 받고 해당 비난 기사를 내려야 했던 뉴시스의 경우와는 달리, 김수민의 고발은 김대오 기자, 박훈 변호사의 지지와 변호를 받으면서 탄력을 받은 후 헤랄드경제, 매일경제, 세계일보, 아주경제, YTN 등을 타고 비상했고 조선, 중앙, 동아에 의해 지배적 여론으로 자리잡았다. 이 언론 릴레이의 귀결이 “윤지오씨의 말은 100% 진실일까요?”에서 시작하여 ‘윤지오는 거짓말쟁이’라는 이미지를 주조하는 것이었음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치고 빠진’ (혹은 실패한) 뉴시스의 가짜 보도의 내용과 김수민의 고발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뉴시스의 위 기사의 핵심은 아래 다섯 가지다. 1)윤지오는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 2)윤지오는 고비용의 과도한 경찰보호를 받으며 생활중이다 3)윤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장자연을 이용하여 팔로워 76만명이 넘는 SNS 스타가 됐다 4)윤지오는 장자연을 이용하여 후원계좌를 열어 돈을 벌고 있다 5)윤지오는 거짓 증언을 했으며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참고할 기사: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 기사에 대해 모니터하고 팩트체크하는 비판 기사를 바로 다음날 ‘윤지오를 의심하는 뉴시스에 보내는 조언’, http://www.ccdm.or.kr/xe/watch/279169이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작가 김수민은 뉴시스의 기자 최지윤과는 달리 윤지오에 대한 비난을 “나는 속았다”의 형식 속에 담는다. 

“윤지오의 순수성을 믿었고 옳은 일을 하는구나 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하시듯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만…시간이 지날수록 지오가 하는 행위는 장자연이 안보이고 윤지오가 부각되는 행동들 이었습니다.국민청원을 하고 경호비 써야 한다며 후원계좌를 열고 그 이후 비영리 재단을 만든다며 후원을 요청 하며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윤지오의 행보를 보면서 제 자신도 속았구나를 느끼게 되었고 고인을 욕보이는 행위는 하지 말아라 고 조언을 한 후 그때 말다툼 이후 인연을 끊었습니다.”

“나는 속았다”는 “당신은 속지 말라”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윤지오를 “국민영웅, 국민여전사”처럼 “언론이 떠받드는” 현실이 윤지오의 사기의 효과임을 암시하면서 김수민은 윤지오가 장자연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명망도를 높이고 있다는 뉴시스의 기사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즉 자기각성의 형식을 통해 반복하고 국민들에게 “냉정”을 촉구한다. 

이것이 장자연에 대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진실규명을 덮고 윤지오의 “거짓”과 “사기”에 대한 진실규명에 집중하자는 제안이었음이 명백함에도 그것에 실사구시적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김수민의 고발장이,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을 낮추려한 뉴시스의 외부로부터의 직접적이고 선동적인 형식의 시도가 실패한 후 그것이 다른 형식으로, 즉 이른바 “윤지오 협력자”(김수민)의 내부로부터의 고발이라는 간접적이고 정동적인 형식으로 재개된 것임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김수민은 뉴시스와는 달리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었으며 윤지오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속은 자의 분노’라는 정동을 무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윤지오 증언에 대한 ‘백래쉬’(반발)의 역사적 위치와 성격

1987년 시민항쟁과 노동자투쟁을 포함한 1980년대의 운동은 사회변화의 수단으로 권력투쟁(국가권력을 둘러싼 투쟁)을 지향했고 권력장의 재구성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1990년대에 사회운동이 정당건설과 의회활동에 초점에 놓이게 된 것은 이러한 지향성의 구체화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의 사회운동은 행정참여 및  의회활동을 통한 권력장의 재구성 운동이 드러내는 한계 속에서 발생한다. 2008년 촛불항쟁은 권력장에서 독립적인 촛불 공통장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전화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거부와 강한 직접민주주의 열망이 그것이다. 2014년 세월호 촛불투쟁은 가대위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연대를 통해 아래로부터 촛불공통장을 구축하는 한편 그것의 힘으로 대의권력들이 세월호 침몰과 구조외면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촛불공통장의 요구를 제도화하는 이중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분명한 한계가 있었지만 세월호 특조위는 그것의 성과였다. 이것은 사회의 에너지를 아래로부터 이끌어낼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조직하는 것, 즉 사회 전체를 아래로부터의 힘으로 재조직하는 촛불섭정운동의 모델을 제공했다. 2016년의 퇴진/탄핵 촛불은 이 선례을 따라 아래로부터 촛불의 박근혜퇴진운동과 촛불공통장의 구축을 지속하면서 의회로 하여금 박근혜탄핵에 나서도록 촉구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과정을 감시하는 이중전선을 구축했다. 2017년 3월 박근혜의 파면은 이 이중운동의 성과였다.

2018년의 미투운동은 촛불의 제2국면으로서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으로서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가부장제의 핵심축의 하나인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으로 개시되어 성차별, 인종차별, 난민차별, 계급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장자연사건 재조사에 나선 것은 촛불미투의 자본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투쟁을 적폐청산 프레임 속에서 수용하고 흡수한 것이다. 장자연 사건은 김학의 성폭력 사건과 더불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지배계급의 성폭력 체제의 실태와 그것에 대한 사법적 정당화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윤지오는 장자연의 동료배우로서 장자연이 겪은 성폭력을 곁에서 지켜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그 성폭력 체제의 피해자로 노출되었던 경험을 갖고 있는 중요한 인격이었다. 미투촛불의 청원에 의해 시발된 장자연 사건 진상재조사에 윤지오가 호출되었던 것은 지난 10년간 그가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규명을 위해 증언할 의지를 갖고 그것을 증언해온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일성은, 유가족은 처음부터 이 사건의 사회문제화를 원치 않았고 나머지 관련당사자들은 모두 여러 의미에서의 가해자 집단에 속하고 있어서 진장규명 그 자체가 자신들의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으로 귀착될 위험을 갖고 있었던 사정에서 연유한다.

윤지오는 증언자로 귀국하여 <13번째 증언>을 통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증언하고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증언하고 또 각급 언론매체들의 인터뷰에서 증언했다. 그는 이 증언들이 출판, 언론, 국가기관을 통해 장자연의 죽음의 억울함을 알리고 부실수사로 종결된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청하기 위한 것임을 수차례 말했다. 이것은 언론과 같은 사적 대의기관들과 행정/사법과 같은 공적 대의기관을 통해 촛불다중의 진실 의지를 제도 속에 관철시키려는 시도였다. 윤지오가 말하는 ‘영리함’이 이것이다. 그것은 권력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그 독립된 공통장의 힘으로 생명권력을 섭정할 수 있는 지성적 기술적 조직적 삶정치의 능력을 의미한다. 공통장의 다중지성은 서로에 대한 공통의 지성이면서 권력장과 영리하게 관계맺고 그것을 자신의 의지에 복속시키는 섭정의 지성이다. 윤지오가 수행하는 섭정운동 속에서 다중은 윤지오의 생존방송에 청취와 댓글로 참여하고 그의 기획들(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지지후원함으로써 섭정정치의 공동주체로서 활동했다. 

윤지오는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자신의 증언들이 수반할 위험성을 자각하고 있었고 생존방송, 자비경호, 증언자보호 요청, 그리고 증언자보호법 청원 등의 방식으로 이 위험에 대처했다. 진상조사단 증언을 위한 귀국 전부터 이미 증언을 막으려는 압력행동들이 있었지만 그것이 거대한 반발형태로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제도수준의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은 귀국 후 한 달 여만인 4월 7일 홍선근 회장의 계열사인 뉴시스의 보도(최지윤 기자) 이후부터다. 4월 16일 김수민 작가의 내부고발을 계기로 윤지오는 모든 언론이 총출동된 백래쉬를 겪고 있다. 그것은 물리적 테러가 아니라 근거를 제시하지 안혹 자행되는 언론 테러와 언어폭력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언론 테러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는, 윤지오가 개인 차원의 생존방송을 넘어 사회의 주목이라는 일종의 사회적 생존방송이 진행되고 있어 물리적 테러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다. 윤지오가 말하는 ‘마지막 발악’이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함축한다. 윤지오가 캐나다로 일시 ‘망명’하여 자신의 입지를 방어하면서 진실규명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이 위기의 시간에 제도 언론들에 맞서 다중은 윤지오의 상처를 위로하고 그의 노력을 보조하며 그와 더불어 진상규명 사건 재조사 성폭력 체제의 해체라는 전략적 방향을 추구하는 지킴이들로 나타난다. 백래쉬를 통해 성폭력 권력체제는 촛불미투 공통장에 대한 재식민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 공통장의 독립역량은 그렇게 간단하게 재점령될 만큼 취약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촛불공통장의 반성폭력 투쟁은 윤지오를 방어하면서 잠행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진술과 이해(利害)관계 및 권력관계 문제: 유장호의 진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유장호가 여러가지 의미에서 장자연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유장호의 진술이 시간 속에서 계속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장자연 씨가 처음 작성한 문건에 심하게 성폭행 당한 내용도 썼는데 그 부분은 내가 지우라고 했다”에서 “2)장 씨가 그간에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히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추행 혹은 그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만 했을 뿐, 추가적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로, 그리고 다시 “3)“[장자연의] 피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야기된 것인지 장씨로부터 전혀 들은 바가 없고, 아는 바도 없다”로.

이것은 진실에 대한 기억의 동요라기보다 어떻게 진술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가에 관한 자기검열의 과정과 진술방향의 조정이 나타나는 방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진상조사단은 유장호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따라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관계 및 세력관계에 따라 진술할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있음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의 진술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는 장자연으로 하여금 문건을 작성케 하여 그것을 기획사 간의 이해다툼에 이용하려 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도 부인하는 진술을 한 것으로 SBS는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찰에 ‘목록’은 제출하지 않으려 한다는 윤지오와의 통화녹취에서 그 자신이 한 말에 의해 스스로 부인된다. ‘목록’을 제출하려 하지 않으려는 그 의도만으로 이미 사실보다 이해관계/세력관계을 우선시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범죄혐의를 감추기 위해 진술을 어떻게 짜맞추는지를, 가령 ‘장자연 강제추행 부인 유력인사들, 어떻게 진술 짜맞췄나’(강성원 기자, 2018년 11월 07일지 <미디어 오늘>,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5373)에 서술된 내용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SBS는 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유가족의 진술이 있다고 보도한다. 그러나 이것이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추는 증거로 사용되기는 어렵다. 유가족은 2009년 3월 12일 봉은사에서부터 문건의 실체규명이 아니라 문건의 소각을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 윤지오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3월 18일에는 자연언니의 유족들이 Y와 문건을 보도한 기자, 문건 관련자들을 사자명예훼손 혐의와 강요 등으로 고소했다. 성상납 강요등 진위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유족의 뜻에 거스르며 언론에 공개해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엇다. 언론 인터뷰에서 유족 측은 K와 Y, 두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자연 언니가 희생양이 된 것이라며 문건의 실체 규명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했는지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드러냈다”(<13번째 증언>, 122쪽).

문건의 실체규명보다 작성동기와 유출책임 추궁. 이것은 문건의 소각에 이어 유가족이 문건에 대해 보여준 두 번째 태도이다. 그런데 지금 진상조사단을 통해 국민과 세계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문건의 작성동기나 문건의 유출책임보다는 문건의 실체 규명이다. 현재까지 문건의 이 실체 규명 문제에 대해 신뢰성 있는 증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윤지오 외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며 이 사건의 비극적 측면이다. 그가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포위된 채 온갖 협박과 조작에 맞서 증언하고 있는 유일한 여성 증언자라는 사실에 대한 고려 없이 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을 공격했던 <뉴시스>의 4월 7일 보도 이후 이 ‘사실’을 삭제하기 위한 총력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기사는 지금 삭제되었는데, 뉴시스가 그 계열사인 머니투데이 그룹의 홍선근 회장이 장자연과의 술자리에 합석했던 인물임을 윤지오가 폭로하면서 언론을 통한 명예훼손을 하지 말 것을 항의한 때문이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7755)

장자연 사건을 보는 두 종류의 눈, 두 종류의 전략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두 종류의 눈, 두 종류의 전략이 있다. 하나는 권력자, 착취자, 남성의 눈으로, 짧게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장자연 사건을 희화화하고 즐기면서 진실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는 마약에 취한 눈, 초점 잃은 눈이다. 초점이 불분명할수록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그 성폭력 체제가 흐릿해지고 이 체제의 수혜자들은 별장과 클럽에서의 성폭력을 지속하면서 축적과 치부 그리고 명령의 오르가즘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다중, 저항자, 탈주자, 여성의 눈으로, 짧게는 생명의 눈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개혁을 열망하는 눈이며 무엇이 문제인가를 실사구시적으로 응시하는 부릅뜬 눈, 두려움에 떨면서도 봐야 할 것을 놓치지 않는 다초점의 눈이다. 초점이 분명해져야만 어디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공격의 화살이 날아오고 어디에 자신을 빠뜨릴 함정이 있으며 어디로 생존의 출구가 열려 있는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윤지오 증언 논란은 이 두 눈의 시선이 교차하고 부딪히는 사회적 전장이다.  

첫번째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눈과 전략은 자신에게로 다중의 시선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을 어떤 형태로든 회피하려 한다. 그것은 권력자와 착취자가 장자연의 죽음의 원인일 수 있음을 가리키는 모든 증거들(증언들, 물증들)을 없애는 데 집중한다. 이들의 전략은 두 차원을 갖는다. 하나는 직접적으로 협박, 강요, 매수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개인들이 공포 때문이건 두려움 때문이건 돈이나 이익을 얻기 위한 욕망 때문이건 자신들의 의사를 따르게 만듦으로써 그들을 매개로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킨다. 여기서 조직폭력, 언어(말), 이권, 돈은 전혀 구분되지 않고 동일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들은 권력의 의지를 타자들에게 관철시키는 직접 폭력의 다양한 변(형)태들이다. 둘째로 권력이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자신의 의지가 관철될 있는 구조와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것은 법, 제도, 관행,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 및 반응 양식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도록 구조화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합법성, 정당성, 불가피성, 도덕성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다양한 변호론 위에서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권력은 그 안에 기생한다. 장자연 사건에서 나타난 그것들의 몇몇 유형들을 살펴보자.

1)문장삭제: 유장호는 장자연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문건 초안에 적었지만 자신이 삭제하도록 만들었다고 진술했다. (유장호는 “장자연 씨가 처음 작성한 문건에는 심하게 성폭행을 당한 내용도 썼는데, 그 부분은 내가 지우라고 했다”며 “장씨가 이후 그 내용을 빼고 썼다”고 밝혔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08703) 내용삭제는 이처럼 권력의 노골적인 압력이 없는 순간에도 준자발적으로, 메커니즘적으로 이루어진다.

2)문건소각: 가족은 봉은사 땅 밑에서 파온 문건 원본을 읽은 후 ‘좋지 않은 일’이니 사본과 함께 소각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유장호, 윤지오가 보는 자리에서 소각한다. 여기서 ‘좋지 않은 일’이라는 말은 ‘두려운 일’이라는 뜻도 함축한다. 싸워서 이길 수 없는 대상들이니 없는 것으로 하자고 결정하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메커니즘적이다.

3)문건누락: 유장호는 문건의 ‘목록’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의사를 밝혔고(윤지오와의 통화녹취) 실제로 ‘목록’(리스트)의 제출은 없었다. ‘이권’을 고려한 자발적 의사결정이고 그에 따른 행동이다.

4)수사기관에 대한 협박: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 TF팀을 꾸리고 조현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을 협박했다. 조현오 청장은 조선일보가 자신들은 권력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며 협박을 해와 당시에 수사를 엄정하게 진행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F8WqvajeGyA&list=PLU0ewOZC-Zt73VjIdkYUJ6Gn7LYcDkWbn&index=2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 피디수첩 방영을 앞두고 조선일보는 MBC에 방용훈의 실명을 거론하지 말라고 압박했다.(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642959)

5)은폐를 위한 수사: 검경은 증인이 권력자와 기업가들의 범죄혐의를 지목할 때 그 증언을 교란시켜 증거력을 떨어뜨리는 다양한 수사기법을 사용한다. 실제로 윤지오가 조선일보 조희천을 성추행 당사자로 지목해 내는 과정은 경찰의 이러한 교란전술(경찰은 윤지오에게 조희천을 뺀 수십명의 사람들의 사진을 제시하고 그 중에서 가해자를 지목하라고 요구했고 사건진상 규명과 관계 없는 디테일들에 대한 반복된 질문으로 증인의 기억력을 증인 스스로 의심하도록 만들었다)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고 판사가 윤지오의 진술이 일관성과 신빙성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6)언론을 통한 교란: 최근 디스패치는 경찰과 검찰의 교란은폐 전술이라는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 교란은폐 전술의 효과인 윤지오의 ‘진술 번복(진술 정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을 진실성과 신빙성의 결여로 평가한다. 이것은 ‘뉴스는 팩트다’를 기치로 내 걸고 있는 디스패치가 전적으로 권력자와 착취자의 시선에서 본 ‘팩트’의 전달을 자신의 역할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지오는 디프패치 기사가 나간 4월 29일 이에 대해 한 영화 속 인물의 말로써 응수하면서 디스패치의 정체를 폭로한다: “우린 부시가 군인의 의무를 다 했느냐고 물었을 뿐이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도 관심이 없고, 다들 폰트와 위조 음모 이론만 떠들어 댄다. 왜냐하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때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정치 성향과 의도 인성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진실 따위 사라져버리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나면 하도 시끄럽게 발을 구르고 고함을 쳐대 뭐가 핵심이었는지 다 잊어버린다”). 언론은 결코 진실이나 팩트를 알리는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신적 삶을 감싸고 있는 것, 즉 우리 정신의 피부를 구성한다. 우리의 정신활동은 언론과 더불어 전개될수밖에 없지만 진실활동은 언론에서 독립적인 영혼의 자기활동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7)내부고발자를 통한 전선교란: 권력은 다중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다중의 집합적 에너지가 자신에게 집중될 때 그 전선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내부고발자를 찾는다. 윤지오의 협력자였음을 자처하는 김수민의 내부고발문건과 카톡공개는, 그것이 자발적인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 전부터 계속되어 오던 윤지오 증언에 대한 비난 세력들의 선동에 합류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부로부터의 이 윤지오에 대한 초점 잃은 고발은 권력층의 몸을 향하던 진실조사의 칼끝을 윤지오의 몸으로 향하도록 물꼬를 돌린 모멘트이다. 이로써 증언은 사라지고 짓밟혀 상처 입은 증인만이 남게 되었다.

8)박수선동부대 동원: 초점을 흐리는 센세이셔널한 말들이 만들어지면 박수부대를 동원하여 권력의 판을 키운다.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권력과 이권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혹은 권력으로부터 일당을 받는 사람들이 초점이 있는 말들을 비난하고 초점을 흐리는 말들에 박수를 쳐대면서 사유공간을 점령한다. 경향신문 4월 30일자에 실린 단국대 교수 서진의 글 같은 것이 그 예다.

(::첫 번째 시선, 첫 번째 전략의 문제는 다른 방법의 다른 글로 다루겠다.)

김대오의 ‘거짓말’

김대오 기자는 지금까지 장자연 문건과 그 문건의 리스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의 주장을 해 왔다.

1. 나는 장자연 문건의 원본을 보았고 거기에 리스트는 없었다.

2. 윤지오는 문건에 “지인분들과 가족분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글이 담겨 있었다고 말하는데 내가 본 문건에는 그러한 구절이 없었다.

3. 문건의 장 수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동요하고 있는데 그 진술들은 내가 알고 있는 장 수와 다르다.

4. 그러므로 윤지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근거가 모두 자신이 ‘원본을 보았고’ 윤지오의 말이 ‘자신이 본 것’과 다르다는 것에 두어져 있다.

그런데 2009년 12월 9일 수원성남지원에서 이루어진 증인신문조서에서 김대오는 자신이 장자연 문건의 원본도 사본도 본 적이 없으며 오직 유장호가 문건이나 그 내용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유일하게 보여준 그 문서의 한 구절, 즉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09.2.28 장자연(주민등록번호) (서명)’만을 사진 촬영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검사와 증인(김대오)의 문답은 이러하다.

조서 작성 전에 판사는 증인 김대오에게 “형사소송법 제148조 또는 149조에 해당하는가의 여부를 물어 이에 해당하지 아니함을 인정하고 위증의 벌을 경고”했고, 위의 것은 이에 따라 선서를 한 후 이루어진 증인신문조서에서의 진술이다.

이런 조건에서 특별한 위증의 동기나 이해관계를 갖지 않은 김대오가 위증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위 진술은 있는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실인 한에서, 최근 신문 인터뷰, 방송 출연,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계속되고 있고 또 퍼져가고 있는 위의 네 가지 김대오의 주장은 모두 일거에 무너진다.

1. 장자연 문건의 원본을 보지 못했으므로 거기에 리스트가 있는지 없는지 그가 알 길이 없다.

2. 장자연 문건의 원본을 본 적이 없으므로 윤지오의 진술 내용이 거기에 담겨 있는지 없는지 그가 알 길이 없다.

3. 문건의 장수가 몇 장인지 그가 알 수 없는 길이 없으므로 윤지오가 말하는 문건의 장수가 맞는지 틀리는지 그가 알 길이 없다.

4. 그러므로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그의 단언(‘희대의 공익제보자 윤지오, 장자연에 대한 5가지 거짓말’ https://www.youtube.com/watch?v=-9VF4Ntoioo), 그 자체가 실제로는 거짓말이다.

나는 원성훈 기자가 쓴 기사 ‘이민석 “윤지오의 진술이 김대오의 진술보다 신빙성 높다”'(https://www.instiz.net/pt?no=6102153&page=25)를 읽기 전까지 리스트 부분을 제외한 장자연 문건 일부분을 김대오 기자가 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왔다. 하지만 김대오의 증인조서는 그가 장자연 문건의 문구 하나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했음을 확인해 준다. 박훈은 김수민과 김대오의 말에 기초하여 윤지오가 장자연 사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며 언론들이 그런 사람을 “유일한 증언자”라고 키워주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김수민이 윤지오에 대한 장문의 고발글을 올린 지난 4월 16일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들이 김대오를 장자연 문건 “원본의 유일한 목격자”로 키우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유일한 증언자”를 끌어내리고 “원본의 유일한 목격자”를 올려 세워 진실규명의 ‘마지막 기회’(<13번째 증언> 19장)를 차단하려던 자격-쿠데타는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를 실어주는 4월 27일 SBS <그것을 알고 싶다>(https://www.youtube.com/watch?v=NsRdm5JozsA&t=222s) 방영을 정점으로 ‘거짓의 열흘 천하’의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윤지오에게 정부가 경비 ‘특혜’를 제공했다는 오래된 유행가

대한민국 정부는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국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윤지오에게 이 사건에 대한 증인으로 서 줄 것을 청탁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한 것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았고 2018년 초 미투 운동을 통해 실제로 확인된 ‘권력형 성폭력’이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고간 핵심 원인일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었기 때문에, 윤지오가 증언에 나선다면 그것은 권력자들과 맞서는 위험한 일임이 분명했다. 실제로 장자연은 최근 SBS가 공개한 육성녹음에서 (자신의 소속사 대표보다 더)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다급하게 말하고 있다.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윤지오라고 없겠는가?

위험을 우려한 가족들과 본인이 이 청탁을 거절했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윤지오는 증언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왔다. 증언은 살아남은 자, 즉 생존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지오는 살아남은 증언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라이브 ‘생존방송’을 시작했다. 그것은 국민대중의 힘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신체와 생명활동을 국민대중의 눈 앞에 공개하고 그 눈들이 자신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결의를 함께 공유하고 시청대중과 자신이 공통의 몸과 마음으로 엮여들도록 만드는 과학기술적 장치였다. 또 그것은 조사단의 증언에 앞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진행되는 거리 증언의 방식으로서 권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권력에 맞서면서 진실규명의 공통장을 창출하는 혁신적 과정이었다.

어두운 밤길에서 남성에 대해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을 남성이 체감할 수 없듯이, 권력과 대립하지 않는 사람들(여기에는 권력자 자신은 물론이고 권력부역자들과 권력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사람들도 포함된다)은 권력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을 안전한 것으로 느끼며 안락한 삶의 질서로 느낀다. 이 때문에 이들은 윤지오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에 공감하기는커녕 그것을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한 술수로 독해한다. 그래서 두 번의 교통사고, 스마트워치 오작동, 숙소에서 난 냄새, 잠금장치 파손, 숙소에서 들리는 기계음 등을 호소하며 윤지오가 두렵다고 말할 때 저들은 그것을 거짓말로 단정하고 미디어로 선동한다. 윤지오가 동료 배우 장자연의 의문의 죽음과 더불어 10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고려하는 것을 이들은 사치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단순 교통사고, 스마트워치 조작법 미숙, 침입시도 흔적 없음’ 등의 ‘경찰적 시선’으로 한 인간의 영혼이 포학한 권력의 엄연한 사회적 실재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을 훑어내림으로써, 재계 언론계 문화계 정치권 등에 실재하는 권력의 수족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감각 및 감성 양식으로부터 “대체 너[윤지오]를 누가 쫓아 온다고?!”라는 조롱이 시작된다. 이것은, “나는 [권력이] 편안해, 너는 왜 호들갑이니?”라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어서 공감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반-죽은 존재들의 반응양식이다.

최근 이들은 윤지오의 숙박비로 900만원을 지불하고 5인의 경호원을 붙인 것에 대해 국고의 과잉지원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김수민도 이에 호응하여 세금을 개인 윤지오에게 쓰는 것이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윤지오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장자연 사건은 전 국민의 관심사안이며 앞서 말했듯이 윤지오는 국민을 대의하는 정부의 청탁을 받아 증언자로 온 것이다. 국가는 헌법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국민이 요청한 증언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경호, 숙박비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언론들이 있다. 윤지오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이러한 비난에 맞서 4월 30일 자신의 어머니가 지출한 사설경호비 지출영수증들과 송금증서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1차 1,250만원, 2차 1,440만원, 3차 870만원, 도합 3,560만원이다. 증인을 불러와 그 증인에게 국가가 부담한 비용보다 훨씬 더 높은 비용을 사적으로 부담시키는 국가는 아직 ‘나라 다운 나라’가 아니다. 윤지오가 캐나다로 돌아간 후 ‘대한민국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탄식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굴까, 지금 국가가 숙박비 900만원을 윤지오에게 지불한 것이 ‘특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과 언론들은? 그것은 광주민주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 이들에게 부당하고 불투명한 ‘특혜’를 제공해 국민에게 폐를 끼지고 있다고 떠들었던 사람들, 세월호 피해자가 배상 ‘특혜’를 받았다고 헛소문을 퍼뜨려 온 세력들이다. 윤지오 ‘특혜’론은 이 세력들의 오래된 유행가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적 주체들[메신저]을 훼손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의 의미[메시지]을 말살하는 저들의 방법이다. 김수민-김대오-박훈의 윤지오에 대한 비난, 고소, 고발은 필연이든 우연이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현실에서 이 세력이 휘두르는 거친 방망이로 기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2)

윤지오는 정말 수사기관에서 처음 리스트를 봤을까?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의 또 하나의 논거는 앞의 둘 중의 첫번째 즉 김수민이 윤지오로부터 ‘봉은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그 리스트를 봤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김수민은, 이 말을 들은 것이 2018년 12월 10일 윤지오와 만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3차 술자리에서라고 말한다.

“3차째 술자리에서 지오가 장자연님과 소속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었고 솔직히 자기는 장자연이랑 친하지 않았었고 나이차이가 워낙 많이나서 장자연님이 자기를 보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애기야~ 애기네~ 라고 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자연님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자기는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친하지도 않았고 어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엄마가 와서 위약금을 내주고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있었고 외국에 있을때도 장자연님과 따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적은 없었고 한국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자살소식을 소속사 연락으로 듣고 그 소속사에 있었던 사람들의 조사가 이뤄줘야 해서 본인도 가서 조사를 받았었고 조사를 받고 진술을 하는 와중에 책상에 어떤 문서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걸 우연히 봤었다. 원래 그걸 놓고가면 안돼는건데 책상에 놓여져 펼쳐져 있는 부분을 봤고 그 펼쳐져 있는 부분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게 됐었다. 그때 장자연 언니 자살과 이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저에게 말했었습니다.”

이 진술 내용은 얼마든지 의사소통상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술자리 환경에서의 대화에 대한 기억이고 윤지오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부인하는 내용이므로 큰 가치를 가질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주목받기 어려웠을 김수민의 이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장자연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해온 김대오가 김수민의 그 말을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보충증거로 채택하면서다. 김수민이 윤지오에게서 들었다는 그 말이야말로 리스트가 없었다는 자신의 말과 리스트를 봤다는 윤지오의 말 사이의 간극을 메워준다는 것이다. 즉 장자연 문건 원본에는 리스트가 없었으며 윤지오가 본 것은 수사기관이 만든 2차 리스트라는 것이다. 김수민의 이 말은 또 변호사 박훈과 연결되면서 더욱 더 큰 대중적 힘을 얻었다. 박훈은 미투운동 과정에서 정봉주와 김어준에 맞서 미투를 지지한 바 있기 때문에 박훈이 윤지오를 불신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적 편견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박훈과 김대오의 개입으로 인해 김수민의 진술이 사회적 호응을 얻었지만 그 진술은 전체적으로 너무 부정확하고 이미 확인된 사실과도 배치된다. 

(1)친밀성: 윤지오는 김병승의 회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장자연과 친밀했지만 나온 후에는 소원했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고 또 <증언>에서 기록한다. 그런데 김수민은 윤지오가 장지연과 일관되게 친밀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쓴다. 유장호가 장자연의 죽음 후에 이 문제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윤지오와 상의하는 것도 유장호가 윤지오와 장자연의 관계를 각별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윤지오는 김병승과의 계약해지 후 장자연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것에 마음에 걸려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쓰고 있고 김수민의 말에 대해 ‘장자연과는 가족보다 더 친밀했던 때가 있었다’말했다.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도 이 말과 유사하다.

(2)장자연에 대한 윤지오의 앎: 김수민은, 장자연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윤지오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지오는 성상납 강요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장자연이 겪은 성추행에 대해서는 직접 목격했으며 그 가해자인 조희천은 윤지오의 증언에 기초하여 기소되었다.

(3)윤지오에 대한 김수민의 앎: 김수민은 윤지오가 계약해지후 캐나다로 돌아가서 살았다고 말한 것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윤지오는 <증언> 14장과 15장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듯이 계약해지 후에도 오랫동안 드라마 <선덕여왕> <애자>에 단역 출연하고 치어리더로 돈을 벌고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의 전속모델선발대회에 출전하고 케이블티비 예능프로그램 <초.건.방>에 출연하고 메인모델 몸대역으로 돈을 벌고 미인대회와 뮤직비디오와 연극에 출연하는 등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한국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김수민의 글에 따르면 장자연이 자살했을 때 윤지오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온 것처럼 읽히게 되는데, 윤지오는 안성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전 매니저로부터 자살 소식을 듣고 자정이 넘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4)장자연 리스트: 김수민에 따르면 윤지오는 첫 조사를 받을 때 경찰의 책상에 놓여 있는 문서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고 그것을 장자연 리스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 역시 지금까지 드러난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 점은 조금 뒤에서 논한다.

윤지오가 했다는 말에 대한 김수민의 재구성은 신뢰하기 어렵다. 장자연 사건 이후 수 많은 진술들, 기사들, 증언들, 분석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불명확한 부분도 있지만 여러 가지 진술들이 일치하고 증거들(카드내역, 통화기록 등)도 있는 명확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김수민은 이 명확한 부분들조차도 사실과 다르게 재구성함으로써 그가 이 사건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복잡한 사건을 한 번 만나 나눈 대화에서 김수민이 윤지오가 말하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귀를 가졌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윤지오의 말에 대한 김수민의 글을 읽을 때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카톡 대화도 그런 맥락을 고려하며 읽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반해 장자연 문건에서 리스트를 봤다는 윤지오의 주장은 김수민이 들었다는 그 말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련의 자료들 속에서 일관성과 설득력을 갖고 있다. 

(1) 윤지오는 장자연 장례식장(2009년 3월 7일-9일)에 있으면서 장자연의 친언니로부터 유장호와의 통화내용에 대해 듣는다. 유장호가, 장자연이 남긴 심경고백 문건이 있는데 거기에 ‘공개되지 말아야 할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2009년 3월 15일 참고인 진술) 

(2) 장례식이 끝난 후 3월 10일 김대오 기자가 유장호로부터 입수한 문건의 실재를 보도한 후 윤지오는 유장호와 통화를 한다(3월 12일). 그 통화에서 유장호가 누군가의 이름을 대면서 윤지오가 그 사람 명함을 갖고 있으면 그의 소속과 직위를 알려 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여러 명에 대한 확인이 진행되는 윤지오는 여기서 일종의 리스트(목록)의 실재를 인지하고 그것을 통화녹취하여 검찰에 증거로 제출한다.

(3)유장호가 윤지오와의 통화에서 “내가 …자연이 이거[문건] 경찰서 넘길 때도, 목록이랑 그런 건 넘길 생각이 없었어.”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장호가, 장자연 문건 중에서 ‘리스트’부분은 제외하고 일부만 ‘공개’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말은 (1)에서 말한 ‘공개되지 말아야 할 내용’이 이 ‘목록’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장호는 김종승을 타격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리스트’에 적힌 인물들의 명단이 모두 공개되는 것은 사실상 불필요한(혹은 이미숙, 송선미 등과의 관계에 비춰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 수 있다. 3월 15일 진술에서 윤지오가 ‘리스트’의 존재를 암시하면서도 명확하게 진술하지 않은 것은 경찰이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유장호와의 이런 통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4)윤지오가 ‘리스트’의 실재를 명확하게 진술하는 것은 2010년 6월 25일 진술부터이다. “어떤 장에는 성함만 기재되어 있으면서 어떠한 언론사에 누구, 어디 무슨 사의 누구라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5)윤지오는 봉은사에서 유장호가 넘겨준 사본을 먼저 보았고 경호원이 봉은사 땅에서 파온 원본을 그 다음에 보았다고 한다. 그 두 본에 이름만 혹은 직함과 함께 기재된 ‘리스트’가 있었으며 양자는 일치했다는 이 진술은 2019년 3월에 출간된 <13번째 증언> 11장 ‘장자연 리스트’에서도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으며 유장호의 진술도 이와 부합한다.

이상의 진술들과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이지윤 기자가 말하듯이, ’리스트’가 있었고 그 ‘리스트’를 윤지오가 보았다는 추론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판단되며 김수민의 주장은 자신이 이해한 그대로의 진술이라 할지라도 윤지오의 말을 상황의 복잡성 속에서 이해할 상황이해 능력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오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김대오의 주장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 속에서 타인(윤지오)의 말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프루크루테스 침대 형 인지착오로 보인다. 유장호가 그 ‘리스트’를 윤지오와 가족 외의 경찰이나 기자들에게는 제출하거나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 김대오는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자신의 한계 속에서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윤지오는 수사과정에서 문건의 끝에’“지인분들과 가족분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글이 작성되어 있었습니다’라고 진술한다. 김대오 기자는 자신이 본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없기 때문에 역시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단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김대오 기자가 보지 못한 리스트의 실재를 뒷받침하는 반증으로 될 수도 있다. 리스트의 끝에 적힌 바로 그 글귀를 윤지오는 리스트를 봤기 때문에 기억하지만, 김대오는 리스트가 없는 문건의 일부만을 보고 그것을 전부로 오인하고 때문에 그러한 글귀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1)

현재 “장자연 리스트”가 경찰이나 검찰의 수중에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자연 문건 사본을 보도한 kbs도 리스트를 입수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장자연 문건의 실재를 처음 알렸고 그 “원본”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김대오 기자가 “목숨을 걸고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김대오 기자가 리스트를 보지 못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리스트를 본 두 사람이 있다. 그것은 윤지오 배우와 전 호야엔터테인먼트 대표 유장호다. 윤지오배우가 리스트를 보았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은 다음 네가지다.

1)십 수 차례에 걸친 수사기관 및 진상조사단 증언들과 무엇보다도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내놓은 증언인 <13번째 증언>의 11장: 여기서 윤지오 배우는 봉은사에서 유장호 대표로부터 문건의 사본을 넘겨받아 보았고 봉은사 땅밑에서 꺼내온 원본을 장자연 씨의 친언니가 읽는 것을 함께 보았고 소각하는 것도 보았다고 말한다.    

2)유장호의 수사기관 초기 진술: 여기에서 유장호는 문건을 윤지오에게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3)고 장자연 배우의 오빠의 진술: 이 진술에서 장자연의 오빠는 문건의 원본과 사본을 보고 태운 현장에 윤지오가 있었다고 말한다 

4)유장호와 윤지오 사이의 통화 녹취록: 이 통화기록에서 유장호는 경찰에 자료를 넘길 때 장자연이 술접대한 사람 ‘목록’은 넘기지 않을 셈이라고 윤지오에게 말한다.

등이다. 

1년 넘게 장자연 사건을 취재해 왔다는 kbs 이지윤 기자는 ‘‘장자연 리스트’는 실재했나? 기록으로 살펴본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2019년 4월 24일)에서 이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런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윤(지오) 씨가 최소한 장자연 문건을 봤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87063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민-김대오-박훈 그룹은 우파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김용호-김세의와 보조를 맞추면서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해 왔고 이것은 제도 언론들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보도됨으로써 강력한 여론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리스트는 없었다는 이들의 주장은 “윤지오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거짓말하고 있다”는 인신공격 주장으로 발전되었고 다시 그것은 “윤지오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증언자로 나섰다”는 음해와 모욕 주장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그 주장이 주장을 넘어 행동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박훈 변호사의 윤지오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다. 이것의 정치적 효과가 윤지오 증언자의 증언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고 그 증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재수사의 사유를 제거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가해 권력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핵심적 근거는 무엇인가?

1)술자리에서 김수민이 윤지오로부터 들었다는 말: ’윤지오가 리스트를 봉은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봤다고 했다’.

2)김대오 기자의 증언: 유장호를 만나 입수한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다. 

2)부터 살펴보자. 김대오 기자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장호의 위 통화기록을 통해 간단히 해석할 수 있다. 유장호가 보여준 문건에서 김대오 기자가 “보지 못했으니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과 다르다. 우리가 공기 중의 세균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공기 중에 세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화기록을 보면, 유장호는 경찰에게 ‘목록’(리스트)은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기자인 김대오에게 유장호가 ‘목록’(리스트)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찰과 기자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고려하면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된다. 그러므로 김대오 기자가 “(이름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리스트는 원본 속에서 없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데 이것은 목숨을 너무 값싸게 내놓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착오와 지나침에 대해 시민들께 사과하고 “내가 본 문건에서 나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있는 그대로 발언을 정정하는 것이 신상에 좋으리라 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