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과 이해(利害)관계 및 권력관계 문제: 유장호의 진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유장호가 여러가지 의미에서 장자연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유장호의 진술이 시간 속에서 계속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장자연 씨가 처음 작성한 문건에 심하게 성폭행 당한 내용도 썼는데 그 부분은 내가 지우라고 했다”에서 “2)장 씨가 그간에 피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히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추행 혹은 그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며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만 했을 뿐, 추가적인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로, 그리고 다시 “3)“[장자연의] 피해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야기된 것인지 장씨로부터 전혀 들은 바가 없고, 아는 바도 없다”로.

이것은 진실에 대한 기억의 동요라기보다 어떻게 진술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인가에 관한 자기검열의 과정과 진술방향의 조정이 나타나는 방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진상조사단은 유장호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따라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관계 및 세력관계에 따라 진술할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있음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그의 진술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는 장자연으로 하여금 문건을 작성케 하여 그것을 기획사 간의 이해다툼에 이용하려 한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도 부인하는 진술을 한 것으로 SBS는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찰에 ‘목록’은 제출하지 않으려 한다는 윤지오와의 통화녹취에서 그 자신이 한 말에 의해 스스로 부인된다. ‘목록’을 제출하려 하지 않으려는 그 의도만으로 이미 사실보다 이해관계/세력관계을 우선시하는 그의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범죄혐의를 감추기 위해 진술을 어떻게 짜맞추는지를, 가령 ‘장자연 강제추행 부인 유력인사들, 어떻게 진술 짜맞췄나’(강성원 기자, 2018년 11월 07일지 <미디어 오늘>,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5373)에 서술된 내용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SBS는 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는 또 하나의 증거로 유가족의 진술이 있다고 보도한다. 그러나 이것이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추는 증거로 사용되기는 어렵다. 유가족은 2009년 3월 12일 봉은사에서부터 문건의 실체규명이 아니라 문건의 소각을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 윤지오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힌다.

“3월 18일에는 자연언니의 유족들이 Y와 문건을 보도한 기자, 문건 관련자들을 사자명예훼손 혐의와 강요 등으로 고소했다. 성상납 강요등 진위를 알 수 없는 내용을 유족의 뜻에 거스르며 언론에 공개해서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엇다. 언론 인터뷰에서 유족 측은 K와 Y, 두 사람 사이의 갈등으로 자연 언니가 희생양이 된 것이라며 문건의 실체 규명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고 유출했는지에 대해 더 큰 분노를 드러냈다”(<13번째 증언>, 122쪽).

문건의 실체규명보다 작성동기와 유출책임 추궁. 이것은 문건의 소각에 이어 유가족이 문건에 대해 보여준 두 번째 태도이다. 그런데 지금 진상조사단을 통해 국민과 세계시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문건의 작성동기나 문건의 유출책임보다는 문건의 실체 규명이다. 현재까지 문건의 이 실체 규명 문제에 대해 신뢰성 있는 증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윤지오 외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며 이 사건의 비극적 측면이다. 그가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포위된 채 온갖 협박과 조작에 맞서 증언하고 있는 유일한 여성 증언자라는 사실에 대한 고려 없이 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을 공격했던 <뉴시스>의 4월 7일 보도 이후 이 ‘사실’을 삭제하기 위한 총력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보도기사는 지금 삭제되었는데, 뉴시스가 그 계열사인 머니투데이 그룹의 홍선근 회장이 장자연과의 술자리에 합석했던 인물임을 윤지오가 폭로하면서 언론을 통한 명예훼손을 하지 말 것을 항의한 때문이다.(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7755)

윤지오에게 정부가 경비 ‘특혜’를 제공했다는 오래된 유행가

대한민국 정부는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국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윤지오에게 이 사건에 대한 증인으로 서 줄 것을 청탁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한 것은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떠돌았고 2018년 초 미투 운동을 통해 실제로 확인된 ‘권력형 성폭력’이 장자연을 죽음으로 몰고간 핵심 원인일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었기 때문에, 윤지오가 증언에 나선다면 그것은 권력자들과 맞서는 위험한 일임이 분명했다. 실제로 장자연은 최근 SBS가 공개한 육성녹음에서 (자신의 소속사 대표보다 더)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다급하게 말하고 있다.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이 윤지오라고 없겠는가?

위험을 우려한 가족들과 본인이 이 청탁을 거절했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윤지오는 증언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왔다. 증언은 살아남은 자, 즉 생존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지오는 살아남은 증언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라이브 ‘생존방송’을 시작했다. 그것은 국민대중의 힘으로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신체와 생명활동을 국민대중의 눈 앞에 공개하고 그 눈들이 자신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결의를 함께 공유하고 시청대중과 자신이 공통의 몸과 마음으로 엮여들도록 만드는 과학기술적 장치였다. 또 그것은 조사단의 증언에 앞서, 그리고 그와 더불어 진행되는 거리 증언의 방식으로서 권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권력에 맞서면서 진실규명의 공통장을 창출하는 혁신적 과정이었다.

어두운 밤길에서 남성에 대해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을 남성이 체감할 수 없듯이, 권력과 대립하지 않는 사람들(여기에는 권력자 자신은 물론이고 권력부역자들과 권력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사람들도 포함된다)은 권력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권력을 안전한 것으로 느끼며 안락한 삶의 질서로 느낀다. 이 때문에 이들은 윤지오가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에 공감하기는커녕 그것을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한 술수로 독해한다. 그래서 두 번의 교통사고, 스마트워치 오작동, 숙소에서 난 냄새, 잠금장치 파손, 숙소에서 들리는 기계음 등을 호소하며 윤지오가 두렵다고 말할 때 저들은 그것을 거짓말로 단정하고 미디어로 선동한다. 윤지오가 동료 배우 장자연의 의문의 죽음과 더불어 10년을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고려하는 것을 이들은 사치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단순 교통사고, 스마트워치 조작법 미숙, 침입시도 흔적 없음’ 등의 ‘경찰적 시선’으로 한 인간의 영혼이 포학한 권력의 엄연한 사회적 실재로 인해 겪고 있는 고통을 훑어내림으로써, 재계 언론계 문화계 정치권 등에 실재하는 권력의 수족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감각 및 감성 양식으로부터 “대체 너[윤지오]를 누가 쫓아 온다고?!”라는 조롱이 시작된다. 이것은, “나는 [권력이] 편안해, 너는 왜 호들갑이니?”라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어서 공감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반-죽은 존재들의 반응양식이다.

최근 이들은 윤지오의 숙박비로 900만원을 지불하고 5인의 경호원을 붙인 것에 대해 국고의 과잉지원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김수민도 이에 호응하여 세금을 개인 윤지오에게 쓰는 것이 부당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윤지오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장자연 사건은 전 국민의 관심사안이며 앞서 말했듯이 윤지오는 국민을 대의하는 정부의 청탁을 받아 증언자로 온 것이다. 국가는 헌법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국민이 요청한 증언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경호, 숙박비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언론들이 있다. 윤지오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의 이러한 비난에 맞서 4월 30일 자신의 어머니가 지출한 사설경호비 지출영수증들과 송금증서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1차 1,250만원, 2차 1,440만원, 3차 870만원, 도합 3,560만원이다. 증인을 불러와 그 증인에게 국가가 부담한 비용보다 훨씬 더 높은 비용을 사적으로 부담시키는 국가는 아직 ‘나라 다운 나라’가 아니다. 윤지오가 캐나다로 돌아간 후 ‘대한민국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고 탄식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누굴까, 지금 국가가 숙박비 900만원을 윤지오에게 지불한 것이 ‘특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들과 언론들은? 그것은 광주민주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을 만들어 이들에게 부당하고 불투명한 ‘특혜’를 제공해 국민에게 폐를 끼지고 있다고 떠들었던 사람들, 세월호 피해자가 배상 ‘특혜’를 받았다고 헛소문을 퍼뜨려 온 세력들이다. 윤지오 ‘특혜’론은 이 세력들의 오래된 유행가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적 주체들[메신저]을 훼손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의 의미[메시지]을 말살하는 저들의 방법이다. 김수민-김대오-박훈의 윤지오에 대한 비난, 고소, 고발은 필연이든 우연이든, 자의든 타의든 간에 현실에서 이 세력이 휘두르는 거친 방망이로 기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1)

현재 “장자연 리스트”가 경찰이나 검찰의 수중에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자연 문건 사본을 보도한 kbs도 리스트를 입수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장자연 문건의 실재를 처음 알렸고 그 “원본”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김대오 기자가 “목숨을 걸고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김대오 기자가 리스트를 보지 못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리스트를 본 두 사람이 있다. 그것은 윤지오 배우와 전 호야엔터테인먼트 대표 유장호다. 윤지오배우가 리스트를 보았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은 다음 네가지다.

1)십 수 차례에 걸친 수사기관 및 진상조사단 증언들과 무엇보다도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내놓은 증언인 <13번째 증언>의 11장: 여기서 윤지오 배우는 봉은사에서 유장호 대표로부터 문건의 사본을 넘겨받아 보았고 봉은사 땅밑에서 꺼내온 원본을 장자연 씨의 친언니가 읽는 것을 함께 보았고 소각하는 것도 보았다고 말한다.    

2)유장호의 수사기관 초기 진술: 여기에서 유장호는 문건을 윤지오에게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3)고 장자연 배우의 오빠의 진술: 이 진술에서 장자연의 오빠는 문건의 원본과 사본을 보고 태운 현장에 윤지오가 있었다고 말한다 

4)유장호와 윤지오 사이의 통화 녹취록: 이 통화기록에서 유장호는 경찰에 자료를 넘길 때 장자연이 술접대한 사람 ‘목록’은 넘기지 않을 셈이라고 윤지오에게 말한다.

등이다. 

1년 넘게 장자연 사건을 취재해 왔다는 kbs 이지윤 기자는 ‘‘장자연 리스트’는 실재했나? 기록으로 살펴본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2019년 4월 24일)에서 이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런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윤(지오) 씨가 최소한 장자연 문건을 봤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87063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민-김대오-박훈 그룹은 우파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김용호-김세의와 보조를 맞추면서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해 왔고 이것은 제도 언론들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보도됨으로써 강력한 여론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리스트는 없었다는 이들의 주장은 “윤지오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거짓말하고 있다”는 인신공격 주장으로 발전되었고 다시 그것은 “윤지오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증언자로 나섰다”는 음해와 모욕 주장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그 주장이 주장을 넘어 행동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박훈 변호사의 윤지오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다. 이것의 정치적 효과가 윤지오 증언자의 증언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고 그 증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재수사의 사유를 제거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가해 권력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핵심적 근거는 무엇인가?

1)술자리에서 김수민이 윤지오로부터 들었다는 말: ’윤지오가 리스트를 봉은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봤다고 했다’.

2)김대오 기자의 증언: 유장호를 만나 입수한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다. 

2)부터 살펴보자. 김대오 기자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장호의 위 통화기록을 통해 간단히 해석할 수 있다. 유장호가 보여준 문건에서 김대오 기자가 “보지 못했으니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과 다르다. 우리가 공기 중의 세균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공기 중에 세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화기록을 보면, 유장호는 경찰에게 ‘목록’(리스트)은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기자인 김대오에게 유장호가 ‘목록’(리스트)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찰과 기자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고려하면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된다. 그러므로 김대오 기자가 “(이름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리스트는 원본 속에서 없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데 이것은 목숨을 너무 값싸게 내놓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착오와 지나침에 대해 시민들께 사과하고 “내가 본 문건에서 나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있는 그대로 발언을 정정하는 것이 신상에 좋으리라 본다.(계속)

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1)

1.

윤지오 배우의 “13번째 증언” 전에 장자연 사건에 대한 한국사회의 “지배적 진실”(사법적 진실)은  우울증-유서-자살이었다. 이 선언된 진실과 모순되는 다양한 사실들과 진술들, 기사들에도 불구하고 장자연의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질병에 있는 것으로 판결되었다.

윤지오 배우의 “13번째 증언”은 유서는 없었으며 문건만이 있었고 그것은 이해관계 투쟁 속에서 자의반타의반으로 작성되었을 수 있는 것임을 확인했고 그 문건이 장자연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는 여러 사람(대개는 재계 언론계 정치계 문화계 법조계 등의 권력자들)의 이름과 직함(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증언은 이전의 “지배적 진실”이 잘못된 것이었고 사태를 재조사해서 참된 진실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최근 김수민 작가, 김대오 기자, 박훈 변호사(김김박)는 윤지오 배우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즉 1)윤지오는 ‘장자연’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2)윤지오는 거짓말로 대중을 속여 인세, 후원금, 해외펀딩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윤지오 배우를 명예훼손, 모욕죄로 고소하고 또 사기죄로 추가고소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러한 폭로 및 사법 행동은 대검찰청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이 장자연의 성폭력 피해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에 요청한 시점과 일치한다. 이제 윤지오 배우의 증언은 진실성을 의심받기 시작했고 이 논란 여부에 따라 검찰 재수사가 이루어질 것인가 말 것인가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김김박 문제제기와 고소(이하 “김김박론”)의 실제적 효과는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 내부에 이견을 낳고 국민적 여망으로 부상한 장자연에 대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 재조사 문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조사가 없다면 우울증-유서-자살이라는 기존의 진실담론이 더욱 더 공고하게 굳어질 것이고 권력형 성범죄는 없었던 것으로 귀착될 것이다. 이것은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 각계에서 무수히 제기되고 또 확인된 권력형 성범죄의 실재와 상충하는 진실이 장자연 사건을 이해하는 진실로 굳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제 누구나 거짓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낡은 “사법적 판단”이 “진실”로 행세하게 된다는 뜻이다.

어쨌건 증언에 대한 의혹제기와 고소가 있는 만큼 윤지오 배우의 증언을 둘러싼 “사실이 무엇인가?”는 조사와 판결을 기다려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김김박론”은 특정한 도덕적 정치적 관점을 전제하고 있고 그 관점에 윤지오 배우의 증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왜곡하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사실이 무엇인가가 드러나기를 기다리면서 여기서는 드러날 사실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김박론”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두 가지 편향된 관점이다.  그것은 가족주의와 순수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관점의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예멘 난민, 한국 국민, 지구 다중에 관한 어떤 인용문

“영국의 모든 공업 중심지와 상업 중심지는 이제 두 개의 적대적 진영 ― 영국 프롤레타리아와 아일랜드 프롤레타리아 ― 으로 나뉜 노동계급을 갖고 있다. 보통의 영국 노동자는 자신의 생활수준을 낮추는 경쟁자로서 아일랜드 노동자를 증오한다. 아일랜드 노동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는 자신을 지배 민족의 구성원으로 간주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아일랜드에 대항하는 영국 귀족들과 자본가들의 도구가 되어 그들의 그 자신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한다. 그는 아일랜드 노동자에 대한 종교적, 사회적, 민족적 편견을 품고 있다. 아일랜드 노동자에 대한 그의 태도는 미국의 과거 노예제 주들에서 ‘가난한 백인들’이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인 ‘니그로들’에 대해 보였던 태도와 거의 같다. 아일랜드인은 영국 노동자에게 원금에 이자까지 붙여서 보복한다. 그는 영국 노동자에게서 아일랜드에 있는 영국 지배자들의 공모자를,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은 도구를 본다. 이 반목은, 언론, 설교단, 만화신문 등에 의해 요컨대 지배계급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에 의해 인위적으로 온존되고 강화된다. 이 반목은, 영국의 노동계급이 조직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 비밀이다. 또 그것은,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그리고 자본가계급은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칼 맑스

자유한국당의 정치-이미지

자유한국당의 정치-이미지

이명박의 구속에 대한 정진석의 발언은 자유한국당의 정치-이미지가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는 “1. 조선시대의 사화도 이렇지 않았다. 2. 역사는 반복된다. 다음은 너희들 차례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유한국당이 수 백 년 전 봉건 전제군주시대의 정치-이미지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근혜의 구속은 2016년 촛불의 직접적 여파이며, 이명박의 구속은 2008년 촛불의 오래 지속되는 여파이다. 국민과 다중의 촛불행동(아래로부터의 정치)을 삭제함으로써 그는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에 ‘사화’의 이미지(위로부터의 정치)를 부여한다. 역사는 5백여년 전으로 퇴행하며, 그것도 물구나무선 채로 퇴행한다. 사화는 사림파가 훈구파에 의해 공격당한 사건인데, 만약 비교를 한다면 자유한국당과 박근혜, 이명박은 공격한 훈구파에 가깝지 피해자인 사림파와 가깝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임의적인 역사적 퇴행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관점에 의해 뒷받침된다. 다음에는 자신들이 문재인과 민주당을 공격할 차례라는 생각이 여기서 따라나온다. 그런데 정진석에게는 불행하게도,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 속에서 생성되는 변이이다. 반복되는 것은 역사의 본질이 아니라 피질(皮質)이다. 수구 보수주의 정당은 이승만의 망명(자유당), 박정희의 피살(공화당), 전두환, 노태우의 구속(민주정의당), 이명박(한나라당)과 박근혜(새누리당)의 구속이 보여주듯이 범죄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다. 반복된 것은 범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변이는 있다. 피/돈의 범죄가 돈/돈의 범죄로 변이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에 다시 기회(‘다음 차례’)가 주어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범죄의 정치일 것이다. 하지만, 미투와 위드유, 3.31뛰뛰빵빵 택시 희망버스, 평화촛불집회 등으로 나타나는 지금의 촛불혁명이 지속되고 확산된다면 그러한 기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러므로 ‘다음 차례’가 아니라 ‘소멸의 때’이다. 당내의 자중지란은 그 시간이 가까왔음을 예고한다.

위수령 문제

촛불집회 당시 태극기집회 측이 계엄령선포와 군대동원을 요구할때, 계엄령 선포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였다. 당시의 조건에서 국회의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국회의 동의 없이 군대를 동원할 다른 방법(위수령)이 남아 있었고 또 실제로 그것의 사용을 고려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래의 첨부 문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헌은 국민을 정치권력의 실제적 주인으로 만드는 법률적 장치들을 준비하는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첨부]

촛불혁명 무력진압친위쿠데타 모의한  수뇌부를 엄단하라

탄핵 정국 위수령 군대 투입 검토 폭로 긴급 기자회견 –

박근혜 퇴진 촛불혁명’ 당시 군이 무력 진압을 모의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2016 12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국방부 내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것에 대비하여 군 병력 투입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분분하였다이러한 가운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구홍모 중장( 육군참모차장육사40)은 직접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소요사태 발생 시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였다보수단체들이 날마다 ‘계엄령 촉구 집회를 열어 시민 학살을 운운하며 내란 선동을 하던 때에 군이 실제 병력 투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군이 이러한 참담한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위수령(대통령령 제17945)’이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위수령은 대통령의 명령만으로 치안 유지에 육군 병력을 동원하는 조치로 1970년 박정희 가 군부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근거법도 없이 제정한 시행령이다계엄령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나 국회의 동의 없이도 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우 위헌적이다실제 1965년 한일 협정 체결 반대 시위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부정 규탄 시위, 1979년 부마항쟁 시위 진압 시 발동된 바 있다위수령은 대한민국 법률 체계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 없이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법령으로 정부 시행령에 불과하나 법률의 통제를 벗어나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위수사령부 소속의 장병은 제15조에 따라 폭행을 저지르는 자나 폭력이 수반 된 소요를 총기를 발포 하여 진압할 수 있고17조에 따라 폭행 등의 현행범인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외적이 아닌 국민을 적으로 상정하여 군의 정치 개입에 단초를 제공하는 악법인 것이다.

군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할 시 위수령을 선포하여 촛불혁명에 나선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는 상황을 예비해왔던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정황은 탄핵 심판 중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위수령 폐지를 반대한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 2016 12월과 2017 2월에 두 차례에 걸쳐 국방부에 위수령 폐지 의견을 질의하였다이에 주무부서인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에서는 합참 법무실에 법령 검토를 맡겼고법무실은 폐지 의견으로 이를 회신하였다그러나 합참이 이를 한민구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하자 장관은 폐지할 수 없다며 존치 의견으로 검토하게끔 지시하였다이러한 시도는 국방부 법무관리관 주도 하에 이루어졌는데당시 법무관리관은 청와대 파견 법무관들과 자주 연락하며 교감했기 때문에 위수령 존치는 사실 상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이처럼 국방부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던 중 3 10일 탄핵이 가결되자 3 13일 이철희 의원실에 ‘위수령 존치 여부는 심층 연구가 필요하여 연구 용역을 맡길 예정이다.’라는 회신을 보내왔다청와대군 지휘부법무계통이 은밀히 모의하여 위수령을 활용탄핵 부결 시 군 병력을 투입하는 ‘친위쿠데타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엄군이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광주 시민을 학살한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군은 또 다시 부정한 권력에 빌붙어 시민들을 총칼로 짓밟을 계획을 세웠다이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란 음모나 다름없다육사 출신의 정치군인들이 여전히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망령을 잊지 못하고 기회를 엿보아 국민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할 뿐이다.

3일 뒤인 3 10일은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박근혜 대통령 파면 1주기다금번 밝혀진 친위쿠데타 시도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세계사에 유례 없이 평화적으로 불의한 정권을 몰아낸 촛불혁명을 총칼로 짓밟으려 한 민주주의의 적들은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 역사의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한민구  국방부장관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을 위시하여 위수령 존치를 통한 친위쿠데타에 관련된 군 지휘부법무계통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을 내란 음모 혐의로 낱낱이 색출하여 엄단하라아울러 독재정권의 잔재인 초법적 ‘위수령을 즉시 폐지하고 개헌 시 계엄령 발동 조건을 엄격하게 개정하여 시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2018. 3. 8.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첨부자료 출처: http://mhrk.org/news/?no=4857

정치의 종속변수로 된 진실

이명박으로 다스 실소유주를 적시하는 데에 10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진실 구명에 10년의 과학적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이 진실을 규명할 의지를 가진 정치권력을 만들어 내는 데 10년이 소요되었다는 의미이다. 정치권력은 진실을 숨기고 드러내고 뒤트는 작용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은 정치의 종속변수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수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과학에 매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정치를 진실접근적인 성격의 것으로 바꾸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들이 가리키는 ‘북한’은 없다

북한이 없다면 정치를 못할 정치가는 … 홍준표와 그 주변 정치가들이다.

북한이 없다면 존재 이유가 없는 정당은 … 자유한국당과 그 주변 정당들이다.

이들의 정치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이, 북한을 중심으로 돌고 북한에 의지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가리키는 먼 별들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많듯이, 이들이 가리키는 ‘북한’은 없다.

이들은 늘 … 먼 과거의 북한, 기억 속의 북한, 이들이 각종 수법으로 만들어 낸 조제된 북한(의 이미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가상적 몸짓이 희망버스, 촛불, 미투, 위드유 등 다중의 각종 자기가치화와 자기조직화 운동의 조명을 받아 점점 웃음을 아아내는 소극으로 드러나면서  한 시대, 아니 한 무대의 막이 내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진실 밝히기의 더딘,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걸음

진실 밝히기의 더딘, 그러나 거역할 수 없는 걸음

다스 실소유자가 전대통령 이명박임을 인정하는 주체는 1)국민들에서 2)다스 전현직관리자들로 3)이명박의 핵심측근들로 그리고 마침내 4)다스 지분 소유자인 친인척으로 아주 더디게 이행해 왔다. 여전히 부인하고 있는 것은 당사자인데 인정 주체들의 이러한 이행은 당사자가 설치한 모든 방파제가 하나하나 무너져온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진실을 밝히는 해일이 당사자를 덮치는 것은 누가보아도 시간문제이다. 이제 다스가 이명박의 것이라면 정치적, 법적으로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실질적 문제가 다루어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