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3)

윤지오를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기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박훈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증언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것을 그는 ‘가지치기’라고 부른다)이다. 2009~2010년 사이에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고 말한 사람은 최소한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유장호이고 또 한 사람은 윤지오이다. 이 중에서 유장호는 장자연 사건의 이해당사자로서 진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을 증언할 의지가 불분명한 사람이다. 이것은 최근 진상조사단 비공식조사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장자연의 진술을 자신이 지우라고 했다고 말했다가 보름 뒤에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므로 장자연 리스트를 증언해 줄 유일한 사람으로 윤지오가 남는다. 그러므로 박훈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기만 하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자신의 주장은 부정될 수 없는 타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박훈의 일차적인 방법은 윤지오 스스로 보지 못했다고 자백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4월 21일까지 박훈은 이 방법에 주력한다. 

그는 4월 16일에 세상에 이미 알려진 4장짜리 장자연 문건을 자신의 수타로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이것이 현존하는 “장자연 문건”의 전부임을 선언한다. 그 현존하는 문건은 유장호가 보관하고 있던 사본의 일부로서 KBS가 입수, 보도한 것이다. 

박훈은 윤지오가 문건을 보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근거로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장례식장(3월 7-9일)에서 소각되었으므로 윤지오가 3월 12일에 봤다고 한 것은 거짓일 것이라고 쓴 바 있다. 그는 4월 16일에야 사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고 윤지오가 맞았음을 비로소 인식한다. 그래서 그는 문건의 원본과 사본이 3월 12일에 봉은사에서 소각되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지오가 그 문건들을 봤다는 것까지 인정하지는 않는다. “아뭏든 보지 못했을 수 있다”며 의심을 지속하는 것이다. 자신의 과오를 발견하고도 왜 저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일까?

4월 13일에 쓴 박훈의 글은 참으로 혼란스럽다. 

이 자가 왜 유일한 목격자가 된 것인가? 장자연 문건을 봤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유일하게 말을 한 사람이 윤지오다. 그러나 장자연 문건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아무도 아직까지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거대한 권력의 압박을 받아서? 누구 말대로 국정원 공작 때문에? 아님 고인을 위해서?)

이 글에서 박훈의 주장은 단 하나도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선 윤지오는 ‘유일한 목격자’를 주장하지 않는다. <13번째 증언>의 표지와 목차에 ‘유일한 목격자’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지만 이것은 윤지오의 인식이 아니라 출판사의 인식과 의지일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윤지오는 여러 차례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 ‘유일한 증언자’라고 말해야 했다. 장자연 문건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여럿이다. 윤지오 외에 유장호, 스타일리스트 이00, 유가족, 그리고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유장호의 경호원’ 등이 있다.  둘째로 문건의 내용에 대해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고 오직 윤지오만이 말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거짓이다. 문건의 내용은 KBS 보도를 통해 이미 대중에게 공개된 터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구분하지 않고 혼란스럽게 이야기하는데, 리스트를 본 사람은 정황상으로는 유장호, 경호원, 윤지오, 유가족인데, 리스트의 존재에 대해 말한 사람은 유장호와 윤지오(그리고 장자연의 오빠)이고 그 내용에 대해 말을 한 사람은 윤지오가 유일하다. 박훈은 문건과 리스트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놓고 리스트에서 문건으로, 문건에서 리스트로왔다 갔다 한다. 이 혼란을 벗어나려면 문건과 리스트가 있고 문건과 리스트를 장자연으로부터 받았거나 함께 작성한 유장호가 문건만을 보여준 사람과 문건과 리스트를 다 보여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월 18일 박훈은 여전히 문건과 리스트를 혼동하면서 이런 질문을 윤지오에게 던진다.

“님이 본 장자연 문건에 4,50명이 있었는데 그게 2009. 3. 12. 봉은사에서 유장호가 보여줬다는 것에 있었는지요? 님이 본 것이 진짜 봉은사에서 본 것이 맞는지요.”

윤지오는 이미 10년 전의 수사기관 진술에서, 박훈의 질문에 답했다. 유장호가 넘겨준 문건과 리스트를 봉은사 차 속에서, 그리고 소각 시에 봤다고. 이미 진술되어 있는 것을, 그리고 유장호와 유가족 진술의 교차검증을 통해 확인된 사실을 왜 묻는 것일까? 윤지오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강변하기 위한 것이다.

4월 19일에 박훈은 드디어 “장자연이 직접 작성한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 리스트가 무엇인지, 어디서 봤는지도 자신은 알고 있고 누가 작성했는지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 리스트는 누가 작성한 리스트이며 [윤지오가] 어디서 봤다는 것일까? 같은 날 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의 진실은 이것이다”라는 제하에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이 실은 장자연 계좌로 수표를 입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경찰이 리스트로 작성한 것이라고 단정한다. 즉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고 리스트라 불리는 것은 사후에 경찰이 작성한 수표송금 리스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윤지오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수사 서류에 있던 “그 명단이나 수사 대상자로 올린 50여명의 리스트를” 우연히 “잠깐” 봤을 개연성은 있다.’고 쓴다.

윤지오의 말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하여 가능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쓴 소설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기에는 4월 16일 작가 김수민이 술자리에서 새벽에 윤지오로부터 들었다며 한 이야기가 주요 구성요소로 차용되고 있는데, 그 이야기에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수사기관에서 우연히 봤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는 3월 12일 윤지오가 녹취하여 제출한 유장호와의 통화기록에 등장하는 장자연 관련 ‘목록’이라는 말, 그리고 유장호와 윤지오가 10년 전에 이미 일관되게 진술하는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명단’에 관한 진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이미 물질화되어 존재하는 진술문서를 외면하고서야 성립할 수 있는 상상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뒤인 4월 20일에도 그는 윤지오가 리스트를 봤다면 그것은  ‘경찰이 작성한 “수사대상자 리스트”, “장자연 수표 리스트”, 아니면 “전준주 리스트”다.’라고 씀으로써 자신의 가상의 시나리오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내세울 뿐, 장자연 리스트의 부재에 대한 어떤 신뢰할 만한 분석이나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라는 윤지오의 반격

이 때는 이미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발언들이 윤지오의 증언들을 뒤흔들기 시작한 때이다. 박훈은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질문에 대한 윤지오의 최초의 응답을 올리는데 그 응답에서 윤지오는 박훈을 “헛소리 지껄이는 변호사”로 묘사하고 ‘헛소리 하려거든 본인 일기장에 하고, 자신의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라’고 말한다. 왜 윤지오의 응답이 이렇게 거칠었을까? 그것은 박훈이 증언자 윤지오를 증언과는 상관 없는 문제로 인신공격하여 그의 증언행동을 실추시키고 인격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모독들인가?

첫째로는 장자연 사건 관련 재판에서 윤지오가 가해자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노래나 춤을 추게 된 것도 강압적이 아니었다”)을 했다는 비난이다. 윤지오는 김종승과 관련하여 두 번 진술했다. 한 번은 ‘김종승과 체결한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래나 춤을 추는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고 김종승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고(2009) 또 한 번은 김종승이 자신[윤지오]에게 ‘강압적으로 춤을 추게 했는가’라는 물음에, ‘강압은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2010). 그런데 후자가 판결문에서 김종승에게 유리한 진술로 인용되고 박훈은 이 판결문에서 윤지오가 가해자를 편들었다는 이미지를 끌어낸 후 윤지오 공격에 사용한다. 윤지오의 대답은 일견 모순된 것처럼 보이고 후자만을 맥락에서 떼 내어 읽으면 윤지오가 가해자 편을 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구조적 압력과 직접적 압력을 구분해서 접근하면 이 진술은 윤지오 내부에서는 일관된 것이다. 두 번의 진술을 통해 윤지오는, 김종승이 자신에게 직접적 압력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계약서를 통해 구조적(계약적) 압력을 가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박훈은, 판사가 윤지오의 진술로부터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인용한 판결문만을 보고 윤지오가 가해자에게 유리한 “거짓” 진술을 했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것으로부터 윤지오는 장자연을 위한 증언을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끌어낸다.

둘째로 박훈은 윤지오가 의문의 교통사고와 증언으로 인해 ‘법 위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위험을 언급할 때 그것을 “쇼”로 단정한다. 이것은 유튜버들과 댓글들을 통해 무한 재생산된 윤지오 악마화의 이미지다. 박훈이 이런 생각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럼 그의 주장대로라면 리스트를 수 도 없이 본 유장호와 김대오 (Dae O Kim) 기자는 이미 살해됐어야 했다. (실제 이들은 윤지오가 주장하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

마지막 구절, “왜? 장자연씨가 만든 적이 없으니까”라는 말이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했다. 분명히 리스트의 물적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김대오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유장호는 리스트를 보았고 그 존재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그 리스트의 공개를 처음부터 차단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 사람이고 이 때문에 ‘자신의 경호원’이라는 신분으로 유장호를 보호/감시했던 국정원의 협력자이거나 국정원으로부터 통제를 받는 사람으로 의심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그런 태도를 유지하는 한 그가 ‘법 위의 사람들로터의 위협을 받을 일도 없다’. 두 사람은 윤지오와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박훈은 잘못된 비교를 통해 윤지오가 실제적으로 느끼는 위험을 허구화하고 위협에 대한 발언을 쇼라고 단정한다. 그는 윤지오가 왜 ‘혼자 법 위의 30명을(원래 4,50명 이었다) 상대”하는가?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질문하지만 그에 대한 악의적인 인격적 의심(거짓말쟁이, 사기꾼) 외에 어떤 진지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셋째로 박훈은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의심의 심리에서 출발하여 윤지오에 대한 경호를 혈세낭비로 규정하거나 윤지오의 후원계좌 개설을 돈벌이로 규정하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며 급기야는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멈춰세워햐 한다(“윤지오는 가고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만이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소, 고발, 그리고 변론의 자가당착

이러한 인신공격은 4월 23일 김수민을 대리하여 윤지오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모욕’ 혐의로 고소하는 법률행동으로 나타났다. 당일 기자회견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윤지오씨는 고 장자연씨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윤지오씨는 조모씨 성추행 건 이외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장자연 리스트 봤다” “목숨 걸고 증언”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그는 가상적인 자신의 시나리오를 근거로,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부정한다. 또 그는 윤지오가 거짓말로 후원을 받고 있다는 자신의 근거 없는 추정을 확립된 사실처럼 주장한다. 또 그는 “윤지오씨가 봤다는 “장자연 리스트”는 김수민씨의 폭로로, 수사과정에서 수사 서류를 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면서 자신의 상상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 “밝혀졌다”는 말로 표현한다. 또 그는 “고 장자연씨는 결코 목록을 작성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면서 10년전의 진술증거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사실의 신빙성을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임의적 주장을 확인된 결론처럼 내세운다. 한 인격에게 결정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이러한 허구적 변론폭력이 과연 용납되어도 좋은 것인가? 

박훈은 말한다. “나아가 저를 비롯한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해자 편”에 서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라고. 윤지오의 인격에 대한 공격과 고소고발 행위가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낮출 것이며 윤지오가 처벌을 기대하며 내놓은 ‘법 위의 사람들’에 대한 그의 진술이 힘을 잃으리라는 것을 박훈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박훈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훈은 자신이 조선일보를 싫어하며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은 사회주의자라는 진보혁명가-제스쳐로 자신이 가해자의 편이라는 일련의 비판을 차단하면서 4월 26일 윤지오를 사기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표현하고 있는 이호진, 손석희, 노영희, 정지영, 안민석 등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피력하는 것을 넘어 윤지오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 일반을 ‘윤지오한테 농락당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한심한 작자들’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단순논리는, 박훈 자신이 ‘권력에 농락당하고 있는 한심한 작자’라는 역공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이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한다’는 비난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알렉산드로스인가 돈키호테인가?

증언자 윤지오를 향한 박훈의 이 돈키혼테적 돌진과 칼질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재수사의 무산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와는 달리, 그는 장자연 리스트의 매듭을 결코 끊어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삭제하는 방식에는 중요한 약점 즉 아킬레스건이 있기 때문이다. 박훈이, 유장호와 윤지오가 이미 10년 전에 수사기관에서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다고 말한 사실을 끝까지 외면한 것이 그것이다. 이미 확인된 진실을 외면한 것이 그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변론을, 10년 전에 장자연 리스트는 물론이고 장자연 문건의 마지막 단 한 구절 외에는 문건의 내용도 형식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자신의 ‘기자친구’ 김대오(가 문건을 보았다는 가정)와 ‘작가친구’ 김수민에 기대서 끌어낸다. 그런데 김대오가 문건도 리스트도 전혀 본 적이 없으며 윤지오가 그것 모두를 보았다는 사실은 한국일보가 대중에게 공개한 ‘누가 장자연을 죽였나?’의 유장호, 윤지오 진술서 디지털 프린트물에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진술서들이야말로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질적 흔적이며 가장 중요한 흔적이다. 윤지오의 진술들은 10여년 전의 진술들이므로, 오늘날의 진술처럼 거짓말이라거나 사기라거나 하는 잡음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장자연 리스트”의 흔적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설령 박훈을 비롯한 사람들이 윤지오를 도덕성의 심급에서 파멸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윤지오의 이 증언만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다는 그의 증언의 진실가치는 불변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박훈이 이 진술을 알면서 모른 체 하는 지, 아니면 누구나 본 그 진술을 보지 않으려는 옹고집스러운 태도로 윤지오 죽이기를 위한 변론의 칼을 벼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의 이 물적 흔적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를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는 박훈의 칼질은 여론의 일시적 흥분을 이용하여 잠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결코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라는 그 매듭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매듭을 푸는 힘겨운 과제는 진상조사단과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실규명의 의지를 확고히 하지 않으면 않을 수록, 더 분명하게 다중의 집단지성에, 촛불 공통장의 힘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끝]

특수강간죄 수사권고 없는 진상조사보고에 대한 윤지오의 생각에 대하여

진상조사단은 왜 재수사를 적극적으로 권고하는 것을 포기했나?

사람들의 이목이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집중되었던 2019년 5월 13일.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김종승 위증혐의 고발, 수사과정에서 조선일보의 외압 인정 외에 핵심적 쟁점인 장자연 리스트와 성서비스노동 강요 및 권력자들의 성범죄 행위에는 과거 수사가 미흡했다고 했을 뿐, 재수사 권고 없는 진상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진상조사단이 이처럼 모호한 결론으로 재수사 권고를 회피하여 결국 김종승이나 조희천 같은 하위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요구에  머무르게 된 것에 대해 네 가지 사유를 들고 있다.

  1. 피해자가 사망했다
  2. 주요 인물들의 조사 비협조(소환불응)로 가해자 특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3. 핵심의혹인 술접대 성접대 강요 의혹 및 사회유력인사들의 성범죄 연루 의혹에 대해서는 윤지오의 증언 외에 수사를 시작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가 확보되지 못했다
  4. 리스트와 특수강간 문제에 관한 핵심 증인인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 이유들은 합당한 이유들인가?

첫째 피해자는 사망했지만 피해자가 남긴 문건이 확보되어 있으며 리스트에 대한 진술들이 있고 이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이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가 생존해 있지 않다는 것이 재수사 회피의 충분한 이유로 될 수는 없다. 둘째 주요 인물들의 조사 비협조가 가해자 특정에 어려움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특검과 같은 강력한 재수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셋째 술접대와 성접대 강요는 고 장자연이 문건에서 직접 친필로 호소하고 있는 범죄이며 문건에서 이미 조선일보 방씨 일가의 성범죄 의혹은 충분히 제기되었다. 물론 재수사는 공소시효를 요구한다. 

그런데 윤지오는 장자연이 술이 아니라 약물에 취해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에 대해 진상조사단과 “KBS1 오늘밤 김제동”에서 증언했으며 이외에도 진상조사단은 “장자연이 약물에 의한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것 같다는 여러 명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3256927&code=61121111) 또 유장호도 진상조사단 비공식조사에서 “처음에 장자연 씨가 성폭행을 심하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문건에도 썼는데 자신이 지우라고 했”으며 “성폭행한 그 사람을 자신은 알고 있는데 이것을 밝힐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08701). 이러한 유형의 특수성범죄(특수강간, 강간치상)는 공소시효가 15년이므로 진상조사단이 의지만 있다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재수사를 의뢰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진상조사단은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는 것일까?

유장호는 위의 진술을 한 후 보름 뒤에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말을 바꾸었고 약물에 의한 성범죄 피해 가능성을 제기한 복수의 인물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유일하게 알려져 있는 증언자인 윤지오는 그 “진술의 신빙성”을 두고 논란이 있기 때문에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진상조사단이 성서비스노동(술접대, 성접대) 강요와 권력자 성범죄에 대한 재조사 권고를 하지 않는 것의 최종적 사유는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 문제에서 찾아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지난 수십일 동안 한겨레, JTBC 등 극소수의 언론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도언론들과 가로세로연구소를 비롯한 우파 유튜브,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SNS 사용자 등 한국 사회의 특정 세력들이 광기의 윤지오 마녀사냥과 윤지오 죽이기에 총력을 기울여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윤지오 검증론” 트리오의 표정들

특히 우리는 장자연 사건 진상 조사가 재수사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는 데 있어서 박훈, 김대오, 김수민 트리오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린 것은 뉴시스를 비롯한 제도언론이나 우파 유튜브, SNS가 아니라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는 조선일보를 싫어한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거짓을 제거해야 한다”, “장자연 사건 진실규명과 윤지오 검증은 별개이다”, “촛불정권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 심지어 “나는 사회주의자이다” 등을 주장하면서 윤지오를 거짓과 사기를 단죄하는 단두대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을 역사의 무덤에 조용히 묻어두고 권력자들에게 활개칠 자유의 공간을 열어주는 데서 이들의 “공로”(?)는 반드시 평가받아야 할 것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5월 13일 진상조사단이 과거사위원회에 조사보고를 한 바로 그날 이들의 표정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박훈: 침묵

김대오: “입장과 의견을 떠나 과거사진상조사댠 모든 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최선이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수민: 그의 반응은 좀 길면서 두서가 없다. 그래서 그 반응의 일부를 발췌하고 그 밑에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을 주석으로 기록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의혹을 품고 있는/ 조선××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유일한 목격자 윤지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윤지오는 무엇을 증언하고 누구에게/ 신변 위협을 당했다는 건지”. 

::증언을 방해하는 세력들로부터 위협 당했으며 바로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린 사람들이 조사를 부실하게 만들었다.

“40-50명이 적힌 리스트를 봤다고/ 왜 거짓말을 친 건지/ 문건을 봤단 거랑 리스트를 본 거랑은/ 엄연히 다른 말입니다”. 

::맞다. 문건을 본 것과 리스트를 본 것은 다르다. 하지만 2009~2010년의 진술조서들은 김대오는 리스트를 못 보았고 윤지오와 유장호는 리스트를 보았음을 진술서라는 물적 증거로서 보여준다. 

“고인과 친분이 없는 나도 이렇게 초조하고/ 애타게 지켜보고 기다렸는데/ 모든 사람들이 오늘만을 기다렸을텐데/ 과거사위가 또 미뤘네요/ 문구를 다시 수정,보완 해서 발표 한다고 합니다”. 

::나는 과거사위원회의 이 고뇌 속에서, 장자연 사건의 조사발표가 몇몇 개인의 이해관계 문제를 넘어 정권의 존망, 체제의 존망과 연결되어 있음을 과거사조사위원회 자신이 느끼고 있으며 결과 발표가 정권이나 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보신주의적 세심함을 본다.

“근데 윤지오 씨는 오늘 목숨을 바쳐서 진술을 했던/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잊고 산 적이 없던/ 고인의 수사 결과 발표가 있었던 날이었는데/ 별로 관심이 없으셨나 봐요.”

::고인에 대한 수사 발표가 아니라 장자연 사건에 대한 강제력 있는 재수사 여부를 가늠할 조사발표다. …

윤지오의 눈, 윤지오의 힘

김수민의 생각과는 달리 윤지오는 5월 13일 진상조사단 조사발표에 대해 “약물과 성폭행..특수강간죄를 권고하지 않다니요”라는 제목하에 다음과 같은 반응글을 올렸다.

제 외에 추가 증언으로 증인들이 마약과 성폭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헌데 어찌 이럴 수가 있나요…/국민청원을 또 게재한들 바뀔까요?/ 특수강간죄가 권고되어야 공소시효는 이미 종료된 10년이 아닌 15년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핵심을 빼고 권고를 요청하다니요./이 모든 것이 몇몇 악의적인 사람들로 인하여 /가해자들은 웃는 세상이 되겠군요./자연언니를 위해서라더니 당신들이 저지른 만행 좀 보십시오./정말 반드시 이들만이라도 처벌하여 반드시 다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김수민이 지금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의 정치적 효과가 “고인”을 위한다는 자신의 표면적 대의와 갖는 실제적 충돌과 모순을 외면하면서 윤지오 죽이기에 전력을 다하는 것과는 달리 윤지오는 이 짧은 글 속에서 전체 상황을 통찰하고 이 상황에 참여하고 있는 각종의 행위자들의 동태와 이후의 과제에 대해 예리하게 발언한다. 그 요지를 열 가지 테제로 다시 정리해 보자.

  1. 검찰과거사조사위원회의 과거사진장조사단의 조사발표는 핵심문제를 회피한 비열한 발표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2. 핵심문제는 가해 권력자들의 특수강간 성범죄를 처벌하여 제2, 제3의 장자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3. 처벌을 위한 재수사는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간죄에 대한 수사권고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4. 나[윤지오]도 마약과 성폭행에 대해 증언했지만 나 이외에도 이에 대해 증언한 증인들이 있고 특수강간죄목 수사권고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본다.
  5.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미 확보된 증언들마저 외면하면서 가해자, 권력자들을 징치하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또 다시 국민청원을 한들 재수사가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6.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진상보고는 가해자들이 웃고 활개칠 세상을 보증해 준다.
  7. 과거사진상조사단이 특수강간죄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음으로서 장자연(들)의 고통과 눈물과 절규는 영구히 계속될 것이다.
  8. 이러한 결과는 몇몇 악의적인 사람들이 증언자 흔들기를 통해 증언 신빙성을 떨어뜨림으로써 초래되었으므로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
  9. 고인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이들은 고인에게 영원한 침묵을 강요했다.
  10. 이들만이라도 처벌하여 (특수강간죄 공소시효가 남은 향후 5년 이내에) 장자연사건 재수사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의 조건을 만들자.

상황과 대안에 대한 이 명확한 통찰은 메신저 윤지오를 무너뜨리기 위한 온갖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너지기는커녕 아직 굳건하게 진실규명의 진지를 지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진지를 혼자 지킬 수는 없다. 이 진지를 지켜내면서 그것을 어디나의 진지, 누구나의 진지로 사회화하고 지구화하는 일은 이제 누가 맡아 나갈 것인가?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2)

4월 10일 박훈은 다시 “윤지오 배우에게” 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내 며칠 전 질문에 답이 없던데. 글쎄요. 그것이 이렇게 넘어갈 성질이 아닌 것 같은데요. 후원계좌 열고, 스토리 펀딩한 것 보고 제가 결정적으로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서 문제제기 한 것인데 제 질문에 답을 하시죠. 

님이 오히려 “술자리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증언 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니라고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 님이 본 문건이 무엇이죠? 나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답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용은 그만 두고요. (8장짜리 최종본 봤어요? 14장짜리 초안 봤어요?) (4월 10일)

4월 9일의 질문은 4월 10일로부터 ‘며칠 전’이 아니라 ‘하루 전’이다. 나는 그가 윤지오에게 페이스북 포스팅 외에 어떤 경로로 실제로 질문지를 보냈는지 알지 못한다. 만약 그가 페이스북 포스팅만으로 윤지오에게 자신의 질문이 전달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그의 관념과 실제적 소통의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4월 9일 그의 포스팅에는 언제까지 답을 달라는 시한조차 명시되어 있지 않은 채로 10일에 답이 없다면서 다그친다. 이런 방식으로 윤지오가 응답을 회피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접속자들에게 전달하면서 그는 “내 며칠 전 질문에 답이 없던데. 글쎄요. 그것이 이렇게 넘어갈 성질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넌지시 협박조로 말한다. 만약 윤지오에게 자신의 질문을 분명하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타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위한 자작쇼에 지나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 끝에 그는 “님이 오히려 “술자리에서 강압은 없었다”고 증언 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아니라고 답을 하시기 바랍니다.”라며 장자연 리스트와는 직접 상관 없는 다른 문제를 끄집어 낸다. 나는, 이후 ‘윤지오가 유가족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서 진술했다’는 비난 행렬로 이어지는 박훈의 이 우격다짐식 주장이 엘리뜨주의적 편견이 낳은 착시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제는 장자연 리스트와는 별개의 문제이므로 다른 기회에 다루기로 하자. 이어지는 구절, “님이 본 문건이 무엇이죠? 나의 첫 질문이었습니다. 답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용은 그만 두고요. (8장짜리 최종본 봤어요? 14장짜리 초안 봤어요?)”가 김대오의 오락가락하고 횡설수설하면서 모든 것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는 거짓 진술들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황당무계한 질문임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루었으므로 넘어가기로 한다.

박훈은 4월 20일 페이스북 포스팅 ‘내가 어떤 사건에 나설 때’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건이 진행되고 있는데 서로 공방이 가면 지켜보다 엉뚱한 주장한 쪽의 논리를 깐다. 정봉주 사건이 그랬다. 그러다 내 주장에 동조하는 당사자들이 연락이 온다. 그러면 난 그 주장을 몇 차례 걸쳐 검증한다.(거의 살벌한 취조 방식이다. 대부분 견디어 낸다. 짜증내면 끝낸다.)검증이 완료되면 싸운다. 검증이 안되면 손 뗀다. 이것이 내 방식이다. … 하여간 주장을 하다보면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이 제보한다. 나는 그들을 만나 내 방식대로 검증한다. 그리고 교차 검증해서 오류를 최대한 줄이려 한다. 이럴때는 나는 거의 잠을 자지 않는다. 빠르게 정리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의뢰받은 사건 처리하는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확보된 모든 자료를 검토한다.(4월 20일)

자신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제보나 주장을 몇 차례에 걸쳐 검증하며 이때 살벌한 취조방식을 택하고, 검증이 완료된 경우에만 변호싸움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나는 묻는다. 김대오의 제보를 박훈은 “살벌한 취조방식으로” “몇 차례 걸쳐” 검증했는가? 교차검증했는가? 오류를 최대한 줄였는가? “확보된 모든 자료를” 검토했는가? 내가 보기에 그의 검증결과는 정보에 대한 오인, 불철저한 검증, 교차검증의 누락으로 인해 오류로 가득차 있다. 이런 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곧장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난 공격에 들어간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아주 천천히. 상대방한테 퇴각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부분은 퇴각하지 않고 꼭 싸움 걸어야 물러선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럴 때마다 걱정어린 눈빛으로 침묵한다. 그들이 알았던 것이 아니기에. 

박훈은 3월 28일 처음으로 윤지오 건을 사건으로 지각한 후 불과 열흘 정도 뒤인 4월 9일에 이 “사건에 뛰어들기로 작정”하고 그로부터 14일 뒤인 4월 23일에 윤지오를 김수민 변호인으로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고소 했고 하루 뒤인 24일에 윤지오를 직접 사회혐의로 고발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전개된 이 초고속 고소, 고발을 박훈은“천천히”, “퇴각기회를 주”면서라고 부른다. 이 때 박훈은 자신이 싸움을 걸면 상대방은 물러선다는 식의 자랑을 덧붙이기를 잊지 않았는데, 그것이 허풍이었음은 윤지오가 박훈이 싸움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서기’는커녕 ‘변호사 양반 박훈’에게 ‘선처 없는 역고소’를 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에서 입증된다. 박훈은 자신의 이 돈키호테적 돌진을 보면서 주변의 침묵하는 다중들이  짓는 “걱정어린 눈빛”을 그들의 ‘무지’(알지 못함) 탓으로 돌린다. 나는 이것이 자신의 조급함을 정당화하는 박훈의 소영웅주의적이고 엘리뜨주의적인 심리기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심리기제가 윤지오 사건의 경우에는 거짓을 변호하고 진실을 범죄화하여 진실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비탄에 잠기고 분노로 들끓게 하는 변론폭력으로 작용한다고 보는데, 이제 그가 장자연 리스트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검토하면서 이 점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1)

박훈과 고르디우스 매듭

서구 제국 권력의 놀라운 힘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 중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방법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고 그 전차에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매듭이 달려 있었다. 그 매듭은 오직 “아시아를 정복하는 사람”만이 풀 수 있는 매듭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어느날 알렉산드로스가 그 지역을 지나가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단칼에 그 매듭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단칼에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었다고 소문이 난 사람이 한국에 한 사람 있다. 변호사 박훈이 그 사람이다. 그가 드디어 10년동안 풀리지 않고 있던 ‘장자연 리스트’의 매듭을 풀었다고 한다. 그는 장자연 리스트의 “실재”를 증언했던 윤지오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만들어 그를 해외로 “추방”하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단칼에 해결했다고 하는데, 그가 사용한 주장은 놀랍게도 ‘장자연 리스트는 애초에 없었다’는 아주 단순한 주장이다. 이로써 애초에 리스트는 없었으므로 이제 리스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모조리 거짓말쟁이가 되며 사기꾼이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이로써 그는 리스트에 거명되어 왔던 언론계, 정치권, 법조계의 모든 사람들을 ‘악몽’에서 해방시키고, 리스트에 대한 부실수사로써 권력자들에게 부역했다는 비난을 들어온 검경의 ‘누명’을 벗겨주고 이 사건의 최상위 개입자로 지목되어온 이명박 청와대와 국정원에 자유를 주어 장자연의 죽음 자체를 초기 경찰수사(3월 9일)의 결론처럼 단순 변사에 가까운 것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장자연의 죽음이 가져왔던 지난 10년의 미망에서 전 국민과 세계시민이 깨어나도록 촉구하는 저 단칼의 알렉산드로스가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그간 10년 동안 우리는 미망에 사로잡혀 권력자들을 의심하고 그 의심의 눈 때문에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윤지오가 본 권력, 법, 그리고 국가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매듭임이 분명하다. 그 문건과 리스트는 힘없는 계약직 연예노동자인 장자연이 노예계약을 통해 한국의 기업가, 정치가, 법조인 등의 권력자들로부터 당한 참을 수 없는 강제노동과 학대의 고통을 적은 눈물의 기록이다. 그것이 유장호의 기획사와 김종승의 기획사 간의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문건과 리스트라고 해도 이 점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문건과 리스트 중 언제부터인가 문건만 남고 리스트가 사라졌다. 아니 문건도 리스트도 소각되었으나 문건만이 기적처럼 부활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정확할지 모르겠다. 

지난 10년간 엄청난 수사력이 동원되어 뭔가를 조사하는 듯이 부산스레 움직였지만 두 기획사 대표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있었을 뿐 피의자였던 권력자들은 전부 증거불충분 등으로 무혐의 처리되었다. 긴 수사과정과 재판과정은 결과적으로 사건을 ‘흐지부지’하게 만들면서 결국 이들 권력자들에게 법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고비용의 절차, 고난도의 테크놀로지에 다름 아니었다. 윤지오는 이 과정에서 ‘법 위의 사람들’의 실재를 확인한다. 그는, 대한민국에 법이 있고 법을 다루는 공무원들이 있지만 법, 경찰, 검찰, 판사 등은 권력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지 장자연과 같은 계약직 노동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며 법적 처벌은 권력자들에 대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비롯한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가해지는 무전유죄의 형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다. 

장자연 사건을 다루는 증언과 조사의 과정에서도 계급차별은 분명하게 나타났다. 방상훈 같은 자본가는 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이 조선일보로 찾아가 경우 35분 동안 황제처럼 모시면서 조사를 하고 윤지오처럼 계약직 노동자였다가 그 계약이 노예제 계약임을 깨닫고 가까스로  탈출하여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사람에게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이 한 밤부터 새벽까지 똑 같은 질문을 돌아가며 반복적으로 던짐으로써 증언을 견디기 어려운 노동으로 만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윤지오의 이 증언노동은 열 번 이상 반복되었다. 이것은 국가가 윤지오에게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쉽지만 진실을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을 실제 경험을 통해 실감나게 가르쳐 주는 과정이었고 그에게 진실을 지키며 살기보다 진실을 외면하면서 살라는 명령을 내리는 과정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자에게는 소진(燒盡)과 정신질환이 있을 뿐이다! 사법에서의 증언의 시간은 국가가 다중을 학대하는 또 다른 강제노동의 시간이었다. 장자연의 죽음과 더불어 윤지오가 경험한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였다.

촛불의 힘

‘이게 나라냐!’라는 집단성찰, 집단절규의 힘으로 박근혜를 파면한 촛불혁명이 없었다면 그간의 증언 과정에서 충분히 실망하고 소진된 윤지오가 다시 증언대에 설 힘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다시 장자연 사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조희천 강제추행 공소시효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던 2018년 여름이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PD수첩의 <고 장자연> 인터뷰에 응했던 윤지오는 이후의 소감을 이렇게 말한다.

“진실도 때로는 사람을 다치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머지 않아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처라고 나는 믿는다. 오히려 침묵하는 진실은 독이 되는 법. 나는 인터뷰에 응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나 새롭게 밝혀진 내용들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새로운 에너지가 그리고 기폭제가 되기를 빌었다.”(<13번째 증언>, 228)

이 인용구의 첫 문장은 아마도 그간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었던 힘듦, 실망, 소진의 경험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검찰의 소환을 받아들여 진상조사단의 증언에 임한 이후 진실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이 명제는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폭발한 백래쉬로 현실화되었다. 그 기폭의 도화선이 앞서 언급했던 한국의 알렉산드로스 박훈이고 그가 내친 칼이 ‘애초에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는 마법의 칼이다.

박훈의 가짜 칼

이제 그의 칼이 어떻게 주조된 칼인지, 즉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는 명제가 어떻게 구성된 명제인지를 살펴보자. 다행히 그는 자신의 칼/명제가 만들어져 온 과정과 제조법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그가 처음 윤지오에 대해 부정적 관점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9년 3월 28일로 나타난다. 

“고김광석 부인 서해순을 남편 살해범으로 몬 이상호가 윤지오 배우를 통해 장자연 사건을 폭로한다면서 이미숙을 공격하던데 또 다른 참사를 저는 목도하는 바입니다. 서로들 맘대로 씨부린 뒤에 무슨 재가 남는지 알아 봅시다. 난 이상호가 하는 일은 나의 일이라 봅니다. 어이 자네 좀 있다 보세.”(3월 28일)

이것은 뉴시스의 반윤지오 비난보다도 열흘은 앞서 나타나고 있는, 그리고 그 뉴시스 흐름과는 다른 흐름의 반윤지오 기류이다. 이것은 이상호의 서해순 공격이 잘못된 것인데 이상호의 이미숙 공격 역시 잘못된 것이고 윤지오가 후자의 잘못된 공격의 도구(무기)로 이용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첫 포스팅에서 윤지오는 박훈의 반이상호 전선에서 부차적 위치에 놓여 있는 인물이다. 그로부터 12일이 지난 4월 9일에 박훈은 윤지오에 관한 세 개의 글을 페이스북에 순차적으로 올린다. 4월 7일 윤지오가 민주당 안민석, 정의당 추혜선 등의 초청으로 국회에서 북콘서트를 가진 직후다.

“아놔 진짜! 이상호가 선동한 남편 살해범 서해순을 처단하기 위해 이른바 “김광석 법” 발의에 나타난 안민석, 추혜선이 또 등장했다. 쫌 알고나 했으면 한다마는. 윤지오 배우가 장자연 사건의 진실 독점자인가? 진짜로? 그이가 하는 말은 다 진실인가? 이렇게 막 가겠다는 것인가?”(4월 9일)

전선이 확대된다. 이상호에 안민석, 추혜선이 더해진다. 윤지오는 이제 이상호의 도구이기를 넘어 민주당 안민석, 정의당 추혜선으로 이어진 범진보의 도구로 인식된다. 주요 공격 방향(주공방)은 이상호-안민석-추혜선으로 이어지는 여권 범진보다. 하지만 주요 타격은 그것이 휘두르는 도구인 윤지오를 향한다(주타방). 중요한 것은 위의 짧은 포스팅에서 윤지오에 대한 이후의 타격 방향의 윤곽이 암시된다는 것이다.  이상호에 대해서와는 달리 윤지오에 대한 박훈의 입장설정 방식은 적이 아니라 경쟁자이다. ‘진실 독점자’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독점 비판은 나눠가짐(分有)을 지향한다.  자유경쟁 상태가 독점 비판의 지향점이다. 윤지오가 진실 독점자일 수 없다는 말은 나도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진실을 나눠 갖고 싶다는 것을 시사한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한가? 그것은 윤지오의 말에 거짓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을 들춰내어 진실권을 분유받으려는 전술이다. 방법론은 사회를 향해 “그이[윤지오]가 하는 말은 다 진실인가?”라고 묻는 것인데 이것이 일주일 뒤 4월 16일 김수민의 입을 통해 “윤지오의 말은 100% 진실일까요?”라는 장문 폭로글로 나타났음은 주지의 것이다. 박훈 식의 전쟁적 시각을 이 현상에 적용해 보면 김수민은 박훈의 반-범진보 전쟁의 도구다.

이 날 4월 9일, 주공방과 주타방을 정한 후에 주공방에 한 통, 주타방에 한 통 도합 2통의 편지를 보낸다. 하나는 주공방 타겟인 이상호에게 보내는 편지다.

[이상호에게] 

자네 그만 두게나/ 안타까워 하는 말이라네 / 자비는 없을 것이네/ 그러나 /윤지오 배우는 놔 주게나 / 부탁이네.(4월 9일)

이것은 장자연 사건으로 이미숙, 국정원을 공격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면서 윤지오를 거기에 이용하지 말라는 ‘부탁’이다. 이것은 이미숙이라는 사적 연예인이, 그리고 국정원이라는 공적 기관이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이상호와 세간의 의심과 주장이 허망한 것이라는 강한 비판을 표현한다. 여기까지 윤지오는 어떠한 자율성도 없는 도구 혹은 꼭두각시로 간주된다. 박훈에게서 윤지오 자율성에 대한 부정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나는 이것이 박훈의 노동운동, 정당운동 체험(과 그 실패)이 남긴 부정적인 유산이며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등장한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맹목, 그리고 공론장과 구분되는 공통장에 대한 감수성의 미형성이 가져온 박훈 세계관의 사각(死角)지대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서 박훈이 주타방 대상인 윤지오에게 당일 남긴 편지를 읽어보자.

[윤지오 배우에게 간단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님이 봤다는 이른바 “장자연 문건”은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장자연씨가 유장호와 같이 쓴 것이 14장 짜리 초안하고, 8장짜리 최종본이 있습니다. (8장 짜리 최종본은 내 친구인 김대오 기자가 봅니다. 그리고 이상호와 님이 그걸 까더군요) 

그것 님 말대로 전혀 유서 아닙니다. 제가 알기로는 고 장자연씨가 유장호에게 넘겨준 저 “문건”들은 장례식장에서 다 태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사망 전 일주일 상간으로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님이 도대체 본 것이 무엇인지요? 

혹여 낸시랭 남편이었던 전준주 (왕진진) 사기꾼이 감옥에서 조작한 내용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간단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에 뛰어 들기로 작정했습니다. 실체적 진실을 위해서 말입니다. (4월 9일) 

실체적 진실! 윤지오와 진실을 나눠가지려고 한다는 반독점 투쟁으로 출발한 지 아주 짧은 시간 뒤에 박훈은 “실체적 진실을 위해서”를 기치로 내세우는 데 이것은 윤지오의 진실이 비실체적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포석에 다름 아니다. 박훈의 목적은 바뀌었다. 그것은 윤지오와 진실을 놓고 경쟁하려 하는 데서 더 나아가 윤지오의 진실을 비실체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해체하고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진실독점자의 위치에 놓는 것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윤지오를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는가?

하나는 “장자연 문건”에 대한 임의의, 즉 근거없는 규정을 사용해 자신의 프레임 속으로 상대방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장자연 문건에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초안 14장, 최종본 8장이 그것이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KBS보도자료(4장)만이 눈으로 확인된 문건의 일부이며 나머지는 진술로만 확인되는데 유장호와 윤지오는 4장의 문건, 리스트가 포함된 3장의 편지글이라고 진술한다. (페이스북 포스팅의 순서로 보면) 박훈은 “장자연 문건”에 대한 검토를 이 글 이후에 본격적으로 착수(뛰어듦)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므로 “이 사건에 뛰어들기로 한” 순간의 박훈이 얻은 “문건” 관련 정보는 그의 “친구” 김대오로부터 얻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런 추론일 것이다.

그런데 김대오는 어떤 인물인가? 노컷뉴스 기자였을 당시인 2009년 3월 10일 장자연 문건을 보도할 때 그는 문건이 “12장”이었다고 썼다.(“이 문건의 양은 당초 알려진 A4지 4장에서 훨씬 늘어난 총 12장 분량으로 모두 친필로 썼다.” 노컷뉴스 2009. 3.10) 이 12장 짜리 문건은 위의 초안과 완성본 중 어느 버전에 속하는가? 아니면 또 다른 버전인가? 진술서의 김대오는 노컷뉴스 기자인 김대오와는 또 전혀 딴판인 진술을 한다. 유장호는 김대오에게 장자연의 마지막 문구(“나는 힘없는…벗어나고 싶습니다”)를 사진 찍게 한 것 외에 내용이나 형식 등 일체를 김대오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대오 역시 증인선서 한 후의 진술에서 자신은 위의 글 귀에 “장자연 문건”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해 본 바가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므로 12장 짜리라고 말할 수 있는 ‘언술 권리’가 그에게는 없다. 그리고 2019년 4월말부터 공개적으로 그는 “장자연 문건”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분량의 장수를 말할 수는 없고 4장+알파다라는 식의 모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9년 4월 24일 YTN 이동형과의 인터뷰에서 “실제적으로 저는 이 장 수 부분이 굉장히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만큼은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몇 장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기가 뭐하고”라며 장 수에 대해 언급하기를 회피한 후, “저는 이제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장자연과 관련한 가짜 부분들을 밝히는 데 문건을 본 사람으로서, 만진 사람으로서 그것이 소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에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감별사 역할을 하겠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패를 깠는데 자기 패는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는 이 궤변, 나는 문건의 장 수에 대한 모든 주장들의 초월자이다는 궤변을 “나는 모른다” 이상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식일까? 김대오가 본 문건에 대한 진술은 “본 적이 없다, 12장이다, 4장+알파다, 말할 수 없다” 등인데, 누구보다 증거를 분명히 해야 할 박훈 변호사가 여기에 더하여 “초안은 14장, 최종본은 8장”이라는 주장을 (김대오를 기초로) 내놓는다. 김대오의 이 어떤 일관성도 없는 주장들을 “내 친구”의 말이라는 이유로 믿는 것이 박훈의 변호법인가? 

다음으로 박훈은 장자연 문건과 관련된 일련의 전후 사정을, 그것도 핵심적인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윤지오를 다그친다. “제가 알기로는 고 장자연씨가 유장호에게 넘겨준 저 “문건”들은 장례식장에서 다 태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사망 전 일주일 상간으로 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님이 도대체 본 것이 무엇인지요?”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장자연 장례식은 2009년 3월 7일부터 3월 9일까지 치러진다. 지금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으며 모든 증거와 진술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것은 3월 12일 봉은사에서 문건이 소각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12일에 벌어진 “장자연 문건의 소각이라는 사건”이 7일에서 9일 사이에 열려 있었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다는 것인가? 이런 기적은 모세라고 해도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윤지오는 너무나 분명하게 말한다. 2009년 3월 12일 봉은사에 도착하여 차 안에서 유장호가 건네주는 사본을 읽었고 땅 밑에서 ‘유장호의 경호원’이 파온 원본을 가족들과 함께 보았노라고. 그리고 유장호와 유가족들도 모두 윤지오가 그 문건을 보았고 또 소각에 함께 했음을 진술했다. 이것이 “실체적” 진실이다.

세번째의 질문은 참으로 유치하고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것은 이미 사기범으로 확인된 전주주(왕진진)과 윤지오를 연결시키는 이미지를 통해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술책이다. 그것은 조심스럽지만 간교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나타난다. “혹여 낸시랭 남편이었던 전준주 (왕진진) 사기꾼이 감옥에서 조작한 내용과 혼동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요?” 이 수법은 약 1주일 뒤 김수민의 저 유명한 폭로글에서 ‘윤지오가 훔쳐본 리스트’라는 테마로 다시 재활용될 것이다.

박훈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사건에 뛰어든다고 했지만 그 용감한 돌진은 불행하게도 짙은 안개보다도 더 모호한 김대오의 오락가락에, 그리고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사실(그리고 조금이라도 이 사건에 진지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완벽한 무지와 오판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  돈키호테가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한 이유는 그가 풍차를 괴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박훈이 김대오를 타고 풍차를 향해 달려들 때 그는 윤지오를 무엇으로 보고있었던 것일까? 이제는 다 알고 있듯이, “사기꾼”으로….. 박훈의 저 “실체적 진실”을 향한 돌진에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유장호의 양면성의 비밀:장자연의 죽음 앞에서 유장호는 왜 어쩔 줄 몰라했나?

나는 앞의 글 “장자연 사건에서 리스트 공개 및 윤지오 증언의 중요성에 대해”에서 유장호가 ‘리스트 공개 없는 문건 공개’를 끈질기게 추진한 인물이라고, 그리하여 문건의 존재만이 아니라 (리스트를 제외한) 문건의 내용까지 언론에 공개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유가족으로부터의 제소 위험까지 무릅쓴 유장호의 지략적이고 끈질긴 움직임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정도의 끈질김은 분명한 목적, 구체적 전략, 실질적인 상황통제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끈질김이다. 그런데 유장호가 실제로 그런 능력들을 갖고 있었던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유장호에 대한 여러 사람의 진술조서들은 2019년 3월 7일 장자연이 주검으로 발견된 직후 그가 보여주었던 심리상태와 태도에 대해 상당히 일관되고 통일된 그림을 보여준다. 그가 상황통제력을 보이기는커녕 어쩔 줄 몰라하고, 어쩌면 좋으냐고 묻고, 당황해 하고, 난감해 하고, 힘을 잃고 쓰러져서 스타일리스트 이모 씨와 노컷뉴스 이지현 기자의 부축을 받고, KBS 보도 후에는 급기야 병원에 입원하기에까지 이른다. 스타일리스트 이모 씨의 진술조서에는 유장호의 이러한 심리상태가 특히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윤지오도 <13번째 증언>에서 조문을 거절당한 유장호가 여러 차례 전화를 해서 화를 내고 욕을 퍼부었다고 쓴다. 3월 10일의 유장호는 윤지오에 의해, 자신에게 ‘문서를 공개한 사람이 나[윤지오]라고 하면 안 되겠냐는 이상한 부탁’을 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3월 12일의 유장호는 오후 6시 봉은사에서 보자고 했다가 “아니야, 너 위험해 질라. 그냥 봉은사 앞에서 5시 반에 보자”며 “횡설수설”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3월14일의 유장호는 어떤가? “유장호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연 언니의 심경고백 문건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나는 엄마와 함께 입원실로 갔다. Y[유장호]는 나에게 ‘내가 너무 힘들어, 네가 좀 도와줘’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유장호의 이러한 심리상태는 동료, 후배, 지인 들의 죽음 앞에서 보통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와 확연히 다르다. 또 장자연의 전 매니저로서 장자연의 죽음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상식적 태도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슬픔이나 안타까움이나 미안함이나 분노함과 같은 정동과는 거리가 먼 당황과 난감, 그리고 혼란의 심리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상황 통제력을 잃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장호가 끈질기게 “리스트를 제외한 문건의 언론공개”라는 자신의 목적에 충실했고 그것에 성공한 인물이라는 나의 앞의 글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는가? 상황통제력을 잃은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목적을 일관되고 끈질기게 추진할 수 있는가?

유장호가 그 혼란된 심리상태에도 불구하고 문건내용의 언론공개를 끈질기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끈질김과 일관됨의 힘이 유장호의 바깥에서 주어지고 있었다고 가정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다. 즉 유장호 아닌 “누군가”가 유장호를 하나의 방향으로 통제할 때, 유장호의 심리가 붕괴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를 목적 달성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유장호는 동갑내기 장자연에 대한 인간적 정의(情誼)와 누군가로부터의 실리추구적 통제 사이에 놓여 있었고 그것이 그의 혼란과 심리적 붕괴를 가속시켰다고 나는 추정한다. 그렇다면 유장호를 외부에서 통제하는 그는 누구인가? 어떤 힘인가? 무엇을 위해 유장호를 통제했는가?

강제수사력 있는 특검을 구성해서 꼭 밝혀내야 할 것이 이 문제이다. 이것을 밝혀야만 “사라진 리스트”의 비밀에 한 걸음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이 “애초부터 리스트는 없었다”는 식으로, 10년전의 진술들과 녹취자료들 속에 물질적으로 명확히 새겨져 있는 리스트의 자취를 외면하고 삭제해 버리려는 김대오-박훈의 상황인식의 편리함, 나태함, 그리고 위험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들은 “내가 못본 것[리스트]은 없는 것이다”라는 유아론(唯我論) 위에서, 음모론에 대한 자신의 반대를 “권력의 음모는 없다”는 권력변호론으로 발전시키고, 장자연 사건만이 아니라 김학의 버닝썬 사건에서도 뚜렷이 확인되는 성폭력 권력에 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거짓말”과 “사기”로 몰면서 윤지오을 구속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것은 이들의 내적 심경이나 의식과는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시작되어 이제 꽤 큰 힘으로 결집된 ‘촛불에 대항하는 반혁명’ 흐름의 불쏘시개로 기능한다.

장자연 사건에서 리스트 공개 및 윤지오 증언의 중요성에 대해

2009년 3월 7일에 있었던 장자연의 사망은 3월 9일 단순 변사로 처리되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는 물론이고 ‘장자연 문건’조차 공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후 왜 단순 변사를 넘어 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역사적 사건으로 전환되었을까? 

이것은 전적으로 ‘장자연 문건’의 공개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혼란을 막기 위해 장자연이 남긴 문서가 두 종류임을 분명히 해 두자. 하나는 피해사실을 담은 ‘문건’이고 또 하나는 가족의 안전을 당부하는 편지글 형식 속에 이름들의 목록이 들어 있는 ‘리스트’이다. 전자를 여기서는 ‘문건’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리스트’라고 부르겠다. 

장자연의 죽음 직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정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망처리 방식에 반대하는 하나의 힘이 물밑에서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장호의 움직임이다. 

1. 문건의 대인공개

(1)유장호는 3월 7일 오후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3-4장의 문서를 보여주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문건을 최초로 타인에게 공개한 것이다. 이 대인공개에서 유장호는 리스트는 빼고 문건만 보여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2)스타일리스트 이** 및 노컷뉴스 기자 이지현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가면서 차 속에서 유장호는 혼잣말로 장자연이 남긴 문서가 있다는 말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세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의 문서 존재의 불명확한 공개라고 할 수 있다. 

(3)장례식장에서 사무실로 다시 돌아와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유장호는 다시 그 문서를 보여준다. 이것은 ‘(1)’의 행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반복하는 대인공개이다. 

(4)유장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장자연이 단순히 우울증을 앓아 자살했다고 비쳐지는 것은 억울한 일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린다. 

하지만 이 네 단계의 공개는 아직 불명확한 대인공개에 머물렀으며 사회적 공개라고는 할 수 없고 사회의 주목을 받지도 못한 물밑 공개 차원의 것이었다.   

2. 문건의 언론공개

5)유장호는 3월 8일 밤 다시 스타일리스트 이**를 부르고 노컷뉴스의 김대오 이지현 기자와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문건의 마지막 문구(나는…싶습니다)를 사진찍게 했고 김대오는 이 문구는 유서 분위기도 있으니 이런 정도는 공개하면서 문건의 존재를 알리자고 했다.

6)두 언론사는 3월 10일 동시에 해당 문구의 이미지를 포함한 장자연 문건의 존재를 보도한다. 이것이 최초의 언론공개이다. 

::여기에 특이한 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 두 기자가 자신들이 본 문건의 출처를 모두 유장호가 아닌 것처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가)노컷뉴스 김대오는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서 자신이 입수한 문건이 유장호가 갖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지를 유장호에게 전화로 확인했으나 유장호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고 씀으로써 그 출처가 유장호가 아닌 것처럼 서술한다. 그리고 조선일보 박은주는 아예 유장호와 별도의 ‘장씨 지인 A씨’로부터 문건을 본 것처럼 서술한다. 이 두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문건에 관한 정보의 출처는 유장호가 아닌 것으로 된다. 

나)또 하나는 두 기자가 위의 문구 외에 문건의 장 수, 형식, 간인, 지장, 볼펜글씨, 친필 등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장호, 스타일리스트 이**, 김대오의 진술조서와 배치된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두 언론의 기자는 문건의 장 수나 형식 등에 관해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스타일리스트 이**는 제외)이 입을 맞춰 정보출처에 대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문건의 소지자가 유장호 외에 최소 한 사람이 더 있고 문건도 두 본 이상임을 의미한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서술한다) 

7)첫 번째 언론공개에 이어 3월 13일 KBS가 타다만 문건의 내용을 공개하면서 출처를 유장호 사무실의 쓰레기통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문건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언론공개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리스트는 없는 문건만의 공개이며 그것마저 타다만 문건, 불완전한 문건이었다.

3. 에피소드: 윤지오, 가족, 경호원(국정원 직원) 공개와 문건 및 리스트 소각

8)3월 10일 유장호는 윤지오에게 전화를 걸어 여러 사람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거명하며 윤지오가 그들의 명함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그러면서 ‘목록’(리스트)은 경찰에게 넘겨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유장호가 문건과 리스트 중 문건만 경찰에게 넘길 것임을 시사한다. 이것은 리스트에 대한 불명확하지만 최초의 공개이다.

9)3월 12일 유장호는 경호원(국정원 직원)을 대동하여 봉은사 부근 차 안에서 윤지오에게 문건과 리스트 사본을 보여준다. 이것은 최초의 대인 리스트 공개이다. 그런데 그 경호원의 정체는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조사가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정황으로 보면 경호원은 이미 그 문건과 리스트를 보고 또 숙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인물의 정체와 장자연 사건에서의 역할 문제는 앞으로 규명해야 할 점이다.

10)같은 날 봉은사에서 유장호는 봉은사 땅 밑에 파묻어 두었던 비밀봉지 속의 문건과 리스트를  유가족들에게 보여주고 가족의 결정에 따라 소각한다. 이 때도 유장호는 문건의 언론공개를 강력히 주장한다.

11)이 맥락에서 보면 유장호는 문건의 내용까지 공개하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추구했고 다음날 KBS가 문건 4장의 내용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유가족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그 내용이 공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문건의 존재 공개에서 문건의 내용 공개에 이르는 과정은 지난한 것이었다. 유장호는 합법적 공개에는 실패했지만 기필코 문건의 존재와 그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에 성공한 셈이다.

4. ’리스트’는 어디로?-윤지오 증언의 중요성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리스트는 비공개 상태이다. 

12)리스트는 김대오, 이지현, 박은주 기자에게는 공개되지 않았고 스타일리스트 이**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3)리스트는 유장호가 여러 이름과 윤지오가 소지한 명함을 대조하는 과정에서 처음 시사되었고 ‘목록’이라는 말로 확인되었다(녹취됨). 유장호가 사람 목록의 이러한 대조작업을 한 것은 유장호가 장자연과 윤지오의 행동반경이 유사하다는 것에 착목한 때문일 것이다.

14)봉은사에서 유장호는 윤지오에게 처음으로 리스트를 보여줬고 이후 가족에게 보여준 후 함께 소각했다.

이후 리스트는 공식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도 리스트가 없는 문건 4장의 타다만 사본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윤지오와 유장호가 리스트의 존재를 시사하는 진술이 있었음에도 검경은 이에 주목하지 않고 수사 없이 넘어갔다. 

윤지오의 증언이 중요한 것은 그가 2009년 3월 10일 전화를 통해 유장호로부터 들었던 이름들, 전화 속에서 유장호가 사용한 ‘목록’이라는 말, 그리고 이틀 뒤인 3월 12일 봉은사 부근 차 안에서 문건과 함께 사본으로 봤던 리스트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이고 그 중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리스트 내용의 일부를 증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윤지오 증언을 부정하는 김수민, 김대오, 박훈 네트워크의 등장과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 죽이기는 지금까지 비공개상태로 남아 있었던 ‘리스트’의 존재를 비공개 상태로 묻어두고 그 내용의 공개를 아무리 부분적이라도 부정하려는 필사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누가 그러한 시도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이다.  

5. 김대오, 박은주 기사의 정보출처에 대해

박은주가 쓰고 있는 ‘장씨 지인 A씨’가 누구일까라는 의문 때문에 다시 유장호, 김대오, 스타일리스트 이**의 진술서를 읽어보았다. 진술들을 종합해 보면 김대오 박은주 기자가 정보출처를 유장호가 아닌 다른 사람, 예컨대 ‘장씨 지인 A씨’라고 쓴 것은 유장호가 유족과의 상의 없이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음을 공식화하기 위한 페인트모션(속임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즉 문건의 두 출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장호가 출처임을 감추고 유장호 아닌 다른 출처로부터 문건을 입수했다는 인식을 유족에게 줌으로써 정보원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유장호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1)유장호는 3월 7일 장자연이 사망한 당일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문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물었고, 장례식장에 갔다온 후 똑 같은 질문을 이**에게 반복했다. 이것은 이**의 힘을 빌어 문건을 언론에 공개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2)유장호는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유가족에게 전화해서 문건을 태우겠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는 장자연의 언니에게 유장호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다. 언니가 3월 10일의 보도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는 유장호의 의사를 전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한다.

(3)유장호는 3월 10일 윤지오에게 문건을 ‘윤지오 네가 공개하는 것으로 해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한다. 윤지오는 이것을 거절한다. 여기까지 유장호는 문건의 언론공개(사회적 공개)를 합법적으로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

(4)3월 12일 유가족을 만나 유장호는 경찰에 제출할 것을 주장하지만 가족의 거부로 소각한다.

(5)KBS 보도는 유장호 자신이 문건의 공개주체가 되지 않으면서 문건의 내용을 공개하는 무리한(즉 유가족동의 없는) 방법으로 선택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건이 경찰에 제출되었고 이후 수사과정을 지배하게 되었다.

(6)유장호는 보도가 나간 후 병원에 입원하는데 이 때에도 스타일리스트 이**에게 “내가 한[보도자료 제출한] 것 아닌 것을 너도 알잖니.”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내가 문건의 내용 공개의 책임자가 아님을 가족(장자연의 언니)에게 좀 이야기해줘!”라는 말로 새겨서 읽어야 맥락에 맞는다.

6. 결론

유장호는 자신이 언론공개 주체로 되지 않으면서 어떤 형태로든 문건(리스트는 아니다)을 공개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문건의 존재를 공개하는 데에는 노컷뉴스와 조선일보 기자들을 이용해서 성공했다. 하지만 문건의 내용을 공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것이 봉은사에서의 소각이다. 즉 자신이 내용 공개의 책임자로 되지 않으면서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이고 순리적인 방식으로 문건 내용을 공개하는 데에 실패한 것이다. 그 실패를 보충하여 문건 내용을 무리한 방식으로 공개한 것이 (유가족 동의 없이 이루어진) KBS의 보도였다. 물론 리스트는 제외하고서다. 이 사실은, 유장호 측이 원한 것은 ‘리스트 공개 없는 문건 공개’였음을 보여준다. 이후의 사법적 과정은 이것을 공식화해 왔으며 문건 내용에 드러나 있는 가해 책임자조차도 불철저하게 처리하는 방식으로 ‘리스트 없는 문건 내용’에 대한 사법적 진리를 만들어 왔다. 이것은 리스트에 대한 권력의 봉인이 그간 성공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촛불혁명과 미투운동의 힘으로 과거사조사위원회와 진상조사단이 출범하고 이 혁명적 흐름에 윤지오가 결합하면서 이 힘이 지금까지 안전했던 리스트 봉인을 아래로부터 뒤흔든다. 그것은 이 봉인을 파열시키는 지진과 같은 것이었다. 촛불혁명을 진원지로 하는 이 지진을 막지 못하면 리스트가 드러날 위험에 처한다. 가해자들에게 그 악몽은 “장자연 사건의 재수사”로 나타날 것이었다. 2019년 4월 7일 윤지오가 국회의원들의 초청으로 국회에서 북콘서트를 연 것을 기점으로 가해자들의 반격이 본격화되었다. 뉴시스가 윤지오 증언의 허구성을 주장한 것이 그 신호탄이다. 그 반격은 오늘까지 한 달 이상을 이어져 오고 있다. 이것이 현재의 장자연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정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갈등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강제수사권을 갖는 특검이 리스트의 존재와 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철저한 재수사에 나서는 것이다. 긴 역사적 시야에서는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단정할 수는 결코 없겠지만 지금이 진실을 규명할 절호의 기회이고 가해자의 처벌과 제도개혁에 이를 수 있는 유의미한 기회로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네 가지 법정과 ‘김대오는 어디로?’

김대오는 2019년 4월 자신이 장자연 문건을 보았다고 주장하면서 그 문건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세간의 평가를 얻었고 그 평판권력으로 윤지오 배를 거짓말쟁이로 단죄하는 데 앞장서 왔다. 그런데 그는 2009년 12월 장자연 관련 사건 증인신문 과정에서 장자연 문건을 본적도 그 내용을 들은 적도 없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그는 문건을 안 본 사람이면서 동시에 본 사람이다. 이것은 둘 중 하나는 거짓말임을 의미한다. 나는 ‘김대오의 거짓말’(http://amelano.net/?p=373)에서 이 모순에 대해 다뤘다. 그리고 정의연대는 이러한 사실에 기초하여 김대오를 위증죄로 제소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이 흥미롭다. 그 반응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타났는데 하나는 산수를 통해 공소시효 7년이 지난 것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이 벙어리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우화를 올린 것이다. 이것이 만약 자신의 거짓말에 대한 응답이라면, 자신은 어느 것이 거짓인가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 것(진술거부)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특별한 수사권을 가진 특검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공소시효가 없는 법정들

그런데 법정은 공소시효를 갖는 사법의 법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법의 법정은 시민상태가 유지되고 있을 때 법정이 취하는 지배적 형태일 뿐이다. 사법의 법정 외에 공소시효가 없는 다른 법정들이 최소한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민의 법정이다. 역사의 격변기에는 항상 인민의 법정이 출현하곤 한다. 그것은 사법의 법정과는 달리 대개는 가차 없고 냉혹한 법정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누적된 모순들, 불의들, 거짓들, 착취들, 기만들로 혼탁해져 있는 낡은 사회상태를 쓸어버리는 태풍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인민의 법정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 식의 질문은 태풍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바람직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논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질문이다. 태풍은 바람직하게 생각하건 그렇지 않게 생각하건 상관없이 불어닥치며 가차없이 쓸어버린다. 분명한 것은 태풍이 지난 후의 바다는 깨끗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민의 법정은 자연상태와 가깝다.

또 하나는 평판의 법정이다. 이것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공통장의 법정이다. 서로 다른 각자들, 각체들은 쉼없이 평가하면서 관계맺고 단절한다. 평판은 그 자체가 개개인들에 대한 중단 없는 법정이다. 평판의 법정에는 인민의 법정에서처럼 공소시효가 없다. 그 법정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리면서 우리를 상주고 또 벌한다. 

마지막으로 양심의 법정이 있다. 사법의 법정, 인민의 법정, 평판의 법정은 모두 타자들이 나를 향해 내리는 심판임에 반해 양심은 나 자신이 나에게 내리는 심판이다. 양심의 법정도 공소시효를 갖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의 내 행동과 말이 양심의 심판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나의 행동에 대한 내 양심의 법정의 처벌방식이 자책, 후회, 악몽 같은 것들이다. 이 법정이 선순환적으로 가동되지 않을 때에 누적된 문제들이 정신적 질환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대오 기자는 무엇을 통해 문건의 형식과 분량을 알아냈나?

김대오 진술의 모순은 이미 2009년 당시에 발견되었던 것이다. 유장호는 장자연의 끝 글귀 외에는 문건을 김대오에게 보여준 적도, 그 내용에 대해 말해준 적도 없다고 진술했고 이것은 문건을 본 적도 그 내용에 관해 들은 적도 없다는 김대오의 진술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런데 2009년 3월  10일 김대오, 이지현 기자 명의로 나간 노컷뉴스 장자연 사건 최초보도는 1)그 문건의 양이 A4 12장이며 2)모두 친필이고 3)간인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며 그 친필 문건의 내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가 아니라 “현재 함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여 그 내용을 알고 있다는 듯이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기사 내용은 문건에 대해 마지막 글귀 외에는 알지 못한다는 김대오 자신 및 유장호의 진술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 문건의 양이 A4 4장 더하기 3장 총 7장이라는 유장호 및 윤지오의 진술과 어긋난다. 그래서 변호인1이 “김대오가 문서의 형식, 그 문서에 다른 연예인에 관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썼을까요?”라는 물음에 대한 유장호의 답 “그것은 피고인도 잘 모르겠습니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체 문건을 본 적이 없는 김대오가 노컷뉴스에 어떻게 문건의 장 수가 12장이고 간인이 찍혀 있고 친필로 되어 있다는 등의 사실을 ‘알고’ 보도할 수 있었을까? 그는 어디에서 그러한 정보를 얻었을까? 유장호 외에 문건을 접할 수 있었던 다른 경로가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누구였을까?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만난 장씨 지인 A씨는 누구인가?

같은 날 장자연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의 보도는 유장호로부터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와 함께 문건의 마지막 글귀의 사진만을 찍어왔다는 김대오의 진술이 거짓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 기사에서 박은주 기자는 유장호가 아니라 장씨의 지인 A씨를 만나 문건을 본 것으로 쓰고 있다. 여기서 박 기자는 문건이 최소 두 개가 있음을 밝힌다. (1)”(3월) 9일 새벽에 만난 장[자연]씨의 지인 A씨는 고 장자연씨가 남긴 장문의 문건 중 일부를 갖고 나왔다. 그는 체념에 빠진 표정이었다.” (2)”장씨의 고민상담을 해줬던 다른 기획사 대표 유모씨도 장씨의 심경에 담긴 문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1)의 장씨의 지인 A는 분명히 (2)의 유장호가 아니다. 박은주 기자도 “저는 나약하고…싶습니다”가 포함된 글귀 외에 그 문건이 “볼펜으로 눌러쓴 A4용지 여러장”이었다는 것과 그 “여러 장에는 페이지마다 지장이 찍혀 있었다”고 보도한다. 그리고 박기자는 A씨가 “연예인이 된 후 얽힌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통이 소상히 기술되어 있지만 원치 않게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다 보여줄 순 없다”고 말했다고 썼다.

이 기사들과 기자는 제대로 수사되었는가?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가 만난 A씨는 수사되었는가? 문건은 왜 A씨와 유장호 두 사람이 동시에 갖고 있었는가? 노컷뉴스 기사와 조선일보 기사는 이 사건이 단순 변사가 아님을 알린 첫 기사들이다. 그리고 두 언론사의 기자들은 문건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당사자들이다. 유장호와 A씨의 관계가 무엇인지, 이들이 그 문건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이들이 문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기자들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왜 국정원 직원으로 알려진 이른바 ‘유장호의 경호원’은 봉은사와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 참석했고 문건을 꺼내오고 불을 끄는 등의 적극적 행위자로 움직였는지 … 이 모든 것들(특히 김대오와 박은주)에 대한 조사에서부터 특검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Ahrum405 님의 재응답 가운데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발췌하여 응답합니다.

R1: 장자연 사건에서 문서 작성 경위와, 문서를 중심으로 수사를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윤지오가 봤다는 리스트가 조작된 것이거나,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부분은 장자연 사건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윤지오는 본인이 리스트를 봤기 때문에 거대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고, 그래서 경호가 필요하며, 그걸 명분으로 후원 계좌를 열었고, 세금으로 경호를 받았습니다.(이건 윤지오가 본 리스트가 장자연 리스트가 확실할때만 허용이 가능한 문제입니다.) 

A1: 그렇지 않습니다. 윤지오 님은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소환을 받아 조사에 응한 것이고 국가가 소환한 증인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호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그 증인이 생명을 잃는다거나 상해를 당했을 때는 국가가 책임을 지고 배보상해야 합니다. 이것은 소환된 증인이 진실을 말하는가 거짓을 말하는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경호는 국가의 이 공적 활동범주에 속합니다. 그것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대의기관인 국가기관에 소명과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개개의 증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개별 증인에게 개인들이 직접 책임을 묻는 것은 현행의 대의제 원칙에 어긋나는 파쇼적 행동입니다. (후원계좌 개설은 후원 당시 후원자-피후원자의 신의와 약정의 문제, 즉 사적 계약에 해당하므로 국가의 공적 책임과는 전혀 무관한 범주입니다.)

R2: 개인 라이브 방송에서 후원받은 것으로 개인용도(엄마 병원비, 본인 쇼핑)로 사용하는게 뭐가 문제냐, 후원금 관련 내역 공개하라는 건 연봉을 공개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건 아시나요? (이건 윤지오가 본 리스트가 장자연 리스트가 맞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안이구요.)

A2: 라이브방송 후원금에 대해서는 누구도 공개를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적 문제에 속하며 그 방송주체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탈세 소지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근거가 있을 때 그 의심자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세청에 신고하여 세무조사(즉 탈세여부 조사)를 요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물론 여기에는 무고죄의 위험이 따릅니다.) 그 외 표현의 자유 영역을 넘어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일부의 행동들은 역시 파쇼적인 인신공격이며 사생활 침해이고 현행의 대의제 체제를 위반하는 행동들입니다.

R3: 윤지오가 봤다는 리스트는 장자연씨 글씨체가 아니거나,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것만 검증된 사안입니다. 필적감정이 됐다는 KBS에 보도된 그 문건이 윤지오가 봤다는 그 문건인지에 대한 연결 고리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즉 윤지오가 본 리스트가 장자연씨가 쓴 리스트라는 걸 명확하게 설명해줄 근거가 없는 거죠. 윤지오가 본 리스트 = 장자연 리스트, 이 연결고리가 저는 안보이는데 이부분에 대해서 저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 ?)

A3: 현재 여러 문건들 중 어떤 것이 진본인지에 대해서는 수사 부실로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 여러 문건들이 필체의 상이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유사하다는 점은 복수의 증언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연결고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문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 얼마나 작성되었는지 현재 그 진본(들?)이 숨겨져 있지는 않은지, 거기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등은 아직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며 반드시 강제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문제입니다. 개개의 국민들은 강제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밝힐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위임을 받은 국가가 특검을 구성하여 님께서 제기한 문제들 모두를 말끔히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R4:왜 윤지오가 (정체불명의)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유일한 증언자가 되어야 합니까? 

A4: 장자연 리스트가 정체불명으로 남아 있는 것은 국민의 수임기관인 검경의 수사부실에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의 청원을 받아들여 진상조사가 진행된 만큼 그 조사에 엄정을 기하고 조사로 부족한 부분을 수사를 통해 보충하여 이번에는 명백히 장자연의 죽음의 원인을 비롯하여 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그런 억울한 죽음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문재인 정부도 그 책임을 나눠 갖게 될 것입니다. 윤지오 님은 지금까지 몇 차례나 자신은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고 유일한 증언자라고 말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 앞에 쓴 어떤 글에서 내가 논한 바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필체’는 목격의 문제에 속하지만 ‘증언’은 그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윤지오는 자신이 본 바를 증언할 뿐입니다. 윤지오가 본 것의 내용이 장자연의 죽음과 어떤 형태로든 연관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의 증거는 이미 확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건의 필체를 비롯하여 문건들과 관련된 여러 쟁점과 의혹, 무엇보다도 장자연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데 책임이 있을 것으로 의심되고 있는 인물들 등에 대해서는 재수사를 통해 수사기관이 철저히 밝혀야 할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 참여하는) 특검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R5: 위약금 1억 관련하여, [윤지오의 인터뷰는 후일담을 늘어놓는 한가한 토크쇼가 아니라 성폭력 권력에 대항하여 그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실천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1억을 강조하는게 타당하다구요? 저는 본인이 내고 나온 위약금에 대한 의도적 은폐로 보이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조정환님 말씀처럼 고도의 정치적 실천 행동이라면 본인이 실질적으로 내고 나온 소액의 위약금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듯한 행동이 정당화 되는건지?

A5: <<13번째 증언>>에서 윤지오 님은 자신이 낸 합의금에 대해 있는 그대로 서술했습니다. 즉 그가 사실을 은폐한 바 없으며 상황적 필요에 따라(책인가 인터뷰인가, 누구 앞에서 말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발언을 삶정치적으로 조직하는 것입니다. 사실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나열하는 것이 잘된 인터뷰가 아닙니다. R5의 물음들은 시각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시각 차이는 자신이 처한 혹은 취하는 계급적 입장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인터뷰들에서 계약금 1억원에 대해 강조하는 윤지오 님의 진술을 보고 나서 가장 부당하다고 느낄 사람이 누구일까요? 나는 김종승 사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곱게 봐주고 낮은 위약금 물고 나갈 수 있게 해주었더니 그건 언급 안 해?’라고 느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1억 ‘위약금’을 600만원 ‘합의금’으로 낮춰준 것이 자신의 관대함이고 그것에 대한 인정이 없는 발언은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은 사장[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감각방식이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북콘서트 링크 3시 13분 해당부분 바로 뒤에 이어지는 윤지오의 진술이 있습니다. “더 이상 연기활동은 안 하겠다고 말해야 했고 반성문도 써야 했습니다.” 현금 합의금은 600만원이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쩌면 9400만원이 훨씬 넘을 채무를 약속하고 계약에서 풀려났던 것이 윤지오입니다. 이것이 연예노동자 윤지오가 겪은 경험입니다. 위약금이 1억이 아니었다면 반성문을 쓴다거나 자신의 노동능력(연기능력)을 박탈하는 이런 약속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것은 연예노동자 일반을 옭아매고 있는 노예사슬입니다. 연예인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서로 연대하여 이러한 계약관행을 깨뜨리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하며 국가는 연예계의 부당계약 실태를 조사하여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 국민은 이 과정을 감시하여 사회적 공정성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2, 제3의 장자연이 나오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일 것입니다.

필체 문제와 위약금 문제에 관한 ahrum405 님의 추가 반응에 응답합니다.

R1: 아래 영상들 직접 보시고 피드백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qDFcwuC1nk&feature=youtu.be#t=1h40m08s
이상호 기자 방송입니다. 1시간 40분 8초부터 보시면 본인이 봤을때고 언니 글씨체가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2xpZ-wg0zE#t=6m10s
김현정 뉴스쇼 위약금 1억 발언입니다. 6분 10초경부터 확인 부탁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rJS-ffuNnE#t=3h13m20s
본인 북콘서트 발언 후 위약금 1억 발업입니다.

A1. 북콘서트 동영상은 해당 시분이 명시되지 않고 너무 길어서 확인하지 못했고 두 동영상만 확인했습니다. 이상호 기자와의 인터뷰 방송에서 윤지오씨는 자기가 보기에도 장자연 글씨체가 아닌 것으로 보였지만 말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9, 2010년의 진술이나 <13번째 증언>에서보다 자신의 생각을 좀더 자유롭게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필체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불변이고 그 문건의 작성경위가 마땅히 조사되었어야 하는데 조사되지 않았다는 이상호 기자의 평가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뒷부분에 이상호 기자는 KBS 문건도 사설감정기관의 경우 몇 글자가 유장호 글씨체와 오히려 유사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군요. 귀담아 들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는 장자연이 자의반타의반으로, 또 장자연 혼자만이 아니라 장자연을 포함한 복수의 사람들이 함께 작성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두어지고 있고 또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 버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에 자필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장자연 리스트의 부재를 입증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추정을 넘어 재수사를 통해 철저히 그 진상이 밝혀져야 할 문제들로 남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수사의 이 불철저함이야말로 갖는 방식으로 진실을 가려온 가해권력의 자취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것은 국민으로부터 수임받아 42명 이상의 수사요원이 배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수사기관의 직무유기이며 거대한 국고낭비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금 온 국민이 본의 아니게 다른 일을 제치고 진술서를 읽고 맥락을 살피고 사람들을 의심하고…. 등등의 수사요원의 삶을 살아야 하도록 강요되고 있습니다.

R2: 위약금 1억 발언 관련해서 추가 문의 드리겠습니다. 1. 왜 윤지오는 언론인터뷰에서는 본인이 위약금을 300또는 600만원만 내고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서류상의 1억만 강조했을까요?(마치 본인은 1억을 내고 나온듯한 인상만 남기죠) 2. 장자연에 대한 대표의 위약금 제시액이 300 > 700 > 1200 으로 계속 바뀌었다면 변동은 있었다고 해도 1억과는 상당히 차이가 큰 작은 금액인데, 왜 그 얘기는 생략하고 방송에서는 장자연이 위약금 1억이 없어서 못나온 것처럼 이야기 했을까요?이런 언행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도 답변 부탁드립니다.

A2: 위약금 부분은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면 장자연-윤지오와 소속사의 계약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김현정 인터뷰에서 윤지오씨의 응답은 1, 2차 자료와 일관됩니다. (이전 포스팅의 액수를 자료들을 확인해서 표현대로 바로잡았습니다.) 1억원의 위약금을 강조하는 것은 계약서그대로일 뿐만 아니라 접대강요 등 노예적 노동을 받아들이게 하는 실질적 힘이기 때문에, 실제로 장자연이나 윤지오 모두 1억 계약금 때문에 계약해지를 입밖에 꺼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합의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봅니다. 연예계 계약관행의 개혁을 위해서도 위약금이 1억원이라는 사실이 반드시 강조되어야지 몇 백만원에 계약해지하고 나올 수 있었다는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계기를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볼 때 맞지 않습니다. 윤지오의 인터뷰는 후일담을 늘어놓는 한가한 토크쇼가 아니라 성폭력 권력에 대항하여 그것을 개혁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실천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윤지오씨는 김종승에게서 거의 보수를 받지 못하였고 계약 기간 내내 단 한차례의 출연 기회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즉 받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합의금에 해약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사후적으로 깨닫습니다. 또 더 이상 연예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연예지망생에게는) 살인이나 다름 없는 약속까지 해야 했습니다. 장자연의 경우는 윤지오의 경우와 다르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또 윤지오도 1억원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저 몇 백만원의 위약금이 없어서 엄마가 대납해 주어 겨우 해약할 수 있었습니다. 고 장자연 님의 경우는 아시다시피 부모님이 돌아가신 상태였고 얼마가 될 지도 모를 그 위약금을 대납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연예계의 노예적 계약관행과 소속사 사장의 횡포, 그것에 기생하는 권력자들의 야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권력체제에 대한 의심이 인간 윤지오에 대한 의심보다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간 윤지오에 대해 의심하는 그 만큼 바로 우리 자신이 제대로 사고하고 제대로 행동하고 있는지 의심해보는 자세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료와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제 이야기를 백번 듣든 것보다 윤지오의 <<13번째 증언>>을 한 번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며 대부분의 의문이 풀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의 글 “윤지오가 ‘영리하게’ 해 보려고 했던 것”에 대한 ahrum405님의 반응 중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두 가지에 대해 답변드립니다.

R1: 윤지오가 한 방송에서 그 문서는 “언니 글씨체가 아니었다”고 한건 아시나요? 고 장자연씨 글씨체가 아닌데, 그게 왜 장자연 리스트인지….?윤지오는 본인 입으로 본인이 본 문서는 “언니 글씨체가 아니었다.” 말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다른사람 개입 없이 윤지오가 나오는 영상만 몇개 찾아봐도 모순은 아주 많습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A1: 1)이 사건을 파악하시려면 먼저 한국일보에서 인터넷에 올려둔 1차 자료인 관련자 진술조서 일부(‘장자연 사건진술조서 전문공개: 누가 그녀를 죽였나’) 에서 ‘소속사 배우 지망생 윤모씨의 진술’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2차 자료로는 윤지오가 대중 앞에 책임을 지고 내놓은 사건 전체에 대한 총괄적 증언인 <<13번째 증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두 자료를 근간으로 삼지 않은 윤지오 증언에 대한 모든 생각과 논의는 공회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방송이나 인터뷰는 3차 자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2)위 1, 2 차 자료에서 윤지오는 어디에서도 본인이 본 문서는 “언니 글씨체가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내 동생(장자연) 글씨체가 아니야’라고 울면서 말한 것은 (장자연의) 친언니였다고 윤지오는 말합니다. 유장호는 ‘그럼 필체 감정을 위해 경찰에 이 문건을 제출하자’고 친언니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언니, 오빠가 포함된 유가족의 결정에 따라 윤지오가 본 문건들은 사본, 원본 모두 소각되었습니다. 즉 봉은사에서 소각한 그 문건의 필체가 누구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KBS에서 보도된 4장 짜리 사본 문건은 필적감정 결과 장자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1, 2차 자료 확인하시고 님께서 확인한 동영상과 확실히 의미 있는 차이가 나면 그 동영상 정보의 해당 시/분 정보와 함께 제게 알려 주십시요. 능력껏 응답드리겠습니다.

R2: 책과 진술서에는 위약금 600만원 내고 소속사 나왔다고 해놓고, 김현정 프로에서는 위약금이 1억이었다고 하면서 자기가 자금력이 있었으면, 언니를 꺼내올 수 있었을꺼라며 눈물 흘리던데,,,,이런건 어떻게 보시는지???

A2: 역시 위의 1, 2차 자료에는 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들이 모두 자세하게 들어 있습니다. 윤지오와 장자연 공히 김종승과의 계약서에 위약금은 1억원으로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위약금은 쌍방간 합의에 의해 결정할 수 있게 계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1억원은 최대 위약금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윤지오는 “계약금 300, 지원한 학원비 300, 총 600만원의 합의금”(<<13번째 증언>>88쪽)을 물고 계약해지했습니다. 김종승이 장자연에게는 매번 다르고 더 비싼 위약금(300>700>1200만원)을 요구했다는 진술도 위 1차 자료 어딘가(윤지오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진술: 기억에는 장자연 스타일리스트 이** 혹은 친한 언니 이**의 진술)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당시 윤지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장이 1억원 내에서 부르는 것이 값(위약금)이었던 셈입니다.

인물평가에 관한 구절은 가치관의 차이이니 이 자리에서 굳이 제가 응답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제 글을 따라 읽으시면 저절로 밝혀질 문제이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