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순수주의의 위험성에 대하여

이른바 ‘<지상의 빛> 후원금 집단반환 소송’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

2019년 6월 6일자 대한민국의 신문들은 윤지오가 창립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 후원금에 대한 집단반환 소송 준비 뉴스로 요란한다. <중앙일보>의 기자(?) 백희연은 아예, ’윤지오에 등돌린 후원자들, 결정타는 거짓증언.작품표절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윤지오의 후원자들이 모두 윤지오에게 등을 돌린 것처럼, 또 윤지오의 증언이 거짓인 것처럼 제목을 뽑아놓았다. 

미디어 이데올로기

알뛰세르는 이데올로기를 인간과 그 자신의 존재조건에 대한 체험된 관계들의 표상이라고 했는데, 인간과 존재조건 사이에 미디어들이 깊숙히 개입하여 우리들의 체험을 매개한다. 체험이 미디어에 의해 매개되면서 우리가 존재조건을 직접 맛보고 체험할 여지를 뺏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미디어가 질러대는 거대한 소리에 눌려 우리 마음의 고유한 진동을 느끼고 들을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갖지 못한다. 잡음이 고요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히 물어 본다. 사람들이 왜 지금 자신이 낸 후원금을 돌려달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을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후원의 목적 자체가 거짓이라는 폭력

후원자들의 법률대리인인 변호사 최나리는 윤지오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이유가 ‘윤지오가 말한 후원의 목적 자체가 거짓’이며 ‘후원자들을 기망해서 후원금을 모은 것’이라고 말한다. 주관적 단정만 있을 뿐 소송 사유를 보도한 동아일보에도 윤지오가 설정한 목적이 어떤 근거에서 거짓이라고 단정하는지 그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최누리 변호사는 이제 증언자 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설립이라는 목적이 왜 거짓인지를 입증해야 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처럼 증언자 보호장치가 미흡한 나라에서는, 어려움 속에서 증언을 한 증언자가 자신의 체험에 기초하여 증언자 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를 설립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또 소중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목적이 거짓임을 과연 입증할 수 있을까? 적어도 2개월여 이 사건을 지켜보고 연구해온 나로서는 변호사 최나리의 주장이 인간 윤지오에 대한 가차없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후원자는 채권자가 아니다

만약 후원받는 목적이 거짓으로 입증되지 않는 한, 다른 이유로 이미 낸 후원금을 돌려받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후원금은 후원을 받는 쪽이 일정한 채무를 부담하는 부담부 증여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지오는 지금까지 후원받은 돈을 1원도 쓰지 않았고 <지상의 빛>이 정상화되면 그 목적에 맞게 그 후원금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후원자는 채권자가 아니다.

윤지오의 진실성에 대한 모호한 의심은 ‘윤지오 죽이기’의 집단적 생산물

그런데 이처럼 승소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 소송에 왜 370명이 넘는 후원자들이 참가하게 되었을까? 참가의 조건을 살펴보면 변호사 최나리가 무료 소송을 진행해 준다는 김수민 측의 홍보가 작용한 때문이겠지만 참가의 원인은 윤지오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인 것으로 보인다. 

후원자 김모씨는 채널A와 인터뷰에서 “모금 진행 중 윤씨의 말이 조금씩 번복되는 모습을 봤고 진실성에 의심을 갖게 됐다”라며 “모금된 후원금이 얼마인지, 어디에 썼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세계일보, 2019.6.6; 강조는 인용자)

윤지오의 말이 어디에서 어디로 번복되었다는 것일까? <지상의 빛> 설립목적이 변경되었다는 것인가? 윤지오의 말에 따르면, 후원금은 아직 1원도 쓰지 않았다고 하므로 어디에 썼는지는 이미 밝힌 것이며 모금된 후원금은 투명하게 밝히겠다고 했으므로 그 단체가 자리를 잡고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 후 필요할 때 문제를 제기해도 늦지 않은 것 아닐까? 후원자들의 후원금이 목적에 맞게 사용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은 윤지오의 진실하지 못함이라기보다 윤지오를 뒤흔들어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목적을 실행할 사업을 할 수 없도록 밤낮으로 공격하는 무리들 때문이지 않은가?

우리들은 때로는 친구, 애인, 자녀, 부인, 남편 등의 진실성조차 의심하는 경우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심이 이 관계를 깨뜨리는 것으로 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것은 대개 진실 대 허위의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킴으로써 풀어야 할 실천적 문제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윤지오의 진실성에 의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 추상적인 말이다. 그것은 윤지오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다. 그 의심이 막연한 것은 그것이 사실근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마녀사냥 선동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적생산물이기 때문이다.  

후원금 반환소송의 정치재판적 성격

만약 위와 같은 의미의 추상적이고 막연한 진실성이 후원금 반환소송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면 후원금을 받는 모든 단체는 항상 소송에 휘말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이고 이런 상시적 불신의 조건에서라면 후원행위는 사회적으로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장자연 사건에 대한 윤지오의 증언/진술의 진실성이 문제라면 나는 적어도 윤지오의 증언이 신빙성 없도록 만든 주도자였던 김대오의 진술보다는 윤지오의 진술이 훨씬 더 신빙성이 있다고 증거를 갖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후원금 집단반환소송이 어떤 실효적(즉 돈을 돌려받기 위한) 사법행위라기보다는 수 개월간 지속된 ‘윤지오 죽이기’의 일환으로서 윤지오의 이미지를 회복불가능할 만큼 훼손시키기 위한 정치재판으로 준비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 장자연에 대한 가해자들의 경우 윤지오의 향후 있을 수 있는 증언투쟁을예방하기 위해 이런 소송이 필요할 것이며 윤지오에 대한 가해자들에게는 윤지오에 의한 사법투쟁을미연에저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소송이 이런 소송일 것이다. 이 소송이 후원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준비된 것이 아니라 비후원자인 김수민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촉구되고 홍보된 일종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송이라는 점도 이런 판단을 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순수주의의 환상과 그 위험성

이 소송 준비를 지켜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순수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싶다. 

증언자는 어떤 보호장치도 없이 희생을 무릅쓰고 목숨을 내 걸면서 할 때에만 그 증언이 진실한 것인가? 

증언자가 개인으로건 단체로서건 후원을 받는 행동을 하면 그의 증언은 진실성을 잃는 것인가? 

증언자가 놀고자 하는 욕망, 성적 욕망, 사치와 쾌락에 대한 추구를 갖지 않을 때에만, 즉 성자(聖子)이고 성녀(聖女)일 때에만 그의 증언이 진실한 것인가? 

증언자는 증언 이외의 것에서도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일체 거짓을 말하지 않을 때에만 그의 증언은 진실된 것인가? 

증언자의 삶은 모든 부면에서 일관되고 통일되어 있어야 하며 어떤 부분에 카메라를 갖다 대도 모두가 아름답게 보일 때에만 그의 증언은 진실한 것인가? 

요컨대 증언자는 순교자일 때에만, 혹은 인간이 아닌 일 때에만 그의 증언이 진실한 것인가?

우리가 증언자에게 강한 순수성을 요구하면 할수록 증언자는 보호받을 수 없고 상처입기 쉽고 위험해지게 되는 것이지 않은가? 우리가 증언자에게 기대하는 순수주의의환상이 우리의 삶을 개혁하는 데 꼭 필요한 증언행동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결국 범죄자들을 보호하도록 만들지 않는가? 늘 순수주의는 다중을 무력하게 만드는 지배자들의 무기였다.  “윤지오의 말이 100% 진실일까요?”라는 김수민의 최초 폭로글의 제목이 바로 순수주의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구호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정말 “김수민의 말이 100% 진실일까요?”라는 방식으로 물어도 되는 것일까?

홍가혜의 투쟁과 윤지오의 투쟁

2014년 9월 10일 ‘똘레랑’이라는 필자가 쓴 한 칼럼이 있다. 제목은 ‘내가 김용호의 정체를 공개한 이유’. 김용호는 윤지오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장본인이며 “가로세로연구소”라고 불리는 유트브방송의 단골 출연자이다. 5년이 다 된 지금 똘레랑의 그 칼럼을 다시 한 번 읽어보는 것은 분명히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이 글이 윤지오에 대한 작금의 음해에 기시감(데자뷔)을 줄 뿐만 아니라 역사의 중요한 특징들 중의 하나가 반복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글에 쓰인 홍가혜라는 이름 대신에 윤지오라는 이름을 넣고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그런데 역사의 또 다른 특징은 누적이다. 2014년과 달리 2019년에는 김용호라는 이름에 더하여 김대오, 김수민, 박훈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이 글의 김용호 대신 ‘김용호와 김김박 트리오’라는 이름을 넣고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칼럼] 내가김용호의정체를공개한이유

“엇! 김용호가 세계일보에 왜 있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트위터에서 홍가혜에 대한 마녀사냥을 보고 있던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김용호는 자신을 연예전문기자라고 소개하며 “홍가혜는 드라마 ‘리플리’의 이다혜[해]의 삶과 비슷한 여성”이라며 “과거에도홍가혜는기자에게정체가들통난후눈물을흘리며 “다시는거짓말을하지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김용호의 말은 마녀를찾아서배회하던사냥꾼들에게먹잇감을안겨줬다. 김용호의거짓말이 트위터와 스포츠월드를 통해 확산되면서 구조 작업이 더뎌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홍가혜에 대한 분노로 바꿔 쏟아내는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해줬다. 홍가혜가 허언증이나연극성인격장애라는마녀사냥의불길을 키웠다. 무엇보다 김용호는 실종자가족들에게지푸라기같은도움이라고되고싶어한간절한마음에씻을수없는상처를 안겼다.

김용호는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나는 10년전 안재욱 사건 때 그의 정체를 확실히 알았다. 당시 변희재가 발행하는 브레이크뉴스에서 일하던 김용호는 인터뷰하기 힘든 안재욱에 대해 거론하며, 그가 목격하였다는 안재욱의 오만함에 대해 논했다. 거기에 더해 김용호는 저널리스트 행세를 하며 안재욱의 키에 대한 분노의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또한 그는 수준미달의 안티기사를 배설해내는 유명 연예인들의 기피대상으로 연예인 팬클럽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제프다니엘스가 주연한 드라마 ‘뉴스룸’을 기억하는가? 김용호의 삶은 이 드라마에 나오는 가십전문기자와 비슷하다. 드라마 속 가십전문기자처럼 김용호도기사가아닌소설을쓴다. 저널리스트 코스프레를 하던 김용호는자신의성공을위해서계속해서거짓말을했고다른사람의인생을모함했다.

김용호의 삶을 이렇게 자세하게 적는 이유는 지금도 그의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지면에 실린 김용호의 거짓말은 진실처럼 느껴진다. 또 내가 김용호의 실체를 공개한 것에 대해서도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둥 음모론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김용호는 또 어떤 거짓말로 자신을 변호할지 모른다. 김용호는홍가혜의법정에서검찰측증인으로출석하여, 자신의거짓말이들통난후, 홍가혜의정체를폭로한다면서올린트윗들이대부분 ‘이름을밝힐수없는누군가의한두마디에서나온말들의짜깁기였음’을시인했다. 눈물을흘리며용서를구했다던홍가혜는김용호와일면식도없었다. 그런데 밖에 나와서는 또 천연덕스럽게 입을 다물더라.

과거 김용호의 거짓말에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타격을 입은 연예인들이 한둘이었나?  이를 용서해줬더니 지금 김용호의거짓말은더커져서 이젠 자원봉사를 하려는 일반인까지 흔들고 있다. 법원은 변희재의 김광진의원 모욕사건에서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력을 가진 기자들의 명예훼손에 대해 엄벌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김용호는자신이얼마나큰일을저질렀는지알고나있을까.(http://19dominic74.blogspot.com/2014/09/blog-post_10.html)

이로부터 5개월여 전이며 세월호 침몰 사흘 뒤이고 홍가혜의 MBN 인터뷰가 있었던 바로 당일인 2014년 4월 18일, 이제는 악명높은 <조선일보>는 신속하게 ‘김용호 기자가 밝힌 홍가혜 “日술집 출신에 10억대 사기까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는다. 이 기사는 (저작권 침해로 공격할 수 있으니 전문이 아니라) 일부만 인용하기로 하자.

18일 오전 MBN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관계자가 (민간잠수부)에게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 등의 발언으로 홍가혜가 화제를 모은 가운데, 연예부기자인김용호기자가입을열었다. 김용호 기자는 해당 인터뷰가 전파를 탄 후 오전 10시 20분 쯤 자신의 트위터에 “MBN이홍가혜한테낚였구나!”라는 글을 남기며 MBN의 오보를 암시했다. 이어 4시 40분쯤 스포츠월드에 “내가홍가혜의정체를공개한이유”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게재했다. (…) 김용호는 홍가혜가 과거 일본아카사카에있었다고 말하며, 홍가혜가성공을위해서계속해서거짓말을일삼고있다고전했다. 김용호는 이 같은 홍가혜의 과거를 그녀를수사한형사에게들었다고 출처를 밝히며, 홍가혜가 10억 대 사기혐의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 네티즌은 “김용호 기자… 전적이화려하네”, “홍가혜세월호침몰인터뷰듣고희망을가졌는데김용호칼럼보니허탈하네요 ”, “(…) 홍가혜정체가이거라니” 등의 반응을 보였다.(http://m.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4041802541#Redyho)

이처럼 조선일보가 추켜세우는 김용호는 형사와 선이 닿아 있고 댓글들은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김용호의 거짓말을 기정사실로 만든다.  이런 식의 기사를 약 열흘에 걸쳐 27건 게재함으로써 조선일보는 세월호 침몰에 대한 해경 및 박근혜 정권의 구조태만에 대한 홍가혜의 증언을 범죄로 조작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 때문에 홍가혜는 무려 20일간의 독방생활을 포함한 3개월의 구속생활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이것이 행정권력-사법권력-언론권력-기레기들-댓글부대의 위계적 네트워크 행동이 ‘주권자’ 국민을 사냥하는 방법이다. 정치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이들이 도덕적으로 악해서라기보다 행정, 사법, 입법, 언론 등 국가권력의 4 부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의 머슴과 시녀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체제적 조건 때문이다. 자본이 이들에게 사냥만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 체제는 절대적으로 노동에 의존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 체제가 어떨 때는 이들 권력기관들로 하여금 노동하는 국민들에게 착한 모습을 보이길(‘인간의 얼굴’을 하길) 요구하는 때도 있다. 이런 역사적 조건은 대개는 국민들이 체제와 권력에 대항하는 강력한 저항, 분노의 봉기에 나섰을 때 조성된다. 이럴 때 권력기관들은 복지를 시혜적으로 베푼다거나 국민이 나라의 진짜 주인이라고 말한다거나 하는 식의 아양을 떨기도 한다.

기레기들과 댓글부대를 활용해서 국가권력이 수행하는 국민에 대한 이러한 사냥질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동이며 국민을 자본의 노동노예로 만드는 폭력행동이다. 홍가혜의 경우, 그것은 국가가 바다에 침몰한 국민의 생명을 방기하여 죽게 만들더라도 국민은 이에 항의해서는 안 된다는 흉포한 메시지로 나타났다. 홍가혜가 이 순간에 무엇을 느꼈을까?

“너무 씁쓸했어요. 그런데 처음이 아니잖아요. 제가 언론의 외면을 받는 일이. 사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 인터뷰를 하고 나서도 바른말을해주는언론, 없었거든요. 시민사회도없었거든요. 그 많은 여성단체며 시민 언론단체며 많잖아요. 대한민국에. (그런데) 하나 없었어요. 성명 하나, 그 쉬운 성명 하나 내주는 곳이 없었는데 그런 언론과 시민단체의 외면을 받는 일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그냥 ‘아, 너희들 그냥 하던 대로 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씁쓸한 거죠.”(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995)

 홍가혜는 사법권력-경찰-조선일보-김용호-댓글부대가 만들어낸 이 불법적 폭력에 항의해 단신으로 5년여에 걸친 투쟁을 벌였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 29일 4년 7개월, 1687일만에 홍가혜에 대한 무죄를 확정 선고했다. 이에 대해 홍가혜의 공익변론을 맡았던 양홍석은 “법리상 국가기관인 해양경찰청장은 명예훼손 대상이 될 수 없고, 당시 팽목항에서 벌어진 국가의 구조실패, 구조방기, 구조방해에 대해 국민의 입장에서 비판한 것을 ‘허위’라고 규정한 것은 형사사법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전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733)

홍가혜는 대법원 판결 직후 “모두를 위한 진짜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며 김용호를 고소했고 1심 재판부는 김용호에게 1000만원의 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 김용호는 형사고소 당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2019년 1월 24일 조선일보가 홍가혜에게 ‘6000만원을 배상’하고 이 금액에 대해 ‘ 2014년 4월 24일부터 2019년 1월 24일까지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5%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외의 여러 언론들도 손해배상을 판정받거나 홍가혜에 대한 사과문을 게시해야 했다. 물론 조선일보는 2019년 2월 8일 항소했다. 하지만 홍가혜는 이에 맞서 국민에게 호소하며 “여기까진 혼자 달려왔으나 이젠 함께 하는 겁니다”라며 ‘조선일보 파산펀딩’을 개시했다. 

“여러분들이 마음 보태 주신 금액만큼 항소심에서 증액을 요청할 것이고, 1심 판결금 이상 항소심에서 판결 날 경우(변호인들과 약정한 승소금 50%를 뺀) 나머지 금액은 모두 조선일보 파산을 위한 공익적 활동에 쓰여 집니다. 물론 항소심에서 조선일보가 파산 당할 만큼 판결이 난다면 그 공익 활동은 필요 없어지겠지요.”(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6995)

국민을 개돼지나 종으로 아는 반국민적 권력들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작인 셈이다. 전쟁이나 혁명도 그렇지만, 정의의 싸움도 조직이나 집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개개인들이 삶 속에서 겪는 작은 경험들에서, 그 경험들에 대한 자신 나름의 고유하고 특이한 느낌에서, 자신만의 그 특이한 느낌을 평균 속에 묻어버리지 않고 살려나가는 집요함에서, 작은 불의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선처 없는 처벌에서 시작된다. 작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큰 불의를 꺾을 수 있다. 조직이나 집단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일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과 집단은 기존의 조직들을 승계하여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개개인의 그 고유하고 특이한 느낌, 생각, 판단을 유통하여 이끌어낸 공감을 기초로 해서 늘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장자연의 절규와 항의를 이어받은 윤지오의 증언투쟁과 방어투쟁, 그리고 (다양한 수준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투쟁은 하나의 투쟁의 다른 장들이다. 이 투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려운 만큼 드물겠지만, 드문 만큼 고귀한 것이다.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5/끝): 교수와 ‘교레기’

이제 핵심적 거짓말들에 대해 살펴 보았으니 서민이 던져놓은 부스레기 거짓말들에 대해 속도감 있게 살펴보자. 서민은 타격을 위한 표적 설정을 위해 “과거사위에 기대를 한 결정적 이유는 두 달여 동안 매스컴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윤지오의 존재였다.”고 말한다. 이번 과거사위가 ‘혹시~’하는 기대를 주었던 것은 윤지오 때문이라기보다 스스로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수십만 국민의 청원을 받아 꾸려진 조사위원회였기 때문이다. 서민은 윤지오가 “장씨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자처했”다고 주장하지만 윤지오는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사람들 중에 아무도 증언자로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을 안타까와 하면서 이미숙, 송선미 등 연예계의 선배들에게 증언자로 제발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서민은 윤지오가 기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막말을 해댔”다고 하지만 윤지오는 주권자로서 ‘기레기’들의 가짜뉴스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을 뿐이다. 서민은 “실제 조사를 담당한 대검 조사단이 윤씨의 입에 목을 매다시피”했다고 하지만 조사단은 진상규명을 위해 윤지오 외에 적어도 83명을 조사했다. 서민의 거짓말은 도를 넘는다.

서민은 “윤지오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고 말하면서 인텔리들이 좋아하는 ‘아는 것 자랑’과 증언을 혼동한다. 증언은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경험을 말하는 데 특별히 알 것이 필요한가? 이 뒤죽박죽의 사고법 속에서 서민은 아무 근거도 없이 “윤씨는 자신의 주장과 달리 고인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쓴다. 그렇다면 유장호가 장자연의 유가족과 만나면서 왜 윤지오를 불렀겠는가? 윤지오가 장자연과 찍은 다정한 사진은 뭔가? 장자연과 윤지오가 김종승의 명령에 따라 수 십 차례 접대노동에 불려나간 강제노동의 동행자였다는 점은 알고 있기나 한가? 서민은 다음과 같은 범죄적 주장을 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윤지오가 “‘16번이나 증언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증언 횟수가 많은 것은 그녀의 진술이 수시로 번복되는 등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지오의 증언이 많았던 것은 경찰, 검찰, 판사, 조사위원 등 그로부터 진술을 받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외에 그의 진술이 흐트러질 때까지 고문형 진술(밤늦게 불러 밤샘 조사하기)을 반복시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민은 “장씨의 유족 등 고인이 남긴 문건을 본 다른 사람들은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했지만 장씨의 오빠나 유장호 모두 초기 진술에서는 리스트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사람들이다. 서민은 윤지오가 재수사 불발에 대해 “너무나 참담하다. 정말 이게 우리가 원한 진정한 대한민국이냐”고 했다면서, “이런 걸 전문용어로 적반하장이라 한다.”고 가르친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의 상식적 속담에 불과한 ‘적반하장’을 “전문용어”라고 주장하는 지력도 좀 그렇다 싶지만,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데 자신의 컬럼 지면을 이용해서 재수사를 불발시킨 장본인들 중의 한 사람이 도리어 윤지오에게 그 책임을 지우려 하는 것이 정확히 ‘적반하장’이다. 

윤지오는 반복된 증언에도 가해자들이 처벌되기는커녕 법 위에서 유유히 노닐면서 동일한 폭력행위를  되풀이 하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랬기 때문에 과거사조사위원회에서 증언 요구를 했을 때에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기한을 연장하며 조사했지만 그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구준표와 이름이 같았던 이름이 특이한 그 정치인은 조사단에서 전화를 했지만 ‘조사 받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한다. ‘언니 사건은 종결 자체가 불가능하고 … 서로 헐뜯기에 딱 좋은 먹잇감이고.’라는 말이 윤지오가 한 말이 맞다면 긴 조사가 끝난 지금 그 말이 얼마나 이 사건을 둘러싼 세력관계를 정확하게 통찰한 것인지 이제 알 수 있다. 장자연 사건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서민 같은 류의 사람들이 윤지오나 김영희, 김제동, 김어준, 손석희 같은 사람들을 헐뜯기에 여념이 없으니 말이다.

서민은 윤지오에게 사기꾼 이미지를 씌우기 위해 한 문장을 가정법 형태로 조작해 낸다. “그런데도 윤씨가 자신이 사건을 해결할 것처럼 굴었다면”이 그것이다. 앞에서는 “막말을 해대는”이라고 쓰더니 여기서는 “것처럼 굴었다면”이라고 쓴다. 누가 기생충 학자 서민에게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세속 표현으로는 ‘꼰대형’) “막말”을 할 권리를 준 것일까? 하여튼 이 말이 성립하려면 윤지오가 그렇게 “굴었”던 적이 있는지 서민 자신이 입증해야 할 것이다. 서민은 윤지오가 “이 기회를 틈타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추측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윤지오는 자비를 들여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창립했고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교훈에 따라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 이상의 의심을 마음 속에서 꺼내 경향신문 같은 언론에 쏟아놓을 때 그것이 “공연히”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독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서민은 모르는 것일까? 

서민은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이런 위험은 망각한 채 자신의 상상의 적들을 공격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이제 표적은 윤지오에서 윤지오의 말을 보도한 언론을 향한다. 서민은 말한다. “문제는 윤씨에 대한 언론들의 태도였다.” 이 ‘진지한’ 비판자가 주장하는 요점은 윤지오가 ‘위험을 과장해 과도한 경호를 요청하는 바람’에 “여경 5명이 한 달 가까이 윤씨 옆에서 심부름을 해야 했고, 그것도 부족해 사람들은 경호비에 보태라며 윤씨가 공개한 후원계좌에 아낌없이 돈을 보냈다.”고 아까움과 부당함과 억울함을 토로하면서 윤지오의 주장을 “검증도 없이 내보”낸 JTBC를 탓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서민은 윤지오가 처했던 실제 상황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린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실제로 윤씨를 위협한 사람은 그녀 아버지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고. 

정말 그랬을까? ‘윤지오가 좌파정권에 이용되고 있다’고 본 아버지가 윤지오가 증언에 나서는 것을 저지하면서 3월 8일에 윤지오를 폭행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서민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 윤지오가 가장 큰 위협으로 느낀 것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자증을 가진 이른바 ‘기레기들’이었다. 한국에서 기레기형 기자들은, 조선일보 사례가 보여주듯이, 경찰청장을 협박하여 수사 외압을 넣고 자신들의 사주(社主)를 방어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꾸려 가짜 혐의자를 내세우고 자정에 자진 출두하여 거짓진술을 하는 등 진실보도보다 성폭력 권력을 호위하는 호위무사로 기능하거나 정치권력이나 기업권력의 끄나풀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윤지오가 경험한 기자의 공포스런 형상이었다. 그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윤지오는 “저는 다른 것보다 기자들이 무서워요”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예컨대 그는, 머니투데이가 자신의 주소를 알아내 꽃다발을 보냈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그는 MBN이 자신의 숙소를 알아내 문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후 불안해 하는 엄마와 함께 캐나다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럴진대 자신의 행동에 관한 일거수일투족을 의심의 눈, 경찰의 눈으로 바라보고 ‘막말해댄다’, ‘해결사처럼 군다’ 식의 “막말”을 거침 없이 윤지오에게 쏟아내는 이가, 대학교수인들, 윤지오에게 어떻게 느껴질까? 두려움을 주는 ‘교레기’라고 느껴지지 않을까?

하지만 서민이 쓰듯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을 때, 이에 대해 사과하는 일이다.” 하지만 윤지오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모는 데 앞장섰던 언론들과 변호사, 기자, 작가, 교수 중 “누구도 여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사고구조의 내밀한 비밀을 알고 싶어 서민이 추천한 “윤씨와 SBS 박원경 기자의 전화통화 영상”을 보았다. 윤지오가, 서민이 ‘참기자’라고 말하는, SBS 박원경의 마녀사냥식 질문(‘인터뷰가 아니라 [논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한다’)을 논박하는 장면(‘당신이 경찰이예요?’)이었다. 서민에게서 증언자에 대한 마녀사냥은 팩트체크로 인식되고 마녀사냥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반박은 ’거짓말 하는 이’의 ‘어떤 반응’의 패턴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4월 26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고 장자연 사건 문건 미스터리: 누가 그녀를 이용했나?”가 방영된 직후인 4월 28일에 김대오는 당일 장자연 육성을 내보낸 SBS를 비난하는 포즈로 이렇게 쓴다: “SBS에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장자연 문건에 분명 언급된 SBS 고위 간부출신 해당 당사자에 대해선 설명이 전혀 없네 ㅋㅋㅋㅋㅋㅋㅋ”. 왜 조선일보만 비판하고 자기비판은 없느냐는 항의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SBS의 ‘기자’가 놓여 있는 미묘한 위치에 대한 암시를 엿볼 수 있다. ‘참기자’가 되기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나는 김대오가 장자연과 관련하여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중요한 암시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서민이 ‘참교수’가 되길 원한다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장자연 사건으로 인해 ’기레기’라고 평가하게 된 ‘기자’ 김대오의 이 암시에서 “꼭” 교훈을 얻길 “바란다”.

새빨간 거짓말로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4): 마녀사냥으로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려 재수사를 포기하도록 만든 자들이 재수사 포기의 책임을 윤지오에게 씌운다

과거사진상조사단과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재수사 권고를 하지 않는 이유로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 문제에 대해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들의 수중에는 10년 전의 진술조서들이 있고 각종의 증거자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진술조서를 읽은 사람들은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에 대해 결코 의심할 수가 없다. 2019년의 윤지오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10년 전에 했던 진술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사위원인 김영희, 조기영이 공개적으로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과 그 진술가치가 논란과는 무관하게 유지된다고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마녀사냥 결과로서 형성된) 부정적 여론을 배후로 삼아 촛불국민의 집단지성이나 여망은 물론이고 진상조사단의 조사보고와도 상치되는 심의결과를 발표하는 행동을 했다. 장자연의 타살 가능성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을 묵살하고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윤지오의 변호인단을 포함한 정의연대는 그 정치인이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특이’하게 같은 이름을 가진 홍준표라고 밝혔다)에 대한 진술도 왜곡(착오로 자진철회했다고 뭉갬)하거나 묵살했다. (1)’맥주 한 잔 마시지 않은 자연 언니의 눈이 풀려 있었다’고 본 바(경험)를 진술하면서 (2)’몰래 마약을 탄 술을 마시고 성폭행 당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진술에 대해 오직 후자인 (2)만을 들어 이중 추정이므로 진술가치가 없다고 가치절하할 뿐 경험에 대한 진술(1)은 묵살했다. (앞서 말했듯이) 유장호, 정세호의 진술, 그리고 김종승의 말이 윤지오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증언자의 진술을 묵살, 왜곡, 평가절하하면서도 국민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한 달 여에 걸쳐 박훈, 김대오, 김수민, 김용호, 가로세로연구소, shoot TV, Justicewithus 및 그 독개미부대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적 여론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을 떨어뜨려야 할 현실적 필요를 가진 가해세력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통제하는 마녀사냥꾼들의 선동에 10년 전의 진술조서를 읽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이 휘둘린 것의 결과였다.

서민의 글은 이 격렬한 선동공작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어보면 우리는 그것이 ‘엄청난 공부’는커녕 윤지오의 10년 전 진술조서조차 읽지 않았거나 읽었더라도 모른 체하며 윤지오에 대해 언론(그것도 ‘경향신문’)에 칼럼을 쓰는 엉터리 글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음 구절은 이 점을 또렷이 보여준다.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는 윤씨의 진술도 마찬가지다. 10년전에조사를받을땐이에대해전혀언급하지않아놓고선, 자신이 쓴 책 <13번째 증언>에선 리스트를 언급하며 총 40~50명이 있다고 했다가, JTBC에서는 30명이라고 슬그머니 줄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       

또 새빨간 거짓말이다. 윤지오는 10여년 전인 2009년 3월 15일 진술에서 자신이 본 문건의 마지막에 “지인분들과 가족분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고 말했다. 또 2009년 3월 18일 조서에서는 자신이 본 문서가 7장이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2009년 3월 15일 진술서


2009년 3월 18일 진술서


이렇게 증거를 들이밀어도 서민은 여기에 리스트에 대한 증언은 없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윤지오의 기억 속에서 7장 속에는 리스트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리스트에 대한 별도의 진술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윤지오가 감춘 것이 아니다. 이 날까지의 심문에서 어떤 수사요원도 윤지오에게 그 7장의 문서의 구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우리가 구분하는 ‘사례 증언조서’와 ‘리스트 증언조사’를 구분하여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 1년 뒤인 2010년 6월 25일 증인신문조서에서 판사가 윤지오에게 비로소 묻는다. “증인은 문서의 내용에 대해서 기억이 나는가요?” 아래 인용에 그 질문에 대한 윤지오의 대답이 들어 있다.

2010년 6월 25일 조서


이렇게 자료들이, 윤지오가 10년 전부터 문건이 7장임과 그 속에 “성함만 기재되어 있는” 페이지가 있었다고 진술했음을 명확하게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팩트’를 기초로 ’엄청난 공부’에 ‘통찰력’을 결합시킨 놀라운 인물로 추켜세워진 서민은 신문에 쓴 자신 명의의 칼럼에서 “10년전에조사를받을땐이에대해전혀언급하지않아놓고”라는 거짓말을 어떤 주저도 없이 늘어놓는다. 이런 거짓말이 윤지오의 2019년 증언의 신빙성을 얼마나 크게 떨어뜨렸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런 거짓말 뒤에 서민은 “자신이 쓴 책 <13번째 증언>에선 리스트를 언급하며 총 40~50명이 있다고 했다가, JTBC에서는 30명이라고 슬그머니 줄이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라고 쓴다. 

악의적이다. 윤지오는 사례 증언조서 4장과 리스트 증언조서 3장이 있었다는 진술을 10년 동안 일관되게 해 오고 있다. 리스트 분량에 대해서는 1장, 1장 반, 4~50명, 30명 등의 방식으로 편차가 있는 진술을 해 오고 있다. 그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의 명수에 편차가 있다 하더라도 꽤 많은, 적어도 수십명은 되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적여 있었다고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일관되다. 증언에서 진술 일관성이란 디테일의 일관성보다는 큰 흐름의 일관성을 의미한다. 윤지오의 진술은 큰 흐름에서 완전히 일관되다. 그것은 세부기억에서의 편차보다도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갖는 일관성이다. 

이에 반해 윤지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김대오의 진술은 완전히 비(非)일관되다. 10년전의 진술에서는 “문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최근에는 “문건을 본 적이 있다”고 완전히 상반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큰 흐름의 일관성’과는 정면 배치된다. 물론 김대오는 문건의 장수도 계속 카멜레온처럼 다르게 말하고 있다. ‘12장이었다’, ‘초안 14장과 완성본 8장’이었다, ‘하여튼 4장+알파다’, ‘정확한 장수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나는 감별사 역할만 맡겠다’ 등등. 나는 김대오가 이후에 ‘장자연이 남긴 문건은 실은 일천 이백장이었다’고 말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셈이다. 서민에게 묻고 싶다. 이런 김대오의 증언은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지어내 윤지오의 일관된 진술을 일관되지 않은 것처럼 만드냐고. 이런 수법들은 재수사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가해자들의 욕망에 동조하면서 그들과 그 체제를 보호하는 변론-테크놀로지에 다름 없지 않느냐고. 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려 재조사를 포기하도록 만들고서 거꾸로 그 책임을 윤지오에게 떠넘기고 있는가라고.

살인 혐의 수사는 왜 고려조차 되지 않았는가?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3): 재수사 포기 책임을 윤지오에게 돌리는 ‘적반하장’

그래도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성폭행 관련해서는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다면 재수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의 보존 

❍ 성폭행 피해 의혹에 관해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다만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제기된 의혹 상 범죄혐의가 중대하며,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성폭행 의혹과 관련하여 최대한 상정 가능한 공소시효 완성일인 2024. 6. 29.까지 이 사건 기록 및 조사단 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함

물론 그 조치는 박근혜의 전매특허인 유체이탈 화법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전염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 있는 화법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검찰이야말로 재수사를 통해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를 발견할 주체이고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으므로 강제수사권을 동원하여 그 스스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실행했어야 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남 이야기하듯이 문제를 다룬다.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식이다. 누가 증거를 갖다주면 재수사하되 스스로 증거를 확보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한 것이다. 가해자들이 빙긋 웃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2024. 6. 29.까지 이 사건 기록 및 조사단 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했지만, 지금까지 핵심자료들을 어딘가로 빼돌려도 아무런 처벌이 없었듯이 이 기록들이라고 해서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서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성폭행과는 다른 두 번째 문제이다. 그것은 공소시효 15년의 성폭행이 아니라 공소시효 25년의 살인에 관한 것이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이 주검으로 발견되고 이틀 뒤인 3월 9일 경찰은 장자연의 죽음을 우울증에 의한 단순변사로 발표했고 언론은 이것을 받아썼다. 3월 10일 문건의 존재가 보도되고 3월 13일 문건의 내용 일부(사례 증언조서)가 방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것을 유서로 발표하고 언론은 이것을 받아썼다. 이런 여론형성 메커니즘을 통해 우울증-유서-자살이라는 삼각형이 만들어져 장자연의 죽음을 설명하는 지배적 프레임으로 유통되었다.

그런데 시신은 부검되지 않았고 자살을 입증할 어떤 증거도 없다. 게다가 그 문건이 유서가 아님도 이제 명료하게 밝혀졌다. 지금에도 과연 장자연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없다. 게다가 장자연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너무나 많은 폭력들(폭언, 폭행은 물론이고 원치 않는 술접대가 강요되었고 심지어 성폭행에 대한 진술까지 있다)이 그의 삶 위에 행사되었던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게다가 그 폭력의 행사 주체는 소속사 사장만이 아니다. 장자연에게 “니가 그렇게 비싸”?라고 문자를 보낸 것으로 진술되어(방정오, http://bit.ly/2Z6e1iL) 장자연의 죽음에 관련해 가장 구체적인 혐의를 받고 있는 조선일보는 스스로를 “정권을 창출할 수도 정권을 퇴출시킬 수도 있”는 권력으로 자임했다. 정권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라면 개개의 생명을 창출하고 생명을 퇴출시키는 일인들 왜 못하겠는가? 

이 외에도 장자연 위에 이런 권력자들은 여럿 있었다. 당시 대검차장검사이고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조인 권재진이라거나 ‘김밥값’으로 수표 1000만원을 장자연 계좌로 입금한 하이트 진로 회장 박문덕, 그리고 35차례나 연락과 만남을 가졌던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같은 기업가들이 그들이다. 게다가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를 태우는 현장과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 등에는 ‘국정원 직원’이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그림자처럼 출몰한다. 장자연은 이 ‘힘센 사람들’의 ‘큰 입’ 앞에서 억눌린 삶을 살았다. 요컨대 그의 삶은 폭력과 권력에 포위되어 있었다.

3월 7일 장자연이 사망한 날, 장자연은 김지훈 부부와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장자연은 사망하기 한 시간 전에 김지훈에게 ‘집에서 쉬겠다. 다음에 같이 가자. 피곤해서 못가겠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그것이 마지막 문자였다. 3월 7일은 장자연이 “다른 소속사에 가기 위해 맹렬히 움직이고 있었고 원소속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에 기뻐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주진우 기자는 “3월 7일 오후에 장자연 시신이 발견됐다. 그런데 그날 저녁 경찰에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며 부검은 없다’고 발표했다”며 “가족들이나 주변인들이 부검을 막아달라고 하는 경우는 있으나 논란이 되는 죽음은 보통 부검을 하게 돼 있다. 초동수사는 아예 없었고 유가족이 원하지 않는 한 부검은 없다고 발표했다”(http://bit.ly/2JPEoWt)고 말한다. 우울증 외에 자살의 동기가 발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검하지 않을 의사를 경찰이 나서서 발표하고 자살 판단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루어진 점, 그리고 경찰 자신도 유서라고 보지 않은 문건을 유서처럼 처리한 점 등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또 장자연의 마지막 문자를 받았고 장자연 사후 그 죽음의 진실을 캐던 김지훈마저도 정다빈, 유니, 최진실에 이어 2013년 12월 12일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 때문에 윤지오는 ‘왜 나의 언지 장자연이 죽었는가?’를 밝혀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이 아는 바의 그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증언했다. 하지만 ‘국정원 직원’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장자연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과거사조사위뿐만 아니라 과거사진상조사단조차도 외면했다. 즉 문제로 다루지조차 않았다. 실체가 있는 리스트 증언조서는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처럼 만들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윤지오의 증언은 묻혔다. 사건과 그에 대한 증언은 ‘이번에는 혹시’라는 윤지오의 기대와는 달리, 십 수차례 이어진 증언에 대한 이전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역시 ’흐지부지’되고 있다. 기록은 살인 혐의 공소시효인 2035년까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은 기한, 즉 2024년까지만 보존하도록 권고되었다. 증언에 대한 묵살, 이것이 재수사를 권고하지 않는 또 하나의 방법이었다. 서민은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이것조차 윤지오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성폭행 재수사는 왜 포기되었는가?


기생충 학자 서민의 종합거짓말세트(2): 재수사 포기 책임을 윤지오에게 돌리는 ‘적반하장’

‘실체’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를 미확인의 소문으로 만들면서 서민이 자신의 글 ‘기자와 기레기’에서 주장하고 싶어한 것은 ‘윤지오 때문에 재수사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이런 수법으로 그는 일차적으로 자신이 마치 재수사를 바라고 있었던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든다. 이것은 ‘윤지오 죽이기'(여기에는 4월 30일 서민의 글 ‘충격 예언, 제2의 윤지오가 나온다‘도 한 몫을 한다.)가 윤지오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려 가해자를 보호하는 전술이라는 비판을 뭉개면서 가해자를 보호한 것은 오히려 윤지오라는 책임 넘기기 수법이다. 윤지오에 대한 인신공격이 2차 가해였다면 서민의 이 주장은 정확히 3차 가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서민의 이런 주장을 떠받치고 있는 받침돌들은 지금까지 박훈, 김대오, 김수민, 그리고 이른바 ‘기레기’들에 의해 유포되어 여론화되고 있는 무수한 거짓말들이고 서민이 이것들을 한 꾸러미의 거짓말종합세트로 엮어짜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 방식으로 다루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재수사 길이 왜 막히게 되었는가에 관한 나의 생각을 먼저 제시하고 그 뒤에 서민의 글로 다시 돌아오기로 하겠다.

2009년 발생한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공소시효가 사라진 사건은 수사할 수 없으므로 재수사의 가능성은 두 가지 점에서 주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공소시효가 15년인 성폭행(특수강간, 강간치상)이고 또 하나는 공소시효가 25년인 살인이다. 

먼저 성폭행 문제를 다루어 보자. 이 문제와 관련해 윤지오는 과거사진상조사단, 고발뉴스, 다스뵈이다 등에서 수행한 증언에서 장자연이 성폭행 당했을 가능성에 대해 진술했다. 그리고 이것은 진상조사단의 비공개심문에서, 유장호가, 장자연이 성폭행당했다는 구절을 문건에 썼지만 자신이 지우게 했다고 말한 것(이후 번복)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드라마 감독 정세호도 2011년 8월 1일자 사실확인서에서 이미숙이 전화로 “장자연이 쓴 A4 용지에 ‘술에 약을 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고 2019년 진상조사단에서도 동일한 내용을 진술했다. 윤지오 외에 유장호, 장세호 등 적어도 세 사람이 성폭행에 대한 기록, 전언, 경험적 추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에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발표문 중 해당 구절을 인용해 보자.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의혹 

❍ 조사단의 조사과정에서 장자연이 일시, 장소를 알 수 없는 술접대 자리에서 누군가가 몰래 약을 탄 맥주를 반 컵가량 마신 후 마치 마약에 취하거나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음 

– 장자연이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 자료는, 

① 장자연이 술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가 된 것을 목격했다는 윤○○의 조사단 진술 

②‘장자연이 처음에 작성한 문서에 심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내가 지우라고 했다’는 유○○의 조사단 면담 전 진술. 그러나 유○○는 그 후 조사단과의 면담에서는 이러한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장자연이 하소연하듯이 처음에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기는 하였는데, 장자연에게 되묻지도 않았고, 장자연이‘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고 진술하였음 

③ 드라마 감독 정○○가 작성한 2011. 8. 1.자 사실확인서(김종승의 배우 이△△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김종승 측 증거로 제출된 것)에 배우 이△△이 전화로 “장자연이 쓴 A4 용지에 ‘술에 약을 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기재된 부분 및 이△△으로부터“물에 약을 탔다고 들었다”는 정○○의 조사단 진술이 있음

여기까지가 진상조사단의 보고서 중에서 성폭행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 내용을 간추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그것을 부정하는 내용에 대한 서술이다. 역시 그대로 인용해 보자.

-그러나 배우 이△△은 정○○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고, 매니저 등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여부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하였으며, 유족은 문건에 성폭행 피해에 관하여 적힌 것이 없었다고 진술하였음 

❍ 유○○의 최초 진술 및 정○○, 윤○○의 진술을 종합하면, 장자연이 성폭행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객관적 혐의가 확인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음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수사라는 것이 바로 “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일시, 장소, 방법 등을” 밝혀내고 그것을 국민과 법원에게 알려주는 행위이지 않은가? 수사를 개시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수사를 할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체포하여 재판하고 처벌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처럼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논리로 수사 개시를 회피하는 것 외에, 그 회피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성폭행 혐의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법도 사용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디스패치>(https://www.dispatch.co.kr/2012097)에 의하면 정세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장자연의 문건 내용을 이야기하며 김종승을 만나 ‘야단쳐 달라’고 말한 사람은 이미숙이다. 그는 장자연 ‘자살원조’ 혹은 ‘자살방조’ 혐의가 있는 것으로 분당경찰서에 의해 수사보고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분당경찰서는 2009년에 “연예인 장자연의 … 자살원인에 연예인 이미숙, 송선미, 서세원이 관련되었다는 정황이 있어 다음과 같이 수사보고 합니다”라고 쓴 바 있다(<디스패치> 같은 호). 그리고 유장호는 당시 경제력(“신용불량”)이나 경험(“연예기획계통에 경험이 일천한 자”)에 비추어 호야의 실제 사장이 아니라 이미숙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장자연은 이들의 요구에 의해 사례 증언조서(문건)와 리스트 증언조서(리스트)를 작성하게 되었음이 거의 분명하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정황상 그 진술가치가 훨씬 더 높은 정세호, 윤지오의 진술이나 유장호의 비공개면담 진술이 아니라 일선 수사기관에 의해 자살원조 또는 방조의 혐의를 받았던, 즉 그 진술가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미숙의 부인(否認) 혹은 그의 대리인 유장호의 번복을 근거로 수사 개시를 포기한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심의결과에서는 정세호의 진술내용이 윤지오의 경험적 추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게다가 장자연의 소속사 더콘텐츠의 대표이자 마약과 성추행으로 수배되었던 김종승이 장자연의 지인언니에게 “내가 니 동생(장자연)하고 약했다”(장자연의 지인 이00의 진술조서)고 말한 대목은 근거로 인용조차 되지 않는다. 수사 개시를 포기하는 이유를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미숙이 정세호에게 한 말을 부인하고 유장호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했다는 데에서 찾는다. 이들이야말로 재수사가 이루어진다면 가장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사람들, 그러므로 재수사를 포기시키는데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재수사 개시로 수사를 해야 할 사람들의 말을 근거로 수사 개시를 회피한 것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과거사조사위원회(검찰)가 이미숙(과 그 배후)을 두려워했거나 아니면 검찰 자신이 재수사를 두려워했다는 것 말고 다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가?

이처럼 공소시효 15년의 성폭행 관련 재수사가 포기된 이유는 윤지오에게 있었던 것이 결코 아니다. 윤지오, 정세호, 유장호(비공개면담진술)가 재수사의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했지만, 이미숙이 정세호에게 한 말을 부인하고 유장호가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함으로써, 그리고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단의 다수의견을 무시하고 검찰측 소수의견을 심의근거로 인용함으로써 재수사 권고는 폭력적으로 포기되었다.

그런데 서민은 이런 사실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들은 성폭행 의혹 부분을 수사에 못 넘기게 하려고 정말 총력전을 했다. … 조직적 차원에서 반대가 있지 않았나 느꼈다.”는 총괄단장 김영희의 말을 인용한 후 “어이가 없다”고 비난한다.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마당에 무슨 외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대통령 말을 듣는 조직이라면 지금 정권에서 청와대가 ‘공수처가 필요하니 설치해 달라’고 왜 국회에 신신당부를 하고 있겠는가? 어처구니 없는 현실감각이다. 게다가 재심 변호사 박준영이 김영희의 윤지오 옹호 여론몰이 때문에 “항의하며 조사단”을 탈퇴했다는 거짓말도 거침없이 한다. 박준영은 형제복지원과 김학의 사건의 진상조사단 위원이었지 장자연 사건의 위원이 아니었다. 서민은 윤지오에 대한 3차가해(책임전가)를 위해 현실을 외면하면서 거짓말에 거짓말을 자꾸 이어 붙인다. 엄청난 공부, 팩트, 통찰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박훈의 그 변론 추임새가 자꾸 낯뜨거워진다. 

‘과거사 조사’를 둘러싼 두 가지 시간성의 투쟁에 대해

과거사(過去事)는 어떤 사건이 이미 “지나간 것”임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것은 그 사건이 지금여기의 사건은 아니라는 뜻을 함축한다. 그러므로 과거사란 말은 어떤 사건을 현실로부터 분리해 내어서 과거로 돌리는 역할을 맡는다. 과거화(過去化), 이것이 과거사라는 말의 사회적 반복이 가져오는 실제적 효과이다. 

그렇다면 과거사에 대한 ‘조사’는 무엇일까? 여기에서는 두 가지 뜻이 상충한다. 하나는 과거로 내몰린 사건을 현재로 가져온다는 뜻이다. 즉 현재화, 현실화의 뜻이 있다. 또 하나는 과거사를 두루 살펴 정리한다는 뜻이 있다. 이것은 불편한 점이 있는 과거사를 영구히 안전하게 과거화한다는 뜻이다. 

조금 깊이 들여다 보면 이것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혹은 삶을 체험하는 두 가지 형식이기도 하다.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서 우리는 이 두 시간성, 두 가지 시간 이해, 시간을 경험하는 두 가지 형식 사이의 갈등을 본다.

하나는 장자연 사건을 현재의 시간 속으로 가져와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당면한 것들과 연결시킴으로써 현실화하려는 흐름이다. 이것은 죽은 장자연에게 사회적 생명을 불어넣어 힘 없는 신인배우, 약한 처지의 인지노동자로서 그가 느꼈던 고통과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비원(悲願)을 우리 모두의 현재적 고통, 비원으로 전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표현된다. 이것은, 모든 왜곡을 걷고 단언하자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장자연 사건을 현재 속으로 불러온 촛불미투 운동과 그 사건을 증언해온 윤지오에 의해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장자연 사건을 더 이상 사회적으로 논란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하고 고요한 과거사로 깊이 매장하려는 흐름이다. 이것은 산 사람들로 하여금 ’장자연이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가?’ 사무치는 물음을 되묻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면서 구천(九泉)을 떠돌고 있는 장자연을, 재조사를 계기로,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타격을 통해 확실히 죽게 만들고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에 안치(安置)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표현된다. 이것은, 비록 재조사의 개시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 재조사가 재수사로는 결코 발전하지 않게 하고 싶고 또 그 재조사를 이 사건에 대한 더 이상의 의문이나 문제제기를 못하도록 막는 방패로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대표된다.

장례식이 죽은 자를 생물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확실히 죽게 만들어 죽은 자가 차지했던 자리와 재산에 대한 산 자들 사이의 재분배를 시작할 수 있는 터를 만드는 의식(儀式)이듯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그러한 내용을 갖는 정치적 사법적 장례식처럼 되고 말 것인가? 그래서 기왕의 가해자들과 가해의지를 가진 자들이 두 다리를 뻗고 잠들어 원기를 회복한 후 다시 가해를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요식절차로 되고 말 것인가? 요컨대 ‘영구 과거화’를 위한 과거사 조사로 귀착되고 말 것인가?

2019년 5월 20일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새로운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재수사는 없다”는 요지의 발표를 국민들 앞에 내놓았다.(http://www.newbc.kr/news/articleView.html?idxno=5379) ‘활동시한을 연장하며 무려 13개월에 걸쳐 84명을 조사한 후에 이루어진’ 재조사인 만큼 그 포괄성과 엄정함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할 것이다!! 이 발표에 장단을 맞추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남아있는 증거와 오염되지 않은 증언 속에서 가장 합당한 조사결과라 생각합니다.”(5월 20일 오후 4:22 페북)라고 말하는 반윤지오 트리오의 일원인 김대오가 그이다. 

하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발표는, “장자연 사건이 그 실제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이 이제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로 받아들이도록 만들고 싶다”는 과거사조사위원회의 곤혹스런 정치적 욕망과 속내를 그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난삽하게 꼬여있고 인위적인 것이었다. 그 발표는 주요 메시지만이 아니라 세부에서도 다중 집단지성의 ‘조사’와 동떨어져 있었으며, 진상조사단의 ‘조사’와도 괴리되어 있었고, 심지어 하나의 발표문의 본론인 <의혹사항에 대한 조사결과>와 그 결론인 <심의결과> 사이에도 심한 어긋남이 있었다.    

이런 치명적인 결함들 때문에 조사를 통한 영구 과거화는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다. 이미 총괄단장 김영희가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발표가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충실히 반영하지 않고 검찰측 조사원의 소수의견을 중심으로 심의결과를 내놓았다는 이견을 제시했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국정조사와 특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어떤 네티즌(lamer297)은 이렇게 말한다.

“검찰 과거사위 결론은 일주일에 걸쳐 진상보고단의 결론을 축소, 삭제 시킨 결론이죠. 오래전부터 검찰은 진상조사단의 활동를 방해하고 있었으니, 검찰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장자연 사건에 관한 범법 행위를 감추려 [할 것이] 확실합니다. 김영희 변호사께서 진상조사단의 보고서는 250장이라고 하셨는 데, 이 250장의 보고서 내용이 과거사위 결론보다 훨씬 신빙성이 더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면, 진상조사단 보고서는 13개월 동안 실제로 조사를 한 조사단원들이 만들었기 때문이죠. 어디서 진상조사단의 250장의보고서를 볼수있을까요? (…) 한국 검찰이 조선일보의 외압을 인정했는데 왜 조선일보는 폐간시키지 않나요? 언론은 공정성이 생명인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검찰에 외압을 가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른 언론기관의 보도를 어떻게 믿습니까?! 한국에도 언론 기관의 기본자격 규정에 관한 법이 있을것이고, 조선일보의 검찰 외압과 사실 왜곡은 언론기관 자격 규정을 위반한 것일 것입니다. 공정성을 갖추지 못한 언론 기관은 당장 폐간되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은 지금 뭐하고 있읍니까? 정부와 국회가 할일을 안한다면 우리 국민들이 나서서 잘못을 바로 잡아야합니다! 한 예로, 만약 뉴욕 타임즈가 뉴욕 주 검찰이나 연방정부 검찰을 위협했다고 검찰이 인정했다고 하면 무슨일이 일어 날까요? 뉴욕타임즈는 그 사실이 밝혀진 순간 박살이 났을것입니다. 물론 관련자들이 줄줄이 체포되어 재판에 당장 넘겨졌을 것이구요. 또한 이런 사실은 대서특필로 전 세계에 번개같은 속도로 보도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에 관해서는 왜 한국 사람들 모두가 장님이고 벙어리가 되어있읍니까????”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검찰이 국민의 뜻을 대의할 의사가 없다는 것, 검찰은 국민을 주인으로 대접하고 싶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식사접대, 술접대, 성접대, 돈접대 등 (장자연에게 가해자들이 강요했던) 각종 접대를 받고 싶다는 것, 요컨대 검찰은 국민 대의기관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지배기관이라는 것을 발표문을 통해 발표했다. 이처럼 정부와 국회와 같은 대의권력이 주권권력인 국민으로부터 이반(離反)될 때, “국민들이 나서서 잘못을 바로 잡”는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는가? 대한민국이 아직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과거사조사위원회가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상황에서 그 길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진실을 건져내기 위해 나섰던 길을 따라 2016년 국민들이 거리와 광장으로 나섬으로써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던 촛불혁명의 길이라는 것은 이제 먼 이상이 아니라 경험적 상식이다. 여기서 현재는 영원으로서의 과거가 미래의 형태로 도래하는 첨점이 된다. 

김대오는 “도대체 누가 죽은 자의 원혼을 푸는 권능을 우리에게 주었단 말인가?”(5월 26일 오후 11:11)라며 죽은 자를 죽은 그대로 매장해 두라고 강변한다. 장자연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고 장자연의 비원(悲願)을 지금 자신의 비원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장자연의 생명을 자신의 삶 속에 되살리려는 윤지오적 집합행동을 그는 죽은 자를 또 죽이는 부관참시라고 잘못 부른다. 

이를 위해 그는 “장자연의 원혼”, “장자연의 비원”을 “장자연의 죄”(5월 26일 오후 11:03)로 바꿔치기하는 얕은 술수를 부리는데, 지금까지 김대오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장자연의 죄”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사람들이 묻고 있는 것이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을 가져온 “가해자의 죄”라는 것조차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장자연의 죽음을 장자연의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부관참시의 순간으로, 즉 원혼과 명예조차 빼앗아 영구매장, 영구과거화하려는 것은 정확히 기존의 가해자들과 잠재적 가해자들, 그리고 수많은 김대오들이다. 그런데도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들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가해자와 성폭력 체제에 대한 수사를 미진(未盡)하게 남겨두고 있는 것은,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혁명이 너무나 미진한 탓 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지 않은가?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야 한다.

공통장 감수성의 징후와 예술인간-예술체제의 동선

-장자연 사건과 윤지오의 증언투쟁을 중심으로

맑스코뮤날레 <다중지성의 정원> 세션  발표개요 : 2019년 5월 25일 오후 1시~3시, 서강대 정하상관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정치적 배경

2002년 월드컵 서포터즈(응원부대) 레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권력장을 ‘대~한민국’이라는 국민 공통장으로 재구성하려는 다중의 욕망을 표현했다. 2008년 촛불봉기는 공통장으로서의 대~한민국이 헌법1조에 어렴풋이나마 이미 규정되어 있는 형상임음을 발견한다. ‘대한민국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규정이 그것이다. 이 헌법규정은 ‘주권이 자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자본공화국’의 현실과 상충하는 상태에 있었다. 수 개월간 메트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촛불봉기는 국가가 자본의 이익(자유무역)을 위해 광우병이라는 반생명적 질병을 도입하는 것에 무심하다는 사실을 고발하면서 이 상충과 모순을 축소하고 ‘공통장 대~한민국’을 회복하려는 투쟁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현실의 대한민국의 행정, 입법, 사법, 언론 등의 권력부(府)들이 국민들의 생명을 보호하기는커녕 수장시키는 기관이며 이것들이 이윤중독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정치적 기둥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때 다중들의 공통장 감수성은 미안함, 즉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로 나타났다. 그것은 자신들도 그 체제에 한 발이 묶여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감의 정동이었다. 2016년에 이르러 2년간의 세월호 진실규명 투쟁에 의해 정부가 국민다중이 아니라 대자본에 의해 섭정되고 있음을 발견한 촛불국민들은 생명 공통장을 자본에 갖다 바치는 박근혜 대의정부를 퇴진시키고 대~한민국을 다중의 촛불공통장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그 최초의 성과가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대한 촛불 섭정을 통해 달성한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파면이고 그 두번째 성과는 차기정부가 촛불정부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압박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촛불정부라고 말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2018년, “내가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면서 법조계, 정치권,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터져나온 미투운동은 사회 및 생활 곳곳에 보편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성폭력 체제를 가시화했다. 그것은 이른바 ‘촛불정부’가 남북관계, 한미관계, 적폐청산, 권력기관 혁신, 소득분배 등 몇몇 영역에서 거둔 일정한 개혁성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온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폭로이고 도전이었다. 촛불혁명 이후의 대한민국이 여전히 성차별과 성폭력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이 대중적 폭로와 거부는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대한 전면적 여성 대중봉기의 형태로 나타났다. 미투(me-too)는 ‘미(me)’라는 특이점의 성폭력 체험과 그에 수반되는 아픔을 공통의 것으로 만들어 반-성폭력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투쟁이었다. 이것은 여성에게 보편적인 체험들을 사적이고 개인적이며 특수한 수치(羞恥) 체험으로 만들어 온 권력장의 개별화 및 분할지배 테크놀로지에 대한 집단적 거부와 연합을 표현했다.  위드유(“당신과 함께”) 운동은 이 미투봉기 공통장에 대한 연대 감수성의 표현방식이었다.

미투위드유 봉기가 다중의 섭정정치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 2018년 2월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를 적폐로 규정하고 국가기구로 하여금 그것을 청산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이 섭정운동의 본질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내건 적폐청산의 틀 속에서 미투위드유 운동으로부터 제기된 장자연 사건 재조사 국민청원을 받아들여 2018년 4월 2일 장자연 사건을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사전조사대상으로 선정하고 5월 28일 검찰에 이 사건의 재조사를 권고했다. 이것은 미투위드유를 통해 구축된 반성폭력 공통장이 권력장의 성폭력적 구조를 개혁하도록 압박하는 섭정 사례이다.

윤지오의 증언투쟁

윤지오는 장자연과 함께 연예기획사 더콘텐츠에 소속되어 일했던 계약직 연예노동자였다. 그의 꿈은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꿈과 달리 계약기간 중 그의 노동력은 다중을 위한 연기가 아니라 권력자들을 위한 성적 서비스노동(식사 및 술 접대)으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더콘텐츠와 체결한 계약은 그러한 노동을, 연예활동 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러다가는 이미지만 실추되고 영영 배우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그는 기획사 대표에게 다른 소속사에서 연예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계약 중도해지에 대한 반성문 및 600만원의 합의금을 지불한 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2009년 3월 7일 장자연의 사망과 장례식 후 장자연이 남긴 문구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윤지오는 “나의 언니 장자연이 왜 죽어야 했나?”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들의 난망(難忘)한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느꼈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감수성의 한 걸음 진전된 발현이었다. 그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유장호와의 통화들을 녹취하여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한편 봉은사에서 본 문건 및 리스트의 사본과 원본에 대해 진술했다. 이후 그의 삶은 윤지오로서가 아니라 장자연의 동료배우로, 그리고 장자연 문건/리스트에 대한 증언자로서 규정되었다. 여러 차례의 경찰, 검찰, 법정 증언에도 불구하고 장자연과 자신이 겪었던 부당한 대우(노예계약)에 대해서는 인정되지 않았고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힘센 자들’인 방사장 일가는 무혐의처분되고 ‘리스트’는 수사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처벌은 겨우 기획사 대표들인 김종승, 유장호를 가볍게 처벌하는 것에 머물렀다. 이것이 그에게는, 언론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흐지부지 덮는 것을 업으로 하는 기관들이라는 것을 경험한 배신과 각성의 시간이었다.

9년 후인 2018년 한국에서 일어난 미투 봉기와 위드유 운동의 물결은 그에게 성폭력 체제와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제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주었다. 이 기대 때문에 그는 2018년 여름 PD수첩 <故 장자연>의 인터뷰에 응했고 과거사 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증언자 요청을 계기로 마침내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증인으로 나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윤지오는 권력이 장자연의 죽음에 대해 지난 10년간 구축해온 지배적 이미지(‘우울증-유서-자살’)에 도전하는 특이점으로, 반성폭력 공통장의 실제적 첨점으로 부상했다. 그는 한국으로 와서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희천의 성추행 현장에 대해 증언했다. 윤지오의 증언을 근거로 조희천은 기소되었다. 이것은 윤지오의 증언이 실제적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발점이었다. 이것은 2019년, 그 존재에 대해서는 유장호, 장자연 오빠, 윤지오가 공히 진술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아무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았던 ‘장자연 리스트’의 일부 내용을 증언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권력자들의 성폭력 행위 가능성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성폭력 체제 권력장과 가해자들의 반발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그 반발은 아마도 재계,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 등의 저 ‘힘센 사람들’(장자연), ‘법 위의 사람들’(윤지오)로부터, 그리고 그 체제와 인물에 의존하고 있는 익명의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져 올 것이었다. 이것은 증언자가 아닌 사람들은 경험하기도 실감하기도 힘든 실제적 압력이었다.

윤지오는 이것을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택했다. 지금까지 그는 수사기관 진술증언과 언론 인터뷰에서 가명과 모자이크 처리된 가면을 사용했지만, 이제 그는 가림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 대신 실명과 실면을 공개하고 증언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보호장치를 필요로 했다. 첫째로 그는 생존방송(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대중의 시선에 노출시켜 그 시선이 자신의 신체를 보호할 수 있도록 배치하는 한편 다수의 사람들과의 집단적 이동 및 회견을 통해 신체를 집합화함으로써 물리적 백래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다. 둘째로 그는 국가에 대해 자신의 개인 행동 시간에 대한 경호를 요청하고 이를 제도화할 수단으로 증인보호법 제정을 국민청원했다. 이것은 진실규명을 위한 핵심장치로서 진실증언자에 대한 국가보호를 확고히 하려는 섭정노력의 표현이었다. 또 그가 “5대 강력범죄에 속하지 않는 범죄의 증언자, 목격자, 제2의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24시간 경호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을 조직하고 후원계좌를 개설한 것도 반권력 공통장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이 두려움 없이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국가 지원의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시민들의 자구노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이것은 체험한 사람만이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필요였고 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실천이었다.

그는 증언의 범위와 대상도 넓혔다. 지금까지는 주로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의 진술증언의 형식 속에서 수사관, 법관, 기자가 그 증언의 대상이었지만 그들이 진실의 사회화를 가로막는 행위자들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는 JTBC, 다스뵈이다, 고발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한 실시간 인터뷰 증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다중들이 장자연 사건에 대한 좀더 직접적 앎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라이브방송도 다중들에게 이 사건에 관해 직접 증언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2019년 3월 7일 장자연 10주기를 맞아 <13번째 증언>을 출판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증언에 확고부동한 물질적 실체를 부여했고 그 물질성을 통해 다양한 유언비어들을 잠재울 수 있는 실효적 장치로 기능했다. 이러한 것들은 지금까지 경찰, 검찰, 법관, 진상조사단 등 엘리뜨의 수중에서 검토되고 자신들의 계급적 신분적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인용되어온 그 증언들을 다중이 직접 읽고 검토하면서 아래로부터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다중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것들이 윤지오가 권력장 가해자들에 맞서 실명, 실면의 증언을 하기 위해 ‘영리하게’(smartly) 선택한 물질적이고 실천적인 장치들이었다.

성장하는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기 위한 백래쉬의 방향과 양상들

진실 공통장을 확대하고 아래로부터 다중의 참여를 불러내기 위한 윤지오의 이러한 ‘영리한’ 시도가 반발을 가져오리라는 것은 권력장과 공통장의 적대라는 우리 사회의 배치구조를 고려할 때, 그리고 다중지성 공통장의 특이점들(2008 촛불의 미네르바, 2014 세월호의 홍가혜, 2016 촛불의 혜경궁김씨)이 범죄자로 낙인찍혀 고초를 겪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것이었다. 권력장의 백래쉬 공세는 윤지오의 증언 자체를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많은 사실들이 그 증언을 뒷받침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던 권력형 성범죄는 장자연의 죽음이 어떤 구조 속에서 전개된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짐작케 하는 살아 있는 물증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백래쉬는 증언보다는 윤지오라는 증언자/메신저를 겨냥해서 주로 이루어졌다. 증언자를 관종, 패륜아,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만드는 여론몰이가 그것이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공세는 한국 사회 가부장제의 대리인격체인 ‘아버지’로부터 가해진 폭력이다. 이 폭력은 <13번째 증언> 출판 직후인 3월 8일에 이루어졌다. 아버지는 딸이 장자연 사건에 증언하는 것에 반대했고 성과도 없이 끝날 그 증언이 어리석은 것임을 가르쳐주고자 했다. 이것은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가내수행자인 가부장이, 자신의 딸이 고 장자연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면서 권력자들에게 성적 서비스 노동을 수행한 것을 공개리에 대중 앞에 발설할 때 그 증언들이 지금까지 늘 진실이 흐지부지되어온 역사를 고려할 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역사적 직관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할 그 숨은 이력의 공개증언을 가문의 수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사(私事)화하고 특수화하는 관점에서 나올 수 있는 통념적이고 일반적인 반응양식이다. 가부장의 폭력은 보통 가족 구성원을 자신의 재산으로 또 노예(실제로 가족의 영어표현인 family의 어원 famulus는 ‘하인’, ‘노예’라는 뜻이다)로 간주하고 그 구성원의 행위가 자신의 뜻과 위배될 때 가부장이 행사하는 처벌형식이다. 가부장은 가문의 보존과 안녕(安寧)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무릅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이 자신의 뜻에 거스르면 처벌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인데, 국가는 가정에서 가부장(혹은 그 대리인들)의 이 사적 처벌 행동에 최대한 덜 관여함으로써 가부장제를 돕고 그것과 동맹하는 방식으로 가부장제 가족을 자신의 세포기관으로 포섭한다.

두번째 공세는 권력자들과 깊게 결부된 미디어들로부터 가해져왔다. 예컨대 윤지오의 증언이 사회적 설득력을 강하게 얻어서 국회에서 윤지오가 여야 국회의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날(4월 7일) 뉴시스는 이후 지속될 반윤지오 공세의 밑그림과 가이드라인(“‘증인’ 윤지오와 장자연 사건”)을 권력장 행위자들에게 제공했다. 그것은 다음 다섯 가지의 내용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1)윤지오는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 2)윤지오는 고비용의 과도한 경찰보호를 받으며 생활중이다 3)윤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장자연을 이용하여 팔로워 76만명이 넘는 SNS 스타가 됐다 4)윤지오는 장자연을 이용하여 후원계좌를 열어 돈을 벌고 있다 5)윤지오는 거짓 증언을 했으며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 이것들은, “윤지오가 친하지도 않았던 장자연에 대한 거짓 증언을 이용하여 유명세와 돈을 버는 사기행각을 하고 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것으로 윤지오를 ‘제2의 왕진진(전준주)’으로 만들어 추락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세번째 공세는 <13번째 증언>의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린(4월 14일) 직후에 박훈-김대오-김수민 반윤지오 트리오로부터 가해져왔다. 이들은 변호사, 기자, 작가라는 전문가 지위를 윤지오를 무너뜨리는 무기로 이용했다. 이들의 주장은 크게 보면 이미 뉴시스에 의해 생산된 반윤지오 가이드라인을 자신들의 입지에서 확대재생산하는 것이었다. 박훈은 2010년 유가족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예로 들며 윤지오가 가해자의 편이지 장자연과 그 유가족의 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대오는 장자연 문건 ‘원본’에는 ‘리스트’가 없다고 주장했다. 김수민은 공적으로 알려진 윤지오는 자신이 사적으로 알고 있는 윤지오와는 다른 위선적 윤지오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들의 결합체는 윤지오를 관종, 위선자,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실제로는 가해자 편이면서 장자연을 위하는 것처럼 연극하여 사적 실리를 챙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네번째 공세는 가족, 미디어, 전문가로부터 가해진 앞의 세 유형의 공세를 유튜브, SNS를 통해 다른 형태로 무한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언어폭력과 결합시켜 윤지오의 인스타그램과 라이브방송에 퍼붓는 우/극우 세력들의 연합적이고 집중적인 디지털 테러공세로 나타났다. 이것은 justicewithus와 같은 디지털저격수, 무수한 댓글로 공격하는 디지털소총부대, 심지어 윤지오 지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은밀히 공격을 퍼붓는 디지털 편의대 등을 포함하는 다방면의 조직적 공세였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윤지오를 여자-왕진진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 떼몰이 공세에 사용되는 언어들이 곰곰이 살펴보면 어떤 근거도 없는 거짓말, 지어낸 소문, 모욕 등이지만 그것들이 사실의 편린들과 결합하여 폭발성 있는 디지털 화약으로 기능함으로써 이 공세는 지배계급이 필요로 하는 낡은 감정질서 및 인지프레임을 선동적으로 재생산하면서 반성폭력 공통장을 해체하고 권력장의 영토를 넓혀 나갔다. 이 언어화약들은 진실의 편린들과 낡은 도덕감정, 그리고 가짜뉴스를 마구 버무려 만들어 낸 폭발물이었는데 이것들이 기술적으로 조직되고 반복적으로 사용되면 여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재확인해 되었다. 그것의 효과는 미투-위드유 운동 이후에 윤지오의 증언에 의해 성장되어오던 반성폭력 공통장이 균열되어 그 일부가 권력장에 재포섭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장자연 사건을 다루는 과거사 진상조사단 내부의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어떤 언론은 이것을 ‘국론 분열’로 표현했다.

예술인간-예술체제의 특이점과 그 동선

백래쉬로 나타난 권력장의 이러한 재포섭 전략에 대항하는 투쟁들은 어떠했는가? 권력장의 수복을 위한 반윤지오 공세가 개시된 후 그 전에 윤지오의 증언행동을 지지하고 뒷받침했던 언론들과 인사들의 상당부분은 방어를 하기보다 뒤로 물러나 관망하는 태도를 취했다. 주로 친문 언론들이 그런 태도를 취했다. 이것은 아마도 윤지오에 대한 법적 조력이 반문-비문 경향의 정의연대로부터 나왔다는 것과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윤지오 증언의 힘을 살려 내고 지키는 투쟁은 제도권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의 전적으로 비제도 성폭력 공통장 다중으로부터 주어져야 했다. 이 투쟁은, (1)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 (2) 반성폭력 공통장의 첨점이자 특이점인 윤지오를 지키기위한 투쟁  (3)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 그리고 (4)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 등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백래쉬 주장들의 허구성에 대한 사실검증 투쟁은 그 주장들이 근거 없는 풍문이나 사실에 대한 편협한 해석과 오판, 혹은 과잉된 비난 욕구 등에 의해 조작된 것들임을 비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백래쉬 주장들은 특히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에 집중되었다. 이것은 장자연의 죽음이 개인적 문제이거나 기껏해야 소속 기획사의 문제이지 성폭력 권력체제나 권력자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하여 그 체제와 가해 당사자들을 방어하는 효과를 낳는다. 따라서 이 주장에 대한 사실 검증투쟁은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했음을 확인하는 투쟁으로 나타났다. 이민석 변호사와 JTBC 이호진 임지수 기자 등의 노력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SBS <그날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된 장자연의 녹취육성도 장자연 리스트가 실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방향에서 조사를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처럼 장자연이 ‘힘센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압력을 육성으로 표현한 것, 윤지오가 유장호와의 통화내용을 녹취하여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서 명단과 목록이 거론된 점, 2009-10년 사이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진 진술서(유장호, 윤지오, 장자연 오빠)에 ‘조심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 등이 진술된 점 등이 장자연의 실재성을 증거하는 물질적 증거로 사용될 수 있었다.

윤지오 지키기 투쟁은 반윤지오 백래쉬를 성폭력 체제의 자기방어와 재생산을 위한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마녀사냥식 공세에 대한 방어를 수행하는 한편 마녀사냥에 의해 입게 된 윤지오의 심리적 정신적 상처를 정서적 인지적 유대를 통해 치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그리고 윤지오가 청원한 증인보호법에 동의서명하고 증인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등에 참여하는 것 등으로 나타났다.

장자연 사건 재수사와 특검 요구 투쟁은 정의연대와 녹색당 등에 의해 수행되었다. 이들 시민단체와 원외 정당은 지난 10년간의 수사가 부실수사로 드러났고 조선일보 등에 의한 수사방해 외압이 실재했던 만큼 철저한 재수사가 요구되며 이를 위해서는, 이미 장자연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기존 검찰이 아니라 특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윤지오의 자기방어 투쟁이었다. 윤지오는 4월 24일 백래쉬가 폭발하던 시점에 캐나다로 몸을 옮겨 자신의 신체를 보호한 후, 인스타그램 포스팅과 라이브방송을 중심으로 방어투쟁을 전개했다. 이것은 배우지망 신인 예술가였던 윤지오가 증언자 윤지오를 거쳐 예술인간 윤지오로 변모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것은 성폭력 체제가 자신을 관종으로 이미지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자신을 예술인간으로 내세우고 예술인간 공통장을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그 시도들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째는 권력장과 그 파수꾼 및 십자군들을 향한 것으로 이들의 마녀사냥식 인신공격 디지털 테러의 범죄성을 고발하는 것이었다(선처 없는 처벌).

둘째는 거짓말쟁이, 사기꾼이라는 공세에 대해 자신의 존엄함과 떳떳함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셋째는 누구나의 특이성과 존엄성(당신들은 놀랄 만한 존재이다. 스스로 자신을 믿는 존재는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을 주장하고 연합한 특이자들의 힘(시민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넷째는 요리 식사 잡담 등과 같은 생활시간을 투쟁과 연합의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라이브방송)

다섯째는 투쟁을 음악, 만화, 일러스트, 시, 에세이 등의 예술형식들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여섯째는 투쟁을 유머와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일곱째 이러한 예술인간적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증인보호법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했고 증인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의 구상을 구체화했다.

이 투쟁 속에서 윤지오는 고펀드미의 펀딩을 해제하여 펀더들에게 모두 되돌려줌으로써 박훈의 사기죄 고발을 무력화시키고, 후원금을 착복했다는 비난에 대해 1원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디지털 댓글테러에 대한 처벌을 통해 받을 벌금을 <지상의 빛> 후원금으로 돌리겠다고 말하고,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기사, 에세이, 자료들을 지지자들과 공유하여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친권력담론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라이브방송을 통해 시민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지속하고, 좋아하는 음악의 교류를 통해 취향공통장을 확대해 나갔다. 또 진상조사단의 행보나 발표를 비롯하여 장자연 사건 조사 관련 발언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여 지지자들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한 예술인간적 실천이었다. 가족을 욕되게 한다는 비판에 맞서 그는 가부장제 전통이 말하는 혈연적 제도적 가족이 아니라 오직 현실에서 삶을 함께 나누는 특이자들의 모임(assemblage)만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가족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족형상을 제시함으로써 전통적 가족주의의 후진성과 억압성을 고발했다. 또 고인을 욕되게 한다는 비난에 맞서 그는, 살아생전에 장자연을 알지도 못했고 고인이 된 장자연의 진실규명을 위해 삶의 단 한조각도 나누지 않은 ‘자격 없는 자’들이 산 장자연을 이용한 권력자들에게 고인을 다시 갖다 바칠 목적으로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자가당착적 구호를 이용하고 있다고 맞섰다.

자신을 관종으로 왜곡하고 사기꾼으로 범죄화하려는 성폭력 체제와 가해의 권력장에 대항하는 이 자기방어투쟁의 과정 속에서 윤지오는 권력장의 영토를 해체하여 공통화하는 투쟁의 예술인간 특이점으로, 삶예술의 비전문가 배우/행위자(actor)로 나타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에서 공통장을 가시화하고, 지키고, 확장해온 것은 지금까지 권력이 ‘폭도'(광주의 항쟁시민들), ‘허위사실유포자'(미네르바), ‘허언증환자'(홍가혜) 등으로 불러, 죽이고 가두고 고립시켰던 사람들의 예술인간적 행동들이었다. 윤지오의 이 예술인간 증언행동도 이러한 역사적 비운을 피할 수 없을 것인가? 아니면 이 역사적 비운을 비스듬히 비켜가는 동선을, 사선(斜線)의 도주로를 열 것인가?

마녀사냥의 암구호들 1: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


산사람을 이용한 자들이 죽은 사람도 이용한다

장자연은 배우가 되고 싶었고 배우를 하고 싶었다. 신인배우가 되기 위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권력자들에게 성서비스 노동을 강요당해야 하는 억울함을 견뎌야 했다. 소속사 사장 김종승(갑)과 맺은 노예계약 때문이었다. 윤지오의 계약서와 동일한 그 계약서에서 장자연(을)은 “연예활동 전반에 걸쳐 ‘갑’의 결정 및 지시에 충실히 따라야”(3조 바) 했고 “방송활동, 프로모션, 이벤트, 각종 인터뷰 등 ‘갑’이 제시하는 활동에 전적으로 수락하여야” 했으며 “행사불참 또는 방송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을’은 ‘갑’이 제시하는 민, 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4조 다). ‘갑’인 김종승의 결정에 따라 지시된 성적 서비스노동은 ‘갑’에 의해 “[방송기회를 얻기 위한] 프로모션, 이벤트, 인터뷰”의 기회로 해석 및 주장되었고 계약에 따르는 의무적 활동으로 강제되었다. 이러한 노동이 부당하게 느껴져 중도해약하고 싶을 때에는 “위약벌금 1억 원과 ‘갑’이 ‘을’을 관리하기 위해 발생한 비용 중 증빙자료가 있는 모든 경비에 대하여 ‘을’은 이의제기 없이 계약 해지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현금으로 ‘갑’에게 배상하고 잔여기간 동안 발생하는 모든 모든 수익활동의 20%를 ‘갑’에게 손해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했다(7조). 그러한 악조건의 중도해약마저 ‘갑’의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6조 가). 또 ‘을’이 연예활동을 중단한다 해도, “그 기간만큼 계약기간은 자동연장”(3조 바)되도록 되어 있었다. 장자연이 체결한 계약서는 ‘갑’이 계약기간 중 철저하게 노예소유주로서 노예노동자인 ‘을’을 이용할수있는 조밀한 장치들을 빈틈 없이 갖추고 있다. 소속사는 배우가 되고자 하는 장자연의 희망을 이용하여 그의 생명력을 쥐어짜는 맷돌이었고 그 생명 에너지의 이용자=소비자는 재계,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연예계의 권력자들이었다. 이것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와 성폭력 권력이 가동되는 메커니즘이었다.   

장자연은 이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고 이 상황에서, 기회가 있다면, 빠져나오고자 했다. 그런데 그가 이 강제수용소에서 어떻게 빠져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노예노동수용소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장자연의 필사적 저항과 탈출의 시도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한 연예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 마약, 폭력, 협박, 강요, 수탈, 착취, 부당이용의 사례들을 낱낱이 적시하여 보여주고 자신을 이용한 권력자들, ‘조심해야 할’ 권력자들의 리스트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인지자본주의가 어떻게 여성들의 예술적(연예적) 능력과 성적 에너지를, 요컨대 생명력을 착취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폭로했고 그 착취를 수행하는 인격적 행위자들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폭로행위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그것은 작게는 연예계에서 고립되어 더 이상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할 수 없게 될 위험으로부터 크게는 초법적 권력자들의 손에 가족들이 큰 피해를 입거나 자신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폭로의 필요와 그것이 가져올 위험 사이에서 장자연의 고뇌는 깊었다. 김종승 기획사와의 싸움에서 장자연의 폭로 문건을 자신의 기획사에 유리하게 이용하고자했던 유장호가 삭제를 요구해야 할 만큼 권력자들의 성범죄 행위에 대한 장자연의 폭로 의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그 폭로문건이 기획사들의 소송전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을 발견한 후에 그는 그러한 위험을 막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유장호에게, 그 문건을 자신의 의지 밖에서 불법적으로 유통시키지 말고 그 문건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유장호는 그 요구를 묵살한 채 자신의 유통행보를 계속했다. 이 시간, 그러니까 2009년 2월 28일 장자연이 문건과 리스트를 작성한 후 약 일주일 뒤인 3월 7일 주검으로 발견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힘도 없고 빽도 없고 미련도 없다”며 자신을 옥죄어 오는 ‘힘센 자들’에 대한 절규를 표현한 절박한 통화기록이 그의 심경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생생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업가들과 권력자들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계약상의 ‘갑’인 김종승이 그를 노예노동자로 이용했고, 권력자들은 김종승을 매개로 그를 성노예로 이용했음은 분명하다. 김종승은 수사기관에서 유장호의 기획사가 자신과의 싸움에 장자연을 이용했다고 진술한다. 이상호는 이명박의 국정원이 장자연의 죽음을 당시의 법란(판사파동)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장자연 문건 및 리스트의 공개와 은폐의 과정에 유장호를 매개로 개입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장자연이 죽기 전에 남긴 문건과 리스트조차도 정치적 이용의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윤지오가 증언을 시작하자마자, 아니 증언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윤지오는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누가 장자연을 죽였는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를 밝히기 위한 진상조사에서 증언하는 것이 물론 고인을 생물학적으로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증언은 고인이 현대 자본주의의 가부장적이고 노예제적인 성폭력 체제에 저항하다 권력자들에 의해 희생된 인격임을 밝히고 가해자와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고인의 존엄을 되살릴 수 있고 존엄의 체제를 구성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윤지오의 증언은 고인 장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 자신이 고인 장자연을 빙의하여 말하는 것으로 증언자 윤지오의 생명을 고인 장자연과 산 장자연들을 위해 이용하는 우애와 선물의 행위이다.

그렇다면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이름을 남긴 권력자들 및 그 권력자들이 만들어 가고 있는 체제는 증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그들이 그 이름들과 체제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생리상 당연한 것이다. 그 이름들과 체제들이 성착취자, 성범죄자, 살생자로 역사에 기록되고 또 법률적 수사와 재수사를 받지 않게 하기위해서는 윤지오의 증언을 막아야 했다. 증언을 막는 것은 다양한 수준의 목표지점들을 갖는다. 첫째로는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둘째로는 증언을 막지 못한다면 증언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셋째로는 증언을 축소시키지 못했다면 증언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넷째로 증언을 왜곡시키지 못했으면 증언자를 쓰러뜨려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윤지오의 생존방송과 경호요구, 증언자보호법 청원, 비영리단체 구성 등의 노력은 증언을 끝까지 수행하면서 증언의 원천봉쇄, 축소, 왜곡의 시도들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이었다. 권력자들이 증언자를 쓰러뜨리는 방법에 총력을 다한 것은 증언이 끈질기게 진행된 후 선택한 최후의 방법(윤지오는 이것을 ‘최후의 발악’이라고 표현한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권력자들이 이 최후 대공세에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는 구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권력자들과 그 파수꾼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장자연을 ‘어머니 기일’에까지 이용한 자들이며 죽은 후에도 이용한 자들이다. 이들은 타인노동의 착취(이용=exploitation)를 자기재생산의 본질로 삼는 자본주의의 권력자들이고 체제의 대행자들이다. 이제 이들은 ‘고인’이라는 이름으로 장자연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영구화하면서 증언자 윤지오의 목소리로 귀환하고 있는 장자연의 절규를 다시 땅속 깊이 파묻으려 한다. 세월호의 생명을 수장한 바로 그 반생명적 죽음의 권력이 댓글, 고소, 고발, 보도, 유튜브 채널, 페이스북 등 온갖 수단들을 동원하여 윤지호의 증언을 아귀(餓鬼)들의 소음 속에 파묻는다. 이것은 윤지오의 목소리로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한 장자연의 절규, 그 문건과 리스트를 영원한 침묵과 어둠 속에 파묻는 여론장(與論葬)의 행렬이다. 박훈, 김대오, 김수민 트리오와 강용석, 김용호의 가로세로연구소 등이 보조를 맞추면서 “고인을 욕되게 하지 말라!”, “고인을 이용하지 말라!”고 부르짖으면서 윤지오의 은행계좌를 뒤져 불순한 기록들을 찾으려 하고 가족관계에 있는/있었던 사람들을 이간시켜 증언자를 비난하도록, 혹은 그 비난이 널리 유통되도록 도울 때 이들이, 고인이 된 장자연이 영원히 죽어 있도록, 장자연의 절규가 영원히 잊혀지도록, 고인의 주검을 결코 부활할 수 없는 죽은 시신 그대로 이용하려는 주검정치(necropolitics)의 집행위원들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이들의 이러한 행보가 본인들이 의식하건 못하건 간에 거대자본의 분식회계, 차명계좌, 자금도피, 투기놀음 등의 경제범죄와 각종 유형의 성범죄를 은폐하는 가림막이며 생명을 위한 촛불행진을 가로막았던 2008년 광화문 ‘명박산성’의 현재태라고 생각한다.

“윤지오의 증언이 장자연 유가족들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결정적 패소 원인이었다”는 박훈 변호사의 주장이 어떻게 윤지오의 진실을 가려버렸나?

박훈은 2019년 4월 *일의 페이스북에서 “윤지오의 증언이 장자연 유가족들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결정적 패소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인용한다. 여기에 그 구절과 박훈의 주장, 그리고 그 주장이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보여주는 댓글 일부를 캡쳐한 이미지가 있다.

이 포스팅은 (내가 캡쳐할 당시) 무려 37회 공유되었고 231명이 좋아요를 달았으며 4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이후 윤지오는 유가족 편이 아니라 가해자의 편을 들었던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통되었다. 정말 그럴까?

박훈이 인용한 위 캡쳐대목의 핵심내용은, 윤지오가 “피고[김종승]가 부른 모임에 연예 관계자들이 많이 있는 편이었고 참석할 때 신인 배우로서 얼굴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노래와 춤을 출 때도 있었지만 강압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피고가 술을 따르게 하거나 술을 마시게 하는 등 술 접대를 요구한 적이 없고 성 접대를 하라고 강요한 사실이 없다”라고 증언한 점을 들어, ‘김종승이 장자연을 폭행 협박하여 식사나 술자리에 참석하도록 강요하였다거나 술 접대를 강요하였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며 성매매를 알선하였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라는 이유로 전부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위의 인용문건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문투로 보아 아마도 사건 판결문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 구절에 기초해서 박훈은 “2010년 장자연 유가족들이 김종승을 상대로 한 술접대, 성접대 강요에 따른 불법행위 책임을 묻는 항목에서 윤지오 증언은 결정적인 패소 원인으로 나온다. 이런 논리는 대법원까지가 확정된다. 유가족들은 김종승이 장자연을 때린 것과 잦은 술자리에 대한 위자료로 거의 무의미한 수준의 금액만을 판결 받았을 뿐이다.”라고 결론 내린다.

판사[위 캡쳐 이미지가 판결문이라고 가정하여 판사라고 부른다]가 윤지오의 진술을 인용근거로 원고[유가족] 패소(사실은 부분승소였지만 여기서는 무시한다) 판결을 내렸다고 해서 윤지오가 피고[김종승]의 편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판단인가? 판사가 윤지오의 참고인 진술들로부터 몇몇 단편만을 들어 편의적으로 인용하거나 혹은 오판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여기서 나는 박훈에게 윤지오의 참고인 진술들로부터 판사가 요약인용하고 있는 것이 윤지오의 진술들에 대한 정확한 요약인지 잘못된 요약인지 직접 윤지오의 진술들을 읽고 다시 평가해 줄 것을 요청한다.  박훈이 윤지오의 진술문으로부터 직접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판사가 인용한 것을 재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박훈이 판사[?]의 판결문 만으로 윤지오를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심각한 엘리뜨주의를 느낀다. 참고인의 진술을 읽지 않고도 그 진술에 대한 판사의 인용만으로 그 참고인을 판단할 수 있다는 태도가 그렇다. 이것은 참고인을 무시하는 태도이며 지금 이 경우에는 사태를 오판하는 위험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윤지오의 진술조서 속에서 정말 윤지오가 저 인용에 나와 있는 것처럼 김종승(가해자)를 편들었는지를 판결문이 아니라 윤지오의 진술문을 가지고 검토해 보려 한다. 

먼저 윤지오는 김종승 회사에서의 노동이 매우 좋지 않았고 김종승이 욕과 폭행을 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예컨대 “김종승은 평소에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직원들에게 욕을 하고 폭행을 하는 것을 봤고 언니들로부터 그날그날 분위기에 따라 행동을 조심해야 된다는 말을 들었고 계약기간 동안에 방송활동 기회는 한 번도 얻지 못하고 김종승이 요구하는 식사자리 술자리에 무조건 나가는 상황에서 이러다가 연기활동은 전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러웠기 때문에 이런 악조건에 동의하고 해약을 했다.”는 진술이 그것이다.

계약을 해지하는 조건도 매우 나빠 부당한 조건들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계약을 해지했다고도 했다. 예컨대 “계약해지를 할 때 600만원의 합의금을 김종승에게 지불하는 것 외에 연예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이 약속을 하지 않으면 김종승이 위약금을 많이 요구하거나 민사소송을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713)는 진술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윤지오는 김종승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진술을 했다. 아래에서는 각 진술주제 하에 윤지오의 진술문을 그대로 옮겨둔다.

1. 김종승의 폭행

2. 김종승의 부당한 노동강요

3. 부당계약을 배경으로 한 접대 강요

4. 또 다른 노동강요

5. 직접 폭력은 없었지만 술접대를 계약에 의해 강요당했다

6. 장자연도 노동을 강요당해서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7.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때는 보복이 두려웠다

8. 접대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나갔다

9. 전속계약서가 아니었으면 나는 또래 친구들과 놀지 접대 자리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노래부르고 춤추게 한 것은 김종승 대표가 잘못한 것이다.

10. 조희천이 강제로 장자연의 손목을 끌어당겨 가슴과 허벅지를 만졌다(앞부분 일부 생략)

11. 김종승은 약속한 생활비도 제대로 입금해 주지 않았다

이상은 윤지오가 김종승의 노동강요에 관해 집중적으로 질문받았던 2009년 7월 8일 진술로부터의 부분 발췌이다. 2010년 6월 25일에 윤지오는 다시 한 번 김종승에 관해 진술한다. 이때의 질문은 주로 문건에 집중되었고 김종승에 관한 진술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이 진술에 법관이 김종승에게 유리하도록 인용할 수 있는 진술이 부분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참고인 윤지오가 가해자의 편을 드는 진술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 윤지오는 앞의 2009년 진술에서는 김종승이 자신과 체결한 계약의 구조적 부당성과 폭력성에 대해 진술했고 뒤의 2010년 진술에서는 그럼에도 술자리에 나가 접대하는 개개의 행동에서 직접적 압박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판결문은 후자의 발언에서 인용을 해서 작성되는데 이것은 윤지오 진술을 전체적으로 고려한 위에서 나온 인용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판결문에 기초하여 윤지오의 도덕성과 입장을 문제삼고 있는 박훈의 판단은 일면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