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2)

윤지오는 정말 수사기관에서 처음 리스트를 봤을까?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의 또 하나의 논거는 앞의 둘 중의 첫번째 즉 김수민이 윤지오로부터 ‘봉은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그 리스트를 봤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김수민은, 이 말을 들은 것이 2018년 12월 10일 윤지오와 만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3차 술자리에서라고 말한다.

“3차째 술자리에서 지오가 장자연님과 소속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었고 솔직히 자기는 장자연이랑 친하지 않았었고 나이차이가 워낙 많이나서 장자연님이 자기를 보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애기야~ 애기네~ 라고 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장자연님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자기는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친하지도 않았고 어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엄마가 와서 위약금을 내주고 다시 외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있었고 외국에 있을때도 장자연님과 따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적은 없었고 한국에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었고 자살소식을 소속사 연락으로 듣고 그 소속사에 있었던 사람들의 조사가 이뤄줘야 해서 본인도 가서 조사를 받았었고 조사를 받고 진술을 하는 와중에 책상에 어떤 문서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걸 우연히 봤었다. 원래 그걸 놓고가면 안돼는건데 책상에 놓여져 펼쳐져 있는 부분을 봤고 그 펼쳐져 있는 부분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게 됐었다. 그때 장자연 언니 자살과 이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저에게 말했었습니다.”

이 진술 내용은 얼마든지 의사소통상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술자리 환경에서의 대화에 대한 기억이고 윤지오가 ‘소설을 쓰고 있다’고 부인하는 내용이므로 큰 가치를 가질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주목받기 어려웠을 김수민의 이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장자연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해온 김대오가 김수민의 그 말을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보충증거로 채택하면서다. 김수민이 윤지오에게서 들었다는 그 말이야말로 리스트가 없었다는 자신의 말과 리스트를 봤다는 윤지오의 말 사이의 간극을 메워준다는 것이다. 즉 장자연 문건 원본에는 리스트가 없었으며 윤지오가 본 것은 수사기관이 만든 2차 리스트라는 것이다. 김수민의 이 말은 또 변호사 박훈과 연결되면서 더욱 더 큰 대중적 힘을 얻었다. 박훈은 미투운동 과정에서 정봉주와 김어준에 맞서 미투를 지지한 바 있기 때문에 박훈이 윤지오를 불신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에 대한 남성적 편견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박훈과 김대오의 개입으로 인해 김수민의 진술이 사회적 호응을 얻었지만 그 진술은 전체적으로 너무 부정확하고 이미 확인된 사실과도 배치된다. 

(1)친밀성: 윤지오는 김병승의 회사에서 나오기 전에는 장자연과 친밀했지만 나온 후에는 소원했다고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고 또 <증언>에서 기록한다. 그런데 김수민은 윤지오가 장지연과 일관되게 친밀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쓴다. 유장호가 장자연의 죽음 후에 이 문제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윤지오와 상의하는 것도 유장호가 윤지오와 장자연의 관계를 각별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윤지오는 김병승과의 계약해지 후 장자연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것에 마음에 걸려 하고 있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쓰고 있고 김수민의 말에 대해 ‘장자연과는 가족보다 더 친밀했던 때가 있었다’말했다.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도 이 말과 유사하다.

(2)장자연에 대한 윤지오의 앎: 김수민은, 장자연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었는지 윤지오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지오는 성상납 강요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장자연이 겪은 성추행에 대해서는 직접 목격했으며 그 가해자인 조희천은 윤지오의 증언에 기초하여 기소되었다.

(3)윤지오에 대한 김수민의 앎: 김수민은 윤지오가 계약해지후 캐나다로 돌아가서 살았다고 말한 것으로 쓰고 있다. 그런데 윤지오는 <증언> 14장과 15장에 상세히 서술되어 있듯이 계약해지 후에도 오랫동안 드라마 <선덕여왕> <애자>에 단역 출연하고 치어리더로 돈을 벌고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의 전속모델선발대회에 출전하고 케이블티비 예능프로그램 <초.건.방>에 출연하고 메인모델 몸대역으로 돈을 벌고 미인대회와 뮤직비디오와 연극에 출연하는 등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한국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김수민의 글에 따르면 장자연이 자살했을 때 윤지오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온 것처럼 읽히게 되는데, 윤지오는 안성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전 매니저로부터 자살 소식을 듣고 자정이 넘어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4)장자연 리스트: 김수민에 따르면 윤지오는 첫 조사를 받을 때 경찰의 책상에 놓여 있는 문서에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고 그것을 장자연 리스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 역시 지금까지 드러난 것과는 크게 다르다. 이 점은 조금 뒤에서 논한다.

윤지오가 했다는 말에 대한 김수민의 재구성은 신뢰하기 어렵다. 장자연 사건 이후 수 많은 진술들, 기사들, 증언들, 분석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불명확한 부분도 있지만 여러 가지 진술들이 일치하고 증거들(카드내역, 통화기록 등)도 있는 명확한 부분도 있다. 그런데 김수민은 이 명확한 부분들조차도 사실과 다르게 재구성함으로써 그가 이 사건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복잡한 사건을 한 번 만나 나눈 대화에서 김수민이 윤지오가 말하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귀를 가졌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런 점에서 윤지오의 말에 대한 김수민의 글을 읽을 때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카톡 대화도 그런 맥락을 고려하며 읽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반해 장자연 문건에서 리스트를 봤다는 윤지오의 주장은 김수민이 들었다는 그 말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일련의 자료들 속에서 일관성과 설득력을 갖고 있다. 

(1) 윤지오는 장자연 장례식장(2009년 3월 7일-9일)에 있으면서 장자연의 친언니로부터 유장호와의 통화내용에 대해 듣는다. 유장호가, 장자연이 남긴 심경고백 문건이 있는데 거기에 ‘공개되지 말아야 할 내용’도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2009년 3월 15일 참고인 진술) 

(2) 장례식이 끝난 후 3월 10일 김대오 기자가 유장호로부터 입수한 문건의 실재를 보도한 후 윤지오는 유장호와 통화를 한다(3월 12일). 그 통화에서 유장호가 누군가의 이름을 대면서 윤지오가 그 사람 명함을 갖고 있으면 그의 소속과 직위를 알려 달라고 하는 방식으로 여러 명에 대한 확인이 진행되는 윤지오는 여기서 일종의 리스트(목록)의 실재를 인지하고 그것을 통화녹취하여 검찰에 증거로 제출한다.

(3)유장호가 윤지오와의 통화에서 “내가 …자연이 이거[문건] 경찰서 넘길 때도, 목록이랑 그런 건 넘길 생각이 없었어.”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장호가, 장자연 문건 중에서 ‘리스트’부분은 제외하고 일부만 ‘공개’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말은 (1)에서 말한 ‘공개되지 말아야 할 내용’이 이 ‘목록’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장호는 김종승을 타격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리스트’에 적힌 인물들의 명단이 모두 공개되는 것은 사실상 불필요한(혹은 이미숙, 송선미 등과의 관계에 비춰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을 수 있다. 3월 15일 진술에서 윤지오가 ‘리스트’의 존재를 암시하면서도 명확하게 진술하지 않은 것은 경찰이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유장호와의 이런 통화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4)윤지오가 ‘리스트’의 실재를 명확하게 진술하는 것은 2010년 6월 25일 진술부터이다. “어떤 장에는 성함만 기재되어 있으면서 어떠한 언론사에 누구, 어디 무슨 사의 누구라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5)윤지오는 봉은사에서 유장호가 넘겨준 사본을 먼저 보았고 경호원이 봉은사 땅에서 파온 원본을 그 다음에 보았다고 한다. 그 두 본에 이름만 혹은 직함과 함께 기재된 ‘리스트’가 있었으며 양자는 일치했다는 이 진술은 2019년 3월에 출간된 <13번째 증언> 11장 ‘장자연 리스트’에서도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으며 유장호의 진술도 이와 부합한다.

이상의 진술들과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이지윤 기자가 말하듯이, ’리스트’가 있었고 그 ‘리스트’를 윤지오가 보았다는 추론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판단되며 김수민의 주장은 자신이 이해한 그대로의 진술이라 할지라도 윤지오의 말을 상황의 복잡성 속에서 이해할 상황이해 능력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오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김대오의 주장은 자신의 경험의 한계 속에서 타인(윤지오)의 말을 재단함으로써 발생하는 프루크루테스 침대 형 인지착오로 보인다. 유장호가 그 ‘리스트’를 윤지오와 가족 외의 경찰이나 기자들에게는 제출하거나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기자 김대오는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자신의 한계 속에서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윤지오는 수사과정에서 문건의 끝에’“지인분들과 가족분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언니[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글이 작성되어 있었습니다’라고 진술한다. 김대오 기자는 자신이 본 문건에는 이런 내용이 없기 때문에 역시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윤지오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단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김대오 기자가 보지 못한 리스트의 실재를 뒷받침하는 반증으로 될 수도 있다. 리스트의 끝에 적힌 바로 그 글귀를 윤지오는 리스트를 봤기 때문에 기억하지만, 김대오는 리스트가 없는 문건의 일부만을 보고 그것을 전부로 오인하고 때문에 그러한 글귀가 없었다고 단정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1)

현재 “장자연 리스트”가 경찰이나 검찰의 수중에 없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장자연 문건 사본을 보도한 kbs도 리스트를 입수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장자연 문건의 실재를 처음 알렸고 그 “원본”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김대오 기자가 “목숨을 걸고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김대오 기자가 리스트를 보지 못했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리스트를 본 두 사람이 있다. 그것은 윤지오 배우와 전 호야엔터테인먼트 대표 유장호다. 윤지오배우가 리스트를 보았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은 다음 네가지다.

1)십 수 차례에 걸친 수사기관 및 진상조사단 증언들과 무엇보다도 대중 앞에 공개적으로 내놓은 증언인 <13번째 증언>의 11장: 여기서 윤지오 배우는 봉은사에서 유장호 대표로부터 문건의 사본을 넘겨받아 보았고 봉은사 땅밑에서 꺼내온 원본을 장자연 씨의 친언니가 읽는 것을 함께 보았고 소각하는 것도 보았다고 말한다.    

2)유장호의 수사기관 초기 진술: 여기에서 유장호는 문건을 윤지오에게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3)고 장자연 배우의 오빠의 진술: 이 진술에서 장자연의 오빠는 문건의 원본과 사본을 보고 태운 현장에 윤지오가 있었다고 말한다 

4)유장호와 윤지오 사이의 통화 녹취록: 이 통화기록에서 유장호는 경찰에 자료를 넘길 때 장자연이 술접대한 사람 ‘목록’은 넘기지 않을 셈이라고 윤지오에게 말한다.

등이다. 

1년 넘게 장자연 사건을 취재해 왔다는 kbs 이지윤 기자는 ‘‘장자연 리스트’는 실재했나? 기록으로 살펴본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2019년 4월 24일)에서 이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이런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윤(지오) 씨가 최소한 장자연 문건을 봤다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겁니다.”(https://news.kbs.co.kr/news/view.do?ncd=4187063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수민-김대오-박훈 그룹은 우파 유튜브 채널인 가로세로연구소의 강용석-김용호-김세의와 보조를 맞추면서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해 왔고 이것은 제도 언론들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보도됨으로써 강력한 여론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리스트는 없었다는 이들의 주장은 “윤지오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거짓말하고 있다”는 인신공격 주장으로 발전되었고 다시 그것은 “윤지오는 돈벌이를 목적으로 증언자로 나섰다”는 음해와 모욕 주장으로까지 발전되었다. 그 주장이 주장을 넘어 행동으로까지 발전한 것이 박훈 변호사의 윤지오에 대한 고소와 고발이다. 이것의 정치적 효과가 윤지오 증언자의 증언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고 그 증언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며 재수사의 사유를 제거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가해 권력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핵심적 근거는 무엇인가?

1)술자리에서 김수민이 윤지오로부터 들었다는 말: ’윤지오가 리스트를 봉은사가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봤다고 했다’.

2)김대오 기자의 증언: 유장호를 만나 입수한 문건에는 리스트가 없었다. 

2)부터 살펴보자. 김대오 기자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장호의 위 통화기록을 통해 간단히 해석할 수 있다. 유장호가 보여준 문건에서 김대오 기자가 “보지 못했으니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지 못한 것”은 “없는 것”과 다르다. 우리가 공기 중의 세균을 보지 못한다고 해서 공기 중에 세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화기록을 보면, 유장호는 경찰에게 ‘목록’(리스트)은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기자인 김대오에게 유장호가 ‘목록’(리스트)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경찰과 기자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을 고려하면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된다. 그러므로 김대오 기자가 “(이름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리스트는 원본 속에서 없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데 이것은 목숨을 너무 값싸게 내놓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착오와 지나침에 대해 시민들께 사과하고 “내가 본 문건에서 나는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고 있는 그대로 발언을 정정하는 것이 신상에 좋으리라 본다.(계속)

보론: <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의 쟁점들

::다중지성의 정원 페이스북에 공유된 나의 글 <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 에 대한 댓글과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누가 말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으므로 여기에서는 댓글자의 아이디 대신 Response의 R로 대체하고 부분적으로 문장을 수정했다. 댓글을 달아준 분께 감사드린다.(Amelano Joe)

R1: 2009년 당시 윤지오 증언 때문에 장자연 사건의 가해자들이 처벌 받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윤지오씨가 제대로 된 증언자라면 사과는 하고 시작했어야 했지요. 무슨 사과를 했나요? 장자연씨 죽음의 진실을 알리고 싶다기 보다 본인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고 장자연사건의 목격자이자 증언자라는 분이, 하루에 한시간씩만 자고 목숨에 위협을 느낀다는 분이..!인스타라이브로 협찬 화장품 파는거보고 경악.

R1에 답합니다.

1. 장자연 사건 재조사는 권력형 성폭력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누가 범죄자인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범죄를 방지할 수 있는가를 살피기 위한 조사이지 증언자 윤지오가 정직한 사람인가 부정직한 사람인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등 그의 인격에 대한 조사가 아닙니다.

2. 윤지오 배우가 개인 방송(인스타라이브)에서 협찬화장품 파는 것(‘티글’)에 ‘경악’하신다면 JTBC가 자동차를 파는 것(‘대들보’)을 보실 때는 어떤 느낌이신지요? 

3. 윤지오 배우의 증언 때문에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미미했고 유가족이 보잘 것 없는 피해보상만 받았다는 박훈 변호사의 논변은 사법판결이 증언 하나에 좌우된다고 보는 소박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특히 장자연 사건처럼 권력자들이 판결의 향방을 뒤흔드는 정치적 사건에서, 만약 윤지오가 다르게 증언했으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엄중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판결의 책임을 이제 갓 스물두살의 단역배우인 증인 여성에게 뒤집어 씌우고 성폭력체제와 그 권력의 전략전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자학적 사고방법이라고 봅니다. 윤지오 배우가 강요를 인정했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가해자를 면책시킬 구실을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지난 10년간 이 사건을 둘러싼 사법사를 고려할 때 정황상 더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라고 봅니다.

4. 그런데 윤지오 배우는 <13번째 증언>에서도 자신의 경우에 강요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윤지오 배우가 당시 (아니 어쩌면 지금도) 강요를 직접적 강요나 폭력으로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장자연 배우와 자신을 옥죄이고 있는 구조적/계약적 폭력과 강요를 ‘강요’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사법체제도 이 구조적 강요를 ‘강요의 범죄’(강요죄)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바로 이 구조적 강요의 포로입니다. 2009년 재판과 관련하여 한 가지 고려사항을 더 추가한다면 윤지오 씨는 장자연 씨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야 했고 또 배우로서 살고자 했으며 연예계는 바로 그 가해자들이 쥐고 흔드는 권력무대였다는 점입니다. 만약 R1 님이 윤지오 씨와 동일한 경우의 증인으로 법정에 선다면 어떻게 증언하시겠는지요? 이 두가지 사항을 고려하고서도 윤지오 씨가 사과를 해야 할까요?

5. “장자연씨 죽음의 진실을 알리고 싶다기 보다 본인 이름을 알리고 싶었던 사람이었다고 봅니다.”는 R1 님의 주장은 첫째 항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사태의 본질과 무관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으로 화살을 윤지오 배우에게 돌릴 때 성폭력의 당사자들과 성폭력 체제는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윤지오 배우를 증언자로 한국으로 부른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들, 즉 촛불국민입니다. 증언자가 선인, 영웅, 투사여야 할 이유가 있는지요? 증인은 사실에 대한 증언을 하는 사람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대한 증언을 해줄 사람이라면 평소에 거짓말쟁이거나 사기꾼이거나 도둑이거나 강도거나 심지어 살인자라 할지라도 우리들에게는 소중하므로 그가 ‘사실’에 대한 증언만을 해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왜 그 증언자가 그 ‘증언’ 때문에 여론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요? 게다가 촛불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자신이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이 필요로 하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면 (그가 증언 외의 삶에서 무엇을 하건) 그 증언만으로 국민들이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요?   

R2: 진정성을 갖고 재수사를 준비하는 거였다면, 그때의 판결문으로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수 있었을테지요. 사과를 하고 출발하는 것이 옳았을 것 같고. 순간순간의 거짓말이라든지 태도논란, 돈이 먼저인듯한 행동들은 결국 고인이 된 장자연씨를 이용한 자기 정치일 뿐. 재수사와는 거리가 멀어보여요. 책을 내기 전에 고인 가족들에 최소한의 협의는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절차는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니까요.. 재수사에 방아쇠를 당긴 사람들이 윤지오에게 놀아난 꼴처럼 되어버린 상황이 황망하고 당황스러워서.. 더욱 화가 나네요.

R2에 답합니다.

1. 윤지오 씨는 “진정성을 갖고 재수사를 준비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물론 한국 정부의 그 요청은 촛불국민의 재수사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이구요. 윤지오씨는 한국 정부의 증언 요청에 ‘증언이 자신을 더 위험하게 하므로 오고 싶지 않다’는 거절 의사를 표했으나 거듭된 요청에 부득이 오게 된 것입니다. 증언자 윤지오 씨에게 진정성의 자격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며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윤지오 씨에게 진정성이 없다고 느껴 환멸을 느끼신다면, 그것은 윤지오 씨의 책임이 아니라 환멸을 경험하는 R2 님 자신의 문제일 것입니다.

2.윤지오 씨의 말 중에 거짓말로 ‘확인’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많은 사람들이 윤지오 씨의 증언을 이미 거짓으로 단정하고 있는데, 그 증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조사와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문제입니다. ‘윤지오의 증언은 거짓’이라는 말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선동이지 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윤지오 씨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은 윤지오 씨 논란이 터진 이후에도 과거사진상조사단과 과거사조사위원회에서도 확인해준 사실입니다.

3.윤지오 씨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윤지오 씨의 그 사나와 보이는 표정과 기자들 앞에서의 오만한 태도가 역겹다고 말합니다. 나는 윤지오 씨가 남성 기자들 앞에서 취한 그 ‘오만’해 보이고 ‘사나와’ 보이는 표정과 태도야 말로 권력에 굴종하는 팬시 여성상과는 다른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준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4.돈이 먼저인 듯한 행동들이 있었던가요? 인세 12%? <13번째 증언> 같은 이슈파이팅하면서 많은 판매부수가 예상되는 도서에 대해서는 결코 높은 인세가 아닙니다.(참고로 나는 출판인입니다.) 후원계좌, 해외펀딩? 무엇이 돈이 먼저인 듯한 행동인지요? 답해 주신다면 그에 대해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5.윤지오씨가 가족들과 협의했는지 않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김수민 작가가 <증언> 출판에 대한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정보의 출처가 윤지오 씨라면 협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봐야 하겠지요. 협의는 반드시 동의를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즉 유가족들의 정확한 뜻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김수민 작가가 가족의 뜻의 ‘대의자’로 자임하고 있을 뿐입니다. 혹시 가족의 입장 표명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요. 경청하겠습니다.

6.재수사에 방아쇠를 당긴 사람들은 촛불국민과 미투운동입니다. 윤지오 씨는 이들을 뒤흔들 수 있을 만큼 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촛불국민과 미투운동의 재수사 요구를 뒤흔들고 있는 것은 윤지오 씨가 아니라 윤지오 씨의 인격에 대한 공격을 통해 그의 증언을 무력화시키고 재수사를 방해하고 있는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와 그 파수꾼들입니다. 

7.‘황망’과 ‘당황’이야말로 그들이 우리들 속에 불러일으키려는 바로 그 심리적 효과입니다. ‘화’를 윤지오 씨가 아니라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와 그 작전세력에게 돌려야 할 때입니다.

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4)

민중/다중을 무장해제시키는 순수주의라는 무기

유가족이 원치 않는 증언행동(그것이 <13번째 증언> 출판증언이건 진상조사단 출석증언이건)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수민 작가가 윤지오 배우에게 준 메시지였고 그 메시지는 진실규명을 가로막는 데 사용될 ’가족주의’라는 무기였다는 것이 지금까지 이야기의 논지다. 이것은 최근에 카톡 공개를 통해 윤지오의 증언내용(메시지)이 아니라 윤지오라는 인격이 문제라는, ‘유가족을 비난하면서’ 증언행동을 한 증언자(메신저)가 문제라는 공격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증언자의 진실성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증언의 진실성을 약화시키는 공격이다. 윤지오가 장자연과 “친하지도 않았다”(가족주의적 친밀성론)는 음해도 이러한 공격의 연장이다.

또 하나의 공격은 윤지오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 즉 윤지오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공격으로 나타난다. 윤지오의 증언 목적은 돈벌이에 있었다는 김수민 작가, 박훈 변호사의 주장이 그것이다. 증언자가 어떤 의도로 증언에 임했는가는 증언의 본질적 구성요소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언자에 대한 의심이 증언에 대한 의심을 불러오는 것은 현실이다. 윤지오 배우의 증언 이후 그에 대한 비난은 증언의 진실성보다는 증언 의도의 진실성에 집중된다. 그런데 이 비난은 “증언자는 순수해야 한다”(순수주의)는 대전제를 깔고 전개된다. 

김수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윤지오의 순수성을 믿었고 옳은 일을 하는구나 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하시듯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만 … 시간이 지날수록 지오가 하는 행위는 장자연이 안 보이고 윤지오가 부각되는 행동들이었습니다. 국민청원을 하고 경호비 써야 한다며 후원계좌를 열고 그 이후 비영리재단을 만든다며 후원을 요청하며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윤지오의 행보를 보면서 제 자신도 속았구나를 느끼게 되었고…”.

이미 살펴보았듯이 자료들은 김수민 작가가 <증언>의 출판과 과거사진상조사단 증언에 반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위의 인용은 그가, 윤지오의 증언만이 아니라 윤지오의 국민청원행동에도 반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증언행동에 수반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취한 후원계좌 개설에도 반대하고 있음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김수민 작가의 조언 방향은 궁극적으로는 윤지오가 증언행동을 중단하라는 것, 다시 말해 캐나다로 돌아가라는 쪽을 향해 있다. 윤지오 배우가 “옳은 일”을 한다고 김수민 작가가 믿었음을 지지할 어떠한 자료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가 ‘그릇된 일’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지오 배우가 김수민 작가가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실행했기 때문에 양자간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윤지오 배우는 정부가 자신에게 제공하는 보호조치의 부실함에 대해 문제제기했고 자비경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 경험 위에서 비영리후원단체 ’지상의 빛’을 조직하여 증언자들을 비롯하여 보호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Gofundme 펀드계좌의 개설동영상을 보면 이 계좌는 이 ‘지상의 빛’ 활동 외에 진상조사단에서 이미 증언한 자신이 대한민국의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기간(4월 30일)이 끝나 보호가 해제된 상태에서 캐나다로 돌아갔을 때 필요한 자구보호조치를 이유로 개설한 것이었다.

김수민 작가는 이러한 행위가 “순수성”을 벗어난 것이라고 비난한다. 이미 <증언>이 출판되고 진상조사단에서의 증언이 이루어진 뒤의 일이다. 이것은 증언을 막는 데 실패한 사람이 증언자를 비난함으로써 증언의 진실성을 흔드는 최후의 공격방식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윤지오 배우는 자신을 거짓말장이요 돈벌이꾼으로 모는 공격에 대해 그것이 “마지막 발악”이라고 응수했다. 그 공격에 사용되는 것이 ‘순수주의’다. 정치적인 행동(정치적 영향력의 행사)이나 경제적인 행동(소득행위)은 순수하지 못하며 증언자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것은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이 교육자 종교인 문필가 등을 동원하여 민중/다중의 두뇌와 가슴 속에 주입하는 아편이다. 이것은 민중/다중을 무력하게 하며 권력과 부의 소수 독점을 가능케 하는 정신적 장치다. 지주들은 소작료를 낮추어 달라는 소작들의 요구를 추잡하게 쌀 몇 되가지고 소란을 피우냐고 비난한다. 기업주들은 임금을 올려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돈 몇 푼 더 달라고 싸움을 하는 것이 창피하지 않냐고 비난한다. 권력자들은 문학은 정치나 참여를 주장하지 말고 자연을 노래하는 순수성을 보일 것을 요구한다. 전두환 군부는 계엄군의 학살행위에 맞서 방어무기를 든 광주시민들을 순수하지 못한 ‘폭도’라고 불렀다. 순수주의는 ‘권력과 돈은 내가 다 갖겠으니 너희들은 무(기)력과 가난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며 압제와 착취의 장치다.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 배우에게 ‘영리’하지 말고 ‘영악’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요컨대 돈을 필요로 하는 일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윤지오 배우의 증언행동을 무너뜨리는 데 총력을 다한다. 처음에는 증언을 막으려 했고 그것이 실패하자 증언자를 도덕적으로 무너뜨림으로써. 김대오 기자는 이러한 김수민 작가의 노력을 100% 지지한다고 배서(背書)를 하고 박훈 변호사는 해외펀딩이 사기라고 하면서 고발을 준비한다. 이것은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을 반대하는 문필-언론-법조의 연합전선이다. 이것이 김김박론의 정체다. 침묵하는 극소수의 언론을 제외한 온갖 언론들이 윤지오는 거짓말쟁이며 그의 한국행이 돈을 쓸어담기 위한 사기행각이었다는 식의 선정적 주장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이 연합전선의 정치적 의도를 여론화하는 데 가담한다. 이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거짓을 걸러내야 한다”는 말로 정당화된다. 이러한 담론구성을 통해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윤지오 배우의 증언을 통해 수사선상에 오를 위험이 커진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이다.

<증언>에서 윤지오 배우는 자신이 ‘순수한’ 사람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은 배우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온 사람임을 밝혔다. 최후의 자존심이 짓밟히지 않는 한에서는 목표를 위해 냉대와 수모, 노예계약까지 무릅쓰고 노력한 입지전적 인간임을 밝혔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600만원의 합의금을 물고 소속사와의 계약을 해지한 후 소속사 없이 고군분투해야 했던 엑스트라 단역배우. 이 무렵 동료 배우 장자연은 세상 사람들이 이름을 알기 시작할 때 죽음을 맞는다. 장자연의 죽음에 관해 왜 증언을 하려 합니까?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그리고 제 스스로의 삶에서 창피하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평생을 10년 넘게 연기만 하고 싶었던 아이인데 그게 좌절되면서 좀 무너졌었어요. 안 좋은 제안을 언니(故 장자연 씨) 나이 때가 되면서 처음 듣게 된 거죠. 저는 성 상납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그런 제안 자체를 받았다는 게 살면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기억이고…” 단역 배우였던 10년 전에 권력자들에게 청춘과 명예를 빼앗긴 그는 이제 촛불국민과 정부의 요구로 증언자가 된 후 거짓말쟁이, 사기꾼, 영악한 마녀로 내몰려 캐나다로 강제 추방당했다. 재계-정계-언론계-법조계로 짜여진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는 촛불과 미투 이후에도 자신의 힘이 건재함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3)

가족주의(계속): 가부장주의 가족주의 개인주의는 한 묶음

장자연의 죽음을 부끄러운 것으로, 좋지 않은 일로 독해하는 것은 책임을 죽은 장자연의 것으로 돌리는 것이고 성폭력을 행사한 권력자들을 면책하는 것이며 여성이 남성 권력자들의 성적 노리개로 취급되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가부장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가부장주의가 한국 사회, 아니 본질적으로 세계 자본주의 전반의 지배체제이고 지배이데올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황상 이해될 수 있는 일로 보인다. 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는 말한다: “여성에 대한 직접 폭력의 다양한 양상은 시대와 무관한 남성의 타고난 가학성 때문이 아니다. 이는 남성이 부와 생산적 자본을 경제적 힘이 아니라 직접적인 폭력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통제를 통해 축적하고자 하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원시적 축적’ 과정의 메커니즘 때문이다.”(<가부장제와 자본주의>, 43쪽) 그런데 언론을 통해 ‘페미니스트’로 소개되고 있는 김수민 작가가 가부장주의(의 일부인 가족주의)에 공감하고 동조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김수민 작가는 “그렇게 나에게 유가족 욕을 해 놓고선 방송이나 언론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연언니랑 자연언니 유가족을 위해서 책을 냈다는 말을 하는 걸보고 인연을 끊어야 겠단 결심을 햇었습니다”라고 쓴다. 실제로 윤지오가 방송이나 언론 앞에서 그렇게 했는지 나는 모른다. 윤지오 배우의 유가족에 대한 비난이 단순한 “욕”이 아니라 윤지오의 “고유한 사태이해 방식”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 그럼에도 윤지오가 “자연언니 유가족을 위해서 책을 냈다”는 말을 정말 했다면 그것은 그의 진심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가족주의의 압박을 윤지오도 피할 수 없었고 그것에 타협하는 모습이라고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주의의 성격과 한계를 문제삼는다고 해서 유가족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지금까지 자신의 가족들이 왜 죽었는가 진실을 밝히라고 수년동안 온갖 비난, 조롱, 냉대를 무릅쓰고 질문하고 항의하고 탐사하고 있는 주체들이다. 나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대의정부보다 더 실제적인 생명정부로 기능해 왔다고 쓴 바 있다.(<절대민주주의>, 10장) 이것은 그 누구보다도 유가족에게 실재/진실로 육박해갈 잠재력이 있고 그것이 또 현실화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세월호를 탔던 사람중 304명은 선사, 선주, 선장, 선원들 그리고 정부의 차가운 무관심 속에서 침몰하는 배에 갇힌 채 들을 수도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죽어갔다. 장자연은 소속기획사 대표와 권력자들이 쳐놓은 야합과 착취의 거미줄에 걸려 청춘을 빨리면서 발버둥치다 죽어갔다.

윤지오 배우는 <증언> 15장 ‘끔찍한 제안’에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 제작사이면서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아버지뻘 되는 남자로부터 ‘잠자리를 같이하면 자신이 제작하는 드라마에서 큰 역할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거절한 이야기다. ‘아버지로서 혹시 따님이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윤지오)라는 물음에 그 남자는 화를 내며 ‘내 딸은 내 딸이고 너는 너다”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며 긴 시간을 뺑뺑 돌아가려 하냐?…이런 제안을 받고 싶어서 나를 만나려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라고 말한다.

대들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방송과 다른가? 장자연과 윤지오는 작은 세월호를 타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은 구조되었고 또 한 사람은 구조되지 못했을 뿐이다. 김수민 작가는 촛불 국민들의 여망으로 겨우 점화된 장자연 사건 재조사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윤지오 배우에게 조언한다: “조사단인지뭔지 공식적인 그런거 아니면 하지마 도와주지 말고. 너가 해줄 필요 없잖아. 너가 손해보면서까지 해줄 필요가 뭐있어?” 이것은 사회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는 개인의 이익을 선택하라는 개인주의를 설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지오 배우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장자연 사건에 대해 진실을 증언할 의지를 가진 유일한 즉 대체불가능한 증언자이다! 김수민 작가는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출판을 통한 증언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나아가 진상조사단에서의 증언까지 막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랬던 것일까? 나는 대검의 과거사 진상조사단과 법무부 과거사 조사위원회가 이 점에 대해서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2)

  • 가족주의 관점

김수민 작가가 “13번째 증언”(이하 <증언>) 출판과정에서 유가족과 관련해 윤지오에게 조언해 준 것은 다음 두 가지다. 1)<증언>은 장자연에 관한 책이고 장자연 이름으로 홍보하게 될 것이며 거기에서 수입이 발생할 것이므로 장자연의 유가족 동의를 구해야 한다 2)유가족 동의를 구하지 않고 책을 내는 경우에는 책에서 장자연 이름을 빼야 할 것이다. 

이런 조언을 하게 되는 김수민 작가의 고유한 감성양식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유가족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바꿔 생각해봄으로써 이러한 조언을 하게 되는데 그 입장바꾸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1)내 가족이 좋지 않은 사건으로 자살을 했다면 나라도 그 기억을 가슴 속 깊이 묻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2)더구나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그 사건을 책으로 낸다면 나라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3)이에 비추어 볼 때 유가족은 장자연이라는 이름이 사람들 입방아에 다시 오르 내리는 걸 원치 않을 것이고 책의 출판을 반대할 것이다.

이것은 <증언>의 출판여부를 유가족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강한 판단을 표명하는 것이며 김수민 작가 자신이 <증언>의 출판에 심정적으로 반대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13번째 증언>이라는 책은 고 장자연님의 유가족들의 동의를 얻지 않고 진행되었고 유가족측에서는 지오가 책을 내는 걸 반대했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쓴다.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어쨌든 <증언>에 대해 김수민 작가는 가족이 책의 출판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책을 출판하는 것에 자신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고 이러한 입장을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라”는 방식으로  윤지오 배우에게 “몇 차례” 표명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수민 작가의 감성양식(“인간의 도리”)에 비추어 보면 <증언>은 출판되어서는 안 되는 책이며 출판될 수도 없는 책이다. 왜냐하면 유가족이 이 책의 출판에 반대하고 있으며 자신이 보아도 유가족 동의 없는 책은 출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 배우의 책과 언론 인터뷰 사이의 간극에서 “인연을 끊어야 겠단 결심”을 할 정도의 위선과 환멸을 느꼈다고 서술했지만 이미 책의 출간 여부를 둘러싼 논의과정에서부터 갈등이 발생하여 커가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윤지오 배우는 <증언>의 출판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고 김수민 작가는 그것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갈등의 성격은 무엇인가?

김수민 작가의 조언에 대한 윤지오 배오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를 먼저 살펴보자. 김수민 작가는 “장자연 유가족들은 돈밖에 모르는 인간들이다. 이 사건 덮으려고 했던 건 장자연 유가족들이라며 유가족을 모함했”다고 쓴다. 이것은 장자연을 다루는 책이고 장자연으로 홍보할 것이니 유가족의 동의를 구하라는 조언에 대해 윤지오 배우가 “저는 제가 희생하고 인터뷰 자체에서 제 얼굴 이름 공개하고 쓰는 거고 내놓고 자연언니 이야기 쓰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연예계에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고 그 중에 언니의 이야기는 일부분이고 이니셜로 모든 처리할거고요”라고 한 후에 “유가족은 돈밖에 모르고 저도 고인에 대해서 명예훼손하시싫고(원문대로) 그쪽 가족은 오히려 언니를 제물삼아 모든 사건을 덮고 은닉하려했엉ㅅ(원문대로)”라고 응답한 것에 대한 해석일 것이다.

‘모함’은 사전적으로 “나쁜 꾀로 남을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함”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윤지오 배우의 말은 왜 김수민 작가에게 ‘모함’으로 해석되었을까? 김수민 작가가 유가족은 비난되어서는 안 된다, 유가족의 아픔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유가족이 “좋지 않은 사건”이 공개되는 것이 싫어서 장자연 문건의 소각을 요구하고 실행한 것은 무조건적으로 정당하다는 가족중심적 사태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대표가 제시한 장자연 문건의 소각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 유가족이었다는 데에는 증언들이 일치한다. <증언> 111쪽에는 이 문건의 소각에 이르는 유대표와 유가족 사이의 팽팽한 논란 과정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유대표는 “이 문건을 없애면 돌이킬 수 없다”, “자연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언론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가 공개를 요구하는 동기가 장자연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무시한다). 유가족은 “왜 내 동생 이름이 또 세상에 나와야 해? 좋은 일도 아닌데… 죽은 애가 살아돌아오는 것도 아닌데!”라며 소각을 주장한다. 그 문건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가? K 사장의 협박, 드라마촬영비를 배우에게 전가함, 어떤 감독의 술접대 골프접대 요구,  K사장의 술접대요구, K 대표의 접대강요 및 반복되는 욕설과 구타, 잠자리 강요, ㅈ일보 B 사장의 잠자리 요구, 그 아들의 술접대 … 등등이다.(<증언> 126, 127쪽)

김수민 작가가 장자연 사건을 “좋지 않은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유가족도 “좋은 일이 아닌” 것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누구의 시선일까? 장자연 문건의 작성맥락이 이해관계 투쟁이었음을 이제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문건에 서술된 것은 장자연이 차마 말못하고 있었던 “억울함과 한”의 기록이었음이 이 맥락 때문에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가족의 선택들이 주어진다. 분노할 것인가 부끄러워할 것인가? 장자연과 공감할 것인가 장자연을 대상화할 것인가? 다시 말해 장자연 입장에 설 것인가 내/가족의 입장에 설 것인가? 아니 사회적 존재로서의 장자연 입장에 설 것인가 개인적 존재로서의 장자연 입장에 설 것인가? 권력자들이 잘못이라는 입장에 설 것인가 장자연이 잘못이라는 입장에 설 것인가? 궁극적으로 “좋지 않은 것”은 권력자인가 장자연인가, 권력자가 책임져야 하는가 장자연이 책임져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로 주어진다.

내가 보기에 가족들은 후자의 관점을 받아들였고 김수민 작가도 후자의 관점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의 관점을 받아들였다면 문건은 소각되어서는 안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권력형 성폭력을 억제하는 장자연의 소중한 증언이자 “인간의 도리”를 지시하는 안내판으로 기능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지오 배우의 말 “그쪽 가족은 오히려 … 모든 사건을 덮고 은닉하려했엉ㅅ”는 이런 맥락에서 재해석된다면 결코 ‘모함’으로 규정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윤지오 배우 고유의 사태이해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윤지오 배우는 <증언>의 맨 마지막 문장을 “나는 말한다. ‘내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도 아니야’”(245: 나는 여기서 ‘네’를 ‘자연 언니’로 해석한다)로 끝맺으면서 “죽음으로 말하려 했던 언니의 고통이 다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 기억들을 피하지 않고 다시 마주했다”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윤지오의 증언을 바라보는 “가족주의”와 “순수주의” 시각에 대하여(1)

1.

윤지오 배우의 “13번째 증언” 전에 장자연 사건에 대한 한국사회의 “지배적 진실”(사법적 진실)은  우울증-유서-자살이었다. 이 선언된 진실과 모순되는 다양한 사실들과 진술들, 기사들에도 불구하고 장자연의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질병에 있는 것으로 판결되었다.

윤지오 배우의 “13번째 증언”은 유서는 없었으며 문건만이 있었고 그것은 이해관계 투쟁 속에서 자의반타의반으로 작성되었을 수 있는 것임을 확인했고 그 문건이 장자연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는 여러 사람(대개는 재계 언론계 정치계 문화계 법조계 등의 권력자들)의 이름과 직함(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증언은 이전의 “지배적 진실”이 잘못된 것이었고 사태를 재조사해서 참된 진실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최근 김수민 작가, 김대오 기자, 박훈 변호사(김김박)는 윤지오 배우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즉 1)윤지오는 ‘장자연’ 리스트를 본 적이 없다 2)윤지오는 거짓말로 대중을 속여 인세, 후원금, 해외펀딩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윤지오 배우를 명예훼손, 모욕죄로 고소하고 또 사기죄로 추가고소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러한 폭로 및 사법 행동은 대검찰청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이 장자연의 성폭력 피해 의혹에 대해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에 요청한 시점과 일치한다. 이제 윤지오 배우의 증언은 진실성을 의심받기 시작했고 이 논란 여부에 따라 검찰 재수사가 이루어질 것인가 말 것인가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김김박 문제제기와 고소(이하 “김김박론”)의 실제적 효과는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 내부에 이견을 낳고 국민적 여망으로 부상한 장자연에 대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 재조사 문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재조사가 없다면 우울증-유서-자살이라는 기존의 진실담론이 더욱 더 공고하게 굳어질 것이고 권력형 성범죄는 없었던 것으로 귀착될 것이다. 이것은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 각계에서 무수히 제기되고 또 확인된 권력형 성범죄의 실재와 상충하는 진실이 장자연 사건을 이해하는 진실로 굳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제 누구나 거짓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낡은 “사법적 판단”이 “진실”로 행세하게 된다는 뜻이다.

어쨌건 증언에 대한 의혹제기와 고소가 있는 만큼 윤지오 배우의 증언을 둘러싼 “사실이 무엇인가?”는 조사와 판결을 기다려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김김박론”은 특정한 도덕적 정치적 관점을 전제하고 있고 그 관점에 윤지오 배우의 증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왜곡하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사실이 무엇인가가 드러나기를 기다리면서 여기서는 드러날 사실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김김박론”에서 내가 발견하는 것은 두 가지 편향된 관점이다.  그것은 가족주의와 순수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관점의 문제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권력형 성폭력 사건(장자연의 경우)의 현상태와 문제에 대한 메모

1.

‘장자연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언론계 재벌 정치권 사법부 전반에 걸쳐 있는 권력의 여성 착취가 본질이다.

착취의 방식은 특정한 기획사/연예기업(의 불법 탈법 사법적 실리)을 봐주는 조건으로 성상납을 받는 것.

김학의 사건, 승리-정준영 사건 등에서 확인되듯이 이것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지만 다른 곳보다도 연예산업에 특히 집중되어 있고 연예노동자가 주요 타겟이 된다.

연예산업의 기획사들은 성상납을 위해 자신에게 소속된 연예인들을 성노예로 만든다.

위약금이 그 족쇄다.

윤지오는 위약금을 내고 그 족쇄에서 풀려난 연예노동자.

장자연은 풀려나지 못했던 연예노동자.

2.

지난 10년간 권력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혐의없음으로 나오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즉 법률적으로 권력의 여성착취가 부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증언과 증거들, 그리고 상식은 권력의 여성착취가 실재했고 또 실재함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모든 증언, 증거들의 진실규명력은 권력 앞에서 무력했다.

3.

윤지오는 장자연이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실명, 실면으로 진술했다.

장자연 문건에 쓰인 이름들을 보았다고 했다.

<13번째 증언>으로 그 진술을 공론화했다.

이것이 성폭력을 다시 쟁점화한 “실명 실면 증언의 힘”이다.

수사와 처벌을 재론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이다.

이 힘으로 고발뉴스 뉴스룸 뉴스공장 엠비시 CBS 등을 움직여 성폭력의 실재를 사회쟁점화했다.

과거사조사위원회를 움직였고 국회의원을 움직였다.

청와대가 움직일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다.

4.

이런 상황에서 김수민 작가는 윤지오 증언의 진실성에 대한 의심을 제기했다.

증언이 순수하지 않고 개인 영달(돈벌이, 출세)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유가족을 비난했다는 것이다.

장자연 문건 원본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자연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을 할만큼 장자연과 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폭력 문제를 재점화한 “실명 실면 증언의 힘”을 뺌으로써 권력형 성폭력의 실재를 의심하고 궁극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휘발장치다.

장자연은 다시 단순한 우울증의 희생자로 규정될 위기에 처해있다.

실제로 윤지오의 420 특별수사단 청와대 청원은 무력화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성착취 권력이 힘을 회복하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다.

5.

지금까지 확인한 자료를 기초로 김수민 작가의 문제 제기에 대해 판단하건대 거기에 다시 거꾸로 질문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

-증언은 영리하면 안 되고 순수해야 하는가? 권력과 맞서는 증언일 수록 영리해야 하지 않는가?

-장자연의 부모가 장자연 사망 전에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장자연의 유가족은 누구인가? 오빠를 비롯한 유가족이 오직 장자연만을 위하는 “순수한” 상태에 있다고 전제할 수 있는가? 때로는 “유가족주의”가 진실규명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책을 판매해서 인세를 받고 증언자 보호단체를 만들어 모금을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인가? 이것은 증언의 힘을 높이기 위한 최소한의 수단일 수도 있지 않은가? 증언에는 보상받을 수 없는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가?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증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윤지오의 증언내용이 실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있는가? 그것을 거짓으로 단정할 증거가 있는가?

-왜 증언의 객관적 내용을 문제삼지 않고 증언의 의도 등 주관적 정황을 문제삼는가?

-윤지오의 증언 동기를 김수민 작가는 의심한다. 같은 의심은 김수민 작가의 반론동기에도 주어질 수 있다. 김수민 작가는 지금 왜 윤지오의 진술에 대한 의심을 제기하는가?

-윤지오 진술에 대한 의심과 신빙성 문제를 쟁점화함으로써 장자연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객관적 사태에 대한 수사와 진상규명은 회복불가능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한데 이에 대한 김수민 작가의 생각과 입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