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폭력이 일어날까?’에 대한 단상.

‘왜 성폭력이 일어날까?’에 대한 단상.

 

가부장적 일부일처제는 본질적으로는 일부다처제인데, 일부일처제가 매춘에 의해 보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관계와 매춘(성매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성관계를 지탱하는 양축이다. 성폭력은 이 두 범주의 경계지대에 서식한다. 그렇다면 성폭력은 왜 어떤 근거에서 생겨날까?

진화적 심리 일반에서: 남성은 여성의 호의적 신호를 성적 신호로 환원하여 읽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그러한 환원이 문제점이 있었지만 번식의 기회를 잃지 않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환원 때문에 사회관계에서 여성의 다양한 유형(예의, 친절, 동정 등)의 호의적 태도를 ‘성적 구애’의 신호로 착각하는 많은 경우가 있게 되고 이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 이 환원의 습관이 굳어지면 여성이 보내는 비호의적 신호마저 성적 구애 신호의 역설적 형태로 착각하게 되고 이럴 때 성폭력은 반복적 습관적인 것으로 굳어진다.

자본관계에서: 자본주의는 그 발생기에 여성 착취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발명했다. 그것은 마녀사냥이었다. 자본주의 이전부터 유전되어온 가부장제에 이 마녀사냥을 결합시킴으로써 자본은 여성의 가사노동을 무상으로 착취할 수 있었다. 가사노동을 무상노동화하고 여성을 남성의 임금에 의존하도록 만든 결과, 남성은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 보잘 것 없는 종속자,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여성의 의사를 무시한 성적 행동, 즉 성폭력이 생겨난다.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위계제에서 권력자는 상하관계 때문에 취할 수 밖에 없는 하위주체의 순종적 태도를 ‘성적 구애’의 제스쳐와 쉽게 혼동한다. 위계제는 정치권, 군대, 교회, 병원, 학교, 연예계, 문화예술계, 재계, 기업, 공장 등 현대 사회 제도의 모든 곳에 편재하는 동형원리이다. 기존 사회 제도에 저항하는 운동단체들도 많은 경우에 위계제를 원리로 구축된다. 오늘날의 위계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있는 경우는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있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특히 이 비대칭은 위계제 사다리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훨씬 심해진다. 그 결과 위계적 현대 사회 자체가 성폭력의 온상이 된다.

문화적 헤게모니에서: 최근의 성폭력 사건이 진보적 정치단체 예술단체 학술단체 대학 등을 중심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은 문화적 헤게모니가 성폭력을 조장하는 조건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에서 새로운 헤게모니는 사회개혁과 사회변동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헤게모니는 억압과 동의의 양측면을 갖는다.  많은 부분 남성이 장악하고 있는 문화적 헤게모니 체제에서 헤게모니 주체는 남성의 진화적 경향과 결합되면서 문화적 헤게모니를 성적 헤게모니와 오인하는 경향이 발생한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성적 헤게모니를 전환시키는 데 실패하여 동의의 축이 빠지게 되면 억압만 남게 되고 여기에서 성폭력의 여러 유형들(희롱, 추행, 폭행)이 출현한다.

오늘날 성폭력이 권력관계의 산물이라는 데에는 거의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의 3항이 그러한 진단에 가장 가깝다. 그런데 성폭력 현상의 근절을 위해서는 권력관계 외에도 자본관계, 문화적 헤게모니, 진화심리와 같은 요인들을 고려한 좀더 총체적인 관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