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조사편의주의와 윤석열 총장의 과잉대응에 대해

1.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겨레 하어영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은 과잉대응이라고 생각한다. 하기자의 기사는 윤총장이 윤중천으로부터 ‘접대’를 받았는가 아닌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왜 진술이 있는데 검찰의 조사나 수사가 없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왜 조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답해야 할 순간에 검찰총장이 나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며 논점을 벗어난 대응을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잉이고 그것이 언론의 질문에 말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으로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두 번째 과잉이다. 이것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협박으로 느껴진다.

2. 윤석열 총장이 매우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공직자인 때에 그 공직자의 접대 혐의에 대한 윤중천의 과거사진상조사단 진술이 있었고 이에 대해 추가 조사/수사가 없었다는 것이 하기자의 보도내용이다. 검찰이 누구를 조사하고 누구를 조사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주권자 국민의 주권행사의 필요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검찰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보도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기소편의주의와 결합되어 있는 수사편의주의의 악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된다.

3. 장자연 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윤지오는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국회의원의 이름을 장자연 리스트에서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 이름이 홍준표임은 홍준표 자신에 의해 명백하게 밝혀졌다. 홍준표가 조사가 필요하다며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온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검사를 혼내 주었다고 유튜브를 통해 자랑했기 때문이다. 또 그는 윤지오가 자신의 이름을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진술했다며 윤지오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윤석열이 조사를 받지 않은 것이나 홍준표가 조사를 받지 않은 것이나 결과는 동일하다. 문제는 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검찰이 어떤 것은 조사하고 어떤 것은 조사하지 않는가, 하는 것 즉 조사, 수사, 그리고 기소의 임의성이다. 

4. 윤석열 총장은 혐의가 있으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하는 것으로 좋은 평판을 얻은 검사다. 조국 일가에 대한 이른바 ‘먼지털이식’ 수사도 바로 그런 논리와 이미지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조사 회피문제를 제기한 하어영 기자를 고소한 것은 자신을 예외의 자리에 놓음으로써 기존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어영 기자를 고소하기 전에, 자신에 대해서도 한 치의 남김도 없이 먼지 털듯이 조사하고 수사하라고 말하는 것이 일관된 태도였을 것이다.

5. 조선일보나 김어준은 윤석열이 ‘접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식의 동문서답을 하고 있고 조국 장관은 그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검찰이 윤석열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하어영 기자의 주장에 기초한다면, 조선일보나 김어준은 윤석열이 접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무엇을 근거로 단정하는가? 또 조국 장관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무엇을 근거로 내렸는가? 공식적인 조사가 없었는데 그에 상응하는 조사자료가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발언의 당사자들은 윤중천 진술과 관련하여 윤석열 총장에 대해 갖고 있는 조사자료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며 만약 있다면 그 조사자료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내가 읽은 김경록 인터뷰 pdf 파일

김경록 인터뷰는 최근의 사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일차자료들 중의 하나에 속한다고 보기 때문에 KBS, 유시민과의 인터뷰 자료 두 종류를 정독했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이다. ‘언론과 검찰은 정말 조심해야 할 집단이다.’ 핵심인물의 인터뷰 진술이 위와 같은데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지금 전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사건 스케치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까? 참으로 의아스럽다. 추후 시간과 조건이 된다면 코멘트해 보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읽은 자료를 토론용으로 올려두기만 한다.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3)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9

2018년에 윤지오는 증언을 달라는 검찰(검사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 장자연에 대한 조0천의 강제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측 증인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해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에 대해 증언했다. 그 증언들은 경찰 수사관에게 했던 2009년의 증언과 유사하게 검사나 조사위원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 이 증언들은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얼굴 없이 이루어졌다. 

2019년에 윤지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증언의 대상을 소수의 수사 및 조사 전문가에서 국민 대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직업으로서 수사나 조사를 하는 전문가를 매개로 했던 간접증언에서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 국민 대중을 향한 직접증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2018년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서 자극받은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실명을 가리고 얼굴을 숨기는 식의 강요된 ‘피해자다움’을 버리고 실명과 실면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가명 증언은 2018년 피디수첩 인터뷰 및 JTBC와의 전화인터뷰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 국민의 명령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진 이 절호의 기회에 실명, 실면의 증언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하는 증언보다 증언의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두 가지 전환은 장자연 사후 10주년에 맞추어진 <13번째 증언>의 출간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간접증언에서 직접증언으로, 폐쇄증언에서 개방증언으로, 수동증언에서 능동증언으로, 타율증언에서 자발증언로, 수세증언에서 공세증언로의 이러한 증언 태도의 전환은 왜 이루어진 것일까? 

우선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10주년이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13번째 증언>, 224쪽)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학의, 버닝썬 등의 동종사건과 연동되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드높아진 상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와 연관된 것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사권도 없이 과거사 조사 차원에서 겨우 6명의 조사위원에 의해 전개되는 이 재조사가 과연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즉 국가에 대한 의문의 문제이다. 실제로 2009년 KBS에서 장자연 문건을 보도한 직후 초동수사의 부실을 지적하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무려 42명의 수사팀이 꾸려졌고 대대적인 재수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재수사는 가해혐의를 받은 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는 절차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전례를 생각해 보면, 비록 정부가 바뀌었고 촛불국민의 명령이 있다고 하지만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조건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한계인식 속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은,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주고 국민이 이 증언을 기초로 재조사라는 사법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 윤지오가 염두에 둔 것은 애초에 과거사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도록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그것은, 국민이 대의자들에 대한 소환, 해임의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법안을 발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며 국민이 수사, 기소, 재판의 권한을 갖고 그것에 관여하는 주체로 되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여 위로부터 답변하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직접민주주의의 아주 약한 표현형태이다. 윤지오는 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법 위의 법”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 자생적 법철학 속에서 그는 국민의 제헌적 역량(법 위의 법)이 실정법(법)을 통제하고 재구성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러한 생각 위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증언 에세이집을 출판하고 방송에서 증언 인터뷰를 하고 여성단체와 함께 광장에서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소식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9년 3월 4일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는 뉴스공장을 기점으로 며칠간에 걸쳐 조선일보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방송사와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 과정에서 국민들은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와 접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세 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1)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증언조서라는 것, (2)증언조서가 유서로 둔갑되어 자살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만큼 문건이 유서가 아닌 것이 명확한 한에서 장자연의 사망원인에 대한 원점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3)그 증언조서와는 별도로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는 “성상납을 강요”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 (4)장자연이 당시 술자리에서 보였던 일련의 모습을 보면 이 “성상납 강요”가 마약을 강제 주입 당한 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 (5)“성상납을 강요”한 이 리스트에 적힌 이름 중에서 방씨 성의 세 사람과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 기억난다는 것 등이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주어진 이러한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류적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장자연은 우울증을 앓다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고 그 유서에서 폭행과 협박을 한 당사자인 김종승은 처벌을 받았으며 장자연이 술접대나 잠자리를 강요받은 ‘조선일보 방사장’이나 ‘방사장의 아들’은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으며 문건의 해당 구절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 수사발표에 의해 국민에게 주어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주어진 주류 상식과 윤지오의 새로운 대국민 증언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증언의 충격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주류 상식 세계에서 장자연 사건은 (다행히 경찰이 의도하고 있었던 장자연의 사기 미수사건으로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기껏해야 악덕 기업주의 일탈적 악행 사건으로 인지되었다. 이럴 때 그 최종 책임은, 김대오가 주장하는 바처럼, 더 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윤지오의 증언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의 집단적 성폭행 사건으로, 즉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문제로 인지할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마약을 이용한 특수강간 사건이나 살인 사건의 관점에서도 수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이럴 때 최종 책임은 권력자들과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주어지게 된다. 이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종결되었다는 기존의 사법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공소시효가 아직 충분히 남은 사건으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증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폭발적이었다. 그 관심과 지지는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준 윤지오의 용기에 감사하면서 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3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고 그 증언에 따라 장자연 사건의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를 요청하는 것(3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우선 신변보호요청 청원자는 이렇게 쓴다.

“고 장자연씨 관련, 어렵게 증언한 윤00씨의 신변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목격자진술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의 불이익, 또는 신변에 위험이 없도록 신변보호를 청원합니다. 보복, 불이익이 있으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의로운 사회, 그 밑바탕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20대초반에 그 큰 일을 겪고 10년간 숨어 살아야했던 제2의 피해자 윤00씨의 신변보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원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이 정의로운 사회의 밑바탕인 만큼 증언자에게 보복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 요청은 윤지오의 증언을 사회에 대한 진실증여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증여를 받은 국민이 수증자로서 진실증여자에 대한 신변보호라는 최소한의 답례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후세대에게 떳떳한 나라의 성원일 수 없다는 것을 신변보호 요청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386,50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청원, 즉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 요청은 다음과 같은 간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고 장자연씨의 수사[조사]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수사기간을 연장해 장자연씨가 자살하기 전 남긴 일명 ‘장자연 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의 초기 재수사에서 참고인 및 피의자 진술을 통해 명백히 제기되었으나 경검의 수사를 거친 후 사라진 주제다. 윤지오의 증언은 이 주제를 1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사회적 의제로 다시 가져왔다. 이 청원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을 재수사 연장의 근거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 청원은 신변보호 요청보다 많은 738,56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주어진 기간내 20만명 이상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낼 때 정부는 답변의 의무를 진다. 실명과 실면으로 국민에게 직접 증언키로 한 증언방식의 전환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매개로 윤지오가 다른 국가기관을 만나도록 만든다. 지금까지는 사법경찰과 검찰 및 법원이라는 사법 계통의 국가기관만을 만났으나 이제 청와대와 행정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후에는 입법부인 국회(의원)도 개입하게 됨으로써다.

청와대는 이 두 청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지시를 답변으로 내놓는다. 그 지시의 전문은 좀 길지만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단히 강한 의혹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되어온 사건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인 부실 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실 규명 요구와 함께 과거 수사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강한 의혹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검찰과 경찰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 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 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공소시효가 끝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 주기 바랍니다. 


강남 클럽의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과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인 영업과 범죄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 기관이 유착하여 묵인・방조・특혜를 줘 왔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입니다.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드러난 범죄 행위 시기와 유착 관계 시기는 과거 정부 때의 일이지만 동일한 행태가 지금 정부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으므로 성역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사한 불법 영업과 범죄 행위, 그리고 권력 기관의 유착 행위가 다른 유사한 유흥업소에서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수사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사건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와 조직적인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입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랍니다.”

법무부장관과 행안부장관 등 행정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특권층’) 범죄로 규정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통해 진실규명을 가로막아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한 정황들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에 대해 규정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는 특권적 주체였던 경찰과 검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점에서 관점의 커다란 도약과 진전을 보여준다. 실제로 윤지오는 3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대통령의 이 응답을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같은 일”로 평가하고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되었”다고 밝힌 후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대통령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지시에는 숨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이 지시가 검찰과 경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설정한 후 역설적이게도 곧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조사와 수사의 대상인 검찰과 경찰을 다시 조사와 수사의 주체로 복권시킨다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스스로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깊은 반성”을 통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제3의 조사/수사 주체를 구축해야 할 시점, 즉 수사권을 주권자인 국민의 수중으로 가져오는 방향의 혁명적 발상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다시 경찰과 검찰 자신을 자기수사의 주체로 불러내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검찰을 견제세력이 없는 특권세력으로 인지하게 만듦으로써 실제적으로는 그들을 비호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않을까? 수사와 기소에서의 국민주권을 골간으로 하는 경찰 및 검찰 기관의 실질적 개혁이 부단히 지체되고 실패하는 것이 대통령의 이런 양면적 태도와 무관할까? 이런 지시 이후에 실제로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변호사와 교수가 포함되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 담겨 있었던 최소한의 진실추구적 요소마저 지워버리면서, 재수사의 길을 닫아버리고 사건 재조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이러한 종결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신변보호 청원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의 일정한 반응이 있었다. 3월 8일 시작된 청원이 마감되기 전인 3월 14일 윤지오 변호사로부터 신변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청은 동작경찰서로 하여금 “△스마트워치 제공 △112 긴급 신변보호 대상자 등록 △임시숙소 제공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 조치”를 하도록 결정하고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 증언 중에서 재조사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윤지오를 재차 증인으로 불렀고 이 조사에서 윤지오는 언론 인터뷰나 출판물에서는 하지 않았던 내용(가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본 이름들의 실명)을 증언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치가, 3월 30일 윤지오가 “스마트 워치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경찰관이 9시간 넘게 출동하지 않은”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껴 경찰은 3월 31일 스마트워치 전체에 대한 긴급점검 실시를 약속하고 새로운 숙소로 윤지오를 이동시키고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가 동행 밀착 보호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뒤 경찰은 3월 30일 당일 윤지오가 불안감을 느껴 스마트워치를 누르게 된 것이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오인과 오판에 의한 것이며 스마트워치를 누른 후 경찰이 출동하지 않게 된 책임도 윤지오의 기기 조작미숙에 있었다면 책임을 윤지오게게 돌렸던 것도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국민, 증언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그리고 증언자 자신 등에 떠밀려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증언자의 신변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기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것은 일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해권력자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보호하고 은폐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발적이고 예민한 책임감을 보이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에 속하는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시민사회에 “진실을 밝힐 힘”을 증여하는 증언자에 대한 사회의 답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를 자처하는 윤지오가 과장으로 꾸며낸 일대 소동처럼 발표함으로써 증인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겼다.

국회는 어떠했던가? 국회는 윤지오 동행의원모임 구성과 간담회, 그리고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라는 형태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 출판기념 북콘서트는 애초에 국회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던 출판기념 북콘서트가 하루 전날 취소된 것도 신변안전 문제였다. 윤지오는 출판기념 북콘서트 무대에서 자신과 가까이 서게 될 출연진이 누구인지,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지 확인해 주기를 요청했고 극장측이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북콘서트가 무산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안민석의 주도와 공익제보자 모임의 연대로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리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무렵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증언자 윤지오를 동행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4월 초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과정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전개되던 반윤지오 흐름의 표면화와 겹쳐졌다. 이 흐름은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 악성 댓글이나 악성 DM의 수준에 머무렀던 지하흐름이었으나,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증언이 청와대를 넘어 국회에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또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예정에도 없던 추가증언을 윤지오에게 요청하여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 그 자체가 재수사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강하게 표출되고 표면화된다. 이것이 가해권력측이 느낀 위기의식의 표현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증언에 대한 이 반동(reaction)은 호야스포테인먼트 전 실장 권0성의 발언을 근거로 삼은 뉴시스의 윤지오 공격과 박준영의 증인검증론을 거쳐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사기론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 핵심은 증언에서 증인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이 이 작업의 선봉에 섰는데, 장자연 리스트가 문제가 아니고 윤지오의 인성과 도덕성이 문제라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이 그 방식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제도언론들의 센세이셔널한 보도에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의 까판 담론이 결합되어 여론화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윤지오 동행모임은 동행은커녕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윤지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이 동행모임의 침묵은 이후에, 윤지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간 전혀 접촉한 바 없다는 해명, 윤지오의 난처함보다 자신과 동료의원들이 윤지오로 인해 겪는 난처함을 중시하는 엘리뜨주의적 냉정함, 다른 공익제보자로부터 윤지오를 분리시키는 교묘한 언어놀음 등으로 범벅이 된 항복문서를 가해권력 앞에 내놓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윤지오는 2009년에 사법경찰을, 2018년에 검찰을 경험한 후에 2019년에는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을 경험했다. 언론기관과의 마주침에 대해서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긴밀한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2019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엄정할 수 없는 검찰 자신에게 과거사 조사를 맡기고, 국회의원이 표면적으로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행을 약속하면서도 증언자가 여론의 공격 받을 때에는 연락을 끊고 침묵하며, 행정경찰이 증인의 신변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하고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증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선적 과정의 끝에 윤지오는 10년만에 다시 사법경찰과 접속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 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려고 했지만 변호사, 작가, 기자,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등의 고소고발자들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은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제소했다. 일찌기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안개 속으로 감추어 최초 증언자 장자연의 증언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허위 문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법경찰은 이제 윤지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후속 증언자인 윤지오의 증언도 허위라는 고소고발자들의 제소에 힘을 실어주고 장자연 사건 자체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끝)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2)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8

장자연의 육성파일이 말해주다시피 증언조서 문건을 작성한 후 장자연은 짧은 기간동안 마녀사냥에 시달렸다. “늙은이랑 만났다는 둥”의 별의 별 이야기나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만약 살아 있었다면 그가 이후 오랫동안 겪게 되었을 수난 이야기의 서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의 마녀사냥이 죽음으로 이어지면서 장자연의 수난사는 극적으로 종결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성폭력 가해혐의자들 모두가 무혐의 처분되었다는 것은 국가 사법의 수준에서 장자연 문건의 핵심이 허위인 것으로 판단했다는 뜻이고 장자연의 문건작성을 미수로 그친 사기행위로 본 경찰의 시각이 사법적 수준에서 관철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가 사법의 수준에서 이러한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다중의 마음에 수용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사법의 이러한 판결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러한 판결에 이르게 된 수사상의 여러 문제들을 제기하면서 재수사를 요구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2019년 7월 12일 오후 7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렸던 제1차 페미시국광장 집회 <시위는 당겨졌다. 시작은 조선일보다>에서 한 여성 발언자는 성폭력은 여성이 겪는 ‘일상’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우리는, 성폭력이 범죄로 취급되지만 그 범죄행위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며 가부장 체제 자체의 내밀한 논리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절도가 범죄로 취급되지만 그 범죄행위가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내밀한 논리를 구성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2008년의 촛불집회가 여고생들(촛불소녀)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여성들, 그리고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들에 의해 탄력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성폭력 의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여성 대통령의 퇴진/탄핵을 초점으로 삼았던 2016년의 촛불집회에서는 오히려 (박근혜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적 언어가 촛불의 언어로사용되기까지 했다. 성차별 문제에서 촛불이 보이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면서 성폭력을 사회적 의제로 제기하기 위한 본격적 노력은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폭발해 나왔다. 그것이 2018년의 미투이다. 미투 운동은 “나는 성폭력을 겪었습니다”라는 미투형식의 증언조서 문건을 작성한 후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이 재조사 요구를 받아들였지만 이 재조사는, 새로운 조사주체의 구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검찰 관료계급의 자기반성이라는 형식 속에서 전개되었다. ‘과거사조사위원회’라는 이름은 정확히 이것을 반영한다. 진상조사단 차원에서는 검사 2인 외에 대학교수 2인, 변호사 2인이 참여하는 형식을 갖추었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가 대검 산하에 놓여 있는 한에서 검찰이 자신의 과거사를 스스로 조사한다는 본질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우리 속담에서 불가능하다고 한 것, 즉 중에게 제 머리를 깎게 하고 의사에게 제 병을 고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런 틀 속에서 장자연의 증언조서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기행각의 일환으로 파악하는 기존의 시각이 바뀔 수 있겠는가? 윤지오가 대한민국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증인으로 소환된 것은, 불행하게도, 이러한 맥락 속에서이다. 검찰은 윤지오가, 장자연 사건을 과거지사(過去之事)로 돌리는 데 협력하도록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구천을 떠돌며 끊임없는 재조사 요구로 가부장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그 영혼을 영구 안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검찰은 윤지오가 이 사업에 협조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윤지오의 증언이 미투봉기를 통해 다시 불러내어진 그 영혼을 달래고 미투가 제기한 문제를 미봉하면서 정치권력을 안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랐을 것이다. 

윤지오는 검찰의 과거사조사위원회가 갖는 이러한 맥락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가 처음에 검찰의 참고인 출석요구에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고까지 말하며 장자연 사건 재조사를 위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그가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만들기 위해 아버지를 먼저 설득해야 했다. 20대 초의 나이에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에 참고인으로서 어려움과 억울함을 무릅쓰고 증언을 통해 협조한 바 있는 윤지오가 30대 초에는 왜 국가의 증언 요구에 협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원인이 있다.

하나는 국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다. 경찰은 참고인인 윤지오를 밤늦게 불러 밤새 수사하기를 반복했다. 밤샘수사, 장시간 수사는 피의자를 괴롭려 자백을 이끌어내는 악명높은 수사기법이고 수사관행이다.윤지오는 피의자가 아니라 참고인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당한 수사방식에 적극 협조했다. 장자연의 ‘억울함’을 풀고 조금이라도 ‘위로’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나타난 결과는 가해권력자들이 모두 무혐의로 면죄된 것이었다. 수사기관은 장자연이 리스트에 기록한 사람들을 조사조차 하지 않았으며 문건에 이름이 또렷이 기록된 사람들도 무혐의처분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자신이 강제추행 현장을 직접 목격한 바 있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바 있는 가해자(조0천)마저 무혐의 처분한 것이었다. 기억 속에 분명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를 밝혀야 하는 이 과정에서 윤지오는 경찰이 밤샘수사, 장시간수사, 최면수사, 논점일탈수사 등으로 자신의 기억을 교란시켜 가루로 만들고 남성 동석자들이 서로 입을 맞춰 성추행을 본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경험했다. 부인이 현직 검사였던 그 남자는 대질신문에서 윤지오가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지오가 느낀 심경과 감정은 대질신문조서에 다음처럼 나타나 있다.(질문자는 사법경찰관 손0천이다.)

“문: 조0천이 장자연을 잡아당기어 무릎에 앉힌 다음에 장자연의 가슴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다는 것을 목격하였다는 말인가요.

답: (이때 진술인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문: 진술인은 지금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 것인가요.

답: 아니예요….

문: 진술인은 조0천이가 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답: 제 생각에는 진짜 기억이 나는데 회피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한편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분이 인생이 달려 있다고 하는 말을 했지만 저 같은 경우도 이와 같이 말을 한다고 해서 자연이 언니가 살아 온다고 볼 수가 없고, 저 분이 자연이 언니의 죽음에 대해 반성을 할 줄 알았는데 거짓말을 하는 것에 격분이 생기고 한편으로는 가라오케에 참석한 변0호 대표, 김대표와 저분은 친한 분이고 제 편은 한 사람도 없는 상태에서 제가 말을 한 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오늘 경찰서에 왔을 때 방송사에서 저를 상대로 취재를 하면서 저에게 물어보기를 잠자리도 같이 했습니까라는 말을 들을 때 저 자신이 이곳까지 와서 그런 말을 [왜] 들어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고, 저분이 자연이 언니에게 한 행동에 대해 저분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은 저도 알지만 죽은 자연이 언니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 제가 스스로 말을 한 것인데, 저 분은 자연이 언니에게 한 행동에 대해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을 하였고, 저 같은 경우는 저 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모르지만 반성을 하거나 사과를 했다면 제가 본 것이 잘못 보았다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저 분이 끝까지 그 자리에서 저를 본 사실이 없고 자연이 언니에게 그런 행동을 한 사실이 없다고 말을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때, 진술인은 계속하여 울면서 휴지로 눈물을 닦고 진술하다)”

윤지오가 국가기관인 경찰에서 직면한 것은 취재왔던 방송기자들이 피해자인 장자연과 자신을 마치 윤락녀인 듯이 대하고, 피의자 조0천이 동석했던 남성들과 합세하여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없이 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진술하는 자신의 옆에서 자신의 말을 비웃고 심지어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우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끼는 “격분” 때문에 윤지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이 장면의 정동적 측면이다. 

윤지오의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잠자리도 같이 했습니까”라는 방송기자의 가해자주의적 시각은 때로 경찰 수사관에게서도 발견되는 시각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수사기관에서 피의자 조0천과의 이 대질의 시간에 윤지오는 언론, 경찰, 남성이라는 세 가지 권력에 포위되어 자신이 목격한 사건에 대한 진술이 억울하게도 거짓말로 내몰리는 참담한 억압의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를 신뢰할 수 없도록 만든 이 고립과 억압의 체험이야말로 10년 여가 지나 요구받은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증언요청에 윤지오가 선뜻 나설 수 없었던 첫 번째 이유였다.  

또 하나는 첫 번째의 국가에 대한 불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의 한 계기를 이루지만 따로 논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훨씬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삶정치적인 이유로서 검찰이 증언을 요청하면서 자신의 생명과 신체 및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문제이다. 

장자연은 아무 힘이 없는 자신에 비해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물리적 성적 폭행, 협박과 강요를 당한 피해자임에도 그 피해사실들을 증언조서 문건으로 작성했다는 이유 하나로 온갖 성적 험담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다가 실제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검찰이 불러 윤지오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자 하는 증언이 장자연의 죽음을 가져온 그 증언조서의 증언과 과연 달랐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경찰 수사기록이 보여주는 것처럼, 윤지오는 장자연과 술접대하는 자리에 언제 참석했고 거기서 무엇을 겪고 무엇을 느꼈는지, 대표 김종승이 장자연과 자신에게 어떤 행위를 했는지, 장자연이 문건에 적은 피해사실 증언들과 관련하여 함께 겪은 것이나 추가로 생각나는 것이 없는지, 장자연에 대한 가해자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등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윤지오는 증언조서를 썼으나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는 진정한 증인인 장자연을 대신하여 증언해야 했다. 유태인 집단학살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자신이, 학살당해 더 이상 증언할 수 없는 진정한 증인 무젤만(Muselmann)을 대신하여 불가능한 증언을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한편에서 윤지오 역시 장자연의 그 ‘말할 수 없음’을 ‘말해야 하는’ 아이러니의 증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윤지오는 장자연과 동일한 경험을 겪어온 사람으로서 2009년 2월 어느날 유장호로부터 ‘피해사실에 대해 써달라’는 요구를 받고도 쓰지 않았던 그 문건, 장자연의 죽음을 가져온 그 피해사실 문건을 수사관 앞에서 뒤늦게, 말로 써야 하는 증인이었다. 가해자들의 이름을 뒤늦게 쓴다고 해서 과연 안전한 것일까? 동일한 가해자들이 시퍼런 권력으로 여전히 살아 있는 현실에서 진술로 쓰는 그 문건이 아직 너무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장자연의 증언조서는 이 땅의 여성노동자가 겪는 일상적 피해경험이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힘센 권력자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에 대한 피눈물의 기록이었다. 장자연이 권력자들의 위선과 부패 및 폭력성을 증언조서에 기록한 이상, 장자연을 대신해서 증언해야 하는 윤지오 역시 그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증언에 협박과 보복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장자연이 선례로 보여주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은 윤지오가 증언을 한 후 기자들에 쫓기면서 ‘이순자’ ‘동료 여배우 X’등의 가명 뒤에 숨어 살아야 했던 10년의 시간을 통해 다시 입증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국민의 명령을 받아 설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과 ‘생명인지 감수성’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대검찰청은 윤지오에게 이렇게 말을 건다. “윤애영 씨께서 저희 과거사조사단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오시면 왕복 항공권 비용 정도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국내 체재비용은 안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혹시 한국에 와주실 수 있을까요?…대검찰청에서 비용지원을 많이 해주지는 않네요. ㅠㅠ 과거사조사단 장자연 사건에서 윤애영씨가 핵심적인 분이라 꼭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능한 빨리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2018년 10월 14일) 그런데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서 증언을 하는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지난 세월의 경험을 통해 윤지오가 느끼는 생명인지 감수성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을 대표해 실무적으로 윤지오에게 증언요청을 하는 이 담당 변호사도 이것이 충분하지 않은 비용 지원책이라는 것을 이미 느끼고 있다. 그런데 윤지오는 담당 변호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가장 큰 관심이 가 있다. 그것은 비용이 아니라 안전이다. 검찰의 이 제안에 대한 윤지오의 반응을 살펴보자.

“그렇군요. 처음 말씀해주신 사항과는 변동사항이 있네요. 혼자서 보호없이 가야하는 건가요? 가능한 한 빨리라 함은 언제를 말씀하시는지요? 또 국가에서 보호해주시는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불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신변을 어찌 보호해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법원 서기 전에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할 것이고요. 그렇게 하는 것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판단되어 집니다”. (2018년 10월 16일)

윤지오의 핵심 문제는 신변안전, 신변보호다. 이 짧은 답변에서 그는 ‘혼자서 보호없이’, ‘국가에서 보호해주는 시설’, ‘신변을 어찌 보호해 줄 수 있을지’, ‘그렇게 하는 것이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판단되어’ 등 네 번에 걸쳐 보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신변보호 지원에 대한 윤지오의 이러한 질문을 받고서야 담당 변호사는 “지원 여부는 변호인단에 확인해 보고 말씀 드릴게요”라고 답한다. 어떤 답변이 왔을까? 

“대검찰청에서는 항공권 지원만 가능하다고 하는데 10월 말 또는 11월 중순, 하순 귀국 가능할까요? 조0천 사건 법정 증언 관련해서는 추가로 입국하셔야 할 거 같고 그때 다시 항공권 지원이 될 거 같습니다만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힘드시겠지만 국내에 오셔서 과거사조사단 면담도 하고 진실을 밝히는데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가능한 빨리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신변보호 지원은 불가하다는 냉정한 대검찰청의 답변, 그리고 조0천 사건 증언 관련 추가 입국시 항공권 지원은 가능할 것 같다는 최소 비용지원 원칙의 재확인인 것이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서 증언할 경우 재정 측면에서 항공권 외에 육상교통비, 숙박비, 식사비 등 기본적인 체류 비용이 들어간다. 증언을 위해 해외에서 건너온 사람의 이 기본적 체류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 것일까? 또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증언을 위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와야 하면 그 시간 동안 손실이 발행한다. 이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는 것일까?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므로 증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고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그래야 한다면 그 “진실”은 누구를 위한 진실일까? 그런데 “윤애영씨가 저희 과거사조사단 조사를 위해 한국에 오시면”이라는 앞의 인용이 보여주듯이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그 “진실”이 과거사진상조사단과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를 위해 사용될 것임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진실”이 검찰을 위해, 그리고 국가를 위해 사용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국민을 위해 사용될까? 그리고 또 국민의 한 사람인 “증인”을 위해 사용될까? 또 신변보호 지원 없이 자신의 국민을 신변위협이 따르는 증언에 나서도록 재촉하는 국가는 누구의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국가일까?

이 상식적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돌아가보자. 검찰로부터 신변보호 약속이 없기 때문에 윤지오는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본 사항을 담당 변호사에게 전달한다. 내용인 즉, “여성아동범죄조사부 말이, 경호 제공 등 형사지원제도를 갖추고 있어 지원해 드릴 수 있는 것들을 확정하는 대로 지오님께 먼저 연락드리겠다”는 것이다. 윤지오는 국가가 이동상의 보호를 제공해 줄 수 없다면 보호자나 동행자의 대동보호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한 대한민국 대검찰청의 답은 무엇일까?

“비행기 티켓은 참고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를 하고 영수증을 첨부하면 비용을 계좌로 지급을 해준다고 합니다. 단 이코노미석만 비용 지급이 가능하다는 답변입니다. …항공사 선택은 제약이 없는데 가급적 비용이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하면 좋다는 답변입니다. 아쉽지만 동반자는 지급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것도 대검 답변입니다.”(10월 18일, 담당 변호사) 

신변보호자에게는 비용지원이 없다, 이코노미석만 된다, 가급적 저렴한 항공편으로, 최대한 빨리! 이것이 증인을 대하는 대한민국 대검찰청의 마음이고 태도이다. 국가의 돈이 국민이 낸 혈세이므로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국세가 아깝다는 이유로 검사나 진상조사단의 조사위원들도 월급이나 활동비를 받지 않고 자신의 비용을 들이면서 “진실”을 밝히는 업무를 하고 있는가? 그들이 최저의 교통수단으로 최저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가? 왜 “진실”을 밝힐 증인에게만 체류비 부담, 손실부담, 최저생활을 요구하는가? 증인이 “진실”을 위한 희생제물인가? 증인이 “정의”를 위한 순교자여야 하는가?

조0천 건을 위한 검사측 증언과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한 증언은 별개의 건이라고 하면서 진상조사단 증언건을 위해 “언제쯤 오실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담당 변호사에게 윤지오는 조사가 어디에서 몇 차례 몇 시간이 진행될 예정인지, 그리고 그곳이 “안전한 곳”(10월 19일)인지 묻고,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부담과 위험 부담을 고려하여 진상조사단 조사와 조0천 증언을 합쳐 한꺼번에 묶어서 진행하면 좋겠고 과거사진상조사단 측이 항공권을, 조희천 증언 담당 검사측이 숙박료를 지원해 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명함과 동시에 그 동안의 대화에서 참았던 감정과 속생각을 털어놓는다. 

“무조건 빨리와라 오갈 곳은 알아서하시고요 보호도 잘 모르겠네요는 무책임하신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가 굳이 한국에 귀국할 이유도 없고요. 저는 잃는 것이 더 많고 보호받지 못한다면 위험을 감행하고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10월 19일)

윤지오는 대한민국 대검찰청이 증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면서 무책임하게 증인을 대하는 것에 분노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에 임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담당 변호사는 다짜고짜 연락선을 바꾼다는 취지의 다음 답변을 보낸다.

“윤애영씨 연락 주고 받는 것을 과거사조사단에 같은 팀인 다른 검사님하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과거사조사단에서 지금 맡고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이0화 검사 님이 저희 팀인데 윤애영씨 한국 오시는 문제 관련해서 연락드릴 것입니다.”(10월 22일)

그런데 이것은 윤지오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에 윤지오는 같은 날 과거사진상조사단 출석을 위한 협의의 중단을 선언한다.

“이렇게 막무가내식인 경우는 처음봤네요. 사회생활을 해외에서 몇년 해와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경우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그쪽 팀하고 그 어떤 것도 같이하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연락하지 말아주세요. 법원에서 진술하고 기자회견하고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그간 수고 많으셨고 건승하시길 바람하겠습니다.”

이 예상치 못한 협의중단 선언에 당황한 담당 변호사는 연락선 전환에 관한 위의 일방적 결정에 대해 상세하고 진지하게 해명하고 사과하는 장문의 글을 보냈고 이 해명과 사과를 거쳐 양자간의 협의가 계속된다. 이런 갈등적인 조율 끝에 마침내 두 건을 하나로 묶어 11월 말 윤지오가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며 애초의 왕복 항공권 지원 외에 숙박료와 일부 경호지원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 증인 출석을 위해 윤지오가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협의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증인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증언출석이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니 응해 달라고 호소했고 공익제보자의 인권옹호와 지원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에 윤지오를 공익제보자로 추천하기도 했다. 이런 표면적 얼굴 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증인을 보호하려는 어떠한 의지도 갖고 있지 않았고 어떠한 실제적 보호조치도 준비해 두고 있지 않았으며 저렴한 삶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위해 증인을 이용하기만 하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나라 다운 나라”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자칭 촛불정부였음에도 말이다. 국가는 공동체를 자임하면서도 여전히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공동체로서는 자격미달의 기관이었다. 

또 하나는 윤지오가 신변위협을 들어 “영리하게” 국민들을 기망하여 후원금을 편취했다는 김수민 발(發) ‘소설’의 허구성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한국으로 와서 증언하기를 원치 않았던 윤지오가 국민의 생명도 성도 재산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대한민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은 대한민국 대검찰청이 과거사진상조사단의 변호사를 통해 진실, 정의 등의 “대의”를 가지고 반복해서 설득했기 때문이다. 김수민이 관련된 저간의 사정을 알기 위해, 과거사진상조사단 및 조0천을 기소한 검사측과의 일정 조율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인 11월 13일 윤지오가 김수민과 나눈 대화를 살펴보자. 대화는 검사측에서 마련해준 것으로 보이는 오피스텔을 두고 시작된다.

“김 : 오피스텔?

김: 어떤 오피스텔이지

윤 : 오피스텔도 오피스텔 나름이지 ㅜㅁ ㅜ

윤 : 그러니까

윤 : 제대로된 정보도 안알려주고

김 : 모텔 깨끗하고 괜찮은데 7만원이면 충분히자는데

김 : 실비지급?

김 : 숙박비를 나중에준단소리얘

윤 : 근데 모텔은 치안이 별로여서 ㅜ

김 : 야?

윤 : 그러니까

윤 : 경비처리도 영수증줘도 언제 줄지도 모르고

김 : 일단 니돈을쓰라는거야?

윤 : 말도 계속바꾸니

윤 : 그러니까

김 : ㅡㅡ 염병할것들이네진짜

윤 : 에혀

윤 : 다 인스타에 까발려버리고싶다

윤 : 분노게이즈 올라온게

윤 : 한두번이 아니야 ㅜㅜ

윤 : 필요하다고 울아빠까지 들들 볶더니

윤 : 애걸복걸이더니

김 : 그때 그 조사단인가뭔가 개네들은어케됐어

윤 : 거기서도 뭐 비슷하지

윤 : 근데 100만원정도 지원시스템 뭐 준다는데

윤 : 내가 목숨걸고 내 인생에

김 : 응

윤 : 주홍글씨 만드는건데

김 : 그치

윤 : 뭔가 초라하다랄까

윤 : ㅜㅜ

김 : 그치그치

윤 : 내가 이상한건가

윤 : 여기에서 하는일도 올스탑하고 가니까

김 : 아냐 나같아도그런생각들지

윤 : 손실도 있는데

김 : 숙소랑 식비 그런걸 확실하게 말해줬음좋겄구만

김 : 그래야 너 맘도 편하지

윤 : 그러니까 ㅜ

윤 : 닥치면 해결할라하고 늘

윤 : 00사람들은 ㅜ

윤 : 특히나 위로 갈수록 더 그런거같아

김 : 00이그치뭐 제대로 일처리들을안하지 원고는 다 쓴거야?

윤 : 언니는 요새 어때?

윤 : 몸은 좀 괜찮아?

윤 : 아니 아직 계속쓰고 수정하고 그러고있지 뭐

김 : 언니 어제 퇴원했어

윤 : 가서 인터뷰형식으로해서 쓸수도 있고 일정부분은

김 : 나도 원고때문에 스트레스ㅜ

윤 : 고생했네 언니 ㅜ”

김수민과 달리 윤지오에게 숙소 선택에서도 기준은 무엇보다 “치안”, 즉 안전임을 다시 한 번 주목하자. 윤지오는 검찰과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증인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현하고 있고 김수민은 “나같아도그런생각들지”라며 이에 동조하고 있다. 자신에게 경제적 손실, 시간 지출, 생명의 위협을 감나할 것을 요구하는 국가에 대해 이런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영리하게” 돈을 편취하기 위한 사기 기획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윤지오에 대한 이러한 음모론은 누구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미 이 때에 윤지오는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책에 대한 대화도 김수민과 나눈다. 김수민이 원고는 다 썼는지 물었을 때 윤지오는 원고를 계속 쓰면서 수정하고 있고 일부는 한국에 가서 인터뷰 형식으로 쓸 수도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책쓰기가 이후에 김수민에 의해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술책”으로, 글쓰기의 비전문가로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집필과정이 “대필”로 묘사될 줄이야 윤지오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변호사, 기자, 경찰 등 국가 수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배척하면서 변심한 김수민의 말에만 근거하여 고소고발, 비난, 영장청구를 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윤지오는 2018년 10월 무렵에 조0천 강제추행 사건 증언을 위해 “법원 서기 전에”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고려한 적이 있다. 그것이 신변보호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은 얼굴과 실명을 그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과 실명 공개 계획은 포기되고 2019년 3월 4일까지 미뤄진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겠지만 국가로부터 증언자에게 신변보호 조치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2018년 11월 6일 기자회견 관련하여 담당 변호사와 나눈 대화에서 이 점이 드러난다. 

“지난 번에 기자회견을 하신다고 했는데 하실건가요? 만일 기자회견을 하신다면 과거사조사단에 출석하실 때 조사단이 있는 0부지검에서 기자회견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담당 변호사의 질문과 제안이다. 윤지오는 이 시점에서 아직 망설이고 있다. “네 한번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별 인터뷰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으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 질의응답 시간도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을 만큼 짧게 제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공개할지 안할지 여부도 아직 고민이 많이 되네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피해자나 피해자의 증인이 숨어야 하고 가해자나 범죄자는 당당한 것일까? 왜 그런 것일까? 윤지오의 고민을 깊게 하는 대한민국의 이 적나라한 현실 앞에서 “이게 나라냐”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는다면 언제 던져야 하는 것일까? 윤지오의 고민에 대한 과거사진상조사단 담당 변호사의 답변은 이러하다.

“아, 그건 너무 중요한 문제라 윤애영씨 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자회견을 하라는 게 아니라, 만일 하신다면 조사단 출석하실 때 하는 게 좋겠다는 거라서요. 만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면 절대 비공개로 할 거예요. 지난 번에 신변보호를 위해서도 기자회견을 하시겠다고 윤애영씨가 말씀하셔서. 너무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니 윤애영씨가 주변분들, 또 변호인들과 충분히 상의하셔서 결정하세요. 지금 조희천 공판에서도 ‘이순자’라고 부르고 있지 ‘윤애영’이라는 이름은 공개되어 있지 않아요. 심사숙고 하셔서, 윤애영씨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충분히 생각하시고 정하시면 됩니다. 누구도 윤애영씨에게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라고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지도 않아요. 일단 한 번 공개가 되면 이후에 이런 저런 파장도 있을 수 있으니 심사숙고 하시고요, 저는 기자회견을 하라고 하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래요^^ 윤애영씨가 상처받지 않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담당 변호사는 얼굴과 이름의 공개가 “너무 중요한 문제”이고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음을 직감하고 있으며 그것이 윤지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예상하고 있다. 신변보호를 위한 공개 기자회견이 예상과는 달리 신변위협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방향을 결정해 줄 수는 없고 주변분들이나 변호인들과 상의해서 결정할 것을 제안한다. 신변보호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증언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윤지오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네 감사합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 아직 많이 헷갈리네요.” 

뭐가 “헷갈리”는 것일까? 만약 자신만 생각한다면 증언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그런데 가해자 처벌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을 “언니 장자연”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윤지오와의 협의 대화 테이블에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는 말을 올려 놓고 증언을 요구할 때, 윤지오가 거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대검은 생명안전에 대한 관심은 없으면서 생명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증언을 달라고만 한다. 

이 “헷갈리”는 현실 앞에서 윤지오는 과거사진상조사단 담당 변호사에게 세 가지를 묻는다. “제가 증인으로 한 번만 출석하면 되는 건가요? 제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 분은 어떠한 처벌을 받게 되는 건가요? 또 제가 증언한 것들이 증거불충분이나 다시 덮어지는 사태가 발생할수도 있는 것인가요?” 이 세 가지 질문 중에서 윤지오가 들은 답은 하나, 즉 첫째 질문에 대한, “아마도 한번만 가시면 될 거 같아요”라는 답뿐이다. 

변호사가 답해주지 않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이후 전개된 현실이 답해준다. 그 답이 무엇일까? 온갖 망설임, 고뇌를 거쳐 2018년 12월에는 얼굴과 실명 공개를 하지 않다가 4개월여 뒤인 2019년 3월 4일 ‘뉴스공장’을 통해 마침내 처음으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 변호사, 작가, 까판계정주들로부터 돌아온 것은 “네가 언제 숨어 살았냐?!”라는 무자비한 언어폭력이었다. 이 언어폭력 속에서 “얼굴과 실명의 공개”란 “숨어 있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는 자명한 사실조차 사유되지 않는다. 사유의 이 철저한 무능력 속에서 작동하는 것은“윤지오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누군가의 실리적 필요이다. 그리고 권력은 타인을 자신의 실리적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능력, 타인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맹목적으로 (비)사유할 수 있도록 만들 능력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역관계 속에서 현실에 두 가지 답이 주어졌다. ‘어떠한 처벌도 없었다.’ ‘증언이 있었음에도 사태는 다시 덮였다.’ 윤지오가 예상치 못했고 그래서 질문하지 못한 한 가지 사태가 여기에 더해졌다. 자기자신이 글/말과 법에 의해 ‘가해자’로, ‘범죄자’로 위조되는 사태…!

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1)

증언자 장자연과 국가

윤지오 이전에 장자연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자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장자연이 피해자라는 사실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다. 장자연은 자신이 쓴 증언조서 문건에서 많은 수의 권력자들을 협박, 강요, 폭행, 성폭행의 가해자로 지목했다. 이 증언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장자연이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꾼으로 몰려 고소고발되고 압수수색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구금되었을지 모른다. 4장만 남은 증언조서 문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저 ‘죄없는 사람들’에 대해 허위사실을 가지고 명예훼손한 증거물로 제출되었을 것이며 권력자들이 ‘김밥값'(후원금) 으로 입금해준 수표는 사기로 편취한 재물로 압류되었을 것이다. 거액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음란죄로 몰아붙일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어딘가로부터 쏟아져 나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론들과 기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떻게 움직였을지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장자연은 경찰, 검찰로부터만이 아니라 기자로부터 쫓기며 취조형 취재를 당해야 했을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포위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앞다퉈 톱기사로 그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센세이셔널한 기사들에 동화된 사람들이 그를 마녀로 지목하고 화형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다. 군중들의 손가락질로 잠을 설쳐야 했을 것이며 정신과 치료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에는 근거가 있다. 그 그림의 윤곽이 앞에서 분석한 대한민국 경찰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이미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사건조사에서 경찰의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증언조서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만드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죽음을,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망하여 돈을 벌고자했으나 자살로 인해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경찰의 시각에서 장자연 사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가해권력자들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가난한 연예노동자 장자연의 ‘사기 미수 사건’이었다. 

검찰, 법원은 이런 시각 하에서 합동수사를 진행했던 경찰과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이 경찰로 하여금 장자연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수사를 축소하도록 지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통화내역 조사 지휘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피해자 장자연과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통화내역은 1년치를 조사했으면서 조선일보 방상훈에 대해서는 한 달치만 조사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이모 수사관은 “통상 1년의 통화내역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시각의 차이이지만 검사, 판사가 문건에 2008.9이라고 나와 있으니 2008.9 한 달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판사가 “청구는 1년치를 하였나요?”라고 다시 확인하자 이모 수사관은 “예 그런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답한다. 진짜 문제는 경찰이 아니라 검사, 판사라는 답변이다.

그런데 1달치 통화내역으로 조사범위를 넓기기 전에 원래는 그보다 짧은 1주일치 통화내역만 조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관해 판사와 이모 수사관이 나눈 문답은 이러하다.  

문: 경찰서에서 성남지청으로 청구한 청구서를 토대로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것인데, 당초 수사팀에서는 원래 1년치를 신청했으나 일주일치만 신청하라는 검찰의 수사지휘에 따라 신청서에 일주일로 줄여서 기재하였다는 것인가요?

답: .

문: 검찰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는 신청서를 보낸 적은 있나요.

답: 증인의 기억에는 문서로 오갔는지 구두로 오갔는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원래 분당경찰서가 성남지청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고 요청하였는데 검사의 수사지휘로 일주일치의 통신자료만 청구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이 진술이 맞다면, 경찰이 진상규명과는 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시간에 이러한 방향을 규정하고 수사가 진실과 괴리되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와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였던 셈이다. 즉 피해자의 증언이 허위임을 입증할 목적으로 가해(지목)자에 대한 수사범위를 축소하는 일에서 경찰, 검찰, 법원이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전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기획사 대표였던 김종승과 유장호에게 경미한 처벌을 내린 것 외에 실질적인 가해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로 면죄시킨 것이다. 이 결과의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검찰개혁’에 대한 강렬한 국민적 열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검의 수사와 기소 및 법원의 판결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의혹, 즉 행정 및 사법관료 체제가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국민을 기만하고 진실을 억압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불신이다.

검찰개혁의 발본화를 위한 조건: 2019년 9월 28일 서초동 촛불집회에 대한 단상

검찰권력은 행정권력 중에서 군사권력에 상응하는 강력한 권력이다. 군사권력은 전쟁을 통해 타인을 살상할 수 있는 권력임에 반해 검찰권력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해 타인을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이다. 군사권력은 원칙적으로는 타국의 국민들을 겨냥하지만(전두환 시기의 군부에서 보듯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다), 검찰권력은 자국의 국민들을 겨냥한다.

군사권력과 검찰권력의 수뇌는 선출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대통령의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그 수뇌들은 위로부터 대통령의 통제보다도, 오랜 시간 속에서 재생산되는 군부 및 검찰 관료집단들의 통제를 더 많이 받는다. 해당 관료조직의 이해관계가 국민의 이익을 위배하면서 관철될 수 있는 여지는 여기서 발생한다. 검찰이 형벌권을 관료조직과 관료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 국가체제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조국은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 주장을 통해 검찰개혁을 추진해 온 인물이다. 이 두 방안을 통해 검찰이 실제적으로 현재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소박한 생각일 것이다. 관료는 이미 하나의 계급을 구성할 만큼 완강한 세력이다. 조국의 개혁 방안은 관료체제와 관료계급을 온존시키면서 관료제도를 개혁할 수 있다는 발상에 근거한다. 검찰과 경찰 사이의 수사권 조정은 관료계급 자체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관료계급 내부 역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검찰만이 아니라 경찰도 관료조직이며 관료계급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관료계급의 문제를 방기하는 한, 공수처도 그러한 관료계급의 일부로 편입되어 들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경검 사이의 수사권을 조정하고 고위직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행위를 하는 새로운 관료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관료계급 내에서의 일정한 세력균형을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국민에 대한 관료계급의 지배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방안에 머문다면 그러한 검찰개혁의 방향은 계급으로서의 관료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관료조직의 역관계 재배치를 통해 실질적 변화가 도입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질적 변화는 다중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다중을 대상으로 통치행위를 수행하는 관료계급을, 자기조직화된 다중의 아래로부터의 통제에 맡겨 관료들이 독자적 계급으로서 재구성될 수 없도록, 국가기관이 다중의 절대민주적 권력의 명령을 이행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도록 만듦으로써만 가능하다. 즉 관료권력의 재분배와 재조직을 넘어 권력체제 그 자체의 아래로부터의 재구성과 권력기구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으로서의 조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중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그 조직력을 기초로 대의기구에 대한 섭정 능력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관료계급을 약화시키고 궁긍적으로 해체하는 방향에서 검찰 관료조직을 개혁하는 장기혁명의 방향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이 아니라 국민에게로 넘겨주어야 한다. 자기조직화된 국민들이 원칙적으로 수사권을 갖고 필요한 수사행위를 자율적 시민수사기구, 각 분야의 전문 수사기구, 경찰 등에 필요에 따라 위임, 배당한다는 구상 위에서 검찰개혁을 사고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의 수사를 둘러싼 논란과정에서 수사권을 갖는 시민주도의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안된 바가 있는데 이것은 검찰 개혁을 사고함에 있어서 중요한 사례로 참고될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의 자격이 없다는 담론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검찰이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여 표창장,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을 수사선상에 올리고 범죄혐의를 운위하면서다. 이 담론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을 통해 지배적 담론으로 정착되어 갔다. 그러한 ‘부적격’ 담론은 조국이 말과는 달리 실제에서는 정의롭지 못하며 사회 하층의 청년들과는 다른 세상(계급)에 살고 있으므로 법무부 장관의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사적 생활과 공적 발언 사이에 격차가 크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메시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메신저)에 주의를 돌리는 주장이다.

보수언론, 보수정당, 경검 등 제도적 보수세력 속에서 이러한 담론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건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개혁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저항함으로써만 자신의 이익을 지켜나갈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혁과 혁명을 지향하는 좌파이다. 개혁과 혁명적 사회변혁을 추구해온 좌파 세력의 상당 부분이 조국 사태에서는 무관심을 표명하거나 이러한 우파의 주장에 동조한 것은 보수우파가 그렇게 반응한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떤 동기에서건 좌파가 무관심하거나 반조국 전선에 가담함으로써  반조국전선은 의도되지 않은 좌우합작 전선으로 강화되어 왔다.

혁명적 사회변혁은 필요하다. 그리고 조국의 개혁노선은 어중간하여 실질적 변화의 필요성과 실질적 변화의 방안을 은폐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 때문에 좌파가 검찰개혁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되는 상황에서 우파 주도의 반조국전선에 가담하여 공조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조국이 법무부장관 자격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지 말아야 한다던 주장은 이제 조국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통령이 조국을 해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타난다. 임명 전과 비교해 이제 조국이 ‘범죄자’라는 미확인의 주장까지 더해졌다.

조국이 만약 범죄자임이 확인된다면 그가 장관직을 수행해서는 안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보수정당들과 보수언론들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사퇴나 해임 심지어 구속을 주장하는 것은 불확실한 여론으로 여론재판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 이런 식의 재판에서는 언론, 방송 등을 장악하고 있는 우파 언론 집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지극히 위험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좌파적 입장을 내세우면서 조국이 법무부 장관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이라는 부르주아 사회기관과 직책에 대한 환상을 퍼뜨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법과 법무행위가 좌파적 시각에서 그토록 ‘정의’로운 것이었는가? 부르주아 사회의 법과 법무행위는 원리상 부르주아적 정의와 부르주아 체제를 재생산하는 기관일 뿐 프롤레타리아 다중의 정의와 다중의 해방을 실현하는 기관이 아니다. 역대 법무부 장관의 면면은 이 사실을 너무도 여실히 보여준다. 왜 지금까지 어느 법무부 장관에게도 적용하지 않던 ‘프롤레타리아적 정의’라는 기준을 조국에게만 적용하는가?

조국이 계급적으로 비정규직 청년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논점도 같은 이유에서 문제적이다. 지금까지 어떤 법무부 장관이 비정규직 청년들의 삶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이들의 아픔을 함께 앓으며 이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는가? 나는 이런 기준을 충족시킬 법무부 장관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대를 기준으로 조국의 자격 문제를 논하는 것은 관념적이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책은 관료지배계급의 고위직으로서 혁명의 대상이지 혁명의 주체가 아니다. 나는 반조국전선에 서 있는 좌파 부분이 혁명의 대상과 주체를 혼동하는 심각한 범주 착오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법무부장관 임명, 직위의 문제는 지배계급 내부의 개혁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 계급간 문제 즉 혁명의 문제로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혁의 문제는 혁명의 문제로 전이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천적으로는 우파 주도의 반개혁노선과 공조하게 되는 도덕주의적 행위양식을 통해서 달성될 수는 없다. 

비정규직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힘은 그 청년들의 자기조직화와 직접행동에서 나오는 것이지 법무부 장관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물론 자신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더 대의할 수 있는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도록 만드는 것도 청년들의 자기조직화와 직접행동의 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반조국 흐름은 지금 명확하게 개혁에 반대하는 지배계급 내 우파 주도로 개시되고 또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삶을 향한 행동은 이러한 우파 흐름에 맞서 조국과의 연합을 통해 조국을 더 급진적인 개혁방향으로 나서도록 촉구하는 것, 즉 혁명의 대상인 법무부장관을 혁명의 동반자로 전용하는 섭정의 정치행동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 반개혁 우파 흐름에 실천적으로 연합하게 되는 반조국좌우연합전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다.

2019년 9월 28일 토요일 서초동 대검찰정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이런 점에서 교훈적이다. 150만명의 사람들이 운집한 이 집회에서 촛불시민들은 정치검찰 퇴진, 자유한국당 해체, 조중동 폐간, 검찰 개혁, 공수처설치, 조국 수호를 외쳤다. 이곳에 운집한 사람들이 박근혜를 파면시킨 2016-7년의 촛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구호, 깃발, 리듬, 호흡 등을 통해 느끼고 알 수 있다. 당시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좌파 일부의 촛불로부터의 철수였다. 이 철수는 촛불시민을 ‘우중’으로 보는 관점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좌파 대오를 서초동 촛불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반면 반촛불 우파는 비록 왜소한 형태였지만 대검찰청 앞에서 촛불시민과 대치하며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고 문재인 탄핵, 조국 구속을 외쳤다.

촛불시민은 박근혜를 탄핵했던 아래로부터의 섭정정치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촛불시민을 ‘우중’으로 보는 것은 다중의 섭정감각을 간과하는 엘리뜨주의 지식인의 편협한 관점일 수 있다. 좌파는 조국 수호에 알레르기적 거부감을 보인다. ‘조국 수호’ 슬로건이 ‘메신저 조국’을 수호한다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국 수호’는 인격으로서의, 계급으로서의 조국을 수호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국의 ‘메시지’, 즉 검찰개혁이라는 메시지를 개혁에 반대하는 우파의 기도로부터 수호하자는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제도적 청산으로 만들지 못하고 사법적 인적 청산으로 만듦으로써 적폐권력인 검찰의 힘이 더욱 강화되는 역설이 전개되어 왔다. 조국 사태는 적폐를 통해 적폐를 청산해온 이 역설의 효과가 드러나는 현장의 하나이다. 조국은 스스로 ‘가진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비록 약하고 불충분하나마 대한민국의 적폐권력인 검찰의 개혁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드문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가진 자’로서의 행보와 ‘사회개혁’의 행보 사이에 드러난 간극과 모순을 단순히 ‘위선’으로 평가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것을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계급적 존재기반을 넘어서려는 지적 노력으로 볼 수는 없을까? 조국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그것이 비록 불철저하고 불충분한 노력이었지만 말이다. 

그 노력이 실제로 성과를 얻고 더 발본적으로 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은 그 자신의 몫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다중 전체의 몫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작 중요한 위험은 흔히 주장되듯이 그가 검찰개혁을 주장했으면서 사생활에서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도덕적 모순에 있는 것이 아니라(존재와 의식 사이의 이 괴리와 모순은 조국만의 특수한 문제라기보다 진보와 좌파를 자처하는 상당히 많은 지식인이 겪고 있고 또 공유하고 있는 일반적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히려 그의 검찰개혁 구상이 불철저하다는 것, 그래서 그의 개혁행보가 관료계급과 자본의 공동이익을 위해 언제라도 반개혁적 관료세력과 타협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가, 사모펀드를 통해 치부를 추구하고 대입제도를 이용해 자녀의 영달을 추구한 한 가족의 구성원이고 가장이라는 점을 들어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해임을 요구하며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촛불다중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너무 근시안적인 것이다. 치부와 영달의 추구는 부르주아 사회가 모든 개인에게 강제하는 생활 논리, 즉 생리의 문제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가진 자’의 집단은 치부와 영달추구를 위한 매우 많고 다양한 수단들을 갖고 있는 반면 ‘못 가진 자’의 집단은 그 수단이 지극히 협소하거나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리를 벗어나는 길로서 유력한 것은 타인노동의 착취에 기초한 사회를 공동생산 및 공동증여의 사회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의 개인을 도덕적으로 지탄하는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고 사회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주체인 다중 자신의 자기조직화와 자기가치화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사회의 구조 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다중이 연합하여 조국으로 하여금 자신이 말한 검찰개혁을 법무부 장관의 권한을 사용하여 더 발본적으로 실행하도록 촉구하고 압박하는 것이지 그의 해임, 사퇴, 구속 등의 요구로 그의 검찰개혁 노선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반응양식은 실천적으로 검찰개혁을 급진화하고 발본화해야 할 시기에 검찰개혁에 반대함으로써 문재인 정부 이후 더욱 비대해진 검찰 적폐권력의 독주를 허용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것이 좌파라면 조국에 대한 도덕적 계급적 비판을 하는 것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 비판의 논리를 기초로 촛불시민들과 함께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그 검찰개혁이 더욱더 근본적인 개혁이 될 수 있도록, 즉 사회혁명의 문을 여는 개혁으로 될 수 있도록 법무부장관인 조국과 관련 기관에게 촉구하고 압박하는 개혁적 섭정행동에 나서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검찰개혁의 발본화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아래로부터의 길, 좌파적 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