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퇴의 정치적 의미와 사퇴 이후의 검찰개혁에 대한 연구노트

  1. 조국의 조기사퇴는 검찰개혁 전선에서의 후퇴다. 조국에게 맡겨졌던 최소한의 개혁목표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기사퇴는 검찰개혁에 저항해온 언론과 검찰 및 자유한국당의 압력에 민주당 지도부가 동화된 결과이다. 
  2. 검찰-언론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를 사법과 문화로 비선(秘線)지배하면서 강탈적 축적을 가속시키는 두 개의 ‘비선(秘線)축’으로서 서로 연합하여 작동한다. 이것은 과거 발전주의 국가를 군부가 권위주의적으로 비선지배했던 것에 비교할 수 있다.
  3. 언론과 검찰은 표적보도(편의보도)와 선별기소(편의기소)를 통해 다중의 인지적 정치적 삶을 왜곡하며 착취적이고 수탈적인 사회관계를 온존, 강화한다. 
  4. 이 두 축은 국가에 대한 다중의 아래로부터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능력을 찬탈하고 왜곡한다. 이 두 축은 국내적으로 지배하는 엘리뜨와 복종하는 군중,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지배하는 제국과 종속하는 주변국 사이의 구조적 연합(국민통합과 미일한 동맹)으로서의 국가를 표상한다. 지배, 사대, 전쟁, 경쟁, 승리가 이들의 지향성이다. 이 두 축은 전쟁으로서의 삶이라는 호전적 이미지를 삶의 본질로 제시한다. 
  5. 이것은 자율, 자주, 평화, 연대, 공통이라는 현시기 촛불다중의 염원과 대립한다. 그러므로 현 시기에 전 국민적 의제가 되어 있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이 두 비선축의 비선지배를 촛불다중의 민주적 섭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 통과절차다.
  6. 조국의 법무부 장관임명은 촛불다중의 검찰개혁 요구에 대한 자칭 촛불정부의 최소한의 부응조치였다. 즉 다중 섭정의 정치적 첨점이었다.
  7. 검찰은 국민의 검찰개혁 요구에 저항했고 그 수단이 조국 일가에 대한 먼지 털이식수사였다. ‘검찰개혁’ 메시지에 ‘사기꾼 일가’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이다. 이것은 ‘권력형 성폭력 리스트(장자연 리스트)’ 메시지에 ‘사기꾼 윤지오’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과 동일하다. 
  8.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성착취-성수탈 관계가 사회적 의제로 표면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조선일보가 주도했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검찰권력을 침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검찰 특수부가 주도했다.
  9. 증언자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는 윤지오의 인성, 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통해 증언의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마녀사냥을 통해 이루어졌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는 조국 일가의 자산가적 계급성을 비난하고 말과 삶의 불일치를 집중 공격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도덕’과 ‘정의’의 담론은 ‘인권’을 짓밟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10. 이 두 공격 모두에서 “누구를 사냥하는가?”는 분명했지만 “누가 사냥하는가?”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져보면, 실제 상황은, 성폭력 가해권력이 피해여성의 노출을 비난하고, 거대한 규모의 착취수탈자가 임금 외의 가외지대(extra-rent)를 수취하는 정규직노동자를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성격의 것이었다.
  11. 좌파 일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 상층의 (상당히 일반화된) 지대수취(‘사모펀드’), 기회수취(‘장학금’, ‘표창장’)를 비판하기 위해, 도덕주의적 정의를 내걸고 거대 권력이 주도하는 이 마녀사냥에 동참하거나 쟁점회피하면서 기권하는 태도를 취했다.
  12. 조국은 검찰발 사퇴압박을 거부했고 검찰개혁의 ‘최소한(불쏘시개)’을 전진시켰다. 그것을 뒷받침한 힘은 조국 자신에게서 나왔다기보다 촛불 집회에 결집한 수백만 다중에게서 나왔다.
  13. 9월 28일 이전에 개국본은 다른 시민단체와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촛불을 꾸려가면서 사법개혁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다. 9월 28일 국민-다중의 분노의 폭발은 개국본/사국연을 놀라게 하고 후퇴시켰다. 더 이상 ‘주최측’이 무의미해지는 다(多)중심의 시간이 열렸다. 이것은 검찰개혁의 급진화, 더 급진적인 검찰개혁을 가져올 다중지성적 에너지였다. 10월 12일을 마지막으로 한 집회중단(그것은 ‘최후통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결국 검찰이 아니라 문재인과 조국을 향한 최후통첩이 되고 말았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국본/사국연의 대응방식이다.
  14. 촛불의 혁명적 폭발이 집회에 가져온 충격(‘중단’) 외에 권력장에 가져온 충격도 있다. 9월 28일의 촛불혁명은 조국을 일거에 대선 유력 후보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10월 5일 촛불다중의 더 폭발적인 참여는 민주당까지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검찰 및 광화문 집회의 압박에 짓눌린 상태였지만 서초 집회의 촛불에 결정적으로 놀라서 후퇴를 시작했다.(다음날인 10월 6일 조국, 주진우 만남. 주진우-김건희[윤석열] 네트워크를 고려할 때 이것은 의미심장한 만남이다. 대화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사퇴의 의사타진과 일정 조율 및 사퇴형식의 조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5. 지금까지 조국사퇴를 요구해온 자유한국당, 노동당 외에 이제 민주당 지도부가 조국사퇴 대오에 가담한다. 명분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하락이다. 그런데 리얼미터의 통계적 지지율이 하락을 보이는 순간에 거리에서 촛불이 보여준 현실적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거리의 현실다중이 아니라 통계 속의 가상 군중을 입장선택의 근거로 삼았다.
  16. 10월 11일 ‘동교동계 원로들’이 이낙연 총리를 불러 조국 사퇴를 권유한다.(https://news.v.daum.net/v/20191011145155705 ) 이후 민주당 내에서 11월 조국의 명예사퇴론이 나왔다. 10월 12일 촛불집회는 ‘주최측’에 의해 잠정 마지막 집회로 계획되었는데(김어준은 그 잠정성과 관련하여 “다시 집회가 열리는 상황은 없어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력장 내에서 이미 일정정도의 교감이 있었을 것을 짐작하게 한다. 
  17. 10월 12일 집회에 대학생진보연합을 비롯한 단체가 촛불 집회 지속을 주장한 것.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는 플랭카드를 내건 것은 촛불집회의 중단에 대한 거부심리가 촛불 다중 속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주최측은 집회계속 플랭카드 철거를 요구했다. 이미 인쇄되어 참가자들이 든 피켓은 검찰개혁-조국수호인데 연단에서 조국수호 발언은 억제되었다. 일찍이 조국이 법무부장관 후보자였던 8월 28일 후보자사퇴를 주장했던(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1908284024H) 이부영을 촛불집회 연사로 내세웠다. 이런 현상들은 촛불집회 주최측이 다중의 폭발적 참여로 인해 점점 ‘조국수호’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가는 ‘검찰개혁’을 ‘조국수호’로부터 분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8. 10월 12일 촛불집회의 열기가 여전히 폭발적이었던 것, 그리고 노무현-문재인-조국을 잇는 이미지가 자생적으로 등장하면서 조국을 더욱 더 확고하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시키는 것을 확인한 후 11월 퇴진보다 더 이른 ‘조기’퇴진을 권유할 필요성이 민주당 기득권 세력 내에서 더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19. 또 다른 계기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윤석열 원주 별장 접대 진술에 대한 수사회피 보도(한겨레)가 나오고 이 문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조기단속의 필요성. 12일의 촛불집회에서 윤석열체포 주장의 대중적 등장. 윤석열이 국회의 뜻에 따를 의사를 표현한 것. 이런 여러 계기들이 결합하여 국회-검찰이 합세하여 서초집회의 촛불을 끄고 청와대를 포위하여 조국의 사퇴를 부분 명퇴의 형식(‘검찰개혁의 불쏘시개’)으로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20. 조국 사퇴 후 자유한국당은 “국민승리”를 외치며 환호하고 나경원, 황교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 검찰개혁의 길이 난망하고 험난할 것임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사퇴 계획을 “몰랐다”고 발빼면서 적어도 말로는 검찰개혁을 지속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개혁을 더 잘 할 인물을 찾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해하고 존중한다”, 노동당은 “환영한다”, 이다. 즉 국회와 제 정당들은 조국 사퇴 사건의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오히려 긴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묵묵부답”의 윤석열이다.) 그런데 문재인 지지층은 조국 사퇴를 범 동교동계(이해찬-이낙연-이재명)의 압박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고 김어준-주진우-시사타파가 이에 동조했다고 보고 있다. 연착륙은 쉽지 않을 것이며 지지율 회복도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 조국 사퇴는 어떤 방식으로도 검찰개혁 전선의 승리로 규정할 수 없다. 조국 사퇴가 검찰개혁의 후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조국 사퇴 압박이 거셌고 지지율 하락이 견디기 어려웠다는 점에 동의한다. 즉 조국 사퇴가 외압에 의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조국의 입장에서 사퇴외압은 두 종류다. 하나는 검찰, 자유한국당, 언론에서의 사퇴압력, 그리고 또 하나는 민주당 내부에서의 사퇴압력.
  22. 조국 사퇴는 검찰개혁을 주장하면 신상이 털리고 가족이 걸레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었다. 검찰로서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개혁을 실제로 주장하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23. 그런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추진할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코 당 내에 있지 않다. 9월 28일을 분기점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검찰개혁을 한 목소리로 외친 사람들, 즉 촛불이 있다.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중요성과 절박성을 학습하는 집단지성적 공간이었다. 촛불이 강하게 밀어준다면 촛불국민의 뜻을 받아 나설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4. 촛불은 조국수호를 외쳤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잔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조국사퇴가 닥쳐온 것은 조국수호라는 촛불의 주장이 정면에서 거부된 것이다. 이것은 촛불집회의 갑작스런 ‘폐지’와 때를 같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다중이 나서지 않으면 검찰개혁의 완수가 이번에도 난망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군사독재”를 대체한 “검찰공화국”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10월 12일 마지막 촛불집회”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집회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이다.
  25.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국민들 덕분입니다.”“검찰개혁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민의 뜻과 마음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라는 조국 사퇴 문구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당정청이 힘을 합해 검찰개혁 작업을 기필코 완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에서의 ‘당정청’보다 훨씬 근본적인 역량에 대한 호소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민주당의 검찰개혁 립서비스가 립서비스에 그칠 것인가 실질적인 것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서초 촛불집회의 의미와 양상에 대한 몇가지 생각

집회와 의회

  1. 대의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집회(assembly)는 의회(parliament)가 기능장애에 빠진 때에 의회를 치유하고 개혁하기 위해 출현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정치장이다. 그것은 일종의 의회밖의 의회, 거리의회이다.
  2. 집회는 언어, 분석, 이성에 의해 이끌리는 의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체, 직관, 정동의 요소가 훨씬 강하게 작용한다. 
  3. 집회는 의회를 대체하기보다 의회를 섭정한다. 의회의 가능조건과 기능조건을 규정하는 것이다.  
  4. 집회의 언어는 이 때문에 주로 명령어이다.

9월 21일, 9월 28일, 10월 5일/10월 12일의 집회변이

  1. 내가 참가한 주말집회는 6, 7, 8, 9 총 4회 중 3회였다. 내가 참가하지 못한 8차 집회(10월 5일)는 9차 집회와 유사한 질/량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2. 첫 주말집회였던 6차 집회는 사법개혁국민운동본부(초기의 개싸움하는국민운동본부)라는 명확한 집회주체가 있었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전개되었던 2008년이나 2016년 촛불집회와는 달리 사국본은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집회를 주최했다. 1차 집회를 수백명에서 시작하여 9월 21일 6차 집회에서는 내가 참석한 시간에 대검 정문 앞에서 수천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있었다. 검찰이 이것을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었다. 때문에 이전의 검찰 수사 관성이 집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3. 7차 집회에서는 빅뱅이 일어났다. 서초역에서 지하철을 내려 나갈 때부터 여기저기서 검찰개혁을 외치는 구호소리가 요란했다. 페스티벌이 있었던 예술의 전당 방향을 제외하고 교대역 방향과 서리풀터널 방향, 그리고 검찰청 방향으로 집회군중이 서 있었다. 주최측은 대검 정문 앞에 고속터미널 방향으로 무대를 설치했는데(수 만 명의 참가를 예상했다고 한다) 그 무대는 집회군중에 떠밀린 왜소한 섬처럼 보였다. 7차집회는 주최측의 예상을 넘어선 다중의 폭주공간이었다. 통행이 어려웠고 사람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켓도 없고 촛불도 없이 스마트폰 랜턴 앱으로 집회를 이어갔다. 무대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꽤 많은 깃발들이 눈에 띄었다. 구호도 다양했다. 통신폭주 때문인지 와이파이도 터지지 않았다. 촛불혁명의 시간이 있었다면 9월 28일 7차 집회라고 해야 할 것이다.
  4. 9차 집회는 분명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6시 50분에 도착하여 한자 십(十)자형 집회대오를 외곽으로 취재 사진을 찍으면서 걸어보았다. 예술의 전당방향 한 블럭 반을 돌았다. 교대역 방향이 가장 길었는데 강남역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대오였다. 대검 방향은 서초경찰서를 분기점으로 태극기 집회 수천명과 대치/분리되어 있는 형상. 서리풀 방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나 군데 군데 빈자리가 많았다. 2시간 10분이 걸려 9시에 출발점인 서초 사거리에 도착했다.
  5. 6차 집회가 결의를 했지만 불안한 선구자들의 형상이었고 7차 집회가 성난 군중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면 9차 집회는 자신감 넘치는 축제참가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장터가 생겼다. 어린이를 등목 태운 사람들, “검찰개혁, 윤석열체포” 피켓을 두른 반려견, 일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9차 집회에서 7차 집회의 아나키스러움은 사라졌다. 교통경찰이 통행을 관리하고 자원봉사자들이 군중을 관리했다. 서초 네거리에 설치된 거대한 중앙 무대는 곳곳에 설치된 스크린에 복제되었다. 거대한 복제 스크린이 대충 열 개는 되어 보였다. 집회는 다중의 자발적 운동이라기보다 중앙이 일사분란하게 진행하는 행사의 성격을 띠었다. 이 때문에 구호는 “검찰개혁, 조국집회”로 일정하게 수렴되는 분위기. (태극기 집회 쪽은 “문재인 퇴진, 조국구속”만을 반복적으로 외쳤다.)
  6. 태극기 상징의 재전유/탈환이라는 이유로 태극기 문양 피켓들 및 대형 태극기가 집회 도구로 도입되었다. 9차 집회에서는 그것이 애국가와 결합되었다. 이것이 애국주의로 나아갈지 “나라의 새로운 형상”에 대한 모색으로 나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중앙 무대의 지배가 계속된다면 그것은 전자로 귀결될 위험성이 높다.
  7. 집회 무대에서 먼 곳, 특히 교대역과 강남역 사이에서는 중앙 무대의 복제 스크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독자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중앙 무대를 등진 대오를 꾸리는 모습도 보였다. 자세히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중앙 무대의 방향에서 크게 벗어난 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을 보완하는 것?
  8. 지역에서 올라온 참가자들의 대오도 일정하게는 무형의 독립성을 갖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9. 주최단체인 사국본이 9차 집회를 잠정적 마지막 집회로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대학생진보연합은 19일 26일에도 대학생 주도로 집회를 계속한다는 선언을 한 상태.

단상

  1. 촛불다중들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위해할 수 있는 검찰권력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검찰개혁을 하라는 명령을 하기 위해 모였다.
  2. 조국은 검찰개혁을 수행할 최소 행위자(최소강령의 이행수임자)로 호명된다.
  3. 국민의 사법주권이 현재 주어진 최소강령인 검경수사권 조정이나 공수처 설치를 통해 달성되지는 않는다. 대법관 및 검사장 직선, 재판배심원제(국민참여재판)를 보충할 기소대배심제(Grand jury), 법관 및 검사장에 대한 국민소환제 등 국민의 사법주권을 보장하면서 대의기관들을 통제할 제도들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4. 이러한 과제들은 사법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완수될 수는 없기 때문에 국민-다중이 행정주권과 입법주권을 획득하는 과정과 동시병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동물과 집회

“[네팔의 자나 안돌란 당시] 비라트나가르에서는 당나귀와 개와 고양이도 검은색 스카프와 민주주의 구호로 장식한 채 거리를 뛰어 다녔다”(조지 카치아피카스, <아시아의 민중봉기>, 원영수 옮김, 오월의봄, 347쪽)

서초동에서도 “검찰개혁, 윤석열체포” 띠를 두른 반려견이 사람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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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1)

증언자 장자연과 국가

윤지오 이전에 장자연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자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장자연이 피해자라는 사실에 가려 주목 받지 못했다. 장자연은 자신이 쓴 증언조서 문건에서 많은 수의 권력자들을 협박, 강요, 폭행, 성폭행의 가해자로 지목했다. 이 증언이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장자연이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기꾼으로 몰려 고소고발되고 압수수색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구금되었을지 모른다. 4장만 남은 증언조서 문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저 ‘죄없는 사람들’에 대해 허위사실을 가지고 명예훼손한 증거물로 제출되었을 것이며 권력자들이 ‘김밥값'(후원금) 으로 입금해준 수표는 사기로 편취한 재물로 압류되었을 것이다. 거액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를 음란죄로 몰아붙일 사진이나 동영상들이 어딘가로부터 쏟아져 나와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을지도 모른다. 

언론들과 기자들이 이 과정에서 어떻게 움직였을지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장자연은 경찰, 검찰로부터만이 아니라 기자로부터 쫓기며 취조형 취재를 당해야 했을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포위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앞다퉈 톱기사로 그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센세이셔널한 기사들에 동화된 사람들이 그를 마녀로 지목하고 화형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을 것이다. 군중들의 손가락질로 잠을 설쳐야 했을 것이며 정신과 치료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상상에는 근거가 있다. 그 그림의 윤곽이 앞에서 분석한 대한민국 경찰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이미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사건조사에서 경찰의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증언조서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만드는 것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사기획은 장자연의 죽음을,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가지고 사람들을 기망하여 돈을 벌고자했으나 자살로 인해 미수에 그친 사건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 경찰의 시각에서 장자연 사건은 ‘조선일보 방사장’을 비롯한 가해권력자들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아니라 가난한 연예노동자 장자연의 ‘사기 미수 사건’이었다. 

검찰, 법원은 이런 시각 하에서 합동수사를 진행했던 경찰과는 다르게 보고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이 경찰로 하여금 장자연에 의해 가해자로 지목된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수사를 축소하도록 지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통화내역 조사 지휘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피해자 장자연과 소속사 대표 김종승의 통화내역은 1년치를 조사했으면서 조선일보 방상훈에 대해서는 한 달치만 조사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판사의 질문에 이모 수사관은 “통상 1년의 통화내역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시각의 차이이지만 검사, 판사가 문건에 2008.9이라고 나와 있으니 2008.9 한 달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답한다. 판사가 “청구는 1년치를 하였나요?”라고 다시 확인하자 이모 수사관은 “예 그런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답한다. 진짜 문제는 경찰이 아니라 검사, 판사라는 답변이다.

그런데 1달치 통화내역으로 조사범위를 넓기기 전에 원래는 그보다 짧은 1주일치 통화내역만 조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에 관해 판사와 이모 수사관이 나눈 문답은 이러하다.  

문: 경찰서에서 성남지청으로 청구한 청구서를 토대로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것인데, 당초 수사팀에서는 원래 1년치를 신청했으나 일주일치만 신청하라는 검찰의 수사지휘에 따라 신청서에 일주일로 줄여서 기재하였다는 것인가요?

답: .

문: 검찰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는 신청서를 보낸 적은 있나요.

답: 증인의 기억에는 문서로 오갔는지 구두로 오갔는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원래 분당경찰서가 성남지청에 1년치의 통신자료를 조회하겠다고 요청하였는데 검사의 수사지휘로 일주일치의 통신자료만 청구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이 진술이 맞다면, 경찰이 진상규명과는 먼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그 시간에 이러한 방향을 규정하고 수사가 진실과 괴리되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은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와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였던 셈이다. 즉 피해자의 증언이 허위임을 입증할 목적으로 가해(지목)자에 대한 수사범위를 축소하는 일에서 경찰, 검찰, 법원이 합동작전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작전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는 기획사 대표였던 김종승과 유장호에게 경미한 처벌을 내린 것 외에 실질적인 가해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로 면죄시킨 것이다. 이 결과의 다른 측면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검찰개혁’에 대한 강렬한 국민적 열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검의 수사와 기소 및 법원의 판결에 대한 전 국민적인 의혹, 즉 행정 및 사법관료 체제가 국민으로부터 유리되어 국민을 기만하고 진실을 억압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불신이다.

검찰개혁의 발본화를 위한 조건: 2019년 9월 28일 서초동 촛불집회에 대한 단상

검찰권력은 행정권력 중에서 군사권력에 상응하는 강력한 권력이다. 군사권력은 전쟁을 통해 타인을 살상할 수 있는 권력임에 반해 검찰권력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통해 타인을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이다. 군사권력은 원칙적으로는 타국의 국민들을 겨냥하지만(전두환 시기의 군부에서 보듯이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경우가 많다), 검찰권력은 자국의 국민들을 겨냥한다.

군사권력과 검찰권력의 수뇌는 선출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고 대통령의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그 수뇌들은 위로부터 대통령의 통제보다도, 오랜 시간 속에서 재생산되는 군부 및 검찰 관료집단들의 통제를 더 많이 받는다. 해당 관료조직의 이해관계가 국민의 이익을 위배하면서 관철될 수 있는 여지는 여기서 발생한다. 검찰이 형벌권을 관료조직과 관료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때 국가체제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조국은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 주장을 통해 검찰개혁을 추진해 온 인물이다. 이 두 방안을 통해 검찰이 실제적으로 현재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소박한 생각일 것이다. 관료는 이미 하나의 계급을 구성할 만큼 완강한 세력이다. 조국의 개혁 방안은 관료체제와 관료계급을 온존시키면서 관료제도를 개혁할 수 있다는 발상에 근거한다. 검찰과 경찰 사이의 수사권 조정은 관료계급 자체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관료계급 내부 역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검찰만이 아니라 경찰도 관료조직이며 관료계급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관료계급의 문제를 방기하는 한, 공수처도 그러한 관료계급의 일부로 편입되어 들어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므로 경검 사이의 수사권을 조정하고 고위직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행위를 하는 새로운 관료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관료계급 내에서의 일정한 세력균형을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국민에 대한 관료계급의 지배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러한 방안에 머문다면 그러한 검찰개혁의 방향은 계급으로서의 관료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관료조직의 역관계 재배치를 통해 실질적 변화가 도입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질적 변화는 다중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다중을 대상으로 통치행위를 수행하는 관료계급을, 자기조직화된 다중의 아래로부터의 통제에 맡겨 관료들이 독자적 계급으로서 재구성될 수 없도록, 국가기관이 다중의 절대민주적 권력의 명령을 이행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도록 만듦으로써만 가능하다. 즉 관료권력의 재분배와 재조직을 넘어 권력체제 그 자체의 아래로부터의 재구성과 권력기구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으로서의 조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중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그 조직력을 기초로 대의기구에 대한 섭정 능력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관료계급을 약화시키고 궁긍적으로 해체하는 방향에서 검찰 관료조직을 개혁하는 장기혁명의 방향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검찰의 수사권을 경찰이 아니라 국민에게로 넘겨주어야 한다. 자기조직화된 국민들이 원칙적으로 수사권을 갖고 필요한 수사행위를 자율적 시민수사기구, 각 분야의 전문 수사기구, 경찰 등에 필요에 따라 위임, 배당한다는 구상 위에서 검찰개혁을 사고할 필요가 있다. 세월호 참사의 수사를 둘러싼 논란과정에서 수사권을 갖는 시민주도의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안된 바가 있는데 이것은 검찰 개혁을 사고함에 있어서 중요한 사례로 참고될 수 있을 것이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의 자격이 없다는 담론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검찰이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여 표창장,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을 수사선상에 올리고 범죄혐의를 운위하면서다. 이 담론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을 통해 지배적 담론으로 정착되어 갔다. 그러한 ‘부적격’ 담론은 조국이 말과는 달리 실제에서는 정의롭지 못하며 사회 하층의 청년들과는 다른 세상(계급)에 살고 있으므로 법무부 장관의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사적 생활과 공적 발언 사이에 격차가 크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메시지)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가(메신저)에 주의를 돌리는 주장이다.

보수언론, 보수정당, 경검 등 제도적 보수세력 속에서 이러한 담론이 생성되고 유통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건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개혁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저항함으로써만 자신의 이익을 지켜나갈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혁과 혁명을 지향하는 좌파이다. 개혁과 혁명적 사회변혁을 추구해온 좌파 세력의 상당 부분이 조국 사태에서는 무관심을 표명하거나 이러한 우파의 주장에 동조한 것은 보수우파가 그렇게 반응한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떤 동기에서건 좌파가 무관심하거나 반조국 전선에 가담함으로써  반조국전선은 의도되지 않은 좌우합작 전선으로 강화되어 왔다.

혁명적 사회변혁은 필요하다. 그리고 조국의 개혁노선은 어중간하여 실질적 변화의 필요성과 실질적 변화의 방안을 은폐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위험 때문에 좌파가 검찰개혁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되는 상황에서 우파 주도의 반조국전선에 가담하여 공조하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조국이 법무부장관 자격이 없으므로 대통령이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지 말아야 한다던 주장은 이제 조국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대통령이 조국을 해임해야 한다는 주장으로까지 나타난다. 임명 전과 비교해 이제 조국이 ‘범죄자’라는 미확인의 주장까지 더해졌다.

조국이 만약 범죄자임이 확인된다면 그가 장관직을 수행해서는 안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보수정당들과 보수언론들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사퇴나 해임 심지어 구속을 주장하는 것은 불확실한 여론으로 여론재판을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 이런 식의 재판에서는 언론, 방송 등을 장악하고 있는 우파 언론 집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은 지극히 위험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좌파적 입장을 내세우면서 조국이 법무부 장관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무부 장관’이라는 부르주아 사회기관과 직책에 대한 환상을 퍼뜨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법과 법무행위가 좌파적 시각에서 그토록 ‘정의’로운 것이었는가? 부르주아 사회의 법과 법무행위는 원리상 부르주아적 정의와 부르주아 체제를 재생산하는 기관일 뿐 프롤레타리아 다중의 정의와 다중의 해방을 실현하는 기관이 아니다. 역대 법무부 장관의 면면은 이 사실을 너무도 여실히 보여준다. 왜 지금까지 어느 법무부 장관에게도 적용하지 않던 ‘프롤레타리아적 정의’라는 기준을 조국에게만 적용하는가?

조국이 계급적으로 비정규직 청년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논점도 같은 이유에서 문제적이다. 지금까지 어떤 법무부 장관이 비정규직 청년들의 삶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이들의 아픔을 함께 앓으며 이들의 삶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는가? 나는 이런 기준을 충족시킬 법무부 장관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기대를 기준으로 조국의 자격 문제를 논하는 것은 관념적이다.

법무부 장관이라는 직책은 관료지배계급의 고위직으로서 혁명의 대상이지 혁명의 주체가 아니다. 나는 반조국전선에 서 있는 좌파 부분이 혁명의 대상과 주체를 혼동하는 심각한 범주 착오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법무부장관 임명, 직위의 문제는 지배계급 내부의 개혁 문제로 제기되고 있지 계급간 문제 즉 혁명의 문제로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혁의 문제는 혁명의 문제로 전이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천적으로는 우파 주도의 반개혁노선과 공조하게 되는 도덕주의적 행위양식을 통해서 달성될 수는 없다. 

비정규직 청년들의 삶을 개선할 힘은 그 청년들의 자기조직화와 직접행동에서 나오는 것이지 법무부 장관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물론 자신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더 대의할 수 있는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도록 만드는 것도 청년들의 자기조직화와 직접행동의 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반조국 흐름은 지금 명확하게 개혁에 반대하는 지배계급 내 우파 주도로 개시되고 또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삶을 향한 행동은 이러한 우파 흐름에 맞서 조국과의 연합을 통해 조국을 더 급진적인 개혁방향으로 나서도록 촉구하는 것, 즉 혁명의 대상인 법무부장관을 혁명의 동반자로 전용하는 섭정의 정치행동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 반개혁 우파 흐름에 실천적으로 연합하게 되는 반조국좌우연합전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다.

2019년 9월 28일 토요일 서초동 대검찰정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이런 점에서 교훈적이다. 150만명의 사람들이 운집한 이 집회에서 촛불시민들은 정치검찰 퇴진, 자유한국당 해체, 조중동 폐간, 검찰 개혁, 공수처설치, 조국 수호를 외쳤다. 이곳에 운집한 사람들이 박근혜를 파면시킨 2016-7년의 촛불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구호, 깃발, 리듬, 호흡 등을 통해 느끼고 알 수 있다. 당시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좌파 일부의 촛불로부터의 철수였다. 이 철수는 촛불시민을 ‘우중’으로 보는 관점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좌파 대오를 서초동 촛불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반면 반촛불 우파는 비록 왜소한 형태였지만 대검찰청 앞에서 촛불시민과 대치하며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었고 문재인 탄핵, 조국 구속을 외쳤다.

촛불시민은 박근혜를 탄핵했던 아래로부터의 섭정정치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촛불시민을 ‘우중’으로 보는 것은 다중의 섭정감각을 간과하는 엘리뜨주의 지식인의 편협한 관점일 수 있다. 좌파는 조국 수호에 알레르기적 거부감을 보인다. ‘조국 수호’ 슬로건이 ‘메신저 조국’을 수호한다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국 수호’는 인격으로서의, 계급으로서의 조국을 수호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국의 ‘메시지’, 즉 검찰개혁이라는 메시지를 개혁에 반대하는 우파의 기도로부터 수호하자는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제도적 청산으로 만들지 못하고 사법적 인적 청산으로 만듦으로써 적폐권력인 검찰의 힘이 더욱 강화되는 역설이 전개되어 왔다. 조국 사태는 적폐를 통해 적폐를 청산해온 이 역설의 효과가 드러나는 현장의 하나이다. 조국은 스스로 ‘가진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비록 약하고 불충분하나마 대한민국의 적폐권력인 검찰의 개혁을 일관되게 추구해온 드문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가진 자’로서의 행보와 ‘사회개혁’의 행보 사이에 드러난 간극과 모순을 단순히 ‘위선’으로 평가해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것을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계급적 존재기반을 넘어서려는 지적 노력으로 볼 수는 없을까? 조국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그것이 비록 불철저하고 불충분한 노력이었지만 말이다. 

그 노력이 실제로 성과를 얻고 더 발본적으로 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은 그 자신의 몫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다중 전체의 몫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작 중요한 위험은 흔히 주장되듯이 그가 검찰개혁을 주장했으면서 사생활에서 그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도덕적 모순에 있는 것이 아니라(존재와 의식 사이의 이 괴리와 모순은 조국만의 특수한 문제라기보다 진보와 좌파를 자처하는 상당히 많은 지식인이 겪고 있고 또 공유하고 있는 일반적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오히려 그의 검찰개혁 구상이 불철저하다는 것, 그래서 그의 개혁행보가 관료계급과 자본의 공동이익을 위해 언제라도 반개혁적 관료세력과 타협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가, 사모펀드를 통해 치부를 추구하고 대입제도를 이용해 자녀의 영달을 추구한 한 가족의 구성원이고 가장이라는 점을 들어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해임을 요구하며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아래로부터의 촛불다중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너무 근시안적인 것이다. 치부와 영달의 추구는 부르주아 사회가 모든 개인에게 강제하는 생활 논리, 즉 생리의 문제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가진 자’의 집단은 치부와 영달추구를 위한 매우 많고 다양한 수단들을 갖고 있는 반면 ‘못 가진 자’의 집단은 그 수단이 지극히 협소하거나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리를 벗어나는 길로서 유력한 것은 타인노동의 착취에 기초한 사회를 공동생산 및 공동증여의 사회로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의 개인을 도덕적으로 지탄하는 방식으로는 달성할 수 없고 사회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주체인 다중 자신의 자기조직화와 자기가치화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사회의 구조 그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필요한 것은 다중이 연합하여 조국으로 하여금 자신이 말한 검찰개혁을 법무부 장관의 권한을 사용하여 더 발본적으로 실행하도록 촉구하고 압박하는 것이지 그의 해임, 사퇴, 구속 등의 요구로 그의 검찰개혁 노선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반응양식은 실천적으로 검찰개혁을 급진화하고 발본화해야 할 시기에 검찰개혁에 반대함으로써 문재인 정부 이후 더욱 비대해진 검찰 적폐권력의 독주를 허용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것이 좌파라면 조국에 대한 도덕적 계급적 비판을 하는 것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그 비판의 논리를 기초로 촛불시민들과 함께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그 검찰개혁이 더욱더 근본적인 개혁이 될 수 있도록, 즉 사회혁명의 문을 여는 개혁으로 될 수 있도록 법무부장관인 조국과 관련 기관에게 촉구하고 압박하는 개혁적 섭정행동에 나서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검찰개혁의 발본화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아래로부터의 길, 좌파적 길이지 않을까?

보론: 김학의 사건에서 검찰이 “성상납 강요”(성폭행)를 “성상납”(뇌물)으로 바꿔치기한 방법에 대해

“성상납 강요”는 ‘성폭행’을 의미한다(3/끝)

2019년 6월 검찰은 전 법무부차관 김학의를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오랫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학의의 성범죄 혐의는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되었다. 어떤 마술로 검찰이 그 들끓던 여론을 잠재운 것일까? 김학의에 대한 특수강간 혐의를 “무죄” 처분하기 위해 검찰이 사용한 핵심 기술이 바로  “성폭력”(성접대 강요, 성상납 강요)에서 ‘강요’를 제거하여 ‘성접대’, ‘성상납’으로 바꿔치기함으로써 그것을 “뇌물”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김학의에 대한 구속영장 범죄일람표에는 피해를 주장한 A 여성의 진술을 토대로, 16개월간 주 2~3회씩 관계를 가졌고 신원불상의 다른 여성들과의 성접촉 내역도 포함됐었다. 하지만 이제 검찰은 여기에서 김학의에 대한 성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더 기묘한 것은 2007년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윤중천이 이씨를 성폭행한 것은 성폭행으로 인정한 반면 그와 동시에 이루어진 김학의와 이씨의 성관계는 성폭행이 아닌 ‘성접대’로 판단한 것이다. 사람들의 공분을 산 장면, 즉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이뤄진 성관계도 ‘성접대’로 판단해 성범죄 혐의가 아니라뇌물 수수 혐의에 포함시켰다. 폭행과 협박, 즉 ‘강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성상납 강요’에서 ‘강요’만 지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성폭행’도 ‘뇌물’로 둔갑될 수 있고 성범죄가 증발될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김학의 기소방식이 남기는 교훈이다.

그런데 정말 김학의 사건에 강요가 없었을까? 검찰 수사단의 논리는 다음 세 가지이고 그 결론의 특징이 강요가 없었다는 판단이다. 

(1)A씨에 따르면, 김학의가 직접 폭행·협박한 사실이 없다 

(2) A씨는 김학의에게 자신이 윤중천의 폭행·협박으로 (김 전 차관과의) 성관계에 응해야 하는 처지를 알리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3)윤씨도 자신의 폭행·협박 사실을 부인하면서 구속 이후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어 김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식의 논리, 이런 식의 판단이 나왔을까? 단적으로 말해 수사단이 피해여성의 진술을 배제한 결과이다. 피해여성 지원 조력인단의 이찬진 변호사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김학의는 윤중천이 A에게 고함‧욕설‧위협하고 힘으로 제압하는 과정을 지켜보다 간음했다’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2013년 A씨가 처음 경찰에 진술한 뒤 지금까지 일관적이다. 김학의는 윤중천이 A에게 성관계를 강요한 인사 가운데 가장 많이 A를 간음했다”고 한다.(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486

피해자의 말에 의하면, 김학의가 지켜보는 가운데 윤중천이  피해자를 위협하고 강요하여 제압했고 그 과정을 지켜본 후에 김학의가 피해자를 ‘간음’했다는 것이다. 즉 공범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김학의가 직접 폭행, 협박한 사실이 없다는 것에 기초하여 성범죄에 대한 무혐의를 도출한다. 고함 욕설 협박 후 성관계한 윤중천은 ‘성폭행’(강간치상)으로 기소했음에 반해 그 고함, 욕설, 협박을 지켜본 후에 성관계한 김학의는 ‘성상납’을 받은 것으로 간주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성폭행이 뇌물로 둔갑된다. 기가 막힌 연금술이다. 피해자는 윤중천의 고함 욕설 협박으로 주눅이 들고 공포에 휩싸였다고 하더라도 김학의가 그것을 지켜본 후 간음하려 할 때 용기를 내어 ‘지금 당신이 행하는 것은 강간인데 내가 윤중천의 위협과 욕설 때문에 두려워서 이것이 강간이라고 당신에게 차마 말을 못합니다’라고 알려주고 또 그것을 어떤 유형의 증거로 남겼어야만 했다! 그럴 때에만 그것은 성폭행에 해당된다! 만약 당신이 그 상황에서 그런 용기를 낼 수 없고 지략을 발휘할 수 없다면 당신이 경험한 것은 성폭행이 아니라 성상납(뇌물)이다!

이것이 검찰의 법논리학이다. 이런 방식으로 권력자들에게 성폭행을 할 자유를 폭넓게 열어주는 검찰 앞에 2009년의 3월 7일 이전의 장자연이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를 적은 리스트를 내밀고 관련 진술을 직접 했었다고 가정해 본들, 그것이 뇌물(성상납)이 아닌 성폭행으로 기소될 수 있었을까? 

이런 낙담스런 현실 때문인지,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었던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하면서 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서해맹산(誓海盟山)의 정신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 검찰개혁, 법무부 혁신 등의 소명을 완수하겠습니다.” 검찰개혁을 어떤 방식으로 완수할 것인가, 그것이 완수된다면 개혁된 검찰이 어떤 모습, 어떤 태도로 성폭행 피해자들 앞에 나타날 것인가? 우리가 앞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 봐야 할 지점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