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표정, 행동에 대하여(3)

Scene #3 장자연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고인을 사기꾼으로 만들기

조선일보가 이종걸 의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하여 2011년 10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증인신문이 열렸다. 여기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장자연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이모 수사관이었다. 이날 이모 수사관은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엉겁결에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대해 경찰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깊은 무의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만다.

“문: 경찰이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 확인한 사실은 어떤 것인가요?

답: 수사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고, 아들이 룸싸롱에서 장자연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이하 모든 문답 인용은 한국일보의 <장자연 사건 진술전문공개: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에서 가져온다.) http://interactive.hankookilbo.com/v/dfc34fa8eb2d4eeda905360705cd90bf/index.html#&gid=1&pid=1

놀랍게도 대한민국 경찰의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내용 전부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한다. 이 답을 듣고 변호인은 문건의 한 항 한 항에 대해 경찰이 사실로서 확인했는지를 묻기 시작한다.

“문: 장자연의 문건 중 “제가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촬영할 때는 진행비를 저에게 부담시켰고 이것도 모자라 매니저 월급 및 스타일리스트 비용 실비 모든 걸 제가 부담하게 강요하여 제 자비로 충당하였습니다”라고 기재된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수사발표 당시에는 발표를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문건의 첫 항에 대한 사실 여부부터 이 수사관의 기억에는 없는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그토록 강하게 단정할 수 있었던 것일까? 변호인은 이어 문건의 두 번째 항이 사실로서 확인되었는지 묻는다.

“문: 또 문건 중 “어떤 감독님이 태국에 골프 치러 오는데 드라마 스케줄 빼고 태국으로 와서 술 및 골프 접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 요구를 제가 응하지 않자 차량도 네 돈으로 렌트해서 타고 다니시라고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예”

다시 놀랍게도 이모 수사관의 답은 ‘예’이다. 수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항의 사실 여부는 기억에 나지 않고 두 번째 항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이 확실한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정도로는 이모 수사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던 때문인지 변호인은 더 묻는다. 

“문: 문건 중 “저는 김00 사장님 회사에 계약되어 일하고 펜트하우스 코끼리 출연하고도 1,500만원 중 300만원만 받았고 끊임없는 사장님의 지인과의 술접대 강요를 받았으며 그렇게 지내면서 저는 그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이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는가요.

답: 그런 강요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체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일까? 변호인은 문건 중의 다른 항목을 질문한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이 ..저를 방안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저를 수없이 때리면서 … 온갖 욕설로 구타를 당했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이모 수사관은 답한다. ‘예, 기소하였습니다.’ 변호인은 또 묻는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의 강요로 얼마나 술접대를 하였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부분도 김00이 장자연을 수십 회에 걸쳐 술자리에 불러낸 사실을 확인하였나요[?]’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의 이모 수사관이 답한다. “예, 경찰에서는 사실로 확인하였습니다.” 

변호인이 이런 방식으로 문건의 세부항목에 대한 사실확인 여부를 하나하나 점검해 들어가 보니, 문건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모 수사관이 명백하게 위증을 한 것이 아닐까? 이모 수사관은 이 증인신문에 앞서 판사 앞에서 위증의 벌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선서와 서약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변호인의 질문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나는 이모 수사관의 ‘장자연의 문건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이 거짓 주장, 거짓 의식이 그의 개인적 생각이었을까? 

그는 이 신문과정에서 문건에 대한 이 문답의 시간에 이르기 전에 당시 수사팀이 어떻게 꾸려졌는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장자연 사망 직후 분당경찰서가 이 변사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살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유족을 중심으로 수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3월 13일 KBS에서 장자연 문건이 보도되었고 이후 경기지방경찰청에 광역수사대를 편성하여 분당경찰서와 합동 수사를  시작했다. 42명의 거대 수사팀이 꾸려졌고 분당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매일 수사회의를 했으며 50명 이상의 기자에게 매일 브리핑을 했다. 증인신문에 소환된 이모 수사관은 2009년 3월초부터 2009년 7월 9일까지 장자연 수사팀에서 근무했으며 2009년 4월 24일 중간수사발표 직후 가진 기자와의 문답에서 답을 했던 인물이다. 즉 그의 의식은 그 개인의 특별한 생각이라기보다 당시 수사팀의 일반적 생각을 대표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증인신문 서두에서 미리 정해진 특별한 수사방향은 없었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므로 “경찰 수사의 명예를 걸고 떳떳하게 수사하자” “다른 건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수사하자”고 수사팀원들이 서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문건내용의 사실여부 확인 과정에서 그는 판사, 검사, 변호인, 방청객 앞에서 여지 없이 거짓말로 드러날 불공평하고 불명예스런 증언을 무릅쓰게 되었을까? 그가 문건에 대해 이렇게 거짓증언을 한 동기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자 한 것, 즉 숨기고자 한 사실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변호인과 이모 수사관이 나눈 다음 문답은 시사적이다.

“문: 문건 내용중 2008.10.28 방상훈의 아들 방정오가 강남 라000 유흥주점에서 장자연 김00 등과 술자리를 한 사실은 확인되었나요.

답: 예.

문: 장자연의 문건 중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부분만 확인할 수 없었는가요.

답: 예, 그 부분은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라는 답이 나온다. 거듭말하거니와 이 말도 문건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과 분당경찰서 합동수사팀이 “확인이 안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수동태로 쓰여진 이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가 ‘정말 확인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확인을 못한 것’인지 ‘덮어두고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갖가지 이유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실제로 45쪽 이후 변호인들과 증인 이모 수사관 사이의 문답은 이 문제에 집중된다. 

변호사는 이모 증인의 답을 들은 후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에서 그 시기와 사람이 특정되어 가장 구체적인 진술 부분이라고 보이는 조선일보 방사장의 부분만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데, 어떠한가요”? 라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이모 수사관의 답은 어딘가 논점을 벗어난 횡설수설로 보이는데, 살펴보면 엄밀해야 할 수사 결론을 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생각과 일반적 추론으로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보자.  

“‘아들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라는 부분도 과장된 문구로 쓴 소송용 문구입니다. 소속사에서 골프 접대를 오라고 하였으나 오지 않아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차도 빼앗기고 다 빼앗겨서 옮겨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장자연이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소속사를 옮기고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00와 연결이 되어서 소속사를 옮길 목적으로 소송용으로 쓴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술자리에 다녀간 것도 증인은 여러 군데를 다녀갔다고 봅니다. 과연 조선일보 사장이 룸싸롱 성접대를 했느냐, 그 아들인 스포츠 조선 사장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요구했느냐는 수사가 제일 어려운 수사였고, 룸싸롱에서 만난 것은 맞지만 과정이 장자연만 불러서 장자연만 접대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방정오라는 아들과 한00 등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에 한00과 김00이 연락이 되어서 갑자기 장자연을 데리가 가서 인사만 시겨준 자리입니다. 그래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했다는 부분은 과장된 것이고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되지 않았나라는 것이 경찰의 수사입니다.”

뒤죽박죽으로 표출된 그의 생각의 골자를 정리해 보자. (1)장자연은 당시 김종승 사장의 명령을 거부하여 모든 것을 빼앗겨서 돈이 없었다 (2)소속사를 옮겨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장호와 함께 소송용 문서를 작성했다. (3)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 (4)그러므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하게 했다’는 문구는 과장이다 (5)그 자리는 김종성이 방정오에게 장자연을 인사만 시킨 자리였다.

이런 추론과 가해(혐의)자에 대한 변론(!)을 통해서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 문건을 협박용 허위 문건으로 만든다. 당시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를 대표하여 말하고 있는 이 이모 수사관의 추론에 따르면, 장자연은 유장호의 도움으로 과장과 허위의 소송용 문서를 작성해 김종승을 협박하여 계약을 해지하고 새 소속사로 옮겨 계약금을 받아내려한 인물, 즉 ‘사기꾼’에 다름 아니게 된다. 망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이 이상의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 생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위의 이모 수사관 주장 중에서 ‘장자연이 남긴 글은 유서가 아니라 문건이다’라는 주장은 우리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 국민들 상당 부분은 그 글이 유서라고 알고 지난 10년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모 수사관의 이 진술은 경찰이 처음부터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문서, 즉 증언조서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유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수사기관만 알고 있고 국민은 몰라야 하는 내부비밀이었던 셈이다. 

그것을 비밀로 했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만약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로 단정하기에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사인에 대한 분석부터 재수사가 시작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건 공개로 재수사가 착수된 이상 왜, 언제, 어떻게, 어디서 등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수사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모 수사관이 진술에서 몇 번씩이나 “자살”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러한 원점 재수사는 경찰에 의해 전혀 의도되고 있지 않았다. 첫 수사에서 발표된 바의 그 “자살”이라는 설명은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경찰 재수사의 확고한 전제이고 출발점이었다.

또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점은, 유장호, 유가족(오빠), 윤지오가 서로 유사하게 진술한 바 있고 언론과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수사 당시 수사관들이 이 리스트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을 통해 입증된다. 이모 수사관이 말하는 초기 장자연 재수사에서 경찰의 관심은 KBS에서 넘겨 받은 그 4장짜리 ‘문건’이 “(1)고인이 쓴 것인가? (2)그것이 사실인가? (3)그것의 성격이 무엇인가(즉 유서인가 아닌가)? (4) 문서와 그것의 유통이 자살에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네 가지에 한정되고 또 집중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모 수사관은 “증인이 본 2개의 문건 외에 장자연이 작성했다고 제출된 다른 문건이 있었나요.”라는 (피고인의) 질문에 “경찰에 제출된 문건은 없었습니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답할 뿐이다. 그런데 당시 피의자나 참고인들은 4장짜리 문건 외에 3장짜리 편지글 형식에 명단(리스트)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관들은 그러한 진술을 흘려듣고 그것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이 리스트에 관한 질문이 조사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까지에는, 이명박 정부를 지나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고 국민의 손으로 세운 촛불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그리고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착수할 때까지의 10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2018년에 구성된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그 리스트에 누구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진 국가 조사기관이었다.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이 질문을 처음으로 받고서야 윤지오가 비로소 “방씨 성을 가진 세 사람”,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 등 그 리스트에서 본 권력자들의 실명을 진술했다. 하지만 이 기관은 공소시효는 대부분 끝났다는 관점을 갖고 사건 재조사를 과거사정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으며 강제수사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 결과 윤지오의 진술은 거명된 그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질적 수사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진술 자체가 신변위협을 빙자해 돈을 벌기 위한 거짓 진술이라는 가해 권력측으로부터의 역공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윤지오가 장자연이 겪은 “성상납 강요”(즉 성폭행)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 그 ‘리스트’는 봉은사에서 물질적으로 소각되고 경찰에 의해 배제되어 수면에서 사라졌음에도 10년의 세월을 이기고 윤지오의 기억과 진술로 되살아 왔지만 ‘사기를 위한 허위진술’로 매도되어 다시 파묻히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사라짐을 강요받아온 이 리스트의 이 운명에 두 번의 인간학적 사건이 수반되었는데 그 중의 한 번은 장자연의 죽음이고 또 한 번은 윤지오의 매장이다.

이 두 가지의 부당전제를 갖고 출발한 합동수사팀과 이모 수사관의 위 다섯 가지 주장은 “장자연에게 당시에 돈이 없었다”를 모든 추론의 기초로 삼는데 이것이 타당한 주장일까? 이모 수사관은 이날의 진술(25쪽)에서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문: 장자연의 은행계좌 입출금 내역도 조사하였는가요.

답: 예

문: 특이사항이 있던가요.

답: 100만원 이상의 수표가 들어온 것이 많이 있어서 수사를 하였습니다.

문: 그 100만원 권 수표가 대략 어느 정도나 되었나요.

답: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억 단위인가요?

답: 전부 합치면 억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그 수표가 기획사 사장 김00이니 김00의 회사로부터 받은 것인가요?

답: 아닌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진술은 장자연에게 소속사로부터의 수입 외에 다른 수입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중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진로소주 회장 박0덕이 김밥값으로 주었다는 1000만원일 뿐 나머지 입금자와 입금사항에 대해서는 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규모가 “억이 넘는 것”이었다고 하므로 누가 봐도, 특히 가난한 연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이 문건을 쓴 동기를 돈을 벌기 위한 것에서 찾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그러한 돈이 입금된 기록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망 당시 장자연에게 돈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지는 않는다. 돈을 다 써버렸을 수 있고 또 사용해서는 안 될 돈으로 간주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에 제출할 ‘소송용 문서’에 장자연이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허위사실을 적어 “300만원” 정도(장자연과 윤지오의 계약서는 동일했다고 하며 계약 당시 윤지오가 받은 계약금이 300만원이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추정한다) 의 계약금을 벌려고 했다는 주장은 터무니가 없어도 지나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을 바보로 알만큼 충분히 바보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방사장”이 누구이든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의 몇 배로 그 “허위사실”을 기록한 사람은 치명적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몇 백만원의 돈에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말인가?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상식에 비추어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유서라면 사실대로일 것이라는 생각도 문제적이지만, 소송용 문서가 과장을 포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장자연과 조선일보의 역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억측이다. 소송이야말로 사실인가 허위인가를 다투는 긴 과정을 포함하는데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가 어떻게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하는” “힘 센” 조선일보와의  소송에서 ‘허위사실’을 가지고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모 수사관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고도 그 문건에 기록된 나머지 피해사실들 중 단 하나도 허위임을 확인해 주지 못했다. 어떻게 나머지는 모두 사실인데(“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유독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항목만 과장이고 허위일 수 있겠는가? 이모 수사관은 정황에 비추어 가장 허위이기 어려운 항목이 유독 허위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자연이 다른 목적(돈을 벌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관(팀)이 오히려 다른 목적으로 장자연과 문건에 대한 허위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목적과 핵심적 방법은 분명하다. 장자연을 사기꾼으로 만듦으로써 ‘조선일보 방사장 및 그 아들’을 도덕적 지탄과 법률적 유죄로부터 구출하는 것. 이 증인신문조서의 후반부 문답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이 사용한 수사기법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끔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온 것을 중심으로 몇 가지 기법만 간단히 요약해 보자. 무엇보다 (1) 문건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그리고  (2)누가 “조선일보 방사장”인지 누가 그 “아들”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가능한 혐의자들을 임의로 축소하여 주요 혐의자를 조사 대상에서 빼거나[방용훈의 경우] 다른 인물을 고의로 잘못 지목하기[스포츠조선 하0 사장의 경우]  (3)핵심 증인 윤지오를 밤늦게 불러 새벽까지 반복 조사함으로써 진술 일관성을 뒤흔들기(추가로 참고인 윤지오에게, 장자연과 함께 ‘성접대’ 했잖느냐며 모욕주어 기죽이기) (4) 피해자나 참고인의 통화내용은 1년치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가해(혐의)자의 통화는 이틀치, 일주일치, 한달치 식으로 소극적으로 조사하기[방상훈의 전화] (5) 가해(혐의)자의 전화기가 몇 대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가해(혐의)자 측에서 불러주는 전화번호의 통화내역만 조사하기 [방상훈 전화기의 경우] (5)피해자나 참고인은 소환해서 조사하고 가해(혐의)자는 방문하여 조사하기[여러번에 걸쳐 여러 시간동안 반복된 윤지오에 대한 참고인 조사와 30여분 정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방상훈 조사의 차이] (6)언론에서 보도 나오면 뒤쫓아 수사하는 식으로 수사하기 (7) 수사정보를 가해(혐의)자에게 알려 주어 대응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김종승 스케쥴표 방상훈에게 전달] 수사내용에 대해 가해(혐의)자 측과 협의하기[방상훈 알리바이의 경우] (8)사법처리 대상자 중에 언론사 대표는 없다는 식으로 정보를 흘려 여론의 반응을 탐지하고 여론을 조성하기 (9)참고인 조사 한 사람(한00)의 자필진술서를 추가로 받아 가해(혐의)자 측을 유리하게 만들기 (10)중간수사결과 발표내용을 발표 전에 가해(혐의)자 측에 유출하기 등등.

대한민국 경찰이 이러한 기법으로 가해(혐의)자 측에 유리한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른바 “유력” 언론기관인 조선일보는 경영기획실(강효상)을 비상대책팀으로 운영하고 사회부장(이한동)을 보내 경기지방경찰청장 등에게 수사외압을 행사하고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한00)을 경찰에 보내 허위진술을 하게 하고 사건 직후인 2009년 3월 17일에는 도피중이던 김종승을 단독으로 취재하여 “소송 막으려고 전 매니저가 꾸민 자작극”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하여 은연중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탈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중이었다.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가 결국 가해(혐의)자인 조선일보 측의 이러한 노력 및 요구에 부응하고 협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가해(혐의)자 위주의 수사였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끝)

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몸짓, 행동에 대하여(2)

Scene #2 죽음은 ‘자살’로, 문건은 ‘유서’로, 증거는 ‘인멸’로

SBS는 장자연의 이 육성파일의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10년전 장자연 수사기록에도 등장했던 이 녹음파일에 대한 조사에 나선다는 보도가 있었으므로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그 출처를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다. 이 음성파일이 장자연의 핸드폰에서 나왔건 통화 상대방의 핸드폰에서 나왔건 간에, 목숨을 내려놓을 정도의 체념을 토로하는 이 순간에도 장자연이 저항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이 통화기록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장자연이 주검으로 발견되기 바로 며칠 앞서 통화녹음 기능이 있는 것으로 핸드폰을 새로 바꿨기 때문이다. 만약 이 녹음파일이 장자연의 핸드폰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통화기록 자체가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닥쳐온 가해위협을 고발하고 기록하는 적극적 저항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힘 센 자’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는데 자신은 그것에 맞서 싸울 힘이 없다는 사실을 토로하는 내용을 음성으로 기록한 것이고 이것은 다른 한편 누군가의 도움과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녹음파일이 통화상대방의 핸드폰에서 나온 것이라면 장자연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후 다시 협박이 온다면 증거를 남길 목적으로 어느 시점에 핸드폰을 교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통화기능이 있는 것으로 핸드폰을 교체한 행위 그 자체가 협박에 저항하기 위해 시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장자연은 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자신에게 닥친 실제적 위협을 우리가 들은 것처럼 고발하고 기록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핸드폰의 통화녹음 기능을 사용해 보기도 전에 죽음이 먼저 찾아 왔던 것일까? 아니면 증거확보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지만 법정에서의 상대적 투쟁의 길 대신 죽음이라는 절대적 소멸의 길을 선택했던 것일까? 

“경찰”이라 불리는 국가기관은 3월 7일 오후 7시 30분경 장자연이 목숨을 잃고 주검으로 발견된 가족(언니)의 신고를 받고서야 죽은 장자연에게로 왔다. 경찰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이 죽음을 단순 자살의 변사로 처리했다. 유서도 없었고 <꽃보다 남자>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연예인인데도 말이다. 경찰이 이 죽음을 단순자살 변사로 파악한 주요 이유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2월말에서 3월초까지의 저 긴장된 영화적 시간은 경찰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했다. 

정말 당시 경찰은 장자연이 소속사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것을 위해 증언조서인 문건을 작성했으며 이 때문에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초동수사가 부실했으므로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3월 9일 화장되어 부모의 묘소 근처에 뿌려지기 전에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다는 소문은  경찰이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널리 돌고 있었다. 장자연이 죽은 바로 다음 날 호야의 유장호가 미니홈피에 “2주 전부터 자연이가 털어놓은 이야기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연아 내가 절대 이 싸움을 포기한 건 아니다”, “꼭 지켜봐줘” 식의 글을 게재했으며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장자연이 소속을 옮기고자 했던 연예기획사의) 김0형 대표도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다는 사실을 장례 기간 중에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지오도 장례식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유가족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장자연이 죽기 전에 문건이 이0숙 등에 의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외에도 복수의 사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찰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경찰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경찰의 조사를 받았던 주진우 기자는, 2019년 3월 6일에 tbs FM에 출연해, 경찰이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며 부검은 없다”고 발표한 것이 사망 당일 저녁인 점, “자신에게 문건과 관련해서는 절대 수사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 등을 들어 경찰이 문건이 있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수사하지 않고 단순자살의 변사로 처리한 것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경찰이 “우울증”을 연예노동자들의 의문의 죽음을 빨아들이는 변명의 블랙홀로 애용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죽음을 단순자살의 변사로 처리하려 한 경찰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3월 10일 노컷뉴스와 조선일보에 의해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있음이 보도되었고 3월 13일 KBS에서 타다 만 장자연의 문건 내용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재수사를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철저한 조사를 원하는 여론을 거스를 수 없었다. 문건에 소속사 대표의 협박, 강요, 폭행과 같은 범죄사실들이 기술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방사장과 같은 인물들이 이러한 범죄와 연관된 이름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은 2009년 3월 13일 이 사건 재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재수사는 장자연의 죽음이 “단순” 자살은 아닐지라도 자살임에는 분명하다는 경찰의 초기 관점 위에서 이루어졌다. 초기에 경찰은 ‘우울증’을 자살의 동기로 설정했다가 이제 죽음의 ‘복잡한’ 맥락들이 드러나자 장자연이 ‘유서’를 남겼다는 것을 자살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 했다. 이를 위해서는 법정에 제출할 증언조서로 작성된 장자연의 그 ‘문건’을 ‘유서’로 만들어야 했다. 주민등록번호에다가 지장과 간인까지 찍혀 누가 봐도 유서라고 보기 어려운 이 문건을 ‘유서’로 둔갑시키는 데에는 노컷뉴스(김대오)와 조선일보(박은주)의 초기보도가 한몫을 했다. 이 두 기사가 문건의 내용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것이 유서인 것처럼 이미 보도했기 때문에 그 보도 시각을 경찰이 수사권을 통해 재확인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후 장자연이 남긴 문건은 장자연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라는 관점이 지배적으로 된다. 이것이 장자연의 죽음과 관련하여 경찰권력이 언론권력과 연합하여 만들어낸 해석 프레임이다. 

대한민국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국가는 개인이 가치는 이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도 이 규정에서 도출된다. 만약 장자연이 자살하지 않았다면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며 이에 대해 어떤 형태로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장자연이 자살했다면 그것은 국가의 생명보호의무의 한계선을 넘은 것으로 국가의 책임범위를 벗어난다. 우울증-유서-자살 프레임은 그러므로 국가에게 편리한 국가중심주의적 해석도식인데 이 경우에는 공공연한 사실조차 무시할 정도로 폭력적이며 책임회피적인 프레임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장자연 자신을 자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로 지목함으로써 죽음에 책임이 있을 수 있는 다른 가해자를 찾는 노력이나 또 책임이 있다고 ‘문건’에 실제로 기록된 가해자들에 대한 구체적 질문을 원천봉쇄하는 프레임이었다. 

이 시기에 경찰 외에 죽음의 현장 주변에 모습을 나타낸 다른 국가기관이 있다. 국정원이 그것이다. 1999년 1월 21일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한 이 기관은 “국외 정보 및 국내 보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국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 부정사용의 죄, 군사기밀 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국정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의 직무” 등을 수행하는 대한민국의 중앙행정기관이다.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서 국정원의 움직임은 전혀 조사대상으로 떠오르지 않아 실체 없는 유령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국정원이 장자연 사망사건에 관여했다는 복수의 진술이 남아 있다. 

당시 호야의 매니저였던 권0성은 장자연 사망 일주일 전, 그러니까 장자연이 문건을 쓴 바로 다음날부터 국정원 직원이 유장호에게 연락이 왔고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 함께 있었다고 했다. 호야 소속 배우 송0미는 유장호 입원 병원에서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명함을 받았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기자 김대오도 당시 문건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정원을 포함한 국회, 재계, 조선일보, 청와대, 기무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윤지오도 유장호가 입원한 병원에서 국정원 직원과 전화번호를 교환했고 봉은사에서 국정원 직원이 문건을 꺼내와 소각했으며 재수사가 시작된 후에는 조사를 어떻게 받고 있고 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전화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대한 경검의 조사 내용이 없으므로 국정원이 당시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장자연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가 작성된 후부터 줄곧 이 사건의 파장을 관리해 왔다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누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경찰은 어떤 조사를 벌이고 있는지를 탐문한다는 것은 이 사건이 어떤 수준에서 관리되어야 하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문건 작성후 국정원이 장자연의 생명을 보호하지도 않았으며 사망 후 그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힘을 보태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드러난 행동은 문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유장호를 감시하고 유장호, 윤지오, 유가족과 함께 봉은사에서 문건과 리스트를 소각한 것이다. 즉 진실 규명의 인적 증거를 관리하고 물적 증거를 소각한 후 그 남은 재를 구둣발로 짓이기고 흙으로 덮어 흔적조차 없게 만든 것이다. 후자는 유가족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증거인멸에 공조한 것이다.

이상이 사건 초기 재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경찰과 국정원이라는 두 국가기관의 표정과 행동에 대한 고찰이다. 이 고찰은, 국가가 위험에 처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으며 사망 후에도 그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고 가해책임을 밝히는 데 지극히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은폐하려 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국가의 기본적 관점과 태도는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으니 자신의 책임이며 국가가 관여할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남기는 방식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과 태도에 배치되는 상황들과 증거들이 이미 드러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