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퇴의 정치적 의미와 사퇴 이후의 검찰개혁에 대한 연구노트

  1. 조국의 조기사퇴는 검찰개혁 전선에서의 후퇴다. 조국에게 맡겨졌던 최소한의 개혁목표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기사퇴는 검찰개혁에 저항해온 언론과 검찰 및 자유한국당의 압력에 민주당 지도부가 동화된 결과이다. 
  2. 검찰-언론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기업국가를 사법과 문화로 비선(秘線)지배하면서 강탈적 축적을 가속시키는 두 개의 ‘비선(秘線)축’으로서 서로 연합하여 작동한다. 이것은 과거 발전주의 국가를 군부가 권위주의적으로 비선지배했던 것에 비교할 수 있다.
  3. 언론과 검찰은 표적보도(편의보도)와 선별기소(편의기소)를 통해 다중의 인지적 정치적 삶을 왜곡하며 착취적이고 수탈적인 사회관계를 온존, 강화한다. 
  4. 이 두 축은 국가에 대한 다중의 아래로부터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능력을 찬탈하고 왜곡한다. 이 두 축은 국내적으로 지배하는 엘리뜨와 복종하는 군중,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지배하는 제국과 종속하는 주변국 사이의 구조적 연합(국민통합과 미일한 동맹)으로서의 국가를 표상한다. 지배, 사대, 전쟁, 경쟁, 승리가 이들의 지향성이다. 이 두 축은 전쟁으로서의 삶이라는 호전적 이미지를 삶의 본질로 제시한다. 
  5. 이것은 자율, 자주, 평화, 연대, 공통이라는 현시기 촛불다중의 염원과 대립한다. 그러므로 현 시기에 전 국민적 의제가 되어 있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이 두 비선축의 비선지배를 촛불다중의 민주적 섭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필수적 통과절차다.
  6. 조국의 법무부 장관임명은 촛불다중의 검찰개혁 요구에 대한 자칭 촛불정부의 최소한의 부응조치였다. 즉 다중 섭정의 정치적 첨점이었다.
  7. 검찰은 국민의 검찰개혁 요구에 저항했고 그 수단이 조국 일가에 대한 먼지 털이식수사였다. ‘검찰개혁’ 메시지에 ‘사기꾼 일가’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이다. 이것은 ‘권력형 성폭력 리스트(장자연 리스트)’ 메시지에 ‘사기꾼 윤지오’라는 메신저 죽이기로 응수한 것과 동일하다. 
  8.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성착취-성수탈 관계가 사회적 의제로 표면화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조선일보가 주도했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를 통해 검찰권력을 침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작업은 검찰 특수부가 주도했다.
  9. 증언자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는 윤지오의 인성, 도덕성에 대한 비난을 통해 증언의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마녀사냥을 통해 이루어졌고 조국 일가 사기꾼 만들기는 조국 일가의 자산가적 계급성을 비난하고 말과 삶의 불일치를 집중 공격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도덕’과 ‘정의’의 담론은 ‘인권’을 짓밟는 무기로 사용되었다. 
  10. 이 두 공격 모두에서 “누구를 사냥하는가?”는 분명했지만 “누가 사냥하는가?”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던져보면, 실제 상황은, 성폭력 가해권력이 피해여성의 노출을 비난하고, 거대한 규모의 착취수탈자가 임금 외의 가외지대(extra-rent)를 수취하는 정규직노동자를 비난하는 아이러니한 성격의 것이었다.
  11. 좌파 일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정규직 노동자 상층의 (상당히 일반화된) 지대수취(‘사모펀드’), 기회수취(‘장학금’, ‘표창장’)를 비판하기 위해, 도덕주의적 정의를 내걸고 거대 권력이 주도하는 이 마녀사냥에 동참하거나 쟁점회피하면서 기권하는 태도를 취했다.
  12. 조국은 검찰발 사퇴압박을 거부했고 검찰개혁의 ‘최소한(불쏘시개)’을 전진시켰다. 그것을 뒷받침한 힘은 조국 자신에게서 나왔다기보다 촛불 집회에 결집한 수백만 다중에게서 나왔다.
  13. 9월 28일 이전에 개국본은 다른 시민단체와의 연대 없이 단독으로 촛불을 꾸려가면서 사법개혁의 주도권을 쥐고자 했다. 9월 28일 국민-다중의 분노의 폭발은 개국본/사국연을 놀라게 하고 후퇴시켰다. 더 이상 ‘주최측’이 무의미해지는 다(多)중심의 시간이 열렸다. 이것은 검찰개혁의 급진화, 더 급진적인 검찰개혁을 가져올 다중지성적 에너지였다. 10월 12일을 마지막으로 한 집회중단(그것은 ‘최후통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는데 결국 검찰이 아니라 문재인과 조국을 향한 최후통첩이 되고 말았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국본/사국연의 대응방식이다.
  14. 촛불의 혁명적 폭발이 집회에 가져온 충격(‘중단’) 외에 권력장에 가져온 충격도 있다. 9월 28일의 촛불혁명은 조국을 일거에 대선 유력 후보로 끌어올렸다. 그런데 10월 5일 촛불다중의 더 폭발적인 참여는 민주당까지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 검찰 및 광화문 집회의 압박에 짓눌린 상태였지만 서초 집회의 촛불에 결정적으로 놀라서 후퇴를 시작했다.(다음날인 10월 6일 조국, 주진우 만남. 주진우-김건희[윤석열] 네트워크를 고려할 때 이것은 의미심장한 만남이다. 대화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사퇴의 의사타진과 일정 조율 및 사퇴형식의 조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15. 지금까지 조국사퇴를 요구해온 자유한국당, 노동당 외에 이제 민주당 지도부가 조국사퇴 대오에 가담한다. 명분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하락이다. 그런데 리얼미터의 통계적 지지율이 하락을 보이는 순간에 거리에서 촛불이 보여준 현실적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거리의 현실다중이 아니라 통계 속의 가상 군중을 입장선택의 근거로 삼았다.
  16. 10월 11일 ‘동교동계 원로들’이 이낙연 총리를 불러 조국 사퇴를 권유한다.(https://news.v.daum.net/v/20191011145155705 ) 이후 민주당 내에서 11월 조국의 명예사퇴론이 나왔다. 10월 12일 촛불집회는 ‘주최측’에 의해 잠정 마지막 집회로 계획되었는데(김어준은 그 잠정성과 관련하여 “다시 집회가 열리는 상황은 없어야 할 텐데”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력장 내에서 이미 일정정도의 교감이 있었을 것을 짐작하게 한다. 
  17. 10월 12일 집회에 대학생진보연합을 비롯한 단체가 촛불 집회 지속을 주장한 것. 시민들이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는 플랭카드를 내건 것은 촛불집회의 중단에 대한 거부심리가 촛불 다중 속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주최측은 집회계속 플랭카드 철거를 요구했다. 이미 인쇄되어 참가자들이 든 피켓은 검찰개혁-조국수호인데 연단에서 조국수호 발언은 억제되었다. 일찍이 조국이 법무부장관 후보자였던 8월 28일 후보자사퇴를 주장했던(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1908284024H) 이부영을 촛불집회 연사로 내세웠다. 이런 현상들은 촛불집회 주최측이 다중의 폭발적 참여로 인해 점점 ‘조국수호’와 내적으로 연결되어 가는 ‘검찰개혁’을 ‘조국수호’로부터 분리시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8. 10월 12일 촛불집회의 열기가 여전히 폭발적이었던 것, 그리고 노무현-문재인-조국을 잇는 이미지가 자생적으로 등장하면서 조국을 더욱 더 확고하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시키는 것을 확인한 후 11월 퇴진보다 더 이른 ‘조기’퇴진을 권유할 필요성이 민주당 기득권 세력 내에서 더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19. 또 다른 계기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윤석열 원주 별장 접대 진술에 대한 수사회피 보도(한겨레)가 나오고 이 문제가 가져올 파장에 대한 조기단속의 필요성. 12일의 촛불집회에서 윤석열체포 주장의 대중적 등장. 윤석열이 국회의 뜻에 따를 의사를 표현한 것. 이런 여러 계기들이 결합하여 국회-검찰이 합세하여 서초집회의 촛불을 끄고 청와대를 포위하여 조국의 사퇴를 부분 명퇴의 형식(‘검찰개혁의 불쏘시개’)으로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20. 조국 사퇴 후 자유한국당은 “국민승리”를 외치며 환호하고 나경원, 황교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보면 검찰개혁의 길이 난망하고 험난할 것임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사퇴 계획을 “몰랐다”고 발빼면서 적어도 말로는 검찰개혁을 지속하겠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개혁을 더 잘 할 인물을 찾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해하고 존중한다”, 노동당은 “환영한다”, 이다. 즉 국회와 제 정당들은 조국 사퇴 사건의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오히려 긴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묵묵부답”의 윤석열이다.) 그런데 문재인 지지층은 조국 사퇴를 범 동교동계(이해찬-이낙연-이재명)의 압박의 산물로 해석하고 있고 김어준-주진우-시사타파가 이에 동조했다고 보고 있다. 연착륙은 쉽지 않을 것이며 지지율 회복도 순조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 조국 사퇴는 어떤 방식으로도 검찰개혁 전선의 승리로 규정할 수 없다. 조국 사퇴가 검찰개혁의 후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조국 사퇴 압박이 거셌고 지지율 하락이 견디기 어려웠다는 점에 동의한다. 즉 조국 사퇴가 외압에 의한 것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조국의 입장에서 사퇴외압은 두 종류다. 하나는 검찰, 자유한국당, 언론에서의 사퇴압력, 그리고 또 하나는 민주당 내부에서의 사퇴압력.
  22. 조국 사퇴는 검찰개혁을 주장하면 신상이 털리고 가족이 걸레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가 되었다. 검찰로서는 일벌백계의 효과를 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개혁을 실제로 주장하면서 나설 수 있는 사람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23. 그런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추진할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코 당 내에 있지 않다. 9월 28일을 분기점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검찰개혁을 한 목소리로 외친 사람들, 즉 촛불이 있다.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중요성과 절박성을 학습하는 집단지성적 공간이었다. 촛불이 강하게 밀어준다면 촛불국민의 뜻을 받아 나설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4. 촛불은 조국수호를 외쳤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잔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조국사퇴가 닥쳐온 것은 조국수호라는 촛불의 주장이 정면에서 거부된 것이다. 이것은 촛불집회의 갑작스런 ‘폐지’와 때를 같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다중이 나서지 않으면 검찰개혁의 완수가 이번에도 난망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군사독재”를 대체한 “검찰공화국”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10월 12일 마지막 촛불집회”론을 극복하고 새로운 집회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관건이다.
  25.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국민들 덕분입니다.”“검찰개혁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민의 뜻과 마음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라는 조국 사퇴 문구 속에 숨어 있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당정청이 힘을 합해 검찰개혁 작업을 기필코 완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에서의 ‘당정청’보다 훨씬 근본적인 역량에 대한 호소이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민주당의 검찰개혁 립서비스가 립서비스에 그칠 것인가 실질적인 것으로 전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2)

2. 박훈은 어째서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허위 주장을 하는 것일까?

이렇게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이 장자연 리스트를 만지고 보고 읽고 태운 기억을 갖고 있는데 박훈은 무엇을 근거로 그 리스트가 없었다고 허위주장을 하는 것일까? 

첫째는 윤지오가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으로 조사 받던 중에 수사기관의 책상에 있던 서류를 얼핏 보았다고 말했다는 김수민의 말이다. 윤지오는 이런 말을 김수민에게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며 카톡기록에도 이런 대화는 없다. 무엇보다도 김수민의 이 말은 봉은사에서 유장호, 장00, 윤지오가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를 함께 보았다는 서로 일치된 증언에 의해 거짓임이 입증된다. 변호사 박훈이 당시의 진술조서조차 읽지 않은 상태에서 김수민의 이 근거 없는 말에 고발장을 의탁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윤지오를 처벌하고자 하는 어떤 욕망이 사실을 알고자 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의지보다 앞섰기 때문일 것이다.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고 말하게 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기자 김대오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고 말하고 있고 박훈이 페친인 김대오를 정보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대오는, 수사기관에서 증인선서를 한 후에, 장자연의 문건을 전혀 본 적이 없고 그 내용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다. 내용을 본 바 없는 사람이 그 문건 속에 리스트가 들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심지어 김대오는 그 문건을 ‘유서’(형식의 심경고백글)라고 보도할 만큼 그 문건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던 사람이다.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명백히 드러나는 김대오의 이 거짓말을 박훈이 자신의 고발장의 정보 원천으로 삼은 것 역시 윤지오를 처벌하고자 하는 욕망이 실사구시의 의지을 앞지르지 않았다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욕망은 박훈이 김광석 사건 재판 과정에서 이상호, 안민석, 추혜선과 맺었던 사법적 적대 관계를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사건에서 박훈은 이상호를 고소한 서해순의 변호사였고 안민석과 추혜선은 이상호의 편에서 ‘김광석 법’을 발의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박훈은 이상호, 안민석, 추혜선에 대해 김광석 사건과 관련해서 갖고 있던 사법상의 적대감을 윤지오에 대한 적대감으로 확대한다. 이0숙 대 윤지오의 관계를 서해순 대 이상호의 관계에 대입시키면서 말이다. 이런 감정에 따라 박훈은 “윤지오 배우가 장자연 사건의 진실 독점자인가? 진짜로? 그이가 하는 말은 다 진실인가? 이렇게 막가겠다는 것인가?”라고 쓰면서 윤지오에 대한 사법적 공격(“이 사건에 뛰어들기로 작정했습니다”)을 할 것임을 협박조로 예고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박훈은 이상호, 안민석, 추혜선에 대해 직업상 발생한 적대적 감정을, 이들과 일시적으로 동행했던 윤지오에게 투사한다. 이러한 심리상태에서 그는, 윤지오와 달리 장자연 문건과 리스트에 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서로 둔갑시켜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데 앞장섰던 김대오의 일련의 거짓말을 사실로 오인하기에 이른다.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다’는 생각이 그것인데 그 생각은 이런 인간적 네트워크와 정서적 지적 오작동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인지적 결과이다. 나아가 이 그릇된 생각은 윤지오를 수사기관에 사기혐의로 고발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명백하게 가해권력을 이롭게 하는 이러한 추론이 가해권력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언론방송 보도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대재생산되어 증언자 윤지오를 범죄혐의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이 그릇된 추론의 인지적 포로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바로 잡혀야 할 정치적 문제거리로 남아 있다.

증언과 신변위협에 대하여(1)

2019년 8월 2일 정의연대는 박훈 변호사를 윤지오에 대한 무고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였다. 이 고발장은 ‘윤지오가 후원금을 받은 것은 기망행위 혹은 사기다’라는 법률적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내세우는 박훈의 두 가지 주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그 두 주장 중의 하나는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윤지오에 대한 신변위협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박훈의 고발에 기초하여 손해배상과 부당이득을 청구하는 고소장을 작성한 여성 변호사인 최나리는, 리스트도 위협도 없었다는 박훈의 이 강한 버전을,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은 믿기 어렵고 위협은 과장되었다는 식의 약한 버전으로 바꾼다. 2019년 5월 20일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 이후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상황에서 심의발표와 너무 배치되는 박훈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중에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이 고발문건을 기초로 박훈의 두 가지 주장을 비판함으로써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고 신변위협도 있었다는 점을 좀더 분명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재확인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박훈의 고발이 허위주장에 기초해서 조작된 가짜고발임을 밝히고자 한다.

위에서 말한 ‘윤지오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 고발’의 원인이 된 것은 2019년 4월 26일 변호사 박훈이 서울지방경찰청에 제출한 윤지오에 대한 고발장이다. 이 고발장에서 박훈은 다음과 같은 고발사유를 제시했다. 

“피고발인은 고 장자연 씨가 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면서 존재하지도 않은 ”장자연 리스트“[를] 봤다고 하면서 ”법 위의 사람들 30명과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다“고 하고, 사실은 전혀 신변위협을 당한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변위협을 당하였다는 허위주장을 하여 사람들을 기망하여 거액의 후원금을 모금하였는 바 이는 정확히 형법상 ”사기“ 범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인바 피고발인을 엄정하게 조사하시어 엄벌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강조는 인용자)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고 윤지오는 위협당한 바 없으며 따라서 후원금 모금은 허위주장에 기초한 사기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김대오의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고 김수민의 왜곡된 4.16 문건에 의지하고 있다. 이것은 이후 최나리 고소장에서 고소의 근거로 인용된다. 박훈의 이러한 그릇된 주장이 언론과 유튜브, 악플을 통해 무한 재생산되고 여론화됨으로써 당시 한창 장자연 사건을 조사중이던 과거사재조사위원회에 영향을 미쳤고 결국 이 사건을 재수사할 수 있는 동력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심지어 고발장에서 박훈 자신조차 윤지오의 증언이 유의미하다고 인정한 조0천의 강제추행 1심 판결에서조차, 판사 오덕식이 윤지오의 사기죄 피소 등을 이유로 윤지오의 진술 신빙성을 의심하면서 결국 무죄를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사건은, 윤지오에 대한 박훈의 사기죄 고소가 명백히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무죄방면하는 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사회정의 실현에 큰 장애물로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박훈의 고발사유에 대한 상세한 비판을 통해 진실을 회복하는 일이 절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 장자연 리스트는 있었다.

가장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다’는 박훈의 주장에 대해서다. 박훈은 ‘장자연 리스트는 없었기 때문에 윤지오가 그것을 보았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박훈의 생각과는 달리 자료는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았고 또 읽었음을 보여준다. 어떻게 ‘없는’ 리스트를 보고 또 읽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에게 남겨져 있는 진술자료 등을 통해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를 보고 읽었던 그 사실과 상황에 대해 살펴보자.

윤지오는 노컷뉴스와 조선일보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유서라고 잘못 알려진 것)이 있음을 보도한 직후인 2009년 3월 10일 호야엔터테인먼트의 유장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때 유장호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의 명함을 고소인이 갖고 있는지 차례로 대조하며 확인했다. 이것이 윤지오가 이후 ‘리스트’라고 불리게 될 명단을 최초로 경험한 시간이다. 이 때 윤지오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녹음기로 통화내용을 녹음했고 그 녹음내용을 수사기관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당시의 통화에서 유장호는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유장호가 장자연이 남긴 문건에 ‘명단’(즉 리스트)이 있음을 윤지오에게 처음으로 알려 준 것이며 그 명단=리스트가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것임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2009년 3월 12일 윤지오는 봉은사에서 유장호를 만났다. 그곳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에서 윤지오는 실내등을 켜고 유장호가 건네준 장자연의 문건을 읽었다. 거기에는 피해사실을 적은 장들이 있었고 그와 별도로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말 아래에 명단이 적혀 있는 장들도 있었다. 윤지오는 이와 관련해 장자연의 사망 뒤 약 일주일 뒤인 2009년 3월 15일의 진술에서 문건의 맨 끝에 편지글 형식으로 씌어진 “지인들, 가족들, 특히 친언니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보았다고 말했고 2010년 6월 25일 법정에서는 “어떤 장에는 성함만 기재되어 있으면서 어떠한 언론사에 누구, 어디 무슨 사의 누구라는 식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고 그때 본 것의 다른 부분을 진술했다.

2009년 3월 12일 장자연 씨의 오빠와 언니를 포함한 유가족들은 경호원이 땅 밑에서 파내온 별개의 문건을 보고 읽었는데 윤지오는 이때 그 문건도 친언니와 함께 보았고 그것이 자신이 보고 읽은 것과 내용상 동일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것들 중 하나는 원본이고 다른 하나가 사본이라면 윤지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봉은사에서 보고 읽은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종의 문건과 리스트는 유가족의 요구로 그곳에서 모두 소각되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3월 13일 KBS가 유장호 숙소의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며 A4 4장의 문건을 공개했다. 이것은 태워진 원본과 사본 외에 또 다른 문건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명단이 포함된 편지글 형식의 3장의 리스트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윤지오는 피해사실을 기록한 그 문건의 내용은 자신이 본 것과 대동소이하나 자신이 봉은사에서 본 것과는 글씨체가 다르며 또 리스트가 없는 것은 결정적 차이라고 말했다.

이후 리스트는 끝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장자연 리스트를 윤지오가 봉은사에서 보고 읽었다는 사실은 그의 혼잣말이 아니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장자연 문건은 호야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배우이자 실질적 소유주인 이0숙이 더 콘텐츠의 김종승과의 송사를 유리하게 끌고갈 목적으로 대표인 유장호로 하여금 장자연과 함께 작성토록 한 것이다. 그것은 2월 28일에 작성되었다. 그런데 장자연 리스트는 그 다음날인 3월 1일 장자연이 작성하여 유장호에게 건네준 편지형식의 글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리스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우선 그 작성자인 장자연(고인)이고 그것을 보고 읽은 사람에는 최소한 유장호와 윤지오, 그리고 유가족이 포함된다.

실제로 유장호는 2010년 10월 법원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에서, 장자연과 함께 2009년 2월 28일 작성한 4장의 피해사실 문건 외에 장자연 씨가 3월 1일 신사동 소재 세0000라는 곳에서 장자연을 만나 장자연이 쓴 편지형식의 A4 3장을 따로 받았고 그 편지의 내용은 “문서로 작성된 내용은 다 사실이라는 내용, 법률적으로 잘 알아봐 달라는 당부의 내용, 김종승과 관련하여 조심해야 할 사람들 등”이었다고 진술했다. KBS가 보도한 문건은 장자연 등의 피해사실을 기록한 내용만 포함하고 있으므로 유장호의 이 진술에 따를 때 리스트가 따로 있었음은 분명하다. 또 이것은 명단(리스트)는 제출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유장호의 3월 10일 통화중 말과 일치한다.

그리고 장자연의 오빠 장00 씨도 경찰조사에서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었던 것으로 진술했다.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발표에 “유족 장□□은 경찰 조사에서 마치 사람 이름이 나열된 문건이 있는 것처럼 진술한 바 있으나”라고 표현된 문장이 그것이다.   

이상 윤지오, 유장호, 유가족 장00의 사건 당시 진술이 리스트와 관련하여 서로 일치하고 또 유장호가 윤지오와의 통화에서 명단을 불렀으며 그 명단은 경찰에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점에 비추어 장자연 리스트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장호와 오빠 장00가 최근에 자신의 진술취지를 바꾸었다는 것이 이미 10년 전 교차검증된 이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유장호의 경우는 문건이 공개된 직후 윤지오에게 전화를 걸어 ‘문건을 네가 공개했다고 해주면 안 되겠냐’는 식의 위증교사[윤지오는 이 부탁을 거절했으며 해당 녹음을 경찰에 제출했다.]를 하기도 한 사람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수사기록에 편철된 문건 외에 피해사실과 관련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명단’이 기재된 문건, 즉 ‘리스트’가 있었을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판단에 근거하여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장자연 리스트에 실려 있었을 최소 13명의 명단을 재구성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에 제출했다. 장자연 리스트가 없었는데 윤지오가 보았다고 한다는 박훈의 주장은 이 모든 것과 배치되는 성급하고도 맹목적인 것이었다.

2.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증언과 ‘위협 경험’에 대한 증언을 기망행위로 몰기

최나리 변호사의 ‘증여의 의사표시 취소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에 대한 비판(2)

이제 윤지오의 행위를 ‘기망행위’로 보는 (최나리의) 첫 번째 이유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그것은 “후원금을 받을 목적으로 천명한 이유가 신빙성이 없거나 극히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최나리가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그것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미 우리는 뉴시스, 박훈, 김수민, 김대오로부터 SBS, 조선일보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조0천 강제추행 사건 1심 판사 오덕식에 이르기까지 마치 입을 맞춘듯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윤지오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고 장자연에 대한 가해권력자들의 필요와 정확히 부응하는 주장임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윤지오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거나 확인시켜 주는 10년전의 진술자료나 과거사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의 보고, 그리고 조희천 강제추행을 기소한 검찰의 기소사유 등을 거스르며 자신의 희망과 욕망을 객관적 사태 속에 투사하는 주관주의적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신빙성이 없다’는 여론과 판단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객관적 사태 위에  ‘나는 믿고 싶지 않다’, ‘신빙성이 없어야 한다’, ’신빙성이 없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당위, 의지의 덮개를 덮어 씌우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김대오는 ‘자신이 문건을 본 적은 결코 없지만 그 문건 속에 결단코 리스트는 없었다’는 해괴한 주장을 펼쳤다. 김수민은 ‘그 리스트라는 것이 윤지오가 참고인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관의 책상에서 얼핏 훔쳐본 것일 뿐’이라는 말을 지어내었다. 변호사 겸엄을 하고 있는 시인 박훈은 이번에는 이 두 거짓말을 조합하여 근거로 삼으면서, 윤지오가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거짓말로 펀딩사기를 벌이고 있다는 소설을 써냈다. 

최나리는 이 해괴하거나 날조된 주장들을 자신의 논고의 숨겨진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이 설득력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2009년과 2010년의 진술조서, 수사발표, 언론보도 등을 송두리째 태워 없애고 최소한 그 2년의 시간을 역사에서 파내 버릴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윤지오가 10년 전의 진술들 속에 리스트가 있었음을 화석처럼 분명하게 새겨놓았고 그것은 유장호와 장자연 오빠 장00의 진술에 의해서도 교차검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당시의 수사발표나 언론보도 속에도 역시 화석들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장자연 리스트 논란과 그 성격에 대해’, ‘김대오의 거짓말’ ‘김대오의 입은 거짓말제조공장인가 자동거짓말기계인가?’ ‘박훈이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놀라운 방법’ ‘김수민: 살아 있는 모순’ 등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윤지오 진술이 갖는 부인할 수 없는 신빙성에 대해 이미 충분히 논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이것을 입증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최나리가 자신의 고소장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윤지오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어떤 논증도 하지 않으며 고소장 밖에서 이루어진 허구적 주장과 조작된 여론들(주로 김수민이 지어낸 말)을 마치 이미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인용하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진술이 신빙성 없음’을 ‘기망’의 이유로 삼은 것은 최나리이므로 진술 신빙성이 없음을 입증할 책임도 그에게 있는 것은 분명한데 아직 그는 이에 대해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했다. 

두번째로 살펴야 할 것은 최나리가 ‘극히 과장된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고소장을 보면 이것은 신변위협에 관한 윤지오의 증언에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변위협 과장에 대한 최나리의 논증 역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논증만큼이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 대체 ‘기망’의 다른 이유로 삼은 ‘신변위협 과장’이라는 주장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까?

그가 들고 있는 하나의 근거는 2019년 3월 30일의 윤지오가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국민청원이다. 거기서 윤지오는 경찰측에서 지급해준 위치추적장치 겸 비상호출 스마트 워치가 작동되지 않아 신고를 한 후 9시간이 더 경과했음에도 아무런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음을 들면서 자신이 호출버튼을 누른 이유에 대해 쓴다. 벽쪽에서 기계음이 들리다가 이제 화장실 천정에서 동일한 소리가 들린다, 환풍구의 끈이 날카롭게 끊어져 있다, 출입문 잠금장치가 고장나 수리를 했는데 문쪽을 확인해 보니 오일로 보이는 액체가 문틀 맨위에서 흘러내린 흔적이 있다, 문을 열때 이상한 가스냄새가 났다…이런 이유로 수면을 제대로 못 취하는 중에 소리가 반복되어 비상호출 버튼을 눌렀다는 것이다.

윤지오의 청원은 국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는데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주지 않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험적 증언이며 증인이 사비로 24시간 경호원을 고용하여 증언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현실은 부당하다는 고발이고 이 부당한 현실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개혁의 요청이다. 

다행히 윤지오의 청원이 일부 받아들여져 문재인 정부와 경찰청은 청원마감일이 오기 전에 윤지오에 대한 일정한 경호조치를 취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보복이 우려되는 중요범죄 신고자나 피해자 보호는 경찰의 중요한 본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 미흡한 업무처리로 윤지오씨는 물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최종하다”고 사과했다. 

이후 4월 하순경 경찰이 신고사항에 대한 과학적 조사결과 발표라는 이름으로 기계음, 환풍구, 출입문, 가스냄새 등에 대해 어떤 상황설명을 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윤지오가 위협으로 느낀 일련의 흔적들과 현상들이 조사결과 실제적 위협의 흔적이나 현상은 아니었다는 설명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설명은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이 본격화된 시점에 이루어졌다. 우선 그 날의 설명은, 경찰조차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윤지오에게 설명해 준 바 없는 스마트워치 조작상의 특성을 윤지오의 조작미숙 때문에 잘못 작동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서 책임전가하는 파렴치한 발표였다. 게다가 몇 가지 개개의 흔적과 현상에 대한 경찰의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심지어 언론은 가스냄새가 났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어떻게 호텔에서 가스냄새가 날 수 있습니까?’라는 호텔 직원의 해명을 반박 자료로 인용했다. 백보 양보하여 그 상황적인 설명들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보복우려”에 대한 반증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중요 범죄 신고자에게는 “보복 우려”(와 예방공격의 위험)가 따른다는 보편적 사실, 즉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인정하고 사과한 바 있는 그 보편적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시 윤지오가 느낀 기계음이나 환풍구 출입문 가스냄새 등이 설령 위협이 실행되고 있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증언자가 예사롭지 않은 어떤 흔적이나 현상들로부터 우려를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실재적인 것이다. 증인이 느끼는 위협감과 두려움은 경찰이 제시한 설명으로 그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잠재적 실재성(보드리야르)이기 때문이다.  

예방이나 보복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폭력 형태로 가해져 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과연 과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최나리가 진정으로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러한 생각은 국가가 증언자나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됨을 지시함으로써 국민들을 엄청난 위험 앞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생각에 따라 국가가 실제로 국민들을 방기한다면 국민들은 가해권력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가와 별도로, 아니 국가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자경단이라도 조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실제로 윤지오가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비영리단체 지상의빛을 설립한 것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 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경단은 아닐지라도 비정부기구를 통해 공익제보자를 돕자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다. 

최나리가 드는 “위협 과장” 사례의 또 하나는 윤지오가 2019년 4월 11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자신의 신변위협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손석희 앵커와 가진 윤지오의 이날의 인터뷰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였던 조0천 강제추행건에 대한 증언, 한국에서 활동하다 캐나다로 떠나게 된 이유, 2018년 6월과 12월 JTBC와의 익명의 전화 인터뷰 이후 당했던 두 번의 교통사고와 가해권력들로부터 받은 위협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날 윤지오는 앵커로부터 증언에 대한 보복이나 위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자신이 위협감을 느낀 세 가지의 사건을 언급한다. (1)“장자연 문건에 언급된 유력 언론사”(조선일보)가 향초납품업체와 교회에 전화를 해서 윤지오 씨와 연락이 안 된다며 소재를 물은 것. (2) 이전의 매니저 권00가 JTBC와 인터뷰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JTBC가 너를 이용하는 기분이 드니”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정작 자신은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여 “지오는 옛날부터 유명해지고 싶어 한 친구”, “실제로 지오는 자연이와 친하지 않았다”는 식의 허위주장을 한 것. (3)JTBC와의 전화인터뷰 이후 교통사고가 좀 크게 두 차례가 있었고, 근육이 찢어져서 손상되면서 염증이 생긴 것.

최나리는 여기서 (3)번 항을 신변위협에 대한 과장이라고 규정하고 그 근거를 김수민으로부터 가져온다. “소외 김수민은 피고가 당한 신변 위협은 조작된 것인데 그 중 특히 2019.1 발생한 교통사고는 눈길에서 미끄러지며 뒷차가 충격을 가한 단순한 추돌사고였으며 가해자 차주는 평범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이미 피고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 JTBC 뉴스룸[에] 출연 당시에 파손이 심한 뒷차 즉 가해자의 차량을 자신의 차량인 것처럼 기망하여 조작을 가하였고…”가 최나리가 해당 사건에 대해 쓴 문장이다.  

“가해자의 차량을 자신의 차량인 것처럼 기망하여 조작을 가하였고”라는 문장은 논박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윤지오가 거대방송사 JTBC의 자료화면을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려면 최나리 변호사가 JTBC 측에 확인하여 사실과 상황을 확인하는 정도의 노력은 기울였어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이 사건에 대한 김수민의 비꼬인 해석이다. 카톡 대화 속에 그 교통사고가 ‘애기 아빠가 일 끝나고 애들 데리러 가다가 과실로 발생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는 윤지오의 말이 나온다. 김수민의 해석은 전적으로 이 카톡구절에 의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것은 그런 카톡 이후에 윤지오의 마음 속에 일어난 변화이다. 그는 이미 여러차례 이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처음에는 평범하고 단순한 교통사고라 생각했으나 이후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로부터 사고를 위장한 가해공격일 수 있지 않느냐, 앞으로 더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점점 그 사고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나리는 윤지오의 이러한 말은 전혀 참고하지 않고 김수민보다 한술 더 떠서 JTBC에서의 인터뷰를 ‘과장’ ‘조작’ ‘기망’ 등의 언어로 도배해 버린다. 이 인터뷰를 할 당시 앵커 손석희는 윤지오의 말을 듣고 이미, “거기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은 교통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 않겠는가?]”고 있을 수 있는 반론을 의식하며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윤지오는 자신이, 증언으로 인해 불특정다수의 권력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입장에 놓여 있고 교통사고를 이 맥락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조건을 토로한다.

“그런데 JTBC에 제가 전화 인터뷰에서 사실을 기록한 사건을 다룬 책을 쓴다라고 한 시점부터, 제 행방을 추적하시는 어떤 분들이 계셨고. 또 사실 어떠한 한 언론사만 주목을 하시는데 사실은 한 곳이 아니라 저는 개인 혼자지만 제가 상대해야 될 분들은 A4용지 한 장이 넘어가는 거의 한 30명에 가까운, 공권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 법 위에 선 분이시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게서 저는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그분들에 대해서 또 언급을 직접적으로 하면 명예훼손으로 걸리기 때문에.”

평범한 교통사고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불특정다수로부터 가해져오는 위장된 공격의 하나일 수 있다는 답변이다. 가해자는 법 위에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고 그렇게 특정하기 어려운 다수로부터 보복이나 예방공격을 당할 수 있는 것이 증언자가 놓여진 위치임을 부정할 수 있을까? 이 말이 설득력을 갖는 한에서 어떻게 교통사고로부터 위협을 느꼈다는 인터뷰 진술이 과장, 조작, 기망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오히려 4월 이후의 사태 전개는 특정하기 어려운 가해권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며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윤지오의 말이 참이었음을 뚜렷이 입증해 준다. 왜냐하면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격이, 조선일보 SBS 뉴시스를 비롯하여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언론사와 통신사, 홍준표를 비롯한 정치가, 박준영 박훈 최나리 강연재 등의 변호사, 김대오 김용호와 같은 기자, 서민과 같은 교수, 김수민과 같은 작가 등의 지적 법률적 정치적 미디어적 화력을 총동원하면서 윤지오에게 집중적으로 퍼부어지는 것을 우리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총력전 과정을 통해 윤지오가 대한민국 시민사회로부터 추방되고 배제된 현실을 고려하면, 윤지오가 자신에게 닥쳐온 위협을 과장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소평가하고, 과소대비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상황을 더 잘 설명해 주지 않겠는가?(계속)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것이 실패한 후 나타난 가해권력의 시도: 리스트의 문구나 이름을 없애기(2)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와 리스트의 이름들

하지만 “진상조사단에서 이렇게 진술했다”는 형식이 아닌 앵커와의 문답 형식으로 윤지오는 증언의 핵심 내용을 말한다.  당시 윤지오와 인터뷰한 앵커 손석희는 장자연이 피해사실을 문건으로 남겼는데 그것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그것을 세간에서 ‘장자연 리스트’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었다.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님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문건이 그 4장 외에 고유한 의미의 ‘장자연 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 편지글 형식의 3장이 더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지오의 인터뷰는 앵커의 (그리고 시청자의) 그러한 앎을 자신의 인터뷰 증언을 통해 바로잡는 과정이다. 자신이 피해사실을 적은 문건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앵커가 모르고 있는 것, 즉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 아래에 이름들이 나열된 ‘리스트’가 따로 있었음을 밝힘으로써다. 중요한 대목이므로 있는 그대로 인용해 보자.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저하고 인터뷰하시는 분께서 이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불리우는 것은 성추행 현장을 목격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장 씨와 같이 신인 배우로서 여러 가지 강요를 받고 피해를 보셨기 때문이기도 한데 실제로 장자연 씨의 경우에 피해 사실을 문건으로도 남겼습니다. 그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자연 언니가 떠난 지 며칠 안 돼서 자연 언니가 문건을 가지고 있던 매니저분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울 봉은사에서 유족분들과 함께 자연 언니가 남긴 문건을 소각하기로 했다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문서를 직접 처음보게 되었습니다.][앵커]피해 사실이 적혀 있다는 4장의 문건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우는 그 문건입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보도됐던 문건과 같은 내용이었습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피해사실을 적은 내용인 건 맞는데 그와 별도로 리스트처럼 사람 이름만 적힌 종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앵커] 그런가요?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지금까지 알려졌던 장자연 문건에는 사람 이름만 적힌 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기존에 알려진 문건과 또 다른 문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저는 무엇이 세상에 알려지고 알려지지 않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은 그 리스트 맨 위에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그 아래에 이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앵커] 그러니까 문서 위에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고 그 아래 이름들이 있었다. 혹시 저하고 말씀 나누신 분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도 있던가요?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이름이 적힌 부분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아직 어려움이 있습니다.][앵커]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중에서 장자연 씨와 함께 만났던 인물들도 검찰조사단에 이 얘기는 했습니까?

[윤모 씨/장자연 ‘동료 배우’ : 이번에 검찰 과거사위와 조사를 받을 때 사진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제가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을 여기 근거해서 지목했고 그중에 검찰과 언론에 계신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윤지오는 피해사실을 기록한 문건 외에 고 장자연이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고 쓰고 그 아래 이름들을 나열한 리스트의 존재를 밝혔다. 그런데 이 점은 실제로는 “밝힌”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8년전인 2010년 6월 25에 윤지오는 거의 어구 하나 틀리지 않는 방식으로 똑 같은 내용을 수사기관에 진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토록 중요한 8년 전의 진술이 어떻게 국민대중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심지어 대한민국 ‘최고의’ 앵커로 알려져 있는 손석희조차 이 사실을 모를 정도로, 그리고 그 진술을 새삼스럽고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그 진술이 깊이 감추어질 수 있었는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누가 왜 사회적 인지 프레임을 그렇게 왜곡시켰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책 출판보다 중요한 미래행보: 증언과 진실 말하기의 기술 

“아는 사람의 이름”을 묻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는 “이름이 적힌 부분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아직 어려움이 있습니다.”라고 하여 아직 언급의 방법과 기술을 결정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변호사 박훈이 추후에 어이없게도,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꾸며 국민들을 기망한’ 사기술로 단정해 버리는 이 “언급하기의 어려움”은 가해권력측의 “남자들”이 입을 맞춰 자신의 말을 거짓말로 모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미래 행보”를 어떻게 “영리하게” 밟아나갈 것인가라는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 사실은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짧게 해달라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가 내놓은 답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는 조금 있으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갈 것이고 조만간 책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책을 쓰는 이유는 자연 언니와 저를 위해서 진실을 밝혀야만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뿐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일로 연예인의 꿈을 접어야 했던 저의 20대를 뒤돌아보고 9년의 세월 동안 저를 따라다니는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라는 주홍글씨를 제 스스로 털어버리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저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법정에 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6개월 동안 재판이 두 번밖에 열리지 않았고 다음 재판도 3개월 뒤에나 열리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내년 인사 때 재판부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데 만일 새로운 재판부에서 제 증언이 필요하다면 다시 한 번 증언석에 서겠습니다.”

여기에서 윤지오는 자신의 “미래행보”의 윤곽을 뚜렷하게 그려서 보여주고 있다. 1)장자연의 죽음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2)새로운 재판부가 증언을 요구하면 다시 증언대에 서겠다. 3)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난 9년을 따라다니며 연예인의 꿈을 접게 만들었던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라는 주홍글씨”를 “스스로” 털어버리고 싶다.

실제로 윤지오는 2019년 3월 7일 장자연 10주기에 맞춰 <13번째 증언>을 출판했으며 재판부의 추가 증언 요구는 없었지만 과거사조사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으로 인한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추가조사 요구에 응해 추가 증언했다. 이 시기에 2018년 말과 비교해서 중요한 변화가 발견된다. JTBC 전화인터뷰에서 말한 저 “언급하기의 어려움”에 대한 윤지오의 나름 대로의 타개 방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방법은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지금까지의 소극적 인터뷰 기피에서 적극적 인터뷰 응락으로의 전환, 2)가명/가면 인터뷰에서 실명/실면 인터뷰로의 전환, 그리고 3)장자연 리스트 공개에서 진상조사단에서는 실명을 밝히되 언론 인터뷰에서는 실명을 밝히지 않고 대한민국 형법(“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위반하지 않는 선 속에서만 진술한다. 이러한 방법에 따라 그는 진상조사단에서의 실명증언과는 달리 언론에서는 리스트의 내용을 “언론사 관련 성이 같은 세 명”,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라는 식으로만 말한 것이다.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것이 실패한 후 나타난 가해권력의 새로운 시도: 리스트의 문구나 이름을 없애기(1)

요점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려는 시도가 김수민, 김대오, 박훈 등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시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논의했다.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것은 10년 전 진술증거들의 명확한 실재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그것의 실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스트의 실재를 부정하기 어렵게 되자 그 속의 핵심 문구나 이름을 지우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특이하게 이름이 같은 정치인”의 이름을 지우려는 시도이고 또 하나는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문구를 지우려는 시도이다.

홍준표라는 이름

정의연대 김상민 사무총장이 박훈 변호사를 무고죄로 고발하는 자리에서 국회의원 홍준표를 민형사소송할 것이라고 말한 기자회견을 인용한 윤지오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한 네티즌이 “누나 홍준표 의원은 왜요? 누나가 홍의원은 잘못 지목한거 맞다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누나 기사들은 거의 다 읽어서 어렴풋이 그런 내용 본 것도 같은데.. 제가 잘못 본 걸수도 있으니까 누나가 설명 해줬으면 좋겠어요.”(hwook91)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에 내 생각을 밝히고 싶었으나 나는 지난 4개월간 어떤 인스타그램에도 댓글을 달아본 적이 없고 불가피한 필요가 생기기 전에는 이 원칙을 지켜나갈 생각이기 때문에 이 블로그에 그 물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정독해와 이미지독해

어떤 말이나 글을 듣고 읽을 때 여러가지 독해 방식이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독해와 이미지독해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정독해가 문장/말의 전후맥락, 지시관계, 의미연관 등을 정밀하게 따져 읽는 것이라면 이미지독해는 문장/말이 연상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다. 전자는 능동적 독해력을 요구함에 반해 후자는 수동적 독해력을 더 많이 요구한다. 전자는 이성적 능력을 요구함에 반해 후자는 상상적 능력을 요구한다. 영상문화가 지배적으로 되면서 사람들은 이미지독해의 능력을 얻는 대신 정독해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윤지오의 증언에 대해서도 정독해보다는 이미지독해가 널리 유행하면서 오해/상상에 또 다른 오해/상상이 누적되어 진실이 가려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해권력이 바라마지 않는 것이고 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그 부풀려진 상상, 환영체계 뒤로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라는 이름의 문제는 그 중 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오해된 말 :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홍준표 문제를 다루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오해된 말이라고 해야 할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라는 윤지오의 한 마디로 돌아가야 한다. 김수민이 이 구절을 ‘사기 프레임’ 속에 집어 넣어 이미지독해한 이후로 변호사, 기자, 그리고 군중의 두뇌 속에 확고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말이 이것이다. 영리함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어 ‘영리한 사기’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 말이 ‘사기 프레임’ 속에서 기능하기 위해서 김수민은 앞뒤 맥락을 모두 절단했다. 책의 출판과 관련하여 계약금, 인세, 홍보비용, 매대노출, 미디어노출, 매체인터뷰, 유튜브 강연 공연 방송출연 등 <13번째 증언> 출판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관해 대화하던 중인 2018년 12월 7일에 윤지오는 이렇게 말한다.

“난 책도 책이지만/ 그후 내 행보가 더 중요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판단되서/ 지금 만나고다니는 다른사람들도 그렇고/책은 그냥 출판자체에 의미를 두는거라/많이 안팔려도 나는 별로 감흥이 없을거같아/많이팔려도 그렇고/하지만 분명한건 이슈는되니까/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그래서 출판하는거고”

나는 이 인용에서 윤지오의 말 전체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중간에 끼어들어 윤지오의 말을 분절시키는 김수민의 세 마디 “응/응/응 책 판매가 그렇게중요한게아니라면 큰 신경안써도될거야”는 뺐다. 화제는 책인데 위의 인용은 책을 출판하는 것의 위치에 대한 윤지오의 인식을 명확하게 밝힌다. 책에 대해서 윤지오는 1)책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책도 책이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책은 그냥 출판자체에 의미를 두는거라/많이 안팔려도 나는 별로 감흥이 없을거같아/많이팔려도 그렇고”). 2)그런데 책의 출판이 [고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분명한건 이슈는되니까”) 3)출판을 매개로 한 이 이슈화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 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그래서 출판하는거고”) 4)그것은나의 이후의 행보에 관한 것인데 지금 만나고 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나의 이후의 행보를 규정하는 일부다. 

“영리하게”의 목적: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후 내 행보”와 “지금 만나고다니는 다른사람들”이다. 윤지오가 영리하게 사기를 치고자 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미지독해법(이것은 변호사 박훈의 동일한 이미지독해법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승작용한다)에 따르면 이것은 사기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2018년 12월 초 당시 윤지오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던가? 그리고 “그 후 내 행보”의 윤곽이 무엇이었던가? 위의 말을 듣고 김수민이 “그래 너가 알아서잘할거라믿어”라고 말하자 윤지오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녀 ᅮ/ 그냥 하는거지 뭐/어차피 인생이 계획한바대로 되는것도아니고/뭐든다해봐야지/ᄏᄏᄏ기대치가 애초에없엉”

“그 동안 못했던 것을 해보려고”, “계획한바”, “뭐든다해봐야지”, “기대치”는 모두 행보와 연관된 말, 즉 미래의 행동과 관련된 말들이다. 윤지오는 김수민에게 책출판과 관련해서는 꼼꼼하게 물어보고 또 자신의 생각과 계획도 밝히지만 미래 행보와 연관해서는 말을 아끼고 구체적인 것을 밝히지 않으며 묻지도 않는다. 즉 김수민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만약 상의할 대상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런 계획, 이런 행동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윤지오의 “영리하게”가 표현되는 한 양상이다. 

그렇다면 그 행보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추론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힌 말인 “지금 만나고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그 미래행보의 단서,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대문이다. 이 실마리를 더듬어 나가기 위해 2018년 12월 7일 전후 윤지오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살펴보자. 

 12월 7일은 윤지오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방문해서 체류하고 있던 시점이다. 그는 두 가지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첫째는 장자연에 대한 조희천의 강제추행 사건의 법정 증인신문을 위해서였다. 또 하나는 과거사조사위원회에서 진행하는 고 장자연 사건 재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서다. 이 두 가지 목적은 모두 모두 증언과 관련된다. 그러면 12월 14일 태국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만나거나 소통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11월 28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이동할 시의 신변보호를 해준 수사관 3명, 11월 29일 검찰과거사조사단의 김00변호사와 손00 검사, 조희천 강제추행 사건 증인신문조사를 도와줄 민변 변호사들, 법정출석 시 자신을 보호해줄 보호자 2명, <13번째 증언> 출판을 맡은 가연출판사의 대표와 측근들 및 출판조언을 해준 김수민(12월 10일) 그리고 12월 12일 JTBC 뉴스룸 전화인터뷰를 담당한 기자와 앵커 등이다.

여기에 증언과 관련되지 않은 어떤 사람도 없다. 윤지오는 지난 9년간의 증언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김종승 유장호 외의 모든 가해권력자들이 무혐의 처분된 과정을 숙고하면서 어떻게 증언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한다. JTBC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9년 전에 수사에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셨을 텐데 지난번에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듯이 그 당시 검찰은 그 진술을 믿을 수없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라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는, 

“9년 전 검사들은 이 사건을 그저 연예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접대 사건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도 성상납을 해 놓고 왜 숨기냐라며 성상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저까지 몰아붙이는 질문들이 너무나 화가 났고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남자들 모두가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입을 맞춰서 두려웠지만 이게 제 일이었다면 자연 언니도 똑같이 증언을 해주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저도 진실을 말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윤지오는 남자들이 “입을 맞춰” 자신의 말을 거짓말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이 두려움은 지금의 상황에서 권력자들, 언론들, 변호사들, 기자들, 작가들이 입을 맞춰 자신을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식으로 과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윤지오는 “자연 언니”와 자신이 입장이 바뀌었다면 “자연 언니”도 자신을 위해 진실을 증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진실을 말했다고 말한다. 

다른 요인도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하의 검찰과 문재인 신정부 하의 검찰이 보여주는 차이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신 것 외에도 검찰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라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는 “이 사건을 재수사하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검사님들을 지난 8개월 동안 접해왔습니다. 9년 전과 달리 검사님들께서 편견 없이 그리고 열성적으로 수사한다는 인상을 받아서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고요. 무엇보다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인정하고 바라본다는 점에서 달랐던 것 같습니다.”라고 동문서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동문서답”이 아니라 “영리하게”의 일부이다. 진상조사단에서의 조사내용은 “진상조사단에서 이렇게 진술했다”는 형식으로는 외부에 말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질문에 충실한 형태로는 답할 수 없는 이 간극을 윤지오는, 9년전 검찰과 현재 검찰 사이에서 본인이 느끼는 정동적 차이를 설명하고 이 사건을 검찰이 연예계 관행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이런 것들이 자신으로 하여금 증언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조건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채운다.

진실혐오 극장의 등장

윤지오가 ‘숨어 살기’를 거부하고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_에필로그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 활동기간이 2주 남은 때인 3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의 여성단체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규명촉구’ 기자회견을 열었고 윤지오도 이 자리에 참석해 발언했다. 그런데 여기서 윤지오의 발언은 기존의 통념이나 보도기조와 사뭇 결이 다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 발언의 기조를 ‘진상규명 요구’라고 보도했지만 아래의 녹취록이 보여주는 것은 그 ‘진상규명 요구’가 직접 ‘가해자에 대한 처벌 요구’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명확하게 들리지 않아 추정으로 삽입한 부분, 보충이 필요한 부분, 발언실수로 보여 바로잡은 부분은 [ ]로 표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일한 목격자가 아닌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입니다.

제가 대중[앞에 보다] 더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무리해서까지 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을 전하고 싶고 여러분들도아셔야할권리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분명 가해자가 단 한 번이라도 보셨으면 했고, 꼭 보셔야 할 것이라고, 그 분들 보시라고 인터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게 해 드리[는] 인터뷰를 할 수 밖에 없어서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또 언론이 [다른 타겟을 덮는 현상은] 저와 같이 체감하셨으리라고 보고 여러분의노력으로 나약한 제가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보고 수사가 들어간다면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닌 25년으로 변경되어 집니다.

공소시효란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일정기간이 지나서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형벌권이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범죄종류에 따라 그 기간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시점으로부터 10년에서 25년에 달하는데 정해진 공소시효 기간이  지나버리면 증거가 있다고 해도 벌을 줄 수 없습니다.

2007년 [12월 21일]에 살인죄를 범한 범인[에 대해]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10년 늘렸습니다.

그런데 2007년 [12월 20일]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의 공소시효가 그대로 15년입니다.

이슈가 이슈를 덮는 정황을 많은 분들이 실감했을 테고 [이제] 이러한 불상사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용기를주신국민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윤지오는 사건의 중요 쟁점과 관련해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는 것, 즉 목격자는 자신 이외에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 목격자들이 진상규명에서 증거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서 자신을 [현재로서는] ‘유일한 증언자’로 칭한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이 권력의 위협에, 그리고 증언자를 향한 2차, 3차 가해에 대상으로 노출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가해자들의 추가 가해의 방식은 일정하게 정형화되어 있지만 그것의 수준은 예측불허이다.

윤지오는 자신이 인터뷰를 하면서 두 가지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는 국민들이다. 국민들이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국민들께 사실을 전한다는 것이다. 윤지오가 고려하고 있는 또 하나의 특이한 청중이 있는데 그것은 가해자들이다. 윤지오는 가해자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인터뷰를 보았으면 하는 희망만이 아니라 보아야 한다는 명령을 전달한다. 가책(苛責)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만약 이것이 가책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것이라면 윤지오가 처벌적 정의에 앞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가해자들이 가책을 받고 자책하여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의 정의에 기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목은 윤지오의 태도가 그러한 회복적 정의의 추구와는 다르거나 최소한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3월 15일의 발언에서 윤지오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그 어느 누구도 주장하지 않았던 것을 주장한다. 그것은 장자연 사건의 가능한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니라 25년일 수 있다는 주장이며 원점에서의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조희천 성추행 사건 외에는 공소시효가 다했기 때문에 장자연 사건은 과거사일 뿐 본질적으로 재수사할 사건이 아니라는 검찰 과거사조사위 측의 주된 기류에 반하는 주장이다. 윤지오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처벌되어야 한다는 ‘처벌적 정의’의 관점에서 지금도 재수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공소시효 만료된 사건을 어떻게 재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건을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보고 수사가 들어간다면” 가능하다는 것이 윤지오의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닌 25년으로 변경되어”지고 공소시효가 아직 15년이나 남게 되기 때문이다.(참고로, 2015년 7월 24일 대한민국에서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폐지되었다.)

장자연의 죽음을 의문사로 바라보면서 수사기관에 재수사를 요청하는 윤지오의 문제제기는 몇 가지 근거들을 갖고 있다. 이 근거들에 대해서는 “살인 혐의 수사는 왜 고려조차 되지 않았는가?”(http://amelano.net/?p=673)에서 이미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나는 뒤로 돌아가지 않고 이 문제제기가 증언자 윤지오에게 미친 영향에 관심을 집중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윤지오가 3월 15일에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전 국민과 가해자들에게 호소하면서 국가를 향해서는 장자연의 죽음을 단순자살이 아닌 시각에서, 즉 살인의 시각에서 수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윤지오의 증언행보에 가져온 반발력에 주목하고자 한다.

윤지오의 요청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굳어진 통념을 깨뜨리는 시각이었다. 이 무렵, 대한민국 국민들의 상당 부분(경찰과 검찰 등 수사자료에 접할 수 있었고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하지만 그것이 유서로 인식되도록 조장하고 방치했던 수사기관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은 장자연이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을 믿고 있던 상황이었다. 

윤지오는 하루 전인 3월 14일 고발뉴스에서, 유서라고 알려진 그것이 실제로는 유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 한 바 있다. 이날 그는, 장자연이 유장호의 요구에 따라 권력자들의 성폭력 범죄를 고발하는 문건과 리스트를 작성한 후, 그 문건과 리스트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유통되는 당황스런 상황을 맞이 했을 뿐만 아니라, 며칠 후 유서조차 없는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그 주검은 부검도 없이 화장되었으며 유장호, 경찰들, 그리고 기자들이 누가봐도 유서가 아닌 그 문건과 리스트를 유서로 만들어 공표한 사실을 상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근거 위에서 3월 15일에 그는, 장자연의 죽음의 진상이 처음부터 조작된 것으로 보이므로 수사기관이 진상규명을 위해 단순자살이 아니라 살인의 관점에서 재수사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구하면서 아직 처벌가능한 시효 즉 공소시효가 남았음을 언급한 것이다. 

이 요구는, 한국 사회의 적어도 세 유형의 세력에게,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될문제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세 가지 세력이 누구일까?

첫째는 혹시 이 의문의 죽음에 대한 재수사를 통해 그 범죄행위가 드러나게 될 지도 모를 어떤 살인 가해자이다. 실제로 그러한 살인 가해자가 숨어 있었고 윤지오의 발언을 들었다면 필사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직접적 가해권력’이라고 불러 보자.

둘째는 장자연의 죽음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 데 책임이 있는 경찰과 검찰, 즉 행정권력이다. 경찰은 초동 수사에서 장자연의 죽음을 단순자살로 처리했고, 검찰은 김종승과 유장호에게 경미한 형벌을 준 것 외에 장자연의 죽음과 관련하여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대부분의 인물들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기 때문이다. 이 주체들 역시 지난 10년의 행적이 직접적 가해권력을 비호한 것으로 의심되고 재수사의 칼날이 자신들에게 향함으로써 자신들이 실제로 문책 당할 수 있는 상황의 도래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셋째는 장자연 문건에 이름이 등장하며 장자연 사건을 한 연예인의 불행한 자살사건으로 보게 만드는 사회적 인지프레임의 형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주체, 즉 조선일보 같은 언론권력이다. 이미 수사과정에서 황제조사, 증거인멸, 위장증언, 수사혼선, 수사외압, 거짓보도 등을 행하면서 자신의 보존에 급급했던 이 언론권력이 살인 관점에서 재수사가 재개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할 리는 만무할 것이다.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검증의 목소리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이며 그 검증몰이는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로 발전했다. 이어 긴 시간에 걸쳐 증언자의 인성, 도덕성, 행실, 사생활 문제에 대한 아주 전형적인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처벌적 정의의 관념에 따라 윤지오가 행한 증언행동이 맞닥뜨린 철벽이 이것이다. 그런데 그 철벽은 가변적으로 움직이는 트랜스포머형 철벽이었다. 윤지오는 적어도 이때까지는 국민들로부터 용기를 얻고 국민과 함께 “멀리까지” 왔다. 하지만 단순자살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재수사해 줄 것을 눈물로 호소한 다음부터, 윤지오와 국민을 이간시키는 전문가-기계, 언론-기계, 유튜브-기계 등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가동되었고 윤지오로부터 국민들을 하나하나 분리시켰다. 이것들은 가해자들을 시야 바깥 안전지대로 은폐하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여성 증언자의 사생활을 들춰내어 조롱하는 센세이셔널한 3류극장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 무대에 올려진 윤지오는 천하에 둘도 없는 ‘사기꾼’의 형상으로 모질게 그려진다. 가부장제 성폭력 극장에서 성폭력의 피해자인 서지현과 김지은을 ‘꽃뱀’의 형상으로 그렸듯이 말이다. 이 극장은 가해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들을 처벌되어야 할 자로 그리는 책임전가의 극장이고 젊은 여성은 믿을 수 없고 오직 이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가르치는 성차별의 극장이며 더 이상 증언은 불가능하다고 명령하는 진실혐오진실종말의 극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