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위선에 대하여: 증인을 보호하기보다 방치하고 왜곡하고 체포하기(3)

 증언자 윤지오와 국가_2019

2018년에 윤지오는 증언을 달라는 검찰(검사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 장자연에 대한 조0천의 강제추행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측 증인으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과거사진상조사단을 위해 장자연의 문건과 리스트에 대해 증언했다. 그 증언들은 경찰 수사관에게 했던 2009년의 증언과 유사하게 검사나 조사위원과 같은 소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또 이 증언들은 ‘이순자’라는 가명으로 얼굴 없이 이루어졌다. 

2019년에 윤지오는 다른 선택을 한다. 우선 증언의 대상을 소수의 수사 및 조사 전문가에서 국민 대중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직업으로서 수사나 조사를 하는 전문가를 매개로 했던 간접증언에서 헌법상 알 권리를 가진 국민 대중을 향한 직접증언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것은 2018년 MBC 피디수첩과의 인터뷰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에서 자극받은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실명을 가리고 얼굴을 숨기는 식의 강요된 ‘피해자다움’을 버리고 실명과 실면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가명 증언은 2018년 피디수첩 인터뷰 및 JTBC와의 전화인터뷰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래로부터 국민의 명령으로 재조사가 이루어진 이 절호의 기회에 실명, 실면의 증언이 이름과 얼굴을 숨기고 하는 증언보다 증언의 효과를 더욱 키울 수 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두 가지 전환은 장자연 사후 10주년에 맞추어진 <13번째 증언>의 출간을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간접증언에서 직접증언으로, 폐쇄증언에서 개방증언으로, 수동증언에서 능동증언으로, 타율증언에서 자발증언로, 수세증언에서 공세증언로의 이러한 증언 태도의 전환은 왜 이루어진 것일까? 

우선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10주년이 “언니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13번째 증언>, 224쪽)는 위기감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학의, 버닝썬 등의 동종사건과 연동되면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드높아진 상황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제와 연관된 것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수사권도 없이 과거사 조사 차원에서 겨우 6명의 조사위원에 의해 전개되는 이 재조사가 과연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즉 국가에 대한 의문의 문제이다. 실제로 2009년 KBS에서 장자연 문건을 보도한 직후 초동수사의 부실을 지적하는 여론의 지탄을 받고 무려 42명의 수사팀이 꾸려졌고 대대적인 재수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재수사는 가해혐의를 받은 권력자들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는 절차로 귀착되었다. 이러한 전례를 생각해 보면, 비록 정부가 바뀌었고 촛불국민의 명령이 있다고 하지만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제적 처벌로 나아가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조건에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한계인식 속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은,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주고 국민이 이 증언을 기초로 재조사라는 사법과정에 직접 개입하여 과거사조사위원회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 윤지오가 염두에 둔 것은 애초에 과거사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도록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그것은, 국민이 대의자들에 대한 소환, 해임의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법안을 발의하고 투표로 결정하는 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며 국민이 수사, 기소, 재판의 권한을 갖고 그것에 관여하는 주체로 되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여 위로부터 답변하도록 만드는 것으로서, 직접민주주의의 아주 약한 표현형태이다. 윤지오는 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법 위의 법”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 자생적 법철학 속에서 그는 국민의 제헌적 역량(법 위의 법)이 실정법(법)을 통제하고 재구성한다는 생각을 표현한다. 

이러한 생각 위에서 윤지오가 선택한 것이 독자를 대상으로 한 증언 에세이집을 출판하고 방송에서 증언 인터뷰를 하고 여성단체와 함께 광장에서 증언 기자회견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 소식을 알리고 피드백을 받는 것이었다. 실제로 2019년 3월 4일 한국으로 오자마자 그는 뉴스공장을 기점으로 며칠간에 걸쳐 조선일보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언론방송사와 인터뷰를 한다. 

이 인터뷰 과정에서 국민들은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의 수사발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와 접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 그 중 세 간의 주목을 크게 받은 것은 (1)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증언조서라는 것, (2)증언조서가 유서로 둔갑되어 자살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었던 만큼 문건이 유서가 아닌 것이 명확한 한에서 장자연의 사망원인에 대한 원점조사가 필요하다는 것, (3)그 증언조서와는 별도로 편지글 형식 속에 담긴 리스트가 있었는데 그 리스트에는 “성상납을 강요”한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는 것, (4)장자연이 당시 술자리에서 보였던 일련의 모습을 보면 이 “성상납 강요”가 마약을 강제 주입 당한 후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니 이 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 (5)“성상납을 강요”한 이 리스트에 적힌 이름 중에서 방씨 성의 세 사람과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이 기억난다는 것 등이다.

인터뷰를 통해 직접 국민에게 주어진 이러한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주류적 상식을 뒤엎는 것이었다. 장자연은 우울증을 앓다가 유서를 남기고 죽었고 그 유서에서 폭행과 협박을 한 당사자인 김종승은 처벌을 받았으며 장자연이 술접대나 잠자리를 강요받은 ‘조선일보 방사장’이나 ‘방사장의 아들’은 누구인지 아직 알 수 없으며 문건의 해당 구절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 경찰과 검찰 수사발표에 의해 국민에게 주어진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에 의해 주어진 주류 상식과 윤지오의 새로운 대국민 증언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증언의 충격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주류 상식 세계에서 장자연 사건은 (다행히 경찰이 의도하고 있었던 장자연의 사기 미수사건으로 인지되지는 않았지만) 기껏해야 악덕 기업주의 일탈적 악행 사건으로 인지되었다. 이럴 때 그 최종 책임은, 김대오가 주장하는 바처럼, 더 콘텐츠의 대표 김종승에게 주어진다. 하지만 윤지오의 증언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의 집단적 성폭행 사건으로, 즉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의 문제로 인지할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마약을 이용한 특수강간 사건이나 살인 사건의 관점에서도 수사해 볼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이럴 때 최종 책임은 권력자들과 가부장적 성폭력 체제에 주어지게 된다. 이 증언들은 장자연 사건의 공소시효는 종결되었다는 기존의 사법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공소시효가 아직 충분히 남은 사건으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증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폭발적이었다. 그 관심과 지지는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국민에게 직접 증언을 준 윤지오의 용기에 감사하면서 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것(3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고 그 증언에 따라 장자연 사건의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를 요청하는 것(3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이었다. 우선 신변보호요청 청원자는 이렇게 쓴다.

“고 장자연씨 관련, 어렵게 증언한 윤00씨의 신변보호를 요청드립니다. 목격자진술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의 불이익, 또는 신변에 위험이 없도록 신변보호를 청원합니다. 보복, 불이익이 있으면 어떻게 아이들이 이 세상을 보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의로운 사회, 그 밑바탕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입니다. 20대초반에 그 큰 일을 겪고 10년간 숨어 살아야했던 제2의 피해자 윤00씨의 신변보호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원합니다.”(강조는 인용자)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힘이 정의로운 사회의 밑바탕인 만큼 증언자에게 보복이나 불이익이 없도록 국가가 신변보호를 해 달라는 요청이다. 이 요청은 윤지오의 증언을 사회에 대한 진실증여로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증여를 받은 국민이 수증자로서 진실증여자에 대한 신변보호라는 최소한의 답례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후세대에게 떳떳한 나라의 성원일 수 없다는 것을 신변보호 요청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 청원은 한 달 만에 386,50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청원, 즉 조사기간 연장과 재수사 요청은 다음과 같은 간명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고 장자연씨의 수사[조사]기간 연장 및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수사기간을 연장해 장자연씨가 자살하기 전 남긴 일명 ‘장자연 리스트’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재수사를 청원합니다.”

‘장자연 리스트’는 2009년의 초기 재수사에서 참고인 및 피의자 진술을 통해 명백히 제기되었으나 경검의 수사를 거친 후 사라진 주제다. 윤지오의 증언은 이 주제를 1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사회적 의제로 다시 가져왔다. 이 청원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을 재수사 연장의 근거로 명확하게 제시한다. 이 청원은 신변보호 요청보다 많은 738,566명의 동의참여를 이끌어 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주어진 기간내 20만명 이상의 동의참여를 이끌어낼 때 정부는 답변의 의무를 진다. 실명과 실면으로 국민에게 직접 증언키로 한 증언방식의 전환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매개로 윤지오가 다른 국가기관을 만나도록 만든다. 지금까지는 사법경찰과 검찰 및 법원이라는 사법 계통의 국가기관만을 만났으나 이제 청와대와 행정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후에는 입법부인 국회(의원)도 개입하게 됨으로써다.

청와대는 이 두 청원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지시를 답변으로 내놓는다. 그 지시의 전문은 좀 길지만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국민들이 보기에 대단히 강한 의혹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되어온 사건들이 있습니다. 공통적인 특징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일이고,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들이 고의적인 부실 수사를 하거나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진실 규명을 가로막고 비호・은폐한 정황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진실 규명 요구와 함께 과거 수사 과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강한 의혹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이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검찰과 경찰이 권력형 사건 앞에서 무력했던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 위에서 과거에 있었던 고의적인 부실・비호・은폐 수사 의혹에 대해 주머니 속을 뒤집어 보이듯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한다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 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 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오래된 사건인 만큼 공소시효가 끝난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공소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가 있다면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 주기 바랍니다. 


강남 클럽의 사건은 연예인 등 일부 새로운 특권층의 마약류 사용과 성폭력 등이 포함된 불법적인 영업과 범죄 행위에 대해 관할 경찰과 국세청 등 일부 권력 기관이 유착하여 묵인・방조・특혜를 줘 왔다는 의혹이 짙은 사건입니다.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의 드러난 범죄 행위 시기와 유착 관계 시기는 과거 정부 때의 일이지만 동일한 행태가 지금 정부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없지 않으므로 성역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가 필요합니다. 또한 유사한 불법 영업과 범죄 행위, 그리고 권력 기관의 유착 행위가 다른 유사한 유흥업소에서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수사와 조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 사건들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함께 검찰, 경찰, 국세청 등의 고의적인 부실 수사와 조직적인 비호, 그리고 은폐, 특혜 의혹 등이 핵심입니다.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갖 불법과 악행에도 진실을 숨겨 면죄부를 주고, 힘없는 국민은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행안부 장관이 함께 책임을 지고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랍니다.”

법무부장관과 행안부장관 등 행정각료들을 대상으로 한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을 권력형(‘특권층’) 범죄로 규정하면서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기관이 고의적인 부실수사를 통해 진실규명을 가로막아 범죄를 비호하고 은폐한 정황들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이 지시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에 대해 규정하고 설명하고 판단하는 특권적 주체였던 경찰과 검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명확하게 제시하는 점에서 관점의 커다란 도약과 진전을 보여준다. 실제로 윤지오는 3월 1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대통령의 이 응답을 “국민청원으로 이뤄진 기적같은 일”로 평가하고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되었”다고 밝힌 후 “진실 규명에 대해 언급해주신 대통령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지시에는 숨은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이 지시가 검찰과 경찰을 조사와 수사의 대상으로 설정한 후 역설적이게도 곧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 조사와 수사의 대상인 검찰과 경찰을 다시 조사와 수사의 주체로 복권시킨다는 것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스스로 명명백백하게 밝혀내는 “깊은 반성”을 통해 사정기관으로서의 공정성과 공신력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제3의 조사/수사 주체를 구축해야 할 시점, 즉 수사권을 주권자인 국민의 수중으로 가져오는 방향의 혁명적 발상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다시 경찰과 검찰 자신을 자기수사의 주체로 불러내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검찰을 견제세력이 없는 특권세력으로 인지하게 만듦으로써 실제적으로는 그들을 비호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이지 않을까? 수사와 기소에서의 국민주권을 골간으로 하는 경찰 및 검찰 기관의 실질적 개혁이 부단히 지체되고 실패하는 것이 대통령의 이런 양면적 태도와 무관할까? 이런 지시 이후에 실제로 법무부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변호사와 교수가 포함되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 담겨 있었던 최소한의 진실추구적 요소마저 지워버리면서, 재수사의 길을 닫아버리고 사건 재조사를 종결시켜 버렸다. 이러한 종결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들에 대한 신빙성을 추락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신변보호 청원에 대해서는 행정기관의 일정한 반응이 있었다. 3월 8일 시작된 청원이 마감되기 전인 3월 14일 윤지오 변호사로부터 신변보호 요청을 받은 경찰청은 동작경찰서로 하여금 “△스마트워치 제공 △112 긴급 신변보호 대상자 등록 △임시숙소 제공 △맞춤형 순찰 등의 신변보호 조치”를 하도록 결정하고 시행했다. 이러한 조치와 관련하여 이 시기에 과거사진상조사단은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 증언 중에서 재조사할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윤지오를 재차 증인으로 불렀고 이 조사에서 윤지오는 언론 인터뷰나 출판물에서는 하지 않았던 내용(가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본 이름들의 실명)을 증언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조치가, 3월 30일 윤지오가 “스마트 워치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으나 경찰관이 9시간 넘게 출동하지 않은” 사태로 이어진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태에 대해 책임을 느껴 경찰은 3월 31일 스마트워치 전체에 대한 긴급점검 실시를 약속하고 새로운 숙소로 윤지오를 이동시키고 신변보호특별팀을 구성하여 24시가 동행 밀착 보호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얼마 뒤 경찰은 3월 30일 당일 윤지오가 불안감을 느껴 스마트워치를 누르게 된 것이 상황과 환경에 대한 오인과 오판에 의한 것이며 스마트워치를 누른 후 경찰이 출동하지 않게 된 책임도 윤지오의 기기 조작미숙에 있었다면 책임을 윤지오게게 돌렸던 것도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일이다. 

대한민국 경찰은,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국민, 증언자를 변호하는 변호사, 그리고 증언자 자신 등에 떠밀려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에 나섰으나 증언자의 신변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기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것은 일면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해권력자에 대해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서 보호하고 은폐하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는 자발적이고 예민한 책임감을 보이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에 속하는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 조치를, 시민사회에 “진실을 밝힐 힘”을 증여하는 증언자에 대한 사회의 답례행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증언자를 자처하는 윤지오가 과장으로 꾸며낸 일대 소동처럼 발표함으로써 증인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겼다.

국회는 어떠했던가? 국회는 윤지오 동행의원모임 구성과 간담회, 그리고 <13번째 증언> 북콘서트라는 형태로 이 사건에 개입했다. 출판기념 북콘서트는 애초에 국회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열기로 되어 있었던 출판기념 북콘서트가 하루 전날 취소된 것도 신변안전 문제였다. 윤지오는 출판기념 북콘서트 무대에서 자신과 가까이 서게 될 출연진이 누구인지, 신변안전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지 확인해 주기를 요청했고 극장측이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북콘서트가 무산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국회의원 안민석의 주도와 공익제보자 모임의 연대로 북콘서트가 국회에서 열리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무렵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증언자 윤지오를 동행하기 위한 모임을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4월 초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과정은 물밑에서 드러나지 않게 전개되던 반윤지오 흐름의 표면화와 겹쳐졌다. 이 흐름은 윤지오의 인스타그램에 악성 댓글이나 악성 DM의 수준에 머무렀던 지하흐름이었으나, 윤지오의 대국민 직접증언이 청와대를 넘어 국회에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또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예정에도 없던 추가증언을 윤지오에게 요청하여 지금까지 묻혀 있었던 장자연 리스트 그 자체가 재수사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강하게 표출되고 표면화된다. 이것이 가해권력측이 느낀 위기의식의 표현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증언에 대한 이 반동(reaction)은 호야스포테인먼트 전 실장 권0성의 발언을 근거로 삼은 뉴시스의 윤지오 공격과 박준영의 증인검증론을 거쳐 김수민 김대오 박훈의 사기론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 핵심은 증언에서 증인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언론이 이 작업의 선봉에 섰는데, 장자연 리스트가 문제가 아니고 윤지오의 인성과 도덕성이 문제라는 보도를 쏟아내는 것이 그 방식이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제도언론들의 센세이셔널한 보도에 인스타그램 및 유튜브의 까판 담론이 결합되어 여론화되는 과정에서 국회의 윤지오 동행모임은 동행은커녕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윤지오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이 동행모임의 침묵은 이후에, 윤지오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달 간 전혀 접촉한 바 없다는 해명, 윤지오의 난처함보다 자신과 동료의원들이 윤지오로 인해 겪는 난처함을 중시하는 엘리뜨주의적 냉정함, 다른 공익제보자로부터 윤지오를 분리시키는 교묘한 언어놀음 등으로 범벅이 된 항복문서를 가해권력 앞에 내놓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게 윤지오는 2009년에 사법경찰을, 2018년에 검찰을 경험한 후에 2019년에는 행정기관과 입법기관을 경험했다. 언론기관과의 마주침에 대해서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거의 모든 국가기관과 긴밀한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2019년의 경험이 말해주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의 과거사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면서도, 결코 엄정할 수 없는 검찰 자신에게 과거사 조사를 맡기고, 국회의원이 표면적으로는 증언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동행을 약속하면서도 증언자가 여론의 공격 받을 때에는 연락을 끊고 침묵하며, 행정경찰이 증인의 신변보호를 책임지겠다고 하고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증인에게 전가한다는 것이었다.   

이 위선적 과정의 끝에 윤지오는 10년만에 다시 사법경찰과 접속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참고인으로서가 아니라 피의자로서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 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은 절망으로 곤두박질쳤다.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진실이 규명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실이 침몰하지 않도록 여태껏 그래왔듯 성실하게 진실만을 증언”하려고 했지만 변호사, 작가, 기자, 유튜버, 인스타그래머 등의 고소고발자들은 윤지오의 새로운 “증언은 고인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제소했다. 일찌기 ‘조선일보 방사장과 그 아들’이 누구인지 안개 속으로 감추어 최초 증언자 장자연의 증언조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허위 문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사법경찰은 이제 윤지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함으로써 후속 증언자인 윤지오의 증언도 허위라는 고소고발자들의 제소에 힘을 실어주고 장자연 사건 자체를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끝)

장자연 사건에서 국가의 얼굴, 표정, 행동에 대하여(3)

Scene #3 장자연 문건을 허위문건으로, 고인을 사기꾼으로 만들기

조선일보가 이종걸 의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하여 2011년 10월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증인신문이 열렸다. 여기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은 장자연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이모 수사관이었다. 이날 이모 수사관은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엉겁결에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대해 경찰이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깊은 무의식의 일단을 드러내고 만다.

“문: 경찰이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 확인한 사실은 어떤 것인가요?

답: 수사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고, 아들이 룸싸롱에서 장자연을 만났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이하 모든 문답 인용은 한국일보의 <장자연 사건 진술전문공개: 누가 그녀를 죽였는가>에서 가져온다.) http://interactive.hankookilbo.com/v/dfc34fa8eb2d4eeda905360705cd90bf/index.html#&gid=1&pid=1

놀랍게도 대한민국 경찰의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내용 전부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말한다. 이 답을 듣고 변호인은 문건의 한 항 한 항에 대해 경찰이 사실로서 확인했는지를 묻기 시작한다.

“문: 장자연의 문건 중 “제가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촬영할 때는 진행비를 저에게 부담시켰고 이것도 모자라 매니저 월급 및 스타일리스트 비용 실비 모든 걸 제가 부담하게 강요하여 제 자비로 충당하였습니다”라고 기재된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수사발표 당시에는 발표를 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문건의 첫 항에 대한 사실 여부부터 이 수사관의 기억에는 없는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떻게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그토록 강하게 단정할 수 있었던 것일까? 변호인은 이어 문건의 두 번째 항이 사실로서 확인되었는지 묻는다.

“문: 또 문건 중 “어떤 감독님이 태국에 골프 치러 오는데 드라마 스케줄 빼고 태국으로 와서 술 및 골프 접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 요구를 제가 응하지 않자 차량도 네 돈으로 렌트해서 타고 다니시라고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답: 예”

다시 놀랍게도 이모 수사관의 답은 ‘예’이다. 수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첫 번째 항의 사실 여부는 기억에 나지 않고 두 번째 항이 사실로 확인되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말이 확실한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정도로는 이모 수사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던 때문인지 변호인은 더 묻는다. 

“문: 문건 중 “저는 김00 사장님 회사에 계약되어 일하고 펜트하우스 코끼리 출연하고도 1,500만원 중 300만원만 받았고 끊임없는 사장님의 지인과의 술접대 강요를 받았으며 그렇게 지내면서 저는 그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라는 이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는가요.

답: 그런 강요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대체 사실이 아닌 것이 무엇일까? 변호인은 문건 중의 다른 항목을 질문한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이 ..저를 방안에 가둬놓고 손과 페트병으로 저를 수없이 때리면서 … 온갖 욕설로 구타를 당했습니다”라는 부분도 사실로 확인되었나요?’ 이모 수사관은 답한다. ‘예, 기소하였습니다.’ 변호인은 또 묻는다. ‘문건 중 “김00 사장님의 강요로 얼마나 술접대를 하였는지 셀 수가 없습니다.” 부분도 김00이 장자연을 수십 회에 걸쳐 술자리에 불러낸 사실을 확인하였나요[?]’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의 이모 수사관이 답한다. “예, 경찰에서는 사실로 확인하였습니다.” 

변호인이 이런 방식으로 문건의 세부항목에 대한 사실확인 여부를 하나하나 점검해 들어가 보니, 문건에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것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모 수사관이 명백하게 위증을 한 것이 아닐까? 이모 수사관은 이 증인신문에 앞서 판사 앞에서 위증의 벌에 대한 경고를 받았고 선서와 서약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변호인의 질문을 통해 거짓임이 드러나는 이모 수사관의 ‘장자연의 문건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이 거짓 주장, 거짓 의식이 그의 개인적 생각이었을까? 

그는 이 신문과정에서 문건에 대한 이 문답의 시간에 이르기 전에 당시 수사팀이 어떻게 꾸려졌는가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다. 장자연 사망 직후 분당경찰서가 이 변사사건을 수사하면서 자살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유족을 중심으로 수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3월 13일 KBS에서 장자연 문건이 보도되었고 이후 경기지방경찰청에 광역수사대를 편성하여 분당경찰서와 합동 수사를  시작했다. 42명의 거대 수사팀이 꾸려졌고 분당경찰서장을 본부장으로 매일 수사회의를 했으며 50명 이상의 기자에게 매일 브리핑을 했다. 증인신문에 소환된 이모 수사관은 2009년 3월초부터 2009년 7월 9일까지 장자연 수사팀에서 근무했으며 2009년 4월 24일 중간수사발표 직후 가진 기자와의 문답에서 답을 했던 인물이다. 즉 그의 의식은 그 개인의 특별한 생각이라기보다 당시 수사팀의 일반적 생각을 대표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는 증인신문 서두에서 미리 정해진 특별한 수사방향은 없었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므로 “경찰 수사의 명예를 걸고 떳떳하게 수사하자” “다른 건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수사하자”고 수사팀원들이 서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문건내용의 사실여부 확인 과정에서 그는 판사, 검사, 변호인, 방청객 앞에서 여지 없이 거짓말로 드러날 불공평하고 불명예스런 증언을 무릅쓰게 되었을까? 그가 문건에 대해 이렇게 거짓증언을 한 동기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만들고자 한 것, 즉 숨기고자 한 사실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변호인과 이모 수사관이 나눈 다음 문답은 시사적이다.

“문: 문건 내용중 2008.10.28 방상훈의 아들 방정오가 강남 라000 유흥주점에서 장자연 김00 등과 술자리를 한 사실은 확인되었나요.

답: 예.

문: 장자연의 문건 중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부분만 확인할 수 없었는가요.

답: 예, 그 부분은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라는 답이 나온다. 거듭말하거니와 이 말도 문건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기지방경찰청과 분당경찰서 합동수사팀이 “확인이 안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수동태로 쓰여진 이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가 ‘정말 확인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확인을 못한 것’인지 ‘덮어두고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갖가지 이유로 확인하지 않은 것’인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실제로 45쪽 이후 변호인들과 증인 이모 수사관 사이의 문답은 이 문제에 집중된다. 

변호사는 이모 증인의 답을 들은 후 “장자연의 문건에 기재된 내용 중에서 그 시기와 사람이 특정되어 가장 구체적인 진술 부분이라고 보이는 조선일보 방사장의 부분만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데, 어떠한가요”? 라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에 대한 이모 수사관의 답은 어딘가 논점을 벗어난 횡설수설로 보이는데, 살펴보면 엄밀해야 할 수사 결론을 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생각과 일반적 추론으로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좀 길지만 그대로 옮겨보자.  

“‘아들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라는 부분도 과장된 문구로 쓴 소송용 문구입니다. 소속사에서 골프 접대를 오라고 하였으나 오지 않아서 싸움이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차도 빼앗기고 다 빼앗겨서 옮겨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장자연이 금전적으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소속사를 옮기고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00와 연결이 되어서 소속사를 옮길 목적으로 소송용으로 쓴 것으로 판단됩니다. 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술자리에 다녀간 것도 증인은 여러 군데를 다녀갔다고 봅니다. 과연 조선일보 사장이 룸싸롱 성접대를 했느냐, 그 아들인 스포츠 조선 사장이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요구했느냐는 수사가 제일 어려운 수사였고, 룸싸롱에서 만난 것은 맞지만 과정이 장자연만 불러서 장자연만 접대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방정오라는 아들과 한00 등이 술을 마시고 있는 자리에 한00과 김00이 연락이 되어서 갑자기 장자연을 데리가 가서 인사만 시겨준 자리입니다. 그래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했다는 부분은 과장된 것이고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되지 않았나라는 것이 경찰의 수사입니다.”

뒤죽박죽으로 표출된 그의 생각의 골자를 정리해 보자. (1)장자연은 당시 김종승 사장의 명령을 거부하여 모든 것을 빼앗겨서 돈이 없었다 (2)소속사를 옮겨 계약금을 받을 목적으로 유장호와 함께 소송용 문서를 작성했다. (3)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 (4)그러므로 ‘룸싸롱에 저를 불러서 술접대를 하게 했다’는 문구는 과장이다 (5)그 자리는 김종성이 방정오에게 장자연을 인사만 시킨 자리였다.

이런 추론과 가해(혐의)자에 대한 변론(!)을 통해서 이모 수사관은 장자연 문건을 협박용 허위 문건으로 만든다. 당시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를 대표하여 말하고 있는 이 이모 수사관의 추론에 따르면, 장자연은 유장호의 도움으로 과장과 허위의 소송용 문서를 작성해 김종승을 협박하여 계약을 해지하고 새 소속사로 옮겨 계약금을 받아내려한 인물, 즉 ‘사기꾼’에 다름 아니게 된다. 망자를 모욕하는 것으로 이 이상의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 생각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위의 이모 수사관 주장 중에서 ‘장자연이 남긴 글은 유서가 아니라 문건이다’라는 주장은 우리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 국민들 상당 부분은 그 글이 유서라고 알고 지난 10년을 보내왔다. 하지만 이모 수사관의 이 진술은 경찰이 처음부터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소송용 문서, 즉 증언조서였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이 유서가 아니었다는 것은 수사기관만 알고 있고 국민은 몰라야 하는 내부비밀이었던 셈이다. 

그것을 비밀로 했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만약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니라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것만으로 자살로 단정하기에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사인에 대한 분석부터 재수사가 시작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건 공개로 재수사가 착수된 이상 왜, 언제, 어떻게, 어디서 등 죽음과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수사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모 수사관이 진술에서 몇 번씩이나 “자살”이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러한 원점 재수사는 경찰에 의해 전혀 의도되고 있지 않았다. 첫 수사에서 발표된 바의 그 “자살”이라는 설명은 명확한 근거가 없음에도 경찰 재수사의 확고한 전제이고 출발점이었다.

또 하나의 전제이자 출발점은, 유장호, 유가족(오빠), 윤지오가 서로 유사하게 진술한 바 있고 언론과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 수사 당시 수사관들이 이 리스트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을 통해 입증된다. 이모 수사관이 말하는 초기 장자연 재수사에서 경찰의 관심은 KBS에서 넘겨 받은 그 4장짜리 ‘문건’이 “(1)고인이 쓴 것인가? (2)그것이 사실인가? (3)그것의 성격이 무엇인가(즉 유서인가 아닌가)? (4) 문서와 그것의 유통이 자살에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네 가지에 한정되고 또 집중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모 수사관은 “증인이 본 2개의 문건 외에 장자연이 작성했다고 제출된 다른 문건이 있었나요.”라는 (피고인의) 질문에 “경찰에 제출된 문건은 없었습니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답할 뿐이다. 그런데 당시 피의자나 참고인들은 4장짜리 문건 외에 3장짜리 편지글 형식에 명단(리스트)이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관들은 그러한 진술을 흘려듣고 그것의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이 리스트에 관한 질문이 조사기관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까지에는, 이명박 정부를 지나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고 국민의 손으로 세운 촛불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그리고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수사에 착수할 때까지의 10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2018년에 구성된 과거사진상조사단은 그 리스트에 누구의 이름이 쓰여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진 국가 조사기관이었다.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이 질문을 처음으로 받고서야 윤지오가 비로소 “방씨 성을 가진 세 사람”, “이름이 특이한 정치인” 등 그 리스트에서 본 권력자들의 실명을 진술했다. 하지만 이 기관은 공소시효는 대부분 끝났다는 관점을 갖고 사건 재조사를 과거사정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었으며 강제수사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 결과 윤지오의 진술은 거명된 그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실질적 수사로 이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진술 자체가 신변위협을 빙자해 돈을 벌기 위한 거짓 진술이라는 가해 권력측으로부터의 역공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윤지오가 장자연이 겪은 “성상납 강요”(즉 성폭행)를 기록한 것이라고 말한 그 ‘리스트’는 봉은사에서 물질적으로 소각되고 경찰에 의해 배제되어 수면에서 사라졌음에도 10년의 세월을 이기고 윤지오의 기억과 진술로 되살아 왔지만 ‘사기를 위한 허위진술’로 매도되어 다시 파묻히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사라짐을 강요받아온 이 리스트의 이 운명에 두 번의 인간학적 사건이 수반되었는데 그 중의 한 번은 장자연의 죽음이고 또 한 번은 윤지오의 매장이다.

이 두 가지의 부당전제를 갖고 출발한 합동수사팀과 이모 수사관의 위 다섯 가지 주장은 “장자연에게 당시에 돈이 없었다”를 모든 추론의 기초로 삼는데 이것이 타당한 주장일까? 이모 수사관은 이날의 진술(25쪽)에서 피고측 변호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문: 장자연의 은행계좌 입출금 내역도 조사하였는가요.

답: 예

문: 특이사항이 있던가요.

답: 100만원 이상의 수표가 들어온 것이 많이 있어서 수사를 하였습니다.

문: 그 100만원 권 수표가 대략 어느 정도나 되었나요.

답: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문: 억 단위인가요?

답: 전부 합치면 억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그 수표가 기획사 사장 김00이니 김00의 회사로부터 받은 것인가요?

답: 아닌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진술은 장자연에게 소속사로부터의 수입 외에 다른 수입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중 국민에게 알려진 것은 진로소주 회장 박0덕이 김밥값으로 주었다는 1000만원일 뿐 나머지 입금자와 입금사항에 대해서는 수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규모가 “억이 넘는 것”이었다고 하므로 누가 봐도, 특히 가난한 연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금액이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연이 문건을 쓴 동기를 돈을 벌기 위한 것에서 찾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그러한 돈이 입금된 기록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사망 당시 장자연에게 돈의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지는 않는다. 돈을 다 써버렸을 수 있고 또 사용해서는 안 될 돈으로 간주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에 제출할 ‘소송용 문서’에 장자연이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의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허위사실을 적어 “300만원” 정도(장자연과 윤지오의 계약서는 동일했다고 하며 계약 당시 윤지오가 받은 계약금이 300만원이었으므로 이를 기준으로 추정한다) 의 계약금을 벌려고 했다는 주장은 터무니가 없어도 지나치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장자연이 조선일보 방사장을 바보로 알만큼 충분히 바보였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방사장”이 누구이든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의 몇 배로 그 “허위사실”을 기록한 사람은 치명적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몇 백만원의 돈에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말인가?

“유서라면 사실대로 다 쓰고 자살했을지 모르지만 소송용 문서이기 때문에 협박용으로 과장을 했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상식에 비추어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유서라면 사실대로일 것이라는 생각도 문제적이지만, 소송용 문서가 과장을 포함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장자연과 조선일보의 역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억측이다. 소송이야말로 사실인가 허위인가를 다투는 긴 과정을 포함하는데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가 어떻게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하는” “힘 센” 조선일보와의  소송에서 ‘허위사실’을 가지고 승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이모 수사관은 “문건에 나온 것은 전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하고도 그 문건에 기록된 나머지 피해사실들 중 단 하나도 허위임을 확인해 주지 못했다. 어떻게 나머지는 모두 사실인데(“나머지 사실인 폭행 등은 있는 사실을 썼다고 보고“) 유독 “조선일보 방사장”에 대한 항목만 과장이고 허위일 수 있겠는가? 이모 수사관은 정황에 비추어 가장 허위이기 어려운 항목이 유독 허위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자연이 다른 목적(돈을 벌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쓴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관(팀)이 오히려 다른 목적으로 장자연과 문건에 대한 허위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의 목적과 핵심적 방법은 분명하다. 장자연을 사기꾼으로 만듦으로써 ‘조선일보 방사장 및 그 아들’을 도덕적 지탄과 법률적 유죄로부터 구출하는 것. 이 증인신문조서의 후반부 문답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대한민국 경찰이 사용한 수사기법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끔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나온 것을 중심으로 몇 가지 기법만 간단히 요약해 보자. 무엇보다 (1) 문건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그리고  (2)누가 “조선일보 방사장”인지 누가 그 “아들”인지 알 수 없도록 만들고 가능한 혐의자들을 임의로 축소하여 주요 혐의자를 조사 대상에서 빼거나[방용훈의 경우] 다른 인물을 고의로 잘못 지목하기[스포츠조선 하0 사장의 경우]  (3)핵심 증인 윤지오를 밤늦게 불러 새벽까지 반복 조사함으로써 진술 일관성을 뒤흔들기(추가로 참고인 윤지오에게, 장자연과 함께 ‘성접대’ 했잖느냐며 모욕주어 기죽이기) (4) 피해자나 참고인의 통화내용은 1년치를 샅샅이 조사하면서 가해(혐의)자의 통화는 이틀치, 일주일치, 한달치 식으로 소극적으로 조사하기[방상훈의 전화] (5) 가해(혐의)자의 전화기가 몇 대인지를 확인하지 않고 가해(혐의)자 측에서 불러주는 전화번호의 통화내역만 조사하기 [방상훈 전화기의 경우] (5)피해자나 참고인은 소환해서 조사하고 가해(혐의)자는 방문하여 조사하기[여러번에 걸쳐 여러 시간동안 반복된 윤지오에 대한 참고인 조사와 30여분 정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방상훈 조사의 차이] (6)언론에서 보도 나오면 뒤쫓아 수사하는 식으로 수사하기 (7) 수사정보를 가해(혐의)자에게 알려 주어 대응을 준비할 수 있게 하고[김종승 스케쥴표 방상훈에게 전달] 수사내용에 대해 가해(혐의)자 측과 협의하기[방상훈 알리바이의 경우] (8)사법처리 대상자 중에 언론사 대표는 없다는 식으로 정보를 흘려 여론의 반응을 탐지하고 여론을 조성하기 (9)참고인 조사 한 사람(한00)의 자필진술서를 추가로 받아 가해(혐의)자 측을 유리하게 만들기 (10)중간수사결과 발표내용을 발표 전에 가해(혐의)자 측에 유출하기 등등.

대한민국 경찰이 이러한 기법으로 가해(혐의)자 측에 유리한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이른바 “유력” 언론기관인 조선일보는 경영기획실(강효상)을 비상대책팀으로 운영하고 사회부장(이한동)을 보내 경기지방경찰청장 등에게 수사외압을 행사하고 유리한 증언을 해줄 사람(한00)을 경찰에 보내 허위진술을 하게 하고 사건 직후인 2009년 3월 17일에는 도피중이던 김종승을 단독으로 취재하여 “소송 막으려고 전 매니저가 꾸민 자작극”이라는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하여 은연중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식으로 이 사건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탈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중이었다. 이모 수사관의 증인신문조서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대한민국 경찰의 수사가 결국 가해(혐의)자인 조선일보 측의 이러한 노력 및 요구에 부응하고 협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가해(혐의)자 위주의 수사였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