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6)

“사기야!”의 종국과 본질

증여-수증-증여의 호혜적 순환은 자본주의적 상품사회와는 별개의 논리와 메커니즘을 갖고 가동되는 다른 질서다. 증여관계는 오늘날 자본주의적 시장사회의 바탕에서 시장질서의 한계를 보충하는 보조적 기능을 담당하는 데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증여관계는 언젠가 시장질서가 더 완전해지면 사라질 그 무엇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그 반대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등가의 시장질서야 말로 가치로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의 공통장, 즉 호혜적 증여관계 위에서 파생된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질서일지 모른다. 증여의 공통장이 시장보다 더 근본적인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시장질서가 점점 더 폭력, 수탈, 절도, 사기에 의해 지배되어가는 현대적 경향 속에서 좀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시장의 완숙이 철저한 등가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철저한 부등가의 질서, 불평등의 질서, 사유화의 독재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의 생각을 참조하면 시장 질서 속에 과연 등가교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 등가의 질서가  단 한 번이라도 성립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맑스는 우리가 등가교환으로 알고 있는 상품교환의 질서야 말로 부불노동의 절도라는 부등가교환을 그것의 내적 비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잉여가치, 이윤은 등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절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질서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의 시장이 점점 강탈, 절도, 사기에 의해 지배되어 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질서의 세포관계인 상품교환 그 자체가 애초부터 내포하고 있었던 부등가교환과 절도의 맹아가 만발하여 등가교환 질서를 침식하고 파괴하기에 이르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김수민은, ’윤지오의 귀국 목적은 증언이 아니라 돈과 명성이었다’ ‘윤지오는 자기홍보에 장자연을 이용했다.’’윤지오는 출판과 사업을 통해 돈을 모으려 했다’ ‘윤지오는 돈을 모으기 위해 위험을 과장했다’ ‘윤지오는 유가족의 뜻을 무시했고 유가족을 비난했으며 그들과 나눠야할 할 돈을 독차지했다.’ 등등의 말로 윤지오의 증언을 돈벌이를 위한 사기 수단으로 폄하했다. 김수민의 고발논리는 윤지오의 증언은 1억원 이상 화폐 후원금과 교환될 수 없고 또 교환되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김수민의 생각대로 그것이 ‘가식’과 ‘가짜’의 증언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증언은 제로가치(0원)일 것이고 그러니 1억원과 교환될 수는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김수민은 시장근본주의적 인식 속에서 증언-증여라는 현상을 파악한다. 이러한 인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10년 동안에 걸친 16번의 증언을 모두 돈을 목적으로 한 사기행동으로 만드는 불합리한 시간소급까지 행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고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재벌, 정치권, 언론계, 법조계, 연예계의 성폭력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윤지오라는 새로운 권력이 문제다’라는 표적 바꾸기를 가져왔다. 이후 그는 ‘사기꾼’ 타도라는 구호 아래에서 윤지오를 죽이는 데 총력을 기울였고다. 김수민은 말로는 ‘장자연 사건이 희석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조선일보 SBS 등 장자연 사건과 연관된 이른바 ‘가해권력’과 손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김수민이 이 방송사들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윤지오의 증언은 거짓이고 사기’라고 말할 때, 이 가해권력들은 확실한 면죄부를 얻고 장자연 사건의 본질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희석’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성폭력 가해권력이 아니라 윤지오의 증언 신빙성으로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이 김수민을 가해권력이 증언 대오에 들여보낸 트로이의 목마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수민은 모순에 찬 자신의 증여 혐오를, 한 번은 이수역 피해 여성 그리고 또 한 번은 증언자 윤지오를 향해 표현했다. 이들을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사기행위자로 고발한 두 번의 행동이 그것이다. 이솝우화 속의 양치기 소년도 두 번 “늑대야!”라고 외쳤지만 그 소년은 늑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김수민은 자신이 사기꾼으로 고발한 사람들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수역 사건에서 ㅎㅇ가 김수민에게 피해 여성이 사기를 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음에도 김수민은 모른체하며 이른바 “공론화”(피해여성측에서 보면 2차가해이자 무고)를 멈추지 않았다. 윤지오가 김수민에게 “당신이 나에 대해 행하는 것은 이수역 사건 피해여성에 대한 2차가해와 동일한 2차가해이자 무고”라고 알려주었음에도 김수민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말이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 주장하며 변호사 박훈과 함께 고소를 했다. 김수민은 이들이 사기꾼이 ‘아님’을, 혹은 적어도 ‘아닐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체한다. 이것은 결국 알고 모름, 즉 인식이 근본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처벌받게 하고 싶다는 의지, 욕망이 근본 문제임을 보여준다. 

양치기소년은 실제로 늑대가 몰려 온 세 번째 순간에도 “늑대야!”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그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양들은 늑대의 먹잇감이 되었다. 김수민도 이 양치기 소년처럼 “사기야!”라고 외쳐야 하는 세 번째 계기를 맞게 된다. 서0혁이 나타나 슛맨과 손잡고 윤지오에 대한 유튜브 방송 까판을 벌렸을 때다. 김수민은 이들과 손잡고 윤지오 비난 까판에 합류했다. 하지만 얼마 뒤 김수민은 서0혁이 사칭 전문가임을 알게 된다. 김수민은 늘 그렇듯이 이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윤지오 까판을 슈퍼챗(후원금)을 얻는 데 이용한다며 다시 한 번 “사기야!”라고 외치게 된다. 이번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김수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도리어 김수민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사기꾼과의 투쟁’이라는 미명하에, 한 번은 피해자를, 또 한 번은 증언자를 사기로 몰아 여론의 뭇매를 맞게 만듦으로써 가해자를 유리하게 만들었던 김수민의 “사기야!”는, 실제의 사칭 전문가가 나타났을 때에는 어떤 경보기능도 하지 못했으며 늑대들이 양들을 먹어치울 수 있도록, 즉 사칭과 사기가 여론을 지배할 수 있도록 활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피해자와 증언자를 사기꾼으로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독을 내뿜는 화기로 사용되었던 김수민의 인스타그램은, 드디어 진짜 사기가 나타났을 때에는 그것과 싸우는 무기로 기능하기는커녕 안온한 일상의 혼잣말로 돌아가 그 진짜 사기를 방조하는 평화로운 잡담장소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윤지오라는 새로운 권력’에 대한 고발의 본질이 진짜 가해권력을 돕는 것에 있었고, “사기야!”의 본질이 진짜 사기를 돕는 것에 있었음을 자백이라도 하려는 듯이.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5)

증언의 진실

김수민의 이 주장들 중 (1)이 사실이 아님은 여러 증거들이 보여준다. 그 증거는 무엇보다도 윤지오가 지난 10년간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고 오히려 위험만이 따르는 열여섯번의 증언을 고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감내한 것에 의해 입증된다. 수사관들도 윤지오가 수 십 차례에 걸쳐 가해권력자들을 만나는 술자리에 장자연과 동행했고 어느 연예인보다도 장자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며 핸드폰 통화기록에 그 사실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윤지오에 대한 참고인조사를 남보다 더 많이 요청했음을 인정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윤지오가 장자연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듣자마자 자정 시간에 빈소로 달려가 조문하고 사흘을 장례식장에서 유가족과 함께 보내면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맞절을 하기도 하였다는 점, 고 장자연씨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을 뿌리는 과정을 유가족과 함께 했다는 점, 유장호가 자신과 말조차 섞기 싫어하는 유가족과 장자연이 남긴 문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윤지오에게 유가족과의 만남의 장소와 날짜를 조율하는 중간매개자 역할을 부탁했다는 점, 유장호가 장자연의 문건을 보여준 (유가족 이외의)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점, 유가족과 함께 문건을 읽고 소각하는 현장에 있었다는 점 등은 김수민의 말이 거짓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도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2009~10년 전의 진술자료들이 명확히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장자연 리스트에 관한 여러 편의 글에서 이미 상세히 비판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논하지 않을 것이다.

 (3)의 윤지오와 과거사조사위원과의 대화에 대해서는, 증언자의 안전에 대한 어떤 고려도 없이 증언을 요청하는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기 위해 윤지오가 사용한 기술적 답변을 김수민이 맥락에서 분리하여 읽음으로써 오독한 것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괄호 속 문제들과 관련해서는 김수민이 사실을 모르는 탓에 빚어낸 왜곡이다. 왜냐하면 윤지오는 장자연이 방사장을 만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만남의 날짜 장소 상황을 당연히 알 수 없고 기억할 수도 없다. 또 조사과정에서 추행이 문제로 된 것은 조0천이지 김종승이 아니었다. 조0천의 추행에 대해서는 이미 10년 전의 윤지오 진술서에 또렷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김수민의 이러한 예시는 김수민이 말들을 임의로 지어내고 있으며 이 사건에 대해 얕은 차원에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증언이 거짓이라는 이 주장들은 무엇으로도 입증될 수 없는 김수민의 ‘혼잣말’로 남아 있다. (그런데 티비조선이나 SBS를 비롯한 제도방송들과 여러 신문들이 김수민의 이 근거 없는 혼잣말에 어떤 진실이 담긴 양 증거자료로 인용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김수민은 이수역 사건에 뒤이어 다시 장자연 사건에서 “윤지오는 사기를 쳤고 나는 속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나는 윤지오에게 여러 가지를 증여했지만 그는 나에게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하지 않았다’는 인식을 표현한다. ‘윤지오는 이기적이고 일방적이며 의존적이었다’, ‘윤지오의 태도가 불만스러웠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관계를 유지했다.’는 생각이 그러하다. ‘서로 증여하며 살자고 했지만 나의 증여에 그가 답례하지 않았다’는 느낌은 ‘윤지오는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사람, 표리부동하고 배은망덕한 두 얼굴을 가진 사람, 위선적인 사람, 거짓말쟁이’라는 생각으로 표현된다. 김수민이 이수역 사건의 피해 여성과 결별한 것이 후원금 요청, 즉 언어 증여를 넘는 화폐 증여의 요구였던  것처럼, 그가 윤지오와 결별한 것도 청원에 대한 동의서명 요청 즉 새로운 증여의 요청이었다. 이에 비추어서 우리는, 김수민이 ‘자신이 상응하는 답례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그것이 양자 관계에서 사실인가 아닌가는 여기서 중요치 않다) 증여-수증의 관계를 사기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우리는 여기서 김수민이 ‘화폐(돈)는 증여의 수단일 수 없다는 판단을 기초로 화폐를 증여해 달라는 요구를 사기라고 보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자는 증여를 교환으로 환원하는 경향이다. 그리고 후자는 화폐(돈)는 교환수단이지 증여수단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두 경향은 본질적으로는 증여에 대한 부정, 증여에 대한 혐오, 증여를 교환으로 대체하려는 의지를 표현한다. 오직 인간들 사이에는 교환만이 가능하며 등가가 교환되는 관계 외의 관계는 사기라는 인식은 이러한 의지에 기초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김수민은 스스로 증여행동을 한다.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이수역 피해 여성을 옹호하기 위한 여론투쟁에 에너지를 쏟고 윤지오의 질문들에 답하며 카톡을 통해 애정의 표현들을 준다. 그런데 이것들은 등가로 교환될 수 없는 것들이다. 바로 이 등가로 교환될 수 없는 증여관계를 ‘모든 것은 등가로 교환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주관적 관념 아래에 종속시킴으로써 김수민은 스스로 증여행동을 하면서 등가교환을 기대하는 모순에 빠진다. 이 모순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김수민은 돌변하여 자신과의 증여-수증-증여의 호혜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을 갑자기 사기꾼으로 모는 악순환 속으로 들어가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김수민과 증여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 상처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