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개념의 가해자중심주의적 전도

2009년 대한민국 경찰은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았던 장자연 사건 가해권력의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를 ‘적색수배’하기는커녕 부실한 조사로 덮어 버렸다. 2018년부터 시작된 과거사 재조사조차도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다. 대통령의 엄정조사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심의결과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수사기관(검경)의 적나라한 실태가 이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찰은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결과가 발표된 지 경우 반 년 만에, 마치 심기일전(心機一轉)이라도 한 듯이, 바로 그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에 대해 증언한 증언자를 도리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의 혐의자로 적색수배 요청하고 ‘엄정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2차, 3차, n차 가해에 노출된다는 것을 이보다 여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도대체 증언자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들이 무엇인가? 경찰에 따르면 그것은 ‘사기와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 모두 인터폴 자체의 적색수배 요건인 2년 이상 징역에 포함되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기와 명예훼손 혐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그 행동의 범죄화를 통해 사법권력이 사람들에게 던지고자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사기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당신은 증언하는 동안에 혹은 그 이후에 신변위협이 있었다고 말했고 당신의 지지자들로부터 경호비와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 후원금으로 1억 3천여 만 원의 돈을 모금했다.”가 그 혐의의 지시내용이다. 이것이 범죄혐의라는 주장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당신이 증언자라면, 기자가 당신의  소재지를 추적하며 가해자 입장에서의 질문을 퍼붓더라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더라도, 그런 것을 대중 앞에서 발설하면 안 된다. 국가가 당신을 증언자로 불렀더라도 증언자를 보호해 달라고 국가에 요구해서도 안 된다. 증언자에게 닥쳐오는 신변위협과 고통을 달게 받아 들여라.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경호비를 보내겠다고 아우성을 치더라도 결코 계좌번호를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계좌번호를 공개해서 그곳으로 후원금이 입금되면 후원자를 기망하여 재물을 편취한 죄, 즉 사기죄로 단죄될 수 있다. 혹시 그렇게 당신에 대한 연대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어서 증언을 위한 경호비로 사용하여 신변안전을 도모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의 말을 의심하라. 당신을 지지한다,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 증언에 대한 지지자가 당신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당신에게 경호비를 후원한 사람이 후원금반환소송을 제기하여 당신의 사기혐의를 뒷받침할 증인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들은 원금 외에 고리대를 요구하는 사채업자처럼 돌변할 수 있도 있다. 후원회비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노력 같은 것은 하지 말라. 증언자 피해자 목격자가 겪는 고통에 무관심하라.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라. 당신이 그들을 돕겠다고 나서면서 후원회비를 모집하게 되면 언제든지 그것이 기부금품법 위반의 대상으로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무엇보다도 권력자들에 대한 증언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라. 그들이 성추행을 하건 성폭행을 하건 오직 방관하라. 그것에 대한 증언은 언제든지 ‘사회적 중요범죄’로 지목될 수 있다. 권력자들 앞에서 침묵하라. 그들에게 굴종하라. 그것이 신변위협을 받지 않고 당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며 적색수배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둘째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당신은 김수민 작가를 ‘이수역 사건 2차 가해자’라고 말하여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대한민국에서는 인물을 특정하여 제3자가 들을 수 있는 공연성의 환경에서 그를 비난하면 명예훼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흔한 사건으로서 ‘사회적 중요범죄’로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정치인’을 장자연 리스트에서 보았다고 말한 것이다. 당신이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증언한 후 홍준표 의원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검사로부터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으니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즉각 당신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홍준표 의원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고 그가 당신을 범죄 혐의로 고발했다는 것은 당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이 설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홍준표’라는 이름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말해서는 안 되었다. 그 이름을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시민단체에서 말해서는 안 되었다. 권력자들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며 사법적 보복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도 범죄가 될 수 있다. 권력자들의 탈법이나 부패에 대한 증언은 언제든지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단죄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침묵하라, 침묵하라, 침묵하라! 

이렇게 ‘사회적 중요범죄’로 규정된 두 가지 혐의는 가해권력자들의 불의에 대해 증언을 하지 않도록, 침묵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 온다.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증언이 명예훼손죄로 제소될 수 있으며 후원금 모금을 통해 가해권력자들의 보복으로부터 증언자의 신체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은 사기죄로 제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의 실현의 노력이 사법에 의해 부정의로, 범죄로 정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기자, 작가와 같은 전문가들,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 같은 언론사들, SNS 계정주 같은 시민사회 행위자들만이 아니라 경찰, 검찰, 법원, 정당, 그리고 국회의원 같은 국가권력의 기구들이 가해권력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즉 ‘증언자의 범죄화’를 위한 총력전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맥락에서 보면 “경찰청 자체 기준에 비춰 봐도 윤씨 사건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사안인 만큼 중요사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경찰관계자의 설명은 증언자의 고립과 범죄화를 위해 가해권력이 주도하는 이러한 전 사회적 총력전의 하나의 전술단위처럼 들린다. 왜 이렇게 들리는 것일까? 

촛불시민들은 윤지오가 증언한 권력형 성폭력 범죄 혐의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으로 보고 그것에 대한 수사와 재수사 요구를 높이 제기했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 10년간 이 요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가 2009년 KBS의 장자연 문건 보도 이후의 수사에서 성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범죄 혐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가해권력자들이 무혐의 처분된 것이고 2018년에 재개된 과거사 재조사가 혐의자들에 대한 재수사로 연결되지 않게 된 것이다. 촛불시민의 요구와 정반대되는 방향에서 가해권력자들은 윤지오가 행한 증언 자체와 그에 따른 부대 행위들(후원금, 숙소제공 등)을 ‘사회적 파장이 큰’ 범죄 혐의로 정죄하면서 지난 수 개월간 그에 대한 수사 요구를 ‘높이’ 제기해 왔다. 그 결과가 윤지오에게 열 가지 이상의 고소고발장이 날아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경찰관계자는 정확히 가해권력자들과 동일한 입장과 방향에서 윤지오의 증언행위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범죄화하라는 가해권력자들의 시각과 요구를 고스란히 ‘경찰청 자체’의 시각과 요구로 대변하고 있다. 요컨대 경찰 관계자가 말하는 범죄 혐의의 ‘사회적 중요성’ 평가가 촛불시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가해권력자들의 입장에서 내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3)

이수역 사건 피해 여성이 후원금을 요청한 실제 이유

우선 우리는 당시 김수민 및 피해 여성측 사이에서 양자 모두와 소통할 수 있었던 ㅎㅇ의 반응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 접근해 갈 수 있다. ㅎㅇ은 맨 처음 김수민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는, 피해여성의 후원금 요구가 합리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며 김수민의 생각에 공감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김수민이 피해 여성으로부터 받은 후원금 요청 메시지를 ㅎㅇ과 공유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ㅎㅇ도, 개인후원을 비밀리에 요청한다는 것이 이상하고 변호사가 공개모금한 돈으로는 수임을 받을 수 없고 비밀모금한 돈으로는 수임을 받겠다고 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반응한 것이다. 하지만 ㅎㅇ은 김수민보다는 신중하게 피해여성들과 함께 일해온 지인에게 사정을 더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연락이 도착하기도 전에 김수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피해 여성의 후원금 요청을 ‘사기’로 보는 자신의 주관적 해석을 공개해 버린다. 위에 인용한 구절이 그것이다. ㅎㅇ은 이 공개가 문제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김수민에게 자신이 파악한 내용을 말해 준다. 피해 여성과 함께 일해온 지인이 “변호사가 사회적으로 격렬한 쟁점이 되고 있는 문제에서 공개리에 모금을 하여 자신이 변호사임이 공개되면 여론상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고 이런 사정 때문에 첫 변호사가 사임하여 두 번째 변호사를 선임하는 방법으로 비밀, 개인 후원 방법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음을 알려주면서 ㅎㅇ은 인스타그램에 공개한 글을 보관으로 돌려 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 요청을 거부하고 김수민은 그 글의 공개를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한다.

이 글을 읽고 개인 후원금 메시지를 보냈던 피해 여성이 이 사태와 관련하여 김수민에게 보낸 메시지는 이 사태의 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직접적 증언의 목소리이다.

“작가님 께서 올리신 새로운 인스타 피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드린 메세지가 오해를 살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에 해명을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메세지 드립니다. 그간 있었던 무수한 일들을 짧은 메세지로 축약해 보내는 과정에서 저희의 상황이나 의도가 온전히 전달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많이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우셨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의아하신 점이나 짚고 넘어 가고 싶으신 점 등이 있다면 얼마든지 연락주십시오. 저희는 모든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작가님께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남겨드릴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불쾌하시거나 오해를 살만한 점이 있었다면 대화를 나누면서 자세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여기에서 피해 여성은 자신들의 불찰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우셨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며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고 싶으니 연락을 달라고 말한다. 

제3자인 ㅎㅇ의 사태조사(즉 지인의 말)와 피해자의 직접적 해명은 일치한다. 만약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김수민이 여성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상황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성 피해자는 앞서 본 바처럼 김수민을 비판하기보다 자신의 불찰을 성찰하고 사과와 대화를 통한 오해풀기를 제안한다. 

지금까지 여성측이 남성측을 가해자로 몰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 왔다고 주장해온 남성측 지지자들도 김수민의 이러한 돌변을 반겨 하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김수민이 이수역 사건의 당사자 여성을 사기꾼으로 몰면서 자신은 빠져 나가고 사건 당사자 여성에게 독박을 씌운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그니까 ..어쨌든 작가란 X도 병신짓 했고 이제서야 깨달아서 이래나 저래나 까발려지면 매장 될 판인데 좀 살 수 있는 루트 만들어서 자기는 쏙 빠져나가고 저 이수역 X들이 다 독박 씌우겠다 이거네???”

김수민으로서는 난처한 반응들이 이렇게 연속된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피해 여성에게 제공한 언어적 증여가 답례로 보답 받기는 커녕 오히려 추가의 화폐 증여 요구로 이어졌다고 느끼면서 언론 제보와 인스타그램 피드 공개로 대응한 것이 가져온 응보였는지 모른다. 어쨌든 여기에서 우리는 화폐 증여에 대한 김수민의 혐오 반응을 읽을 수 있다.  김수민은 요청 받지도 않은 언어적 증여를 피해 여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제공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요청까지 받은 화폐 증여는 결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는 식의 혐오 반응을 보인 것일까?

피해 여성이 김수민에게 해명과 사과 및 당부를 담은 위의 메시지를 보낸 후 김수민이 이에 응답한 글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암시해 준다.  

“네 많이 불쾌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공식적인 후원도 아닌 갑자기 디엠을 보내와서 계좌번호 던져 주고는 후원 부탁한다 대신 침묵해 달라 알려져선 안 된다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달라 부담 없이 읽어달라는 건 무슨 뜻이죠 저한테는 듣는 순간 부담이 무척 되더군요 그거 알죠 그쪽과 저랑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리고 저도 당신들을 위해 싸워주고 분노해 주고 해명해 주는 거 변호사 모금을 후원해 주는 거 이중에서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습니다 단지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신들 편을 드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고 무조건 억울한 피해자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당신들이 잘해서 그렇게 당신들을 위해 글을 쓰고 해명하려고 노력하고 당신들 편을 들어주는 게 아니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딱하나 분명 서로 잘못은 있지만 어찌됐던 여자는남자 보다 약자고 그쪽은 수가 더 많았고 남자쪽은 다친 것이 없었고…”

여기서 김수민이 피해 여성측을 “사기”로 보는 글을 올려 ‘공론화(?)’한 것을 정당화하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원래 피해 여성측에도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즉 과실은 쌍방에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식 후원 형식을 따르지 않는 후원 요청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표명함으로써 김수민은 이제 이수역 사건 여성측의 내부고발자가 된다. 여성측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여성측이 피해자를  가장한 사기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김수민의 이 내고고발로 인해 피해 여성들은 사기꾼의 누명을 뒤집어 쓰고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된다. 

그런데 피해 여성들의 입장에서 첫째 이유는 쟁점사항이지만, 둘째 이유는 참으로 억울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후원금을 비공개로 모금했던 것은 첫 번째로 선임된 변호사가 사임하고 새로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변호사들이 공개모금 방식을 거부한 데 따른 불가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애초 피해 여성이 보낸 디엠이 어떠했길래 김수민은 “공식적인 후원도 아닌 갑자기 디엠을 보내와서 계좌번호 던져 주고는 후원 부탁한다 대신 침묵해 달라 알려져선 안 된다 주변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달해 달라 부담 없이 읽어달라는 건 무슨 뜻이죠”라고까지 반응한 것일까? 김수민 작가에게 피해 여성측에서 보낸 애초의 인스타그램 디엠은 다음과 같다.

“부끄럽지만 현재 저희에게 도움을 주시겠다는 분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식 모금을 열지 못했습니다 변호사들이 모두 사건에 쏠린 여론, 변호사로서의 이후 본인 커리어에 영향을 줄 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모금을 통한 변호사 선임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호사 선임, 치료비 등 그간 약 8백만원에서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본인이나 최측근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상황이었습니다 현재 변호사를 재선임 해야 하는데 역시 공개적인 모금을 원치 않으며 모금이 없어야 변호사 선임 가능성이 조금 더 올라 갑니다 하지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금전적인 문제의 큰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몸을 추스린 저희가 직접 한분 한분께 연락을 드리며 도움을 요청 하는 중입니다 비용에 대한 부분은 투명하게 진행 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갑작스러운 긴 텍스트에 놀라셨겠지만 금전적 후원이 가능하시다면 도움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조심스럽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모금과정이 누설되면 저희측의 변호사 선임이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져 비밀 엄수를 꼭 부탁드립니다 더불어 조금 모순되는 말이지만 주변에 정말 신뢰 가능한 분들이 계시다면 저희 이야기를 전달해주실 수 있을까요 계좌는 시티은행…”

읽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이 디엠에는 비공개 방식의 사적 후원 방식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하게 서술되어 있다.  처음에 김수민의 이야기를 듣고 김수민의 말에 공감했던 ㅎㅇ도, 이러한 방식의 후원금 요청이 ‘사기’가 아니라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선택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것을 열심히 김수민에게 설명해 준다. 사실을 확인해 보니 피해 여성들이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보았던 자신의 처음의 의심이 사실과 다르고 오히려 피해 여성이 처음 김수민 작가에게 보낸 메일의 문구 그대로가 사실이라고 말이다.  

“이수역 피해자분들이 지금 여러가지로 언론도 그 누구도 못믿고 일이 틀어질까봐 걱정도 되고 또 이런 식으로 선임을 거부할까봐 최대한 몸사리며 하고 있는 중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고, 사기나 이용하려던 건 정말 아니라고 하는데 이 분은 제가 개인적으로 많이 만나고 하는 분이라 신뢰도가 있거든요. 작가님도 많이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우셨겠지만 그쪽에서 답장이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으실까요?ㅠ”

이런 조사를 기초로 ㅎㅇ이, (자신과 김수민의 오해와는 달리) 피해 여성들이 변호사 선임했다가 계약 파기되고 재선임하고 있는 것이 사실로 보이니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관으로 돌려달라고 요청하지만 이에 대한 김수민의 응답은 냉담하고 확고하다. 

“공론화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요. 침묵해 주는 게 옳지 않는 것같아요. 그럼 그들은 뒤에서 계속 그렇게 비밀스럽게 돈을 달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고 사람들한테 피해자든 뭐든 분명 저건 옳지 않아요.”

“피해자든 뭐든 분명 저건 옳지 않아요”라는 말은 사실보다 규범이 우선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표현한다. 이렇게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서 사실을 더 확인해야 할 순간에 자신의 주관적 규범을 앞세움으로써, 김수민은 이수역 사건 여성 피해자들에 대한 지지자, 언어적 증여자에서 ‘내부고발자’ 형식의 ‘2차 가해자’로 변신한다. 

이 변신의 순간에 김수민이 피해 여성에 대한 자신의 이전의 지지가 “증여”였음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흥미롭다. 앞서 말한 지지의 세 가지 성격 중 ‘자기실현’이나 ‘연대’의 성격을 제외시키고 ‘증여’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쪽과 저랑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리고 저도 당신들을 위해 싸워주고 분노해 주고 해명해 주는 거 변호사 모금을 후원해 주는 거 이중에서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습니다.”에서 “주다”(증여)는 네 번 등장한다. “싸워 주고, 분노해 주고, 해명해 주고, 후원해 주다”가 그것이다. 감정의 증여, 해명의 증여, 투쟁의 증여, 후원금의 증여. 

이 네 가지 증여 중 “당연한 건 없습니다”라는 말은 무엇인가? 증여에는 일정한 답례의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분노의 증여, 해명의 증여, 투쟁의 증여를 했다. 그런데 수증자로부터 돌아온 것이 답례증여이기는커녕 추가의 증여, 그것도 화폐 증여에 대한 요구였다. 현대 사회에서 화폐는 교환수단이며 교환수단이기 때문에 지불수단, 축장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그것이 증여수단일 수 있을까? 김수민은 이에 부정적으로 답한다. 화폐는 증여의 수단이 아니다. 이런 관점 때문에 김수민은 화폐적 형태의 후원금 요구를 ‘사기’로 파악하면서 그 요구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피해 여성을 ‘사기 가해자’로 묘사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하기에 이른다.

증여혐오: 김수민의 “사기야!”의 경우(2)

이수역 사건에서 증여를 사기로 둔갑시키기

김수민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8년 이수역 사건 때이다. 이 사건은 2018년 11월 13일 새벽 4시 이수역 근방의 주점에서 여성 두 명과 남성 네 명 사이에 시비와 싸움이 일어나 여성 한 명과 남성 한 명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고 기소 되기에 이른 사건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2018년 11월 15일부터 김수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사건의 여성 피해자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계단에서 밀지 말라고 계속 말을 하는데도 피해 여성의 손목을 잡고 놔주지 않고 남자들은 여성 피해자를 발로 차버리고 계단으로 밀어버립니다.” 여기서 김수민은 여성을 피해자로 남성을 가해자로 파악한 후, 남자 가해자들이 경찰 진술, 언론 플레이, 동영상 조작, 목격자 진술 조작을 통해 여성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남자 가해자들은 경찰 진술에서도 언론플레이로도 자기들은 손끝도 때린 적이 없다 건들인 적이 없다. 여자혼자 넘어진거다. 자기들이 되려 폭행당했다며 피해자들을 가해자로 몰아갔습니다. 유튜브 영상에서도 피해자들이 욕한 부분만 편집해서 올려댔고 사람들은 피해 여성들을 또 다시 2차 가해를 하였습니다. 목격자 진술도 주작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사람들이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수민은 이러한 여론몰이에 맞서면서 “한국 사람들”이 피해자 말은 듣지도 않고 피해자들을 “사기꾼”이라고 하면서 가해자들에게 감정이입하고 편집된 영상만 보고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언론보도가 가짜 기사인데 사태의 진실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가해자들의 말만 듣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의심부터 한다는 것이다. 김수민이 보기에 이 의심은 “피해자 증거사진들”, “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하는 처사이다.

“누가 얼마나 큰 피해를 당했는가?”보다 “누가 시비를 먼저 걸었는가?”로 쟁점을 옮기려는 남성측의 반론에 대한 응답으로 11월 16일 김수민은, 시비를 누가 먼저 걸었는가보다 여성 피해자가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면서 생명의 위험과 여성인권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사람이 다쳤다. 계단에서 남자가 밀쳐서 사람이 다쳤다. 사람이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 그런데 차라리 죽지 그랬냐는 댓글들이 넘쳐나고 그정도 맞은 걸 다행인줄 알라고 말하고 나같아도 때렸을거라고 말하고 맞을짓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게 정상인건가?”라고 물으면서 김수민은 “중립충을 지향하는 사람들”(방관자),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는 사람들”(적대자)을 가리지 않고 이들에 맞서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

사흘 뒤인 11월 19일 김수민은 “가짜 목격자의 증언과 여자들만 욕한 편집된 영상”만을 보고,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한 여성 피해자에게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이 악플러 군중들이야말로 거짓 기사들을 쏟아내는 언론들과 더불어 “여성 피해자들을 벼랑 끝까지 몰고”가서 “죽을 뻔한 피해자들을 진짜 죽이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김수민은 사건 초기에 이수역 피해 여성들에 대한 공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여론투쟁을 수행했다. 그것은, 남성 가해자들의 일방적이고 거짓된 주장, 가해자들에게 유리하게 조작된 목격자 이야기, 가해자들에게 유리한 거짓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 이것들에 지지를 보내면서 여성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악플러들을 비판하고 피해 여성들의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세 가지 성격, 즉 (1)SNS 글쓰기를 통한 여성 인권의 옹호로서의 자기 실현이라는 성격 외에 (2) 여성 피해자와의 연대라는 성격을 가지며 나아가 (3)피해 여성들의 절박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언어적 증여행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김수민의 태도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난 것은 약 8일 뒤인 2018년 11월 27일경부터이다. 남성 가해자들이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몰아세운다면서 그들과 맞서 싸우겠다고 선언했던 김수민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의심은 혼자 마음 속에서 하는 의심에 머물지 않고 여성 피해자를 사기꾼으로 의심토록 만드는 SNS ‘공론화’ 행동으로까지 나아갔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 ‘공론화’는 실제로는 피해 여성에 대한 거짓 고발이었다. 

지지 행동에서 공격 행동으로의 이 돌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교롭게도 우리는 김수민과 (그에 의해 약 5개월 뒤에 갑자기 ‘사기꾼’으로 지목되는 당황스런 경험을 하게 되는) 윤지오가 나누었던 카톡 대화를 통해 김수민의 이러한 돌변의 이유와 맥락을 짚어볼 수가 있다.

2018년 11월 27일 윤지오가 조0천 강제추행 건에 대한 증언을 위해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오는 날 김수민이 윤지오에게 카톡으로 갑자기 “너 아는 기자있지? 언니 소개 좀 시켜줄 수 있어? 뭐 제보할 게 있는데 이걸 기사화시켜줄 기자가 필요해.”라는 부탁의 메시지를 보낸다. 무엇을 위해서 기자가 필요했을까? 그 이유는 “이수역 폭행 피해자들이 나한테 돈을 요구하는 듯한 말을했거든. 페미니스트 욕 먹이는 일일까봐 침묵할려고 했었는데 이 사건을 공론화시킬까말까 고민중이야.”에서 찾아진다.  

이 말 속에서 우리는 ‘페미니스트는 타인에게 “돈을 요구하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페미니스트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피해를 빙자하여 돈을 요구하는 사기행동으로 의심될 수 있다’는 김수민의 사고방식을 읽어볼 수 있다.  이상하게도 김수민은 ‘여성 피해자가 왜 자신에게 돈을 요구하는가?’, 라는 기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즉 사태의 진상에 접근하여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이수역 사건 여성 피해자의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페미니스트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사기행동일 수 있다’는 자신의 주관적 규범이 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중지하도록 만든다. “돈이 필요하니 도와달라”는 피해여성의 요구에 그는 자신의 이 규범을 기초로 반응하고, 상황에 대한 성찰 없이 즉각적으로 기자에게 제보하려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초기 대응에서도 이와 유사한 주관적 반응방식이 발견된다. 김수민이 피해 여성을 옹호할 때에도 그는 “잘잘못, 시시비비” 즉 원인보다 “여성이 죽을 뻔하다 살아났다”는 결과의 측면에만 주의를 집중했고 이 결과를 기초로 남성측을 일방적 가해자로 단정했다. 그의 판단과는 달리 2018년 12월 16일 경찰은 남녀 5명 모두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과 모욕죄 등으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고 2019년 7월 30일 검찰은 이들 중 남녀 각 1명씩을 약식기소하고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불기소처분했다. 즉 쌍방 폭행, 쌍방 가해-피해 사건으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김수민이 제기하지 않고 있는 그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피해 여성들은 김수민에게 후원금을 요청했던 것일까?’가 그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사건이 법정으로 옮겨가면서 변호사 선임비가 필요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이 사건에서 변호사들은 수임료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면 변론을 맡기 어렵다고 했다. 변호사의 이런 수임조건을 고려하여 선택한 것이 비공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는 후원금 모금이었다. 피해 여성들이 김수민에게 후원금을 요청한 것은 김수민이 인스타그램에서 자신들을 지지하는 글을 쓰고 있고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수민은 “돈을 후원해 달라”는 요청은 피해자가 해서는 안 될 요청이라는 자신의 주관적 규범에 따라 여성 피해자의 후원금 요청을 ‘사기’로 의심하고 이를 언론에 제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김수민은 윤지오에게 아는 변호사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것은 이러한 방식의 후원금 모집이 법률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갖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캐나다에서 살고 있었던 탓에 이수역 사건을 모르고 있었고 김수민을 통해 이 사건을 처음 들은 윤애영은 알고 있던 모언론사 기자 2명과 민변 변호사를 김수민에게 소개해 주었다.

바로 다음날인 11월 28일 김수민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수역 피해 여성측이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한 메시지의 일부를 공개하면서 “이 일은 꼭 사람들에게 공론화시켜야 하겠습니다. 당신들이 나에게 보낸 메시지를 내가 숨길 필요도 침묵해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쓰고, 이것은 “당신들이 나와 사람들을 속인 거”, 즉 사기라는 강한 함의를 대중에게 전달한다.

“나 지금 좀 회의감이 들려고 하네/내가 그동안 뭘 위해 그렇게 싸워왔던건지/진심을 다해 싸워왔던 마음마저 무너질려하네/난 내 아픔을 진심으로 말했던건데/글쎄 당신들 아픔이 진심인지는 모르겠네/결국 원한 건 무엇이었나/침묵을 가장한 본심이었나/진심을 이용한 거짓이었나/날 후회하게 만들지마/당신들이 나와 많은 사람들을 속인거라면/큰 실수한거야.”

이러한 ‘공론화’의 정체가 무엇일까? 피해를 빙자하여 후원금을 모으는 ‘사기꾼’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린 것일까? 그게 아니라, 돈이 없어 변호사를 구하기 어려운 절박한 곤경에서 벗어나고자 후원금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여성 피해자를 김수민이 사기꾼 혐의를 씌워 2차 가해한 것일까? 이것은 당시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었고 왜 후원금을 요청했는가를 살피지 않고는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것은 김수민이 외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장자연이 받았던 ‘성상납 강요’에 대한 용기 있는 증언들과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에서의 증언 무력화

“성상납 강요”는 ‘성폭행’을 의미한다(2)

윤지오는, 편지형식의 글에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고 그 다음에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유장호는 그 편지형식의 글에 “김종승과 만날 때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씌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전자는 뚜렷하지만 후자는 모호하다. 전자는 편지형식의 글 끝에 씌어 있었다는 글귀 ‘가족들과 지인들께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호응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그래도 두 사람의 진술이 상반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김종승이 (윤중천처럼) “성상납 강요”의 공모행위자였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장호가 자신의 진술의 그 모호함을 걷어버린 한 순간이 있었다. 과거사진상조사단과의 예비면담 때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의 은어(隱語)임을 밝혀왔다. 김학의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방식에 여성들이 항의하면서 “성상납이 아니라 성폭행이다”라는 피켓을 들었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장자연 사건에서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라는 문구를 리스트에서 봤다고 말한 사람은 지금까지 윤지오 증언자 한 사람 뿐이었다. 리스트가 있었다고 증언한 유장호나 유가족(오빠)도 리스트의 내용과 관련하여 이에 상응할 만큼 명료한 증언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과거사진상조사단과의 예비면담에서 유장호는 장자연과 자신이 문건을 작성할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장자연이 써서 자기가 지우라고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윤지오가 본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말보다도 더 선명한 말이다. 어찌된 일일까? 

자료에 의하면 4장의 문건은 2009년 2월 28일에 유장호와 함께 작성했고 3장의 편지글은 3월 1일 유장호가 장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장호가 지우라고 한 그 표현(“성폭행을 당했다”)이 다시 장자연의 손을 거쳐 똑 같은 의미의, 그러나 은어(隱語)화된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로 고쳐진 후 되돌아 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표현이 다르더라도 사실은 하나고 의미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윤지오의 증언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는 유장호의 증언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에 의해 확실하게 교차검증되는 증언이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심의발표는 “성폭행”과 관련된 증언들에 대해 어떻게 다루었는가? 먼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한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요약(이것이 정확한 요약인지 아닌지는 진상조사단의 보고서가 비공개라서 확인할 수 없다!)이다.

❍ 조사단의 조사과정에서 장자연이 일시, 장소를 알 수 없는 술접대 자리에서 누군가가 몰래 약을 탄 맥주를 반 컵가량 마신 후 마치 마약에 취하거나 술에 만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음 

– 장자연이 성폭행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 자료는, 

① 장자연이 술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가 된 것을 목격했다는 윤○○의 조사단 진술 

②‘장자연이 처음에 작성한 문서에 심한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을 적었는데 내가 지우라고 했다’는 유○○의 조사단 면담 전 진술. 그러나 유○○는 그 후 조사단과의 면담에서는 이러한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장자연이 하소연하듯이 처음에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기는 하였는데, 장자연에게 되묻지도 않았고, 장자연이‘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고 진술하였음 

③ 드라마 감독 정○○가 작성한 2011. 8. 1.자 사실확인서(김종승의 배우 이△△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김종승 측 증거로 제출된 것)에 배우 이△△이 전화로 “장자연이 쓴 A4 용지에 ‘술에 약을 탔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고 기재된 부분 및 이△△으로부터“물에 약을 탔다고 들었다”는 정○○의 조사단 진술이 있음 

우선 여기서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장자연 리스트에 기재되어 있다고 윤지오가 진술한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를 몰각하고 있으며 그것의 의미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윤지오가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했다가 없었다고 했다고 진술번복한 것으로 조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몰각과 몰이해는 과거사조사위원회만이 아니라 변호사 박훈을 비롯하여 윤지오를 사기 프레임 속에 몰아넣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들은 “장자연이 술자리에서 맥주 한 잔을 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가 된 것을 목격했다”는 윤지오의 조사단 진술이 과거 10년 전 진술과 무관한 어떤 새로운 장면을 기억에서 지어내고 있는 것처럼 오해했다. 그런데 윤지오는 이 진술을 통해 2009년 3월 12일 자신이 봉은사에서 본 리스트에 기재된 문구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 즉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의 맥락을, 당시에는 주목하지 못했던 기억의 상기를 통해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성폭행을 당하기 전에 몰래 마약을 주입당했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라고. (그러므로 뒤에서 보게될 심의결과에서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까지 윤지오의 추정으로 돌려 이중 추정 진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윤지오의 진술이 장자연 리스트에 기재된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를 “성폭행을 당했습니다”로 되살려 내고 있는 것임을 몰각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은폐하는 것이다.)

윤지오가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몇 가지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애기야, 너는 발톱의 때만큼도 몰라”라는 장자연 ‘언니’의 반복된 말이다. 또 하나는 김종승이 택시비를 쥐어주며 자신을 술자리에서 먼저 보냈던 기억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위에 서술된 것, 즉 “약에 취한 사람처럼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 대한 기억과 그에 대한 의문이다. ‘40여 차례 이상 술접대에 동행했으면서 내가 전혀 몰랐던 그것은 무엇일까? 왜 김종승은 다른 손님들이 있는 상태에서 장자연 언니만을 남겨두고 자기를 먼저 가라고 했을까? 왜 장자연 언니는 술을 반 컵 정도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인사불성의 상태에 빠졌던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들이 문건의 첫줄 “김종승 사장님은 저희 언니에게 문자로 니 동생이랑 그 약 같이 했다며 협박 문자를 보내고”에 객관적 문서 증거물로 나타난다. 또 캐나다에서 마약에 취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 인사불성의 상태가 재인(re-cognition)된다. 그리고 그것이 리스트에 씌어 있었던 문구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와 연결된다. 이렇게 다양한 기억들과 체험들이 증언이라는 행동의 필요 속에서 서로 연결됨으로써 윤지오의 위와 같은 진술로 엮여나왔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혼잣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드라마 감독 정00가 작성한 2011년 사실확인서 및 2019년 조사단 진술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장호의 조사단 면담 전 진술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유장호의 진술과 관련해 후에 유장호가 그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 언론의 주된 보도방식이었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진술번복의 뉘앙스를 담아 인용하고 있는 위의 구절을 놓고 보더라도 유장호가 자신의 진술을 번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우선 유장호가 면담조사에서도 ‘그 비슷한 말을 했다’고 내용상 이전의 진술(“성폭행을 당했다고 썼다”)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유장호가 장자연에게 되묻지 않았다 하더라도, 3월 1일 전달한 편지글에서 장자연은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로 바꿔 ‘성폭행을 당했음’을 기재했다. 그리고 “장자연이 ‘당했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에서 부정되는 것은 동사이지 명사 ‘성폭행’은 아니다. 그런데 성폭행을 목적어로 유지하면서 ‘당했다’ 말고 어떤 동사를 쓸 수 있는 것일까? “했다”일 수 없는 한에서 ’겪었다’ ‘경험했다’ 외의 동사가 있을 수 있을까? 이 중 어떤 동사를 사용했건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미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즉 유장호는 면담 전 진술에서나 면담조사에서나 윤지오의 진술과 거의 동일한 진술을 했다. 번복은 없었다.

그렇다면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어떤 방식으로 복수 증언들의 이 놀라운 일치를 외면해 버리는가?

 – 그러나 배우 이△△은 정○○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였고, 매니저 등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여부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하였으며, 유족은 문건에 성폭행 피해에 관하여 적힌 것이 없었다고 진술하였음 

❍ 유○○의 최초 진술 및 정○○, 윤○○의 진술을 종합하면, 장자연이 성폭행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 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객관적 혐의가 확인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음 

여기서 과거사조사위원회는 피해자의 입장과 가해자의 입장을 무질서하게 뒤섞은 후 결론적으로는 피해자의 입장을 버리고 가해자의 입장으로 갈아탄다.

이△△이 누구인가? 경찰과 검찰의 조사에서 장자연으로 하여금 문건을 쓰게 하고 그 문건을 장자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니 문건을 유통시키지 말고 돌려달라는 장지연의 간절한 요청을 뿌리치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의 소송에 이용하려고 했던 것이 드러났던 사람이다. 만약 경찰과 검찰이 피해자 입장에 충실했다면, 문건과 리스트를 장자연의 의사에 반해 유통시킨 2차 가해자로 기소했을 사람이다. 

그에 이어지는 “매니저 등은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여부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하였으며”는 무의미한 말이다. 누구의 매니저인지도 알 수 없으려니와 “매니저 등”이란 표현은 의미도 없는 복수의 사람들을 가져와 피해자 입장의 진술을 뭉개고 쓸어버리는 빗자루로 사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는 가해자 입장의 말이나 표현으로 피해자의 진술과 증거를 덮고 삭제하려 한다. 

물론 유족은 가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유족은 ‘문건에 성폭행 피해에 관하여 적힌 것이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가족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가해권력과 본의 아니게 공조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그런데 유족의 말은, 물질적으로는 사라지고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구절에 의해, 설령 그것을 제외한다하더라도 피해사실을 적은 4장의 문건에 물질적으로 아로새겨져 남아있는 장자연의 문구들에 의해 부정된다. 아래에 그 문구가 있다.

김종승 대표의 접대강요 및 반복되는 욕설과 또 구타를 견뎌야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언니까지 폭언과 욕설과 협박을 당했습니다.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2008년 9월 경 조선일보 B[1] 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B[2] 사장님이 잠자리를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 개월 후 B[2]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습니다…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13번째 증언>, 126쪽. 강조와 숫자는 인용자 삽입, B가 ‘방’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므로 원문 그대로 둔다.)

폭언, 욕설, 협박을 당하고 잠자리를 강요받은 것이 “성상납을 강요받았습니다”, “성폭행을 당했습니다”와 다른 의미일 가능성이 있을까? 게다가 장자연의 이 문구에는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없다고 말한) 2008년 9월경(범행일시), 룸싸롱(장소), 조선일보 B[1] 사장님과 B[2] 사장님의 아들(구체적 가해자), 방법(술접대 강요 및 잠자리 강요[성상납 강요]) 등이 모두 객관적으로 적시되어 있다. 그런데 검찰이 주축이 되었던 대한민국 법무부의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 명백한 증거를 외면하면서 “유○○의 최초 진술 및 정○○, 윤○○의 진술을 종합하면, 장자연이 성폭행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들의 진술만으로는 구체적인 가해자, 범행일시, 장소, 방법등을 알 수 없으므로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객관적 혐의가 확인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음”이라고 시치미를 뗀다.

과거사조사위원회 종료후 페미시국 집회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피켓이 “검찰이 공범이다”였음이 과연 우연일까? 검찰은 자신들이 가해자들의 공범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강조는 인용자) 

여기까지가 “조사결과”에 대한 분석이다. “장자연의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한 심의결과”부분은 한 술 더 떠 가해자들의 입장과 시선을 고 장자연 사건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눈으로 만든다. ‘조사결과’에는 검찰(2명)외에 교수(2명), 변호사(2명) 등이 포함되었던 진상조사단의 리얼리즘(realism)적 관점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다. 그런데 심의결과는 그렇지 않다. 리얼리즘의 흔적이 지워지고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려는 실리주의(utilitarianism)적 조급함이 엿보인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누구나 그 의도를 간취할 수 있을 만큼 노골적이므로 간단히만 논평하고자 한다. 

❍ 윤○○의 진술은 이중적인 추정에 근거한 진술(술에 약을 탔을 것이라는 1차 추정, 자신이 떠난 후 성폭행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2차 추정)이라는 점에서 성폭행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로 삼기 어려움. 또 배우 이△△과의 대화 내용에 관한 정○○ 감독의 진술은 원진술자인 이△△이 진술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술 또는 물에 약을 탔다는 내용만으로는 성폭행과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판단할 수 없음. 유○○가 조사단 면담 전에 한 진술이 성폭행 의혹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나 유○○는 정식 면담에서는 해당 진술을 번복하였음

앞에서 잠깐 말했듯 유장호는 면담조사에서 면담 전 조사에서의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관점에서는 진술번복 조작이다.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알리는 정○○ 감독의 진술을 부인하는 것은 2차 가해자 이△△의 진술이다. 여기서 검찰은 피해자주의가 아니라 가해자주의를 선택한다. “술 또는 물에 약을 탔다는 내용”은  “니 동생이랑 그 약 같이 했다며 협박문자를 보내고”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폭언과 욕설 협박을 당했습니다”, “잠자리를 강요 받아야 했습니다”, “잠자리를 요구하게 만들었습니다”라는 장자연의 피해사실 문건의 문구, 그리고 윤지오가 리스트에서 본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장자연의 편지글 문구와 결합되어 “저는 나약하고 힘 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에서 비극적으로 종합되면서  “성폭행과의 직접적 관련성”을 절규하듯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결과는 이것들 사이의 뚜렷한 상관성을 외면하면서 종합적 사건을 미시적 사실들로 분해해 형해화(形骸化)한다. 그리하여 결국 가해자에게 이익이 될 “판단할 수 없음”이라는 회피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과거사위원회의 사실조작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 구절을 살펴 보자.     

❍ 성폭행 의혹 부분은 장자연 사망 직후 이루어진 수사과정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았던 사항이고 성폭행이 사실인 경우 그 혐의가 매우 중대하나, 윤○○, 정○○ 등의 진술만으로는 성폭행이 실제 있었는지, 그 가해자, 범행 일시, 장소, 방법을 알 수 없음

과연 그런가? 2009년 3월 15일 윤지오는 피해사실 문건 외에 이름이 나열된 별도의 편지형식의 글이 있었고 거기에 ‘가족과 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있었다고 말했으며 2010년 6월 25일 그 별도의 편지형식의 글에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분명하게 진술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성상납을 강요 받았습니다”는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이외의 다른 것을 의미할 수가 없다. 유장호가 편지형식의 글에 ‘김종승을 만날 때 주의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한 것도 실제로는 이 내용을 에둘러 표현한 것임을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폭행 의혹 부분은 장자연 사망 직후 이루어진 수사과정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았던 사항이고”라는 구절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윤지오가 분명하게 “제기”했으나 경찰, 검찰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엉뚱한 질문들로 회피하고 덮어버림으로써 그 실체를 감춘 “사항”인 것이다.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또 이렇게 심의결과를 발표한다. 자신이 알아내야 할 내용을 더 알아내기는커녕 이미 알려져 있는 내용조차 감추는 구절이다. 

❍ 추가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가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단순 강간, 강제추행 혐의에 대하여는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므로 현시점에서 수사가 개시되기 위해서는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의 혐의가 인정되어야 하나,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하고 수사에 즉각 착수할 정도로 충분한 사실과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음

이 말이 과연 상황에 맞는 말인가? 문건에서 장자연은 구타가 반복되었다고 쓰면서 술집접대부 같은 일을 하고 잠자리를 강요당했다고 쓴다. 구타에 상해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 구타가 성폭행과 이어졌을 가능성은 김학의 사건의 A씨 경우를 보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접대 및 성상납 강요에는 장자연 문건만으로도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공모협동 관계가 의심된다(형법 297조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4조특수강간). 김종승과 B[1] 사장 혹은 B[2] 사장의 아들의 공모말이다.

김종승과 두 B사장의 관계는 윤중천과 김학의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공모의 의심조차 들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사조사위원회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넘어 세계시민들이 이미 읽어 알고 있는 이 장자연의 문건조차 읽지 않은 것인가? 또 마약의 경우 마약의 종류까지 밝혀져야 재수사에 대한 착수가 가능한 것인가? 차라리, 마약의 성분이라거나 제조처라거나 유통경로라거나 유효기간까지 확인되어야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에는 심의결과 발표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드러난 사실들을 분절시켜 ‘사실들의 가루’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종합적인 사건으로서의 성폭행을 시야에서 사라지도록 만들 용도로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래서 저 행간들 너머로 가해권력들의 흐뭇한 미소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 체셔 고양이(Cheshire cat)의 저 기이한 미소처럼 감돌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환각처럼 보게 된다. 

어쨌든 2019년 6월, 과거사조사위원회는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성폭행 피해 증거의 사후적 발견에 대비한 기록의 보존 권고

❍ 성폭행 피해 의혹에 관해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는 2인 이상이 공모, 합동하였는지, 어떤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장자연이 상해를 입었는지 등 특수강간 또는 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할만한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다만 조사단의 권한상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제기된 의혹상 범죄혐의가 중대하며, 공소시효 완성 전에 특수강간, 강간치상 범행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 등 증거가 확보될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대비하여 성폭행 의혹과 관련하여 최대한 상정 가능한 공소시효 완성일인 2024. 6. 29.까지 이 사건기록 및 조사단조사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보존사무관련법령에 따라 조치할 것을 권고함 (강조는 인용자)

아마도 이것이 과거사조사위원회의 마지막 남은 양심일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가해자의 입장을 옹호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조건에 대한 변명으로서 다음처럼 고쳐 읽고 싶다: “제기된 범죄혐의는 성폭행, 특수강간, 강간치상이므로 중대하다. 그런데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이미 드러나 있는 증거들을 있는 그대로 증거로서 직시하고 인정하기에는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 지금 드러난 증거들을 증거로서 직시할 수 있는 더 강력한 기관이 출현하거나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 공소시효 완성 전에 이 사건이 재수사될 수 있도록 사건기록 및 조사기록을 보존하는 것이 과거사조사위원회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렇게 해서 고 장자연 사회적 타살 사건의 진상규명 문제는 다시 다중과 국민의 수중으로 되돌아 왔다.(계속)

진실혐오 극장의 등장

윤지오가 ‘숨어 살기’를 거부하고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심한 진짜 이유_에필로그

검찰 과거사조사위원회 활동기간이 2주 남은 때인 3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의 여성단체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규명촉구’ 기자회견을 열었고 윤지오도 이 자리에 참석해 발언했다. 그런데 여기서 윤지오의 발언은 기존의 통념이나 보도기조와 사뭇 결이 다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 발언의 기조를 ‘진상규명 요구’라고 보도했지만 아래의 녹취록이 보여주는 것은 그 ‘진상규명 요구’가 직접 ‘가해자에 대한 처벌 요구’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명확하게 들리지 않아 추정으로 삽입한 부분, 보충이 필요한 부분, 발언실수로 보여 바로잡은 부분은 [ ]로 표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일한 목격자가 아닌 유일한 증언자 윤지오입니다.

제가 대중[앞에 보다] 더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무리해서까지 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을 전하고 싶고 여러분들도아셔야할권리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분명 가해자가 단 한 번이라도 보셨으면 했고, 꼭 보셔야 할 것이라고, 그 분들 보시라고 인터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게 해 드리[는] 인터뷰를 할 수 밖에 없어서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또 언론이 [다른 타겟을 덮는 현상은] 저와 같이 체감하셨으리라고 보고 여러분의노력으로 나약한 제가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렇게 멀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보고 수사가 들어간다면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닌 25년으로 변경되어 집니다.

공소시효란 어떤 범죄가 일어났을 때, 일정기간이 지나서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형벌권이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범죄종류에 따라 그 기간이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시점으로부터 10년에서 25년에 달하는데 정해진 공소시효 기간이  지나버리면 증거가 있다고 해도 벌을 줄 수 없습니다.

2007년 [12월 21일]에 살인죄를 범한 범인[에 대해] 공소시효를 15년에서 25년으로 10년 늘렸습니다.

그런데 2007년 [12월 20일]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의 공소시효가 그대로 15년입니다.

이슈가 이슈를 덮는 정황을 많은 분들이 실감했을 테고 [이제] 이러한 불상사가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거대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는 용기를주신국민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윤지오는 사건의 중요 쟁점과 관련해 자신이 유일한 목격자가 아니라는 것, 즉 목격자는 자신 이외에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 목격자들이 진상규명에서 증거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서 자신을 [현재로서는] ‘유일한 증언자’로 칭한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이 권력의 위협에, 그리고 증언자를 향한 2차, 3차 가해에 대상으로 노출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가해자들의 추가 가해의 방식은 일정하게 정형화되어 있지만 그것의 수준은 예측불허이다.

윤지오는 자신이 인터뷰를 하면서 두 가지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나는 국민들이다. 국민들이 사실을 알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국민들께 사실을 전한다는 것이다. 윤지오가 고려하고 있는 또 하나의 특이한 청중이 있는데 그것은 가해자들이다. 윤지오는 가해자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인터뷰를 보았으면 하는 희망만이 아니라 보아야 한다는 명령을 전달한다. 가책(苛責)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만약 이것이 가책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것이라면 윤지오가 처벌적 정의에 앞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를 추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가해자들이 가책을 받고 자책하여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공동체적 관계를 회복하는 방향의 정의에 기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대목은 윤지오의 태도가 그러한 회복적 정의의 추구와는 다르거나 최소한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3월 15일의 발언에서 윤지오는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그 어느 누구도 주장하지 않았던 것을 주장한다. 그것은 장자연 사건의 가능한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니라 25년일 수 있다는 주장이며 원점에서의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조희천 성추행 사건 외에는 공소시효가 다했기 때문에 장자연 사건은 과거사일 뿐 본질적으로 재수사할 사건이 아니라는 검찰 과거사조사위 측의 주된 기류에 반하는 주장이다. 윤지오는 범죄를 저질렀다면 처벌되어야 한다는 ‘처벌적 정의’의 관점에서 지금도 재수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공소시효 만료된 사건을 어떻게 재수사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사건을 단순 자살이 아니라고 보고 수사가 들어간다면” 가능하다는 것이 윤지오의 주장이다. 그렇게 되면 “공소시효가 10년이 아닌 25년으로 변경되어”지고 공소시효가 아직 15년이나 남게 되기 때문이다.(참고로, 2015년 7월 24일 대한민국에서도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폐지되었다.)

장자연의 죽음을 의문사로 바라보면서 수사기관에 재수사를 요청하는 윤지오의 문제제기는 몇 가지 근거들을 갖고 있다. 이 근거들에 대해서는 “살인 혐의 수사는 왜 고려조차 되지 않았는가?”(http://amelano.net/?p=673)에서 이미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나는 뒤로 돌아가지 않고 이 문제제기가 증언자 윤지오에게 미친 영향에 관심을 집중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윤지오가 3월 15일에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전 국민과 가해자들에게 호소하면서 국가를 향해서는 장자연의 죽음을 단순자살이 아닌 시각에서, 즉 살인의 시각에서 수사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 윤지오의 증언행보에 가져온 반발력에 주목하고자 한다.

윤지오의 요청은 장자연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굳어진 통념을 깨뜨리는 시각이었다. 이 무렵, 대한민국 국민들의 상당 부분(경찰과 검찰 등 수사자료에 접할 수 있었고 장자연이 남긴 문건이 유서가 아님을 알고 있었던, 하지만 그것이 유서로 인식되도록 조장하고 방치했던 수사기관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은 장자연이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을 믿고 있던 상황이었다. 

윤지오는 하루 전인 3월 14일 고발뉴스에서, 유서라고 알려진 그것이 실제로는 유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 한 바 있다. 이날 그는, 장자연이 유장호의 요구에 따라 권력자들의 성폭력 범죄를 고발하는 문건과 리스트를 작성한 후, 그 문건과 리스트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유통되는 당황스런 상황을 맞이 했을 뿐만 아니라, 며칠 후 유서조차 없는 채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그 주검은 부검도 없이 화장되었으며 유장호, 경찰들, 그리고 기자들이 누가봐도 유서가 아닌 그 문건과 리스트를 유서로 만들어 공표한 사실을 상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근거 위에서 3월 15일에 그는, 장자연의 죽음의 진상이 처음부터 조작된 것으로 보이므로 수사기관이 진상규명을 위해 단순자살이 아니라 살인의 관점에서 재수사해줄 것을 정식으로 요구하면서 아직 처벌가능한 시효 즉 공소시효가 남았음을 언급한 것이다. 

이 요구는, 한국 사회의 적어도 세 유형의 세력에게, 응답하지 않으면 안 될문제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세 가지 세력이 누구일까?

첫째는 혹시 이 의문의 죽음에 대한 재수사를 통해 그 범죄행위가 드러나게 될 지도 모를 어떤 살인 가해자이다. 실제로 그러한 살인 가해자가 숨어 있었고 윤지오의 발언을 들었다면 필사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직접적 가해권력’이라고 불러 보자.

둘째는 장자연의 죽음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 데 책임이 있는 경찰과 검찰, 즉 행정권력이다. 경찰은 초동 수사에서 장자연의 죽음을 단순자살로 처리했고, 검찰은 김종승과 유장호에게 경미한 형벌을 준 것 외에 장자연의 죽음과 관련하여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대부분의 인물들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기 때문이다. 이 주체들 역시 지난 10년의 행적이 직접적 가해권력을 비호한 것으로 의심되고 재수사의 칼날이 자신들에게 향함으로써 자신들이 실제로 문책 당할 수 있는 상황의 도래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셋째는 장자연 문건에 이름이 등장하며 장자연 사건을 한 연예인의 불행한 자살사건으로 보게 만드는 사회적 인지프레임의 형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주체, 즉 조선일보 같은 언론권력이다. 이미 수사과정에서 황제조사, 증거인멸, 위장증언, 수사혼선, 수사외압, 거짓보도 등을 행하면서 자신의 보존에 급급했던 이 언론권력이 살인 관점에서 재수사가 재개될 수 있는 상황을 방치할 리는 만무할 것이다.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검증의 목소리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이며 그 검증몰이는 ‘윤지오 사기꾼 만들기’로 발전했다. 이어 긴 시간에 걸쳐 증언자의 인성, 도덕성, 행실, 사생활 문제에 대한 아주 전형적인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장자연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처벌적 정의의 관념에 따라 윤지오가 행한 증언행동이 맞닥뜨린 철벽이 이것이다. 그런데 그 철벽은 가변적으로 움직이는 트랜스포머형 철벽이었다. 윤지오는 적어도 이때까지는 국민들로부터 용기를 얻고 국민과 함께 “멀리까지” 왔다. 하지만 단순자살이 아니라는 시각에서 재수사해 줄 것을 눈물로 호소한 다음부터, 윤지오와 국민을 이간시키는 전문가-기계, 언론-기계, 유튜브-기계 등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가동되었고 윤지오로부터 국민들을 하나하나 분리시켰다. 이것들은 가해자들을 시야 바깥 안전지대로 은폐하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여성 증언자의 사생활을 들춰내어 조롱하는 센세이셔널한 3류극장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그 무대에 올려진 윤지오는 천하에 둘도 없는 ‘사기꾼’의 형상으로 모질게 그려진다. 가부장제 성폭력 극장에서 성폭력의 피해자인 서지현과 김지은을 ‘꽃뱀’의 형상으로 그렸듯이 말이다. 이 극장은 가해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들을 처벌되어야 할 자로 그리는 책임전가의 극장이고 젊은 여성은 믿을 수 없고 오직 이용될 수 있을 뿐이라고 가르치는 성차별의 극장이며 더 이상 증언은 불가능하다고 명령하는 진실혐오진실종말의 극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