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개념의 가해자중심주의적 전도

2009년 대한민국 경찰은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았던 장자연 사건 가해권력의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를 ‘적색수배’하기는커녕 부실한 조사로 덮어 버렸다. 2018년부터 시작된 과거사 재조사조차도 용두사미로 끝나버렸다. 대통령의 엄정조사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심의결과가 보여주는 대한민국 수사기관(검경)의 적나라한 실태가 이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경찰은 과거사조사위원회 심의결과가 발표된 지 경우 반 년 만에, 마치 심기일전(心機一轉)이라도 한 듯이, 바로 그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에 대해 증언한 증언자를 도리어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의 혐의자로 적색수배 요청하고 ‘엄정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2차, 3차, n차 가해에 노출된다는 것을 이보다 여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도대체 증언자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들이 무엇인가? 경찰에 따르면 그것은 ‘사기와 명예훼손’이다.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 모두 인터폴 자체의 적색수배 요건인 2년 이상 징역에 포함되는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지오에게 씌워진 사기와 명예훼손 혐의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그 행동의 범죄화를 통해 사법권력이 사람들에게 던지고자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첫째 사기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당신은 증언하는 동안에 혹은 그 이후에 신변위협이 있었다고 말했고 당신의 지지자들로부터 경호비와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 후원금으로 1억 3천여 만 원의 돈을 모금했다.”가 그 혐의의 지시내용이다. 이것이 범죄혐의라는 주장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당신이 증언자라면, 기자가 당신의  소재지를 추적하며 가해자 입장에서의 질문을 퍼붓더라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더라도, 그런 것을 대중 앞에서 발설하면 안 된다. 국가가 당신을 증언자로 불렀더라도 증언자를 보호해 달라고 국가에 요구해서도 안 된다. 증언자에게 닥쳐오는 신변위협과 고통을 달게 받아 들여라.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증언을 지지하고 격려하며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경호비를 보내겠다고 아우성을 치더라도 결코 계좌번호를 알려주어서는 안 된다. 계좌번호를 공개해서 그곳으로 후원금이 입금되면 후원자를 기망하여 재물을 편취한 죄, 즉 사기죄로 단죄될 수 있다. 혹시 그렇게 당신에 대한 연대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어서 증언을 위한 경호비로 사용하여 신변안전을 도모하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의 말을 의심하라. 당신을 지지한다,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믿지 마라. 증언에 대한 지지자가 당신의 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당신에게 경호비를 후원한 사람이 후원금반환소송을 제기하여 당신의 사기혐의를 뒷받침할 증인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들은 원금 외에 고리대를 요구하는 사채업자처럼 돌변할 수 있도 있다. 후원회비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증언자를 보호하려는 노력 같은 것은 하지 말라. 증언자 피해자 목격자가 겪는 고통에 무관심하라. 그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라. 당신이 그들을 돕겠다고 나서면서 후원회비를 모집하게 되면 언제든지 그것이 기부금품법 위반의 대상으로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무엇보다도 권력자들에 대한 증언을 하겠다고 나서지 말라. 그들이 성추행을 하건 성폭행을 하건 오직 방관하라. 그것에 대한 증언은 언제든지 ‘사회적 중요범죄’로 지목될 수 있다. 권력자들 앞에서 침묵하라. 그들에게 굴종하라. 그것이 신변위협을 받지 않고 당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며 적색수배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둘째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당신은 김수민 작가를 ‘이수역 사건 2차 가해자’라고 말하여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대한민국에서는 인물을 특정하여 제3자가 들을 수 있는 공연성의 환경에서 그를 비난하면 명예훼손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에 너무나 흔한 사건으로서 ‘사회적 중요범죄’로 보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정치인’을 장자연 리스트에서 보았다고 말한 것이다. 당신이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증언한 후 홍준표 의원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검사로부터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으니 조사를 받으러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즉각 당신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홍준표 의원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이고 그가 당신을 범죄 혐의로 고발했다는 것은 당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 혐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이 설령 장자연 리스트에서 ‘홍준표’라는 이름을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말해서는 안 되었다. 그 이름을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시민단체에서 말해서는 안 되었다. 권력자들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며 사법적 보복을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도 범죄가 될 수 있다. 권력자들의 탈법이나 부패에 대한 증언은 언제든지 명예훼손이나 무고로 단죄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침묵하라, 침묵하라, 침묵하라! 

이렇게 ‘사회적 중요범죄’로 규정된 두 가지 혐의는 가해권력자들의 불의에 대해 증언을 하지 않도록, 침묵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 온다. 가해권력자들에 대한 증언이 명예훼손죄로 제소될 수 있으며 후원금 모금을 통해 가해권력자들의 보복으로부터 증언자의 신체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은 사기죄로 제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정의 실현의 노력이 사법에 의해 부정의로, 범죄로 정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기자, 작가와 같은 전문가들, 신문사, 방송사, 통신사 같은 언론사들, SNS 계정주 같은 시민사회 행위자들만이 아니라 경찰, 검찰, 법원, 정당, 그리고 국회의원 같은 국가권력의 기구들이 가해권력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 즉 ‘증언자의 범죄화’를 위한 총력전을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맥락에서 보면 “경찰청 자체 기준에 비춰 봐도 윤씨 사건이 사회적 파장이 크고, 수사 요구가 높은 사안인 만큼 중요사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경찰관계자의 설명은 증언자의 고립과 범죄화를 위해 가해권력이 주도하는 이러한 전 사회적 총력전의 하나의 전술단위처럼 들린다. 왜 이렇게 들리는 것일까? 

촛불시민들은 윤지오가 증언한 권력형 성폭력 범죄 혐의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으로 보고 그것에 대한 수사와 재수사 요구를 높이 제기했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 10년간 이 요구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행동했다. 그 결과가 2009년 KBS의 장자연 문건 보도 이후의 수사에서 성범죄를 비롯한 다양한 범죄 혐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가해권력자들이 무혐의 처분된 것이고 2018년에 재개된 과거사 재조사가 혐의자들에 대한 재수사로 연결되지 않게 된 것이다. 촛불시민의 요구와 정반대되는 방향에서 가해권력자들은 윤지오가 행한 증언 자체와 그에 따른 부대 행위들(후원금, 숙소제공 등)을 ‘사회적 파장이 큰’ 범죄 혐의로 정죄하면서 지난 수 개월간 그에 대한 수사 요구를 ‘높이’ 제기해 왔다. 그 결과가 윤지오에게 열 가지 이상의 고소고발장이 날아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언급한 경찰관계자는 정확히 가해권력자들과 동일한 입장과 방향에서 윤지오의 증언행위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범죄화하라는 가해권력자들의 시각과 요구를 고스란히 ‘경찰청 자체’의 시각과 요구로 대변하고 있다. 요컨대 경찰 관계자가 말하는 범죄 혐의의 ‘사회적 중요성’ 평가가 촛불시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가해권력자들의 입장에서 내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것이 실패한 후 나타난 가해권력의 시도: 리스트의 문구나 이름을 없애기(3)

홍준표라는 이름이 공개된 경위

윤지오는 어떤 언론에서도 홍준표라는 이름을 실명 전체로 거명하지 않았다. 4월 말경 윤지오의 변호조력을 제공하고 있는 정의연대와의 대화에서 이름의 그 특이함을 조금 더 구체화해서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특이하게도 이름이 같아서” 그 이름을 기억한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역시 실명은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증언한다’는 원칙에 따라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진술에 기초하여 정의연대가 4월 23일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정치인이라면 ‘홍준표’일 것이라는 데 착오가 없을 것으로 보아 홍준표 국회의원을 경찰청에 수사의뢰함으로써 홍준표가 장자연 리스트에 있는 정치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윤지오는 장자연 리스트에 “홍준표”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그때까지 말한 적이 없으며 지금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이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한 것은 홍준표 자신이다. 홍준표가 윤지오를 비난하는 유튜브 영상(‘윤지오의 거.짓.말’, 2019. 6. 26)에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장자연 리스트에 홍대표님 이름이 있으니까 잠시 나와 줄 수 없느냐”는 동부지검의 전화를 받았다, “본 정신이 아닌 여자가 한 마디 하는 것 가지고 그걸 나를 나오라 마라 하느냐” 그 검사에게 야단을 쳤다, “그 뒤에 보니까 또 어느 이상한 단체하고 합작해서 그 리스트에 홍준표 이름이 있었다. 말하자면 뭐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이 있었는데 그게 홍준표였다, 그 여자가 그 말을 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윤지오는 ‘홍준표’라는 이름을 조사기관 외에서는 말한 적이 없다. 그것이 오랜 숙고 끝에 ‘영리하게’ 증언하기 위해 고안한 그 나름의 방법이고 기술이기 때문이다. 조사기관에서의 실명 언급은  ‘공연성’ 요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형법상 명예훼손에 저촉되지 않는다. 그런데 언론에서의 실명 언급은 ‘공연성’ 요건을 충족시켜 형법상 명예훼손에 저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여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고 그 영상에 “윤지오의 거.짓.말”이라는 이름을 붙여 “윤지오가 리스트에 홍준표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자백하듯 공표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홍준표 자신이다. 윤지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피하면서 “영리하게” 진술한 것과는 대조되는 태도이다. 홍준표는 오히려 법을 위반하면서 ‘윤지오가 홍준표라는 이름이 리스트에 있었다고 말했다’고 있지도 않은 사실, 즉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윤지오의 명예를 훼손하고 나아가 “본 정신이 아닌 여자” 식으로 인터넷에서 그 인격을 모욕하고 있기 때문이다(공연성이 충족되는 형법상 모욕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식으로 홍준표는 자유한국당 강연재 변호사를 대리로 정의연대만이 아니라 윤지오까지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했다(2019년 4월 29일). 고발 이유는 윤지오가 홍준표 대표의 실명을 거론했다는 것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윤지오는 홍준표의 실명을 거론한 적이 조사기관 외에서는 없다. 만약 고발자가 조사기관에서의 실명 언급을 명예훼손의 내용으로 삼는 것이라면 그 고발자가 국가기관의 공익적 조사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법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홍준표라는 이름이 지워지는 경위

이런 경위를 통해 ‘장자연 리스트에 홍준표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이미지는 굳어졌다. 그런데 2019년 5월 20일 전북대 조기영 교수는 이동형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문제에 관한 윤지오의 진술신빙성은 인정하면서도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과 관련해서는 윤지오가 착오를 일으켰고 본인도 그 진술 착오를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에 그 인터뷰의 해당 구절이 있다.

이동형> 그렇군요. 배우 윤지오 씨 증언과 관련해서는 신빙성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윤지오 씨의 증언은 대부분이 탄핵된 겁니까? 아니면 받아들여진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습니까?

◆ 조기영> 윤지오 씨 진술 신빙성이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최근 진술한 내용이 일부 번복되었다는 건데, 전반적으로 수사 당시에 윤지오 씨가 열세 번 증언을 했는데요. 거기에 나와 있는 수사기록들을 보면, 신빙성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다만, 최근 진술 번복, 장자연 리스트나 성폭행 사건 관련해서 신빙성 의심이 되고 있는데, 성폭행 의혹은 윤지오 씨만 제기한 게 아니라 실제 중요 참고인도 처음에는 문건에 심각한 성폭행 부분이 기재가 되어 있었다고 진술을 하기도 했습니다.

◇ 이동형> 윤지오 씨가 방송에서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이 장자연 리스트에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진상조사단에 조사받을 때 이야기를 했다고 이야기했거든요?

◆ 조기영> 네.

◇ 이동형> 이것은 크로스체크가 됐습니까?

◆ 조기영> 윤지오 씨가 특이한 이름이라고 한 분이 맞는지 조사를 해봤는데요. 그것은 윤지오 씨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 이동형> 본인도 인정했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 조기영> 네,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대화 기사는 아마도  맨 앞에 언급한 네티즌의 기억 속에 “누나가 홍의원은 잘못 지목한거 맞다고 하지 않았어요?”로 남아 있는 그 내용일 것이다. 조사위원 조기영은 “윤지오 씨가 특이한 이름이라고 한 분이 맞는지 조사를 해봤는데요. 그것은 윤지오 씨가 착오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됐습니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뇌리에서 6월 26일 홍준표가 자신이라고 밝힌 그 ‘특이한’ 이름을 장자연 리스트에서 지우는 역할을 떠맡는다. 이것이 본의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알 수 없고 또 그다지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이 인터뷰 대화는 그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 이름이 장자연 리스트에 없었다는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윤지오의 주장과 진술은 조기영의 생각과는 다르며 착오하고 있는 것은 윤지오가 아니라 조기영임을 보여준다. 애초에 윤지오는 장자연 리스트에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그 정치인의 이름이 있었고, 그 외에 장자연과 함께 술자리에서 한 사람의 국회의원을 만났는데 그 두 사람이 동일인일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과거사진상조사단 재조사 진술을 시작했다. 그런데 재조사 과정에서 당시 국회의원 사진들과 자신의 기억을 대조해 본 결과 이 두 인물이 동일인이 아닐 수 있다는 정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이 술자리에서 본 국회의원의 인상착의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그 국회의원의 2009년 당시 사진의 이미지의 인상착의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사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는 장자연 리스트에서 본 이름의 국회의원과 술자리에서 본  국회의원이 일치하는가 않는가이지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이 특이한’ 그 국회의원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아니다. 다시 말해 (1)자신이 리스트에서 본 이름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이름이 같은’ 그 정치인이라는 것이 맞고, (2)술자리에서 만났던 국회의원과 ‘리스트에 이름이 있었고 구준표와 이름이 같았던’ 그 정치인이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만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조기영 조사위원이 오히려 착오하여 (2)에서의 불확실을 (1)의 부정으로까지 연장하여 윤지오가 (1)까지 부인한 것처럼 잘못 독해하고 또 그대로 발언한 것이다. 이것 역시 앞서 말한 이미지독해가 가져오는 폐해이다. 그런데 이 잘못된 독해와 발언에 따르게 되면 장자연 사건과 관련된 국회의원은 모두 사라져 0명으로 된다. 하지만 윤지오의 실제 증언에 따르게 되면 장자연 사건과 관련되었을 국회의원은 ‘이름이 특이한’ 사람 한 사람 외에 리스트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 기억에 없지만 술자리에서 만났던 다른 국회의원, 합하여 2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계속)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것이 실패한 후 나타난 가해권력의 새로운 시도: 리스트의 문구나 이름을 없애기(1)

요점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려는 시도가 김수민, 김대오, 박훈 등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시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논의했다. 장자연 리스트를 없애는 것은 10년 전 진술증거들의 명확한 실재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과거사진상조사단이 그것의 실재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스트의 실재를 부정하기 어렵게 되자 그 속의 핵심 문구나 이름을 지우려는 시도들이 나타났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와 특이하게 이름이 같은 정치인”의 이름을 지우려는 시도이고 또 하나는 “성상납 강요를 받았습니다”라는 문구를 지우려는 시도이다.

홍준표라는 이름

정의연대 김상민 사무총장이 박훈 변호사를 무고죄로 고발하는 자리에서 국회의원 홍준표를 민형사소송할 것이라고 말한 기자회견을 인용한 윤지오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한 네티즌이 “누나 홍준표 의원은 왜요? 누나가 홍의원은 잘못 지목한거 맞다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누나 기사들은 거의 다 읽어서 어렴풋이 그런 내용 본 것도 같은데.. 제가 잘못 본 걸수도 있으니까 누나가 설명 해줬으면 좋겠어요.”(hwook91)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 댓글에 내 생각을 밝히고 싶었으나 나는 지난 4개월간 어떤 인스타그램에도 댓글을 달아본 적이 없고 불가피한 필요가 생기기 전에는 이 원칙을 지켜나갈 생각이기 때문에 이 블로그에 그 물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정독해와 이미지독해

어떤 말이나 글을 듣고 읽을 때 여러가지 독해 방식이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다루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독해와 이미지독해가 구분될 필요가 있다. 정독해가 문장/말의 전후맥락, 지시관계, 의미연관 등을 정밀하게 따져 읽는 것이라면 이미지독해는 문장/말이 연상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다. 전자는 능동적 독해력을 요구함에 반해 후자는 수동적 독해력을 더 많이 요구한다. 전자는 이성적 능력을 요구함에 반해 후자는 상상적 능력을 요구한다. 영상문화가 지배적으로 되면서 사람들은 이미지독해의 능력을 얻는 대신 정독해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윤지오의 증언에 대해서도 정독해보다는 이미지독해가 널리 유행하면서 오해/상상에 또 다른 오해/상상이 누적되어 진실이 가려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해권력이 바라마지 않는 것이고 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그 부풀려진 상상, 환영체계 뒤로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라는 이름의 문제는 그 중 하나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오해된 말 :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홍준표 문제를 다루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크게 오해된 말이라고 해야 할 “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라는 윤지오의 한 마디로 돌아가야 한다. 김수민이 이 구절을 ‘사기 프레임’ 속에 집어 넣어 이미지독해한 이후로 변호사, 기자, 그리고 군중의 두뇌 속에 확고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말이 이것이다. 영리함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어 ‘영리한 사기’로 해석되었다. 그리고 이 말이 ‘사기 프레임’ 속에서 기능하기 위해서 김수민은 앞뒤 맥락을 모두 절단했다. 책의 출판과 관련하여 계약금, 인세, 홍보비용, 매대노출, 미디어노출, 매체인터뷰, 유튜브 강연 공연 방송출연 등 <13번째 증언> 출판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관해 대화하던 중인 2018년 12월 7일에 윤지오는 이렇게 말한다.

“난 책도 책이지만/ 그후 내 행보가 더 중요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판단되서/ 지금 만나고다니는 다른사람들도 그렇고/책은 그냥 출판자체에 의미를 두는거라/많이 안팔려도 나는 별로 감흥이 없을거같아/많이팔려도 그렇고/하지만 분명한건 이슈는되니까/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그래서 출판하는거고”

나는 이 인용에서 윤지오의 말 전체를 통일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중간에 끼어들어 윤지오의 말을 분절시키는 김수민의 세 마디 “응/응/응 책 판매가 그렇게중요한게아니라면 큰 신경안써도될거야”는 뺐다. 화제는 책인데 위의 인용은 책을 출판하는 것의 위치에 대한 윤지오의 인식을 명확하게 밝힌다. 책에 대해서 윤지오는 1)책이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책도 책이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책은 그냥 출판자체에 의미를 두는거라/많이 안팔려도 나는 별로 감흥이 없을거같아/많이팔려도 그렇고”). 2)그런데 책의 출판이 [고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분명한건 이슈는되니까”) 3)출판을 매개로 한 이 이슈화를 이용해서 영리하게 그 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그 이슈를 이용해서 영리하게/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보려고/그래서 출판하는거고”) 4)그것은나의 이후의 행보에 관한 것인데 지금 만나고 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나의 이후의 행보를 규정하는 일부다. 

“영리하게”의 목적: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 후 내 행보”와 “지금 만나고다니는 다른사람들”이다. 윤지오가 영리하게 사기를 치고자 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이미지독해법(이것은 변호사 박훈의 동일한 이미지독해법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상승작용한다)에 따르면 이것은 사기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2018년 12월 초 당시 윤지오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던가? 그리고 “그 후 내 행보”의 윤곽이 무엇이었던가? 위의 말을 듣고 김수민이 “그래 너가 알아서잘할거라믿어”라고 말하자 윤지오는 이렇게 덧붙인다.

“아녀 ᅮ/ 그냥 하는거지 뭐/어차피 인생이 계획한바대로 되는것도아니고/뭐든다해봐야지/ᄏᄏᄏ기대치가 애초에없엉”

“그 동안 못했던 것을 해보려고”, “계획한바”, “뭐든다해봐야지”, “기대치”는 모두 행보와 연관된 말, 즉 미래의 행동과 관련된 말들이다. 윤지오는 김수민에게 책출판과 관련해서는 꼼꼼하게 물어보고 또 자신의 생각과 계획도 밝히지만 미래 행보와 연관해서는 말을 아끼고 구체적인 것을 밝히지 않으며 묻지도 않는다. 즉 김수민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만약 상의할 대상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런 계획, 이런 행동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 물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윤지오의 “영리하게”가 표현되는 한 양상이다. 

그렇다면 그 행보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추론할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힌 말인 “지금 만나고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그 미래행보의 단서,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대문이다. 이 실마리를 더듬어 나가기 위해 2018년 12월 7일 전후 윤지오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살펴보자. 

 12월 7일은 윤지오가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방문해서 체류하고 있던 시점이다. 그는 두 가지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첫째는 장자연에 대한 조희천의 강제추행 사건의 법정 증인신문을 위해서였다. 또 하나는 과거사조사위원회에서 진행하는 고 장자연 사건 재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 위해서다. 이 두 가지 목적은 모두 모두 증언과 관련된다. 그러면 12월 14일 태국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만나거나 소통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11월 28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숙소로 이동할 시의 신변보호를 해준 수사관 3명, 11월 29일 검찰과거사조사단의 김00변호사와 손00 검사, 조희천 강제추행 사건 증인신문조사를 도와줄 민변 변호사들, 법정출석 시 자신을 보호해줄 보호자 2명, <13번째 증언> 출판을 맡은 가연출판사의 대표와 측근들 및 출판조언을 해준 김수민(12월 10일) 그리고 12월 12일 JTBC 뉴스룸 전화인터뷰를 담당한 기자와 앵커 등이다.

여기에 증언과 관련되지 않은 어떤 사람도 없다. 윤지오는 지난 9년간의 증언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김종승 유장호 외의 모든 가해권력자들이 무혐의 처분된 과정을 숙고하면서 어떻게 증언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한다. JTBC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9년 전에 수사에서도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셨을 텐데 지난번에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듯이 그 당시 검찰은 그 진술을 믿을 수없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까?”라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는, 

“9년 전 검사들은 이 사건을 그저 연예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접대 사건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도 성상납을 해 놓고 왜 숨기냐라며 성상납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저까지 몰아붙이는 질문들이 너무나 화가 났고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남자들 모두가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입을 맞춰서 두려웠지만 이게 제 일이었다면 자연 언니도 똑같이 증언을 해주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저도 진실을 말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윤지오는 남자들이 “입을 맞춰” 자신의 말을 거짓말로 몰아붙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다. 이 두려움은 지금의 상황에서 권력자들, 언론들, 변호사들, 기자들, 작가들이 입을 맞춰 자신을 사기꾼으로 몰아붙이는 식으로 과거와 유사한 방식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윤지오는 “자연 언니”와 자신이 입장이 바뀌었다면 “자연 언니”도 자신을 위해 진실을 증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진실을 말했다고 말한다. 

다른 요인도 있다. 그것은 이명박 정부하의 검찰과 문재인 신정부 하의 검찰이 보여주는 차이이다.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신 것 외에도 검찰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라는 앵커의 질문에 윤지오는 “이 사건을 재수사하는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검사님들을 지난 8개월 동안 접해왔습니다. 9년 전과 달리 검사님들께서 편견 없이 그리고 열성적으로 수사한다는 인상을 받아서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고요. 무엇보다 이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 인정하고 바라본다는 점에서 달랐던 것 같습니다.”라고 동문서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동문서답”이 아니라 “영리하게”의 일부이다. 진상조사단에서의 조사내용은 “진상조사단에서 이렇게 진술했다”는 형식으로는 외부에 말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질문에 충실한 형태로는 답할 수 없는 이 간극을 윤지오는, 9년전 검찰과 현재 검찰 사이에서 본인이 느끼는 정동적 차이를 설명하고 이 사건을 검찰이 연예계 관행이 아니라 성폭력 사건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이런 것들이 자신으로 하여금 증언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조건이었음을 설명하는 것으로 채운다.

가해권력자들의 입 TV조선이 ‘탐사보도 세븐’에서 증언자 윤지오를 음해하는 정치적 이유

요점: 1. 윤지오는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문건임을 밝혔다. 2.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고 문건이라면 장자연의 죽음은 원점에서 재수사되어야 한다. 3. 장자연의 글을 유서라고 보게 만들어 국민을 속이고 이로부터 이익을 편취해온 가해권력자들이 증언자 윤지오에 대한 음해공작을 시작했다. 4.그럼에도 윤지오는 장자연 죽음의 진실을 직접 국민들께 알리기 위해 책으로, 인터뷰로 증언을 이어갔다. 5. 윤지오를 사기꾼으로 만들기 위한 음해공작이 시작된 후 정치권은 윤지오를 음해하는 세력과 그 음해를 방조하는 세력으로 구분될 뿐이다. 6. 이 음해공작을 깨뜨릴 조직된 저항세력이 없는 한 가해권력자들은 윤지오 음해를 향후 총선과 대선의 주요 이슈로 밀고 나갈 것이다. 7. 윤지오의 증언을 지켜서 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시민들의 아래로부터의 직접행동이 절실한 시간이다. 8. 미투시민행동의 페미시국광장은 그 첫걸음일 수 있다.  

  • 2009년 3월 7일 직후의 첫 언론보도(사실은, 조작)로 인해 국민 대다수는 지난 10년간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것으로 오인하게 되었다. 2009년 3월 10일, 노컷 뉴스의 기자 김대오 기자, 조선일보의 기자 박은주가 호야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유장호와 합작하여 만들어낸 이미지가 장자연이 유서를 남겼다는 가짜-이미지다. 김대오는 장자연 문건을 “유서성격의 심경고백글”이라고 보도했고 박은주는 사망하기 직전 남긴 “장문의 글”(“유서’의 사전적 의미가 바로 죽기 전에 남긴 글이다)이라고 보도했다. 김대오는 제2보에서 그 글이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가지고 있어달라”고 장자연이 부탁해서 보관하고 있었던 글이라는 유장호(‘장자연의 한 측근’)의 말을 아무런 검증 없이 그대로 인용보도함으로써 그 글이 유서임을 의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 하지만 장자연의 문건을 실제로 본 경찰, 검찰, 법관은 그것이 유서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언론이 대중을 대상으로 꾸며낸 이 가짜 이미지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국민으로 하여금 유서라고 오인하게 하는 것이, 또 그 오인을 방치하는 것이 가해권력을 무혐의로 만드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자연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가능성은 배제되는 것이며 이렇게 됨으로써 그 죽음에 연루되었을 수 있는 다층다양한 가해권력들이 샅샅이 노출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것은 언론권력, 경찰권력, 검찰권력, 사법권력이 계약직 연예노동자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국민을 기망하는 연합된 사기권력으로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알고 있으면서” 국민을 속이는 고의적인 국민 기망의 권력이었다. 이 권력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고 통제되지도 않는 권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국민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감시해야 할 것은 이들 권력들이 국민들을 속일 위험이라는 문제이며 국민의 안전이라는 시각에서 그 위험을 통제할 장치를 실제적으로 고안하는 문제다.
  • 윤지오는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문건임을 증언한 유일한 증언자이고 그 문건에 ‘명단’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일관되게 증언해온 유일한 증언자이다. 시민사회는 몰랐지만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증언조서(문건)라는 것은 법정에서는 공인된 사실이었으며 이상호가 재판과정에 대한 취재를 통해 대중 앞에 드러낸 사실이고, 심지어 장자연이 남긴 글을 ‘유서성격의 심경고백’이라고 보도했던 김대오도 [아무런 이유설명도 사과도 없이 말을 바꿔] 인정한 사실이다. 
  • 윤지오의 <13번째 증언>과 언론 인터뷰 이후 한국 국민들 중에 장자연의 글이 문건이 아니라 유서라고 우기는 사람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장자연이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는 것, 즉 장자연의 글이 유서가 아니라는 것은 장자연의 죽음을 자살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 그 글이 유서가 아니라 문건이라면 장자연이 그 문건을 왜, 어떤 정황 속에서 작성하게 되었는지 명백한 조사가 필요하며 국민들에게 그것들이 설명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토록 오랫동안 왜 국민들이 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라고 잘못 알게 되었는지, 왜 국민들이 그토록 장기적인 오해무지 속에 방치되어 왔는지 조사되고 규명되어야 하며 진실을 은폐한 책임자를 찾아내 문책해야 함을 의미한다. 
  • 윤지오의 증언으로 인해 분명해진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지난 10년여 동안 가해권력자들을 무혐의로 풀어주는 데에 봉사해온 언론, 경찰, 검찰에 의해 기망(欺罔) 당했으며 그 이득을 편취(騙取)한 것은 가해권력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국민을 대신해서 수사를 맡아온 사람들과 기관들은 장자연의 글이 유서가 아니라 문건이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에게 장자연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을 해내야 하며 그 관점에서 범죄행위자를 다시 조사해서 처벌을 해야 한다. 이것이 2019년 3월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장자연, 김학의 버닝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 및 엄정한 처리를 지시하게 된 조건이다.
  • 윤지오의 증언은 바로 이런 맥락 속에 놓여 있다. 그는 증언을 통해 대한민국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 진실을 알리고 처벌을 촉구했다. 그는 2018년 말 조희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증언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증언들에 힘을 실어 실제적 처벌로 이어지도록 만들기 위해 2019년 3월에는 다칠 위험을 무릅쓰고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 그가 공개적으로 책을 내고 방송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진실을 증언해도 진실이 국민들께 전달되지 않는 것을 10년 내내 경험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가해자를 비호하는 권력기관들에 의해 철저히 기망 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언론, 경찰, 검찰 당당자들이 사실을(장자연이 남긴 글이 유서가 아니라 법정투쟁용 문건, 즉 증언조서임을) 알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는 그것을 숨기고 수사를 부실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해권력자들을 무혐의 처분하는 것을 보고 겪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취급하는 조사/수사기관과 국민 사이의 이 간극 속에서 국민들이 조작된 무지 상태에 방치되고 허구가 진실을 대체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의 힘으로 장자연 사건이 재조사 대상으로 오른 것(“이슈화”)을 이용하여 허구가 가려버린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 그는 이를 위해 2018~9년에는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이와 별도로 조사나 수사기관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국민들께 직접 사실을 널리 알려서 국민으로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랐다. 이것이 지난 10년간 계속된 그의 증언경험을 토대로, 국민의 힘으로 부패한 권력을 탄핵-파면하고 이어 권력형 성범죄자들을 단죄해온 촛불과 미투의 경험을 자기성찰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그는 이것을 “이슈를 이용하여” “지금까지 해 보지 못했던 것을 영리하게 해 보려한다”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 ‘영리한 행동’이라는 계획은 내가 <절대민주주의>(2017)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다중의 절대민주주의적 섭정(攝政)’이라고 불러온 것, 즉 아래로부터 민주주의를 절대화하는 삶정치적 운동과 상통하는 구상이다.
  • 일정기간 동안 이 영리한 섭정의 행동은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성공적으로 전개되었다. 하지만 청원행동에 나선 국민들은 아직 스스로를 수평적으로 조직화한 연합세력이 아니었고 흩어져 있으면서 그때그때의 상황과 역관계에 반응하는 흩어진 개인들이고 언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여론적 존재였다. 일부 여성단체들과의 협력이 있었지만 일시적 협력이었고 윤지오는 개인인 증언자로서 움직였다. 
  • 아래로부터의 섭정력이 충분히 자기조직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윤지오의 증언행동과 그에 대한 시민연합은 SNS, 유튜브와 같은 기업적 소셜네트워크에 의지하고 있었다. 녹색당과 같은 원외정당, 정의연대와 같은 일부의 시민단체를 제외하면 증언을 통해 제기되는 이슈를 사회적 의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했다. 윤지오의 증언이 첨예한 것에 비해 그것을 뒷받침하고 사회이슈로 전환시킬 수 있는 조직화 역량이 미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시민들은 개인으로서 국민청원을 통해 과거사위원회 조사기간 연장을 청원하거나 윤지오 증언자에 대한 신변보호를 요청하거나 경호를 위한 후원금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행동적 연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 이런 상황에서 윤지오에 대한 보호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안민석을 비롯한 몇몇 국회의원들(이른바 ‘동행모임’)이었다. 지금 수개월에 걸쳐 점점 규모를 키워가며 지속되고 있는 ‘사기꾼 만들기’ 집단음해공작의 강도에서 반증되다시피, 윤지오의 증언행동은 상당한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보호가 필요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지만 이 국회의원들이 윤지오에 대한 실질적 보호조치를 했는지, 그 보호조치가 아래로부터 시민사회의 연대력의 취약성을 보완하는 힘을 발휘했는지는 의문이다. 
  • 안민석이 페이스북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4월 8일 윤지오 국회초청간담회를 가진 이후 이들은 윤지오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실질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동행모임’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서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국회의원으로서 플러스가 될 수 있는 ‘공익제보자를 돕는다’는 이미지를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4월 중순 이후 윤지오에게 실질적인 음해시도가 시작되고 위험이 분명해졌을 때에는 사실상 어떤 보호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은 수수방관했으며 자신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계산하고 자신들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거의 동시에, 윤지오에게 우호적이었고 또 윤지오를 통해 구독자를 늘렸던 고발뉴스, 뉴스공장 등의 유튜브들도 윤지오에 대한 가해권력측의 공세가 뚜렷해진 4월 말 이후로는 윤지오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 윤지오가 국민의 부름을 받아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증언을 하고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세종문화회관에서 발언을 했을 때 그는 비록 단단하게 자기조직화된 시민들의 지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전국민적 여론의 보호를 받았다. 하지만 윤지오가 보호자를 자처한 동행자 국회의원들과 연결되자마자 윤지오는 정파투쟁과 정권투쟁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보수 정파와 보수 언론이 빠르게 결집하여 증언자 윤지오를 반(反)정권투쟁의 초점으로 삼기 시작했을 때 동행자를 자처한 세력들은 신속하게 증언자 윤지오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 그것이 혹자가 조롱조로 말하듯이 윤지오가, 현 집권세력에게 기대하는 바의 큰 정치이슈를 갖다 주지 못한 탓일까? 내가 보기에 그 이유는 윤지오가 제기하는 문제들(조선일보 방씨 일가, 의문사와 타살 가능성, 국정원의 개입, 홍준표, 마약주입과 성폭행 의혹 등)이 현 집권세력으로서는 다루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원칙적으로 다루어 나간다면 현 집권세력 자신도 그 일부로 속해 있는 가부장제 성폭력 질서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무렵 여성주의 이슈가 문재인 정권에 대한 남성 20대의 지지율을 떨어뜨린다는 보고서까지 제출되면서 이것이, 장자연-윤지오를 둘러싼 쟁점에서, 집권세력이 남성 20대 지지율을 높이고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물러나는 쪽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쟁점은 본질적으로 가부장제 성권력 체제와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미디어스>의 전혁수 기자가 잘 정리한 것처럼, 지금까지 장자연 사건에 대한 가해자로 지목되어 지탄 받아온 조선일보는, 윤지오에 대한 성폭력적이고 인권말살적인 융단폭격을 퍼부은지 약 2개월여에 만에, 이제 자신을 (가해자가 아니라) ‘사기꾼 윤지오’를 단죄하고 사기꾼을 방조한 정치인들을 꾸짖는 정의의 언론으로 내세우기 시작한다. 6월 14일 안민석의 비굴한 페이스북 항복 문서는 이러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한다’는 조선일보의 위력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내고 피해 조력자에게 비겁한 변명을 하게 만들면서 자신을 정의의 투사처럼 우뚝 세우는 교활한 정치공작술을 통해 다시 한 번 유감 없이 발휘되었다. 
  • <탐사보도 세븐> 2019년 7월 19일자 ‘누가 윤지오에게 놀아났는가?’는 이 정치공작술의 연속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종합판본이다. SBS의 ‘궁금한 이야기 Y’가 윤지오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만들기 위한 편집노하우를 보여주었다면, ‘탐사보도 세븐’은 <Y>가 만들어낸 이미지를 기초로 집권여당계 정치인들이 윤지오에게 이용당할(“놀아날”) 만큼 어리석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편집노하우를 보여준다. 10년 동안 경찰과 검찰이, 장자연의 글이 유서가 아니라 문건(증언조서)이라는 것을 국민 몰래 알고 있었듯이, 지금 조선일보나 SBS도 국민 몰래 윤지오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나는 본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윤지오를 포함한 83명에 대해 포괄적 조사를 수행했던 과거사진상조사단처럼, 폭넓은 취재력을 통해 팩트를 알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이 팩트를 말하는 기관이 아니라 팩트를 편집하는 기관이고 진실을 말하는 기관이 아니라 대중이 소비할 진실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는 기관이라는 점에 있다.
  • 교활한 ‘사기꾼’에게 이용당하는 무능한 권력은 존재이유가 없다는 메시지를 통해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 <세븐>의 기획의도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세븐>은 윤지오에 대한 음해를 집권권력에 대한 공격의 수단으로 삼는다. 윤지오를 둘러싼 내기판이 점점 커져 가고 있다. 조선일보와 자유한국당이 무고한 시민이자 장자연 사건의 피해자이고 또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인 윤지오를 총선을 앞두고 정쟁의 볼모로 이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븐>의  진행자 유오성의 형인 유상범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검사로 재직할 당시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직후인 2017년 7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되었다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이러한 정치적 배경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요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 ’거짓 증언자 윤지오’, ’사기꾼 윤지오’라는 구호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가해권력들이 이런 정치적 이유에서 만들어낸 날조된 구호이다. 이들은 총선에서의 다수당화와 차기 집권을 위해 이 구호를 향후 수 년 간 밀고 나가려 할 것이다. 젠더 입장에서나 계급 입장에서 여성-계약직-연예-노동자였던 윤지오나 장자연보다는 오히려 가해권력과 더 큰 공통점을 가진 현 집권세력은 윤지오를 방어하고 증언자 윤지오와 함께 고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재수사와 가해자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워나갈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이미 이들은 이 사건을 (바둑에서의) ’내준 집’으로 간주하고 정치적 악영향의 최소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 고 장자연 사건을 규명할 힘은 다시 아래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 7월 8일 350여개 여성단체들이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미투시민행동)을 조직하고 고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 버닝썬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경찰과 검찰의 행태를 규탄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매주 금요일 서울 광화문에서 ‘페미시국광장’을 무기한 열기로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사적이다. 첫 집회는 7월 12일 저녁 7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렸는데 이들은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조선일보를 적폐언론으로 규정하고 조선일보의 폐간을 주장했다. 여기에서 이들은 “검경 개혁, 여자들이 하자”고 외치기도 했다. 이들이 시작한 싸움에 여성들이 얼마나 결합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남자들이 얼마나 결합하는가는 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이다.
  •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절대민주주의적 섭정론에 따라, 국민에게 제대로 “이용당하는” 정부, 국민에게 “놀아나는” 정부를 원한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정부들이 국민들을 개돼지로 무시하면서 재벌에게, 미국에게, 일본에게 “놀아났다”. 조선일보, 티비조선 같은 가해권력들이 (지금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그러한 반국민적 매판정부를 창출해 왔고 자신들의 의사에 반해 국민에게 “놀아나는” 정부가 들어서면 그것을 퇴출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아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윤지오에게 놀아났는가?”라는 비난성 질문은 정부가 국민을 위하지 말고 재벌, 미국, 일본을 위하라는 언론권력의 반동적이고 매판적인 명령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가리키는 ‘북한’은 없다

북한이 없다면 정치를 못할 정치가는 … 홍준표와 그 주변 정치가들이다.

북한이 없다면 존재 이유가 없는 정당은 … 자유한국당과 그 주변 정당들이다.

이들의 정치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 듯이, 북한을 중심으로 돌고 북한에 의지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가리키는 먼 별들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많듯이, 이들이 가리키는 ‘북한’은 없다.

이들은 늘 … 먼 과거의 북한, 기억 속의 북한, 이들이 각종 수법으로 만들어 낸 조제된 북한(의 이미지)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 가상적 몸짓이 희망버스, 촛불, 미투, 위드유 등 다중의 각종 자기가치화와 자기조직화 운동의 조명을 받아 점점 웃음을 아아내는 소극으로 드러나면서  한 시대, 아니 한 무대의 막이 내리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