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진단의 문제

Posted at 2009/07/30 22:53// Posted in 분류없음
주권만을 강조하면서, 주권의 전능함만을 강조하면서 오늘날의 주권들이 파시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식의 묵시록적 시대진단은 정치적 대안을 사고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그러한 진단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무력한 숙명론이 아니면 물리적 폭력에 의한 파괴에의 호소이다. 중요한 것은 주권의 일방주의적 이행에도 불구하고 그 이행이 산출하는 혹은 그 이행 속에서 산출되는 새로운 주체적 능력의 구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2009/07/30 22:53 2009/07/30 22:53
공화국, 근대성, 자본은 위로부터 공통적인 것을 전유하는 세 가지 틀이다. 이것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의 다중이, 대안근대성(altermodernity)이, 공통재가 형성되고 있다. 공통적인 것은 오늘날 제국의 평면에서 자본주의적 명령 하에 놓여 있지만 자본주의적 제국의 발전은 다시 공통적인 것의 팽창을 필요로 하며 또 가능하게 한다. 현대의 혁명은 외부에서 찾아질 수 없고 바로 이 세계 속에서, 어떤 외부도 없은 이 세계를 기초로 발생할 것이다. 우리의 혁명의 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필요로 하는 제도적 과정은 무엇인가? 가난과 사랑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힘이다. 그것들이 지성과 활력, 그리고 정치적 실천과 결합할 때 다중의 군주되기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09/07/30 16:45 2009/07/30 16:45
1979년 10월, 박정희 정권이 붕괴하고 유신헌법의 발전주의적 독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 상황에 대처하는 세 가지 입장과 태도가 나타났다. 호헌과 개헌과 제헌이 그것이다. 호헌적 입장은 전두환에 의해 대표되었고, 개헌적 입장은 김대중·김영삼에 의해 대표되었다. 제헌적 입장은 명시적이었다기보다 비가시적이었고 부단히 개헌적 입장의 날개 밑에서 나타났다. 독자적인 모습을 띨 때 그것은 사회 전체로부터의 고립이라는 형식 속에서 즉 ‘난동을 부리는 폭도들’, 저 철저히 배제된 '벌거벗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남도청은 모든 것으로부터 절단된 고립된 섬이었고 시민군은 그 고립 속에서 전두환 정권의 계엄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제헌하는 능력의 운동형식이 제정된 권력의 운동형식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제정권력에게 승리와 패배는 뚜렷한 경계를 갖지만 제헌권력에게 그 양자는 서도 뒤섞이며 경계를 나누기 어렵다. 제헌권력에게 그것들은 제정권력에게서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제정권력에게 승리는 지배의 유지이고 패배는 그것의 붕괴와 해체이지만 제헌권력에게 승리는 협력을 통한 변형의 지속이요 패배는 그 협력의 정지와 해체로 인한 세계변형 능력의 유실이다. 광주 시민군의 신체는 죽고 다치고 갇혔지만 그들의 영혼과 요구는 살아남았다. 광주학살에 대한 책임자처벌을 이루어내는 1997년까지 적어도 17년 동안 계속된 5월 운동은 제헌권력이 패배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역설적 방식이었다. 1980년대 이래의 민중운동은 5월항쟁의 경험과 정신에서 그 상상력을 가져왔고 전략과 전술을 발전시켰다. 광주의 비극은 단지 패배와 죽음의 사태였던 것만이 아니고 패배를 통한 승리의 장정이요 죽음을 통한 삶의 증언으로 나타났다. 이런 의미에서 1987년의 6~9월의 항쟁과 투쟁은 부활한, 아니 승리하는 5월이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 5월은 호헌파 권력의 군사적 승리로 귀착되었다. 하지만 1987년 6월 투쟁은 개헌파의 정치적 승리(직선제)로 귀착된다. 비록 1987년 말의 선거에서 민정당의 노태우가 집권했지만 그것은 권위주의의 점진적 해체와 신자유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낳는 징검다리로 기능했다. 1987년에 폭발한 수년간의 연속투쟁에서 제헌권력은 노동해방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개헌파에 대한 비판이라는 형상을 취하거나 혹은 그로부터 독립한 혁명파로서 움직였다. 이 약한 연속혁명적 운동은 1991년 5월을 정점으로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후 운동은 전노협의 해체와 민주노총의 건설, 비합법 정파운동의 청산과 합법정당 건설, 항쟁조직들의 해체와 NGO건설, 전투주의의 청산과 개혁주의의 부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한 대장정'으로 탈바꿈한다.

2009/07/30 12:50 2009/07/30 12:50
2008년의 촛불봉기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를 국민의 동의 없이 수입하기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한 항의에서 촉발되었고 그것은 한미FTA, 대운하, 의료 민영화, 교육 민영화, 철도와 수도 민영화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용산항쟁은 2009년 1월 19일 6명의 철거민의 참사를 가져온 이윤중심적 재개발 정책에 대한 항의이다. 두 달을 훌쩍 넘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점거파업은 전반적 과잉생산, 금융투자의 실패, 연구개발투자의 부족 등에서 발생한 축적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면서 정리해고를 통해 그 위기를 풀어나가려는 노동 유연화 정책에 대한 항의이다. 3대 지상파 방송 노동자들의 12년만의 동시파업과 언론노조 총파업은 재벌과 보수언론의 방송권 주도를 가져올 방송 민영화에 대항하는 투쟁이었다. 이것은 지금 미디어법의 탈법적 처리에 대한 야당과 시민들의 항의로 이어지고 있다.

요컨대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6개월은 개방, 민영화, 유연화, 재개발로 요약될 수 있다. 이것들은 결코 돌출적인 것이 아니며 이전의 10년간, 아니 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추진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의 연속이자 결론이다. 다만 그것들이 좀 더 극단적인 형태로, 모든 사회적 이견과 항의를 무시하면서 강행되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항의들은 국가권력에게 무엇보다도 소통('먹통 대신 소통') , 대화('대화를 않을꺼면 차라리 다! 죽여라')를 요구했고 경쟁이나 이윤에 앞서 생명('이윤보다 생명'), 사람(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삶('함께 살자!')을 고려할 것을 요청했던 것이다.

모든 요구와 요청은 비겁하게 회피되거나 묵살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한편으로는 거짓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으로 아래로부터의 요구들에 응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목숨을 먹어치우면서 악어의 눈물을 흘리기를 거듭했고 거짓 사과는 시시때때로 반복되었다. 부자 정권이라는 비난여론에 밀려 채택한 이른바 '서민행보'는 카메라를 통한 이미지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산된 거짓만으로도 태산을 이룰 지경이다.

거짓의  비밀은 폭력이었다. 항의자들은 연행되고 구속되고 학살되었다. 삶의 활력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은 자살을 택했다. 이 과정은 정치의 주도권이 검찰과 경찰로 넘어가는 과정을 수반했다. 빡세게를 외치며 도열한 전경무리들, 공적 공간들을 에워싼 경찰차량들, 물을 뿜는 대포, 사람들의 등이나 머리를 향해 휘둘러지는 방패, 시민들을 겨냥해 내리쳐지는 장봉, 하늘을 날며 최루액을 뿌리는 헬리콥터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놓인 일상적 환경이 되었다. 이처럼 폭력은 눈물과 변명과 거짓말로 포장되어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끊임없이 행사된다. 2009년 7월 말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에 위치한 쌍용자동차 공장은 거짓말과 폭력이 뒤엉킨 현장이다.  파업노동자들은 좌익폭도로 기호화된 채 도장공장으로 떠밀려 옥쇄파업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은 1980년 5월 27일 역시 좌익폭도로 기호화되어 전남도청으로 떠밀려 옥쇄투쟁을 벌였던 광주의 시민군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
2009/07/29 11:45 2009/07/29 11:45

안또니오 네그리가 쓴 '후기 알뛰세 사상의 진화에 관한 단상들'[한글본]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

네그리는 알뛰세가 "무엇인가가 우지끈 부러지는" 1970년의 위기 속에서 오히려 철학적 도약을 이룬다고 본다.  그의 도약의 핵심은 유물론 개념 속에 우발성의 개념을 도입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유물론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고독 속으로 돌아감으로써, 즉 자신의 조건들의 완전한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기를 선택한다. 사회주의가 끝났다면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 존재조건을 잃는다. 알뛰세르는 비목적론적이고 우발적인 유물론을 구성하는 도정에 들어선다. [미래는 오래지속된다]의 알뛰세는 다시 한 번 마키아벨리를 읽음으로써 생산관계의 사유로부터 역능의 사유로, 생산력의 사유로 나아간다. 구조의 철학자, 주체 없는 과정의 철학자로부터 역능의 철학자로의 변신이라고 해도 좋을 행진이다. 그것은 사자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서 여우되기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삶의 새로운 생산을 위해 실천하는 자, 즉 코뮤니스트로서 사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실재의 반영이라는 전통적 인식론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하며 사유를 신체로부터 출발시키기 시작한다. 이것이 연속성을 압도하는 알뛰세르의 혁신이다.

이러한 사유 속에서 발견된 것은  역설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계이다.  알뛰세르는 이데올로기가 국가기구로서 기능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삶의 다양성을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하는 국가권력이 실제로는 공허한 것이라는 것.  네그리적 언어로 말하면 그것은 자본에 대한 탈근대적인 실질적 포섭이 실제로는 이데올로기적 공허의 지배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다중>>에서 공허의 지배는 추상화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요컨대 탈근대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들의 전체주의적 작동의 연속적 팽창과 점증적으로 강렬해지는 연접(contiguity)이다. 알뛰세르는 여기에서 경제와 정치에서 이데올로기로 향하는 계급투쟁의 변동을 포착한 것이 아닐까?  물질적 생산에서 비물질적 생산으로의 이행이 알뛰세르에 의해 파악되었다고 하는 것이 어떨까?

이 공허로서의 지배의 총체성(즉 중심)에 맞서는 것은 어떤 힘인가? 그것은 주변이 아니라 가장자리이다! 이것은 국가도 정당도 아닌 다중 속에 있는 힘이다. 랑시에르의 '아무개'가 뒤늦게야 알뛰세르에 의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해야 할까? 물론 알뛰세르는 사회적 노동이 비물질적이고 협력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천착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단지 우리는 여기에서 이론적 실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 등에서 이미 암시되고 실험되었던 바의 존재론적 인식틀로의 전면적 이행이 발견된다고는 말할 수 있다. 서서히 주체성에 대한 강조로 초점이 이동한다. 유물론은 벌거벗는다.  벌거벗은 유물론은 첫째 구조가 아닌 현재를, 둘째 업적이 아닌 업으로서의 역사를, 셋째 목적이나 필연성 없는 우발성을 자신의 대상으로 삼는다. 필연이 지배하는 변증법 대신 주사위 던지기가 고려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2009/07/27 22:01 2009/07/27 22:01

탈근대 가족의 진화

Posted at 2009/07/27 17:09// Posted in 쓰기(skribi)/역사_H
탈근대 가족의 진화

조선일보는 최근 가족의 재구성을 자신의 주제 중의 하나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가족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전통적인 대가족이 19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핵가족'으로 분화했고, 90년대엔 자녀를 안 갖는 '딩크족(族)'이 출현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 부모 가족, 다문화가족, 동성애 가족, 딩크펫 가족 등 가족의 '해체와 재탄생'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가족의 변화의 최대 원인은 이혼 증가 등에 따른 전통적 가정의 해체다. 2000년대 들어 이혼이 급증해 1998년 11만6300건이던 이혼 건수는 2003년 16만6000건 등으로 늘었다. 다만 지난해는 이혼 숙려제(熟慮制) 도입에 따른 신고 공백으로 11만6000건의 이혼 건수를 기록했다. IMF 경제위기 등을 겪으면서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많아졌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부모+자녀로 구성되는 전통적 가족이 줄어들고 대신 싱글맘, 싱글대디, 조손(祖孫) 가정 같은 새로운 가족 형태가 늘어난 것이다.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국내 체류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족'이 주요한 가족 형태로 정착한 것도 새로운 가족 트렌드다. 맞벌이하면서 자녀를 낳지 않고(DINK·Double Income No Kids) 대신 애완동물(pet)을 키우는 '딩크펫 가족'은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가족의 한 유형이다. 압축 경제성장과 IT산업의 발달로 가치관과 사회 변화 속도가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것이 급속한 가족 해체와 재구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가족의 의미가 '혈통'에서 '정서적 공동체'로 바뀌고 있다. 과거엔 자식을 낳는 것이 '대(代)를 잇는다'는 차원의 의무였지만, 이제는 부부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선택 사항'이 되었다. (정리와 강조는 아멜라노. 원문은 여기).
여기서 이혼의 증대, 경제위기, 세계화는 가족 재구성의 역사적 계기들로 파악된다.  그 귀결은 혈통 중심에서 정서 중심으로의 가족의 변화이다.  여전히 족벌 중심으로 구축된 재계와 언론계는 아직 재구성되지 않은 가족에 속하는 것일까? 하여튼가족 재구성의 역사적 계기들이 스쳐지나가는  강물처럼 평탄하게 묘사된다. 왜 이혼이 증대할까? 왜 경제위기가 왔을까? 왜 세계화가 몰아치고 있을까? 등의 질문은 감추어진다. 그래서 이 평탄한 문화사적 서술은 가족의 재구성 과정이 지배와 저항이 갈등하는 장소임을 드러내지 않는다. 세태적 변화를 묘사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족은 지배가 관철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저항이 재조직되어 나오기도 했다.  혈통의 약화와 정동의 부상은 바로 지배로서의 가족에 대항하는 가족 재구성의 새로운 경향을 시사한다. 이제 문제는 어떤 정동들이, 어떤 정서공동체가 가족이라는 공간에서 생성되어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2009/07/27 17:09 2009/07/27 17:09

자본의 정부

Posted at 2009/07/27 00:01// Posted in 쓰기(skribi)/정치경제_PE
대전 MBC 뉴스에 따르면 2007년 11월 전경련 연구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전달한 11권의 백서가 제안한 바대로 현재의 이명박 정부 정책이 전개되고 있다. 그 제안의 골자는 '토지 이용에서 수도권과 지역 균형발전 문제, 노동 시장과 방송 통신분야, 교육 문제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삼성과 현대, LG 등 전경련이 꿈꾸는 세상'의 형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은 1)수도권 규제완화, 2)MBC와 KBS2의 민영화,신방 겸업 허용,대기업의 방송과 뉴스부분 진입 허용,대기업의 종편 PP참여 3)대기업의 은행 참여 4)그린 벨트의 해제, 5)노동자의 해고 유연성, 6)교육의 서열화와 차별화 등을 포함한다. 최근의 미디어법과 금융지주법, 그리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바로 이 백서의 정치적 청사진을 하나하나 실시해 나가는 과정의 일부인 셈이다. 친서민 시정행보는 친기업 반서민 정책추진을 위장하는 제스쳐입이 이 뉴스를 통해 폭로되었다. MBC 뉴스 전문은 여기를 참조.


비공개 글입니다. 아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입력해주세요.
전경련 백서

2009/07/27 00:01 2009/07/27 00:01
2009년 7월 25일 오후, 서울역에서는 미디어법 무효화 투쟁이, 평택역에서는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와의 연대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전자는 언론노조가 후자는 금속노조가 주축이 된  집회이다. (야당들은 주로 전자에만 관심을 쏟는다.) 명확한 소속을 갖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이 혼란은 참가의 혼란뿐만 아니라 감성의 혼란으로도 나타났다. 평택시 칠괴동 삼익아파트 앞 다리에서 벌어진 전쟁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서울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촛불문화제를 '이제는 접어야 할 투쟁방식'이라며 비난했다. 반면 헬리콥터를 동원한 색소물 투하, 물대포, 과격한 강제연행에 맞서 투석과 쇠파이프를 불사했던 투쟁을 낡은 폭력투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진실은, 우리가 하나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것, 아니 여러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리라. 바로 그 시간에 무수한 사람들이 어떤 밴드의 방한공연을 보러 몰려들었고 축구 이야기로 열을 올렸고 본격적 휴가철을 맞아 바닷가로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하나의 시간, 단일한 평면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시각은 현실의 복잡성 앞에서 좌절하고 기력을 잃는다. 그렇기 때문에 투쟁에서 나타나는 그 두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그 두 시간은 어떤 두 시간인가?

미디어법은 말, 언어, 기호를 둘러싼 투쟁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날치기, 불법투표, 대리투표까지 동원해 미디어법을 강행으로 통과시키려 했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미디어 환경, 담론 환경, 기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그것은, 삼성과 같은 재벌이나 조중동과 같은 보수신문의 방송진출을 가능케 하려는 법적 정지작업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뿐만은 아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미디어법은 케이블 티비, IP 티비, 위성 티비 등은 물론이고 공중파 티비에 대한 자본투하를 늘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미디어 법을 통한 미디어 산업의 개편이 고용을 신규 창출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들이 기존 미디어 법을 전두환 시절에 언론통제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미디어 영역 속에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관철하려는 시도로도 들린다. 아무튼 미디어 영역에 이명박 정부는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투자를 하려하고 그것을 더 많이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려 한다.

반면 쌍용자동차 문제는 해고의 문제이며 파산의 문제이다. 정태인은 25일 밤  생중계 방송 해설과 쌍차 공장 정문에 도열한 사측 직원들을 향한 거리 연설을 통해, "쌍차의 위기는 1)국제적인 자동차 수요의 감소 2)쌍용이 투자했던 파생금융상품의 붕괴 3)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R&D 투자노력의 부족 등에서 기인하는데, 이 중 어느 것도 노동자들의 책임이 아니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쌍용자동차를 버렸다. 파산은 기정 사실이고 그 책임을 저항하는 노조원들에게 뒤집어 씌울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일만 남았다. 여러분들이 동료 노동자들을 적대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에 속는 것이다"는 요지의 생각을 밝혔다. 공적 자금이 투입되지 않을 것은 물론이려니와 은행대출을 비롯한 민간적 차원의 조력도 쌍용자동차에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진단의 구체적 옮고그름 여부를 떠나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가 미디어 문제와는 달리 더 많은 관심, 더 많은 투자, 더 많은 영토확장의 문제가 아니라 더 적은 관심, 더 적은 투자, 기존 영토의 축소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미디어와 자동차를 둘러싼 두 개의 투쟁의 동시성은 단순히 복잡하기만한 시간을 보여주기보다 바로 '떠오르는 시간과 기우는 시간의 교차'를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가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물질생산과 비물질생산, 물질노동과 비물질노동 등의 개념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 바로 그 현상이 사회적 갈등과 투쟁의 양상 속에서 중대한 사건이자 문제로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자율평론 기획, <<비물질노동과 다중>>, 갈무리, 2005 참조)] 정확하게 20년전 우리는 거대한 파급효과를 갖는 두 개의 투쟁의 동시적 출현을 경험한 바 있다. 그것은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투쟁과 현대 중공업 파업투쟁의 교차이다. 통일전선과 노동전선, NL과 PD의 교차를 당시 ND는 두 개의 전선론으로 읽었다. 하지만 지금의 두 개의 전선에서 중공업, 금속, 자동차가 놓인 위치는 당시와 크게 다르다. 당시에 이것들은 떠오르는 시간을 표상했다. 당시에는,  노동자들로 하여금 무급순환휴직까지 대안으로 내놓게 만드는 정리해고가 문제가 아니라, 임금인상, 노동시간단축, 노동조건 개선, 노동조합결성 자유 등이 쟁점이었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투쟁이 적극적 내용을 갖고 있었을 때 노동자 투쟁은 사회혁명의 전망과 쉽게 그리고 내밀하게 연결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노동의 영역에서 특히 산업노동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일자리, 고용, 요컨대 '생존을 지키기 위한 싸움'으로서 과거와 같은 적극성을 갖지 못한다. 그 투쟁들은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기보다 과거를 향해 수축된다. 살아남는 것이 문제일 때, 혁명적 기쁨보다 산다는 것의 슬픔이 압도한다. 아마도 그래서 쌍용자동차 가족이나 용산 참사의 유가족들이 (그래서 지켜보거나 연대하는 사람들까지) 싸움의 한 가운데서 거듭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일 게다. 쌍차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공권력이 아니라 공적 자금'을 투입하라고 외칠 때, 생존을 위한 그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내가 낸 세금 쌍용자동차에 주기만 해라"라고 부정적 의견을 표하는 분열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어제(7월 25일) 평택에서의 가두투쟁은 징후적이었다. 1만여명의 시위대가  칠괴동 삼익아파트 다리 앞 투쟁에서 순식간에 몇 백의 경찰에 밀려 동삭동, 세교동으로 달아나야 했다. 물론 경찰은 시위대가 갖지 않은 무기들을 갖고 있었다. 상공을 나는 헬리콥터에서는 색소봉투가 뿌려지고 물대포가 물을 뿜고 전경들은 사냥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날의 도주를 모두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두 대오가 칠괴동의 다리 앞에서 보도블록을 걷어냈지만 그것들 대부분은 사용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돌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투석전이 시작되려 했지만 시위대의 대부분은 그 사태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즉 돌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투석이 준비되는 시간에 시위대 내부에 어떤 싸움이냐를 둘러싼 균열이 발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보도블록을 깨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헬리콥터가 색소봉투를 투하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나타나자 선두 시위대가 먼저 보도블록을 던졌으며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시위대는 산산이 흩어져 도주했고 골목도 없는 소도시의 한적한 동네에서 무차별 연행을 당했다(약 15명, 대개 수원중부서로 이송[수정: 7월 26일 SBS 뉴스보도를 따르면 연행자는 30여명이다]).

약 1시간 40분 뒤인 7시 50분경 대오를 추스른 시위대가 다시 쌍용자동차 공장을 향해 행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다시 9시 30분경 부암사거리에 모인 시위대는 이후 행동계획을 놓고 토론을 했다.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해산을 제안했지만 청중 속에서 이견이 나왔고 곧 마이크는 계속 투쟁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쌍용자동차로 진격할 선봉대가 모였고 이들은 이번에는 쇠파이프를 들었다. 늦은 밤 소도시의 아스팔트를 쇠파이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나 이때 시위대는 불과 60여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후발대나 본대오가 있는 선봉대가 아니라 그래서 본 대오를 지키기 위한 선봉대가 아니라 선봉대가 본대오이기도 한  특별한 선봉대였다. 우리는 쇠파이프를 울리며 평택시의 아스팔트를 걸어 9천여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는 평택자동차 공장으로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이들 결의한 사람들, 수천명의 본대오로부터 분리된 이들 선봉대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스쳐지나갔는지 알기 어렵다. 아마도 두려움뿐만 아니라 슬픔까지도 요동쳤으리라. 60 대 9000, 영화 <300>의 상황을 방불케 하는 이 중과부적의 싸움. '이 승산 없는 싸움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경찰들을 향해 걸어가는가?' 문제는 그 '무엇을 위해'가 분명치 않다는 것이었다. 25일의 목적은 사측과 경찰의 잔인한 단수로 목말라하는 동지들에게 물을 넣어주는 것이었다. 생존의 물. 그러나 선봉대에게 물은 없고 물을 넣게 할 강제력도 없다. 10시 5분경 경찰과의 거리 500여 미터를 앞두고 멈춰선 60여명의 '선봉대'는 장고 끝에 해산하기로 결정했다.

쇠파이프를 끌며 뒷걸음질로 평택역을 향해 물러나기까지 수 십 분 동안 이어졌던 '어둠 속의 행진', 이것은 25일 밤 선봉대의 행진의 성격만은 아니고  지금 노동자들의 투쟁 전체를 횡단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싸움. 총고용과 공적자금, 이 사회민주주의적 요구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본가적인 이명박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하나의 실제적 요구로서 제시해야 하는 상황. 노동자들이 '대화를 안할꺼면 차라리 다! 죽여라'라고 피의 절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노동운동이 suicidal strike(자살파업)를 뜻하는 '옥쇄파업'을 긍정적 어법으로 사용하는 상황(이명박이 쥔 옥새 玉璽는, 아니 어쩌면 옥새 자체가, 노동자의 옥쇄 玉碎를 조장한다)를 그래서 이슬람 세계의 자살폭탄투쟁의 정신이 우리의 노동운동을 이끌게 된 이 상황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운동과 정치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시간이며 그런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새로 시작해야 할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근본적인 변화일까?




2009/07/26 08:08 2009/07/26 08:08

링크

Posted at 2009/07/25 23:54// Posted in Esperanta-reto/ligiloj
2009/07/25 23:54 2009/07/25 23:54
[<미디어충청>은 쌍용자동차 파업투쟁 관련소식을 가장 신속하고 심층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는 매체다. 여기에 7월 25일의 투쟁속보를 옮겨놓는다. 출처: http://www.cmedia.or.kr/news/view.php?board=news&nid=3730 --amelano]

[쌍용차 25일 8보 22:00] 민주노총 해산명령, 용역,경찰 4초소로 이동

용역, 경찰 4초소 집중에 평택공장은 긴장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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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보고

2009-07-25 15시07분 미디어충청 특별취재팀

[쌍용차 25일 8보 22:00] 민주노총 해산명령, 용역,경찰 4초소로 이동

민주노총이 밤10시경 조합원들에게 해산명령을 내렸다. 그 뒤 용역과 경찰은 평택공장 4초소, 후문으로 병력이 집중되고 있어 쌍용차 노동자들은 긴장 상태다.

[쌍용차 25일 8보 21:00] 대치 중이던 경찰 철수, 집회참가자 연좌시위

법원검찰청사거리에서 대치하던 경찰병력은 철수했고, 집회참가자 7백여 명은 거리에서 연좌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쌍용자동차 앞 삼거리에는 교통통제가 풀렸고, 경찰병력은 공장 방향 길목을 막고 대기 중이다.

[쌍용차 25일 7보 21:00] 집회참가자와 경찰, 평택시내에서 대치 중

평택시내까지 밀린 집회참가자들은 현재, 법원검찰청입구 교차로에서 경찰과 대치 중이다. 현재까지 확인 된 연행자 11명은 수원중부경찰서로 이송됐다.

[쌍용차 25일 6보 19:20] 경찰, 최류액 섞은 살수차 발포하면서 전진



경찰이 최류액을 섞은 물을 살수차를 통해 발포하면서 집회참가자들을 진압하고 있다. 삼익아파트 500미터 아래까지 밀린 집회참가자들은 돌을 던지며 저항하고 있다.

경찰은 취재진과 시민, 집회참가자 가림없이 최류액을 섞은 물을 발포하며 빠르게 전진하고 있어, 취재진들이 경찰차량에 치일뻔하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

한편, 집회참가자들을 뒤쫓는 경찰들은 "시위대가 아니"라며 저항하는 시민을 강제 연행하는 장면이 목격 되기도 했다. 또한 부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시위대가 아니라며 저항한 시민이 경찰에 들려 강제 연행되고 있다. 배가 다 드러나 보인다.


[쌍용차 25일 5보 18:30] 범국민대회 참가자들, 경찰과 충돌

동삭 교차로에서 대치 중이던 집회참가자와 경찰이 충돌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돌을 던지며 행진을 저지하고 있는 경찰에 저항했지만, 바로 시작된 경찰의 진압으로 현재 삼익아파트 근처를 지나 계속 평택시내 방향으로 밀리고 있다.

이 충돌로 부상자와 연행자가 발생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후 추적 연행을 위해 헬기를 통해 파란색 색소가 담긴 봉지를 집회 참가자들에게 계속 떨어뜨리고 있다.

차체 공장 옥상에 그물망을 들고 올라온 경찰

같은 시각 쌍용차 공장 내부에서는 용역과 파업참가자들이 충돌하고 있다. 본관 옥상과 도장공장 옥상에서 용역과 파업참가자들 간의 새총 공방이 벌어지고 있고, 차체2팀 옥상에는 경찰과 용역이 배치 되어 도장공장 옥상을 주시하고 있다.

[쌍용차 25일 4보 18:10] 범국민대회 참가자들 쌍용차 정문 삼거리 도착




‘쌍용차 정부해결을 촉구하는 전국노동자-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연대하자”고 결의했다.



25일 오후 3시 평택역 광장에 모인 금속노조, 시민단체 등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1만여명은 “사태 해결을 위해 정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며 “사측이 정리해고 방침을 철회한 것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화 없이 경찰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물도 의료진도 취재진도 없이 고립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는데, 제대로 싸우지 않으려면 연대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고 일치을 가했다. 이어 “나를 믿는다면, 민주노총과 함께 투쟁을 결의하고 함께 싸운다면, 연대의 이름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지금 쌍용차 노동자들은 처절하게 싸우며 쌍용차 사측과 경찰, 용역들에게서 공장을 지키고 있다”며 “우리가 그들의 투쟁에 화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사측이 대화를 거부하고 또 다시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쏟아 붓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행진하고 있다. 오후 6시 참가자들은 쌍용자동차 진입로인 삼거리로 진입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쌍용차 공장 진입 시도에 대비해 60여개 중대 6천여명, 공장 주변에 30여개 중대 3천여명 등 모두 9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쌍용차 회사측도 정상출근한 임직원 1,500여명을 공장 안에 배치했다.

경찰은 쌍용차 공장 앞 삼거리에 전경버스를 이용해 이중 삼중으로 차벽을 설치했다.

[쌍용차 25일 3보 17:10] 의료봉사진, 또다시 사측에 가로막혀

17시경, 쌍용차 공장을 방문한 의료봉사진이 사측 직원들에 막혀 정문에서 항의하고 있다. 사측 직원은 "의약품만 넘겨주시면, 우리가 안쪽에 전달하겠다"며 의료봉사진을 막고 있다. 이에 의료봉사진은 "의약품에는 제조약도 함께 있다"며, "의료진이 직접 진찰하고 처방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더불어 쌍용차 사측은 '사측이 선정-지정한 의료진과 간이 의료실, 엠블런스를 통해 응급환자 구호활동을 펴겠다'는 내부 문서를 기자들에게 나눠주며, 의료봉사진을 계속 막고 있다.

한편 이를 지켜보던 농성자 가족들은 사측과 경찰을 향해 "의약품을 전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쌍용차 25일 2보 16:50] 평택시내에서 쌍용차 공장으로 가는 길목, 경찰배치 시작

평택역 광장에서 노동자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진행 되는 시간, 쌍용차 공장 삼거리에는 경찰이 차벽을 쌓기 시작했다. 평택시내에서 쌍용차 공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도 경찰병력을 배치 중에 있다.



[쌍용차 25일 1보 15:00] 헬기로 최루액 뿌리기 시작

25일 오후3시경 경찰이 헬기로 쌍용차 평택공장 내에 최루액을 분사하기 시작해 노동자-경찰, 사측, 용역의 본격적인 대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재 평택공장 안팎으로 127개 중대 약 1만 2천여 명이 집결했다.


경찰이 22일부터 최루가스를 직접분사 하거나 최루액을 봉지에 담아 투하한 것과 다르게 최루액을 헬기에서 직접 분사해 노동자들은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호흡 곤란을 일으키는 노동자들도 늘고 있다.

또한 사측은 오후2시경부터 300~400명씩 각 출입구과 주요 대치 장소에 집결해 있으며, 4초소에서 완성차를 빼내고 있다. 기자가 목격한 것만 총 15대이다.



한편, 민주노총은 평택역에서 3시부터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2009/07/25 22:47 2009/07/25 22:47
[금속노조가 기록한 7월 25일 일지이다. 경찰과 기업, 국가와 자본의 거짓이 기록되어 있다.  출처: http://metalunion.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33108&page=1 --amelano]

[공권력전면투입6일차]7.25/16:20-경찰과 용역들 전투 중비 중!

16:20]
- 경찰과 용역, 차체 팀 공장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음. 다시 침탈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
- 본관에서는 다시 사측이 새총을 쏘고 있음
- 경찰병력은 현재 집회대오와 공장 전역에 120개 중대 정도가 배치되어 있음.

- 동지들, 사측과 정권은 대화를 통한 해결이나 전국노동자대회 여부와 무관하게 다시 침탈을 시작하려 합니다. 강력한 투쟁을 전개해주시길 바랍니다!!


15:55]
- 경찰, 다시 공장에 최루액 살포
- 경찰들이 소리를 지르며 태세를 갖추고 있다


08:50]
- 쌍용자동차 사측이 노사 당사자 직접 교섭 불참을 선언했다.

- 앞에서는 대화 운운하며, 뒤에서는 엄청난 폭력을 저지른 사측이다. 어제는 사제총으로 의심되는 초고속 새총이 날아와 조합원들이 크게 다쳤다. 경찰의 비호를 받으며 거대 새총을 쏘는 용역의 모습이 목격됐다.

- 어제는 공권력 투입 5일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공장 건물 안으로 진입한 날이었다. 용역들은 차체공장, 프레스공장을 장악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용역을 추가 배치해(버스 9대) 계속 조합원들을 압박해왔다.

- 쌍용차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국민적 염원 앞에, 대화를 약속해놓고도 갑자기 일방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태도는 정리해고 의지를 끝까지 굽히지 않을 것이며, 지금까지의 전쟁상태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 사측은 마치 쌍용차노조가 대화를 거부하고 폭력행위를 한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실질적 책임자인 사측 관리인들은 어제 노사정 대화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끝까지 가보려는 것인가? 얼마나 더 죽일 셈인가? 사측이 사람을 살리고 회사를 살릴 의지가 있는 것인지 지금 전 국민이 의심하고 있다!

12:00]
- 쌍용차 사측이 다시 노사 교섭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중재단이 밝혔다. 하지만 관리인들은 교섭 시간과 방법을 묻는 중재단에 대답을 극구 부인했다.
- 노조의 폭력성을 과장 왜곡 보도하며 뒤로는 살인무기로 진압하는 사측과 경찰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15:00]
- 평택역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 공장 안 동지들의 투지에 걸맞는 힘찬 투쟁을 기대한다.


[누가 폭력으로 대화를 막고 있나]

- 사측과 경찰은 노조의 폭력성을 왜곡하고 부각시키기에 여념이 없다.

- 어제 경찰의 거짓이 명백히 드러났다. 최루액이 무해하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기자들을 불러놓고 스티로폼에 부었는데 스티로폼이 녹아내린 것이다! 실제 공장에 투하하는 최루액은 어떻겠는가! 하루종일 퍼붓는 최루액으로 조합원들은 피부병과 화상에 시달리고 있다!


공장 안에 떨어진 최루액이 스티로폼을 녹이고 있다


경찰이 자청한 기자회견에 쓴 최루액


공설운동장에서 발각된 최루액 봉투


'평화적 해결'을 논하며 노사정이 만난 시간,
경찰과 용역은 공권력투입 이후 최대 병력이 공장 안으로 진입했고
거센 공격이 이어졌다.


24일 오후 차체2팀 공장을 장악한 경찰이 공장안에서 밖으로 진출하기 위해 서치라이트켜고 진입준비를 하고 있다


오른쪽이 사측이 쏜 대형너트.
대형차에 쓰이는 것으로 쌍용차 공장에는 없는 부품이다.


대형 새총을 발사하는 쌍용차 사측 직원


경찰이 사제총알이라고 주장한 용접용 스포트 팁
이것이 사제총알이라면, 공장은 총알로 가득차있다!



2009/07/25 16:46 2009/07/25 16:46

사자후 TV의 의미

Posted at 2009/07/25 16:34// Posted in 쓰기(skribi)/시학_P
오늘(7월 25일) 10시로 예정되었던 노사간 대화는 무산되었다. 사측의 불참때문이었다. 사측은 협상을 앞두고 볼트를 쏘고 자동차를 태우는 행위를 노조가 하고 있기 때문에 대화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불참한다는 이유를 댔다. 노사 대화가 진행중인 시간에도 헬기로 최루액을 살포하고 도장공장에 더 가까이 접근한 것은 사측 구사대와 용역과 경찰이 아니었던가! 권영길이 사측과 노조측의 대화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고 했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이명박 정부를 암시하는 것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권 외에 사측을 움직일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나 자본이 대화를, 타격을 위한 핑계나 계기로 삼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25일 오후 현재 평택역에서는 민주노총 주최의 노동자대회가 진행되고 있고 쌍용자동차 공장 상공에서는 3 대의 헬기가 계속해서 도장공장 옥상에 최루액을 살포하고 있다. 노조원들과 사측 사람들 사이에 새총 공방이 오간다. 공장마당에 배치되었던 철망들이 밖으러 빠지더니 정문 앞에 철망이 세워진다. 높은 긴장이 감돈다.

정문 앞에는 사자후 티비가 도장공장 옥상쪽을 향해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가대위(가족대책위)와 일부 시민들이 그 주변에 연좌해 있다. 가대위의 한 어머니가 "아들아, 자랑스럽다!"고 큰 소리로 외친다. 옥상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연설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자후 티비는 한 달이 넘도록 쌍용자동차 노조의 파업투쟁을 생중계하고 있다. 광주는 모든 매체가 차단된 상태에서 진압되었다. 사자후 티비가 비추는 것은 발랄한 춤도, 힘찬 액션도 아니고 화려한 몸짓도 아니다. 카메라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긴장의 시간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눈이다. 증언의 눈. 그 눈은 생중계를 통해 증폭된다. 24시간 내내  전국의 1~2천여의 접속자가 공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사자후 티비는 프레스센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어제 밤 MBC 뉴스는 쌍용차 상황을 보도하면서 사자후 티비로부터 자료사진을 제공받았음을 자막으로 밝혔다. 비제도 촛불티비가 공식 티비를 앞서고 있는 것이
다. 이름 없는 촛불들의 등장과 더불어 촛불 티비들은 등장했다. 이 티비들이 투쟁의 현장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사람들의 감성을 직조한다. 쌍용차 사측이 사자후 티비를 막아달라는 민원을 제기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2009/07/25 16:34 2009/07/25 16:34
이명박 정권은 미디어법이 정족수 부족으로 부결되었는데도 마치 통과된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다.
얼마나 속앓이가 심할까?
대통령 이명박은 오늘 다시 서민 행보를 시작했다. "농수산물 시장 아주머니를 껴안고, 논두렁에 앉아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그것이다. 국민들을 쇼 구경꾼으로 아는 것이 분명하다.
서민 행보로 모자라는 것을 개각으로 채우고, 개각으로 모자라면 대북정책 깜짝쇼로 채우면 될까?
그러면 부결된 미디어법이 통과된 것으로 국민이 봐줄까?
그래서 장기집권을 위한 중임제나 내각제 개헌의 기회가 주어질까?
오늘 모처럼 노사정 협상을 했고 내일 오전 10시 노사간 협상을 앞두고 있는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탈을 설득하는 선동방송이 밤하늘을 씁쓸하게 울리고 있다.
2009/07/24 21:42 2009/07/24 21:42

테이저 건의 비밀

Posted at 2009/07/24 09:32// Posted in 쓰기(skribi)/정치_P
연일, 노동자들이 화염병을, 새총을, 사제표창을, 사제총을 만들어 공권력을 향해 사용하고 있다고 떠들면서......

이명박 정권은 파업 중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들(물, 가스, 의료)을 금지시켰다.
이명박 정권은 스티로폼이 녹아내리는 강력 최루액을 노동자들을 향해 살포했다.
이명박 정권은 테러진압용 무기인 테이저 건을 노동자들의 얼굴을 향해 발사했다.
지금 테러진압용 부대를 투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일이 발생하건 이명박 정권은 말할 것이다.
진압된 것은 테러라고.
죽은 것은 테러분자들이라고.
사라진 것은 폭도이며 되찾은 것은 산업평화라고.
잃은 것은 폭력이며 얻을 것은 국가경쟁력이라고.

이를 계기로, 착취와 수탈과 억압과 불법에 대한 모든 저항, 삶의 존엄을 위한 몸부림을 테러로 몰기 위한 법률전쟁과 개헌작전을 강행할 것이다.
날치기, 대리투표, 탈법투표를 한 번 더 하는 것이 문제일손가?

이명박 정권이 아는 한에서, 국민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뉠 뿐이다.
한 종류는 테러분자, 또 다른 종류는 바보.
여기에 이미 준비된 두 개의 선물이 있다.
테러분자에게 드리는 테이저 건, 바보들에게 드리는 조중동 방송.


2009/07/24 09:32 2009/07/24 09:32
언론악법 비정규법 등 MB악법 저지!
쌍용차 공권력 살인진압 결사 저지 및 총고용 쟁취!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방침


1. 민주노총은 7월22일 오전을 기점으로 이명박 정권의 언론악법과 비정규악법 등 MB악법을 저지하고, 공권력의 쌍용차 살인진압 저지와 쌍용자동차 살인진압 저지와 쌍용자동차 정상화를 쟁취하기 위해 총파업투쟁에 돌입한다.

1-1. 총파업 투쟁 선언과 동시에 민주노총 임원, 가맹산하조직 임원은 전국 동시다발 거점농성 투쟁에 돌입한다.

2. 이러한 총파업 방침에 따라 민주노총 가맹산하 조직은 7월22일 오전 총파업을 단행하고 오후 3시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로 집결한다.

2-1.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는 서울 국회 앞, 금속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앞 등 전국 동시다발로 전개한다.

3. 총파업기간은 6월 국회 폐회날인 7월 24일(금)까지이며, 금속노조와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총파업에 돌입한다. 7월25일 평택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전개한다.

4. 모든 가맹산하조직과 단위사업장은 80만 조합원의 단결된 힘으로 MB악법 저지와 쌍용차 투쟁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 지침 및 일일 총파업 속보를 전 조합원에게 전달하고, 민주노총 지침에 따라 일치단결하여 투쟁한다. <끝>
2009/07/23 23:00 2009/07/23 23:00

인간사냥을 중단하라

Posted at 2009/07/23 18:08// Posted in 쓰기(skribi)/사회운동_S
아무도 다가올 시간들을 남김없이 계산할 수는 없다. 시간은 항상 계산을 넘어선다. 무엇이 발생할지 아무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긴장이 감도는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옥상에서 언뜻언뜻 모습을 보이는 노조원들, 공장 마당 방패컨테이너 밑에 웅크린 전경들. 한편에서 볼트와 너트를 날려보내고  사제총을 쏘고 화염병을 던진다. 다른 한편에서 새총을 쏘고 물대포를 퍼부으며 최루액을 투척하고 테이건총을 발사한다. 이미 부상당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 이미 투쟁은 1987년을 넘어섰으며 1980년 5월로 도약했다. 쌍용자동차 공장은 1980년 5월 27일의 전남 도청이다. 차이가 있다면, 광주의 도청이 모든 미디어에 대한 차단으로 눈에 보이지 않았음에 반해 쌍용차 공장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도청에는 소총밖에 없었지만 도장공장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폭발물이라는 점이다. 도장공장이 폭발하면 주변 1~2킬로가 충격으로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노조원들은 인화물질로 가득찬 공장에서 다가오는 진압시간을 기다리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분노에 찬 동료들'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  긴박한 순간에 그 수백의 노동자들의 마음 속에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고 누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아무도 통제할 수 없다. 쌍용자동차 파업을 옥쇄파업이라 불러왔다. 옥쇄를 사전은 '옥처럼 아름답게 깨어져 부서진다는 뜻으로, 명예나 충절을 위해 깨끗이 죽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도장공장이 수백명 노동자들의 진짜 옥쇄 공간으로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여론의 흐름을 셈하는 주판놀음을 멈추어야 한다. 진압과 점령의 타이밍을 계산하는 잔인을 거두어야 한다. 지금 당장 인간사냥을 중단해야 한다.
2009/07/23 18:08 2009/07/23 18:08
쌍용자동차에 대한 포위공격이 거세지는 가운데, 한 쌍용자동차 노조원은 서울 독립문 고가에서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벌였다. 아래에 <미디어충청>에 실린 관련기사를 링크한다. 출처: http://www.cmedia.or.kr/news/view.php?board=news&nid=3687 - amelano


쌍용차 노동자 서울에서 고공농성 돌입, 연행

경찰의 침탈에 투신, 큰 부상 없어

2009-07-23 11시07분 특별취재팀

사진제공 쌍용차 노조

쌍용차 공장 경찰력 전면 투입 4일차인 23일 오전8시10분 서울에서 쌍용차 윤 모 조합원이 고공농성에 돌입했으나, 경찰의 침탈과정에서 10시40분경 투신했다. 다행히 쌍용차 노동자는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오전 8시 10분, 쌍용차 노조 윤 모 조합원이 “쌍용차 공장을 외부와 차단하고 경찰과 사측, 용역이 파업중인 노동자에게 가하는 탄압”에 항의하며 서대문 고가도로(독립문역 사거리)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사진제공 쌍용차 노조

사진제공 쌍용차 노조

고공농성에 들어간 쌍용차 노동자는 “해고는 살인이다. 공권력 투입 반대”등이 적힌 플랑카드를 내리고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쌍용차 노동자들이 경찰과 사측, 용역에 의해 무참히 짓밟고 있다”고 외쳤다. 이어 윤 모 조합원은 “쌍용차 문제의 책임은 상하이차와 정부”라는 호소문을 뿌리고 “경찰의 살인적인 진압 중단과 정리해고 철회, 쌍용차 문제의 정부 책임”을 호소했다.

곧이어 8시 30분, 소방차 2대가 현장에 도착해 고가도로 아래에 매트리스를 설치하고 사다리차를 1대 배치했다. 경찰 역시 9시에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관들이 윤 모 조합원에게 내려올 것을 설득하며 사다리차를 올렸으나, 윤 모 조합원은 “사실을 알려야 한다”며 고가도로 난간 밖에 매달려 내려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오전 10시경 경찰이 강제진압을 시도, 10시 30분경 윤 모 조합원은 20M 고가 아래로 투신했다. 윤 모 조합원은 매트리스 모서리에 머리부터 떨어져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경찰은 윤 모 조합원을 바로 연행해 사라졌으며 호송처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2009/07/23 14:56 2009/07/23 14:56

현재의 정치상황에 대한 메모

Posted at 2009/07/23 10:16// Posted in 쓰기(skribi)/정치_P
1. 87년 체제는 80년 5월 항쟁에서 등장한 제헌권력의 힘을 개헌의 방식으로 흡수함으로써 성립한 체제이다. 직선제는 한편에서는 권위주의로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을 가능케 했고 그것은 다른 한편에서 형식적 민주화를 수반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이 특징은 뚜렷이 나타났다.
2.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대중의 단순한 투표실수라기보다 87년 체제와 그것 한계에 대한 부정적 문제제기였다. 87년 체제를 이끌었던 구래의 개헌세력은 대중적 비판에 직면하여 좌초했고 분열했다.
3. 이명박 정부는 이것을 민주주의를 걷어내고 신자유주의를 극단화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 정부는 1987년 체제를 종식시키고 2008년 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개헌을 준비되고 있다. 그 내용은 대통령분권제, 의원내각제 등등. 87 체제가 가져온 신자유주의화는 극단적으로 발전시키면서 그것에 수반된 형식적 민주화를 철거함으로써 신보수주의의 길을 닦는 것. 이제 과거의 호헌세력이 개헌세력으로 되고 있다.
4. 이에 맞서 87년 체제를 지키려는 저항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와 노동단체의 입장이 그것이다. 이 저항은 촛불, 용산, 화물연대, 쌍용차 등으로 이어져 왔다. 그 초점에는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들이 놓여 있다. 그것은 뉴라이트의 신자유주의적 애국에 맞서는 애국적 진보주의(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67318.html 그리고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367317.html 참조)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과거에 민중권력을 추구했던 민중운동도 지금은 공적자금에 호소한다. 지금 과거의 개헌세력이 호헌세력으로 되고 있다.
5. 호헌으로는 개헌에 맞서기 어렵고 진보성을 구현하기 어렵다. 87년 체제를 수호한다는 것이 위로는 개헌파와 신자유주의를 공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며 아래로는 새롭게 형성된 주체성들(불안정노동자층, 비물질노동자층 등)의 감성과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에 대한 기억이 갖는 한계가 그것이다.
6. 각종 악법(이른바 MB악법)을 통해, 그리고 그것의 화룡점정이 될 개헌을 통해 소수 국내외 독점자본의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현재의 개헌추진세력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헌이다. 그것은 87년 체제하에서 변화된 노동력과 노동관계의 정치적 재구성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진정한 제헌 동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의 저항들은 과거의 투쟁을 반복하고 있지만은 않다. 그 속에는 미래를 암시하는 새로운 투쟁의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 그것에 애국이 있다면 '국가 없는 나라사랑(공동체 사랑)'(조정환, [미네르바의 촛불], 갈무리, 2009 참조)이다. 그것은 서로 다른 존재자들의 코뮌을 구축하는 것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요구이다. 이를 위해서는 87년 체제를 세운 때와는 다른 논리, 다른 감성, 다른 실천이 필요하다.
7. 이것이 이상적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이상적으로 느끼는 바로 그 감성이 현재 국지적 패배를 반복되게 하는 그 조건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 자신의 발본적 변화없이 새로운 세계, 새로운 삶을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2009/07/23 10:16 2009/07/23 10:16
7월 22일 이명박 정부는 두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공세를 펼쳤다. 하나는 미디어법의 날치기 통과이다. 회의 종료를 선언해 놓고 정족수가 부족한 것을 뒤늦게 발견한 후 다시 개회를 해 투표를 강행하는 탈법적 방식으로 미디어법의 통과를 선언했다. 미디어는 오늘날 정신적 정동적 삶이 전개되는 주요한 공간이다. 뉴스, 드라마, 다큐멘타리, 광고 등 모든 곳에서 지각과 감각 방식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진다. 현행의 미디어 현실만으로도 충분히 친기업적이며 친권력적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도 한 개인이 친기업적 친권력적으로 프로그램된 지각과 감각의 틀을 넘어 사유하는 것이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만족할 줄 모르는 괴물처럼 조중동과 같은 신문과 재벌들에게 방송을 쥐어줌으로써 미디어 세계를 완전히 자본과 권력의 것으로 장악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또 하나의 전선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이다. 강제퇴거 명령을 집행한다는 명분으로 이명박 정부는 공권력을 평택 자동차 공장으로 들여보내 노동자들이 지칠 때까지 도발을 함으로써 파업 노동자들의 폭력 대응을 유도하고 있다. 쌍용자동차측 사원들은 새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경찰들은 테이저총으로 무장하고 노조원들의 반격에 대응하기 위한 콘테이너 방어장벽 뒤에 숨어서 조금씩조금씩 도장공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도장공장 옥상에는 봉지 최루액을 살포하고 있다. 물, 가스, 음식을 끊은 것은 물론이고 부상당한 노조원들을 진료하기 위해 들어가겠다는 의사들마저 가로막고 있다. 22일 저녁에는 실제로 경찰이 전기총에 맞아 파업 노조원의 얼굴에 바늘이 박혔는데도 치료을 위한 의료진의 진입을 방해했다. 공장 외부에서 파업 노조원들과 연대하기 위해 나선 금속노조원들을 도로교통을 방해한다며 강제연행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상공에서는 투항하라는 선무방송이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노사를 중재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듯, 상황을 극한으로 몰고가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정부는 자동차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새총, 다연발사제총, 화염병 등 자구적(自求的) 무기들을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 혐의로 입건'(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695953)되도록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인가?
2009/07/23 00:30 2009/07/23 00:30
현재의 쌍용자동차 파업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사이 영국의 광부파업처럼 자본 재구조화(케인즈주의에서 신자유주의)를 알리는 신호인지, 아니면 한국의 1987년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에서 있었던 파업처럼 저임금장시간노동체제를 종식시킬 노동계급 재구성의 계기일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몇 가지 상황을 보아 1987년의 파업투쟁과 현재의 파업투쟁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전자가 임금상승, 노동조합결성,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들의 전진적 요구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면 후자는 정리해고라는 자본의 공세에 맞선 방어투쟁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는 광업의 몰락을 계기로 나타났던 영국 광부파업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몇 가지 진단들이 있다. (앞의 두 필자 모두가 자본측 인사들임을 고려하면서 읽어보자.)

자동차신문 Autotimes는 현재의 위기가 광잉생산으로 인한 순환위기라고 진단한다.

자동차산업이 위기라고 호들갑이다. 통상 특정 산업이 위기라는 건 시장이 붕괴되거나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21세기 자동차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아니고, 자동차시장이 붕괴된 것도 아니다. 다만 자동차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다소 비틀어졌을 뿐이다. ... 지난 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넘기고 80년대에 들어서자 자동차산업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성장을 시작 했다. 현대 생활 및 모든 산업의 동맥 역할을 하면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었고, 그에 따라 공급도 확충해야 했다. 더불어 시장 이 글로벌로 확대됨에 따라 저가격, 고품질을 위해 기술은 물론 시설과 판매망 구축에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했다. ...  그 결과 공급은 곧 수요를 초과하게 된다. 쉽게 보면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동차회사는 무이자 혹은 할부, 리스 등 새로운 마케팅기법 외에 여러 새로운 파생 금융기법과 결탁한 판매전략을 동원해 지속적 또는 강제적으로 수요를 늘 리면서 간신히 명맥을 이었다. 그런데 미국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불량 주택대출에 이은 자본유동성 문 제가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렸다. 그러면 주택대출금 회수가 어려워 시작된 자본유동성 문제가 왜 자동차산업에 먼저 튀었을 까. 한 마디로 그 동안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계에 돈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실물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주택담보와 같은 대출, 특히 이자와 환율이 요동치는 등 금융과 통화 시스템 자체 내에서 거품이 일어났던 것이다. 부실대출로 넘쳐난 돈이 자동차 가수요를 촉 발했다는 얘기다. 개인용 승용차는 신용과 할부로, 회사용 승용차는 장기 렌트와 리스 등 변형 및 파생된 각종 판매기법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 처럼 자동차 수요가 이른바 정상적인(?) 수요를 앞지른 데서 이미 위기의 싹은 트고 있었다. ... 불똥이 어떤 종류인지 제대로 살펴봐야 하는 까닭이 그래서 중요하다. 더구나 세계 모든 자동차메이커들이 다 불똥을 맞는 것도 아니 고, 세계 자동차시장이 축소 및 붕괴되거나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동안 과열된 금융과 부실한 통화 시스템 거품 에 쌓였던 수요가 이제 거품이 빠지려는 것, 즉 정상적인 수요곡선으로 회귀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자동차 대량생산업체 한두 곳 이 파산해 공급물량이 부족해지면 살아남은 업체들은 엄청난 호황을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부실금융의 불똥은 대부분 몸집이 큰 미국 빅3를 비롯한 대량생산업체에 타격을 주고 있다. ... 그러나 세계 자동차시장의 상황과 전망을 자세히 보면 감산을 위한 부분적인 공장폐쇄나 일시적인 공장가동 중단은 있을지 모르지 만 자동차회사 혹은 전체 공장의 완전폐쇄로까지 갈 파산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 이 확보되고, 수요에 따른 탄력공급 형태 등으로 바뀌면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0932
울산대의 조형제는 양산 업체의 매출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특장점을 살려 전문화하지 않고 C200과 같은 승용차 개발에 투자한 점 등, 기업의 투자정책 오류에서 쌍용차 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쌍용차가 무쏘나 렉스턴 등 SUV 차량을 주로 생산·판매한다고 해서 스포츠전문 자동차업체인 것은 아니다. 쌍용차는 체어맨 같은 승용차, 이스타나라는 버스까지 생산·판매한다는 점에서 양산(量産) 자동차업체다. 작년에 쌍용차는 내수와 수출시장에서 도합 8만 2000대를 판매했다. 이는 작년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 판매의 2.1%를 차지하는 것이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쌍용차 같은 소규모 양산 자동차업체의 판매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예고된 것이었다. 쌍용차가 몰락한 주된 이유가 샹하이자동차가 투자를 안하고 철수했기 때문인가? 오히려 샹하이자동차는 쌍용차의 몰락을 촉진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법정관리인에게 시급하게 요구됐던 것은 쌍용차를 전문적인 자동차업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회생방안이었다. 쌍용차는 고유한 SUV 기술과 높은 수준의 디젤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무쏘나 렉스턴 등은 나름의 디자인과 엔진 성능으로  쌍용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SUV 모델이다. 경제불황 속에서 SUV 모델의 판매가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쌍용차가 연비효율이 높고 환경친화적인 SUV 모델을 중심으로 전문화된다면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쌍용차는 무모하게 C200이라는 승용차를 개발하는 데 승부를 걸 것이 아니라, 경쟁력있는 SUV 신차종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회생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418.aspx



사회디자인 연구소의 김대호처럼 위기가 이것보다는 좀더 심각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는 쌍용자동차의 경우 미래 전망의 위기가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쌍용차의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유동성 위기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암울한 전망의 위기이다. 그 동안 쌍용차가 국내에서 선전한 요인은 뛰어난 스타일링도 있지만, 유가, 세제, 경쟁 환경이 협조했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주력(체어맨을 주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은 대부분 디젤(경유)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디젤엔진은 주로 트럭, 버스 같은 상용차에 장착되었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가솔린 보다 훨씬 낮은 세금을 매겼다. 그런데 세금 구조를 그렇게 가져간다면 유럽산 디젤 승용차가 한국 시장을 휩쓸어 버릴 수밖에 없다. 유럽은 한국과 달리 경유와 가솔린의 가격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 디젤엔진의 연비가 좋다 보니 유럽은 디젤 승용차가 절반이 넘는다. 한국이 유럽에 연간 수십만 대의 차를 수출하는 만큼 유럽 역시 한국에 자동차를 팔 권리가 있다. 그래서 경유에 붙는 세금을 가솔린과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2002년 이후 경유 세금을 점진적으로 올리면서 2008~9년 시점에서는 경유 가격이 가솔린 보다 더 높아져 버린 것이다. 이는 쌍용차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취득세, 등록세 등 자동차 세제 관련 유리한 점도 사라졌다. 게다가 이전에는 SUV(무쏘, 렉스턴, 액티온 등)차량을 출시하지 않았던 GM대우와 르노삼성도 SUV를 출시했다. 이 차들을 포함해서 현대, 기아차 역시 차체 구조상 쌍용차 보다 나은 SUV차량을 출시했다.  쌍용차는 차체가 프레임 타입인데 GM대우, 르노삼성, 현대, 기아는 모노코크 형이기 때문이다. (모노코크형은 프레임 타입에 비해 더 가볍고,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다) 쌍용차의 모노코크형 차체의 신형 SUV(C200)는 개발비가 정상적으로 집행되어도 2010년 경에야 나온다. 이 역시 쌍용차의 규모의 한계로 인해 차량 개발비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시가 늦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엔진 역시 개발비의 한계로 인해 아무래도 구형 모델을 오래 쓸 수밖에 없다. EURO 5 규제에 늦게 대응한 것도 역시 개발비의 한계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쌍용차 회사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개발비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러시아, 말레이시아 같이 관세 장벽이 매우 높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중용 차를 생산하는 회사 중에서 쌍용차 같은 규모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르쉐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를 만드는 회사는 대중용차 생산업체가 아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쌍용차의 중장기적 생존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는 10년 전에도 상식이었고 지금도 상식이다. 그래서 대우자동차에 넘겼고, GM에 넘기려 했고, 2004년에는 여러모로 궁합이 꽤 잘 맞을 것 같은 상하이차에 넘겼던 것이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71054


그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의 경쟁에서 경유 엔진 중심의 쌍용차가 뒤지고 있는 것이며 이 문제는 단순한 수요공급을 넘는 기술적 요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쌍용차 사태는 영국의 광산업의 사양(그것은 한국의 경우에도 같은 시기에 사북, 고한과 같은 파업사태로 나타났다)과 유사하게 자동차 산업 전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경유차 유형의 사양화 과정의 일부로 파악된다. 이에 따른다면 쌍용차 사태는 하이브리드형을 포함한 신차 중심의 자동차 산업 재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사회진보연대는 자동차 공급의 과잉이라는 순환론,에 자동차기업들이 금융투기에 동참해 왔고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그 여파가 몰아치고 있다는 분석을 덧붙인다.


쌍용자동차의 문제는 세계적인 자동차산업 위기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자동차산업은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과잉설비상태였다. 세계적으로 자동차기업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 속에서 신흥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현지공장 건설과 같은 방법으로 경쟁적으로 설비투자를 늘렸다. 특히 2000년대 세계적인 금융거품 속에서 자동차기업들은 금융부문을 확대하여 금융투기에 동참해왔다. 설비확장에 투자된 자본회수가 늦어지면서 자동차산업의 수익성이 하락했고,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자동차 금융 위축, 자동차 시장의 축소 등으로 자동차산업은 심각한 타격에 직면했다. 쌍용자동차는 이러한 세계 자동차산업 구조에서 아주 취약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투기자본이 개입하면서 경영상태가 더 악화되었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해서 아시아 최초로 부도직전에 내몰린 자동차기업이 되었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sola&id=642&page=1


단호한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입장을 유지하는 원영수는 쌍용차 파업이 신자유주의가 추방했던 점거파업 사태의 귀환 신호로 받아들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공세 아래서 노동조합은 직접적 공격의 주요한 타겟이었다. 1970년대 아래로부터 파업과 투쟁을 통해 형성된 투쟁력은 연이은 양보교섭으로 무력화되었고, 노동조합운동은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회복되는 노동운동의 투쟁력(1995년 프랑스 연금개악저지 파업과 1996-97년 한국의 총파업)을 통해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서서히 구축해 왔다. 그리고 2008-09년 경제위기에서 노동자들의 대응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30년의 후퇴와 패배를 겪고 나서, 신자유주의의 계급성과 기만성을 체득한 노동자들이 자본에 맞서서, 동요하는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거센 저항을 시작했다. 최근 몇 개월간 점거파업과 총파업의 물결이 휘청거리는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조합의 무풍지대인 미국에서 작년 12월 리퍼블릭 윈도우 & 도어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항의하여 수 십 년 만에 점거파업에 들어갔고, 승리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 비스티온과 프리즘 패키징, 아일랜드 워터포드 크리스탈 등에서도 점거파업을 감행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투쟁들이 점거파업의 무풍지대에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30년간 패배와 후퇴의 시기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흐름과 분리되어 전개되었던 한국의 민주노조운동 역시 이제 신자유주의, 아니 자본주의에 대한 공동투쟁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공황초입 국면에서 등장한 전투적 노동자투쟁의 큰 흐름에서 쌍용자동차 투쟁 역시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6720

대안을 제시함에 있어서도 그의 시각은 노사협조를 강조하는 동아일보의 시각과 대립한다. 동아일보는 쌍용자동차 노조와 민주노총을 극렬과격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GM을 본받으라고 훈계했다.


GM은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 40일 만인 이달 10일 파산보호 상태에서 벗어났다. 쌍용차가 거울삼아야 할 사례다. GM은 미국 내 근로자를 2만여 명 줄이고 14개 공장을 폐쇄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GM노조의 상급단체로 과거 강경투쟁을 주도했던 전미자동차노조(UAW)는 2015년까지 무파업을 약속해 미국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쌍용차노조는 GM노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 장관도 GM식 해법이나 GM대우와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전혀 고려한 바 없다”고 말했다. http://news.donga.com/fbin/output?f=i__&n=200907220100


이에 반해 원영수는 GM 노조와 전미자동차노조가 모범이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조와 금속노조, 그리고 민주노총이 모범임을 강조했다.

지난 5월 21일 전면 파업으로 시작된 쌍용자동차 점거파업은 97-98년의 경제위기시 파업투쟁의 맥을 이어 경제위기에 대한 정면으로 맞선 투쟁으로 시작되었다. 정부의 책임회피와 자본과 경영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옥쇄파업으로 정세를 돌파하고 있다. 양보교섭은 결코 안 된다! GM을 포함한 미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무엇을 보여주는가? 양보교섭은 대안이 아니다. 한 번의 양보는 더 많은 양보를 낳을 뿐이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경영진과 자본은 노동자를 죽이고 결국 자신마저 죽이기 마련이다. 국제적으로 자동차산업에서 노동비용은 10% 이하이며, 노동자의 책임은 1%도 되지 않음에도, 90%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 정리해고 안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단 말인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6720



아직 쌍용차 파업투쟁의 역사적 위치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쌍용차의 정리해고와 그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점거파업투쟁을 순환위기와 그 부산물로 볼 것인가, 자본간 경쟁과정에서의 경유차 부문의 도태와 그 부산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종말적 위기 속에서 노동자 투쟁의 재점화 과정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 문제는 제기되었지만 아직 충분히 분석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이 무엇인지 역시 안개 속에 있다. 더 많은 탐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튼튼한 기둥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본주의의 종국으로 진단한다면 성급한 것이리라. 하지만 자본주의가 산업노동자들의 점진적 임금상승을 통해 유지되어오던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조절되고 통제될 수 있는 국면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을 떠받치던 핵심적 노동대중층을 정리해고라는 방식으로 추방/배제하면서 자신을 더 날카로운 절벽위로 올려세우고 있다. 이것이 2000년대 초 대우차 사태와 2009년 쌍용사태를 통해 암시되는 진실의 일단이다.
2009/07/22 13:37 2009/07/22 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