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3권 5편 이자와 기업가 이득 세미나강좌 후기(4)<제29장 은행자본의 구성>
은행업자의 경제학에서는 화폐자본이 이자낳는 자본과 혼동되고 있지만 사실상 화폐자본은 상품자본과 생산자본과 구별되는 자본의 통과형태에 불과하다.
은행자본은 1)금이나 은행권 형태의 현금 2)유가증권(환어음과 국채, 재무성증권, 주식 등 이자낳는 증권)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은행업자의 투하자본일 수도 있고 예금일 수도 있다.568
국채는 의제자본으로서 자기의 독특한 운동을 갖는다. 이자낳는 자본은 불합리한 형태의 모체이며 은행업자의 머리 속에서 채무가 상품으로 나타나듯이, (실제로는 사라지고 없는) 국채라는 자본에서는 마이너스의 숫자가 자본으로 나타난다.570 의제자본의 자본화는 규칙적인 수입을 평균이자율로 대출된 자본이 낳을 수입으로 간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여기세서 자본의 현실적인 가치증식과정과의 관련은 최후의 흔적까지 사라지고 자본이 자기증식한다는 관념이 공고해진다.571
주식은 투하된 자본에 의해 실현될 잉여가치에 대한 소유권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소유권의 가치(즉 시장가격)가 독립적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이 소유권이 자본이나 청구권 이외에 자본을 구성하고 있다는 환상이 강화된다.572
증권의 시장가치가 미리 계산되는 예상수입에 의해 결정되는 점에서는 투기적이다. 증권의 가격은 수입의 자본화(수입을 현행의 이자율로 나눈 환상적 자본)에 불과하며 이자율과 반비례하여 등락한다. 모든 증권들은 미래 생산에 대한 누적된 청구권(법적 권리)를 대표할 뿐이다. 화폐자본의 축적은 이 청구권의 축적을 의미한다.574
채권(환어음), 국채(지출해 버린 자본을 대표), 주식(미래 수입에 대한 청구권)으로 구성되는 은행자본은 그것이 대표하는 현실적인 자본의 가치와는 다르게 결정되기 때문에 의제적(가공적)이며 이 자본의 대부분은 자기자본이 아니라 국민의 자본이다.575
신용제도의 발달에 따라 동일한 자본, 동일한 청구권이 상이한 형태로 여러사람들의 수중에서 나타나는 상이한 방식 때문에 두배, 세배로 되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이 은행업자에게 행한 대부인578) 예금은 준비금 외에는 은행업자의 채무에 불과하며 결코 예탁현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금은 은행업자에 의해 대출된 뒤에 은행업자를 위한 자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576
동일한 화폐조각이 유통속도에 따라 다수의 상이한 구매를 수행할 수 있으므로 동일한 화폐조각은 각종의 상이한 대부에도 사용될 수
있다. 동일한 화폐가 실제로 몇 개의 자본을 대표하는가는 그 화폐가 각종의 앙이한 상품자본의 가치형태로서 몇 번이나 기능하는가에
달려 있다.578
<제30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1>
이 장에서 맑스가 제기하는 문제는 1)화폐자본의 축적이 어느 정도로 진정한 자본축적의 지표인가? 2)화폐의 부족이 어느 정조로 실물자본의 부족의 표현인가? 이다.
문제 1)에 대한 연구:
*국채형태의 자본축적은 채무의 축적조차 자본의 축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즉 신용제도에 의한 왜곡의 최고형태를 보여준다.584 *주식은 실물자본에 대한 처분권이 아니라 그 자본이 끌어낼 잉여가치의 일부에 대한 법적 청구권일 뿐이다. 그것은 실물자본의 가치운동과는 무관하게 등락한다는 점에서 실물자본의 운동의 지표일 수 없다. 하지만 주식의 축적이 철도, 광산, 기선 등의 축적을 표현하는 한 그것은 현실적 재생산과정의 확대를 표현할 수 있다.585 *화폐자본의 축적은 은행업자의 수중에 부가 축적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신용제도의 거대한 팽창과 신용전체가 은행업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사적 자본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이 계급의 부의 축적은 현실적 축적과는 매우 상이하게 진행될 수 있지만, 그들은 현실적 축적의 상당부분을 집어삼킨다. *국채, 주식, 유가증권은 대부자본의 투자대상이지만 대부자본은 아니다. 맑스가 문제로 삼는 것은 대부자본의 축적, 특히 (가옥, 기계, 기타 고정자본의 대부나 산업가, 상인 사이의 선대가 아니라) 대부화폐자본의 축적이다.586
출발점은 환어음이 대표하는 상업신용이다. 상업신용에서 상호간 채권의 결제는 자본의 환류[C--M]에 달려 있다. 그리고 신용은 상호간에 주고받으므로 각자의 지불능력은 동시에 타인의 지불능력에 달려 있다. 상업신용은 현금지불의 필요성을 제거하지 않는다. 상업신용의 한계는 1)준비자본 2)자본의 환류이다.588
노동생산력과 대규모 생산이 발달함에 따라 1)시장은 확대되고 생산지로부터 멀어지며 2)신용이 장기화하지 않을 수 없고 3)투기적 요소가 거래를 더욱 지배하게 된다 신용은 필수적이며 생산과정의 발달은 신용을 확대하고 신용은 다시 산업활동과 상업활동을 확대한다.589 상업신용에서는 대부자본과 산업자본이 동일하다. 왜냐하면 대부자본은 상품자본이기 때문이다. 상업신용이 많다는 것은 유휴자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과정에서 자본이 크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591 물론 환류의 지체나 시장의 포화, 가격의 하락에 의해 정체가 나타나면 산업자본의 과잉이 드러나고 상업신용은 수축된다. 위기에 대한 맑스의 서술: 언제나 모든 현실적 공황의 궁긍적 원인은 더 많은 생산의 충동과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대중의 소비능력 사이의 모순이다.593
낮은 이자율이 공황 후의 호전 및 신뢰회복과 함께 나타나는 회복기와 이자율이 평균적 수준에 도달하는 번영기에만 풍부한 대부자본과 산업자본의 대팽창이 공존한다. 불황기에는 낮은 이자율과 산업자본의 수축이 함께 나타나며 산업순환의 최종국면에서는 높은 이자율과 산업자본의 과잉이 함게 나타난다.599
공황기에는 지불수단의 부족이 나타난다. 그래서 첫눈에는 모든 공황은 신용-화폐공황인 것처럼 보인다. 공황에서는 어음을 화폐로 전환시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공황에서는 모든 것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생산과정은 보이지 않고 지금, 금속주화, 은행권, 어음, 유가증권만이 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의제적인 화폐자본은 공황중에 크게 감축되며 이리하여 그것의 소유자가 그것을 담보로 시장에서 화폐를 차입하는 힘도 크게 감축된다. 증권들의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그 증권들이 대표하는 실물자본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지만 그 소유자들의 지불능력에는 큰 영향을 미친다.604
<31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2>
문제 2)에 대한 연구:
화폐가 대부자본으로 전환되는 경우는 두 가지, 즉 1)화폐가 단순히 대부자본으로 전환되는 것 2)자본 또는 수입이 대부자본으로 전환되는 화폐로 전환되는 것인데, 2)의 경우만이 산업자본의 진정한 축적과 관련을 갖는다.605
<32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3>
대부자본의 축적은 화폐가 대부가능화폐로 침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실물자본으로의 전환과는 매우 상이하며 진정한 축적과는 상이한 계기들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축적의 결과일 수도 있고 정체의 결과일 수도 있다. 화폐자본의 과잉과 더불어 생산과정을 자본주의적 한계를 넘어 확대시키는 필연성(과잉거래, 과잉생산, 과잉신용)이 전개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언제나 반작용을 야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622
자본은 개인 자신의 노동과 저축의 산물이라는 최후의 환상이 깨어진다. 이윤이 타인노동의 취득일 뿐만 아니라 타인노동을 운동시켜 착취하는 자본도 타인의 재산이라는 점이다. 이 타인의 재산을 화폐자본가가 산업자본가의 처분에 맡기고 그 대신 전자가 후자를 수탈한다.623
대부자본은 대부분 가공적인 것으로 가치청구권일 뿐이다. 자본의 순환에서 기능하는 화폐자본은 생산자본의 요소들과 교환되거나 소득의 실현에서는 유통수단으로 지출되며 대부자본으로 전환될 수 없다. 화폐가 대부자본으로 전환되고 동일한 화폐가 반복해서 대부자본을 대표하는 한, 그 화폐는 하나의 지점에서만 금속화폐로 존재하고 다른 모든 지점들에서는 화폐청구권의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청구권의 축적은 진정한 축적(상품자본 등의 가치가 화폐로 전환된 것)으로부터 발생하지만, 이 청구권 또는 채권의 축적은 자신의 원천인 진정한 축적과 상이하고 화폐의 대부에 의해 매개되는 장래의 축적(새로운 생산과정)과도 상이하다.624
물질적 부의 증대에 따라 화폐자본가 계급이 성장한다. 한편에서는 은퇴한 자본가들(금리생활자들)의 수와 부가 증대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신용제도가 더욱 발달하여 은행업자 화폐대부자 금융업자 등의 수가 증가한다. 가용화폐자본의 증대와 함께 이자낳는 증권(예: 국채, 주식)의 양도 증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용화폐자본에 대한 수요도 증가한다. 왜냐하면 이자낳는 증권에 투기하는 증권중개인들이 화폐시장에서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626
화폐핍박기에 대부자본에 대한 수요는 지불수단에 대한 수요인데, 이것은 실물자본의 화폐로의 전환에 대한 요구일 수도 있고 화폐자본에 대한 수요일 수도 있다.633
맑스는 태환정지의 의미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다: 화폐가 가치의 자립형태로서 상품과 대립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이다. 특정상품이 일반적 상품으로 되어 다른 상품들을 측정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신용조작이나 신용화폐에 의해 화폐를 대규모로 대제하고 있는 발달한 자본주의국에서 이
토대는 이렇게 드러난다. 1)신용이 수축하거나 고갈되는 핍박기에는 화폐가 갑자기 유일한 지불수단 및 가치의 진정한 존재형태로서 모든 상품과 절대적으로 대립한다. 상품의 일반적인 교환가치 감소가 일어나며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키는 것이 곤란해지거나 불가능해진다. 2)신용화폐가 화폐일 수 있는 것은 명목가치액만큼 진정한 화폐를 대표하는 한에서이다. 금유출과 더불어 신용화폐가 화폐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의문시된다. 이 때문에 태환조건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자율의 인상 등 강제조치가 취해진다. 이것은 은행입법에 의해 다소 극단까지 추진될 수 있다. 이것의 바탕은 생산양식의 토대에 의해 제공된다. 신용화폐의 평가절하는 모든 기존의 관계를 동요시킬 것이다. 신용화폐가 화폐적 속성을 완전히 상실한다면 더욱 큰 문제일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바로 맑스가 가정한 이 문제가 일상적 현실로 되어 있다-아멜라노] 그리하여 상품들의 가치는 이 가치의 환상적 자립적 존재형태인 화폐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된다. 상품의 화폐가치는 화폐가 보증되고 있을 때에만 보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천만원어치의 상품들이 몇백만원어치의 화폐를 위해 희생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불가피하며 그것의
매력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전의 생산양식에서는 이러한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생산양식들이 운동하는 좁은 토대 위에서는 신용이나 신용화폐가 발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의
사회적 성질이 상품의 화폐적 존재로서 그리하여 현실적 생산밖에 있는 하나의
물건으로서 나타나는 한, 화폐공황--진정한 공황과는 무관하거나 진정한 공황을 격화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은행에 대한
공신력이 동요되지 않는 동안[이제 그것은 국가에 대한, 심지어 제국에 대한 공신력의 문제로 되었다-아멜라노]은 이러한 경우에 자기의 신용화폐를 증가시킴으로써 화폐공황을 완화시킬 수 있고 신용화폐를 회수함으로써 화폐공황을 격화시킬 수 있다[이것은 이제 국가/제국의 정책으로 나타난다-아멜라노]. 만약 국내의 생산이 조직화되어 있다면 금속은 국제무역에 일시적 불균형이 발생할 때 그것의 결제를 위해서 필요할 뿐이다. 국내에서는 금속화폐가 필요 없다는 것은 국립은행들의 태환정지(극단적인 경우에 긴급대책으로 채택되긴 하지만)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1971년 이후에는 국제은행들의 태환정지가 현대경제의 일상적 현실이다. 이것은 세계적 생산의 조직화를 보여주며 제국에 대한 공신력(이것은
감정의 문제이지 않은가!)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메커니즘이다.-아멜라노].634
<33장 신용제도에서의 유통수단>
유통화폐의 절대량이 이자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오직 화폐핍박기뿐이낟. 기타의 경우에는 통화의 절대량은 이자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째로 그 절대량은 상품가격과 거래량, 그리고 신용상태에 의해 결정되지 그 절대량이 신용상태를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상품가격과 이자는 어떤 필연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651
공황기의 국내 화폐공황을 제외하면 화폐량의 문제는 오직 금속화폐 즉 세계화폐에 관한 것이다. ... 진정한 화폐는 세계시장화폐이며 신용화폐는 항상 세계시장화폐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다.660
공황시에는 어음유통은 완전히 중단된다. 모두가 현금지불만을 받으려하기 때문이다. 은행권만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영국에서 유통능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나라의 부 전체가 영란은행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665[이 표현은 "오늘날 세계의 부 전체가 미국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바꿀 수 있지 않을까?-아멜라노]
영란은행이 금속준비에 의해 보증되지 않는 은행권을 발행하면 이 은행은 발행한 은행권의 명목가치에 상응하는 금액만큼의 추가자본을 얻는다. 그리고 이 추가자본은 그 은행에게 추가이윤을 가져온다. 사입은행의 경우도 금속준비를 하지 않는 만큼의 발행화폐를 추가자본으로 만들며 추기이윤을 얻는다. 은행업자가 금속화폐의 국민적 절약으로부터 이윤을 얻고 있는 것이다. 국민적 절약이 사적 이윤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윤일반이 국민적 노동의 취득이기 때문이다. 1797~1817년에 영란은행은, 은행권을 종이로부터 화폐로 전환시키며 그것을 국가에 대부하는 (국가가 부여한) 권한을 통해 국채이자라는 형태로 국가(즉 국민)로부터 보수를 받았는데 이것보다 더욱 괴상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667
은행이 신용과 자본을 창조하는 방법은 이처럼 1)자기자신의 은행권을 발행한다 외에 2)현금을 받고 21일짜리 런던 앞 어음을 발행한다. 3)이미 할인된 어음을 다시 사용한다 등이다.667
영란은행의 힘은 시장이자율을 규제한다는 점에서 나타난다.667
국립은행들과 대규모화폐대부업자들이나 고리대금업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신용제도는 하나의 거대한 집중이며 이 기생계급에게 놀랄만한 권력--산업자본가들을 주기적으로 죽일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방식으로 현실의 생산에 간섭하는 권력--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기생계급들은 생산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생산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670
<35장 귀금속과 환율>
금은은 어떻게 기타 형태의 부와 구별되는가? 금은은 부의 사회적 성격의 자립적인 화신이며 표현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왜냐하면 화폐를 매개로 해서만 개인의 부가 사회적 부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부의 사회적 성격은 화폐라는 물건에 체현된다. 부의 사회적 존재는 저 세상의 것으로서, 사회적 부의 실물요소들과 나란히 그리고 그 외부에 존재하는 물건, 대상, 상품으로 나타난다.705
신용도 부의 사회적 형태인데 화폐를 축출하고 그 지위를 빼앗는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신뢰가 생산물의 화폐형태를 일시적이고 관념적이며 단순한 표상으로 나타나게 만든다. 그러나 신뢰가 동요되자마자(그런데 이것은 근대산업의 순환에서는 필연적이다) 모든 실물적 부는 화폐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이 불가능한 요구가 체제 그 자체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금/은은 기껏해야 영란은행 금고에 있는 수백만 스털링 파운드에 불과하다.706
그러므로 금유출은 그 영향을 통해서, 생산이
사회적 생산이면서도
사회적 통제를 실제로 받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부의 사회적 형태(화폐)가
부 그 자체와 나란히 하나의 물건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자본주의체제뿐만 아니라 (상품거래와 사적교환을 토대로 하고 있는 한에서의) 이전의 생산체제들에도 타당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 불합리한 모순과 역설의 가장 명확하고 괴상한 형태가 나타난다. 왜냐하면 1)자본주의체제에서는 직접적인 사용가치를 위한 생산은 거의 완전히 폐지되고 있으며 부는 생산과 유통의 얽힘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과정으로서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2)신용제도의 발달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은 끊임없이 이 금속에 의한 제한(이것은 부와 그 운동에 대한 물질적 제한일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제한이기도 하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만 또 끊임없이 반복하여 이 제한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공황에서는 모든 어음과 유가증권과 상품이 동시에 은행화폐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하며 그리고 모든 은행화폐는 또 금으로 전환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타난다.706
결국 맑스는 화폐에 의한 사회적 부의 재현 방식은 화폐부족 공황을 필수적으로 가져온다는 것, 신용에 의한 이 한계의 극복시도는 거대해진 사회적 부와 화폐체제의 협소성 사이의 모순을 극단화한다는 것이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은 화폐와 같은 사회적 성격의 물건에 의해서도, 신용제도와 같은 사회적 성격의 기관에 의해서도 감당될 수 없고 진정한 사회적 통제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신용제도에 대한 국가의 보증, 세계적 수준에서는 달러에 의한 신용제도 보증은 귀금속이나 은행보다 더 발본적인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순은 극복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세계화된 사회적 생산에 걸맞는 진정한 사회적 통제의 방법은 무엇일까? 가라타니 고진은 그것을 세계공화국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고 네그리와 하트는 공통체Commonwealth라는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때 귀금속, 은행권, 유가증권, 세계화폐 등은 어떤 위치, 역할, 형태를 취하게 될까?-아멜라노.
환율은 다음과 같은 사정에 의해 변동될 수 있다: 1)당면의 국제수지에 의해서 2)한 나라의 화폐[금속화폐든 지폐든]의 가치감소에 의해서 3)은을 화폐로 사용하는 나라와 금을 화폐로 사용하는 나라사이의 환율은 이 두 금속의 상대적 가치변동에 따라서.728
화폐제도는 기본적으로 카톨릭제도이고 신용제도는 기본적으로 프로테스탄트제도이다. "스코틀랜드 사람은 금을 싫어한다". 지폐로서 상품의 화폐적 존재는 순전히 사회적 존재이다. 구원을 받는 것은 믿음에 달려 있다. 상품에 내재하는 영혼으로서의 화폐가치에 대한 믿음, 생산양식과 그것의 예정된 질서에 대한 믿음.[모든 사람이 자본주의를 믿으면 화폐소유자나 신용보유자는 구원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망할 것이다.-아멜라노] 자기증식적인 자본의 단순한 인격화로서의 개별생산담당자에 대한 믿음. 그러나 프로테스탄트교가 카톨릭교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용제도도 화폐제도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물론 화폐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제도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아멜라노]
<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
고리대 자본을 위해서는 생산물의 일부가 상품으로 전환되고 화폐의 각종 기능들이 발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자본주의 이전에 고리대는 낭비적 귀족에 대한 고리대, 소생산에 대한 고리대로 존재했다. 이 두 신분을 파멸시킴으로써 고리대는 화폐자본의 거대한 집적을 초래한다. 고리대는 실로 생산자의 필요생존수단 이상의 모든 것을 이자의 형태로 집어삼켰다. 고리대 자본은 생산방식을 변경시키지 않으면서 직접적 생산자의 모든 잉여노동을 취득하므로 생산자에 의한 노동조건의 소유 또는 점유가 전제임에 반해 자본은 노동을 직접 종속시키지 않는다. 고리대는 생산양식을 궁핍하게 만들며 생산력을 발전시키지 않고 마비시키며 이 비참의 상태를 항구화한다.730~733
고리대는 소유형태를 파괴하고 분해하는 역할을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의 조건들이 존재하는 곳, 때에만 고리대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형성하는 수단의 하나로 등장한다.735 고리대는 생산과 생산의 틈새에서 살면서 생산자가 직면하는 사건, 재해, 지불의무의 집중 등을 계기로 생산자로부터 노동조건을 박탈한다. 평민들을 채무노예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737
신용제도는 고리대에 대한 반발로서 발전한다. 이것은 이자낳는 자본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조건과 요구에 종속된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차입자가 이제 무일푼의 재능가일 수 있게 된다. 이자낳는 자본은 그가 자본가로 기능하면서 차입자본을 사용하여 부불노동을 취득하도록 만든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최우수인물을 흡수하는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지배는 그만큼 강고해지며 그만큼 더 위험한 것으로 된다.740
고리대를 대체하는 신용제도의 역사적 실험들로는 공영전당포, 상인들의 신용조합, 생시몽의 크레디 모비리에와 같은 신용은행 등의 설립이 있다. 이것들의 일관된 지향은 이자낳는 자본을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근대적 은행제도들은 유휴화폐준비금을 수집하여 화폐시장에 투입함으로써 고리대자본의 독점력을 빼앗고 신용화폐를 창조함으로써 귀금속의 독점적 지위를 제한한다.745
신용제도가 발달하더라도 귀금속형태의 화폐가 여전히 토대이고 이 토대로부터 신용제도가 벗어날 수 없다는 점, 신용제도는 사회적 생산수단의 사적 개인에 의한 독점적 소유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신용제도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형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산양식을 그 가능한 한의 최고.최후의 형태로 발달시키는 추진력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747
은행제도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만들어낸 가장 인위적이고 정교한 산물이다. 은행은 사회적 규모에서 생산수단의 일반적 부기와 분배형태를 제공한다. 개별자본가가 총잉여노동으로부터 자신이 총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분배받는 것, 즉 자본의 사회적 성격은 신용, 은행제도의 충분한 발달에 의해 비로소 매개되고 완전히 실현된다.747 이 신용, 은행제도는 더 멀리 전진한다. 그 제도는 사회의 모든 이용간으한 자본, 그리고 아직 적극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잠재적 자본가지도 산업자본가와 상업자본가의 처분에 맡기며 이 자본의 대부자도 사용자도 이 자본의 소유자 또는 생산자가 아니다. 그리하여 신용, 은행제도는 자본의 사적 성격을 폐기하며 따라서 자기자신 안에 자본 그것의 폐기를 잠재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은행제도는 자본의 분배를 사적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의 수중으로부터 빼앗아 하나의 특수한 업무, 사회적 기능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렇기 때문에 은행과 신용은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추진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되며 그리고 공황과 사기의 가장 유효한 매개물의 하나로 된다.747~8
은행제도는 화폐를 각종 형태의 유통하는 신용으로 대체함으로써 화폐는 사실상 노동과 노동생산물의 사회적 성격을 특수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748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결합노동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과정에서 신용제도가 강력한 지렛대로 역할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신용제도는 생산양식 그것의 대규모 조직적 변혁과 고나련하여 다만 하나의 요소로서 역할할 뿐이다. 사회주의적 의미에서의 신용 은행제도의 기적적 힘에 대한 환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 생산양식의 형태들의 하나로서의 신용제도에 대한 완전한 무지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생산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기를 중단하자마자(여기에는 사적 토지소유의 폐지도 포함되어 있다) 시뇽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 신용은 소유가 조직되는 방식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신용은 소유의 이러한 조직과 운명을 같이 한다.749
상인자본은 어떤 매개적인 활동이 이루어지지만, 이자낳는 자본은 자본의 자기재생산적인 성격 즉 자기증식적인 성격, 잉여가치의 생산이 순전히 신비한 속성으로 나타난다.750
결국 맑스의 논지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 사회적 노동을 관리하고 발전시킬 사회적 통제의 형식, 사회적 권력형태를 어떻게 창출하는가에 모아진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위에서만 발전할 수 있는 화폐, 신용과는 다른 방식의 사회적 통제양식, 그러한 통제양식을 내적 계기로 삼는 생산양식은 어떻게 가능한가?-아멜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