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전자화. 기계화와 전기화를 넘는 전자화가 급발진이나 시동정지 등의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그것이 자동차 내부적인 전자파 장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로나 가로 등 주변에 위치한 전자장치들와의 관계(전자파 교란)에 의한 것이라면 자동차의 전자화가 가져오는 생명에의 위협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이제 자연이용 기술을 넘어 자연보호 기술이 중요해진 것처럼 개체화된 기술이 아닐 흐름의 기술, 관계의 기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2010/02/18 20:55 2010/02/18 20:55

장례식과 송별회

Posted at 2010/02/09 07:33//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장례식이 죽은 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산 자들의 자리와 마음의 정리를 위한 것이듯이 송별회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남은자들의 마음과 관계의 정리를 위한 것이다. 양자의 공통점은 떠나는 사람을 확실히 보내는 것이며 그 빈 자리를 공동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다지 필요 없어보이는 장례식과 송별회가 커다란 위엄이나 정서적 진동을 갖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2010/02/09 07:33 2010/02/09 07:33
Tag

크리스 하먼의 죽음

Posted at 2009/12/09 22:35//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크리스 하먼이 11월 6일에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연설 도중에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를 오늘 읽는다. 1942년 생이니 67세의 아직은 이른 때이다. 이에 대한 좀더 자세한 기사는 이곳을 참조. 그의 책을 몇 권 번역하고([오늘날의 세계경제: 위기와 전망], [오늘날의 노동자계급],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등을 이원영이라는 필명으로 번역출간) 또 출판하면서( [동유럽에서의 계급투쟁] 등) 나는 현실 사회주의의 계급적 정치적 성격에 대해 눈을 뜰 수 있었다. [소련의 해체와 그 이후의 동유럽]에 실린 크리스 하먼의 글 [폭풍이 인다]는 곧 책갈피 출판사에서 문고본으로 독립되어 출간될 예정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2009/12/09 22:35 2009/12/09 22:35

이름을 넘어서

Posted at 2009/11/17 11:01//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XX 당, XX 노동조합, XX협동조합, XX연합체, XX 모임, XX 네트워크 등등을 그 이름에서 식별하기보다 그 질에서 식별하고 이름을 넘어서는 공통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자. 이름들을 가로지르는 공통성이 이름의 차이 때문에 묻히며 질적 차이가 이름들의 유사성 때문에 가려지기 때문이다.
2009/11/17 11:01 2009/11/17 11:01
Tag ,

삶앎 혹은 앎삶

Posted at 2009/10/22 11:25//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삶과 분리된 앎이 있다. 앎의 양이 늘어나는데도 삶이 바뀌지 않는 앎이 그것이다. 그것과 다른 유형의 지식, 즉 삶앎은 앎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반대로 삶이 달라지는 데도 앎이 달라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적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동이 그것이다. 맹목적이고 습관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추종적이고 단순복제적인 행동이 그것이다. 이럴 때 삶형태는 바뀌지만 앎은 그래도 머물곤 한다. 그러므로 다른 유형의 지식에 대한 요구는 다른 유형의 행동에 대한 요구가 함께 간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삶앎/앎삶은 어떤 조건에서 누가 어떻게 생성할 수 있을까?

2009/10/22 11:25 2009/10/22 11:25
Tag , , ,

육식하는 벌

Posted at 2009/10/07 09:40//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덕유산에서 캠핑을 하고 있을 때 벌 한 마리가 날아왔다. 테이블에 떨어진 작은 돼지고기 조각 위에 앉는다. 뭔가를 열심히 빨더니 이윽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댄다. 자세히 보니 고기를 씹어서 아주 작은 크기로 썰고 있다. 얼마후 그 벌은 떼어낸 고기조각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육식하는 벌이 생겨난 것일까? 고기 속의 당분만 빨아먹는 것일까?
2009/10/07 09:40 2009/10/07 09:40

중국이 위험하다

Posted at 2009/08/20 18:24//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영화 [삼국지]에서 촉나라 병사들은 죽어가면서도 '촉나라 만세'라고, 위나라 병사들은 '위나라 만세'라고 외친다.  드라마 [이소룡 전기]에서 이소룡은 모든 무술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일관되게 '무술은 중국에서'라고 외친다. 중국이 위험하다.
2009/08/20 18:24 2009/08/20 18:24

임금, 일자리보다 소득

Posted at 2009/08/07 18:11//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쌍용자동차에서의 투쟁을 중세 전투에 비교하면서 "기업 없이 고용 없다"(사실은 정반대다! 노동 없이 기업 없지만 기업이 없다고 노동이 없지는 않다.)는 낡은 부르주아적 문구를 반복하는 BBC의 기사 "Who won epic South Korean battle?"에서 귀에 담아둘 구절은 이 기사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어떤 관찰자의 전언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outh Korea's trade union movement needs to be so strong because the welfare system is so weak compared with other wealthy economies. Jobs ... are worth fighting for.

한국에서 노조가 강해야 하는 이유는 복지제도가 다른 부유한 나라들에 비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일자리는 싸워서 쟁취해야 할 가치가 있다.


쌍용자동차 투쟁이 보여주듯이 일자리 확보를 통한 삶의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면 복지를, 무엇보다도 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공장 차원을 넘는 사회적 다중들의 연합을 필요로 하는 투쟁다. 80년대의 투쟁이 임금을 둘러싼 것이었고 90년대 후반 이후의 투쟁이 일자리를 둘러싼 것이었다면 이제 그 초점은 소득을 둘러싼 것으로 이전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이 생산자본을 통한 노동시간에 대한 착취보다 금융자본을 통한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착취로 축적전략을 바꿨기 때문이다. 소득보장을 위한 이 투쟁의  성공적 진전은 사무실과 공장, 정규와 비정규, 여성과 남성, 대공장과 중소공장, 취업자와 실업자 등으로 조각조각 갈라져 있는 현대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연합시키는 것이 필요한 만큼 사회의 분열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2009/08/07 18:11 2009/08/07 18:11
현대인들은 서핑, 즉 파도타기를 잘 한다고 말한다.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서핑과 플로팅(혹은 drifting)에는 차이가 있다.
서핑은 자신의 도구를 갖고 흐름을 타는 것이다. 반면 플로팅은 흐름의 물살에 떠밀리는 것에 가깝다. 그것은 자신의 도구를 갖지 않고 물의 힘에 좌우되는 것이다.
서핑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많은 것들이 플로팅에 가깝다.
자신을 잃고 부유하거나 표류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다.
물살을 횡단하면서 새로운 형태를 창조하는 서핑은 능동적인 것이다.

2009/07/16 20:26 2009/07/16 20:26
2009년 상반기 노사합의 임금인상률이 1.4%라는 것은 임금이 실질적으로는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인플레이션율보다도 낮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 노동부)
2009/07/14 11:23 2009/07/14 11:23

토대로서의 언어

Posted at 2009/07/13 18:01//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오늘날 언어는 모든 것의 토대로 되고 있다. 사회와 삶의 언어학적 전환의 의미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일리치나 폴라니 등은 버내큘러vernacular를 강조한다. 그것은 국가나 세계 이전의 지역적 삶을 지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지역어가 아니라 민족어나 세계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자마자 버내큘러의 의미가 바뀌기 시작한다. 누가 이웃인가?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이웃이 되고 그 사람들과 마을이 꾸려진다. 지역, 마을, 동네, 이웃은 언어학적으로 정향된 삶에서는 공간적 제약을 넘어선다. 세계시민들이 나의 이웃이 되고 세계가 나의 동네(지구촌)가 될 때, 고전적인 의미의 이웃과 동네의 표상은 폐기되어야 한다. 

E-resumo: Hodiaŭ lingvo estas la bazo, lando estas la superstrukturo.



2009/07/13 18:01 2009/07/13 18:01

87년과 08년

Posted at 2008/06/12 00:58//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87년에는 08년이 부족하고 08년에는 87년이 부족하다.
그것을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87년은 생산자 운동적이고 08년은 소비자 운동적이다.
생산과 소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다.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형상,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지 않는 형상, 예술가의 형상이 08년의 미래를 규정하게 되지 않을까?
2008/06/12 00:58 2008/06/12 00:58

08혁명의 의미

Posted at 2008/06/12 00:38//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08혁명은 아우또노미아의 타당성을 물질적으로 보여준다.
전위적 좌파 논리는 좌초한다.
어려움은 전위적 좌파와 사회적 자율적 좌파 사이의 논쟁에 있지 않다.
현재의 광장과 거리에 공통의 창조를 둘러싼 엄청난 정서적 지적 신체적 고투가 있다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상상력의 실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향한 포스트모더니스트 지식인들은 디지털, 탈근대 등의 두리뭉실한 말들로 현장에서의 예민한 문제들을 뻘칠하고 있다.
지금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무엇으로 될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점검되고 상황 속에서 발견되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만큼  큰  고투를 요구하는 것이 지금까지 있었던가?
2008/06/12 00:38 2008/06/12 00:38

간과 관

Posted at 2008/06/11 22:14//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보는 자의 관념이 투영되는 것: 관
지나치며 직관적으로 보는 것: 간
2008/06/11 22:14 2008/06/11 22:14

소비자 운동의 힘

Posted at 2008/06/08 23:10//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맥도날드
조중동
조중동에 광고한 기업들
그리고 이명박이 씨이오인 한국주식회사
2008/06/08 23:10 2008/06/08 23:10

2008년 촛불시위의 헤게모니

Posted at 2008/06/08 22:42//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주도적인 것
여성이 남성을 이끈다.
청소년이 성인을 이끈다
디지털(인터넷)이 아날로그(신문)를 이끈다
소비자운동이 생산자운동을 이끈다
비물질노동(문화)이 물질노동(산업)을 이끈다.

뒤따르는 것
노동자가 시민을 따른다
지식인이 대중을 따른다
정당들이 대중을 따른다
2008/06/08 22:42 2008/06/08 22:42

불법

Posted at 2008/06/02 00:37//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경찰이 전경버스를 동원해 광화문 사거리를 봉쇄하자 시민들이 이를 넘어서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밤 10시께 시민들은 밧줄로 한 대의 전경버스 바퀴를 묶어 일부 끌어냈다. 버스로 막은 길을 트기 위한 것이었다.
경찰은 "전경버스를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경고 방송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민들은 "전경버스는 우리 세금으로 만들었다"고 외쳤다.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도 있었다.
전경버스에는 인쇄된 '주차 위반 스티커'도 붙었다.
내용은 "이 차량은 아래와 같이 불법 주차했기에 헌법 1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의거 전 민중의 힘으로 견인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되어있다.
또 "이처럼 큰 차량은 혼자 힘으로 주차할 수 없기에 배후 세력을 끝가지 추적해 처벌하겠다, 단속자 : 이 땅의 양심적인 민중, 위반자 이명박 및 해당 경찰서장 귀하"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스티커는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주차위반이라고 인쇄 되어 있다.
경찰이 시민들에게 "지금 불법 시위를 하고 있다"고 계속 경고하자, 시민들은 "이명박이 불법이다,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편 밤 9시 30분께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종로 쪽으로 행진했다. 시민들이 갑자기 종로 쪽으로 향하자 미처 피하지 못한 전경버스 한 대가 고립되어 시민들 틈에 갇히기도 했다.
종로로 향하던 시민들 가운데는 특이하게 여성들로만 이뤄진 시위 대열도 있었다. 이 여성 시위대는 MLB 파크·소울드레서·쌍코·새틴 등 4개의 인터넷 카페로 이뤄졌다.
이들은 여자들 위주로 전혀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대단히 세련된 의상을 입은 이들은 네줄로 서서 마스크를 쓴 채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2008/06/02 00:37 2008/06/02 00:37
협상무효
고시철회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병박은 물러가라
비폭력


피켓
사주가 아니라 자발성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08/05/28 07:03 2008/05/28 07:03

자본주의의 몇 가지 단계

Posted at 2008/05/11 11:40// Posted in 쓰기(skribi)/단문_F
자본주의는 먼저 폭력(상인자본주의)에 의지했고 다음에 국가권력(산업자본주의)에 의지했고 다음에 시장(인지자본주의)에 의지했으며 이제 전쟁(전쟁자본주의)에 의지한다.
국가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시장과 전쟁이 비판되어야 한다.
2008/05/11 11:40 2008/05/11 11:40
삶정치적인 공통적 생산의 산물이 사유화되어 공적 자금이라는 형태로 축적된다. 학진 기금이나 문예진흥 기금은 그러한 자금의 일부이다.

이에 대한 태도들이 몇 가지 존재한다.
1. 공적자금은 임금 이외에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임금의 한 형태이므로 적극적으로 받아서 사는 데 이용하자.
임금의 획득이 노동자간의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사회적 임금도 시민 개인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획득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장 부르주아적인 생각이며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노동자간 경쟁을 자연화하고 그만큼 부르주아 사회를 추인한다. 공적 자금의 사적 사용론.

2. 공적 자금을 받아서 공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한다면 되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임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고 사회적 임금형태의 자금이 필요하다.
---일단 공적 자금의 수여가 경쟁과 시험에 의해 주어진다는 점을 건드리지 않은 채, 이 틀 내에서의 내용적 사회성을 추구한다. 공적 자금의 공적 사용론.

3. 공적 자금은 공을 대표하는 국가가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형태이므로 공적 자금은 받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활동을 위해 부족한 임금은 사적 영역에서의 더 많은 노동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좋다.
--사적인 영역 역시 공적 영역과 똑같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공간이자 장치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임금도 사회적 임금 과 동일하게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정치적 형태이다. 그리고 이 관점은 공적 자금에 대한 회피가 삶정치적 공통적 생산의 산물에 대한 사유화를 온존시키고 그 자금이 생산자들에게 더 불리한 방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공적 자금 회피론.

오늘날 사적 축적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공적 자금의 규모도 더욱 커지고 있다. 거대한 사적 축적과 거대한 공적 축적은 우리의 삶을 압살하고 있다. 이 경쟁체제에 기생하거나, 혹은 공사의 환상적 구분 위에서 공을 거부하고 사를 선택하는 것은 현존하는 착취와 지배 구조에 대응할 수 없다. 이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이 찾아져야 한다.

사적 권력의 관심과 이해라는 필터를 통과함으로써만 사회적 임금의 배분에 참여할 수 있는 현존하는 구조를 깨뜨릴 수 있게 위해서는 공적 자금을 공통기금으로 전환시키키고 이 공통기금을 무조건적 보장소득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공통기금은 어떠한 심사도 허가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삶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적 자금만을 건드리고 사적 축적 메커니즘을 건드리지 않고 놓아 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무조건적 보장소득의 운동은 사적 영역 자체의 근본적 변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소득은 정치적으로 불균등하게 조직되어 있다. 특히 정규직, 비정규직, 실업자의 구획에 따른 소득의 차별화는 극히 정치적이다. 그 차별의 정도는 극심해서 거의 무한배에 가까운 소득차가 난다. 무조건적 보장소득은 이 차별의 골간을 깨뜨릴 수밖에 없으며 만인의 삶의 보장을 통해 공포, 적대, 배제를 최대한 제거하게 될 것이다. 노동에 따른 가외소득의 규모는 무조건적 보장소득이 창출할 공통성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 자금의 공통기금화와 무조건적 보장소득, 노동에 따른 가외소득이라는 잠정노선을 통해서 오늘날 공사의 구분 위에서 전개되는 거대한 사적 공적 자금들의 전횡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것은 올바른 노선의 확정 문제를 넘어서는 공통적 실천의 조직화를 요구한다. 다중의 집단지성과 공통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2008/05/10 12:57 2008/05/10 12:57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