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financial rent를 '금융렌트'라고 번역하기보다 '금융지대'라고 번역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나는 땅 '地' 자의 구성으로 설명하곤 했다. 오늘날의 땅은 흙으로 구성된 것만이 아니라 언어로 구성되었다고 하면서.  땅의 언어학적 전환과 그것의 물리적 대지와의 연속성을 설명할 방법이 쉽지 않았다. 오늘 배달된 『수유 위클리』 7호에  실린 고병권  편집자의 글의 일절이 그래서 인상적이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번호 제게 큰 감동과 가르침을 준 <전선인터뷰>의 주인공 성태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언젠가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세우고 자기 이야기를 만들고 싶을 때 그때 아이들에게는 자기 낱말들이 필요해요.” 성선생님이 생각을 전하는 수단으로 ‘낱말들’을 말씀하신 건 아닌 것 같아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낱말’은 생각이 자라나는 ‘토양’이랄까 ‘바탕’ 같은 것이죠. 땅에 마디마디 심는 고구마순처럼, 우리 몸과 맘속에 던져진 낱말들에서 생각들이 자라나는 것 같아요. 살다가 어떤 일을 겪을 때 있죠, 그때의 외부 충격이 우리 내면의 낱말들로 하여금 생각의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고 덩굴을 이루게 하는 거겠죠.1


낱말들이 생각의 토양으로 간주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의 씨앗으로 간주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어는 생각의 토양이고 낱말은 생각의 씨앗이다'라고 말한다면 혼란은 다소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토지와 언어, 종자와 낱말을 연결짓는 이러한 생각은 금융의 이자나 수수료를 지대와 연결시키는 것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오늘날 금융지대는 낱말과 언어에 대한 사적 소유의 독점(지적재산권을 생각해 보자)를 통해 언어적 공통체를 착취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의 독점을 통해 토지 위에서 이루어지는 노동활동을 착취했던 토지지대와 같은데,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지대 자체의 변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 http://suyunomo.net/?p=1438 [Back]
2010/03/13 10:27 2010/03/13 10:27

주목효과(attention effect)

Posted at 2010/02/15 13:27// Posted in 쓰기(skribi)/정치경제_PE
1. 명절날 이제 네 살인 아이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칭찬하고 만져주고 던져주고 돌려주고 당겨주고 안아주고 웃어준다. 그러다가 문득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짧은 순간에 그 아이는 쇳소리가 섞인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주목을 끈다.

2. 이병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본인 팬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동원과 결혼하겠다며 핸드폰에 강동원의 사진만을 넣고 다니는 한 청소년으로부터 강동원의 팬클럽이 24만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팬현상은 군중이 누군가를 주목하는 것이고 그 주목된 것에 의해 대리만족을 취하는 방식일 것이다.

3. 스펙을 쌓고 성형수술을 하는 것도 개인이 주목받기 위한 노력이다. 튀어야 하고 쌓아야 하고 다듬어야 한다.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벌지 못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죽음을, 즉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4. 인터넷 기업들의  수익창출 방식은 전적으로 주목효과에 의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이트를 주목하고 있는가가 광고비를 결정한다. 그래서 자동차를 비롯한 수많은 상품들에 주목받기 위해 많은 비용이 투자된다. 디자인과 홍보 모두에서.

5. 결국 광고, 홍보, 마켓팅이 지금의 우리 기업들, 연예인, 개인, 심지어 어린이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지배한다. 광고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가치에서 주목가치로의 이행이 근대에서 탈근대로의 이행을 규정하고 있다. 


2010/02/15 13:27 2010/02/15 13:27
『부커진』 3호에 실릴 원고 「절대지대에서 절대민주주의로」 는 다음의 내용을 다룬다.

1. 금융위기의 양상과 그 구조: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그 파장

2. 금융자본의 역사와 그 현실: 산업으로부터 금융의 자립과 헤게모니화

3. 금융노동복합체의 내적 구조: 잉여가치화와 공통되기의 역사적 적대
1)금융화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대응인가 불복종노동에 대한 대응인가? 1917년에서 1929년으로, 1968/1989년에서 1997, 2008년으로
2)노동회피를 위한 자본의 대응은 기계화, 정보화를 낳는다.
3)산업의 기계화와 정보화는 노동을 인지화, 비물질화, 수행화, 삶정치화한다.
4)노동의 삶정치화는 노동의 공통되기를 촉진한다.
5)노동의 공통되기는 자본관계로부터 노동의 자율화를 가속한다.
6)노동이 자율화/공통화될수록 자본은 금융을 통한 통제에로 이끌린다.
7)금융자본의 이자는 점점 절대지대적 성격을 강하게 띠며 이에 따라 이윤과 임금도 지대화된다.
8)노동에 대한 분할과 통제가 명령의 핵심이 되며 그 기제는 임금의 개인화이다.
9)노동의 사회화와 소득의 개인화의 모순이 첨예해진다.

4. 금융위기의 역사적 위치
1)금융위기는 자본의 코뮤니즘의 1차 위기이다.
2)공통되기는 절대민주주의의 실존하는 경향성이다.

2010/02/11 18:00 2010/02/11 18:00
20세기의 역사는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그 한계가 이론으로서뿐만 아니라 실제적 경험으로서 드러났던 시대이다. 신자유주의의 종말 국면에서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은행국유화는 사회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더 이상 노동계급의 혁명적 이상이나 실천으로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비상수단으로 살아 있다.

발생기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무정부성과 그것이 가져오는 나쁜 결과(공황)를 다스리면서 생산의 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장치이자 사회적 관계로 상상되었다. 그것은 주요한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공동으로 생산하는 생산공동체이자 생산에 기여한 만큼 분배받는 분배공동체로 이해되었다. 이 때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투쟁무기였는데, 그것은 자본이 본질적으로 경쟁적이며 무정부적이라는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노동계급과 그들을 지지하는 민중은 무정부성을 극복할 강력한 정부로 자신을 조직하려 했다. 그  방안은 전위적 정치조직인 당이 기존 국가를 장악하여 통치주체를 노동계급으로 전환시키는 것에서부터 기존 국가를 파괴하고 아래로부터 새로운 코뮌정부를 건설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역사적 사회주의의 길은 대체로 이 양극단의 중간쯤에서 결정되었다. 기존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회주의 당이 민중들의 코뮌/소비에트/인민위원회/평의회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이 사회주의는 무엇보다도 생산의 사회주의로 나타났다. 소련의 스타하노프 운동, 중국의 대약진 운동, 북한의 천리마 운동은 생산사회주의의 대명사들이다. 이것은 세계의 후진 지역들이었던 사회주의 나라들을  빠르게 중진 혹은 선진 지역으로 , 반봉건적 사회에서 근대적 사회로 바꿔놓았다. 생산의  사회주의가 가져온 거대한 생산력 향상의 결과는 다시 확대된 생산을 위해 [또 상당 부분은 자본의 국제적 포위에 대항하기 위한 군사적 방어를 위해] 투자되었다. 사회의 이 생산 중심적 배치는 점점 분배의 사회화를 지체시켰고 분배권을 장악하고 있던 사회집단을 특권계급으로 경화시켰다.

동구와 아시아가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로 갔다면 서구는 공황을 통해 사회주의로 간 경우이다. 자본주의적 시장이 덜 발전되었던 동구와 아시아에서 노동조직과 노동운동을 통해 생산력의 향상을 꾀하는 것이 문제였다면 자본주의적 시장이  더 발전되었던 서구에서는 생산력의 과잉이 문제였다. 시장은 노동을 강제하고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유능한 장치였지만 공황[과 그것을 통한 생산력 파괴]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케인즈주의는 시장의존적인 발전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장을 중심에 두면서도 노동운동을 생산력으로 전화시킴과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시장과 국가를, 운동과 통제를 혼합했다. 생산은 여전히 시장중심적이었지만 조직된 노동운동과 국가의 타협이 그것에 일정한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여했다. 생산성에 따른 임금 지급 원칙과 사회복지 제도는 임금과 소득을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전환시켰다. 케인즈주의적 서구에서 사회주의는 무엇보다 소득(분배)의 사회주의라는 양상으로 나타났고 생산의 사회주의는 그것에 종속되어 있었다. 사회적 대타협과 노사정위원회들은 계급타협의 정부였다.

1970년대 이후 동서구를 막론한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은 얼핏보면 모든 사회주의들의 철폐를 위한 시도로 보인다. 20세기의 사회주의 드라이브에 의해 위축되었던 시장이 다시 주인공으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산자본 및 자산의 화폐자본으로의 전환(금융화)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국가는 국경을 넘는 금융자본의 하위파트너로 기능했다. 20세기의 생산사회주의나 소득사회주의는 모두 강력한 국가에 의지했다. 그래서 국가권력의 상대화(국가의 탈주권화와 제국 주권화)는 사회주의가 쇠퇴했거나 혹은 철폐되었다고 보게 만드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금융화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사라지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주도 사회주의였다. 사회주의의 원리는 전혀 다른 형태로 살아남는다. 금융자본주의는 국가권력이 아니라 신용을 사회주의의 기축으로 정립한다. 부채는 점점 확장되면서 위기에 내몰리는 사회주체들을 사회적으로 구제하는 복지기금으로 기능한다. 부채는 (상환의무가 수반되는) 소득의 형태이다. 소득사회주의는 부채라는 형태로 특수하게 재현된다. 기존의 사회주의들이 겪었던 재정적자가 개인적 부채의 형태로 사회화된다. 국가자본이라는 자본의 사회화 형태 대신에 파생금융 상품들이 자본의 수익을 평균화하고 위험을 사회화하는 형태로 등장한다.1 신자유주의는 한편에 수익과 위험의 사회주의를, 다른 한편에 부채의 사회주의를 장치한다. 이로써 큰 이익과 큰 손실은 직접적으로 사회화하고 작은 손실은 개인화한다. 지난 금융위기에서 드러난 것은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큰 손실이었다. 그것은 은행의 국유화라는 방식으로 사회화되었다. 서브프라이머들의 부채는 개인화되었다.

그러므로 금융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사회적 삶에 내면화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내파를 생산하는 체제이다. 이렇게 하여 신자유주의는 사회주의를 그것의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하나의 생산관계는 그것의 생산력적 가능성이 고갈되기 전에는 붕괴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스탈린주의/케인즈주의-신자유주의에 이르는 20세기의 역사는 자본의 사회주의적 생산관계의 진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본원적으로 경쟁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본원적으로 사회적인) 자본의 사회주의적 역사의 최고이자 최근의 국면으로 사고하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계획자-사회주의들(스탈린주의와 케인즈주의와 파시즘)을 대체한 신자유주의적 사회주의가 지금까지 생산능력의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그것이 어떻게 조직되고 있는가, 그것이 드러내는 특질이 무엇인가, 사회주의의 내파국면에서 그 생산능력에 어떤 지향성이 형성되고 있는가,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운동하고 있는가를 살피려 귀를 기울이고 현실을 응시하면서 역사의 현재적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주의의 종말로서의 신자유주의의 파탄에 대한 실제적 대안을 구축하는 길이 아닐까?

 
  1. 이에 대해서는 조원희, 「신자유주의 이후의 경제」([진보평론], 42호, 2009 겨울, 261-2) 참조. [Back]
2010/02/04 11:58 2010/02/04 11:58
앞서 나는 자본이 사람들의 부채 욕망을 자극한다고 했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왜 자본은 그렇게 하는 것일까? 부채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이자에 대한 탐욕의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가진 것도 없으며 고용되지도 않은 존재로부터 어떻게 이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일까?

1971년 달러의 금태환 중지 이후의 부채는 신비한 느낌을 준다. 금태환 시기에 부채는 태환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발행가능한 것이었겠지만 금태환 중지 이후 부채는 마치 무한한 것처럼 보인다. 인쇄기의 용량이 부채발행의 한도를 규정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채의 운동 메커니즘을 간략하게 스케치해 보자.

부채는 무에서 창조된 자산이다. 그것이 기업에게 주어지는 경우의 가치화 메커니즘(부채-고용-노동-잉어가치)은 쉽게 분석가능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하자. 그것이 다중에게 주어지는 경우, 즉 소비자 신용의 경우는 어더할까? 여기서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새로운 노동형태인 삶정치적 노동의 흐름을 생각해 보자. 1)부채소득으로 생필품을 구매하여 신체력을 생산한다 2)인지노동을 수행한다 3)무형의 사용가치가 생산된다 4)자본이 이 사용가치를 집적하고 집중한다(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생각해 보자) 4)외부에서 창출된 이 무형의 자산의 집적과 집중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6)무상으로 집중시킨 다중의 인지노동이 거대한 주목가치(attention value)를 창출한다(예 광고비의 상승).

이러한 순환메커니즘이 기능하는 한에서 부채는 낭비나 기생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마중물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마중물은 거대하게 퍼올릴 수 있는 한 없는 깊이를 갖고 있다. 얼마나 한 없는 깊이일까?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실제적 협력의 가능성만큼이다. 그 가능성은 측량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사람들 사이의 믿음을 실제적이고 진정하게 확장시키기에는 부적절한 체제이다. 개인화와 경쟁이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의 믿음을 가로막고 협력을 중단시키기 때문이다. 신용평가기관들은 언어행위를 통해 신용의 양과 정도를 평가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거짓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음이 2008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다. 신용수축은 팽창의 실제적 불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즉 거품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믿음이 중단되는 순간에 찾아드는 것일 아닐까? (만약 거품이 원인이라면 금융적 축적의 매시기에는 거품[신용팽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항존하므로 위기는 항상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믿음을 지속할 수 있고 협력과정을 지속할 수 있는 관계와 제도의 구축이 실제적 대안으로 되는 것이 아닌가? 거품 없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들과 기계들과 사물들 사이의 유물론적 믿음관계로서의 공통되기가 유효한 대안으로 되는 것이 아닐까?
2010/01/24 02:13 2010/01/24 02:13

부채, 복지, 기본소득

Posted at 2010/01/24 01:48// Posted in 쓰기(skribi)/정치경제_PE
부채와 고전적 복지, 그리고 기본소득(혹은 더 강력한 보장소득형태)은 임금과는 별개의 소득 형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이것들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축소된 임금소득의 보완물로서 다중이 불가피하게 선택하거나(부채의 경우), 국가의 정책으로 선택되거나(고전적 복지), 혹은 아래로부터의 운동에 의해 조직된다. 이것들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삶의 요구에 대한 응답양식들이다.

이것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먼저 고전적 복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케인즈주의 하에서 수요관리 정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고전적 복지는 조건에 따른 선별적 복지이다. 특히 그것은 노동에 따른 소득이라는 관념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구멍을 파고 다시 덮는 방식으로 노동을 하게 하면서 이루어지는 복지이다. 그래서 그것은 일반성을 결여했다. 복지적 사회안전망은 산업예비군을 유지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실패적 산업영역들(학술, 예술)에 대한 보조금을 통해 그 활동들을 기간산업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지식생산, 정보생산, 미적생산은 일종의 기간산업으로 된다. 물론  우리는 복지가 노동자의 힘에 대한 자본의 승인방식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득이 연대적으로 규정되었던 것은 바로 집단으로서의 노동계급의 힘에 의해 복지소득 형태의 다른 임금(사회적 정치적 임금)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일반화된 부채소득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부채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소득이 아니지만 사실상은 소득으로 기능한다. 그것은 살아 있을 수 있게 하며 활동하게 한다. 복지에 조건이 따라붙는다면 부채에는 그보다 더 강한 명령이 따라붙는다. 갚지 않으면 압류와 처벌이 뒤따를 수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임금이 개인화되듯 부채는 소득을 철저히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사회연대 원리를 해체한다. 부채체제하에서 노동계급의 단합된 힘은 승인되지 않는다. 다만 개개인들이 생을 보존할 필요성에 대한 승인만이 약하게 인정된다. 아니다. 자본은 다중이 살아야 한다고 설득하고 그러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더 많은 부채에 대한 욕망을 갖게 만든다(삶정치).

기본소득은 부채에 뒤따르는 명령(생사여탈의 권력)이나 복지에 뒤따르는 조건과 선별의 철거를 요구하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이것은 소득을 직접적 노동(고용노동)으로부터는 분리시키지만 삶정치적 노동을 위시한 사회적 노동 일반에는 오히려 소득을 접근시키는 것이다. 삶정치적 노동의 시대에 삶은 노동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중첩되며 잉여가치 창출은 직접적 노동에 의해서라기보다 삶노동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고 살권리에 대한 기본소득의 주장은 삶정치적 노동에 소득을 제공하라는 요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결코 동정이나 시혜일 수 없고 살아 있는 자들의 당당한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당이나 국가의 정책이기에 앞서 다중들의 운동에 의해 요구되고 주장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

2010/01/24 01:48 2010/01/24 01:48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갈무리, 1999) 2장으로 내가 번역했던 존 홀러웨이의 글, 「심연이 열리다: 케인즈주의의 상승과 몰락」을 읽고 중요한 메시지를 정리해 본다. 우리 시대의 전사를, 아니 최근의 금융위기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 내용이 이 글에 담겨 있음을, 번역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생함을 느낀다.

<케인즈주의의 상승>

-노동의 권력을 봉쇄하는 양식으로서의 케인즈주의의 붕괴를 검토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26)

-사회주의운동이 활성화되자 자본가들은 숙련노동자들이 산업발전의 조건에서 그것의 방해물로 바뀌었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해체하기 위해 테일러주의와 케인즈주의로 전환한다(27)

-1920년대 전쟁 이후 세 가지 중요한 쟁점: 1)국제관계의 문제로서 혁명 러시아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케인즈의 회유-포섭론에 대항하여 제재론을 규정한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되다) 2)국가의 역할 문제로서 전쟁기간에 증대된 국가의 생산장악을 유지할 것인가 다시 재사유화할 것인가(후자의 승리) 3)화폐통제 문제: 금표준의 복구로 민족통화가 금가격에 묶이게 되었다. 요컨대 혁명과 패전 국가에 대한 제재, 재사유화, 금표준의 복구가 진보주의자에 맞서는 보수주의자의 태도였다.(32)

-노동과의 화해를 주장한 진보주의의 대응은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이 숙련의 파괴와 단조로운 노동의 도입으로 되자 노동자들은 이직으로 맞섰고 이것을 진화하기 위해 포드는 하루 5달러(2배이상의 임금) 정책을 도입했다. 이것은 죽음의 노동과 소비의 삶 사이의 교환이면서도 자본의 노동에의 종속을 의미했다.

-어째서 1929년과 1917년 사이에 10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가? 혁명이 구질서를 타격한 이후 왜 10년이나 지나 붕괴가 찾아왔는가? 위기가 노동계급 권력의 표현이라면 왜 그것은 노동계급 패배가 명확해진 시점에 찾아왔는가? 그 답은 신용과 화폐에서 주어진다. 자본은 생산에서 수익성 하락에 직면했지만 신용과 화폐를 통해 (은행차관과 주식시장에서의 허구적 팽창에 의해) 재팽창의 계기를 찾았다. 그러나 실제 잉여가치와 투기된 잉여가치 사이의 격차는 1929년에 거대한 규모로 폭발했다.

-노동계급의 제도적 통합은 1925년 영국 총파업의 패배 이후였다. 특히 그것은 1929년의 붕괴를 계기로 구질서가 붕괴하고 체제 개혁의 요구가 들끓으면서 이루어졌다.

-포드주의 하에서 노동관계의 재편, 미숙련노동자로의 노동의 재구성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의 충분한 장치는 되지 못했고 전쟁을 통해서, 국가 수중으로의 권력의 이동, 불변자본의 파괴와 탈가치화, 사용을 위한 생산,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노동력의 피살과 폐기 등을 통해 성취되었다.

<케인즈주의의 몰락>

-60년대 말 찾아온 케인즈주의의 위기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의 위기, 즉 노동권력을 봉쇄하는 특수한 양식의 위기이다. 1)노동권력의 상승은 높은 임금, 즉 화폐 비용의 증대로 나타났다. 2)노동권력 상승의 또 다른 측면은 기계화였다. 이것은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했는데, 이것은 착취의 비용이 점증한다는 사실의 표현이다. 3)노동권력 상승으로 착취의 간접비용도 증가했다. 재정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생산에서의 기계화, 분배에서의 임금상승, 그리고 정치에서의 재정지출 증대는 케인즈주의적 자본축적에 한계를 부여한다. 이것이 1960년대 말 이윤율 하락과 사회적 불안정성 증대의 원인이다. 노동조합 권력도 그것이 대의하는 노동자들의 실제적 요구(노동거부, 국가거부 등)와 분리되면서 형해화되기 시작했다.

-1933년 금표준의 포기는 민족경제의 관리를 세계시장의 위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화폐의 지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 자본의 압도적 힘에 의해 가능해진 것으로 달러의 인플레이션적 유연성을 국제적 화폐 흐름 속으로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 세계시장으로부터 민족경제들을 일정하게 보호했는데 그것은 고정환율제에 의해 가능해졌다(격리효과). 이 두 장치를 통해 ‘무질서한 군중’의 권력인 노동권력은 국제통화체제 속으로 통합되었지만 그 속에서 불안정성으로 재출현했다.

-불안정은 신용확장으로 나타난다. 일국에서의 신용확장에 큰 자유가 주어졌고, 미국에서의 인플레이션이 제도화되었다. 1)신용확장의 지점은 국가라기보다 민간(기업과 소비자에 대한 은행당좌대출)이었다. 2)신용확장에 대한 국가통제의 결여는 미국 외의 달러시장(유로시장, 오일달러시장)을 창출했다.

-이 두 가지 화폐시장의 팽창은 금태환성을 약화시켰다. 고정환율제는 만성적인 수지불균형을 가져왔다. 태환가능성의 약화에 대한 우려는 달러를 금으로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부채질했고 1971년 달러의 금태환성이 포기된다. 브레턴우즈체제가 포기되자 국가정책들은 다시 국제시장의 화폐흐름에 종속된다. 달러에 대한 투기적 압력이 고조된다. 케인즈주의의 죽음이 명백해지고 통화주의 경제이론에 자리를 내준다.

2010/01/23 18:01 2010/01/23 18:01
다음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원칙을 부활시키는 것으로 현재의 금융문제에 대해 대응하겠다는 오바마의 1월 21일 발표를 알리는 한겨레 기사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21일 발표의 핵심은 대형 은행들의 위험도 높은 거래 금지와 금융산업의 덩치 키우기 제한이다. 그 방안으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금융규제의 표준이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 원칙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지난주 고액 보너스 잔치를 벌인 월가 은행들에 금융위기 책임을 묻는 새로운 조세를 도입하기로 한 것에 이은 근본적인 개혁안이다.

■ 표적은 자기자본투자 오바마 대통령은 상업은행이 고객의 예금과 신탁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위험한 투자로 고수익을 추구하다가 위기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국민의 혈세로 구제금융을 받는 관행을 더는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배경에는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통합이라는 상황이 있다. 미국에서는 대공황 발발 직후 1933년 카터 글래스와 헨리 스티걸 의원이 제안한 ‘글래스-스티걸 법’이 발효돼,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분리했다. 일반인들의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이 고객의 예금으로 주식 투자 등 위험성 있는 금융거래를 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1999년 이 법이 폐지돼, 상업은행도 투자은행 업무를 겸하면서 모든 은행과 고객의 예금이 위험에 노출됐다.

물론 은행들이 고객의 예탁금(고객 계정)으로 주식 거래나 파생상품 거래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투자은행 업무를 겸하다가 실패하면 은행이 부실해져 결국 같은 영향을 받게 됐다. 이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이른바 ‘프랍거래’(proprietary trading)라는 자기자본투자(PI) 영업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 자기자본투자는 고객의 예금이 아닌 자기자본이나 차입금(자기자본 계정)에 의존해 위험도 높은 각종 금융거래를 하면서 고수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위험은 있지만 수익이 막대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을 통합한 은행들이 앞다퉈 나서며 덩치를 키웠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 행정부가 은행들의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소유·투자·후원, 프랍거래 개입을 금지하는 한편 고객들의 예탁금에 불리하게 거래하는 것을 규제하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 커지는 반발과 회의 하지만 이해당사자인 월가는 물론이고, <뉴욕 타임스> 같은 비교적 진보적인 언론들도 금융 환경이 바뀐 상황에서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을 표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의 제안이 채택되더라도 금융산업을 별로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금융계 종사자들의 말을 전했다. 표적이 되는 프랍거래는 대형 은행 수입의 10% 미만이고, 모건스탠리의 경우 지난해 해당 부서를 폐지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시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 제이피모건체이스는 프랍거래 규제가 채택되더라도 수입의 3% 미만만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새로운 금융규제를 외국 금융회사들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지도 불명확하다.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장은 “금융기관에 단기간에 한꺼번에 이 규제를 실행하면 (상업은행들이 자기자본 투자를 철수하는 과정에서 자산 매각이 불가피하므로) 자산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며 “아직 미국 경제 회복이 불안전한 상황에서 위험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신규 제안 자체는 지지한다”면서도 “한번에 급격히 할 일은 아니며, 3~5년에 걸쳐 실행할 일이다”라고 말해, 오바마의 제안이 입법화되려면 길고 험한 길을 가야 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금융규제안을 밀어붙인 쪽은 폴 볼커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과 백악관의 정무팀이다. 이들은 의료보험 개혁 이슈에 다른 개혁과제들이 묻혀버렸다며, 개혁의 고삐를 놓을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오바마도 “미국 납세자들이 다시는 대마불사의 신화에 빠진 은행의 볼모가 되지 않게 하겠다”며 강력한 전의를 보였다.1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투자은행이 상업은행보다 우위에 서게 된 것이 단순한 정책잘못 때문일까? 그것은 오히려 사회의 저변에서 일어난 생산력의 변동에 대한 대응양식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는 정책실패라기보다 이러한 대응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 즉 금융에 의한 자본주의적 팽창양식이 공통적인 것을 포섭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오바마의 개혁방안은 금융자본가들의 저항으로 통과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그것이 통과된다고 해도 통합된 세계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다중은 이 논쟁이 지배위기의 징후이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둘러싼 세계지배계급 내 논쟁이라는 것을 직시하면서  좀더 근본적인 방안, 현재의 공통적 부를 다중 스스로가 관리하고 재생산하는 방향으로의 세계재편을 향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1. 정의길 선임기자,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globaleconomy/400546.html [Back]
2010/01/23 11:56 2010/01/23 11:56
지오바니 아리기의 세계체제론적 금융위기론에 대한 논평: 중국보다 다중에 주목하자

아리기는 『세계체제론으로 보는 세계사』(원저, 1999)에서 세계체제론에 입각하여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와 금융팽창에 관한 아래의 다섯 가지 명제를 제시한다. 이미 금융위기를 경험한 지금 우리는 그것을 이 위기에 대한 예측이자 판단으로 읽을 수 있다.

다섯 가지 명제는 두 가지 전제에 입각한다. 하나는 '1)패권국가의 주도 아래에 일어난 체계 전체에 걸친 팽창은 새로운 패권국가가 전임 패권국가가 연 경로에서 직면한 문제들과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체계를 재편하면서 다른 발전경로를 열었을 때 비로소 재개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2)과거의 패권이동들을 분석하면 이 이동들의 본질과 장래의 결과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반복과 진화의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파악하는 시각은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발전경로를 여는 패권국가들의 교체에 두어져 있다. 그에게서 세계체제는 국가간 체계가 발현되는 방식으로 이해되며 주요 행위자는 특정한 국가이다. 이 정치학은 반복과 진화의 패턴을 찾아내는 철학에 의해 지지된다. 시간은 동일성의 지속으로 이해되며 그렇기 때문에 진화도 동일성의 진화로 나타난다. 맑스는 '루이보나빠르뜨 18일'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반복이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전의 혁명들의 특징이며 이러한 혁명들은 과거로부터 통치기술을 가져온다고 비판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와는 달리 미래로부터 영감을 가져오면서 낡은 것을 철저히 파괴하는 자기비판적 혁명으로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럴 때 진화가 작용한다면 그것은 도약과 폭발을 함축하는 것으로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 더 접근할 것이다. 그런데 아리기는 패턴의 연속과 반복과 진화라는 동일성을 찾아내는 데 이론의 역점을 두는데, 이는 차이와 경향을 찾아내는 데 역점을 두는 맑스, 들뢰즈-가타리, 네그리-하트의 방법론과는 대립된다. 심지어 루카치도 항시 역사적 새로움을 탐구하는 데 역점을 두었음이 상기되어야 한다. 아리기가 국가라는 범주를 역사적으로 과도적이고 그래서 불안정한 생산관계이자 권력관계로서보다 릴레이하듯 되풀이될 안정적인 범주로 설정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철학관의 정치적 효과라고 해야 할 것이고 이것이 아리기 이론에 커다란 보수성을 각인한다.

그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명제가 여기에 있다.(괄호안은 쪽수)

명제1. 최근 약 20년 동안의 세계적인 금융팽창은 세계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도 “세계시장의 다음 패권”의 선발대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패권의 위기가 현재 한창 진행 중임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표지이다. 그러므로 이 팽창은 쇠퇴하는 패권이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큰 파멸 또는 적은 파멸로 끝날 일시적인 현상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431)

명제2. 현재의 패권위기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새로운 점은 과거의 패권이동에서 전례가 없는 군사능력과 금융능력의 분기이다. 이 분기는 체계의 가장강력한 구성단위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의 패권위기가 다소간 긴 체계 대혼란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435~6)

명제3: 세계적인 금융팽창과는 달리, 다국적 조직과 지역사회의 수와 다양성의 급증은 현재의 패권위기의 새롭지만 되돌릴 수 없는 특징이다. 이것은 미국의 패권질서가 해체되는 한 주요요인이며 결코 보편적으로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의 권력을 약화시킴으로써 계속해서 체계의 변화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441)

명제4: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세계적 금융팽창에 수반된, 사회운동(특히 노동운동)의 약화는 대체로 과도기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미국이 주창한 세계적 뉴딜정책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과 관련된 어려움을 나타낸다. 새로운 사회적 갈등의 물결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며, [그것은-인용자] 세계 노동력의 더 큰 프롤레타리아화와 점증하는 여성화와 변화하는 공간적. 인공적 구성을 반영할 것로 예상된다.(446)

명제5: 서양문명과 비서양 문명 간의 충돌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기보다 우리 뒤에 놓여 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현대 세계를 서양문명과 비서양문명(특히 다시 떠오르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문명) 사이의 변화하는 세력균형을 반영하는 문명들의 연합으로 변화시키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다. 이 변화가 얼마나 격심하고 고통스러울지는(그리고 심지어 이 변화가 결국 문명간의 상호파괴가 아닌 연합으로 끝날지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그것은 첫째, 서양 문명의 주요 중심지들이 얼마나 현명하게 보다 덜 높은 신분에 적응할 수 있느냐와 둘째, 다시 떠오르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문명의 주요 중심지들이 미국의 패권이 뒤에 남긴 체계 수준의 문제들에 대한 체계 수준의 해결을 제공할 과제를 공동으로 감당할 능력을 갖출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452)

나는 이 명제들이 근대사에 대한 유의미한 통찰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흥미 있는 것은 3과 4의 명제이다. 아리기는 동일성의 반복이라는 주요한 인식론적 목적 하에서이지만 반복 속에서 드러나는 차이의 지점들을 언급한다. 3에서 말하는 것, 즉 국가권력을 침식하는 초국적 조직과 지역사회들의 증식이 그 하나이고 4에서 말하는 '세계 노동력의 더 큰 프롤레타리아화와 점증하는 여성화'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5에서 그의 관심은 새로운 패권국가로서의 중국이 새로운 발전경로를 열면서 현재의 국가권력의 침식을 만회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차이는 반복에 종속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장기 20세기서문 에서 아리기가 네그리/하트가 『제국』에서 수행한 아리기에 대한 비판이 자신에게는 억울하다고 한 것이 근거 없음이 드러난다. 차이가 서술되지만 그것은 반복에 종속되고 그래서 돌파와 단절의 가능성은 닫히기 때문이다.

내친 김에 덧붙이자. 4에서 아리기는 사회운동, 노동운동의 복귀를 점치지만 이러한 시각은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가 바로 새로운 유형의 사회운동에 대한 자본의 대응(반혁명) 양식이었다는 것, 요컨대 사회운동은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점을 감춘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것은 그의 반복론이 가하는 효과로 인해 중국을 대안중심으로 인식할 때, 그리고 중국 패권에 대한 서구의 적응을 요구하는 정치학을 그가 제시할 때, 주체성의 복귀에 대한 그의 비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패권들의 릴레이라는 거대한 순환을 장식하는 장식물로 전락하고 만다. 중국이 아니라 다중(그의 말 속에서는 여성화된 프롤레타리아트)이 '체계 수준의 문제들에 대한 체계 수준의 해결을 제공할 과제를 공동으로 감당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아니 '자본의 세계체계의 해체와 다중의 전 지구적 공통체의 구축을 공동으로 감당할 능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세계체제론의 순환적 릴레이라는 관점을 폐기해야 할 것이고 '반복과 진화'가 아니라 '차이의 반복'1을 사유하기 시작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1.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되는 것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뿐이라고 말한다. [Back]
2010/01/17 12:09 2010/01/17 12:09
pensionLook up pension at Dictionary.com
mid-14c., "payment for services," especially "reward, payment out of a benefice" (early 14c., in Anglo-L.), from O.Fr. pension "payment, rent," from L. pensionem (nom. pensio) "payment, rent," from pensus, pp. of pendere "pay, weigh" (see pendant). Meaning "regular payment in consideration of past service" first recorded 1520s. Meaning "boarding house, boarding school" first attested 1640s, from French, and usually in ref. to places in France or elsewhere on the Continent. Pensioner first recorded late 15c.
하숙집, 임대하우스를 뜻하는 펜션과 연금의 펜션이 동일하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양자의 공통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rent, 즉 지대이다. 연금은 강제된 저축이며 그것은 지대 수취권이다. 임대가옥인 펜션이 사용료의 형태로 지대를 받듯이, 연금 납입자인 노동자들도 기관에 임대한 임금으로부터 지대를 받는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지대수취계급으로 나타난다.
2009/12/31 06:18 2009/12/31 06:18
폴 메이슨의 책 [탐욕의 종말]을 흥미롭게 읽었다. 비판적으로 읽으면 매우 유익한 책이다. 금융위기 1년, 위기에 이르는 10년, 신자유주의 30년을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서 차례로 찍는 방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책의 내용은 읽기를 권유하는 의미에서 생략하고 생각을 전진시키기 위한 한두 가지 비판적 코멘트를, 특히 원인진단과 대안이라는 결정적인 두 지점과 관련하여 달아 두기로 하자. 앞의 게시물에서 내가 그렸던 그림을 한 번 더 이용할 필요가 있다.



첫째 폴은 권력 엘리뜨들의 금융자유화 정책으로 C가 B보다 과도하게 팽창한 것이 버블 폭발의 원인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금융팽창 자체가 D를 B로 끌어들이는 가치화의 노력이었고 이 과정에서 D를 산출하는 바의 삶정치적 생산력을 팽창시키고 이 팽창된 생산력이 A의 통화관계나, B의 가치관계, 그리고 C의 신용관계 등 기존의 생산관계에 포괄, 관리될 수 없게 된 것이 붕괴로 이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도외시한다. 잉여가치관계 속에서 신용을 확장하는 것의 한계가 문제가 아닐까? 신용은 잉여가치관계 속에서는 위기와 폭발을 피할 수 없고 오직 공통되기의 관계 속에서만 선순환의 조건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보편적 무조건적 신용사회로의 이행만이 삶정치적 생산의 팽창된 생산력에 조응할 수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둘째 폴은 신용의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금융의 국가화 혹은 국가에 의한 금융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네트워크화된 금융파워엘리뜨에서 국가로 금융 주체를 대체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국가를 현재의 금융위기에 책임이 없는 (책임이 있다면 오직 그 무능력에서만 책임이 있는) 중립적 당사자로 이해하는 듯하다. 국가는 바로 잉여가치의 지속적 창출을 위해 태어난 조직이라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금융을 사회화해야 한다는 폴의 주장(그는 민스키로부터 이 생각을 가져온다)에서 국가에 의한 사회화라는 생각을 발본화시킨다면 즉 연합한 다중들이 금융을 공통화한다는 생각으로 그 생각을 발전시킨다면 유익한 정치적 결론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향의 공통화는 현재의 공위기에서 다중들의 정치적 주체화가 진전되지 못한다면 난망한 일일 것이다. 요컨대 필요한 것은 금융주체를 네트워크화된 파워엘리뜨에서 국가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한 다중 공통체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에 힘을 싣자는 메이슨 식의 이론, 생각, 주장이 바로 다중의 직접적 정치적 조직화를 방해하거나 해산시키는 조건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셋째 이 책이 한겨레출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주목해 두어야 한다. 한겨레신문의 정치적 지향이 이 책에 의해 어느 정도 규정될 수는 알 수 없지만 결코 무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2009/12/29 14:43 2009/12/29 14:43
문: 비물질노동자는 그것이 뇌라는 독특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생산수단을 소유한 그는 소부르주아적 계급존재이지 않을까요?

답: 뇌가 생산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옳지만 그것은 생산자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생산수단은 아닙니다. 만약 생산자와 통합되어 있는 수단을 생산수단으로 본다면 물질노동자도 몸이라는 생산수단을 갖고 있다고 말해야 하고 이에 기초해서 그 역시도 소부르주아적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뇌가 생산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은 노동주체와 노동수단이 통합되어 가고 있는 경향에 대한 진술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문: 비물질노동자는 정신노동을 주로 한다는 점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 현상에 상응하지 않을까요? 이런 의미에서 비물질노동자는 자본주의의 혁파보다 자본주의의 개혁을 욕구하지 않을까요?

답: 다중이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젝의 논조와 비슷하군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이 주로 육체노동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고 정신노동이 그 잉여가치 체제를 유지,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시기의 분할양식이라면 오늘날의 비물질노동은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메커니즘 속에서 잉여가치 생산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비물질노동자는 결코 지배계급의 일원이거나 그 조력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자이고 피착취자이며 피수탈자로 되어 있습니다. 비정규직의 불안정노동자, 여성, 고용되지 못한 사람들 등이 비물질노동자의 주된 담당층인 점을 고려해 보기 바랍니다. 개개의 비물질노동자의 욕망들은 다양하고 서로 이질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에서의 공통적 연결관계뿐만 아니라 잉여가치 생산을 담당하면서도 부단히 그것을 전유당하는 입장의 공통성이 이 욕망의 다양성과 이질성의 대항 자본주의적 지향성을 잠재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009/12/07 22:14 2009/12/07 22:14
한겨레에 투고된 송기균의 글 「‘고환율 정책’이 핫머니를 끌어들인다」1는 미국의 저금리 정책과 한국의 고환율 정책의 계급적 성격과 그것으로 인해 심화되고 있는 금융위기의 잠재성에 대해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올해 국내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 새로 유입된 47조와 29조원의 외국인 자금 상당 부분이 미국의 저금리에 따른 ‘달러 캐리 트레이드’ 자금일 것으로 추정된다.’ ‘몰려오는 달러, 금융교란 우려’라는 제목의 11월20일치 <한겨레> 기사의 주요 내용이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란 미국에서 자금을 빌려 국내의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빌린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것이므로 투기자금, 다른 말로는 핫머니다. 핫머니는 단기 차익을 노리고 들어오고 목적이 달성되면 순식간에 차익을 실현하고 떠난다. 핫머니의 유출입에 따라 주가와 금리와 환율이 급등락하여 실물경제에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핫머니가 국내에서 노리는 단기차익은 무엇일까? 현재 원화 환율이 크게 저평가되어 있다고 확신한 투기세력들이 공격적으로 국내 채권과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금은 달러로 빚을 낸 돈들이다. 과연 원화 환율이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기에 국제 투기세력들이 저리도 공격적으로 투기에 나선 것일까? 현 정부 출범일인 2008년 2월25일과 올 11월20일의 주요 국가 환율을 비교해 보면 원화가 엄청나게 저평가되어 있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기간에 일본 엔화의 가치가 20%나 상승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신용평가 강등의 위기에 있는 영국을 제외한 주요 국가들의 통화가 대부분 평가절상되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도 중국은 통화가치가 5% 올랐고, 홍콩, 싱가포르도 약간 상승하였다. 우리보다 경제가 훨씬 더 취약한 인도네시아도 통화가치가 4% 하락에 그쳤는데 우리만 18%나 하락하였다. 누가 보아도 정부의 인위적 고환율 정책이 아니면 지탱하기 어려운 환율 수준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엄청난 손실을 입은 국제 투기자금들이 그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이것을 놓칠 리가 없다. 달러로 빌린 돈을 공격적으로 국내로 들여오고 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이 원화절상에 따른 환차익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의 고환율정책으로 원화가 저평가 되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저금리를 이용한 달러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환차익을 노리고 다른 곳이 아닌 한국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외환보유고의 증대와 경제의 빠른 회복이라는 가상을 낳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효과는 무엇일까? 송기균은 말한다.

핫머니의 유출입은 국내 경제에 불필요한 비용만 초래하고 이익이 하나도 없는 백해무익한 독버섯과 같다. 


환차익을 노린 투기자금을 저지하기 위한 경제적 조치는 환율을 정상화하여 원화를 비싼 값에 파는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어떤 태도로 이 상황에 임하고 있는가?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원화의 환율을 고의로 높게 유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다. 수출 대기업들에 엄청난 이익을 보장해주려는 것이다. 강만수씨가 11월13일 전경련 초청강연에서 한 말이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3분기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고 하지만 환율 효과와 재정지출 효과를 빼면 사상 최대의 적자가 됐을 것이다.”


송기균은 "‘고환율 정책’은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수출대기업의 금고로 가져가는 ‘소득재분배 정책’인 것이고, 이 잘못된 정책이 핫머니의 천문학적인 국내 유입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자본의 친구인 이명박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부자에게로 소득을 옮기는 현재의 고환율 정책의 성격임을 암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 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readercolumn/390424.html [Back]
2009/12/01 23:58 2009/12/01 23:58

부채복지와 신노예제

Posted at 2009/11/20 10:47// Posted in 쓰기(skribi)/정치경제_PE

교육과학기술부가 19일 발표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다음과 같다.

"대출을 받은 학생에게 졸업 뒤 4인 가족 최저생계비(올해 기준 연 1592만원)를 넘는 소득이 생길 때부터 초과소득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국세청이 원천징수한다. 졸업 뒤 3년이 지나도 상환을 시작하지 않으면 국세청이 재산조사를 실시하고, 재산이 있는데도 그 뒤 1년 동안 상환을 시작하지 않을 경우 강제징수를 한다. 대출자가 결혼했을 경우에는 배우자의 재산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킨다. 대출액이 남아 있으면 평생 상환 의무를 지게 되며, 대출자가 파산하더라도 학자금 대출은 면책 대상에서 제외된다. 대출금리는 시중금리보다는 싸지만 국고채금리보다는 높은 5.8% 정도이며, 상환이 시작되면 이자는 복리로 계산된다."1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의 하나로 꼽는 학자금 대출제도의 실상이다. 원천징수, 재산조사, 강제징수, 배우자 연대책임, 평생상환의무, 파산의 경우에도 면책에서 제외! 온갖 강제 장치를 지뢰처럼 곳곳에 설치해 놓은 이 '친서민'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우를 돕기 위한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냥하기 위한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결국 평생 자본국가의 노예로 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상환 책임이 배우자에게 연대되는 제도 하에서, 학자금 대출을 한 사람과 누가 결혼을 하려 하겠는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대출 학자금의 미상환분이 있는 한에서는 아예 "3대에 걸쳐 대대손손 상환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3대가 지나도 갚지 못할 경우에는 일가족의 장기를 적출하여 판매한 대금으로 상환한다"는 식으로 좀더 분명히 명시하는 것이 더 일관성 있는 실행계획이 아니었을까?


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388721.html
  1. 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88686.html [Back]
2009/11/20 10:47 2009/11/20 10:47

 

 

네이버, 유씨시, 그리고 브랜드(조수용)

홍대 디자인과 특강에서 나와 함께 강의를 맡은 조수용 이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메모한 것이다. 인터넷 기업의 내면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어 항목형태로라도 기록해 둔다. 네이버는 '지식인' 프로젝트와 같은 방식으로 다중의 능력을 가치화하여 축적한 후, 그것을 백과사전 신문뉴스 등 기성 자료의 디지털자료 제공, 한글 폰트 의 개발 등으로 사회에 기부하는 방식을 취한다. 바다를 갖고 강을 건네주는 것이다. 그 강이 다시 바다로 흡수될 것을 기대하면서. -amelano

 

 

영어자료는 바다지만 한글은 안 그렇다

해당 나라 언어 자료의 차이가 있다. 아랍어로 된 자료는 드물며 일본어 자료는 한국어 자료보다 드물다. 언어와 인터넷을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언어는 검색과 연동되기 때문이다.

한국어 페이지들이 부족하여 검색을 위한 백과사전, 사전, 신문을 넣었다.

이것이 이른바 통합검색이다.

이후 질문과 대답을 지식 창조의 힘으로 사용했다.지식인

집단지성의 질의응답에 대한 불신을 정리하는 힘을 가지리라 믿었다.

질의응답은 한글 웹문서 창출의 도가니였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Writer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답을 하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기도 한다.

지식제공의 기쁨을 직업으로 가짐.

질문이 필요하다. 질문이 답을 창출한다

블로깅(위선적 일기)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네이버 광고를 시작하다.

까페가 먼저, 뒤에 블로그

네이버는 그릇 디자이너, 나머지는 사용자 몫

그린위도우: 창너머의 더 큰 세상

베스트셀러 위주의 진열과 인터넷 검색어 배치의 유사성

네이버 홈의 뉴스가 세상을 조형한다.

하나뿐인 채널의 라디오와 네이버의 유사성

이것이 옳은 것인가? 유효한 것인가?

채널 다양화를 시도하다

유씨씨에 형태와 체계를 부여하기. 내용의 형태화는 네이버, 다음 등등의 인터넷 포털의 기본 역할이다.

진짜 정보는 책에 있지 않을까?

미분류(작은 수의 책)--분류(많은 수의 책)--초분류(구글)

나머지는 가치평가

지식인의 서재

*왜 한글 페이지가 적은가? 정보가 사유화 된다. 소득이 부족하여 일하러 나가야 한다.

네이버가 정보를 만들어 준다. 만든 정보를 쓰기보다.

해피 에너지 캠페인

한글 그래픽 개발지원: 나눔고딕

User customized platform

일본 네이버를 만드는 데 주력하다

기부는 선물의 부르주아화된 형태. 선물 사회가 불가능할 때 기부는 선물의 변이태로 나타난다.

커리, 언어, 사회 디자이너

디자인 투쟁

디자인 플랜 B가 필요하다

그릇을 만들고 나서 내용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내용들(특이성들의 결합)이 그릇을 결정한다.

브랜드는 디자인 상상력의 상품화, 정체화.

모노클

글로발 어페어

인테리어 건축 잡지의 상상력, 고민의 깊이

디자인과 사람의 관계

커리디자이너, 지식(산업)디자이너, 사회디자이너

네이버의 정치적 행보

비정치적 정치성

빨갱이와 친MB 사이.

네이버의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다중의 글로발리티의 차이

판례와 헌법의 가치 중에서 무엇이 중한가?

경험과 원리.

순간에 전체를 핸들링한다.

*따라잡기인가 서로돕기인가?

*디자인 능력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장치, 전제는 무엇인가?

 

2009/10/22 21:44 2009/10/22 21:44

달러 가치 하락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적 취약함이 드러났음에도 지난 1년여간 달러가  상승했던 것은 세계경제위기로 비교적 안전한 화폐를 선호하는 경향, 즉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지금을 세계경제 회복기로 읽으면서 안전선호경향에서 수익선호경향으로 심리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달러 가치는 급격하게 하락하고 화폐제체는 다국화되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1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강한 달러’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달러는 8일 뉴욕외환시장에서 유로 대비 1.4499달러로 거래돼,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며 뚜렷한 약세 기조로 돌아섰다. 달러는 올해들어 유로 대비 3.7% 하락했고 일본 엔에 대해서도 0.79% 가치가 하락한 92.23엔을 기록했다. 외환분석가들은 달러가 올해 말쯤 유로 대비 1.5달러 선을 넘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달러 최저치는 지난해 4월의 1.5981달러 이다. 달러는 주요 6개 통화에 대해서도 모두 하락했다. 유로, 엔, 영국 파운드,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캐나다 달러 등 6개국 통화를 묶어 미 달러와 비교하는 ‘인터컨티넨털 익스체인지’의 미 달러화 인덱스는 이날 1.2% 떨어진 77.047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9월29일 이후 최저로, 올해 최고치였던 89.624에 비해 14%나 내린 상태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 달러는 미 국채 등 안전자산 선호에 힘입어 고공행진을 했으나, 미국의 구제금융과 이에 따른 천문학적 재정적자 때문에 약세로 돌아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예측되어 왔다. 9월 들어 뚜렷한 달러 약세는 세계경제 회복세에 따른 위험자산 선호도가 늘고, 달러화 유동성 증가에 따른 인플레 우려가 밑바탕이다.[출처]



중국이 홍콩에서의 위안화 결재를 시도함으로써 국제화폐로의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국제화폐를 둘러싼 갈등이 앞으로 격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중국 재정(財政)부와 홍콩 특별행정구(SAR) 정부는 8일 "오는 28일 중국 중앙정부가 홍콩에서 60억위안(약 8억7600만달러·약 1조800억원)어치의 위안화 표시 국채를 발행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홍콩에서의 국채 발행은 앞으로 위안화의 국제적 위치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이번 조치로 홍콩 채권 시장의 깊이와 폭을 크게 하고 홍콩의 국제금융 허브(hub)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나아가 이번 위안화 채권 발행이 주변국들과 홍콩의 무역 결산 및 유통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콩은 중국 영토 내에 있지만, 국경선이 따로 있고 독자적인 행정이 허용돼 별개의 국가처럼 무역과 경제활동을 하는 '특별행정구역'이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9일 이번 조치가 "달러화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시점에서 위안화를 국제화하려는 주요 조치(a major step)"라고 평가했다.[출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의 권위를 점점 상실한다는 것은 미국이 전 지구적 주권을 통제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힘을 갖고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국제적 권위를 갖는 통화의 부재는 공위기 증세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2009/09/10 12:46 2009/09/10 12:46
Martin Hart-Landsberg는 <<Monthly Review>> 2009년 9월호에 실린  Learning from ALBA and the Bank of the South: Challenges and Possibilities에서 현재의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책을 제시한다.

분석된 상황은 1)신자유주의의 실패 2)동아시아 수출주도 성장모델의 위기 3)대안적 지역발전 전략을 발전시키려는 라틴아메리카의 선도(ALBA와 남미은행)이다. 대책은 1)반신자유주의에서 반자본주의로의 전환 2)지역화에 대한 지지 3)국가권력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4)느슨한 지역구조 5)강력한 협력적 노동자공동체를 통해 국가권력의 한계를 보완하기 6)객관적 구조적 위기에 방심하지 않는 주체적 노력.

민중화에 의해 보완되는 지역화, 국가화의 전략은 전통적 사회주의 운동 흐름에서 생겨나고 있는 일정한 공통관념으로 보인다.
2009/09/07 21:27 2009/09/07 21:27

자본의 정부

Posted at 2009/07/27 00:01// Posted in 쓰기(skribi)/정치경제_PE
대전 MBC 뉴스에 따르면 2007년 11월 전경련 연구단체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명박 후보에게 전달한 11권의 백서가 제안한 바대로 현재의 이명박 정부 정책이 전개되고 있다. 그 제안의 골자는 '토지 이용에서 수도권과 지역 균형발전 문제, 노동 시장과 방송 통신분야, 교육 문제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삼성과 현대, LG 등 전경련이 꿈꾸는 세상'의 형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것은 1)수도권 규제완화, 2)MBC와 KBS2의 민영화,신방 겸업 허용,대기업의 방송과 뉴스부분 진입 허용,대기업의 종편 PP참여 3)대기업의 은행 참여 4)그린 벨트의 해제, 5)노동자의 해고 유연성, 6)교육의 서열화와 차별화 등을 포함한다. 최근의 미디어법과 금융지주법, 그리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바로 이 백서의 정치적 청사진을 하나하나 실시해 나가는 과정의 일부인 셈이다. 친서민 시정행보는 친기업 반서민 정책추진을 위장하는 제스쳐입이 이 뉴스를 통해 폭로되었다. MBC 뉴스 전문은 여기를 참조.


비공개 글입니다. 아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입력해주세요.
전경련 백서

2009/07/27 00:01 2009/07/27 00:01
현재의 쌍용자동차 파업이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사이 영국의 광부파업처럼 자본 재구조화(케인즈주의에서 신자유주의)를 알리는 신호인지, 아니면 한국의 1987년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에서 있었던 파업처럼 저임금장시간노동체제를 종식시킬 노동계급 재구성의 계기일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몇 가지 상황을 보아 1987년의 파업투쟁과 현재의 파업투쟁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전자가 임금상승, 노동조합결성,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자들의 전진적 요구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면 후자는 정리해고라는 자본의 공세에 맞선 방어투쟁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는 광업의 몰락을 계기로 나타났던 영국 광부파업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그렇다면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 몇 가지 진단들이 있다. (앞의 두 필자 모두가 자본측 인사들임을 고려하면서 읽어보자.)

자동차신문 Autotimes는 현재의 위기가 광잉생산으로 인한 순환위기라고 진단한다.

자동차산업이 위기라고 호들갑이다. 통상 특정 산업이 위기라는 건 시장이 붕괴되거나 사양길에 접어 들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21세기 자동차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아니고, 자동차시장이 붕괴된 것도 아니다. 다만 자동차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다소 비틀어졌을 뿐이다. ... 지난 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넘기고 80년대에 들어서자 자동차산업은 역사적으로 가장 큰 성장을 시작 했다. 현대 생활 및 모든 산업의 동맥 역할을 하면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었고, 그에 따라 공급도 확충해야 했다. 더불어 시장 이 글로벌로 확대됨에 따라 저가격, 고품질을 위해 기술은 물론 시설과 판매망 구축에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했다. ...  그 결과 공급은 곧 수요를 초과하게 된다. 쉽게 보면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동차회사는 무이자 혹은 할부, 리스 등 새로운 마케팅기법 외에 여러 새로운 파생 금융기법과 결탁한 판매전략을 동원해 지속적 또는 강제적으로 수요를 늘 리면서 간신히 명맥을 이었다. 그런데 미국 금융시장에서 시작된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불량 주택대출에 이은 자본유동성 문 제가 터지면서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렸다. 그러면 주택대출금 회수가 어려워 시작된 자본유동성 문제가 왜 자동차산업에 먼저 튀었을 까. 한 마디로 그 동안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금융계에 돈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실물경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주택담보와 같은 대출, 특히 이자와 환율이 요동치는 등 금융과 통화 시스템 자체 내에서 거품이 일어났던 것이다. 부실대출로 넘쳐난 돈이 자동차 가수요를 촉 발했다는 얘기다. 개인용 승용차는 신용과 할부로, 회사용 승용차는 장기 렌트와 리스 등 변형 및 파생된 각종 판매기법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 처럼 자동차 수요가 이른바 정상적인(?) 수요를 앞지른 데서 이미 위기의 싹은 트고 있었다. ... 불똥이 어떤 종류인지 제대로 살펴봐야 하는 까닭이 그래서 중요하다. 더구나 세계 모든 자동차메이커들이 다 불똥을 맞는 것도 아니 고, 세계 자동차시장이 축소 및 붕괴되거나 사양길에 접어든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동안 과열된 금융과 부실한 통화 시스템 거품 에 쌓였던 수요가 이제 거품이 빠지려는 것, 즉 정상적인 수요곡선으로 회귀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자동차 대량생산업체 한두 곳 이 파산해 공급물량이 부족해지면 살아남은 업체들은 엄청난 호황을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부실금융의 불똥은 대부분 몸집이 큰 미국 빅3를 비롯한 대량생산업체에 타격을 주고 있다. ... 그러나 세계 자동차시장의 상황과 전망을 자세히 보면 감산을 위한 부분적인 공장폐쇄나 일시적인 공장가동 중단은 있을지 모르지 만 자동차회사 혹은 전체 공장의 완전폐쇄로까지 갈 파산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 이 확보되고, 수요에 따른 탄력공급 형태 등으로 바뀌면 얼마든지 회생할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http://autotimes.hankyung.com/article_view.php?id=40932
울산대의 조형제는 양산 업체의 매출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특장점을 살려 전문화하지 않고 C200과 같은 승용차 개발에 투자한 점 등, 기업의 투자정책 오류에서 쌍용차 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쌍용차가 무쏘나 렉스턴 등 SUV 차량을 주로 생산·판매한다고 해서 스포츠전문 자동차업체인 것은 아니다. 쌍용차는 체어맨 같은 승용차, 이스타나라는 버스까지 생산·판매한다는 점에서 양산(量産) 자동차업체다. 작년에 쌍용차는 내수와 수출시장에서 도합 8만 2000대를 판매했다. 이는 작년 한국 자동차산업 전체 판매의 2.1%를 차지하는 것이다. 세계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쌍용차 같은 소규모 양산 자동차업체의 판매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예고된 것이었다. 쌍용차가 몰락한 주된 이유가 샹하이자동차가 투자를 안하고 철수했기 때문인가? 오히려 샹하이자동차는 쌍용차의 몰락을 촉진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법정관리인에게 시급하게 요구됐던 것은 쌍용차를 전문적인 자동차업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회생방안이었다. 쌍용차는 고유한 SUV 기술과 높은 수준의 디젤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무쏘나 렉스턴 등은 나름의 디자인과 엔진 성능으로  쌍용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SUV 모델이다. 경제불황 속에서 SUV 모델의 판매가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쌍용차가 연비효율이 높고 환경친화적인 SUV 모델을 중심으로 전문화된다면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쌍용차는 무모하게 C200이라는 승용차를 개발하는 데 승부를 걸 것이 아니라, 경쟁력있는 SUV 신차종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회생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418.aspx



사회디자인 연구소의 김대호처럼 위기가 이것보다는 좀더 심각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는 쌍용자동차의 경우 미래 전망의 위기가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쌍용차의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유동성 위기지만 실제로는 미래의 암울한 전망의 위기이다. 그 동안 쌍용차가 국내에서 선전한 요인은 뛰어난 스타일링도 있지만, 유가, 세제, 경쟁 환경이 협조했기 때문이다. 쌍용차의 주력(체어맨을 주력이라고 볼 수는 없다)은 대부분 디젤(경유) 엔진을 장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디젤엔진은 주로 트럭, 버스 같은 상용차에 장착되었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 가솔린 보다 훨씬 낮은 세금을 매겼다. 그런데 세금 구조를 그렇게 가져간다면 유럽산 디젤 승용차가 한국 시장을 휩쓸어 버릴 수밖에 없다. 유럽은 한국과 달리 경유와 가솔린의 가격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 디젤엔진의 연비가 좋다 보니 유럽은 디젤 승용차가 절반이 넘는다. 한국이 유럽에 연간 수십만 대의 차를 수출하는 만큼 유럽 역시 한국에 자동차를 팔 권리가 있다. 그래서 경유에 붙는 세금을 가솔린과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2002년 이후 경유 세금을 점진적으로 올리면서 2008~9년 시점에서는 경유 가격이 가솔린 보다 더 높아져 버린 것이다. 이는 쌍용차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취득세, 등록세 등 자동차 세제 관련 유리한 점도 사라졌다. 게다가 이전에는 SUV(무쏘, 렉스턴, 액티온 등)차량을 출시하지 않았던 GM대우와 르노삼성도 SUV를 출시했다. 이 차들을 포함해서 현대, 기아차 역시 차체 구조상 쌍용차 보다 나은 SUV차량을 출시했다.  쌍용차는 차체가 프레임 타입인데 GM대우, 르노삼성, 현대, 기아는 모노코크 형이기 때문이다. (모노코크형은 프레임 타입에 비해 더 가볍고, 충격 흡수력이 뛰어나다) 쌍용차의 모노코크형 차체의 신형 SUV(C200)는 개발비가 정상적으로 집행되어도 2010년 경에야 나온다. 이 역시 쌍용차의 규모의 한계로 인해 차량 개발비가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시가 늦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엔진 역시 개발비의 한계로 인해 아무래도 구형 모델을 오래 쓸 수밖에 없다. EURO 5 규제에 늦게 대응한 것도 역시 개발비의 한계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쌍용차 회사 규모가 너무 작다 보니 개발비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러시아, 말레이시아 같이 관세 장벽이 매우 높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중용 차를 생산하는 회사 중에서 쌍용차 같은 규모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포르쉐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를 만드는 회사는 대중용차 생산업체가 아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쌍용차의 중장기적 생존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는 10년 전에도 상식이었고 지금도 상식이다. 그래서 대우자동차에 넘겼고, GM에 넘기려 했고, 2004년에는 여러모로 궁합이 꽤 잘 맞을 것 같은 상하이차에 넘겼던 것이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71054


그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의 경쟁에서 경유 엔진 중심의 쌍용차가 뒤지고 있는 것이며 이 문제는 단순한 수요공급을 넘는 기술적 요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쌍용차 사태는 영국의 광산업의 사양(그것은 한국의 경우에도 같은 시기에 사북, 고한과 같은 파업사태로 나타났다)과 유사하게 자동차 산업 전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경유차 유형의 사양화 과정의 일부로 파악된다. 이에 따른다면 쌍용차 사태는 하이브리드형을 포함한 신차 중심의 자동차 산업 재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사회진보연대는 자동차 공급의 과잉이라는 순환론,에 자동차기업들이 금융투기에 동참해 왔고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그 여파가 몰아치고 있다는 분석을 덧붙인다.


쌍용자동차의 문제는 세계적인 자동차산업 위기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자동차산업은 198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과잉설비상태였다. 세계적으로 자동차기업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 속에서 신흥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현지공장 건설과 같은 방법으로 경쟁적으로 설비투자를 늘렸다. 특히 2000년대 세계적인 금융거품 속에서 자동차기업들은 금융부문을 확대하여 금융투기에 동참해왔다. 설비확장에 투자된 자본회수가 늦어지면서 자동차산업의 수익성이 하락했고,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함께 자동차 금융 위축, 자동차 시장의 축소 등으로 자동차산업은 심각한 타격에 직면했다. 쌍용자동차는 이러한 세계 자동차산업 구조에서 아주 취약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투기자본이 개입하면서 경영상태가 더 악화되었고,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직면해서 아시아 최초로 부도직전에 내몰린 자동차기업이 되었다. http://www.pssp.org/bbs/view.php?board=sola&id=642&page=1


단호한 전투적 노동조합주의 입장을 유지하는 원영수는 쌍용차 파업이 신자유주의가 추방했던 점거파업 사태의 귀환 신호로 받아들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 공세 아래서 노동조합은 직접적 공격의 주요한 타겟이었다. 1970년대 아래로부터 파업과 투쟁을 통해 형성된 투쟁력은 연이은 양보교섭으로 무력화되었고, 노동조합운동은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부터 회복되는 노동운동의 투쟁력(1995년 프랑스 연금개악저지 파업과 1996-97년 한국의 총파업)을 통해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서서히 구축해 왔다. 그리고 2008-09년 경제위기에서 노동자들의 대응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30년의 후퇴와 패배를 겪고 나서, 신자유주의의 계급성과 기만성을 체득한 노동자들이 자본에 맞서서, 동요하는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거센 저항을 시작했다. 최근 몇 개월간 점거파업과 총파업의 물결이 휘청거리는 자본주의의 한복판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노동조합의 무풍지대인 미국에서 작년 12월 리퍼블릭 윈도우 & 도어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항의하여 수 십 년 만에 점거파업에 들어갔고, 승리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의 비스티온과 프리즘 패키징, 아일랜드 워터포드 크리스탈 등에서도 점거파업을 감행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투쟁들이 점거파업의 무풍지대에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30년간 패배와 후퇴의 시기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런 국제적 흐름과 분리되어 전개되었던 한국의 민주노조운동 역시 이제 신자유주의, 아니 자본주의에 대한 공동투쟁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공황초입 국면에서 등장한 전투적 노동자투쟁의 큰 흐름에서 쌍용자동차 투쟁 역시 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6720

대안을 제시함에 있어서도 그의 시각은 노사협조를 강조하는 동아일보의 시각과 대립한다. 동아일보는 쌍용자동차 노조와 민주노총을 극렬과격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GM을 본받으라고 훈계했다.


GM은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 40일 만인 이달 10일 파산보호 상태에서 벗어났다. 쌍용차가 거울삼아야 할 사례다. GM은 미국 내 근로자를 2만여 명 줄이고 14개 공장을 폐쇄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GM노조의 상급단체로 과거 강경투쟁을 주도했던 전미자동차노조(UAW)는 2015년까지 무파업을 약속해 미국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냈다. 쌍용차노조는 GM노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 장관도 GM식 해법이나 GM대우와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전혀 고려한 바 없다”고 말했다. http://news.donga.com/fbin/output?f=i__&n=200907220100


이에 반해 원영수는 GM 노조와 전미자동차노조가 모범이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조와 금속노조, 그리고 민주노총이 모범임을 강조했다.

지난 5월 21일 전면 파업으로 시작된 쌍용자동차 점거파업은 97-98년의 경제위기시 파업투쟁의 맥을 이어 경제위기에 대한 정면으로 맞선 투쟁으로 시작되었다. 정부의 책임회피와 자본과 경영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옥쇄파업으로 정세를 돌파하고 있다. 양보교섭은 결코 안 된다! GM을 포함한 미국 자동차산업의 역사를 무엇을 보여주는가? 양보교섭은 대안이 아니다. 한 번의 양보는 더 많은 양보를 낳을 뿐이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경영진과 자본은 노동자를 죽이고 결국 자신마저 죽이기 마련이다. 국제적으로 자동차산업에서 노동비용은 10% 이하이며, 노동자의 책임은 1%도 되지 않음에도, 90% 이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 정리해고 안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단 말인가?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6720



아직 쌍용차 파업투쟁의 역사적 위치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쌍용차의 정리해고와 그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점거파업투쟁을 순환위기와 그 부산물로 볼 것인가, 자본간 경쟁과정에서의 경유차 부문의 도태와 그 부산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의 종말적 위기 속에서 노동자 투쟁의 재점화 과정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 문제는 제기되었지만 아직 충분히 분석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이 무엇인지 역시 안개 속에 있다. 더 많은 탐구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튼튼한 기둥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본주의의 종국으로 진단한다면 성급한 것이리라. 하지만 자본주의가 산업노동자들의 점진적 임금상승을 통해 유지되어오던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조절되고 통제될 수 있는 국면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신을 떠받치던 핵심적 노동대중층을 정리해고라는 방식으로 추방/배제하면서 자신을 더 날카로운 절벽위로 올려세우고 있다. 이것이 2000년대 초 대우차 사태와 2009년 쌍용사태를 통해 암시되는 진실의 일단이다.
2009/07/22 13:37 2009/07/22 1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