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갈무리, 1999) 2장으로 내가 번역했던 존 홀러웨이의 글, 「심연이 열리다: 케인즈주의의 상승과 몰락」을 읽고 중요한 메시지를 정리해 본다. 우리 시대의 전사를, 아니 최근의 금융위기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 내용이 이 글에 담겨 있음을, 번역할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생생함을 느낀다.
<케인즈주의의 상승>
-노동의 권력을 봉쇄하는 양식으로서의 케인즈주의의 붕괴를 검토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26)
-사회주의운동이 활성화되자 자본가들은 숙련노동자들이 산업발전의 조건에서 그것의 방해물로 바뀌었다고 판단하고 이들을 해체하기 위해 테일러주의와 케인즈주의로 전환한다(27)
-1920년대 전쟁 이후 세 가지 중요한 쟁점: 1)국제관계의 문제로서 혁명 러시아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케인즈의 회유-포섭론에 대항하여 제재론을 규정한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되다) 2)국가의 역할 문제로서 전쟁기간에 증대된 국가의 생산장악을 유지할 것인가 다시 재사유화할 것인가(후자의 승리) 3)화폐통제 문제: 금표준의 복구로 민족통화가 금가격에 묶이게 되었다. 요컨대 혁명과 패전 국가에 대한 제재, 재사유화, 금표준의 복구가 진보주의자에 맞서는 보수주의자의 태도였다.(32)
-노동과의 화해를 주장한 진보주의의 대응은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이 숙련의 파괴와 단조로운 노동의 도입으로 되자 노동자들은 이직으로 맞섰고 이것을 진화하기 위해 포드는 하루 5달러(2배이상의 임금) 정책을 도입했다. 이것은 죽음의 노동과 소비의 삶 사이의 교환이면서도 자본의 노동에의 종속을 의미했다.
-어째서 1929년과 1917년 사이에 10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가? 혁명이 구질서를 타격한 이후 왜 10년이나 지나 붕괴가 찾아왔는가? 위기가 노동계급 권력의 표현이라면 왜 그것은 노동계급 패배가 명확해진 시점에 찾아왔는가? 그 답은 신용과 화폐에서 주어진다. 자본은 생산에서 수익성 하락에 직면했지만 신용과 화폐를 통해 (은행차관과 주식시장에서의 허구적 팽창에 의해) 재팽창의 계기를 찾았다. 그러나 실제 잉여가치와 투기된 잉여가치 사이의 격차는 1929년에 거대한 규모로 폭발했다.
-노동계급의 제도적 통합은 1925년 영국 총파업의 패배 이후였다. 특히 그것은 1929년의 붕괴를 계기로 구질서가 붕괴하고 체제 개혁의 요구가 들끓으면서 이루어졌다.
-포드주의 하에서 노동관계의 재편, 미숙련노동자로의 노동의 재구성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것이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의 충분한 장치는 되지 못했고 전쟁을 통해서, 국가 수중으로의 권력의 이동, 불변자본의 파괴와 탈가치화, 사용을 위한 생산, 그리고 무엇보다 수많은 노동력의 피살과 폐기 등을 통해 성취되었다.
<케인즈주의의 몰락>
-60년대 말 찾아온 케인즈주의의 위기는 노동과 자본의 관계의 위기, 즉 노동권력을 봉쇄하는 특수한 양식의 위기이다. 1)노동권력의 상승은 높은 임금, 즉 화폐 비용의 증대로 나타났다. 2)노동권력 상승의 또 다른 측면은 기계화였다. 이것은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했는데, 이것은 착취의 비용이 점증한다는 사실의 표현이다. 3)노동권력 상승으로 착취의 간접비용도 증가했다. 재정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생산에서의 기계화, 분배에서의 임금상승, 그리고 정치에서의 재정지출 증대는 케인즈주의적 자본축적에 한계를 부여한다. 이것이 1960년대 말 이윤율 하락과 사회적 불안정성 증대의 원인이다. 노동조합 권력도 그것이 대의하는 노동자들의 실제적 요구(노동거부, 국가거부 등)와 분리되면서 형해화되기 시작했다.
-1933년 금표준의 포기는 민족경제의 관리를 세계시장의 위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화폐의 지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는 미국 자본의 압도적 힘에 의해 가능해진 것으로 달러의 인플레이션적 유연성을 국제적 화폐 흐름 속으로 도입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 세계시장으로부터 민족경제들을 일정하게 보호했는데 그것은 고정환율제에 의해 가능해졌다(격리효과). 이 두 장치를 통해 ‘무질서한 군중’의 권력인 노동권력은 국제통화체제 속으로 통합되었지만 그 속에서 불안정성으로 재출현했다.
-불안정은 신용확장으로 나타난다. 일국에서의 신용확장에 큰 자유가 주어졌고, 미국에서의 인플레이션이 제도화되었다. 1)신용확장의 지점은 국가라기보다 민간(기업과 소비자에 대한 은행당좌대출)이었다. 2)신용확장에 대한 국가통제의 결여는 미국 외의 달러시장(유로시장, 오일달러시장)을 창출했다.
-이 두 가지 화폐시장의 팽창은 금태환성을 약화시켰다. 고정환율제는 만성적인 수지불균형을 가져왔다. 태환가능성의 약화에 대한 우려는 달러를 금으로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부채질했고 1971년 달러의 금태환성이 포기된다. 브레턴우즈체제가 포기되자 국가정책들은 다시 국제시장의 화폐흐름에 종속된다. 달러에 대한 투기적 압력이 고조된다. 케인즈주의의 죽음이 명백해지고 통화주의 경제이론에 자리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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