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gmentoj 2008/06/12 00:58

87년과 08년

87년에는 08년이 부족하고 08년에는 87년이 부족하다.
그것을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87년은 생산자 운동적이고 08년은 소비자 운동적이다.
생산과 소비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다.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형상,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지 않는 형상, 예술가의 형상이 08년의 미래를 규정하게 되지 않을까?
Fragmentoj 2008/06/12 00:38

08혁명의 의미

08혁명은 아우또노미아의 타당성을 물질적으로 보여준다.
전위적 좌파 논리는 좌초한다.
어려움은 전위적 좌파와 사회적 자율적 좌파 사이의 논쟁에 있지 않다.
현재의 광장과 거리에 공통의 창조를 둘러싼 엄청난 정서적 지적 신체적 고투가 있다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겪어 보지 못한 상상력의 실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향한 포스트모더니스트 지식인들은 디지털, 탈근대 등의 두리뭉실한 말들로 현장에서의 예민한 문제들을 뻘칠하고 있다.
지금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무엇으로 될 것인가가 구체적으로 점검되고 상황 속에서 발견되어야 할 시간이다. 그러나 이것만큼  큰  고투를 요구하는 것이 지금까지 있었던가?
Fragmentoj 2008/06/11 22:14

간과 관

보는 자의 관념이 투영되는 것: 관
지나치며 직관적으로 보는 것: 간
맥도날드
조중동
조중동에 광고한 기업들
그리고 이명박이 씨이오인 한국주식회사
주도적인 것
여성이 남성을 이끈다.
청소년이 성인을 이끈다
디지털(인터넷)이 아날로그(신문)를 이끈다
소비자운동이 생산자운동을 이끈다
비물질노동(문화)이 물질노동(산업)을 이끈다.

뒤따르는 것
노동자가 시민을 따른다
지식인이 대중을 따른다
정당들이 대중을 따른다
Fragmentoj 2008/06/02 00:37

불법

경찰이 전경버스를 동원해 광화문 사거리를 봉쇄하자 시민들이 이를 넘어서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밤 10시께 시민들은 밧줄로 한 대의 전경버스 바퀴를 묶어 일부 끌어냈다. 버스로 막은 길을 트기 위한 것이었다.
경찰은 "전경버스를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경고 방송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시민들은 "전경버스는 우리 세금으로 만들었다"고 외쳤다.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도 있었다.
전경버스에는 인쇄된 '주차 위반 스티커'도 붙었다.
내용은 "이 차량은 아래와 같이 불법 주차했기에 헌법 1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의거 전 민중의 힘으로 견인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되어있다.
또 "이처럼 큰 차량은 혼자 힘으로 주차할 수 없기에 배후 세력을 끝가지 추적해 처벌하겠다, 단속자 : 이 땅의 양심적인 민중, 위반자 이명박 및 해당 경찰서장 귀하"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스티커는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주차위반이라고 인쇄 되어 있다.
경찰이 시민들에게 "지금 불법 시위를 하고 있다"고 계속 경고하자, 시민들은 "이명박이 불법이다,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편 밤 9시 30분께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종로 쪽으로 행진했다. 시민들이 갑자기 종로 쪽으로 향하자 미처 피하지 못한 전경버스 한 대가 고립되어 시민들 틈에 갇히기도 했다.
종로로 향하던 시민들 가운데는 특이하게 여성들로만 이뤄진 시위 대열도 있었다. 이 여성 시위대는 MLB 파크·소울드레서·쌍코·새틴 등 4개의 인터넷 카페로 이뤄졌다.
이들은 여자들 위주로 전혀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대단히 세련된 의상을 입은 이들은 네줄로 서서 마스크를 쓴 채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협상무효
고시철회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병박은 물러가라
비폭력


피켓
사주가 아니라 자발성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자본주의는 먼저 폭력(상인자본주의)에 의지했고 다음에 국가권력(산업자본주의)에 의지했고 다음에 시장(인지자본주의)에 의지했으며 이제 전쟁(전쟁자본주의)에 의지한다.
국가에 대한 비판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시장과 전쟁이 비판되어야 한다.
삶정치적인 공통적 생산의 산물이 사유화되어 공적 자금이라는 형태로 축적된다. 학진 기금이나 문예진흥 기금은 그러한 자금의 일부이다.

이에 대한 태도들이 몇 가지 존재한다.
1. 공적자금은 임금 이외에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임금의 한 형태이므로 적극적으로 받아서 사는 데 이용하자.
임금의 획득이 노동자간의 경쟁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사회적 임금도 시민 개인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획득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장 부르주아적인 생각이며 가장 다수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노동자간 경쟁을 자연화하고 그만큼 부르주아 사회를 추인한다. 공적 자금의 사적 사용론.

2. 공적 자금을 받아서 공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데 사용한다면 되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임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고 사회적 임금형태의 자금이 필요하다.
---일단 공적 자금의 수여가 경쟁과 시험에 의해 주어진다는 점을 건드리지 않은 채, 이 틀 내에서의 내용적 사회성을 추구한다. 공적 자금의 공적 사용론.

3. 공적 자금은 공을 대표하는 국가가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형태이므로 공적 자금은 받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활동을 위해 부족한 임금은 사적 영역에서의 더 많은 노동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좋다.
--사적인 영역 역시 공적 영역과 똑같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공간이자 장치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임금도 사회적 임금 과 동일하게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정치적 형태이다. 그리고 이 관점은 공적 자금에 대한 회피가 삶정치적 공통적 생산의 산물에 대한 사유화를 온존시키고 그 자금이 생산자들에게 더 불리한 방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공적 자금 회피론.

오늘날 사적 축적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공적 자금의 규모도 더욱 커지고 있다. 거대한 사적 축적과 거대한 공적 축적은 우리의 삶을 압살하고 있다. 이 경쟁체제에 기생하거나, 혹은 공사의 환상적 구분 위에서 공을 거부하고 사를 선택하는 것은 현존하는 착취와 지배 구조에 대응할 수 없다. 이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이 찾아져야 한다.

사적 권력의 관심과 이해라는 필터를 통과함으로써만 사회적 임금의 배분에 참여할 수 있는 현존하는 구조를 깨뜨릴 수 있게 위해서는 공적 자금을 공통기금으로 전환시키키고 이 공통기금을 무조건적 보장소득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공통기금은 어떠한 심사도 허가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삶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공적 자금만을 건드리고 사적 축적 메커니즘을 건드리지 않고 놓아 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무조건적 보장소득의 운동은 사적 영역 자체의 근본적 변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소득은 정치적으로 불균등하게 조직되어 있다. 특히 정규직, 비정규직, 실업자의 구획에 따른 소득의 차별화는 극히 정치적이다. 그 차별의 정도는 극심해서 거의 무한배에 가까운 소득차가 난다. 무조건적 보장소득은 이 차별의 골간을 깨뜨릴 수밖에 없으며 만인의 삶의 보장을 통해 공포, 적대, 배제를 최대한 제거하게 될 것이다. 노동에 따른 가외소득의 규모는 무조건적 보장소득이 창출할 공통성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로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공적 자금의 공통기금화와 무조건적 보장소득, 노동에 따른 가외소득이라는 잠정노선을 통해서 오늘날 공사의 구분 위에서 전개되는 거대한 사적 공적 자금들의 전횡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것은 올바른 노선의 확정 문제를 넘어서는 공통적 실천의 조직화를 요구한다. 다중의 집단지성과 공통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






*현존하는 힘들의 양적 집계보다 새로운 상황창조를 통한 힘들의 변형이 더 중요하다. 변형은 전염적이기 때문이다. 양적 합계는 그것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성격을 떨치지 못한다. 연합에의 참가는 집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배치의 창조를 위해서 이루어질 때 효과적일 것이다.

*지속은 동일성의 존속으로 이해될 때 권력적이고 보수적으로 된다. 지속은 차이의 귀환으로, 새로움의 생성으로 이해됨으로써 그러한 함정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