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test Book by Amelano Joe!
●Inventer le Commun des Hommes(A. Negri) 강독
2010. 10. 1 ~끝날 때까지(매주 수 오후 7시 30분) @ 다지원
●「아랍혁명의 세계사적 위치」(『오늘의 문예비평』 , 2011년 여름)
●「맑스주의의 진화를 가로막는 경제주의적-‘맑스주의’주의적 퇴행에 대한 비판--서동진의 『인지자본주의』 서평에 대한 반론」
●「생명과 혁명 : 생명의 정치화를 위한 서설」(<맑스코뮤날레>, 2011년 6월 발표)
●「인지장치로서의 자본: 『인지자본주의』의 스펙트럼」([인지와 자본] 심포지엄 발표 , 2011년 5월 19일, 숨도) http://book.interpark.com/event/EventFntTemPlate.do?_method=GenTemplate&sc.evtNo=106322
●세계화의 갈림길(가제)
●혁명의 세계사(가제)
●인지와 자본(공저)
●John Holloway, Crack Capitalism, Pluto, 2010
●Antonio Negri, GlobAL, Édition Amsterdam, 2007
이론은 봄(thea)이다. 코뮤니즘의 이론은 생명의 힘을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산 것과 죽은 것을 식별하면서 산 것의 약동을 가시화시키는 활동이다. 산 것을 보게 하지 못하는 이론은 이론이 아니다. 죽은 것들을 나열하는 것, 죽음의 현상을 스케치하는 것은 봄으로서의 이론이 아니다. 죽은 것들의 나열 위에 상상된 생명을 덧붙이는 것도 이론이 아니다. 죽은 것들, 죽어가는 것들의 더미들 속에서, 그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죽은 것들을 어떻게 소생시키는지를 가시화시키는 것이 이론이다. 요컨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이론이다.
생명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은 생존의 목소리를 반복하는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생존은 생명의 억압형태이며 죽음에 적응한 생명이다. 부단히 사람들을 죽음 속으로 몰아넣는 자본주의적 삶 속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생명의 과제로 되곤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개개인들의 요구이자 목표가 되곤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론은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론은 생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때조차 그 속에서 생명의 자취, 생명의 움직임을 보고 드러내어야지 생존의 요구에 적응하고 타협해서는 안 된다. 생존의 요구와 타협하는 것은 죽음과 타협하는 생존에 굴복하는 것이고 이론이기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혁명을 하지 않는 노동자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현실과 동떨어진듯한 말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야말로 이론의 역할이고 사명이다. 혁명을 하지 않는 노동자는 가변자본에 불과하다는 것, 자본의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발함으로써 맑스는 자본의 포섭 하에서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으로서의 생명, 혁명하는 노동의 실재를 가시화하려 했다.
레닌이 경제투쟁 너머의 사회주의 정치의식의 실재성을 강조할때에 그가 의식하려고 한 것은 개별성 너머의 어떤 일반적인 것이었다. 경제적 이익을 둘러싼 투쟁을 넘는 투쟁에 대한 요구, 전국적이고 전계급적인 정치투쟁에 대한 요구는 생명에의 성찰이 표현되는 당대의 역사적 형태였고 이론이 나타나는 당대적 방식이었다.
생명의 울림과 목소리를 역사가 제시하는 압박과 울타리 아래에서 직관하고 그것에 대항하는 생명의 저항을 서술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생명의 약동을 상상하는 것이 이론의 역할이다.